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교수님, 이거 드세요.”
“고마워.”
뒷좌석의 교수님에게 커피를 건네고 다시 안전벨트를 맸다. 주경이는 사 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콘솔박스에 내려놓은 뒤 느리게 차를 출발시켰다. 차가 휴게소를 빠져나가 다시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주말 오전인데도 생각보다 막히진 않았다.
“아. 이 길 말고 저기서 좌회전하는 게 빨라.”
“네.”
세 시간 조금 안 걸려 대전의 추모원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보이는 회색의 큰 건물은 말끔하게 조경된 정원 너머로 있는데도 어둑어둑하게 보였다.
날씨가 흐려서인지도 모른다.
“저는 차 대 놓고 갈게요.”
주말이라서 찾아온 사람이 꽤 있는지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드문드문했다. 그래도 차 댈 곳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는데, 주경이가 그렇게 말하며 어중간한 곳에 차를 세웠다.
“……응.”
나도 교수님도 그 말을 못 알아들을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먼저 차에서 내려 건물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차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할머님은요?”
“기일 지나고 여행 가셨어. 베트남.”
꽃나무를 심어 놓은 정원은 아직 봄을 맞지 않아 색이 단조로웠다.
“와, 베트남. 부럽다.”
“잘됐지. 은아가 돈 모아서 보내 드린 거라고 좋아하시더라.”
“……네.”
교수님은 은재가 죽은 후로 줄곧 은재의 할머니를 챙겨 드리고 있었다. 여름까지만 해도 그분은 여행도, 좋은 옷도, 심지어 조금 괜찮은 식사조차도 전부 거절했었다. 내가 무슨 낯으로 그런 걸 하느냐고, 은재에게 미안해서 그럴 수 없다고.
걱정될 정도로 허름한 집에서 살던 할머니가 그나마 작지만 깔끔한 아파트로 이사한 건 은재의 자매들과 같이 살게 되면서였다.
은재가 죽고 나서 자매들, 은혜와 은아는 혼란을 겪었다. 학교 때문에 한국에 혼자 남았다고 하던 가족이 갑자기 죽었다고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은재의 부모님은 다른 아이들에게 은재가 어디가 아픈지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았고, 처음에는 자살했다는 사실도 숨겼다.
은재가 입원했던 그 시기에 은아는 고등학교 3학년으로 자기 일만 생각하기에도 벅찼고, 은혜는 사춘기인 데다 너무 어렸다. 은재의 장례식에서는 아이들을 되도록 장례식장에 있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사람의 입을 어떻게 막겠는가. 아이들이 은재의 자살을 알게 된 건 순식간이었다.
가족의 자살이 아직 미숙한 아이들에게 큰 충격을 준 건 당연했다. 아이들은 병원에 다니고 싶어 했지만,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았다. 은재가 그렇게 되었는데도 정신병원에 가겠다고 말하느냐, 정신과의 약이 자살을 부추기는 거다, 그런 말을 하면서 울었다고 한다.
딸의 죽음이 슬펐던 건지, 딸을 잃은 자신들이 불쌍했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 복잡한 심리를 말 몇 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까. 슬픔을 느끼지 않았을 리는 없다. 하지만 자신들이 그려야 할 완벽한 그림에서 부품 하나가 도망쳤다, 그런 생각도 분명 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런 부모님의 곁을 떠나서 외할머니에게 왔고, 대전에서 한동안 병원에 다녔다. 그런 아이들을 돌보며 좋은 건 모두 마다하던 할머니가 손녀가 돈을 모아 보내 준 여행을 가셨다고 한다.
교수님의 말대로 잘된 일이었다.
추모원 안쪽에도 꽤 사람이 많았다. 울고 있는 사람도 있고, 차분하게 서 있는 사람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작게 웃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은,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 앞에서도 언제까지고 눈물만 흘리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은재의 봉안묘에는 새로 만든 듯한 리스가 놓여 있었다.
“이거 조화가 아니네. 말린 것도 아니고.”
교수님이 신기하다는 듯 작은 수국과 장미, 안개꽃으로 된 리스를 들여다보았다.
“요즘 이런 걸로 많이 해 둔대요.”
특수 처리를 해서 오랫동안 시들지 않는다는 꽃은 생화처럼 보였다. 리스 가운데에는 은재가 어릴 때 외할머니와 언니, 동생과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작년까지는 은재의 영정사진이었는데 어느새 바꿔 놓은 모양이다.
“오늘 비 올 것 같은데. 실내에 있어서 다행이지.”
교수님은 여기에 올 때마다 비슷한 말을 한다. 날씨가 많이 추워서, 더워서, 안개가 끼어서, 비나 눈이 와서. 요즘은 수목장이나 실외 봉안묘도 많이 한다고 하는데 굳이 실내에 안치한 것은 할머니의 선택이었다. 따뜻한 실내에 있게 해 주고 싶다고.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은재가 추운 바깥에 있는 게 아니어서 다행이다. 교수님은 제법 넓게 만들어진 봉안묘 공간에 가지고 온 작은 꽃다발과 은재가 좋아하던 쿠키를 놓았다. 꽃이 시들 때쯤에 관리인들이 정리해 줄 것이다.
나는 입구 쪽을 보았다. 관리인과 이야기하는 가족 몇 사람이 보일 뿐이다. 미리 등록해 둔 사람이나, 등록한 사람의 동행만 들어올 수 있으니 주경이가 오려면 내게 전화를 해야 할 것이다.
