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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4)화 (4/246)

3화

01. 손님에게 친절히 대하지 마시오

허기진 사람이라고 한들 건장한 성인 남성 여섯이 먹을 양을 혼자 처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

살집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 몸에 저 많은 음식이 들어갈 공간이 있을까 싶다. 나는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많은 양의 식사를 하는 사람은 TV에서 본 적 있었다. 그래, 김세현 아래서 일하는 것보단 차라리 먹방 크리에이터로 전향하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저리 먹어도 탄탄한 몸을 유지할 수 있는 데다가 얼굴까지 완벽하다면 사람들에게 먹히고도 남았다.

오므라이스 그릇을 옆으로 내려놓은 손님이 이번엔 자장면 그릇으로 손을 뻗는다. 거침없이 자장면을 버무리더니 빠르게 면을 흡입하는데, 그 흡입력 또한 처음과 다르지 않다.

심지어 이미 몇 그릇을 비웠건만, 속도는 그대로다. 저 모습을 보니 어째서 사람들이 먹방을 보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니 다이어트하기엔 최고였다. 멀거니 손님의 먹방을 구경하던 중이었다. 별안간 고개를 든 그와 눈이 마주쳤다.

“…….”

마치 뭘 보냐는 듯한 눈빛이다. 식사할 땐 개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빤히 바라보는 건 결례였다. 나는 볼을 긁적였다.

“…먹방 찍으셔도 잘 되실 거 같네요.”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역시,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 모양이다. 괜히 머쓱해져서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하하.”

“근데 연하늘 씨.”

“네, 손님.”

“그거, 다 먹은 겁니까?”

뭘 말하는 거지?

손님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나는 먹다 만 자장면을 발견했다.

“…너무 잘 드셔서 깜박했네요.”

언제 내려놓은 줄도 모를 젓가락을 다시 쥐자 손님이 식사를 재개한다. 나 역시 멈췄던 식사를 이어 나갔다.

속도를 내는 이가 있어서 그런지 나 역시 빠르게 먹게 되는 것 같다. 쉴 새 없이 자장면을 비우다가 손님의 다른 움직임에 눈을 굴렸다.

“…….”

저렇게 먹어도 괜찮은 걸까.

오므라이스를 먹으며 함께 탕수육도 먹기 시작했건만, 어느새 첫 번째 탕수육 그릇은 비어 있었다. 두 번째 탕수육을 챙겨 첫 번째 그릇 위로 겹치더니 다시 식사를 재개한다.

저 모습을 보며 마음 가득 경외심이 차오르는 건 계속 들어가는 음식 때문일 거다. 아니, 전혀 느려지지 않은 저 속도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런 느낌이 경외심인 걸까 하는 생각에 계속해서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부팀장의 호출에 정신을 차렸다.

“하늘 씨, 상황 확인이 필요합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좀 더 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황급히 일어나선 자리로 돌아가 접속된 교통센터를 살폈다.

“C-9 구역 송하역 근방 CCTV 상황 어떻습니까?”

“역을 중심으로 서북 방향 500m는 전부 멈춰 있습니다. 다른 방향은 200에서 300m 안의 CCTV가 멈춘 상태입니다.”

상황을 전달하자 자리로 돌아간 부팀장이 정보를 팀원끼리 주고받는 네트워크로 전달한다. 다른 날 같았다면 이어폰을 이용하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네, 알겠습니다. 변화가 있다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하늘 씨, F-3 구역 드림빌라 상황도 어떤지 보고해요.”

“드림빌라를 중심으로 반경 150m 안의 CCTV 작동이 멈춘 상태입니다. 근처 CCTV에는 소방대원과 경찰, 그리고 헌터로 추정되는 이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쪽은 잘 해결되고 있나 보군요.”

“그런 듯합니다.”

카메라에 헌터와 경찰, 그리고 소방대원들이 함께 잡힐 땐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었거나 통제되고 있음을 뜻했다. 아무래도 헌터부가 위치한 G 구역과 가까운 구역이었기에 제때 진압이 가능했던 모양이다. 나는 안도하며 부팀장에게 물었다.

“팀장님과 김 주무관님은요?”

“도착까지 5분 정도 남았다고 하는군요.”

“…….”

강남에 위치한 F 구역과는 달리 강북, 그것도 동북쪽에 위치한 C 구역은 이곳과 제법 거리가 있었다. 팀장과 김 주무관, 그리고 헌터들이 제때 도착하길 바라며 계속해서 CCTV를 살피다가 누군가 날 보고 있단 느낌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

던전 상황을 살피느라 아직 손님이 있단 걸 깜박했다.

