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낫지도 못했을 거예요.”
“아니에요. 제가 뭘 했다고요. 스스로 회복하신 거죠.”
환자가 미소를 지었다. 3년쯤 병원을 다녔고 이제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였다. 항상 기쁜 순간이다.
“저, 이건 제가 너무 감사해서요. 받으세요. 가 볼게요.”
“네? 아, 잠깐만, 저희는 이런 거…….”
내가 채 말리기도 전에 환자가 책상에 과자 상자를 올려놓고 나가 버렸다. 음료수도 못 받게 되어 있는데. 쫓아가서 돌려주려고 상자를 들어 올리려 하는데, 어설프게 닫혔었는지 상자는 가만히 있고 뚜껑만 쑥 올라왔다.
무심코 내용물을 본 나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폭발물이라도 들듯이 상자를 끌어안고 튀어나왔다. 간호사들이 깜짝 놀라 나를 보았다.
“바, 방금 나간 환자분! 잡아, 아니, 쫓아가야 해요! 아악!”
“네?! 선생님, 왜 그러…… 으아악! 아악!”
“아아악!”
상자를 본 다른 간호사들이 차례로 기겁을 했다.
과자 상자에는 오만 원권 돈다발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대충 봐도 1억은 넘는다. 간호사와 함께 미친 듯이 환자를 쫓아서 뛰어갔다.
때 아닌 추격전을 벌이다가 병원 정문도 지나가서 겨우 그를 따라잡았다. 한참 실랑이한 끝에 떠안기듯 상자를 돌려주고 돌아왔을 땐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녹초가 된 상태였다. 잠깐의 전우들에게 인사한 뒤 터덜터덜 계단으로 향하자, 문 근처에 주경이가 서 있었다.
“어…… 여기서 기다렸어?”
“네. 아까 따라가려고 하다가, 선생님이 너무 빨라서…….”
나도 내가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지 몰랐다. 돈다발을 보고 놀란 가슴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다. 기운이 빠져서 그를 끌고 로비로 향했다. 역시 힘들 땐 당분이 필요했다.
“한…… 2억쯤 됐던 것 같아.”
“현금으로요?”
“응.”
나는 벤치에 커피를 내려놓고 손으로 아까 그 상자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비타민음료 상자에 오만 원권을 욱여넣으면 1억 정도 들어간다고 했던가? 그것보다 납작하지만 크기가 좀 더 컸다. 뚜껑과 함께 안 떨어지도록 부여잡고 뛰느라 아직도 팔이 아팠다.
“그런데 왜?”
할 말이 있으니까 치료가 끝날 때쯤 외래 병동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었다. 매일 집에 가면 만나면서 새삼스럽게 병원에서 이야기할 게 뭔가 싶었지만, 알겠다고 했다가 돈다발 때문에 조금 늦어졌다.
“지금 안 하면 또 한동안 말 못 할 것 같아서요.”
“으응.”
요 며칠 주경이가 뭘 망설이는 기색이긴 했다. 말을 하려다가 자꾸만 입을 다물고. 여전히 가끔 이렇게 소극적이 되곤 한다.
“……선생님, 저희 집에 가실래요?”
“집?”
“네, 저희 집. 가족들한테요.”
“아…… 정말?”
가족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더니. 그래서 며칠 내내 고민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말을 할지 말지. 그리고 집에 갈 때까지 기다리면 또 못 하게 될까 봐 일하는 도중에 불러낸 듯했다.
하여간에 귀여웠다.
“자꾸 숨겨 놓더니.”
“그래도 선생님한테 말씀 안 드릴 수 없으니까요.”
“좋아.”
고개를 끄덕이자 주경이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너무 긴장하고 있어서 청혼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하긴, 가족들을 만나러 가자고 하는 건 그거랑 비슷한 말인가.
“…….”
곧바로 좋다고 말해 놓고 나니 갑자기 걱정이 올라왔다. 가족이랑 만난다니, 주경이의 태도로 보면 ‘친구예요!’ 하고 소개할 것 같지도 않고. 예전에 실없이 했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대단한 집안인 강주경의 가족 중 누가 나한테 돈 봉투 같은 걸 던지면서 ‘우리 아들이랑 헤어져 주세요.’라고 말하면 어쩌지…….
“어떤 분들이야?”
“저희 가족이요?”
“응.”
“그냥…… 외모는 저랑 비슷해요.”
“그렇구나.”
‘곰 가족인가 봐.’
비슷하게 생겼다니 그럴 것이다. 내가 궁금한 건 외모가 아니라 가족들의 성격이었다. 귀한 아들이 뜬금없이 남자를 데리고 왔는데 그에 어떻게 반응할지.
내 걱정을 알아차렸는지 그가 말했다.
“선생님을 싫어하진 않을 거예요.”
“아니, 그래도…… 남자고…….”
“그건 괜찮아요.”
아니, 진짜 괜찮을까? 자신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자 주경이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누굴 데려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요.”
“…….”
“아마…… 누구인지 짐작은 하고 있을 거고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도대체 5년 전……도 아니고 열 살 이후로 강주경이 가족들 사이에서 뭘 하면서 큰 건지. 가족 이야기를 할 때 내 반응은 걱정하지만 그들에 대해 반감은 없어 보였다. 교류가 많진 않아도 사이는 좋은 듯했다. 전에도 형이 도와줬다고 했고.
대놓고 내 주위를 맴돌았으니 가족들이 알아내려 하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올라오는 걱정을 누르며 물었다.
“언제 가?”
“선생님 괜찮으실 때요.”
“가족들 시간에 맞춰야 하는 거 아니야……?”
“미리 연락만 하면 알아서 맞출 거예요.”
“……으음.”
급기야 걱정이 태산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경이는 만약 가족이 안 좋은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했다면 아예 내게 말도 안 꺼내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날짜까지 정하고 말았다. 다음 주 토요일. 휴일이 다가오는 게 이렇게 긴장되는 건 처음이다.
티 나지 않게 작은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바람이 따뜻해졌다는 걸 느꼈다.
“날씨 좋아졌네.”
“네.”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졌다. 완연한 봄이었다.
요즘에도 병동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좋은 일이라도 있냐고.
지금도 누가 지나가다가 보면 그렇게 물어보지 않을까.
“왜요, 선생님?”
강주경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내가 빤히 쳐다보며 웃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궁금해서.”
“궁금해요?”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궁금했다. 이 봄이 가고 여름과 가을이 지나고 다시 겨울이 올 때에는 내가 강주경을 얼마나 더 사랑하고 있을까.
지금도 이렇게 좋은데.
나는 벤치 위에 놓인 커다란 손등 위로 손을 얹었다.
나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짧게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시간은 흘러간다. 많은 걸 흐리게 하고, 때로 또렷하게 만들면서. 지나간 계절은 새로운 모습으로 금세 찾아올 것이다. 그게 낯설거나 싫진 않았다.
다시 겨울이 찾아올 때도 나는 따뜻한 곰 인형을 안고 있을 거고, 분명 행복할 테니까.
외전. 키스 미, 테디 베어!
타자가 배트를 휘둘렀다. 붕 떠오른 공을 보더니 투수가 한쪽 손을 젓고, 글러브 낀 손을 위로 들었다. 공이 그 글러브 안으로 쏙 들어가자 공이 배트에 맞았을 때부터 박수를 치며 좋아하던 관중들이 큰 소리로 환호했다.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투수가 가까이 있던 유격수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벤치 쪽으로 걸어갔고, 곧 다른 선수들도 우르르 가서 한 뭉치로 엉켰다.
나는 스포츠를 거의 안 본다. 규칙도 모르는 편이었다. 물론 싫어하는 게 아니니까 남들 다 보는 국가대항전 같은 건 보지만, 축구는 골이 들어가면 좋은 거고 야구는 우리 팀이 안타나 홈런을 치면 좋은 거고, 양궁은 10점 가까이에 쏘면 좋은 거고, 그 정도만 알 뿐이다.
나는 강주경과 선배를 양옆에 두고 파란색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들어왔기에 테이블 위에는 커피 세 잔뿐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치킨이며 피자 같은 것을 먹고 있었다.
그러다 경기장 안에서 뭔가 일어나면 일제히 환호하면서 박수를 친다. 그중에서 몇 가지는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그러면 강주경이 작은 소리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주경이는 운동이 취미라서인지 야구 규칙도 꽤 많이 알고 있었다. 내가 뭘 물어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대답이 나왔다.