전화나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교수님.”
“응?”
“저는…… 주경이한테 가 볼게요.”
“그래. 난 은재랑 이야기 좀 해야겠다.”
그리고 다른 말은 없었다. 토요일에 주경이가 같이 가도 되는지 물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너무 많은 사람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사는 모양이다.
하늘은 무척 흐렸다. 공기가 축축하고 젖은 흙냄새가 났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다. 정원을 지나 주차장으로 가자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강주경의 차가 보였고, 그는 차에 비스듬히 기댄 채 서 있었다.
습해서인지, 그렇게 춥지 않은데도 숨을 내쉴 때마다 흰 입김이 나왔다. 나는 검은 코트를 입고 선 그에게 다가갔다.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그는 그대로 언제까지고 거기서 기다릴 것만 같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제야 주경이는 고개를 돌렸다.
“왜 안 들어오고.”
“……조금 이따 들어가려고 했어요.”
“안 추우면 좀 걸을래?”
“네.”
서울에서 벗어난 지역에 있어서인지 추모원은 꽤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었다. 외부 봉안묘가 있는 공간을 제외하고도 긴 산책로가 있을 정도로. 겨울을 견디듯이 짙은 색의 작은 잎사귀를 단 관목 사이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대화가 오가지 않는데도 어색한 분위기는 없었다.
“주경아, 나는…….”
그는 잠자코 내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손을 못 본 척한 적이 있어.”
토요일에, 교수님이랑 셋이 잠깐 나가지 않을래. 그렇게 물었을 때 그는 조용히 나를 보며 그러겠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목적지가 추모원이라고 말했을 때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누가 있는지, 왜 가는지도 묻지 않고.
“나랑 교수님이 담당하던 환자였고…… 우리 둘한테만 연락이 왔었어. 만약에 둘 중 한 명이라도 전화를 받았다면, 어쩌면 여기에 올 일은 없었을지도 몰라.”
은재의 이야기를 하는 건 조심스러웠다. 어떻게 말해도 나는 나를 불쌍하게 여기고 말 것 같았다. 무슨 말을 골라도 자기연민이 끈질기게 따라왔다. 은재는 이미 마지막 끈을 놓쳤는데, 남아 있는 내가 그에 대해 변명하지 않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할 수 있을까.
언젠가 병원의 다른 직원이 말했었다. 그 일이 나와 교수님에게 큰 상처가 된 것 같다고. 상처라는 말은 잘못되었다. 은재는 우리에게 상처도 실수도 아니었다. 잘못일 뿐이다.
언제까지고 매달려 있어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지워 버릴 수도 없는 일.
“원래 우리는 환자에게 연락처를 알려 주게 되어 있어. 그 사람이 정말 위험할 때,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그런데 나는 왜 그날 전화를 다시 걸지 않았을까. 곧바로 다시 걸었으면, 그럼 연결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휴대폰을 강물에 떨어뜨리기 전 그 짧은 순간에라도,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면 은재는 전화를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이유……, 글쎄. 그때, 환자랑 거리가 너무 가깝다고 주의를 들었어. 나도 교수님도.”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고 다시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말 규칙이나, 주위의 우려나, 그런 것 때문에 연락하지 않았던 걸까.
“그건…… 못 받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요.”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은재를 특별하게 취급한 건 우리가 먼저였다.
우리는 멋대로 은재에게 잘해 주었고, 은재가 그에 반응해 다가오자 물러섰다. 가까이 오라고 말해 놓고 지나치게 다가왔다면서 밀어낸 것이다.
애정을 주려 하다가 다시 빼앗은 게, 은재의 가족이 한 일과 뭐가 다를까. 도와달라고 내민 손을 우리끼리 ‘이러면 안 된다’라고 말하며 외면한 것이.
“먼저 손을 내밀면서 가까이 오라고 해 놓고, 정작 환자가 그 손을 잡은 후에 우리가 정해 놓은 선을 넘어왔다고 해서 밀어냈지. 심지어 환자는 알지도 못하던 선이었는데.”
“…….”
“나는, 정말 내가…… 규칙이나, 주위의 우려나, 그런 것 때문에 다시 연락하지 않았던 걸까.”
어쩌면 나는 그때 치료자에게 연애 감정을 보이는 어린 환자가 부담스러웠던 건 아닐까. 그래서 아무런 말도 없이 도망쳐 버린 게 아닐까. 거기까지 말하자 가슴은 납이 들어찬 것처럼 무거워졌다.
후회는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게 다야.”
그가 걸음을 멈췄다.
공기는 조금 전보다 더 추웠다.
상복을 입은 가족이 우리 옆을 지나갔다. 죽은 가족에 대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선생님 잘못이 아니라고 하면, 싫어하시겠죠.”
“……응.”
그런 말을 원하지 않는다. 주위에서 답답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이제 그만 털어 버리라고 해도, 나는 내 잘못을 생각 속에 묻어 둘 뿐 내려놓고 싶진 않았다. 은재의 죽음을 예전만큼 고통으로 느끼지 않아도 잊지는 않는 것처럼.
“언제든지 말해 주세요.”
“…….”
“선생님이 그 일이 생각날 때, 언제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들을게요.”
누구도 우리에게 잘못을 묻지 않았다.
