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3)화 (3/246)

2화

01. 손님에게 친절히 대하지 마시오

“얼른 전화 안 받아?”

사무실의 고요가 깨진 건 팀장의 일갈 덕분이었다. 총알처럼 자리서 일어난 김 주무관이 긴급 전화를 받으러 이동한다. 부팀장 뒤편에 도착한 김 주무관이 숨을 크게 고르곤 수화기를 든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헌터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 예, 알겠습니다! 시민들을 최대한 던전과 멀리 떨어질 수 있도록 조치해 주십시오. 헌터부에서도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상황을 전달받은 김 주무관이 수화기 하단부를 손으로 막으며 사무실을 훑는다. 이 주 만의 신고라 그런 걸까, 이보다 더 긴장될 수가 없다. 어느새 축축해진 손바닥을 바지에 닦았다.

“C-9 지역, 그리고 F-3 지역에 던전이 생성되었다고 합니다. 양쪽 모두 규모 C급, 난이도 또한 동급입니다!”

같은 시간에 두 곳에서 던전이 생성되는 건 처음 겪는다.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 나는 팀장의 지시에 모두가 급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한 주무관은 바로 F 구역으로 가! 박 주무관은 재난 문자 보내고 합류하고!”

“네!”

“김 주무관은 협조문 보내고 나와 함께 C 구역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주무관이 사무실을 박차고 나간다. 지시를 받은 이들 모두가 맡은 일을 빠르게 처리해 나간다. 긴급 문자를 작성한 박 주무관이 급히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기 협조문 작성을 마친 김 주무관도 자리를 뜬다.

열린 창문을 통해 밖으로 뛰어내린 팀장을 보고 나는 곧장 자리서 일어나 중계기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

생각지도 않게 두 곳에 던전이 생성되었지만, 규모와 난이도가 낮아 정말 다행이다. 순번대로 중계기 버튼을 누르다가 부팀장의 부름에 답했다.

“하늘 씨.”

“예, 부팀장님.”

“음식 취소시키기엔 시간이 늦었겠죠?”

“아.”

그러고 보니 점심을 주문했었지.

주문을 넣자마자 취소하는 거라면 또 모를까, 배달 시간이 가까워진 상황에 취소한다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전화를 걸었지만, 이미 음식이 출발한 상태였다.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이미 출발한 모양이군요.”

“그렇다고 합니다.”

“던전 클리어하면 다들 허기질 겁니다. 보관할 수 있는 음식은 따로 두도록 하죠.”

“네.”

면 음식은 보관할 수 없어도 탕수육과 오므라이스는 가능했다. 음식이 도착하면 바로 그것부터 정리해야겠다. 마저 중계기로 이동한 뒤 남은 버튼을 누른 나는 곧바로 상황을 전달했다.

“중계기 및 네트워크 열었습니다!”

“배달왔습니다!”

이보다 더 절묘한 타이밍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중계기 작동과 동시에 도착한 중국집 배달원이다. 나는 와이셔츠 앞 포켓에 넣어 둔 법인 카드를 꺼내며 말을 건넸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음식은 이쪽에 두시면 됩니다.”

“예! 참, 서비스로 군만두도 챙겨 왔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다른 때였다면 반가웠을 군만두다. 정리를 마친 배달원을 따라 웃으며 카드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저희 중국집 많이 이용해 주세요.”

“네, 즐거운 하루 되세요.”

결제를 마친 배달원이 카드를 건넨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그를 배웅키 위해 따라 출입문으로 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모습까지 확인 후 다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 했다.

“저기.”

“히끅!”

깜짝이야.

낯선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진다. 그것도 내가 보던 쪽이 아닌, 그 반대편, 그러니까 등 바로 뒤에서 말이다. 나는 천천히 몸을 틀었다.

“어, 그….”

이렇게 거리가 가까웠는데도 사람이 있는지 몰랐다니. 바로 코앞에 보이는 흰 가슴팍에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말을 건 상대를 살폈다.