그가 든 자장면 그릇 상황을 보곤 손바닥을 위로 해 위아래로 흔들며 더 드시라 권했다.

“…….”

손짓을 봤음에도 좀처럼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나는 한 번 더 권하며 슬쩍 눈가를 늘어뜨렸다.

식사 도중 먼저 자리서 일어난 터라 미안한 감이 없잖아 있긴 했다. 물론, 먹는 모습을 끝까지 보고 싶었고 말이다. 아쉬운 마음이 전달된 걸까, 망설이는 듯싶던 손님이 다시 식사를 재개한다. 나는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C 구을 중심으로 간간이 F 구역 상황을 살피다 팀장과 대화를 시작한 이에 귀를 기울였다.

“예, 팀장님. …슬라임 던전이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처리 후 돌아오실 때 연락해 주십시오.”

“아.”

어쩐지 CCTV에 좀처럼 몬스터가 잡히지 않는다 했다.

던전이 생성되면 그 범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알려진 슬라임이었다. 다른 몬스터에 비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기에 C 구역 던전은 큰 피해 없이 클리어될 듯했다.

특히나 A급 헌터인 팀장이라면 손쉽게 상황을 정리할 것이었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 없이 던전이 클리어될 거라 생각이 드니 이보다 더 마음이 놓일 수가 없다. 안도하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가서 마저 식사하십시오.”

“네, 부팀장님.”

부팀장의 말에 자리서 일어나 곧바로 식사 중이었던 원탁으로 걸음 했다.

“…어, 다 드셨네요?”

“예.”

먼저 먹으라 권하기는 했지만,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휑해질 줄은 몰랐다. 당혹감을 애써 감추며 자리에 앉자 그릇 하나를 집어 내 앞으로 옮기는 손님이다. 나는 당황했다.

“이건.”

“어서 먹어요.”

“…그, 감사합니다.”

다 먹은 줄 알았는데, 내가 먹을 양은 덜어 놓은 모양이다. 탕수육 몇 조각과 단무지가 든 그릇을 건넨 손님이 씩 웃는다. 대접 아닌 대접을 받는 건 손님이었는데, 지금 상황은 내가 대접받고 있는 것 같다.

“어서요.”

이젠 어서 먹으라 종용한다. 은은한 미소가 자리한 손님의 얼굴을 보다가 나 역시 젓가락을 움직였다.

“…….”

방금 전 손님이 이런 느낌이었던 걸까.

뚫어져라 바라보는 손님의 시선에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괜한 긴장감에 자꾸만 젓가락질이 헛돈다. 다른 곳을 봐 달라고 할까 싶었지만, 이내 그 생각을 뒤로했다.

그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식사하는 손님의 모습을 볼 땐 언제고, 부담스럽다 밝히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았다.

꾸역꾸역 남은 음식을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기 무섭게 일어나 뒷정리를 시작했다.

식사량이 있기 때문일까, 자리서 일어난 손님이 함께 그릇을 정리한다. 나는 그를 말리며 식사 전 건넨 서류를 가리켰다.

“협조금 문서 아직 안 보셨죠? 커피 한 잔 내올 테니 입가심하면서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음식 대부분이 손님의 입으로 사라지긴 했어도 손님과 함께 뒷정리하는 건 대접하는 의미가 퇴색될 뿐이었다.

서류를 검토해 달란 말에 멈칫하던 그가 다시 자리에 앉는다. 옆 의자에 두었던 서류를 든 손님이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나는 빠르게 뒷정리 후 커피를 챙겨 원탁으로 돌아왔다.

“커피도 드시면서 보세요.”

“잘 마실게요.”

커피 이야기에 서류를 보던 자세 그대로 눈만 움직인 손님이 원탁 위의 커피를 보곤 슬며시 눈가를 접는다. 의자를 살짝 물리는가 싶던 손님이 다리를 꼬는데, 그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다리가 길어서일까, 다리를 꼰 것만으로도 이리 인물이 날 수가 없다. 그뿐이랴, 접힌 다리 위로 서류를 내려놓곤 종이컵을 쥐는 자세가 이렇게 멋질 수가 없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백이면 백 나와 같은 마음을 품게 될 거다. 멍하니 손님을 바라보다 자꾸만 선을 넘으려 드는 심장을 다독였다.

잘생긴 사람을 보고 심장이 뛰는 건 당연했지만, 그 모습을 보며 혼자 홀라당 넘어가는 건 연애의 연 자도 모르는 사람이나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 난 연애의 연 자도 모른다.

