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긋 웃으며 검집에 검을 넣은 채 백룡검을 손에 든 황비의 옆에 선 유진이 천천히 양쪽에 찬 단검을 빼들었다. 그리고 옆의 명현은 활을 들어 화살을 조준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비들은 낭군들이 어찌 되든 진짜 한 바탕 할 생각인 모양이다.
그는 고민하고 있었다.
아무리 백룡검을 찾으러 왔다 해도, 그는 윤족의 기사였다. 몰락해 가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백룡검이 필요했을 뿐 진짜 황제나 태자들을 죽일 의도는 없었다.
설마, 황비가 저리도 악독할 줄 몰랐던 것이 실수였다.
게다가 칼을 다루는 법이 보통이 아닌 자다. 어쩌면 진짜 간만에 보는 호적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
한 나라의 황제를 죽인 황제 시해범으로 남기는 싫다.
“왜 안 죽여?”
“황비마마, 거래를 하지요.”
“뭘?”
“제가 이기면 백룡검을 넘겨주시겠습니까?”
어지간히도 자신이 있는지 그리 묻는 도둑의 말에 도둑 4명을 제외한 인간들이 코웃음을 흘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저 황비에게..... 한 때 천하무적의 신검이자, 광검(狂劍), 혹은 검의 황제라고까지 추앙받던 저 미친 검쟁이에게 이겨보겠다고?
저 인간이 검집에서 검을 빼지 않는 이유를 알고나 있는 건가?
“좋아, 받아들이지. 그럼....... 움직여볼까?”
싱긋 웃으며 갑작스레 공격을 시작한 황비의 태도에 그는 잡고 있던 황제를 앞으로 밀쳐냈다. 그리고 동시에 그에게 날아오는 황비의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가짜 내관 역시 20년을 검을 닦고 살았지만, 이 정도의 기백을 가진 자는 처음이었다.
진짜 호적수를 만난 걸지도......
“마누라, 이겨!!!”
휘청---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자세를 잡으려던 도둑은 황제의 철 없는 응원에 그만 중심을 잃고 말았다.
대체 황제라는 자가.......
“기둥서방!! 받아!!”
뒷에 지고 있던 짐을 풀어 집어던지는 황비의 말에 한 번 휘청거렸다.
부창부수다........ 잘 어울린다.
갑자기 던져진 검은 보따리를 받아든 신영은 순간 휘청였다.
보따리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뭡니까, 형님?”
“글쎄........”
겨우 자세를 잡은 신영의 뒤로 다가온 문경은 슬쩍 짐을 빼내다 바닥으로 떨어뜨려버렸다. 그 무게는 보통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으아....... 이거 대체..... 무슨 바윗 덩어리라도 넣은 겁니까?”
“그러게.......”
무게에 질린 문경은 슬쩍 자신의 형수를 쳐다보았다.
어쩐지 움직임이 좀 둔하다 싶었더니......
역시 그의 형수님은 인간이 아니었다. 무관으로 이름을 드높히고 있는 문경태자조차 들기 힘든 무게의 짐을 들고 여기까지 들어온 데다, 그걸 싸매고 싸움까지 할 수 있다니......
“풀어나 볼까? 마누라가 모처럼 던져준 선물이니........”
바로 옆에서는 살기를 띄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선물?
진짜 마누라나 서방이나!!
두 동생의 마음이야 어떻든 느긋하게 부인의 선물을 풀어보던 신영은 다 풀린 보자기를 보고 순간 입을 떠억-- 벌렸다.
“왜 그러십니까, 형님?”
“......... 이거..... 아무래도......... 청룡검이....... 맞는 거 같지?”
“뭐라구요?”
분명히 전설상에 전해져오는 청룡의 검이었다.
푸르스름한 느낌의 청금으로 새겨진 청룡의 문양에 푸른 보석으로 박힌 용의 눈, 그리고 황궁의 대장장이 외에는 만들 수 없다는 복잡한 황가의 문양 역시..... 책에서 보던 것과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 이걸 어떻게...........”
“역시 우리 마누라는........ 멋져♡”
헤벨레한 얼굴로 마누라 자랑에 빠진 형님을 보며 두 태자는 이를 으드득 갈았다.
형수도 형수지만..... 이 놈의 팔불출 황제도 문제는 문제다.
그렇다고 갈아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이~~ 마누라!! 이걸 어디서 가져온 거지?”
“아아~~ 온천에서 뒹구는데 나오더라구, 보물은 주인에게 돌아온다니까!”
치열한 싸움 중에도 싱긋 웃어 보이기까지 하며 여유를 부리는 꼴에 문경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 내관의 옷을 입은 도둑놈, 잠깐이었지만 검에서 느껴지던 살기와 깔끔한 움직임이 보통이 아닌 자가 분명하다.
그런데 저렇게 여유를 부리는 건 뭔가?
그것도 아직도 검집에서 검을 빼지 않은 채로 말이다.
“형수님은 이길 의사가 있으신 겁니까?”
“걱정마라, 너희 형수님은 검의 신이 씌인 분이니까.”
히죽거리고 웃는 형님을 보며 참 밥맛 떨어진다고 생각하던 두 태자는 뭔가가 얼굴 옆으로 날아오는 느낌에 서둘러 고개를 숙여 간신히 그것을 피했다.
“방금........ 뭐가?”
“....... 유진의 단검이군.”
“으악!! 이걸 우릴 향해 날리면 어떻게 해!!?”
“세현이 너한테 쌓인 게 많은 모양이지.”
피식 피식 웃으며 청룡검을 찾은 게 그리 좋은지 연신 웃고 있는 황제의 앞으로 이번에는 황비님의 암기가 날아와 박혔다.
“형수님도 쌓인 게 많은 모양이네요.......”
“하하, 한 번의 실수는....... 으악!!!!”
타악--
이번에는 진짜 아슬아슬하게 얼굴 옆을 피해갔다.
그래, 여기는 일곱이 싸우기엔 너무 좁다. 거기다 구경꾼 셋까지............
“........ 우린 나가서 기다리자, 문경아, 세현아.”
“그러죠,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