거리를 두니 남자가 얼마나 큰지 알겠다. 머리 하나는 높은 위치서 나를 내려다보는 푸른 눈동자를 발견하고 속으로 감탄했다.

그간 온갖 푸른색을 보긴 했지만, 남자의 눈동자가 가진 것과 같은 색은 본 적 없었다. 은빛이 섞인 듯한 푸른 눈동자를 멍하니 보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이신가요?”

처음 보는 사이인데 너무 뚫어져라 본 듯하다. 슬쩍 시선을 피했다 다시 보니 그의 외모가 뒤늦게 시야에 들어온다. 나는 절로 감탄했다.

키도 크지만, 외모는 키를 압살하고 남을 만큼 빼어났다. 오뚝하니 솟은 코, 짙은 눈썹, 살짝 올라간 눈꼬리에 붉은 입술까지. 더하여 과장을 보태 주먹만 한 얼굴은 연예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가 서울시청 헌터부 맞습니까?”

“아, 네. 맞습니다.”

작은 현판조차 달리지 않았기에 헌터부를 찾는 이들은 하나같이 헤매기 일쑤였다. 나 또한 그랬고 말이다. 처음 헌터부로 발령받았을 때가 떠오른다. 나는 좀 더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어떤 용무로 찾아오셨나요?”

“김세현 헌터 협조금 받으러 왔습니다만.”

“아!”

이 타이밍에 오는 건 반칙이었다. 음식 냄새가 진동 중인 사무실을 떠올리니 이보다 민망할 수가 없다. 애써 표정관리하며 옆으로 비켜섰다.

“어서 오세요. 그러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왕이면 깔끔한 모습으로 김세현 측 사람을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거, 빨리 일 처리를 하는 것 말고는 도움이 될 일이 없을 듯했다.

잠시 나를 보는가 싶던 남자가 곁을 지나쳐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다. 남자의 모습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와.”

정면에서 얼굴을 봤을 때도 잘생겼지만, 옆모습은 정말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다. 얼굴에서 각자 자기주장을 하며 화려하게 피어오른 눈코입들이 더욱 빛을 발하는데, 어째서 잘생긴 사람들을 향해 얼굴을 뜯어먹고 살아도 배부를 거라 말하는지 알 듯했다.

어디 하나 모자람 없는 완벽한 외모와 신체 비율을 지닌 사람을 봐서일까, 좀처럼 심장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몇 차례 숨을 크게 몰아쉬며 마음을 다독인 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자리로 가 협조금 관련 문서를 꺼낸 나는 멀뚱히 서 있는 남자에게 웃으며 원탁 쪽을 가리켰다.

“내용 확인은 저쪽….”

평소 같았다면 말을 마치고 원탁으로 이동했을 거다. 문서를 확인하는 이에게 커피도 내어 주고, 또 주전부리도 건네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겠지.

종이컵 하나 올리기도 벅찬 원탁 위 상황에 눈을 굴리던 중이었다.

꾸르륵.

무슨, 소리지?

이렇게까지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배는 팀원들 중 단 한 사람, 팀장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지금 이 정도로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 없다고 봐야 했다.

자연스럽게 부팀장을 봤지만, 눈이 마주친 부팀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 모습에 설마 하며 천천히 김세현 측 사람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류를 살피고 있었던 남자는 어느새 원탁 위의 음식을 보고 있었다. 음식들을 찬찬히 살피는 시선이 이보다 더 진중할 수가 없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님을 불렀다.

“저기.”

꾸르르륵.

“예.”

내가 부를 것이라는 걸 기다리기라도 한 듯 말이 끝나자마자 울린 뱃소리가 요란하다. 반 박자 늦게 답하며 눈을 마주한 것도 잠시였다. 남자의 시선이 조금씩 옆으로 향하더니 이윽고 음식에 닿는다. 목울대가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모습에 충동적으로 입을 뗐다.

