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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5)화 (5/246)

4화

02. 이렇게 이름을 알리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손님이 남긴 말 때문일까, 오늘따라 유독 몸이 가볍다.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게 사무실 문을 여니 박 주무관과 한 주무관이 보인다. 나는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다.

“어제 고생 많으셨어요.”

“막내 왔구나.”

“좋은 아침.”

“참, 어제 현장에서 따로 협회 쪽 협조는 없었으니 참고하고.”

“알겠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다. 나는 반색하며 자리서 짐을 풀었다.

“아, 막내야.”

박 주무관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그나저나 어제 음식들은 어떻게 됐어?”

“물어 뭐합니까. 부팀장님도 그렇고, 우리 하늘 씨도 입이 짧아서 보나 마나 다 버렸겠죠. 아, 탕수육은 가지고 가서 데워 먹어도 괜찮을 텐데. 챙겨 갔어?”

뒷정리가 늦어진 바람에 현장에서 바로 퇴근한 터라 어제 점심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궁금해할 만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깨끗했던 접시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어제 손님이 오셨거든요. 함께 먹었습니다.”

“손님?”

“네, 김세현 헌터 측근이 오셨더라고요.”

“…그 사람이랑 같이 먹었다고?”

“네.”

함께 식사한 게 이렇게 놀랄 일일까 싶다. 두 사람 모두 눈이 커진 채 날 바라본다.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인 뒤 이번엔 서로 눈을 마주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돈 체크만 하고 돌아가는 놈이 별일이네.”

“그러게나 말입니다. 커피라도 한 잔 마시라고 내밀어도 됐다며 손사래 치던 사람인데.”

“간혹 말을 한다고 해도 다 돈과 관련된 말 아니었어?”

“오죽했으면 김세현이랑 장단이 잘 맞아서 그 밑에서 일하는 거 아니냔 말도 했었죠!”

“…설마. 막내가 권해서 응했나?”

별안간 이쪽을 바라보는 한 주무관이다. 김 주무관까지 같은 표정으로 본다.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흘렸다.

“하긴.”

“김세현 같은 녀석을 상대하다 우리 막낼 보니 얼마나 마음이 편안했겠습니까. 오래간만에 무해한 사람과 마주했는데, 제가 그놈이라도 바로 응했죠.”

갑자기 왜 그쪽으로 이야기가 향하는지 모르겠다. 마치 집안의 막둥이가 재롱이라도 부린 것처럼 흐뭇한 시선을 보내는 건 또 뭐고 말이다. 나는 민망함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팀장님!”

사무실 문이 열리며 팀장이 들어온다. 바로 인사를 건넨 뒤 평소와 다른 모습에 바로 물었다.

“뭐 챙겨 올 거라도 있으셨어요?”

팀장이 출퇴근할 때 챙기는 거라곤 핸드폰과 지갑, 그리고 자동차 키밖에 없었다. 품에 안긴 종이봉투를 보다가 코를 스친 달콤한 빵 내음에 눈이 커졌다.

“근처에 빵집이 새로 생겼더라고. 아직 아침 안 먹었으면 챙겨 가. 넉넉하게 사 왔으니까.”

“오오, 역시 팀장님!”

“잘 먹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아침을 거른 터라 출출했는데, 잘 됐다. 곧바로 원탁으로 가니 먼저 도착한 김 주무관이 종이가방 안의 빵들을 원탁에 쏟는다. 갓 만든 빵이라 그런지 몰라도 이보다 더 향기로울 수가 없다. 나는 급격히 허기가 차올라 손을 번쩍 들었다.

“얼른 커피 타 오겠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좀 더 표현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이게 우선이었다. 물끄러미 이쪽을 보던 팀장이 픽 웃음을 터뜨린다. 나는 따라 입매를 끌어 올리던 중 별안간 등에서 느껴진 충격에 그대로 허리를 굽혔다. 아니, 허리가 접혔다.

“하핫! 역시 우리 막내가 최고지!”

“어어!”

“그렇게 때리면 우리 병아리 등 터져요!”

“…이런.”

팡팡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날 때마다 등에 무언가 닿았다 떨어진다. 그뿐이랴, 그때마다 자꾸만 허리가 앞으로 접힌다. 충격 또한 상당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환해지길 반복한다.

“괜찮아?”

옆에서 말이 들려왔지만, 지금은 대답할 정신은 없었다. 무릎을 손으로 짚은 채 시간을 보내니 컴컴했던 시야가 조금씩 돌아온다.

느리게 접혔던 허리를 펴자 세 쌍의 눈동자가 날 바라보는 상황이다. 걱정으로 가득 찬 시선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허리를 곧추세웠다.

“괜찮아?”