겨울에 서호 선배의 동생을 만났을 때 그가 야구 티켓을 보내 준다고 했는데, 4월쯤 정말로 선배가 동생 경기를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예의상 물은 거라고 생각했기에 뜻밖이었다.
그 후 이래저래 바빠서 야구장에 온 건 결국 5월 중순이 되었다. 선배의 동생, 윤선호의 팀인 성원 웨일즈와 동영 재규어즈의 경기였다.
나도 주경이도 선배도 TV 화면이라도 보듯 얌전하게 보고 있었지만 주위에서 응원이나 환호하는 분위기도, 선수들 사이의 긴장감도 재미있었다.
그때 윤선호가 타석으로 나왔다. 응원하는 소리가 한층 커졌다. 첫 번째로 친 공은 휙 날아가서 왼쪽 관중석으로 떨어졌다. 커지던 함성이 어어어…… 정도로 줄어들었다가, 그다음에 윤선호가 공을 치자마자 커졌다.
“오.”
턱을 괸 채 보고 있던 선배가 그렇게 감탄하며 웃었다. 멀리 날아간 공이 그가 친 방향에서 정면의 관중석으로 떨어졌다. 다들 저게 홈런이 될 거라고 알고 있었던 사람 같다. 친 순간 그걸 알 수 있다니 대단한 일이었다.
경기장을 한 바퀴 돌고 벤치로 들어간 윤선호는 한 줄로 선 동료들과 수선을 피우면서 들어가, 가장 안쪽에서 웃으며 기다리던 투수를 끌어안았다. 사이가 좋아 보인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주경이가 선수들의 포지션과 이름을 하나씩 알려 주었다. 포수는 문동우, 1루수가 손영연, 2루수가 한윤조…… 투수는 서문영이었고 윤선호는 중견수였다. 들어 본 이름도 꽤 있었다.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경기에 자주 나오는 선수들.
성원이 4점을 더 낸 후에 다시 공격과 수비가 바뀌었다. 선배가 커피를 하나 더 사 오겠다면서 자리를 비우고, 바로 다시 시작할 줄 알았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나와 마운드며 그 주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건 뭐고 왜 하는 건지 주경이와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즐거운 환호성이 들렸다. 다들 전광판을 보고 있었다. 뭔가 싶어 고개를 들어 보자 하트 모양 프레임 안에서 커플이 입을 맞추고 있었다.
가볍게 뺨이며 입술을 대는 것뿐이었지만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저런 것도 하는구나. 물끄러미 보고 있자 강주경이 가볍게 팔을 잡았다.
“응?”
“고개 숙이고 계세요, 선생님. 카메라가 잡을 수도 있어요.”
“너랑 나랑 둘 다 남잔데?”
“남자끼리 와도 자주 잡아요.”
그 말에 얼른 고개를 숙였다. 이런 걸로 경기장 안의 모든 사람에게 얼굴이 팔리는 건 별로였다. 주경이는 그런 내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
“으아.”
슬쩍 눈만 들어 확인한 순간 정말 카메라가 지나가고 있었다. 몇 초 정도 주경이와 나를 잡았다가, 강주경이 끝내 그쪽을 안 쳐다보고 선배가 자리로 돌아오자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다시 환호성이 터졌다.
“이제 일어나셔도 돼요.”
주경이가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슬쩍 고개를 들자 이제 전광판은 광고를 내보내고 있었다. 왠지 그는 내가 가만히 있었다면 카메라에 잡혔을 때 망설이지도 않고 입을 맞췄을 것 같다.
두 시부터 시작한 경기는 다섯 시쯤 끝났다. 엎치락뒤치락 점수를 주고받다가 성원이 이겼고, 관중들은 9회 초가 끝나기 전부터 이미 짐을 챙기기 시작해서 경기가 끝나자마자 우르르 빠져나갔다. 우리도 그 틈에 섞여 출입구로 향했다.
동생과 저녁을 먹으러 간다는 선배와 헤어져 차에 올라타자 해가 꽤 기울어 있었다. 낮에 시작한 경기였지만 다섯 시가 다 되어 끝났기 때문이다.
“어디 갈까?”
“음…….”
낮에 선배랑 같이 야구장에 간다는 것 말고는 딱히 정한 게 없었다. 영화라도 보러 갈까 하다가 딱히 재미있을 것 같은 게 안 보여서 번화가로 차를 몰았다. 근처 유료 주차장에 차를 대 놓고 길거리라도 돌아다닐 생각이었다.
주차장 바로 옆에 있던 카페에서 차가운 커피를 사 들고 나왔다. 5월인데도 벌써 반소매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정도로 덥진 않지만 확실히 얇은 옷 하나만 입어도 되는 날씨였다.
액세서리나 소품을 파는 노점과 북적거리는 인파 사이로 이따금 차량이 거북이처럼 지나갔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마주 오던 사람과 어깨를 부딪칠 것 같았다. 주경이가 내 허리를 가볍게 안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머리만 불쑥 솟아 있었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우리 쪽을 보고 뭐라고 소곤거리며 자기들끼리 꺄르륵 웃기도 했다. 그럴 법도 했다. 겨울이 끝나면서 정장 위에 코트를 걸친 모습을 못 보는 게 좀 아쉬웠지만, 강주경은 코트를 챙겨 입든 지금처럼 셔츠에 청바지만 입든 모델처럼 잘 어울렸다.
걸으면서 힐끗 올려다보자 그는 금방 마주 보더니, 고개를 내 쪽으로 기울였다. 뺨에 입이라도 맞추려는 줄 알고 움찔했지만 내가 들고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뿐이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길을 지나 골목으로 빠지자 훨씬 한적한 거리가 나왔다. 길 자체가 넓고, 걸어 다니기보다는 카페테라스 석에 앉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아서인 듯했다.
딱히 목적도 없이 작은 서점이나 소품점 같은 곳이 보이면 들어가서 구경하고, 뭘 사기도 하면서 돌아다녔다.
“저녁 먹고 들어갈까요?”
“으음…… 집에 가서 먹자.”
“네.”
슬슬 밖에 있는 것에도 질렸고 냉장고에 해동한 고기가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뭘 만들면 좋을지 이야기하며 주차장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눈앞에 핑크색 네온사인으로 밝혀진 가게가 보였다.
“새로 생겼나 봐.”
전에 여기에 왔을 땐 본 적 없는 가게였다. 차분한 카페 사이에 요란할 정도로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간판과 유리창이 이질적이면서도 은근히 어울렸다. 무심코 걸음을 멈추고 보고 있는데, 문이 열리면서 간판과 같은 그림의 쇼핑백을 든 커플이 나왔다.
“진짜 재미있다.”
“그러게.”
팬시점인가? 유리창에는 잔디를 깐 진열대에 레고며 실바니안 같은 걸 자잘하게 꾸며 둔 것밖에 보이지 않았다. 뭘 파는 곳이길래 재미있다고 말하면서 나오는 건지 궁금해졌다.
“들어가 볼까?”
주경이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밀어 열자 기계음 섞인 방울 소리 같은 게 났다. 작은 상자며 선반에 장식된 인형 같은 걸 보니 역시 팬시점…….
“어서 오세요!”
“…….”
점원이 밝게 인사하면서 다가온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인테리어와 장식물 하나하나는 귀여운데, 진열된 물건이 귀엽지 않았다.
고개를 홱 돌렸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렇게 길 한가운데, 눈에 잘 띄는 곳에? 하지만 곧바로 출입문 옆에 놓인 깜찍한 안내판이 보였다.
‘미성년자는 나중에 다시 와 주세요! 19세 미만 출입 금지 업소♡’
“…….”
저런 식으로 써도 된단 말이야?!
외국도 아니고 국내에서 느낀 문화적 충격에 나는 입을 뻐끔거렸다. 진열대에 ‘추천 상품’, ‘이번 주의 인기 상품’ 같은 화려한 딱지를 붙이고 있는 물건은 전부 성인용품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떤 거 찾으세요?”
“아, 아니, 저는…….”
당황해서 주경이를 올려다보자 그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 너…… 들어오기 전부터 알았어?”
“네.”
“말해 주지!”
그러자 강주경은 작게 웃었다. 이 상황을 재미있어하는 게 분명했다. 가까이 다가온 직원이 매우 즐거운 듯 웃었다.
