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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부 공무원의 비애 (1)화 (1/246)

1화

00.프롤로그

김세현이 변태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미쳤을 줄은 몰랐다.

“하늘 형 괜찮아요?”

“슨 츠으.(손 치워)”

“혼자 닦기 힘들잖아요.”

“즈르 그르그 흤즈.(저리 가라고 했지)”

녀석이 돕겠다며 손을 보태지만 않았다면 슬라임 체액 정리는 진즉 끝났을 터였다. 아니, 흰색 슬라임을 놓치는 ‘척’, 이쪽으로 ‘몰고 와’, ‘터뜨리지만 않았다면’, 곤경에 처할 일은 애당초 없었다.

“형이 여기 있는 줄 알았으면 터뜨리지 말걸.”

“…….”

“이 정도면 속옷까지 흠뻑, 아주 흠뻑 젖었겠는걸요?”

걱정하는 말투완 달리 슬그머니 올라간 입꼬리가 밉살스럽다. 은근슬쩍 체액을 끼얹는 손은 또 어떻고 말이다.

“형. 후욱! 너무 야해요.”

“…….”

“사람이 어쩜 이렇게 예쁠 수 있지? …항상 넣고 다니고 싶게.”

또 무슨 생각을 하기에 저렇게 쉭쉭 대는 건지 모르겠다. 뿐이랴, 눈까지 몽롱하게 풀린 것이 영 께름칙했다. 나는 녀석을 무시하며 체액을 정리하는 데 힘썼다.

“후욱!”

머리 위로 쏟아지는 숨이 점차 거칠어진다. 자길 좀 봐달라는 신호임이 분명했지만, 응할 마음은 없었다.

내가 이 꼴이 된 건 전부 김세현, 이 녀석이 저지른 일 때문이었으니까.

“여기서 이렇게 닦아 봤자 소용없어요. 차라리 우리 집 가서 깨끗하게 씻으면 찝찝하지도 않고 좋을 텐데?”

숨소리가 통하지 않으니 이번엔 회유로 방향을 튼 모양이다. 이 또한 계속 무시하고 싶었지만, 저런 목소리를 낼 때의 김세현은 제법 봐줌 직했다. 나는 무심히 체액을 털어내며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이 꼴로 택시가 잡힐 리도 없고. 만에 하나 탄다고 해도 시트값 물어 줘야 할 텐데.”

“…….”

“고만고만한 월급으로 시트값 물어 주면 남는 게 있기나 하겠어요?”

마치 자길 봐주길 기다린 듯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낸다. 그뿐이랴, 말하는 동안 잠시 멈췄던 손 역시 바삐 체액을 끼얹기 바빴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지만, 지금은 녀석이 한 말이 발길을 붙잡았다. 시트값을 물어준다면 몇 달은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하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지하철을 이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남은 거라곤 도보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나는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체액을 훔치며 상황을 좀 더 면밀히 살폈다.

“…….”

도보도 무리다, 무리.

체액이 스며들어 반투명해진 와이셔츠는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였다. 속살이 훤히 보이고, 뒤집어쓴 체액은 하필 흰색인 터라 이 꼴로 거리로 나갔다간 공연 음란죄로 경찰서행이 확정적이었다.

신경질적으로 체액을 훑어 바닥에 내팽개쳐 봤지만, 좀처럼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형, 우리 집 가는 거죠?”

내 기분은 이런데, 저 녀석은 왜 저리 기분이 좋은 걸까.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움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가 얄밉다. 한 번 더 생각해 봤지만 녀석의 제안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나는 깊은 한숨을 뱉으며 퉁명스레 말했다.

“얼른 씻고만 갈 거야.”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녀석의 사탕발림에 넘어갈 확률이 높았다. 넘어가지 않겠다 다짐하면서도 매번 넘어갔던 과거만 봐도 그랬다.

이번만큼은 정말 딱 볼일만 보고 나와야지!

“형, 오늘 고생했으니까 집에 가면 내가 정말 맛있는 거 먹여 줄게요.”

“…먹여?”

씻고만 돌아가겠단 마음을 피력했건만, 김세현의 귓속까지 들어가지 못한 모양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무심코 뒷말을 따라 하다가 어감이 주는 이상함에 녀석을 유심히 살폈다.

조금 전보다 반질거리는 눈빛, 위아래로 격하게 움직이는 어깨, 헐떡이는 숨, 아랫입술을 핥는 붉은 혀까지.

“후욱.”

지금껏 살면서 이보다 거친 숨을 맞아 본 적이 있나 싶다. 지금은 김세현의 집에 가고 자시고 간에 안전거리부터 확보하는 게 우선이었다.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넓히자, 상상을 초월할 만큼 헐떡이는 어깨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천천히 고개를 든 나는 번들거리는 푸른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늘 형.”

목소리 가득 습기가 가득한 것이 이어질 말이 기대되지 않는다. 오도카니 서 있던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 또한 반갑지 않았다.

아래로 향하는 손의 움직임이 이보다 더 의심스러울 수가 없다. 눈으로 손을 좇으며 경계를 늦추지 않던 것도 잠시, 나는 바지 지퍼 위에 손이 멈춤과 동시에 머릿속에 경광등이 울렸다.

“슬라임보단 내 우유가 맛있을….”

“아 좀!”

정정한다.

녀석은 그냥 미친 변태가 아니었다.

세계 최고 헌터라는 말이 안타까울 만큼 이 녀석은 상변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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