“…….”

꼬리를 물던 생각이 이윽고 연애에 도달하자 괜히 힘이 빠진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가 종이를 넘기는 소리에 바닥만 보던 시선을 들었다.

“이대로 집행하면 됩니다.”

언제부터 보고 있던 걸까.

눈을 들기 무섭게 시선이 마주친 손님이 미소 짓는다. 한 번 더 심장이 쿵 떨어진다. 자꾸만 얼굴로 쏠리는 열감을 모르는 체하며 자리서 일어났다.

“네, 그럼 내용대로 바로 집행하겠습니다.”

자리로 돌아가 국가 헌터 정보 프로그램에 접속한 뒤 그곳에 입력된 김세현의 계좌로 바로 30억을 보냈다.

띠롱-

“음?”

절묘한 타이밍에 울리는 핸드폰 소리다. 고개를 들어 손님을 보니 언제 꺼냈는지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다. 나는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맞게 들어왔습니다.”

“…….”

메시지를 보냄과 동시에 돌아온 답변에 뭔가 싶어, 핸드폰과 손님을 번갈아 보았다.

“아, 이거요. 수령액 바로 확인하라고 김, 세현 헌터가 내어 줬습니다. 돌아가면 반납할 겁니다.”

“그러시군요.”

어쩐지, 연락이 빠르다 했다.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방문 목적을 달성한 손님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좀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앞섰지만, 그건 나 혼자만의 바람일 뿐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리서 일어나 그를 배웅하기 위해 출입문으로 이동했다.

“조심히 가세요, 손님.”

“…친절하네요, 연하늘 씨는.”

친절보다는 그저 인사일 뿐이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들었다가 잘게 휘어진 푸른 눈동자를 마주했다.

“…….”

사무실 안에서 본 미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화려한 미소가 피어 있다. 그저 웃었을 뿐인데 수려한 미모가 한껏 빛을 발산한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그, 감사합니다.”

“공무원들은 전부 괴팍해서 싫었는데, 오늘 연하늘 씨 덕분에 인식이 조금은 바뀔 것 같네요.”

“과찬이세요.”

이런 칭찬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얼굴이 뜨겁기만 하다. 열이 오를 대로 올랐는지 화끈거리는 얼굴에 손등으로 꾹꾹 볼을 눌렀다.

“좋은 하루 되세요, 연하늘 씨.”

“…네.”

“오늘도 좋지만.”

말을 하다 만 손님이 씩 웃는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듯하면서도 웃음기 가득한 얼굴이 뒷말을 궁금케 한다. 다음 말을 기다리다가 이어진 말에 눈이 커졌다.

“내일부턴 더 좋은 하루가 될 겁니다.”

이런 인사를 받은 건 태어나 처음이다.

나는 끔뻑이며 손님의 말에 답했다.

“손님도 앞으로 좋은 날만 가득하실 거예요.”

“…….”

“손님?”

부름에도 반응 없이 뚫어져라 바라만 볼 뿐이다. 혹 실수한 게 있나 싶어 상황을 돌이켜봤지만, 이렇다 할 건 없었다. 말없이 시선만을 교환하다가 슬그머니 얼굴 근처에 나타난 손님의 손에 눈을 크게 떴다.

“손님?”

금방이라도 볼에 닿을 것 같은 손이 황급히 모습을 감춘다. 등 뒤로 사라진 손을 좇던 것도 잠시였다. 빠르게 자리를 뜨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

손도 그렇고, 말없이 갑자기 자리를 뜨는 이유도 모르겠다. 조금은 허탈한 배웅을 마치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하늘 씨, 무슨 일 있었어요?”

“일이라뇨?”

“얼굴이 빨간데.”

“…….”

아, 얼굴이 빨개서 그랬던 걸까.

부팀장의 말을 들으니 조금 전 손님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것 같다. 아마 얼굴이 너무 빨간 나머지 저도 모르게 손이 올라왔던 것이리라. 나는 민망한 미소를 흘렸다.

“기분도 제법 좋아 보이네요.”

“네.”

배웅은 급작스럽게 끝났지만, 인사말은 남아 있었다.

“…….”

처음 듣는 인사 때문일까, 말처럼 정말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다. 설레는 마음을 안은 채 자리로 돌아온 뒤 마저 던전 현황을 살피며 일에 집중했다.

다음 날, 헌터부로 날아든 한 통의 전화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상황을 겪게 되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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