“부담 가지지 마시고 구경이라도 하세요. 저희 콘셉트가 안 부끄럽게 들어올 수 있는 성인용품점이거든요. 왜, 그런 가게는 엄청 숨겨 두잖아요. 뒤쪽에 출입구 하나 더 만들어서 몰래 들어오게 하고요. 저희는 그런 거 없이 재미있게 놀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직원은 귀여운 배지가 잔뜩 달린 분홍색 앞치마를 하고 있었다. 주춤거리며 아까 들어오기 전에 본 유리창 앞 진열대를 보았다. 성인용품을 밖에서도 보이게 진열할 수 없어서인지 거기에 있는 건 전부 실바니안 하우스나 소품, 레고, 그 밖의 캐릭터 인형이었지만 미묘하게 다 두 마리씩 붙어 있었다.
“나, 나가자…….”
“어어. 진짜 구경만 하셔도 돼요. 별게 다 있어서 진짜 재미있으실 걸요.”
직원의 말에 주경이가 막 돌아서려 하는 나를 가볍게 잡았다.
“재미있어 보이잖아요, 선생님. 보고 가요.”
“…….”
그러자 직원은 신이 나서 가까이 있는 물건부터 들어 보여 주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더 당황했다. 직원의 말대로 정말 별게 다 있었다. 내가 아는 성인용품의 종류라고 해 봐야 두어 가지였는데 세상에는 엄청난 것들이 존재했다. 직원이 왜인지 몰라도 잔뜩 신이 나서 이것저것 설명하는 동안 나는 계속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가게에서 나올 때 내 손에는 작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직원의 언변은 어마어마했다. 발랄하고 자세한 설명을 듣는 사이 계속 그런가? …그런가?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라고 생각하다가 홀린 듯 물건을 사고 말았다.
그걸 들고 걷자니 왜인지 점점 부끄러워졌다. 강주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혼자서 그가 신경 쓰여서 어쩔 줄 몰랐다. 결국 주경이가 주차권을 정산하는 동안 멀찍이 떨어졌다가, 차 문을 열어 주자마자 후다닥 올라탔다.
그런데 차에 후다닥 올라탄다고 될 일인가. 어차피 운전석에 주경이가 타는데. 나는 품에 안긴 쇼핑백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토요일 시내인 만큼 차는 꽤 막히는 편이었다. 둘 다 차에서 음악이나 라디오를 안 들어서 몹시 조용했다. 멀리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지나간 후, 핸들에 손을 얹고 있던 주경이가 입을 열었다.
“제 집으로 가도 되나요?”
“으응?”
주경이 집은 여기서 반대 방향이었던 것 같은데.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자 그는 다시 덧붙여 말했다.
“저 혼자 살던 집이요.”
“아.”
강주경이 옷이나 필요한 물건을 챙기러 갈 때 잠깐씩 다녀오긴 하지만 같이 가 본 적은 없다. 부모님 소유인데, 좁은 주택인 데다 위치도 애매해서 어차피 오래 비어 있었던지라 따로 처분하는 게 더 귀찮다며 지금은 거의 물건 두는 창고처럼 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한 번도 안 가 봤네. 그런데 갑자기 왜?”
“……여기서 더 가까워요.”
“응?”
“차가 많이 막혀서요.”
그렇게 말하며 주경이는 내 손에 들린 쇼핑백을 힐끗 보았다. 그제야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은 나는 점점 새빨개지는 얼굴을 감추듯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혼자 살던 집까지는 번화가에서 빠져나가 골목으로 들어가자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정체되던 걸 생각하면 집까지 30분은 더 걸렸을 것이다.
확실히 애매한 위치이긴 했다. 버스정류장이나 지하철역까지 한참 걸어야 할 것 같았고, 택시가 지나다니는 것도 아니다. 아담한 담장에 둘러싸인 집이었는데 정원과 차고가 딸려 있다 보니 가족이 살기에는 좁아 보였다.
적극적으로 임대를 내놓은 것도 아니고, 강주경이 들어와 살겠다고 하기 전까지 가족들은 이 집이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고 한다. 차고는 큰 편인 주경이의 차가 들어가고도 공간이 넉넉하게 남았다. 구조가 특이한 집이었다.
차 문을 열었는데, 차고 천장에 꺼져 있긴 하지만 조명이 잔뜩 달린 게 보였다. 어쩐지 차고가 집에 비해 넓다 했더니 작업실 같은 용도로도 사용했던 모양이다.
“앗.”
그걸 무심코 올려다보며 내리다가 발을 헛디뎠다. 순간 비틀거렸지만 어느새 조수석 쪽까지 온 강주경이 얼른 내 몸을 받아 안았고, 그대로 허리를 안긴 채 바닥에 앉아 버렸다.
“괜찮으세요?”
“아, 응. 미안. 천장 좀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내리는데 주경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아니, 이게 무슨, 뭐 떨어뜨린 거 서로 주우려고 하다가 손 맞닿는 고전 명장면도 아니고 같이 앉듯이 넘어져서 눈 마주친 상황이라니.
순간 뺨이 따끈해졌고 강주경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곰이었다. 입술이 짧게 맞닿았다가 떨어졌다. 내가 밀어내거나 피하지 않자 두 번째는 좀 더 길어졌고, 세 번째엔 두 팔이 내 머리 옆으로 뻗어 와 나를 가두듯 한 채 입을 맞췄다.
입을 벌리듯 들어온 입술이 안쪽의 젖은 살을 빨다가 물러나고, 그 사이로 혀가 들어왔다. 혀끝이 살짝 얽히면서 내가 고개를 조금 옆으로 기울이자, 그는 한 손으로 내 뺨을 받치며 더 깊게 혀를 집어넣었다.
혀뿌리를 꾹 누른 살덩어리가 위로 올라가 입천장을 간지럽히듯이 핥았다. 자릿한 느낌에 상체가 움츠러들었다. 내 입 안을 느릿하게 훑던 입맞춤은 서서히 깊어졌고, 어느새 그가 이끄는 대로 혀를 내민 채 그가 힘주어 빨아 댈 때마다 신음하고 있었다.
숨을 쉬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하는 건 좀처럼 쉽지 않다. 한참 입맞춤을 나누다가 크게 헐떡이며 고개를 뒤로 빼자, 주경이는 내가 몇 번 숨을 들이켜는 동안 바로 앞에서 그것을 바라보다가 다시 키스했다.
이번에는 혀가 더 깊숙이 들어왔다. 혀가 입천장 가운데에서 목구멍으로 이어지는 말랑한 살을 덮듯이 한 채로 한참을 핥고 빨았다. 혀 아래쪽이 달큼해지는 것 같았다. 그의 옷을 꽉 붙잡은 채 응하자 그는 혀끝을 한층 더 안으로 밀어 넣었다.
“읍…….”
혀가 목구멍을 건드렸다. 기침하면서 고개를 빼자 주경이는 달래듯 다시 입천장과 혀를 핥다가 깊게 들어왔다. 목 안쪽으로 타액이 고이고 눈가는 축축해졌다. 내가 다시 신음하자 그는 조금 물러나 내 입술을 깨물었다. 부어오른 입술을 물리자 간지러운 느낌이 온몸으로 퍼졌다.
강주경의 얼굴은 열에 들떠 있었다. 그제야 그가 여기가 더 가까우니까, 라고 말하며 자기 집으로 온 이유가 기억났다.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자 그는 차에 짚고 있던 두 팔을 내려 그대로 날 끌어안았다.
“죄송해요, 선생님. 한 번만…….”
“으응…….”
못 이기는 척 대답했지만 싫지 않았다. 이미 몸이 잔뜩 달아 있었고, 나 역시 강주경과 마찬가지로 여기서 조금이라도 풀지 않으면 어디로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았다. 주경이는 나를 안은 채 몸을 일으켰다. 딸려 올라가듯 일어나 그가 이끄는 대로 보닛에 두 팔을 올리고 엎드렸다.
서늘한 차체가 가슴에 느껴지자 기분이 묘했다. 차고긴 해도 낯설고 공기가 실외에 가까워서인지 바깥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때문에 그가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내 바지를 끌어 내리려 한 순간 부끄러움이 확 올라왔다.
“자, 잠깐……, 잠깐만.”
나는 보닛에 엎드린 채 고개를 돌렸다. 강주경이 먹이를 앞에 둔 개처럼 불쌍한 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순하고 귀여운 큰 개 종류는 아니었다. 굳이 개에 비유한다면 사냥개가 아닐까.
