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7)화 (7/246)

6화

03. 김세현의 남자

그래, 태웠는데.

- 던전 클리어.

“…….”

네트워크 연락망을 통해 들려온 한 주무관의 말끝이 흐릿하다.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이름이 떠오르는 건 그간 겪은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탈이 난 부팀장 대신 자리를 지키고 있던 팀장이 입을 열자, 나는 침음을 삼켰다.

“…또야?”

그래, 또인 것 같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골치 아픈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팀장만큼이나 나 또한 마음이 복잡했다. 책꽂이에 자리한 가제본된 협조금 책정 관련 문서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 요즘 할 일이 없는 모양입니다.

평화로움을 가지고 온 던전이 클리어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만 해도 김세현의 등장은 반갑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아니, 많이 부담스러웠다.

“하!”

팀장 또한 말이 나오지 않는 모양인 듯하다. 허탈함이 가득 묻어나는 숨소리를 들으며 한 번 더 한숨을 뱉었다.

“그 자식, 요즘 협회서 돈 안 준다고 하디?”

- 그런 말은 없습니다.

“예산 얼마나 긁어 가려고 멋대로 끼어들어, 끼어들길!”

- …현장 분위기도 뒤숭숭합니다.

“그러겠지! 던전만 생성되면 S급 헌터가 나타나 삽시간에 던전을 클리어해 버리니 자괴감 생기겠지!”

“김세현이 하급 던전을 클리어한 것도 오늘로 벌써 다섯 번입니다.”

언제 들어왔는지 창백한 안색의 부팀장이 말을 얹는다. 그나저나 벌써 다섯 번이라면 협조금이….

“빌어먹을! 예산 거덜 내려고 작정을 했나!”

협조금으로 나가는 금액과 복구비를 놓고 따져 본다면 전자가 훨씬 적게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중시하는 윗선이 평소보다 많은 금액이 협회로 흘러가는 걸 좋게 볼 리 만무했다.

그러지 않아도 얼마 전에 있었던 서울시 홈페이지 다운 건으로 인해 헌터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시청이었다. 아마 이번 일 또한 좋은 눈으로 보진 않을 거다.

“…….”

어째서 김세현은 등급이 맞지도 않음에도 하급 던전을 클리어하는 건지 연유를 모르겠다.

평소대로 굵직한 던전에만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은데 말이다. 고심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것만 같다. 나는 고개를 털곤 팀장과 부팀장 쪽을 바라보았다.

“분명 우리가 부르지 않을 걸 알고 미리 선수를 치는 거겠지. 하여간 법의 빈틈은 잘 노려 문제야, 협회 놈들은!”

“자의에 의한 협조 관련 부분이 얼른 시정되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이번 일이야 김세현이 먼저 처리한다고 하지만, 일 끝날 즈음에 수저 올려서 협조금 타 내는 놈들도 있고 말이죠.”

자의에 의한 협조.

그러고 보면 이것 때문에 집행하지 않아도 될 협조금을 집행하는 일이 많았다.

한국헌터협회 소속 헌터라면 자의건 타의건 나라에 협조할 시, 무조건 그 협조에 관한 금액을 나라에서 내주어야만 한다는 법이라니.

마치 나라 위에 헌터 협회가 존재하는 것만 같은 법이다. 나는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가 순간 떠오른 예외 조항에 눈을 끔벅였다.

“…….”

그간 이곳에서 주워 들은 김세현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면 지금쯤 손님이 여러 번 방문했을 것이었다. 더하여 화환 문구 관련하여 물어볼 기회도 있었겠지.

하지만 손님은 여태 한 번도 이곳을 방문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김세현이 협조금을 수령하기 위해 던전을 소멸시킨 게 아니라 오가던 길에 도움을 준 것일지도.

“S급이면 S급답게 큼지막한 던전이나 찾아갈 것이지, 왜 자꾸 부르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와선 협조해!”