한 사람의 마지막 비명을 외면했지만 어떤 처벌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도 교수님도 죽는 날까지 완전히 잊어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응.”
그에게 손을 뻗었다.
“손잡을래?”
“……네.”
그렇게까지 추운 날씨가 아닌데도 내 손은 얼음이라도 만진 것처럼 차가워져 있었다. 손끝에 조심스레 손을 얹었던 강주경은 이내 힘주어 그것을 끌어당겼다. 유독 따뜻하게 느껴졌다.
* * *
“강주경 씨.”
“…….”
강주경은 고개를 돌렸다. 주차장으로 돌아왔을 때 마침 서 교수가 나오고 있었고, 한지원은 따뜻한 음료를 사 오겠다면서 가 버렸다. 자신이 가겠다고 해도 차에서 기다리라는 말만 하면서.
“와, 진짜 지원이 앞 아니면 차갑네.”
서영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다른 게 아니고. 강주경 씨가 지원이 잘 챙겨 주면 좋겠다고. 음…… 내가 이런 말 하면 싫겠지만.”
“싫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서영우의 행동, 태도, 모든 게.
“선생님은 그때 아직 수련생이었는데요.”
“……그랬지.”
“서 교수님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의사였고요.”
그는 조용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주경은 서영우가 싫었다. 한지원은 그토록 피하려 하는 자기연민을 마음껏 가지고 있는 모습도, 이기적인 태도도.
“선생님의 잘못도 있었던 건 압니다. 아니라고 하면 선생님은 더 싫어할 거고. 하지만 교수님은…… 당신보다 훨씬 어린 수련생에게 똑같은 죄책감을 지게 하셨네요.”
“…….”
“선생님도 당신만큼 힘들었는데, 당신은 힘들어하는 걸 옆에서 고스란히 받아 주는 사람이 있었죠.”
강주경의 말에 서영우는 한마디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만 말하라는 말도 없었다. 스스로도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화가 나는 건.
“한지원에게는 없었는데요.”
이 부분이었다.
서영우는 자기 마음대로 한지원을 끌고 가서 자신의 괴로움을 토해 냈다. 그를 쉽게 공범으로 만들고 힘든 것은 전부 한지원에게 전가하고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한 일이라곤 여섯 살이나 어린 사람에게 매달려 괴롭다고 호소한 것뿐이다.
그것을 한지원은 전부 받아 주었다. 정작 자신의 고통은 혼자서 감당하면서. 그 스스로는 과거에 있었던 일을 고통이나 상처라고 생각하려 하지 않는 듯했지만, 강주경이 보기에 그것은 상처였다. 누구에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상처.
“그런데 교수님이 저한테 한지원을 잘 챙겨 주라고 말씀하시다니요.”
당신이 뭐라고.
여기에 오기 전까지, 한지원이 숨기던 과거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단순히 그에게 지나치게 가까이 구는 사람 같아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몰라도 한지원을 자꾸 불러내 귀찮게 구는 것도. 그런데 그 이유가 이런 것이었을 줄은 몰랐다.
서영우가 객관적으로 악인이 아니며, 제법 상식적인 의사이고 병원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환자와 아래 직원들을 생각한다는 걸 알고 있다. 아버지가 그를 자주 칭찬할 정도니까.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강주경의 말을 듣고 나서도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화가 치밀었다. 전부 알면서,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잘 알면서도 한지원을 휘둘렀다는 게.
“……지원이는 이 시기가 되면 나를 항상 환자로 대하거든.”
“그래서요?”
“뭐…… 혹시나. 이것 때문에 지원이에 대해서 오해하면 너무 미안해지니까.”
“오해 안 합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아들었다. 강주경은 늘 한지원을 지켜보았고, 그가 ‘환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또 환자들은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도 어느 정도 안다. 환자에게는 자기 자신을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서영우가 이 시기 우울증 비슷한 상태에 빠진다는 건 한지원이나 그 주위 사람들의 행동으로 어느 정도 짐작했다.
하지만 강주경은 치료자가 아니었다. 이전에 한지원이 스토커에게 시달렸을 때, 그 스토커가 환자라는 이유로 때려선 안 된다고 말했을 때처럼 지금 역시 서영우에게 어떤 이해도 주고 싶지 않을 뿐이다.
“말할수록 더 엉망이네. 미안해.”
“왜 저한테 사과하십니까.”
“그래.”
서영우는 그렇게 대답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저게 이 상황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답답함 때문으로 보이니 그것 하나는 다행이었다.
“강 회장님은 잘 계시고?”
강주경은 그 말에 다시 서영우를 노려보았다.
“한 선생한테 말 안 해.”
“……선생님한테 연락하지 마십시오.”
“이제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믿기는 어려웠다. 이 시기만 되면 우울증에 빠지는 저 남자가 또 자제를 잃고 한지원을 불러낼 수도 있는 일이다. 이전까지는 사정을 모르기에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서영우가 한지원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한다는 걸 안 이상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흐리던 하늘에 희끗희끗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멀리서 한지원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강주경은 곧바로 굳어진 표정을 풀었다.
* * *
올해는 수련생이 2명 들어왔다. 이정주의 자리까지 포함해서. 자연스럽게 할 일이 늘어났다. 환자와 실제로 만난 경험이 적은 수련생들은 뜻하지 않은 실수를 많이 한다. 애를 울리거나, 나이 든 환자에게 호통을 듣거나. 사소한 일도 전부 물어봐야 하기에 이에 대답해 주는 것만으로 시간이 후다닥 흘러간다.
