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손님에게 친절히 대하지 마시오
‘던전 생성의 법칙’.
이 법칙은 특정 구역에 난이도 A급 이상의 던전이 생성, 클리어될 시의 여파가 그 지역에 일정 기간 남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쉽게 접근하자면 난이도 A급 이상의 던전이 소멸될 시, 그 일대에 일정 기간 급 낮은 던전이 생성되거나 아예 생성되지 않는다. 이 법칙은 세계 최초의 던전이 생성된 1986년 이래 단 한 번도 어긋난 적 없다 알려져 있기도 하다.
1년 3개월 만에 서울특별시 관할 구역에 생성된 상위 던전은 건국 이래 역대급으로 많은 수의 몬스터를 뱉어 냈다.
한때 서울시 전역에 비상사태가 선포될 뻔하기도 했지만, 이 주일이 흐른 지금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상이 지속되고 있었다. 마치 던전이 생성되지 않던 시대로 회귀한 것처럼 말이다.
이 모든 평화로움은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것이었지만 한 사람, S급 헌터인 김세현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기도 했다.
그래, 바로 김세현 말이다.
“…….”
협회 협조금 수령자 명단을 본 나는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지 못했다.
언젠간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이렇게 일찍 찾아올 것이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다.
헌터부로 발령될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올까 싶었는데, 이렇게 일찍 찾아올 줄은 몰랐다. 뿐이랴, 내 손으로 김세현의 협조금을 집행하다니.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조차 안 될 지경이다.
키보드 위에서 노니는 손이 부산스럽기 짝이 없다. 꼭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도 잠시였다. 나는 손을 멈추며 조만간 헌터부를 찾을 예정인 김세현 측 사람에게 친절히 대하자 다짐했다.
김세현 본인이 찾아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의 측근이 찾아오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내어 줄 거라곤 진열대에 있는 주전부리와 차밖에 없었지만, 하나라도 더 건네며 간접적으로나마 고마움을 표현하면 될 일이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하고많은 땅 중에서 왜 이곳을 수도로 삼았을까요?”
너무도 뜬금없는 말이다. 조용하던 사무실에 울려 퍼진 조상님 소리에 박 주무관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웬 조상님?”
“우리 조상님들, 부동산 쪽으로 눈이 영 어두웠던 걸까요? 아니, 어두운 게 맞는 듯합니다.”
앞뒤 설명 없이 조상님의 눈을 운운하는 박 주무관의 표정이 제법 심각하다. 나는 계속해서 대화 내용을 경청했다.
“조상님은 뭐고, 부동산은 또 뭔데 그래.”
“그렇지 않습니까? 보는 눈이 있었다면 이 주에 한 번씩 던전이 생성되는 땅을 수도로 삼진 않았을 거라고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음모론일 줄이야.
매번 듣는 말이건만, 이보다 그럴싸할 수가 없다. 나는 좀 더 귀 기울였다.
“쯧! 하나는 알고, 다른 하난 모르지! 그땐 던전이 없었잖아.”
“아, 그 생각을 못 했네요.”
참, 그랬지.
던전이 생성된 건 비교적 최근 일이었다. 솔깃했지만, 솔깃하지 않았던 척하며 나는 책상 위의 컵을 들어 단숨에 안을 비웠다.
“조상님은 그렇다 치고. 듣고 보니 이상하네. 던전 부르는 수맥이라도 흐르나?”
“와, 팀장님도 좀 솔깃하시죠? 던전 생성 주기만 보면 세계 탑급인 서울인데, 수도 이전하겠다는 정치인이 없잖습니까. 다른 나라들은 던전을 피해 수도를 옮기는데요. 분명 서울 땅에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겁니다!”
박 주무관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만큼 열변을 토한다. 이번 역시도 제법 솔깃했다. 나는 곧바로 서울시 음모론을 검색했다.
“…….”
어떤 음모론들이 있나 했는데, 나온 것이라곤 정치인이나 연예인 관련 내용밖에 없다. 나는 실망한 채 바로 검색창을 껐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
“지금처럼 던전만 조용할 수 있다면 수맥이 흐르건 다른 비밀이 있건 모두 수용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부팀장님. 던전이 조용하면 저희도 좋고, 시민들 피해도 최소화될 테니 일거양득이죠.”
“일타삼피지. 더는 협회에 손 벌리지 않아도 우리 선에서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
음모론을 듣고 있던 건 나만이 아닌 모양인 듯했다. 어느새 모두가 대화에 참여하고 있음에 나 또한 조심스럽게 말을 얹었다.
“정말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막내도 그렇게 생각해?”
“네. 협회 존재감이 약해지면 지금처럼 콧대를 세우진 못할 테니까요.”
던전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즉, 협회가 돈을 벌어들일 수단이 줄어든다는 뜻과도 같았다. 그렇게 된다면 돈에 환장한 협회는 소속 헌터의 활동 수수료를 더 걷어 갈 테고, 불만을 가진 헌터가 이탈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헌터 활동하기 위해서는 협회 혹은 나라에 소속되어야만 했기에 이탈한 헌터가 발길 할 곳은 여기밖에 없었다.