“아직 점심 전이시면 같이 드세요.”

“같이, 말입니까?”

내가 들어도 뜻밖의 제안이다. 이쪽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동자가 커다랗다. 푸른 눈동자가 잘게 떨리는 모습을 발견하고, 한 번 더 그에게 권했다.

“그게, 음식 주문하고 현장이 발생해서요. 음식이 많이 남기도 하고요. 아, 방금 온 거라 면도 불지 않았어요. 손님만 괜찮으시다면 드셔도 됩니다.”

“드셔도 됩니다.”

입이 하나 더 생기면 남는 음식이 현저히 줄어들 거다. 그뿐이랴, 김세현과 관계된 이에게 커피와 주전부리보다 더 좋은 걸 대접할 수도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뜻을 알아차린 부팀장 또한 먹고 가라는 말을 건넨다. 남자의 망설임이 커졌지만, 그도 잠시뿐이었다.

“이름이 뭡니까.”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이름을 묻는데, 답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답했다.

“연하늘입니다.”

“연, 하늘.”

두근두근.

그저 내 이름을 되새김질한 것일 뿐이었다. 이렇게 심장이 나댈 상황이 아니었다. 몇 번을 거듭해 이름을 중얼거리던 이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린다. 마치 내 심장 소리를 들은 것처럼 말이다.

내내 흐릿하던 푸른 눈동자에 생기가 감돈다. 이보다 더 반짝일 수 있나 싶을 만큼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를 본 적이 있나 싶다. 말없이 손님과 시선을 마주하다가, 그가 원탁으로 가 자리를 잡자 부팀장을 보았다.

“먼저 먹어요. 이쪽은 신경 쓰지 말고.”

“혹 필요한 일 있으시면 바로 말씀 주세요.”

“그래요.”

C급 던전이 생성된 상황에 식사부터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CCTV를 확인해야 하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 걱정도 잠시였다. 양쪽 귀에 각기 다른 이어폰을 착용한 부팀장이 내 자리로 이동하자 한결 마음이 놓였다.

“연하늘 씨.”

“네, 손님.”

아차, 손님에게 자리만 안내했지.

빠르게 손님의 맞은편에 착석한 뒤 원탁 위의 음식을 둘러보는 이를 바라보았다.

“뭘 먹으면 됩니까.”

“아! 아무거나 드셔도 됩니다.”

뭘 고르건 문제 될 건 없었다. 하지만 기왕이면 면 위주로 골랐으면 하는 마음이다. 손님이 무엇을 선택할까 싶었는데, 앞에 놓인 짬뽕 그릇에 손을 댄다. 나는 뒤따라 손을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많이 드셔도 됩….”

많이 먹는다고 해도 사람이라면 응당 그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어느새 짬뽕을 포함해 자장면과 오므라이스, 그리고 탕수육의 랩핑을 벗겨 내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 시선을 느낀 손님이 눈을 준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마음껏 드세요. 다 드셔도 되고요.”

“…전부?”

다 먹어도 된단 말을 들은 손님의 눈이 커다래진다. 마치 들어본 적 없던 말을 들은 것처럼 말이다. 다시 음식을 둘러본 손님이 재차 눈을 마주해 온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치 허락을 기다린 사람 같다. 굳이 전부 음식을 개봉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저리 신나게 손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잘 먹을게요, 하늘 씨.”

“…맛있게 드세요, 손님.”

잘 먹겠다는 말과 함께 젓가락을 든 남자가 짬뽕면을 입에 넣었다. 마치 진공청소기가 작동되기라도 한 듯, 쭉쭉 입 안으로 면이 사라진다.

“하늘 씨, 어서 식사해요.”

그래, 지금은 멍하니 저 사람을 구경할 시간은 없었다. 빠르게 먹고 자리로 복귀하는 게 급선무다. 나는 급히 젓가락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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