“한 선생, 나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돼? 혼자 있기 심심한데…….”
“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서호 선배가 아쉬운 듯 심리실을 서성거렸다. 다행히도 아기사슴 같은 수련생들은 각자 할 일을 하러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민 선생님이 해외로 나가게 되면서 선배가 슈퍼바이저로 올라갔고, 내가 그 보조가 되었고, 유화영은 전문가로 들어왔다. 변화가 많은 듯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지셔야죠. 어차피 신입 둘이나 되니까 바쁘실걸요.”
“으…… 으으…….”
내 말에 선배는 머리를 감싸 쥐며 신음했다. 승진 첫해에 신입이 두 명이라니 선배에게도 재난이었다. 뭐, 재난을 말하자면 작년부터 지금까지의 내가 제일 엄청났겠지만. 그래도 둘 다 신입인 것치고는 평온한 편이었다.
“얼른요. 사무실이랑 친해지세요. 수련생들 들어왔다가 경기하면 어떻게 해요.”
“경기까지 할까?”
“피 말라서 죽지 않을까요?”
도망이라도 치면 큰일이었다. 지금까지 공부한 시간이 있으니 수련까지 와서 탈주하는 사람이야 드물고, 우리 병원에도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만큼(이정주를 제외하고는) 아예 없다고 봐야 했지만 슈퍼바이저가 내내 같은 사무실에 있으면 점심에 흰죽을 먹어도 얹힐 것이다.
“와, 선생님. 징계 공지 떴어요.”
“오.”
나와 선배가 동시에 유화영의 뒤로 가서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이정주의 전문가 수련 기간을 무효화하고, 향후 회원 자격을 전부 정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앞으로 이 분야로는 발도 들이지 못한다는 의미다. 외과 과장의 해고 공지가 그랬던 것처럼 윤리규정 위반 조항이 길게 붙어 있었다.
“아, 이정주 타고 다니던 차 있잖아요. 그거 사채 써서 산 거래요. 저번에 심리실로 이정주 찾는 전화 왔었어요. 연체됐다고. 이름도 처음 들어 보는 곳이어서 보이스 피싱인 줄 알았잖아요.”
이정주는 검은색 아우디를 타고 다녔다. 수련생의 월급으로 살 수 있는 차는 아니었지만 평소 차림새 같은 걸 생각하면 그냥 집이 잘사나 보다, 했는데 그게 사실은 빚을 내서…….
“이야. 사채로 차 사는 빡대가리가 진짜로 있구나.”
선배의 목소리는 거의 감탄에 가까웠다. 나도 놀라웠다. 그런 식으로 차량 구매자와 판매자를 이어 주면서 고금리 대출을 받아 주는 업자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걸 쓰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그런 인간이 내 주위에도 존재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차만 산 게 아니고, 평소에 입고 다니던 옷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거 다. 원금만 억대라던데요. 그거 연대보증이 이심석이에요.”
잠시 이심석이 누군지 생각해야 했다. 외과 과장 이름이었다. 연대보증이라니. 공포소설 소재 같은 단어다.
“유 선생…… 그런 걸 어디서 들었어?”
“하하, 전에 민아랑 술 마시는데, 민아가 외과 간호사들이랑도 친해서 몇 명 같이 갔거든요. 외과 안에서는 모르는 사람 거의 없어요. 이정주가 여기서 미친 짓 한 것도 거기에 소문 다 났을걸요. 그리고 이심석은 이혼했대요. 바람도 피워 가지고 아내분이 가지고 나가신 재산이 꽤 된다던데요.”
부인이 어떤 분인지 몰라도 예고된 지옥에서 적절하게 탈출하신 것 같다. 유화영은 매우 즐거운 기색이었다. 원래 나쁜 사람이 패가망신한 이야기는 듣기에 좋은 법이다.
이정주는 학회에선 제명되었고, 그 성격에 다른 회사에 취직해서 잘 다닐 것 같지도 않고, 사채를 썼다고 하고, 병원에서 고소당할 것이다. 환자 본인이나 가족 중에서도 고소할 사람이 있을 거고.
그리고 부모님은 이혼. 걔가 그렇게 믿고 날뛰던 아버지는 이제 대학병원 교수도 아닌 데다 이쪽도 병원에서 고소가 걸렸으니 개인 병원을 차리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원금만 억대라는 사채가 연체까지 되었으면 지금도 실시간으로 이자가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개인파산이야 정상적인 업체에나 해당되는 이야기고 사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빚을 대신 짊어져 줄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어머니가 대신 갚아 주진 않는대?”
“절대 아닐걸요. 그분 가끔 외과에 오셨고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지내던 간호사도 있었는데, 아들이랑 남편이 혹시 물어봐도 연락처나 사는 곳 모른다고 하라고 했대요.”
“아…….”
주경이가 이정주를 이 땅에서 없애 버리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아버지랑 손잡고 알아서 같이 망했으니까.
“그런데 이정주는 애초에 여기 어떻게 들어온 거예요? 이심석이 꽂아 줬나?”
그러게. 나도 같은 생각으로 선배를 쳐다보았다. 여기에 들어오려고 하는 똑똑하고 일 잘하고 멘탈 튼튼하고 착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정주 같은 게 끼어들었지?
