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의견 일치를 본 세 사람은 그들의 비들을 남겨둔 채 암기와 활과 단검이 날아다니는 사투장을 재빨리 빠져나가 황궁으로 올라섰다.
하여간....... 황비와 태자비들이 돌아왔다.
어떤 이유로든........ 말이다.
“그 가짜 내관들은?”
잠시 후 터벅거리며 계단을 올라오는 일행을 보고 황제가 묻자 황비께서 피식 미소를 흘리신다.
“적당히 묶어두고 왔지. 황궁이 썰렁하군. 경비를 늘린다며 또 이 꼴이야?”
“아아..... 아무래도 저들이 처리를 했겠지. 부인께서 안오셨으면 우리는 절단날 뻔 했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내일이 의식이고 꼭 참석할 꺼라 약속했으니 오는 수밖에요, 기둥서방.”
방긋 웃으며 백룡검을 스윽 내민다.
“왜?”
“내일 의식 때 필요한 거잖아. 올 해 의식 때는 백룡검과 청룡검을 둘 다 쓸 수 있을 꺼야.”
“아, 그러고 보니....... 이건 어디서 찾아온 거지? 설마 이틀 동안 윤족의 땅에 다녀왔을 리는 없고........”
“아아, 내가 말했었잖아. 어디서 많이 본 구조라고. 잘 생각을 해보니 기둥서방하고 처음 만난 홍대인의 집 안 쪽 창고에 그 방과 똑같은 문양과 형태의 검진열대와 검이 있었거든. 그 때는 돈이 급해서 검을 눈여겨 보지 안았는데 알아보니 그게 청룡검이 맞다라구. 그래서 훔치러 갔다 왔지.”
“하!?”
“그런 이유로.... 자리를 비웠지. 잘 지내셨나, 황제폐하?”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부드러운 손의 느낌에 왠지 이틀 간의 긴장과 그 간의 피곤이 전부 녹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신영은 웃으며 답해주었다.
“물론, 잘 지냈습니다. 부인........”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성격이 괴팍하든, 무식하고 생각이 없어 보이든, 매일 박쥐처럼 매달려 사람의 심장을 떨리게 하든, 문보다는 지붕을 더 애용하든, 너무나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자, 잠깐만요....... 형수님, 뭐라구요?”
물론 그 좋은 분위기 사이에도 문경태자의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아직 그의 태자비와 황비, 그리고 동생의 비인 이 세 사람의 본업을 모르고 있는 태자들로서는 ‘훔친다’는 말이 뭔가 상당히 거슬렸으리라........
“저도 물을 게 있는데요, 형님과 형수님.......”
이라고 나서는 세현 태자까지.
그 반응에 황제는 서둘러 유진에게 세현을 끌고 가라는 눈짓을 보냈고 명현에게는 알아서 기라는 시선을 남겼다.
“뭘, 묻고 싶으신데요, 태자님들?”
이라고 그 미모로 방긋 웃으며 청룡의 검과 백룡의 검을 한 손에 가볍게 들어 올리는 황비님의 모습에 두 태자가 눈을 크게 뜨며 몸을 굳혔다.
저 청룡검을 옮기는데 두 태자가 죽을 똥을 쌌단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들의 형수는 그걸 한 손으로 가벼이 드는 걸까?
그리고 왜..... 저 검을 괜히 꺼내보는 건가?
“말씀하세요, 태자님들. 아아~~ 역시 명검을 틀리군요. 몇 백년을 검 집 안에 있었는데도 날이 살아있습니다. 이걸로 배이면..... 죽겠죠, 황제?”
방긋 웃는 표정이 사악하다.
저 말은 ‘니네 이걸로 베이고 싶냐?’ 라는 뜻인 걸 바보가 아닌 이상, 다 알아들었다.
“베여서도 죽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깔려서도 죽을 것 같군요, 황비. 그러니 우리 얌전히 진열장에 갖다 놓읍시다.”
“뭐, 그러지. 내가 가끔씩 써주면 되니까.”
라는 말에 두 태자는 방그래 미소를 흘려보낸다.
“온천욕으로 피곤하실 텐데, 백련궁으로 돌아가 쉬시지요, 형수님. 저희도 피곤하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 묻고 싶은 게 있다며?”
“별 거 아닙니다. 그저 온천욕을 잘 즐기셨나.... 하는 거였습니다. 그 청룡검은 온천욕 중 바닥에서 우연히 건지신 거죠?”
“잘 아네, 세현태자! 자, 그럼..... 내일 의식 때 보자구!!”
“네, 그럼..... 전 이만!!”
이라고 후다닥 유진의 손을 잡은 채 달아나는 태자를 보며 황비가 혀를 찬다. 그리고 그에게 끌려가는 유진 역시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
형수가 무서워 달아나고 있지만, 이 밤은 더 무섭다는 사실을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세현태자는.
“저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형님, 형수님.”
꾸벅 인사를 하고 명현을 끌고 가려는 문경태자는 형수의 검에 길을 차단당해 버렸다.
- 저 무거운 검을 저 높이까지 저리 가뿐하게 들다니........ 형님은 형수를 잘못 택한 걸지도..... -
“문경태자님, 성안의 경비가 엉망입니다. 정리하고 가셔야죠.”
“언제부터 그리고 황궁의 일에 관심이 많아지셨습니까, 형수님?”
“오늘 이 시간부터요. 온천장에서 건져온 청룡의 검을 빼앗기면 억울하잖아요?”
“아아~~ 네에~~ 그렇죠. 온천에서 겨우 건/져/올/린 청룡의 검이니....... 당연히 소/중/하/시/겠/지/요.”
“네에, 그러니..... 궁의 경비를 정리하고 뜨거운 밤을 불 태우시죠, 태자님.”
방긋 웃으며 시비를 걸어준 친우의 모습에 명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물론 저 인간에게 팔려 저 무식하고 재미없는 문경태자에게 시집을 가기는 했지만, 하여간 이럴 때만은 고맙다. 명현은 저 문경태자를 이 세상에서 박박 긁고 갈굴 수 있는 그의 유일한 친우이자, 형님께 경의와 존경을 표했다.
- 고맙다, 월아........ -
라고는 하지만, 실상 이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 저 인간이라는 걸 잠시 까먹은 명현이었다.
“잘 정리가 됐군. 이제 백련궁으로 돌아가시나, 마누라?”
“아니, 지금 가면 할머니한테 또 된통 잔소리 들을 테니, 내일 오전에 식 직전에 쳐들어가야지.”
“그럼 누추한 제 처소라도 쓰시겠습니까, 부인?”
“아무데나 이불만 있으면 됩니다, 낭군님.”
방긋 웃으며 팔짱을 끼며 기대오는 몸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아마 자신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청룡검을 가지고 제식을 치루고 싶다는..... 그의 말을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찾아온 것이리라........
신영은 사랑스러운 황비의 체취에 미소 지었다.
이렇게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물심양면 그를 위해 애써주는 사람이 어디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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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그것이 보물 찾기라면 환장을 하는 황비의 개인적인 취향이라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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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