“누가 보면 어떻게 해……?”
“아…….”
깨닫는 소리가 아니라 신음이었다. 왜인지 몰라도 누군가의 시선을 걱정하는 내 모습에 그는 흥분한 것 같았다.
“이 근처는, 거의 다 빈집이고……, 여긴 밖에서 안 보여요.”
주경이가 그렇게 말하며 내 몸 위로 자신의 몸을 겹쳤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차가 들어온 문 쪽을 보았지만 단단히 닫혀 있었다. 반대쪽의 큰 창도 마찬가지다. 어디선가 바깥 공기가 들어오고 있었지만 시선에 노출될 것 같진 않았다.
내가 조금 안심한 기색으로 어깨의 힘을 빼자 주경이는 손바닥으로 내 가슴에서 배까지 죽 훑어 내렸다. 등이 바르르 떨렸다. 차고는 어둑했다. 차가 들어올 때 켜진 옅은 주홍색 등을 제외하면 빛이 없었다. 천장의 불이 전부 다 켜지면 대낮보다 밝을 것 같지만, 지금은 장식처럼 달려 있을 뿐이었다.
배를 더듬던 손이 그대로 바지 안으로 들어갔다. 버클을 풀어낸 손이 속옷 위에서 성기를 만지작거렸다. 조금 전의 깊은 키스에 내 것은 반쯤 일어서 있었다. 그가 내 목덜미며 귀, 뺨과 입술에 입 맞추며 몇 번 문지른 것만으로 아래는 속옷을 축축하게 적실 정도로 젖었다.
“하아, 아…….”
바지와 속옷이 무릎까지 내려가고, 성기가 완전히 노출되자 날씨가 따뜻하다고 생각했는데도 소름이 쭉 돋았다. 그는 손으로 내 것을 받친 채 몇 번 문질렀다. 음낭을 감싸듯 쥐었다가 손이 뒤를 향했다. 그의 손을 적실 정도로 묻은 선액이 꽉 다물어진 입구에 발렸지만 그 정도로 윤활이 될 것 같진 않았다.
어쩌지, 하며 보닛 위에 올라간 내 손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입구 위로 차가운 액체가 주르륵 떨어졌다.
“……!”
깜짝 놀라 몸을 웅크렸다. 주경이는 뭘 뿌린 건지 보여 주듯이 내 눈앞에서 플라스틱으로 된 하늘색 병을 가볍게 흔들고 다시 치웠다. 액체가 든 병이 바닥에 도륵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아까 가게에서 사은품이라고 받은 젤이었다.
허벅지를 타고 줄줄 흐를 정도로 쏟아진 젤은 그것을 잔뜩 묻힌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수월하게 했다.
“아, 아……, 잠깐…….”
젖은 소리가 나도록 안을 파고드는 손가락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그는 안쪽을 만지는 것 자체를 좋아해서 항상 긴 시간을 들여 내벽을 문지르며 넓혔으나, 오늘은 유독 조급했다. 손바닥에 잔뜩 고인 젤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그의 손에 딸려 나가서 줄줄 흘렀다.
“흐윽, 너, 너무, 급하게, 응……!”
미끌미끌한 액체에 푹 젖은 아래는 길쭉하고 굵은 손가락 네 개가 거칠게 드나드는데도 무리 없이 벌어졌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확인하자 투명하게 녹은 젤이 이리저리 튀고 있었다. 그게 아주 야한 장면으로 보여서 나는 신음하며 보닛에 얼굴을 묻어 버렸다. 뺨에 닿은 쇳덩어리가 서늘했다.
“아……!”
다음 순간 나는 숨을 삼켰다. 크게 발기한 기둥이 아래에 마찰되고 있었다. 그는 미끈미끈하게 젖은 귀두로 내 아래를, 회음에서 입구까지 짓누르듯 문질렀다. 엉덩이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부분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성기 끝이 젤 때문에 말랑말랑해진 입구 안으로 푹 들어왔다가 빠져나갔다.
지나치게 많이 뿌린 윤활제 때문에 삽입이 어려웠다. 애매하게 몸을 구부린 자세 탓도 있을 것이다. 성기 끝이 들어왔다가 질척거리며 미끄러져 나가는 감각에 허리를 비틀자 그는 그걸 즐기기라도 하듯이 몇 번이나 같은 짓을 반복했다. 입구 근처만 벌어져 묽은 젤이 뚝뚝 흘렀다. 안쪽이 뜨겁고 저릿저릿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굵은 팔이 배 앞쪽으로 들어와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하체가 조금 들렸고, 다른 팔이 허벅지를 감아 안고 높게 들었다. 그대로 미끄러져 떨어질 것 같아서 반사적으로 두 팔에 힘을 주었으나 그의 팔에 체중 대부분을 맡기고도 오히려 서 있을 때보다 안정적이었다.
“아읏, 아, 아!”
그가 내 몸을 고쳐 안는가 싶더니 계속 얕은 곳에서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던 성기가 안으로 푹 들어왔다. 저절로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한쪽 다리가 한층 더 위로 들리면서 떠오른 몸 때문에 다른 한쪽은 발끝이 겨우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하고 있을 뿐이었다.
“으응, 흑…….”
완전히 들어온 것도 아닌데 충분히 깊었다. 배 속이 빠듯해졌다. 그가 나를 안아 든 채 움직이기 시작하자 하체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력하게 흔들렸다. 바닥을 겨우 짚은 발끝은 몇 번이나 제대로 디디지 못하고 떠올랐다.
“아…… 앗, 아, 아!”
안을 채우고 들어온 성기에 점막이 휘감겼다. 축축하고 미끄러운 살을 단단하게 발기한 기둥이 거칠게 몇 번 문지른 것만으로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이미 한계에 와 있던 나는 그가 내 몸을 추슬러 안고 깊게 자신의 것을 박아 넣은 순간 고개를 뒤로 젖히며 사정했다.
그는 사정하면서 잔뜩 예민해진 나를 여지없이 몰아붙였다. 한쪽 발목에만 걸쳐진 바지 위로, 바닥으로 정액이 쏟아졌다. 사정하는 중에 이렇게 안을 자극당하면 감각은 단번에 치솟아서 몸이 떨릴 정도의 쾌감이 끌려 나왔다. 내벽이 벌벌 떨리며 조여들어 이물을 감쌌다. 무언가를 삼키기 위해 수축하는 목구멍 같았다.
그대로 자세도 바꾸지 않고 흔들렸다. 그가 사정하는 순간 나를 완전히 들어 등이 가슴에 닿도록 안아 올리기 전까진 내내 차체에 매달리듯 엎드린 채였다. 안으로 뜨거운 것이 확 퍼졌다. 한쪽 발이 버둥거리며 허공을 휘젓다가 발끝으로 보닛을 짚었다. 정액이 두 번, 세 번에 걸쳐 안으로 쏟아졌다.
땀에 젖은 몸에 바깥과 같은 차가운 공기가 닿았다. 그제야 내 눈에 우리가 어디서 섹스 한 건지 똑바로 들어왔다. 다시 한번 문과 창문을 확인했지만 전부 닫혀 있었다. 그럼에도 누군가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어 얼굴이 달아올랐다. 다리를 오므리고 싶었지만 허벅지를 안겨 들린 데다 아직 안에 그가 있어서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빼, 빼 줘……, 응?”
주경이는 내 귓가에 입을 쪽 맞추고는 나를 다시 보닛에 엎드리게 하고, 안에서 빠져나갔다. 덩어리진 정액이 울컥거리며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몸에서 힘을 빼며 숨을 내쉬자 그는 나를 안아서 들고,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챙겨 집 안으로 향했다.
집은 조용하고 깨끗했다. 몇 달째 비워 놨을 텐데 먼지 하나 없었다. 생활감이 안 느껴지긴 하지만 누가 계속 살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역시 단독주택치고 좁았다. 2층이 있긴 했지만, 혼자서 살기에 딱 적당한 정도.
게다가 크기 자체가 좁다고는 해도 온 집 안의 자재가 값비싸 보이는 것들이었다. 가구 같은 건 물론이고 벽과 바닥, 천장까지. 조건이 딱 맞는 사람이 나오면 기뻐할 법한 집이지만 주경이네 집안에서 적극적으로 매물로 내놓지 않는다니 팔릴 일은 없을 듯했다.