- 그러지 않아도 조금 전 김세현과 마주칠 일이 있어 적당히 하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짜증 섞인 팀장의 말 뒤로 한 주무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슨 말을 나눴을까 싶어 귀를 쫑긋 세웠다.

- …마실 나왔답니다.

“마, 실.”

사무실 안이 삽시간에 조용해진다. 나 또한 입을 다문 지 오래였다.

“…….”

과거 생각을 하면 정말 마실 나왔다 던전을 클리어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짧은 기간 내 다섯 번이나 마실을 나왔다 던전을 마주할 확률은 희박했다. 그래, 한 지역에서 내리 던전이 생성된 것도 아니고, 제각기 다른 구역에서 발생한 던전이기에 더더욱 그랬다.

김세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마실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일없으니 여기저기 들쑤시면서 돈 챙길 궁리나 하고 있겠지! 내 이놈의 협회 놈들, 말 나온 김에 오늘 가서 한 번 뒤엎고 와야지! 막내야!”

“네, 팀장님!”

“지난주까지 정리된 협조금 문서 가지고 와!”

“네!”

김세현 관련 문서와 함께 협회 전체의 협조금 문서를 챙긴 뒤 곧바로 팀장에게 전달했다.

“오늘 옆 건물에서 시끄러운 소리 난다고 해도 무시해. 지난번에 못 한 푸닥거리 좀 하고 올 테니까!”

서류를 받자마자 자리서 일어난 팀장이 윗옷을 챙긴다. 씩씩거리는 팀장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뒤집어도 한참 뒤집어 버릴 것 같다.

“다녀오십시오.”

잔뜩 긴장한 나와는 달리 너무도 태연히 인사를 건넨다. 의아함에 부팀장을 돌아보니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이 보인다. 나는 등에서 땀이 흐르는 착각이 일었다.

“혹시 늦으면 정시에 퇴근해!”

“알겠습니다. 하늘 씨, 중계기 종료하죠.”

“…네, 중계기 종료하겠습니다.”

바로 중계기를 종료시킨 뒤 거울 앞에서 험상궂은 표정을 짓던 팀장이 부르자 그쪽을 바라보았다.

“막내는 퇴근할 때 부팀장이랑 같이 가는 거 잊지 말고!”

“예!”

“좋아.”

고개를 끄덕인 팀장이 사뭇 비장한 얼굴로 창문으로 향한다. 오늘도 역시나 단거리로 이동하려나 보다 싶었는데, 팀장이 방향을 틀어 출입문으로 향하는 걸 발견했다.

“이 자식들을 그냥!”

와직!

최근 팀원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던 화환의 둥그런 부분을 동강 내는 모습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마치 협회 측 사람들의 머리를 쑥 뽑아 버리겠단 선전포고처럼 보이는 건 내 착각일 거다. 아니, 착각이었으면 했다. 목을 움츠렸다. 그리곤 한참 동안 둥근 부분을 휘두르던 팀장이 그대로 창가로 가 뛰어내리는 걸 보고는 침묵했다.

“…….”

그저 화풀이만 할 줄 알았지, 저걸 들고 갈 줄은 몰랐다. 멍하니 열린 창문을 보다가 부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억지로 입가를 끌어 올렸다.

“쓰레기도 함께 처리하고 올 모양인가 보네요.”

“하하.”

기왕이면 통째로 가지고 갔으면 좋으련만.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를 배경으로 마른 꽃과 나무 파편들이 널브러진 바닥을 보고 있자니 왜 이리 심란한지 모르겠다. 흐릿한 웃음을 지은 뒤 곧바로 뒷정리를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팀장이 뛰어내린 창가로 가 힐끗 옆 건물을 바라보았다.

“…….”

매번 느끼는 거지만, 어쩜 저리도 건물이 높을 수 있나 싶다. 저 건물에 들어간 혈세를 생각하니 팀장이 마음껏 날뛰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팀장을 향해 응원을 보냈다.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네.”