“뭐…… 그렇지. 우리 과장한테 질척거려서. 민 선생님 그때 스트레스 때문에 원형탈모 생길 뻔했잖아.”
저런. 한국을 떠나간 민 선생님이 가여워지는 대목이었다. 수많은 인재 사이에서 머저리를 골라야 했다니…….
그때 심리실 전화가 울렸다.
“네, 심리팀 한지원입니다.”
-서, 선생님. 죄송합니다. 김현주입니다.
“네. 무슨 일이에요?”
-그게, 환자분이…… 검사를 거부하셔서…….
-야! 씨발, 책임자 나오라고 해! 이따위 종이 쪼가리로 사람을 미친놈 취급 해? 어? 어디서 감히 나한테…….
나는 무심코 수화기를 귀에서 뗐다. 신입인 김현주였다. 자세한 설명이 없었지만 상황은 바로 알 수 있었다. 통화하기 위해서 검사실 밖으로 나왔을 텐데, 문을 넘어서도 환자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휴일 아침 윗집에서 나는 드릴 소리만큼 엄청났다.
“제가 갈게요. 검사실 들어가지 말고 계세요.”
-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서둘러 검사실로 올라갔다. 환자는 아직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 줄 알아?! 법 없어도 살 사람이야, 어? 어디서 말 몇 마디로 사람을…… 일단 누구인지는 확실히 안다. 이름도 알고 나이도 알고 주소도 알고 가족이랑 인사도 했는데, 이 정도면 많이 알지.
검사실 문은 열려 있었고 그 앞에 시큐리티 한 명과 남자 조무사 한 명이 서서 상황을 살피는 중이었다. 그 옆에서 조막만 한 체구의 수련생이 안절부절못하고 검사실 안쪽과 복도를 번갈아 가며 보고 있다가, 다시 복도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서, 선생님!”
“괜찮아요. 여기 있어요. 강석호 씨?”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는 걸 가볍게 막고 검사실 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잔뜩 화가 난 환자가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넌 또 뭐야?!”
“잠깐 이야기 좀 할까 해서요. 마실 것 좀 드릴까요?”
복도 쪽으로 손짓해서 김현주를 안으로 불러들인 뒤 문을 닫았다. 환자는 내가 지금 음료수나 마시게 생겼냐고 하며 또 버럭 소리쳤다.
“일단 설명부터 드리자면……, 강석호 씨를 환자라고 생각해서 검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채혈은 하고 오셨죠? 그것처럼 형식적으로 필요해서요. 정신과라고 해서 환자분만 오시는 건 아니에요. 스트레스가 심하면 신체적으로 불편한 부분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런 부분을 살펴보기 위해서 권유 드리고 있어요.”
“…….”
“지금 위장이 불편하시다고 들었는데, 맞으신가요?”
“그, 그런데…….”
“그러면 스트레스성이랑 염증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어요. 원인에 따라서 복용하셔야 할 약이 달라지는데 혹시나 잘못 처방되면 강석호 씨에게 안 좋은 일이잖아요.”
건강을 병적으로 염려하는 환자였다. 약을 잘못 먹어서 증상이 심해진다고 생각하면 불안감이 생길 것이다.
“스트레스는 굉장히 다방면에서 확인해야 해요. 저희가 설명이 부족해서 오해를 하시게 한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검사 내용이 많은 이유는, 저희가…… 강석호 씨가 굉장히 지능이 높았다고 들었는데, 맞으시죠?”
“그렇긴…… 하죠…….”
가족들이 ‘우리 아들이 정말 똑똑하다’라고 했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검사하는 김에 고지능도 같이 확인하고 싶어서요.”
“…….”
마지막으로 의자를 빼 주자 강석호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럼 선생님, 부탁드려요.”
“앗…… 네, 알겠습니다!”
김현주가 후다닥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검사실 문 앞에 서서 잠시 안쪽의 상황을 들어 보았지만 더 문제가 생길 것 같진 않았다.
다음 검사까지 2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원래 서류 정리를 조금 해 놓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제 와서 심리실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에는 시간이 애매했다.
커피나 한 잔 사서 밖에서 마시고 올라오면 될 것 같다. 로비 카페로 향했으나 타이밍을 잘못 맞췄는지 사람이 북적거렸다. 주문하고 받는 데만 십 분이 넘게 걸릴 것 같다. 결국 발을 돌려서 산책로 안쪽의 작은 카페로 향했다.
한 손에 종이컵을 들고 천천히 산책로를 걷던 나는 보호사와 함께 나온 제사장님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폐쇄병동 산책 시간이었다. 그는 벤치도 아니고 길과 화단을 구분 짓는 좁은 턱 위에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니, 이게 누군가.”
가까이 다가가자 조경철은 매우 반가운 듯이 나를 맞아 주었다.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늘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화단 앞의 시멘트로 된 작은 단도 그다지 차갑지 않았다.
“요즘은 말이야. 신께서 나를 특별하게 사랑하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네.”
“그래요?”
전능감에서 벗어나는 건 망상 환자에게 있어 호전의 징조였다. 물끄러미 조경철을 쳐다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신께서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시지. 그런데, 내가 신의 뜻을 듣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과 달라지는 게 신이 바라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어.”
“신은 그런 분이시군요.”