TV 양쪽 옆으로 큰 책장이 벽을 채우고 있었고 소파는 앉아서 책을 보기 좋은 모양이었다. 주방엔 커피머신과 정수기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디에 따로 수납해 둔 것인지 싱크대에 기본적인 조리도구도, 그릇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긴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해 먹는다고 했지. 그는 곧바로 욕실로 향했다. 물기는 고사하고 물 자국조차 없는 욕실이었지만 샤워부스에 목욕용품은 다 갖추어져 있었다.
몸을 씻으면서 입술이 가볍게 맞닿았다. 거품이 씻겨 나간 등을 따라서 손이 내려가 안쪽으로 들어왔다. 짧게 긴장했지만 안에 고인 정액을 빼내는 것뿐이었다. 내가 몸을 약간 움츠리자 그는 뒷머리와 목을 살살 주무르듯 만졌다. 동물이라도 달래는 듯한 손짓이었지만 거기에 달래지는 나도 나였다.
가슴 아래쪽으로 팔을 뻗어 커다란 몸을 끌어안자 그가 뺨과 귓가에 여러 번 입을 맞추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살을 감싼 점막이 그걸 따라서 꾸물거렸다. 깊은 곳에 남아 있던 정액이 손가락을 따라 바깥으로 흘렀다. 젤이 섞여 묽어진 정액은 어깨에서부터 흘러내린 물에 금세 씻겨 내려갔다.
돋움발로 서 있던 발끝이 어느 순간 움찔 미끄러졌다. 넘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주경이가 내 허리를 끌어안으며 아래로 몸을 낮췄다. 샤워기의 물줄기가 머리 위로 떨어지다가 멀어졌다. 벽에 내 등이 거의 닿을 듯 다가간 주경이는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허벅지 위에 걸터앉게 된 채로 손가락이 계속 안을 더듬었다.
서 있을 때보다 크게 벌어진 다리 사이로 그의 허리를 타고 떨어진 물이 흘렀다. 수증기가 차오른 욕실의 공기는 습하고 따뜻했다. 내쉬는 숨의 온도와 거의 비슷한 것 같았다. 뺨이 잔뜩 달아오른 게 느껴졌다.
물이 아닌 다른 것으로 젖은 손가락이 안에서 빠져나와 아래쪽을 덮듯이 눌렀다. 음낭 밑을 꾹 눌려 꼬리뼈부터 목까지 부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나는 팔을 위로 올려 강주경의 양쪽 뺨을 감싸고 입 맞췄다. 입술이 젖은 소리를 내며 몇 번 닿았다 떨어지고, 이내 깊게 맞물렸다. 서로 축축하게 젖은 입술은 매끄러운 감촉을 주었다. 입술을 빨면 물맛이 느껴져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계속 떨어지고 있는 물소리도 그랬다.
키스하면서 몇 번이나 입술의 물기를 머금다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꾸물거리며 다리를 내렸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그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은 나는 뒤로 약간 물러났다. 샤워부스가 좁은 편은 아니었기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발뒤꿈치가 벽에 닿을 정도로 바짝 앉자 물줄기에서 어느 정도 떨어지게 되었다.
붉어진 눈매를 가늘게 하며 주경이가 나를 보았다. 무슨 의미인지 묻는 듯했다. 무슨 의미긴. 나는 그의 목을 끌어안은 채 한 팔로 부드럽게 허벅지 아래를 들듯이 만졌다. 강주경은 역시 금방 내 말을 알아듣고 다리를 벌린 채 무릎으로 서서 내 쪽으로 고개를 조금 숙였다.
발끝에 닿은 샤워부스 벽이 따끈하고 축축했다. 조금 전보다 더 샤워기의 물이 닿는 범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이제 그의 등 아래쪽을 타고 떨어지는 것 말고는 물이 닿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앞으로 완전히 굽혀 단단하게 일어난 성기를 입에 물었다. 조금은 요령이 생겨서 이제 손으로 잡아야 하는 부분을 남기고, 나머지는 무리 없이 삼킬 수 있었다. 성기를 입 안에 머금을 때 어떤 식으로 해야 기분이 좋아지는지도 알 것 같고.
입 맞출 때보다 몸에 얼굴이 더 밀착해서인지 뺨이 더워지는 것 같았다. 따뜻한 물 냄새와 비누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달큼하게 자극했다.
팔을 들어 그의 허리와 허벅지에 매달리다시피 한 채 고개를 조금씩 움직였다. 입 안에 씁쓸한 냄새와 미끌미끌한 감촉이 번졌다. 입천장과 혀의 점막이 동시에 눌리며 마찰되는 감각은 몽롱한 고양감을 불러왔다.
금세 혀와 턱이 뻐근해졌다. 머리를 그의 배에 기대듯 하며 입을 다물고 쉬다가 다시 입술 사이로 물고, 빼내기를 반복했다. 숨은 충분히 가쁘게 올라와 있었다. 허리 안쪽이 뭉툭하게 저렸다.
짧게 숨을 고르고 입을 벌린 순간 귀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손이 뒤통수로 올라왔다. 채 피하기도 전에 머리를 꾹 눌려 단숨에 목구멍까지 성기 끝이 닿았다. 고개를 저으며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뱉자 그는 아예 두 손으로 내 머리를 붙들고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숙이고 있던 상체가 조금 들렸다. 겨우 그의 몸을 붙들었던 두 손은 힘을 잃고 떨어져 바닥을 짚어야 했다. 물이 계속 쏟아지는 바닥은 손바닥이 닿았다가 미끄러질 때마다 찰팍찰팍 소리가 났다. 퍽, 하고 성기가 깊이 들어오면서 동시에 정액이 터져 나왔다.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흰 액체가 성기를 따라 입술 사이로 왈칵 흘러내렸다가 도로 밀려 들어왔다. 사정하는 내내 그는 거칠게 입 안을 쳐댔다. 정액이 질퍽거리는 소리를 내며 비어져 나와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번들번들하게 젖은 성기가 빠져나갔다. 가만히 위를 올려다보던 나는 그것의 끝을 조금 빨다가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넘쳐흐른 정액이 바닥에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그것을 보자 배 속이 근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상체를 구부리고 매끄러운 타일에 떨어진 정액을 입술로 핥았다.
그것을 본 그가 숨을 내쉬고는 내 허리를 손으로 감싸듯 해서 일으켰다. 곧바로 입술을 깊게 물렸고, 안으로 들어온 혀가 입 안에 남은 정액을 핥듯이 해서 가지고 갔다. 긴 구음 때문에 얼얼하고 뻐근해진 입은 혀가 드나드는 것으로도 아픔을 호소했다.
고개를 저어 벗어나자 그는 더 따라붙지 않고 눈가에 입을 맞춘 뒤, 정액으로 축축해진 아래쪽을 닦아 주고 나를 안은 채 일어섰다. 계속 이어지던 물소리가 끊어졌다.
안겨서 침실로 들어간 후에는 몸에 짧게 입 맞추며 물기를 닦아 냈다. 차고에서 더워졌다가 땀이 식어 사늘해지고, 다시 뜨끈뜨끈하게 달아오른 몸은 나른하게 풀어졌다.
침실 역시 흐트러진 곳 하나 없이 깨끗했다. 주경이가 자주 들어오는 건 아니니 청소 업체에 관리를 맡기고 있는 듯했다. 섬유유연제 냄새가 희미하게 나는 빳빳한 이불 위에 몸이 눕혀졌다.
물기를 말려 부드러워진 머리카락 사이로 손이 들어왔다. 누운 채 한참 입을 맞췄다. 조금 가라앉았던 입술이 다시 부풀었다. 강주경이 나를 두고 몸을 일으켰다. 젤이라도 가지러 가는 거겠지 싶어 가만히 숨을 고르고 있는데, 상자 포장을 뜯는 소리가 들렸다.
뭘 하는 건가 했다가 곧바로 내가 뭘 샀는지 떠올렸다. 아까 차고 바닥에 떨어뜨린 후로 존재를 잊고 있었다. 즐거운 듯 그것의 성능에 대해 설명하던 직원의 목소리가 떠올라 얼굴이 삽시간에 새빨개졌다.
부끄러움에 움찔거리기까지 하며 주경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날 보며 웃더니 내 입술에 무언가를 가져다 댔다. 옅은 분홍색의 동그란 로터였다. 입술이 벌어지면서 그게 입 안으로 들어왔다. 매끈매끈한 플라스틱의 느낌이 생경했다.