응원 중이었다 밝히기엔 너무 늦은 듯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긴 잡초라고 여기면 됩니다. 한 번씩 관리해야 하거든요.”

“아.”

협회를 잡초라 표현할 줄은 몰랐다. 진저리가 난다는 듯 얼굴을 찌푸린 모습에 조용히 창문을 닫고 자리로 돌아왔다.

“하늘 씨.”

“네, 부팀장님.”

“오늘은 일찍 퇴근하는 것으로 하죠.”

“네!”

일찍 퇴근한다면 나야 좋았다. 얼마만의 정시 퇴근일까 싶어 날짜를 헤아리다 부팀장의 웃음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정시 퇴근이 고팠나 보네요.”

“조금요.”

부서가 부서이니만큼 정시 퇴근은 어려웠다. 몸이 고되긴 해도 헌터부에 근무하는 건 나쁘지 않았다. 만약 밤까지 근무했더라면 생각이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니 의아하다. 어째서 던전은 밤에 생성되는 일이 드문 걸까.

잠시 고민하다 이내 그 생각을 묻었다. 이런 건 박 주무관에게 물어보는 것이 훨씬 빨랐다.

“오늘은 일찍 퇴근해 봅시다.”

“네! 그럼 주무관님께 메시지 돌릴게요.”

“그러세요.”

현장에 나간 주무관들도 통솔을 마친 뒤 던전 규모를 파악만 하면 바로 퇴근할 수 있어 좋아할 거다.

어깨를 들썩이며 메시지를 보낸 뒤 이른 퇴근을 위해 서둘러 오늘 처리할 서류들을 훑어보았다.

콰앙- 쾅!

“헉!”

이게 무슨 소리지?

별안간 밖에서 들려온 굉음이 건물 전체에 휘몰아친다. 진동까지 느껴지는 상황이다. 나는 황급히 창가로 이동했다.

“신경 쓰지 말아요. 협회에서 나는 소리니까.”

“…네?”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큰 소리가 나는 건지 모르겠다. 협회 쪽을 봤다가 다시 부팀장을 바라보았다.

큰 소리가 나고 있음에도 평온하기 그지없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는 모습이 마치 일상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나는 이런 소리가 났던 게 한두 번이 아님을 깨달았다.

과연 부팀장처럼 일이 손에 잡힐까 싶지만, 그렇다고 계속 허송세월할 수만은 없다. 그래, 늦으면 이른 퇴근을 할 수 없단 마인드로 작업하면 될 거다.

중간중간 들려오는 굉음에 놀라면서도 퇴근 하나만 보고 오늘 자 일을 매듭짓다 보니 조금씩 적응되는 기분이다. 얼마나 집중했을까, 부팀장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어서 마무리해요. 퇴근합시다.”

“…이렇게 일찍이요?”

이른 퇴근을 하자고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몰랐다. 갓 세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이미 짐을 다 챙긴 부팀장의 모습에 황급히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예.”

미리미리 일을 끝내 두어 다행이다. 하나 남은 작업물까지 처리 후 짐을 챙겨 일어났다.

“어서 가죠.”

“…네.”

부팀장이 이렇게 조급해하는 사람이었던가 싶을 만큼 자꾸만 재촉한다. 빠르게 움직여 부팀장과 함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오늘 같은 날은 팀장님이랑 같이 안 있는 게 서로 좋습니다. 슬슬 화풀이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라서요.”

“그렇군요.”

부연 설명을 들으니 어째서 이른 퇴근을 하자고 했는지 알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처럼 팀장님이 협회로 가는 날엔 항상 먼저 자리를 피하는 겁니다.”

“네.”

부팀장이 이렇게 말한다는 건 그만큼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함을 뜻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1층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문이 열리는 순간, 보이는 광경에 휘둥그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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