“그럼. 당연하지. 신은 고귀하고 전능하시다네. 나는 평생 신을 섬길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어. 지위와 존경이 무슨 소용이겠나. 내가 신을 모실 수만 있으면 된 거지.”
“……네.”
“그래도 축복은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네. 어디 보자, 오늘은…….”
“여기요.”
나는 얼른 앞주머니에 꽂아 두고 있던 빨간 볼펜을 꺼냈다. 무사히 축복을 받고, 인사를 하고 일어났다. 다음 면담 날짜가 언제였더라. 서서히 호전을 보이는 건지 그냥 그런 생각이 든 건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면담에서 더 이야기를 해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잠깐 나눈 대화가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검사 한 건을 더 끝내고 뇌파실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주려고 스티커를 케이스에 담아서 가지고 다니는데, 아무래도 아침에 들렀을 때 거기에 흘리고 온 듯했다.
오후에 뇌파 검사가 한 건도 없었기에 불도 꺼진 채였다. 안 그래도 구석에 자리한 데다 옆에 있는 건 임시 검사실, 보조 회의실 같은 방이어서 검사가 없으면 아무도 안 온다. 솔직히 약간 으스스했다.
바닥을 보면 팔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뭔가가 나온다느니, 그런 소문도 돌았었는데 ‘그런데 뇌파실에서 나오는 거면…… 머리에 검사 기구 달고 있지 않을까?’라는 말에 불식되었다. 검사 기구를 달고 있다면 아무래도 무서운 비주얼은 나오지 않는다.
불을 켜고 안으로 들어가자 역시 침대 아래에 플라스틱 케이스가 떨어져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든 건 케이스를 집어 들고, 한 손을 침대에 짚은 채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조용한 곳으로 가서, 가운만 걷고 선생님한테──.’
“아악!”
나는 두 손으로 침대를 내려치며 비명을 질렀다. 하필이면 지금 그 말이 생각날 게 뭐란 말인가.
사람이 아무도 안 오는, 혹시 복도에서 누가 다가오면 바로 알 수 있는 으슥한 곳. 침대가 있는 데다 세면대와 비누, 타월까지 갖춰져 있고…….
“악! 아악!”
다시 비명을 지르고 고개를 마구 저었다. 아니야. 이건 아니다. 병원에서…… 아냐, 말도 안 돼. 진짜로 아냐. 한참 머리를 쥐어뜯다가 겨우 진정하고 똑바로 섰다. 여기서 나가야겠다.
하지만 나가려고 문 쪽으로 돌아선 순간 눈에 길쭉한 통이 들어왔다. 검사할 때 쓰는 투명한…… 젤…….
“아악!”
하필 이렇게 모든 게 갖춰져 있을 게 뭐야? 나는 흉측한 것이라도 본 듯이 비명을 지르며 뇌파실에서 뛰쳐나왔다. 여기에 안 올 수는 없는데 올 때마다 생각이 날 것 같다. 빠른 걸음으로 외래 병동으로 나오는데 윤민아가 나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며 멈춰 섰다.
“선생님, 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요? 어디 아프세요?”
“윽. 아, 아니요. 안 아파요.”
“열 있으신, 엄마야!”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데 누군가 팔을 잡아채는 바람에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순간 윤민아라고 생각해서 언제부터 이렇게 힘이 세진 걸까 생각하고 말았다. 간신히 균형을 잡고 고개를 들자 험악한 얼굴의 남자가 서 있었다.
“야! 이 사기꾼 새끼야!”
“……?”
외래 병동의 모든 시선이 나와 눈앞의 남자에게 쏠렸다. 내 인상은 저절로 구겨졌다. 일주일 전에 검사를 하러 왔던 남자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폭행으로 실형이 선고된 사람이다. 병원을 찾아온 건 마지막 발악이었다. 심신미약으로 형을 줄이거나 집행유예로 끌고 가려고 했던.
당연히 검사 결과에는 아무런 병도 나타나지 않았다. 검사에 병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온갖 수작을 다 부렸지만, 의도적으로 병증을 가장한다고 해도 어차피 다 걸리게 되어 있다.
“내가 감정 조절이 안 된다니까? 그때 그 새끼를 때리라고 하는 목소리가 분명히 있었다고. 그런데 어떻게 아무 문제도 없다고 나와?!”
아무 문제도 없으니까 없다고 나오지. 팔을 뿌리치려 했으나 주제에 힘만 세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남자에게 떠밀렸던 윤민아가 금세 정신을 차렸는지 급하게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하, 의사라는 새끼가 환자를 그딴 눈으로 쳐다봐?”
의사 아닌데. 환자도 아니고. 다시 팔을 빼내려 했을 때 손아귀 힘이 풀어졌다. 언제 나타났는지 강주경이 그 남자의 손목을 붙든 채 서 있었다. 윤민아가 보안실과 통화를 하기도 전이었다.
“환자예요?”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는 남자를 거칠게 뒤로 끌어당겼다. 남자는 병원 직원이 사람을 팬다고 펄펄 뛰다가, 이어서 뛰어온 시큐리티 둘에게 붙잡혀 끌려갔다.
겨우 소란이 잠잠해졌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불안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대체로 걱정하는 눈길이었다. 사실 병원에는 저렇게 조용하고 착한 환자들이 더 많다. 요즘 내가 마가 끼어서 그렇지. 선배가 계속 굿을 권유하는 게 다 이유가 있다.
“괜찮으세요?”
간호사들이 우르르 다가와서 물었다.