고개를 저었지만 그는 손을 뒤로 한 번 뺐을 뿐 곧 다시 내 입에 로터를 물려 주었다. 머뭇거리다가 결국 혀로 그것을 감아 빨았다. 손가락이나 혀나, 성기를 빨 때와는 확연하게 다른 감촉이었다. 딱딱하고 작은 도구를 어디에 쓰는지 생각하자 행위 중간에 어중간하게 멈추었던 몸에 다시 불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로터가 타액으로 푹 젖을 때까지 빨게 한 강주경은 내게 입을 맞추며 아래쪽으로 그걸 가지고 갔다. 일어선 성기 위로 둥그런 플라스틱이 문질러졌다. 손바닥 안에 쥐어진 그게 성기를 꾹꾹 눌렀다. 이질적인 감촉에 몸이 움찔거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평소와 다르고, 기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순간에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터뜨려야 했다. 강주경의 손안에서 로터가 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 아, 흐악, 아!”
나는 곧바로 몸을 비틀며 도망치려 했다. 너무 생소한 느낌이었다. 진동하는 기구가 성기에 눌리는 감각은, 말초적인 쾌감을 놀랄 정도로 자극했다.
“아흑, 앗, 아! 아아!”
뺨과 귓가에 계속 입술이 닿았지만 인식하기도 어려웠다. 진동 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성이 확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귀두까지 고루 문지르던 로터가 아래로 내려가 회음을 누르다가 진동을 멈췄다.
“하아…….”
잠깐 사이에 잔뜩 긴장했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아랫배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눈을 내리깐 채 고조된 감각을 달래 보려 하는데, 로터가 아래를 벌리며 안으로 푹 들어왔다.
“흐윽……!”
단단해도 온기와 탄력이 있는 사람의 피부와는 완전히 달랐다. 동그란 플라스틱이 안쪽의 점막 위를 멋대로 미끄러져 안을 자극했다. 몇 번이나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지만 그때마다 강주경은 손으로 그것을 밀어 넣었다.
침대 위로 늘어뜨리고 있던 다리를 끌어 올렸다. 무릎을 모으며 꾸물거려도 그가 내 아래로 그 작은 플라스틱 덩어리를 넣는 데는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나는 헐떡거리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신음했다. 젤 뚜껑을 여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점액질로 젖은 둥근 로터가 하나 더 안으로 들어왔다.
“아, 안 돼, 싫어…….”
몸을 빼려 했지만 어차피 침대 위였다. 도망칠 공간이 없었다. 두 개로 늘어난 로터가 안쪽에서 서로 부딪치며 달각거렸다.
“선생님, 일어나서…… 이쪽으로 엎드려 보세요.”
낮고 축축한 목소리가 그렇게 속삭였다. 나는 홀린 듯이 몸을 일으켜 강주경에게 등을 보인 채 그의 몸 위로 올라탔다. 몸에 힘이 들어가면서 젤 때문에 미끄러워진 안쪽에서 로터 하나가 주르륵 빠져나왔다. 곧바로 손이 뻗어 와 내 등뼈를 더듬으며 내려가서, 꼬리뼈를 짚은 채 그것을 도로 안으로 집어넣었다. 가느다란 줄 두 개가 늘어져 허벅지에 자꾸만 닿았다.
“으응, 이거, 이상해……, 읏…….”
“괜찮아요.”
그의 손이 엉덩이를 매만졌다. 커다란 손 안에 엉덩이와 허벅지의 부드러운 살이 꽉 쥐어졌다가 풀려났다. 한 번씩 강한 힘으로 움켜쥘 때마다 뒤에 힘이 들어갔지만 다른 손이 로터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입구를 틀어막고 있었다.
“아, 아…….”
입구 근처까지 내려간 로터 두 개가 얽혀 내벽을 눌렀다. 주경이의 허벅지를 잡고 있는 두 손이 떨렸다. 두 개가 겹쳐진 채 입구 근처에 걸쳐진 감각을 견딜 수 없어서 안쪽을 꾹 조이자 내벽이 꿈틀거리며 로터를 깊게 삼켰다.
손이 허벅지를 더듬었다. 눈앞에 검붉게 일어선 성기가 보였다. 뜨겁게 번들거리는 그것을 보다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두 손으로 성기를 감싸 쥔 채 끝부터 천천히 입에 넣었다. 신음 소리가 들렸다. 씁쓸한 맛이 나는 성기를 빨며 조금씩 깊게 넣고 있었을 때, 이질적인 진동 소리가 안쪽에서부터 크게 울렸다. 허리에서 저절로 힘이 풀어져 몸이 앞으로 더 휘었다.
“아아……, 아, 하윽, 아, 아!”
손뿐 아니라 온몸이 부들부들 경련했다. 어떻게 해 볼 틈도 없이 성기에서 정액이 팍 튀었다. 사정하고 난 후에도 절정은 끝나지 않고 난폭하게 이어졌다. 안에서 진동하는 두 개의 로터 때문에 계속해서 요란한 쾌감이 밀려들었다. 입에 물고 있던 것을 빼내고 손에만 쥔 채 고개를 저으며 신음했다.
로터 두 개를 삼킨 채 움찔거리는 아래가 강주경의 눈에 고스란히 보일 걸 생각하니 더 미칠 것 같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입 안이 축축하게 젖었다. 나는 반쯤 풀린 눈으로 입에 성기를 물었다가 빼내길 반복했다.
“읍……, 읏, 아, 아! 아아, 하윽!”
머릿속이 희게 질리는 것 같았다. 진동이 더 세게 올라가면서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와 로터를 세게 눌렀다. 멋대로 떨리는 로터가 안쪽의 지극히 예민한 부분에 닿았다. 그대로 정신이 나가 버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 아, 아! 아윽, 흐아, 으응, 읏!”
사정이 없는 절정이 빠른 속도로 치밀어 몸에 계속 쌓였다. 감각이 끝없이 덧입혀지는 것 같았다. 비명에 가까운 신음이 참을 수 없게 쏟아져 나왔다. 이제 구음은 완전히 잊고 뺨에 뜨거운 성기를 문지르고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스스로도 이 감각을 어떻게 하지 못해서, 연신 입술로 그의 것을 핥거나 입에 넣으려 하기도 했다.
의식이 끊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눈앞이 새카매졌을 때 진동이 수그러들고 손가락도 빠져나갔다. 아까는 안에서 로터가 움직이는 것만으로 죽을 것 같았는데, 누르는 힘이 사라져서인지 진동이 약해져서인지 난폭하게 날뛰는 감각은 잦아들었다.
“얼굴이 안 보여서……, 선생님, 이리 와요.”
그는 내 팔을 잡아 상체를 세우게 하면서 자신도 몸을 일으켰다.
“저 봐 주세요.”
“흐윽……, 흣…….”
흐느끼며 그의 허벅지에 손을 짚고 돌아서 앉았다. 아직도 안에서 진동하는 로터의 줄이 나를 따라 움직였다. 그는 곧바로 내 양쪽 뺨을 손으로 감싼 채 입을 맞췄다. 그대로 나를 전부 삼키기라도 할 것처럼 조급하고 깊은 입맞춤이었다.
강주경이 내 등을 손바닥으로 받친 채 침대에 눕혔다. 입술은 계속 맞닿은 채였다. 몸을 눕히니 조금쯤 편해졌고, 그가 내 한쪽 다리를 잡아 벌렸을 때도 그를 밀어내지 않고 기다릴 수 있었다. 이제 삽입할 테니 로터를 빼 줄 거라고 생각했다.
“아, 앗, 안 돼, 안 돼……, 빼고, 앗……!”
그는 여전히 안에서 진동하는 로터를 그대로 둔 채 내 안으로 들어왔다. 눈앞에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로터 때문에 저리듯이 움찔거리는 내벽을 성기가 꽉 채웠다. 안쪽에 이물이 있어 끝까지 집어넣지 못했지만, 뿌리 부분을 남긴 채 삽입했음에도 플라스틱이 가장 깊은 곳을 짓눌렀다.
“아……, 아, 아……!”
느껴 본 적 없는 새로운 종류의 감각이었다. 허리까지 진동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배 속을 잔뜩 밀치며 들어온 성기가 명치까지 닿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깊었다.
“아윽, 아, 흐, 읏…….”