“…내가 너무 흥분했어.”

“그, 괜찮습니다.”

등 전체가 울리긴 했지만, 속절없이 접히는 몸에 잠시 공포를 느끼긴 했지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괜찮았다. 더 걱정할까 싶어 입가를 끌어 올렸다.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좀, 뼈가 울리긴 하는데, 괜찮습니다.”

“뭐? 뼈가 울려?”

뼈가 울린다는 말에 팀장의 목소리가 커진다. 나는 말을 덧붙였다.

“시간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

그래, 이 정도 충격은 시간이 지나면 지나갈 것이었다.

“팀장님이 얼마나 세게 쳤는지 아십니까? 전 막내 뼈 부러진 줄 알고 놀랐다고요!”

“…그, 미안하다.”

한 주무관의 원성에 팀장이 뒷머리를 긁적인다. 너무도 미안해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내가 더 미안해진다. 나는 계속 말을 주절거리며 더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됨을 피력했다.

“이 정돈 좀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저, 생각지도 못한 터치라서 충격이 좀 있었을 뿐이에요! 시간 지나면 괜찮아지니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막내를 너무 세게 때린 건 내 잘못이 맞지.”

어째 말을 하면 할수록 눈꼬리가 아래로 향한다. 시무룩한 얼굴로 어깨까지 축 늘어뜨리는 팀장을 보고 황급히 정수기 쪽으로 향했다.

그래, 내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는 말로만 괜찮다 하는 것보단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더 나을 듯했다.

빠르게 커피를 타고 와 모두에게 전달하곤 아무렇지도 않음을 알리려 어깨에 힘을 실으며 몸을 꼿꼿하게 폈다.

“이 정돈 거뜬합니다, 팀장님!”

“풉!”

“푸핫!”

“정말 막내, 넌 최고다!”

갑자기 왜 웃음을 터뜨리는지 모르겠다. 나는 당황하다가 세 사람의 얼굴에 자리한 짓궂음을 발견하곤 뒤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하아.”

어쩐지 잘 지나간다 싶더니오늘은 아침부터 장난기가 도진 모양이다.

호탕하게 웃는 세 사람을 보며 나 또한 미소 지었다.

그래, 차라리 시무룩해할 바에야 지금처럼 즐거워하는 편이 나았다.

“음? 뭐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부팀장님!”

웃느라 사무실에 누가 들어왔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다. 의아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부팀장에게 조금 전 상황을 설명해 주는 두 사람이다. 별일도 아닌데, 괜히 과장되는 듯했다. 나는 콧잔등을 만지작거렸다.

“푸핫! 우리 막내 사무실에서 잘 보듬어 주세요! 밖으로 내보내면 안 되겠습니다!”

“장난인 줄도 모르고 얼마나 열심이던지! 이보다 더 맹한 녀석이 어디 있겠어요!”

“하하.”

이야기를 들은 부팀장 역시 웃음을 터뜨린다. 몇 분 뒤 도착한 김 주무관까지 이야기를 듣곤 즐거워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어제 손님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

어제도 좋았지만, 오늘은 더 좋은 날이 될 거라 했는데, 정말 그 말대로 하루가 흘러가는 듯했다.

기왕 기분 좋게 시작한 거, 남은 하루도 술술 잘 풀렸으면 좋겠다. 팀원들과 빵을 챙겨 먹은 뒤 그 어떤 날보다 기운차게 일과를 시작했다.

…그래, 그렇게 시작했는데.

“…….”

도대체 누가 보낸 걸까.

책상 위에 놓인 꽃바구니를 보고 있자니 이보다 더 당혹스러울 수가 없다. 잘못 배달 온 게 아닐까 싶어 배달원에게도 여러 차례 확인했던 걸 떠올리고 미간을 좁혔다.

다른 사람이 보면 안쓰러워할 만큼 내 인맥은 좁디좁았다. 심지어 그 좁은 인맥도 공시를 준비하며 거의 끊기다시피 한 터였다. 그랬기에 이 꽃바구니를 보낸 사람을 가늠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았다.

정확히 내 이름으로 배달된 만큼 모르는 사람이 이걸 보낼 리도 없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나는 끙끙대다가 팀장의 부름에 즉각 답했다.

“막내야.”

“네, 팀장님.”

“만나는 사람 있어?”

“전혀요.”

지금껏 살아오며 누군가를 만난 건 유치원 때밖에 없었다. 그것도 딱 3일 말이다. 팀장의 말에 단호히 답하며 꽃바구니를 눈여겨보던 와중, 풍성히 핀 꽃들 사이에 자리한 조그마한 카드를 발견했다.

“뭐 찾았어?”

“네.”