“아무렇지도 않아요. 가 볼게요.”
계속 여기에 있을 순 없었다. 내가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하자 강주경은 당연하다는 듯 따라왔다. 사람이 많은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내려오자마자 그가 입을 열었다.
“선생님, 팔…….”
“아…….”
붙잡혔던 팔뚝이 욱신거렸다. 소매를 걷어 확인하니 검붉게 내출혈이 올라온 게 아무래도 멍이 들 것 같았다. 그의 미간에 순식간에 주름이 잡혔다.
“외과에…….”
“멍 든 것 가지고 무슨.”
“더 다친 걸지도 모르잖아요.”
“아냐…… 그렇게까지 유리 몸은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팔 좀 잡혔다고 뼈가 부러지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주경이는 걱정하는 기색으로 심리실까지 나를 따라왔다.
“환자 보고 오시는 길이에요?”
“아니, 뇌파실에 두고 온 게 있어서 가지러 갔다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지워졌던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하필이면 그런 공간이 병원 안에 있을 게 뭐지? 괜히 주경이의 팔을 툭 쳤다.
“뇌파실 갔었는데, 거기서 너 때문에, 으, 몰라.”
“저 때문에요? 그 남자는 처음 보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앗. 아냐. 그런 뜻이 아니라.”
또 말을 이상하게 해 버렸다. 그게 아니라, 하고 말을 이으려 했지만 얼굴이 확 달아오를 뿐이었다. 입을 어중간하게 벌린 채 새빨개진 나를 보며 주경이는 더 걱정하는 기색이었다.
“그, 그게 아니라. 거기 사람도 없고, 그, 네가 전에 했던 말, 떠올라서…….”
민망한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 강주경은 의아한 듯 눈을 둥글게 떴으나, 곧 날카로운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병원에서는, 선생님이 싫으면 아무것도 안 할게요.”
싫다고 안 하면 하겠다는 뜻이구나. 달아오른 얼굴이 가라앉을 줄 몰랐다. 심리실에 도착해서 주경이를 돌려보내고 자리에 앉아 손으로 한참 부채질을 해야 했다. 낯 뜨거운 상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곤란했다.
겨우 마음을 다잡고 모니터를 켜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놀라서 의자에서 약간 튀어 올랐다. 눈을 엄청나게 깜빡이며 출입문 쪽을 보았다. 내가 수상해 보이지 않을지 걱정이었다.
“안녕하세요.”
임현아 교수님이었다. 마주 인사하자 교수님은 심리실 안을 슬쩍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도 안 계시네. 윤 선생님 혹시 어디 갔는지 아세요?”
“아니요. 사무실에 없나요?”
선배랑 친해서인지, 교수님이 특이한 건지 보통 전화로 우리 중 누군가를 불러들여서 할 이야기를 임 교수님은 주로 찾아와서 하는 편이었다. 다른 스케줄이 있는 시간은 아닌데 선배는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이다.
“그렇구나. 어차피 한 선생님한테도 말씀드려야 하니까…… 좀 중요한 검사가 있어서요.”
“중요한 검사요?”
“네. 으음, 올해 8살, 6살 된 아동들이에요. 형사 사건 피해자고요. 이것 때문에 윤 선생님이랑 이야기 좀 하려고 했는데, 엇갈렸나 봐요.”
“형사 사건이요? 아동이…….”
임 교수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납치 미수요. 충격을 많이 받은 상태예요.”
확실히 걱정을 할 만했다. 사건 경위 같은 것에 대해서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있을 때 교수님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들어왔다. 선배가 사무실로 돌아온 듯했다.
“윤 선생님이랑 이야기하고, 자세한 것 정리해서 전달할게요.”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이 돌아간 뒤 나는 다시 의자에 털썩 앉았다. 납치, 게다가 여섯 살과 여덟 살. 충격을 받은 상태라고 하니 후유증이 안 남게 하려면 치료가 꽤 오래 필요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주경이도 어릴 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때 겨우 열 살이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지만 놀랐고 무서웠겠지. 그래도 동생도 그렇고 지금은 괜찮다는 것 같아서 다행…….
‘……응?’
뭐지. 갑자기 뭔가가 떠오를 듯 말 듯 했다. 열 살과 여섯 살, 남자애랑 여자애, 납치 미수…….
“……아!”
나는 놀라서 고개를 퍼뜩 들었다.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확실히 중학교 1학년 때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다. 10년이 넘게 지났고, 그 무렵 워낙 이 일 저 일에 참견을 하고 다녀서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어떻게 이렇게 전혀 기억을 못 했지?
어쩐지, 주경이가 그때 이야기를 할 때 열 살인 강주경의 모습이 지나치게 선명히 떠오른다 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실제로 봤으니까.
“아…….”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급하게 휴대폰을 찾아서 들었다.
-네, 선생님.
“주경아? 지금 어디에 있어?”
-근처인데…… 무슨 일 있으세요?
“근처, 어디? 잠깐만 봐.”
-네?
아무튼 빨리 와 보라는 말만 하면서 후다닥 복도로 나갔다. 계단 근처까지 나가자 저쪽에서 주경이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왜 그러세요.”
일단 팔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산책로로 나가는 동안 그는 의아한 기색이었지만 자세히 캐묻지 않았다. 나는 산책로 구석의, 인기척이 없는 곳까지 가서야 돌아섰다.