내 입에서 나오는 건 신음이 조금 섞인 울음이었다. 폭우 같은 감각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가 몸을 조금 물리자 안쪽에서 둥근 플라스틱 두 개가 내벽 사이를 구르듯 움직이다가, 다시 이어진 삽입에 조금 전과 약간 다른 위치를 내리눌렀다. 강주경은 내 어깨를 한 팔로 감싸 안아 자신의 몸에 누르듯 붙인 후 또 한 번 성기를 반쯤 빼냈다가 푹 집어넣었다.
“아, 아…… 하악, 아!”
순간 목소리가 높게 치솟아 갈라지면서 제대로 된 신음조차 되지 못했다. 몸이 완전히 밀착된 상태로, 강주경은 하반신을 문지르다시피 하며 성기를 밀어 넣었다.
“아윽!”
그 상태로 그가 내 허리까지 안아 완전히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자 성기에 뜨겁게 달아올라 경련하는 내벽이 감싸듯 달라붙었고, 끝이 로터에 살짝 닿았다. 강주경은 그대로 뭘 하는 건지 날 꽉 잡고 뭉근하게 안쪽을 찌르다가, 어느 순간 강하게 박아 넣었다.
“아, 아! 흐아악, 이, 게, 아아……, 아……!”
나는 정말 이지가 없어진 사람처럼 넋을 놓고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삽입한 상태에서 기둥이 더 커지는 일이야 있었지만,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로터가 하나는 선단이 닿는 끄트머리에, 하나는 그 옆으로 미끄러져 기둥 옆에서 꿈틀꿈틀 진동하며 움직였다. 안쪽에서 성기가 이상한 모양으로 부풀어 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흐, 시, 싫, 싫어, 이거……, 아, 아흑, 흐…….”
나는 진저리를 쳤다. 내벽이 생각도 못한 모양으로 늘어나는 것이 기묘함에 가까운 쾌감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무서운 건 무서운 거여서 계속 고개를 가로저으며 몸을 뒤집으려 했다. 강주경은 내가 버티지 못하는 걸 알아차렸는지 한 번 성기를 빼냈다. 그리고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두 개를 겹치듯 놓고 재차 삽입했다. 이번에는 평범하게 다리를 붙잡아 벌리게 하고, 그 사이로 들어왔다.
“아……, 아, 아…….”
나는 떼쓰는 어린애처럼 엉엉 울면서 뒤로 기듯 움직여 도망치려 했다. 신음도 거의 섞이지 않은 울음이었다. 목이 아플 정도로 소리를 높여 울면서 못 한다고 계속 중얼거리는 내 귀에 강주경의 낮은 신음이 들렸다. 성기를 내벽이 조이고, 예민한 끝에 로터가 닿아 있으니 그 역시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그는 내 머리카락을 가볍게 쥐고 거칠게 키스하며 허리를 짓치기 시작했다. 침대 위로 뻗고 있던 다리까지 흔들릴 만큼 빠르고 거셌다. 안쪽이 마구 경련하는 게 진동 때문인지, 스스로 꿈틀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성기가 깊게 파고들 때마다 로터가 빙글 돌듯이 움직이면서 예민한 부분을 자극해 댔다. 제발 그만해 달라고 애원하면서 울어도 멈추지 않았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서, 고개를 옆으로 돌릴 때마다 축축하게 젖은 시트가 느껴졌다.
“흐으윽……, 어떻게, 해, 흑, 으흑…….”
시트를 움켜쥐고 있던 두 손을 간신히 위로 뻗어 그를 끌어안았다. 팔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고, 땀 때문에 서로 미끄러워서 스스로 내 팔을 맞잡지 않으면 자꾸만 아래로 떨어졌다.
“선생님……, 선생님.”
“아……, 흑, 으응…….”
“저도, 어떻게……, 하죠. 너무 좋아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드라이 오르가슴에 시달리는 나를 붙잡아 끌고 간 그는 다시 키스하며 내 안에 사정했다. 정액이 안으로 쏟아지는 동안 내내 입술과 그 언저리를 깨물리거나 빨렸다. 그가 안에서 빠져나가자 정액과 함께 로터가 주르륵 흘러내려 침대로 떨어졌다. 안에 들어 있을 때보다 더 요란한 소리가 났다.
안쪽을 무언가로 얻어맞은 것처럼 배도, 내벽도 전부 뻐근하게 아팠지만 아직도 떨리고 간지러웠다. 신경을 잘게 자극한 진동은 감각이 계속해서 여진처럼 이어지게 만들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다가 다시 그에게 손을 뻗었다. 아프고 힘들고, 몸을 움직일 기력조차 없는데도 부족했다.
느릿하게 몸을 돌려 엎드리자 주경이는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 아직도 단단한 성기가 골 위로 미끄러지다가 깊이 들어왔다. 허리에 힘이 들어가는 듯하다가 확 풀어져 어깨로 상체를 지탱하듯 쓰러졌다. 그는 몇 번쯤 안을 드나들다가, 내 허리를 끌어당겨 안으며 성기를 끝까지 집어넣었다. 음낭이 아래를 때릴 정도로 깊은 삽입이었다.
“아……!”
간질간질하게 안쪽을 괴롭히던 감각이 단번에 익숙하고 달콤한 것으로 차올랐다. 더는 들어올 수 없는 곳까지 성기가 들어와 빈틈없이 눌러 댔다. 몸이 붕 떠올랐다가 다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으응, 읏, 흑……, 앗, 아!”
그가 여전히 침대 위에서 진동하던 로터를 집어 내 가슴에 눌렀다. 한 번도 자극받지 않은 유두가 곧바로 단단해졌다. 머리를 빙글빙글 맴도는 감각은 멈출 줄 모르고 고양되었다.
“아, 시, 싫어, 가슴에, 하지, 마……, 아!”
질척질척하게 젖은 로터가 유두와 유륜 위를 살살 구르듯 맴돌았다. 안이 잔뜩 조여드는 게 느껴졌다. 뒤에서는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고, 눈앞이 부옇게 흐렸다. 허리를 세게 쳐 대던 그는 한 번 성기를 빼내고는 나를 꽉 끌어안았다. 다시 절정이 겹쳐졌다. 생각이 모조리 사라지는 것 같았다. 벌벌 떨리던 몸이 경직되었다가 풀어지고, 멋대로 튕겨 올랐다.
그는 계속 헐떡이면서 신음하는 날 똑바로 눕히고 위로 끌어 올렸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눕자 그가 위로 올라왔다. 바로 의미를 알아채고 입을 벌리자 입 안으로 성기가 깊이 들어왔다. 넣자마자 목구멍까지 찌르고 들어오는 것을 받으며 침을 삼켰다. 귀두가 조여지는 느낌에 그가 침대 헤드에 손을 짚은 채로 신음했다.
베개에 머리를 기대고 뒤로 젖힌 채 목구멍 안쪽으로 거칠게 들어오는 성기를 애써 빨고, 안으로 삼켰다. 성기가 들어올 때마다 턱 아래가 그 모양대로 불거졌다. 목이 부을 정도로 한참 내 입을 괴롭힌 그는 숨을 들이켜며 성기를 빼내 뺨과 입술에, 눈가에 문질렀다.
“입 벌려요, 선생님.”
그 말에 뻐근하게 아픈 입을 크게 벌리자 그리로 정액이 쏟아졌다. 입 안은 당연했고 입술이며 콧잔등, 뺨과 눈가까지 희뿌연 액체가 튀었다. 자기 손으로 성기를 문지르며 끝까지 사정한 그는 젖은 시트 위에서 혼자 진동하던 로터를 집었다.
“읏, 아, 싫어, 이제 싫어……!”
“조금만 더.”
안쪽은 부어올라서 뜨끈뜨끈했다. 넣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으나, 로터가 닿은 건 입구 위였다. 완전히 다물어지지 않은 그곳에 가로로 눌린 로터는 크게 진동하면서 신경을 자극했다.
“아아……, 아, 흐아, 아!”
그것이 다시 생소한 쾌감에 불을 붙였다. 온몸이 떨렸다. 배가 단단하게 꽉 차오르는 느낌과 함께, 잇단 사정으로 물처럼 흐려진 정액이 줄줄 흘렀다. 결국 내가 한계까지 사정한 후에 그는 로터의 진동을 끄고 날 끌어안았다.