그뿐이랴, 콧대가 낮아진다면 헌터부에게 수기로 협조문을 만들어 가지고 오란 배짱은 부리지 못할 것이었다. 그래, 그렇게 된다면 청사를 두고 협회 바로 옆 건물에서 월세살이하는 설움도 끝나겠지.
“…막내가 상당히 쌓였던 모양인데요?”
“곧 점심시간이니 밥부터 주문하죠. 음식이 들어가면 한결 기분이 나을 겁니다.”
아차.
그저 생각만 했는데, 나도 모르게 협회를 향한 반감이 표정에 드러난 모양이다. 분위기를 바꾸려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며 밥부터 시키잔 말에 황급히 손사래 쳤다. 아니, 치려고 했다.
“그래, 오늘은 우리 막내가 먹고 싶은 음식으로 먹도록 하자! 마음껏 주문해, 이 카드가 쏜다!”
…굳이 다른 이들의 생각을 바로잡아야 할까.
눈앞에 나타난 붉은 색의 카드를 보고 있자니 점차 이성이 희미해진다. 나는 결국 본능을 택했다.
“저 중식이 먹고 싶습니다!”
보통은 위장이 약한 부팀장과 식사하는 일이 많아 그의 입맛에 맞췄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 카드를 손에 쥔 지금, 점심 메뉴 선택은 오롯이 내 권한이었다.
“좋아! 메뉴는 알아서 고르고. 추가로 탕수육 대자 두 개랑 오므라이스 곱빼기 하나 추가해.”
“네!”
팀장의 메뉴 픽이 끝나자 잇달아 팀원들이 메뉴를 선택한다. 전달받은 내용을 메모한 뒤 위장이 약한 부팀장이 먹을 음식까지 따로 체크 후 바로 중국집과 죽집에 전화를 걸었다.
“중국집은 30분, 죽집도 비슷한 시각에 배달 예정이라고 합니다.”
“막내야, 그렇게 자장면이 먹고 싶었어?”
“…네.”
어떤 구역은 1인분도 배달해 주는 중국집이 있다던데, 안타깝게도 내가 사는 동네는 그런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배달 금액을 맞추려 추가로 음식을 주문하기엔 내 지갑은 너무 얄팍했다.
“우리 병아리, 입맛도 병아리였어.”
“저렇게 좋아하는데, 앞으론 중식 자주 먹어야겠네요.”
나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점심 전까지 잠시 휴식하는 것으로 하지. 뭐, 이미 쉬고 있었긴 했지만 말이야.”
“네!”
30분은 금방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간을 확인하다가 김 주무관의 부름에 옆을 보았다.
“맞다, 막내야.”
“네, 김 주무관님.”
“아직 잉여 쪽에선 연락 없어?”
“잉, 김세현 헌터 쪽에선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분위기에 휩쓸려 하마터면 은인에게 큰 실수를 할 뻔했다. 안도하며 턱을 만지작거리는 그를 보았다.
“그 돈벌레가 무슨 일이지.”
“돈벌레라뇨?”
갑자기 돈벌레가 여기서 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좀 더 설명을 바란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고 보니 막내는 모르겠구나. 김세현 말이야. 이쪽에서 돈에 환장한 놈이라고 소문이 파다하거든.”
“김, 세현이, 돈에 환장을요?”
“협회 소속 헌터도 그렇게 불러.”
“잘못 알려진 게 아닐까요?”
그래, 그가 돈을 밝히는 사람이었다면 8년 전 그날, 그렇게 행동할 리 없었다.
갓 생성되던 던전을 손짓 한 번에 소멸시킨 뒤 유유히 자리를 벗어나던 김세현을 생각하면 돈을 밝힌다는 말은 그저 뜬소문일 뿐이었다.
“…뭐, 겪어 보면 알게 될 거야.”
눈을 끔벅이던 김 주무관이 흐릿한 미소를 입에 머금는다. 이렇게 희미하면서도 안타까운 미소를 본 적이 있나 싶다. 안쓰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눈길을 보내는 모습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여간 매체랑 협회가 문젭니다. 몸값 올려 보겠다고, 조회 수 올리겠다고 매번 헌터를 미화시키니 우리 병아리같이 선량한 시민이 속는 거 아니겠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세현보고 검은 신사라뇨! 볼 때마다 소름이 돋습니다!”
“매체에 돈지랄할 돈으로 기부도 하고! 헌터 양성도 하면 오죽 좋아요? 그럼 이렇게까지 협회가 싫.”
Rrrr- Rrrr-
그때였다, 사무실이 떠나가라 벨이 울린 것은.
한동안 계속 조용하길 바랐건만, 역시 그건 바람일 뿐인 듯했다. 이 주 만에 깨진 평온에 숨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