김 주무관의 물음에 답한 뒤 반으로 접혀 있던 카드를 펼쳤다.

「나의 천사에게」

“…….”

“뭔데? 뭔데 그런 표정이….”

내 표정이 어떤지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다. 보여 달라는 말에 곧바로 그것을 김 주무관에게 그것을 건넸다. 잠시 뒤, 나는 그의 표정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뭔데 다들 그런 표정이야?”

이번엔 팀장이 김 주무관의 손에 들린 카드를 집어 간다. 그리고, 이윽고 팀장에게까지 썩은 표정이 번졌음을 확인했다.

“막내야, 이거 보낸 사람 알아?”

그걸 알 수만 있다면 단순한 놀림 정도로 치부하고 말았을 거다. 물론, 이렇게 표정이 썩지도 않았을 테고.

이런 장난을 칠 만한 사람이 주변에 한 명 있긴 했지만, 날 천사라고 부를 만큼 비위가 좋진 못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뭐라고 적혀 있길….”

“뭔데 다들 그런 표정이십니….”

카드를 확인한 팀원들의 표정이 하나가 된다. 마지막으로 카드를 확인한 부팀장이 그것을 다시 내게 전달한다. 나는 곧바로 꽃바구니 아래에 넣어 시야에서 그것을 사라지게 했다.

“아니 왜 여기서 천사를 찾아?”

“천사는 상급 던전에나 나오는 거 아닙니까?”

“헉!”

천사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박 주무관이 부르르 몸을 떤다. 뭔가 깨달은 듯한 모습에 그를 바라보았다.

“저 방금 뭔가 떠올랐습니다.”

“뭔데 그래?”

“꽃바구니 말입니다. 저거 헌터부에 싸움을 걸려는 누군가가 보낸 게 아닐까요?”

“그런 거라면 헌터부로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팀 막내잖습니까! 게다가 뿅아린데요!”

“…그럴싸한데?”

아니 뭐가 그럴싸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박 주무관의 음모론에 넘어간 팀장이 심각한 얼굴로 턱을 만지작거린다. 그뿐이랴, 나를 제외한 팀원 전체가 음모론에 넘어간 듯했다.

“그간 일들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이야깁니다.”

“우리 팀 막내를 저격했다, 이거지?”

넘어간 듯한 게 아니라 완전히 넘어갔다. 어느새 팀원들은 헌터부 전체를 향한 도발이 분명하다며 열띤 토론을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뒤로한 채 꽃바구니를 눈에 담았다.

“…….”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런 꽃바구니를 나에게,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카드까지 적어 보낸 걸까.

게임이라면 힌트라도 있을 텐데, 뜬구름밖에 잡히지 않는 상황이 답답하다. 심각한 얼굴로 꽃바구니를 보다가 팀장 직통 전화가 울리자 고개를 들었다.

“팀장님, 일단 전화부터 받으셔야겠습니다.”

“일단 주변에 시비 걸 만한 놈이 있는지 좀 알아봐.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는 게 아니니까! 예, 서울시 소속 헌터부 팀장 염기태입니다.”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자리로 가 전화를 받는 팀장이다. 매번 협조금 관련해 시청 윗선에서 압박을 넣으러 오는 전화 말고는 한 번도 울린 적 없던 전화였다. 오늘도 역시나 그 전화겠거니 했지만, 이내 평소완 다른 팀장의 행동을 발견했다.

반대편 귀를 후비적거리며 대충 말을 흘리는가 싶던 팀장이 이쪽, 그러니까 나를 바라본다. 당혹감이 묻어나는 시선에 갸우뚱했다.

“…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거기에 글 좀 있다고 직급이라도 올려 줘요? 그런 곳에 쓸 돈 있으면 삼시세끼 든든히 챙겨 먹을 녀석입니다! 허튼소리 들을 시간 없으니 이만 끊죠!”

와다다 말을 쏟아 낸 팀장이 전화를 끊는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눈치를 보다가 팀장의 부름에 즉각 답했다.

“연하늘!”

“네, 팀장님!”

역시, 사달이 나도 난 듯했다.

평소처럼 막내, 혹은 병아리라 부르지 않는 팀장이 이름을 부르니 긴장된다.

“그거 보낸 놈, 꼭 잡아야 할 것 같다.”

“꽃바구니요?”

어떤 통화였기에 꼭 잡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온몸을 감싼다. 깍지를 끼며 불안을 잠재워 보려고 했지만, 팀장의 한숨 소리에 입이 바싹 말랐다.

“그놈이, 서울시 홈페이지 〈칭찬합시다〉에 자기 천ㅅ, 우리 팀 막내 칭찬한답시고 글 도배를 해서 홈페이지 다운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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