목이 따끔거렸다. 숨을 내쉬며 허리를 마주 안자 그는 내 뺨에 여러 번 입을 맞추고 침대에서 깨끗한 쪽에 눕혔다.
“물 좀 가지고 올게요.”
“으응…….”
물러나는 그를 잡았다가 물을 가지고 온다는 말에 놓았다. 안고 있던 몸이 사라지자 힘이 전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아직도 온몸이 떨리고 간지러웠다. 안쪽이 아플 정도로 부풀어 화끈거렸다. 아랫배에서 열이 나는 것 같다.
하지만 축 늘어져 있던 나는 점점 몸을 비틀었다. 좀처럼 여열이 삭지 않았다. 하반신에 간지러운 느낌이 고여 어떻게 해도 몸에 달라붙어 있는 기분이었다.
더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앞쪽도, 뒤쪽도 전부 뻐근하게 저렸다. 하지만 꿈속에서 아무리 물을 마셔도 계속 목이 마른 것처럼 아래가 답답하게 근질거렸다. 진동이 계속 퍼지는 것 같기도 했다. 피부 아래로 수상한 약이 쉼 없이 흐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물을 가지러 간 주경이는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두 다리를 세워 모으며 헐떡였지만 도저히 해소의 기미가 안 보였다. 전류를 흘려보내는 것처럼 몸이 간헐적으로 경련했다.
입에서 작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두 팔로 눈을 덮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액과 젤로 잔뜩 젖은 아래는 가만히 있는데도 질척질척하게 미끄러웠다.
“선생님……?”
물을 가지고 온 강주경이 협탁에 물병과 컵을 내려놓고 얼른 다가왔다. 침대에 얹어진 팔을 두 팔로 안자 그는 내 등 뒤로 손을 넣어 품으로 끌어당겼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왜 우시는……, 아파요? 죄송해요. 약이라도…….”
“흑, 그, 그게 아니라…….”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말하진 못해서 그냥 이상하다는 말만 계속 중얼거리자 그는 내게 입을 맞추고, 다리 사이로 내려갔다.
“으응…….”
반쯤 일어선 성기가 입 안으로 부드럽게 들어갔다. 거세게 빨거나 쾌감을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는 조심스러운 행위였다. 성감이 물이 끓어오르듯 조금씩 기포를 올리며 부풀었다.
조금 전까지 느끼던 위태로운 감각이 아니라 적당히 기분 좋은 자극이었다. 그가 붉게 부은 아래쪽까지 전부 느릿하게 핥아 준 뒤에야 갈 길을 못 찾고 휘돌던 감각이 스르르 가라앉았다. 나는 그제야 파도에서 벗어난 것처럼 제대로 몸을 늘어뜨렸다.
입가에 물 컵이 닿았다. 딱 마시기 좋을 정도로 시원한 물이었다. 내가 컵을 비우고 가슴에 기대자 주경이는 자신도 물 한 잔을 마신 뒤 나를 안고 일어났다. 아무리 차를 타고 간다고 해도 이대로 집에 갈 수 없을 상태였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반쯤 강주경의 허벅지에 앉은 채로 씻어야 했다. 역시 숨쉬기랑 병원 복도 걷기, 병원 계단 오르내리기 말고 다른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이런 식으로 나가떨어지는 게 꼭 오늘만의 일은 아니었다.
주경이가 침실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따뜻한 커피를 앞에 두고, 거실 소파에서 담요를 둘둘 감은 채 누워 있었다.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진 뒤였다. 잘 정돈된 정원의 정원등을 물끄러미 보며 어떻게 하면 누워서 커피를 마실 수 있을지 고민하는데 강주경이 거실로 돌아왔다.
“……선생님, 이건…….”
“으음.”
그의 손에 자그마한 분홍색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원래 큰 크기가 아니지만 강주경이 드니까 정말 조막만 하게 보였다.
“버리고 갈까요?”
주경이가 난감한 듯 물었다. 쓴 건 좋지만 끝나고 내가 힘들어한 게 신경 쓰였던 듯했다. 하지만 여기다 버리고 가면…….
“버리고 가면 청소하는 분들이 치우는 거 아니야?”
“……맞아요.”
“그, 그럼 가지고 가자.”
일단 가지고 가서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청소하러 왔더니 침대 시트와 이불이 바뀌어 있고 젤이며 로터까지 있으면 집주인이 와서 뭘 하고 갔는지 북이라도 치면서 외치는 꼴이었다. 집주인은 주경이고 그 사람들이야 내 얼굴도 모른다지만, 그래도 민망했다.
세탁한 시트와 이불을 벽장에 잘 정리까지 해 둔 뒤에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오후와 밤 사이의 애매한 시간에 걸쳐졌는지 차가 거의 막히지 않았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서 강주경이 가만히 나를 쳐다보았다. 무표정했지만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슬쩍 보였다. 안고 올라가도 되는지 물어보는 눈이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걸을 수 있어.”
“네…….”
아직 몽롱했지만 아까처럼 다리에 힘이 풀린 정도는 아니었다. 둘 다 저녁을 안 먹었기에 집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자마자 주방으로 향했다. 강주경은 먹고 들어가거나 적당한 걸 사 가자고 계속 말했지만 파는 음식이 안 당겨서 그냥 들어온 차였다.
고기와 야채를 꺼내서 양념하는 동안 주경이가 계속 뒤에서 서성거렸다. 약간 멍한 채로 설탕을 넣으려고 하는데 그가 깜짝 놀라서 통을 붙잡았다.
“선생님…….”
“으응?”
의아하게 그릇을 내려다보자 내가 넣으려고 한 게 설탕이 아니라 소금이었다. 아주 짭짤한 고기를 먹을 뻔했다.
“제가 할게요.”
“아냐…….”
생각은 기특했지만 뭐든 잘하는 강주경이 못하는 한 가지가 요리였다. 남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만드는데 이상하게 미묘한 맛이 났다. 가끔 엄청난 헛발질을 하기도 했다.
옆에서 내가 칼에 베이진 않는지 인덕션에 손을 데이진 않는지 초조하게 어슬렁거리던 강주경은 음식이 담긴 그릇을 식탁에 전부 내려놓고 나서야 안심하는 얼굴이었다.
“다음 주에도 나갈까?”
수저를 들며 묻자 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어디 가고 싶어?”
겨울부터 그럭저럭 가 볼 만한 곳은 다 갔던 것 같다. 휴일은 거의 집에서만 보냈었는데,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는 차를 타고 외출하니 생각보다 갈 곳이 많았다. 전에 가려다가 못 갔던 중앙박물관의 야경도 보고 왔다.
강주경은 수저도 들지 않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사람이 없는 곳이요.”
“으응?”
“전에 인천도 좋았고. 조용한 곳에 가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주경이는 표정 변화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내가 알아차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야구장도 그렇고 최근에는 꽤 사람이 많은 곳에만 갔다. 심지어 4월에는 남들 하는 것 한번 해 보자는 생각으로 윤중로에도 갔었다. 여기서 너무 사람이 많아 지치는 바람에 그 후로 그렇게까지 붐비는 곳은 안 가긴 했다.
“미안, 사람 많은 거 싫었어?”
하기야 집도 한적한 곳에 있고. 조용한 걸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여기저기 끌고 다닌 게 미안해져서 사과하자 주경이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렇게 싫어하지 않아요.”
“그래도…….”
“사람 많은 것 때문이 아니라.”
그럼? 별 뜻 없이 다음 말을 재촉하자 그는 시선을 약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사람들이…… 선생님 쳐다보는 게 싫어서요.”
저절로 눈이 둥글게 뜨였다. 농담인가 했더니 진심인 것 같았다. 사람들이 쳐다본 건 내가 아니라 너였는데, 그렇게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무슨 칭찬 경쟁도 아니고.
그래서 사람들이 강주경을 쳐다보는 게 좋았는지 묻는다면 나도 사실 좋진 않았다. 웃음이 나왔다.
“그럼 다음 휴일에는 집에만 있을까?”
내 말에 주경이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하, 진짜…….”
나는 몸을 일으켜서 식탁에 손을 짚고, 그의 뺨에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췄다.
“누가 이렇게 귀여우라고 했어?”
“…….”
내 말에 그는 얼굴이 조금 붉어져서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잠시 바라보았으나 마주 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뭐 해? 너도 해 줘야지.”
나는 내 입술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러자 내 곰 인형은 작게 웃으며 나에게 입을 맞췄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