“선생님…….”
“네가 그때 말한 그 중학생, 그거 나였어?”
“…….”
잠시 대답이 없던 그가 작게 웃었다. 긍정이었다.
“맞아요. 기억 못하실 줄 알았는데.”
“뭐야…… 말하지 그랬어.”
내 앞에서 이야기를 했다는 건 이미 그게 나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서 서운하거나 속상하지 않았을까.
“미안해.”
“저한테 아무것도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 말에 그를 올려다보자 그의 눈이 조금 더 휘어졌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내 물음에 주경이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5년 전에 봤을 때요.”
“정말?”
“죄송해요. 거짓말해서.”
거짓말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눈을 깜빡이자 그가 말을 이었다.
“그때, 5년 전에 본 게 처음이라고 했잖아요.”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말하지 그랬어…….”
거짓말이라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고. 그냥, 내가 기억을 못하면 기억해 달라고 말하지. 지금 괜찮다니 다행이라는 말로 그냥 넘겨 버렸는데.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끙끙거리자 주경이는 주변을 한 번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내 뺨에 손을 얹었다.
“제가 선생님한테 거짓말했는데, 그건 정말 괜찮은가요?”
“응? 응.”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짙은 눈에 천천히 웃음이 담겼다.
“선생님한테는 지나간 일이잖아요. 상관없어요.”
“지나간 일 아니야.”
나는 뺨에 얹어진 그의 손을 잡았다.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 안 해. 그리고 그것 때문에 5년 전에 날 보게 됐던 거 아니야?”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지나간 일이 돼?”
그러자 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 짧은 침묵에 내가 먼저 입을 열려고 했을 때, 몸이 앞으로 확 끌어당겨졌다. 순식간에 주변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푹 안겼다.
“잠깐만, 주경아, 너무 세게 안았…….”
몸을 달싹이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두 팔이 등을 너무 꽉 감싸 안고 있어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풀어 달라고 버둥거렸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 이제 그 일이 선생님에게 의미 있는 일이 됐나요?”
낮은 목소리였다. 밀착하고 있어서인지 몸에 직접 울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버둥거리던 것을 멈췄다.
“뭐야.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 그냥, 시간이 오래 지나서 조금 흐려진 거야. 원래 사람은 그렇잖아. 잊어버리기도 하고.”
“저는 아직 선명해요. 그때 제가 느낀 감정까지. 뒷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계속, 늘 생각했어요. 그리고 5년 전에 다시 만났을 때는…….”
말이 잠시 끊겼다가, 내가 고개를 들려 하자 곧 이어졌다.
“저는 선생님의 모든 게 다 좋아요. 과거에 잘못을 했다는 것, 그걸 숨기려고 한 것도. 결국 제게 이야기해 준 것까지 전부. 어떤 부분도 빠짐없이 다 사랑해요.”
꾸물꾸물 고개를 들려고 하는데 손이 올라와 뒤통수를 꾹 눌렀다. 자기 표정을 못 보게 하려는 것처럼.
“선생님이랑 다시 만났을 때부터…… 정말 선생님이 상상도 못 하실 정도로, 집요하고 지저분하게 선생님을 생각하고, 사랑했어요.”
“주경아.”
“그래도 정말 괜찮으신 건가요.”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늘 나보다 느린 편이어서 그 박동이 신기할 정도로 느껴졌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뛰지.’
“주경아.”
옅게 향수 냄새가 나는 품에 고개를 묻고 있다가 유일하게 자유로운 두 팔을 들었다. 그 팔을 등에 얹자 커다란 몸이 움찔거렸다.
매달리는 것 같은 고백이었다.
내 모든 걸 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사랑은 너무 무거운데 그게 괜찮은지 묻는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내가 떠올린 건 이상하게도 제사장님이었다. 상대가 자신의 위치를 어디에 두건 전부 받아들이는 신앙.
그건 사랑과 비슷하다.
강주경이 나에게 주고 있는 사랑과.
가슴이 술렁거렸다. 그가 나를 전부 사랑한다고 말했듯이, 나는 그가 품고 있다는, 어쩌면 무거울지도 모르는 사랑을 알았음에도 뒤로 물러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내 마음은 아직 그에게 가벼울지도 모른다. 시간은 지나가는 것을 잊게 하지만, 또 품고 있는 마음에 추를 달아 주기도 한다. 주경이에 비해 내 시간은 부족했고 무게가 쌓일 만큼 충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강주경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나는 잔뜩 긴장한 것 같은 몸을 끌어안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주경아, 난…… 지금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너보다 훨씬 부족할지도 몰라.”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몸으로 느껴지는 맥박이 조금 더 빨라졌다. 그것을 진정시키듯 그에게 몸을 기댔다.
“그래도 그게 더 찰 때까지, 그 후에도. 계속 옆에 있어 준다고 약속할 수 있어?”
끌어안은 힘이 더 강해졌다. 이제 심장 뛰는 소리는 이대로 멈춰 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빨랐다. 어쩌면 내 심장도 그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는지도 모른다.
“네.”
그가 대답했다.
“원하시면 목줄이라도 매 두세요.”
목줄이라니, 웃음이 터졌다. 목줄보다는 리본이 좋은데. 다시 몸을 꾸물거리자 끌어안은 힘이 약해졌다. 팔을 위로 뻗어 주경이의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그의 몸이 아주 조금 움츠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