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동생들은..... 역시나 쌓인 게 굉장히 많은 것 같았다.
뭐, 그 맘 역시 이해는 하지만......... 어째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형순데.........
“하여간 문제는 형수라니까요!!”
그렇기는 하지만..... 두 태자비도 만만치는 않은데.......
괜히 그 셋이 친구겠는가.......
“없는 형수 얘기해 봐야 끝이 없으니, 술로 시름이나 달래자꾸나.”
“형님은 대체 왜 형수님을 휘어잡지 못하시는 겁니까?”
“하하, 휘어잡아서 뭐하게? 그냥 재밌게 사는 거지.”
휘어잡았다가는 단 칼에 목이 달아날 게 뻔한데, 신영이 왜 자기 무덤을 파겠는가?
“으휴, 하여간!! 여기 술을 더 내오너라!!”
빈 주전자를 들고 흔들거리는 세현의 부름에 살며시 문이 열리며 내관 한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제일 독한 술로 내오너라.”
“예, 마마.”
주전자를 슬쩍 받아들려는 내관의 손에서 순간 뭔가가 삐죽하며 튀어나왔다.
적당히 취기가 올라 알딸딸하던 세 사람은 그게 뭔가 자세히 보기 위해 얼굴이 가까이 가져가자 곧 차가운 느낌이 그들의 목에 닿았다.
“황제폐하, 그리고 태자 전하님들..... 지나친 음주는 건강을 해칩니다.”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에 그나마 제 정신인 신영이 되받아친다.
“우리 건강을 그리 생각해 주다니 고맙다만..... 이 목에 닿은 물건은 심히 불쾌하니 좀 치워주겠나?”
“저희가 원하는 걸 찾기 전까지는 곤란합니다.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폐하.”
역시나 웃음으로 답하는 상대의 뒤로는 내관복을 입은 사내 세 명이 나란히 검을 치켜들고 서있었다.
아무리 이 나라가 약하고 황제권이 바닥에 떨어졌다고는 해도, 그래도 일국의 황재와 태자들에게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신영은 조금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뭐, 그들이 여기까지 검을 들고 들어온 것도 모른 자신들의 탓도 있겠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할 일이고......
“저희는 청룡검에 짝인 백룡검이 필요합니다. 백룡검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시지요?”
방긋 방긋 웃으며 말하는 그 도둑의 말에 신영은 난감해졌다.
백룡검은..... 황비님께서 이틀 전에 들고 튀셨는데........
“흐음....... 왜 백룡검을 찾으려고 하지? 백룡검은 자기가 인정한 주인이 아니면 검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는데.....”
“명검이라면 차고도 넘칩니다. 그런 무겁고 아름답기만 한 검은 필요 없죠. 다만 저희는 청룡검의 짝으로 필요할 뿐입니다.”
라는 것은..... 청룡검을 소유한 자들이거나, 청룡검의 소재를 알고 있는 이들이라는 것인데.......
참으로 아타까운 일이다. 황비가 있었다면 환장을 하고 달려들었을 것을.......
“자아,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황제폐하?”
“물론, 안내해 드리지. 백룡검이라도 내 목숨보다는 덜한 것이니.”
방긋 방긋 웃으며 너무 쉽게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들의 형님을 보며 두 태자는 어리둥절한 체였다.
그 까탈스러운 데도 무겁고 아름답기만한 백룡검을 들고 다니는 자는 그의 형수님이고, 그 형수는 이틀 전 검을 들고 가출을 감행하셨는데....... 어디에 백룡검이 있다는 말이냐?
하지만 의식이 아직 제대로 박히질 않아 두 태자는 얼떨떨한 상태로 그의 형님과 내관복을 입은 도둑들을 따라 천천히 복도로 나와 형님이 이끄는 대로 향했다.
어째 사방이 고요하다 싶었더니, 이 도둑들이 전부 처리해 준 모양이다.
“형님, 어쩌실 셈입니까?”
바로 등 뒤로 선 칼날을 느끼며 문경이 조용히 묻자 신영이 방긋 웃는다.
“아무리 백룡검이라도 우리 목숨보다 가치가 있겠느냐? 니 형수가 조금 화를 내겠지만..... 이해해주겠지.”
“그러니까........”
라고 뭔가 더 반박하기 전에 문경은 입을 다물고 그의 형의 뒤를 따랐다.
분명 뭔가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있지도 않은 백룡검을 쉽게 준다고 하는 것이겠지.
한참을 걸어 내려온 곳은 창원궁의 최하단 지하였다.
창고로도 쓰이지 않는 이 곳에 도대체 뭐가 있다고 내려온 것일까?
오는 도중 겨우 술이 깨인 두 태자는 그의 형님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확실히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닐지도........
“여기 뭐가 있다는 겁니까, 폐하?”
“성질 한 번 급하군. 조금만 기다려보게나. 보물은 자신의 주인이 나타나면 스스로 몸을 드러내는 법일세.”
- 그건 어디서 나온 개소린데? -
두 태자의 어이 없다는 시선에 그대로 황제에게 날아갔다.
하지만 신영은 그저 웃었다.
진짜 진귀한 보물은 자신의 주인을 알아본다는 걸 그는 지난 1년 간 두 눈으로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다. 그 사람에게 맞는 보물은 반드시 그에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그 무서운 황비님을 만난 게 아니던가?
“폐하, 제 인내심을 시험하시는 겁니까?”
“설마, 나도 인내같은 건 질색이네. 다만 기다리는 수 밖에 없으니 문제인 게지.”
그 순간이었다.
뭔가 투툭--- 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지하의 밀실 안에서 음산한 소리가 울렸다.
네 명의 도둑과 두 태자는 놀란 눈으로 황제를 돌아보았지만, 황제는 여전히 흡족한 듯 웃을 뿐이다.
“형님, 이게.......”
드드드득------
무거운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며 그들의 앞에 있던 벽 하나가 서서히 돌아간다.
순간 그들의 머리 속에는 여러 가지 상념들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서서히 회전하는 그 문 사이로는 아주 익숙한 인간의 얼굴이 보인 탓이었다.
차분히 어깨에 닿는 검은 머리카락에 백옥같은 피부, 그리고 붉은 입술과 커다란 눈동자를 가진.......
황비가........... 돌아왔다.
“어어? 어라? 기둥서방들 왜 거기 서있나?”
길고 커다란 짐을 등에 지고 앞에 선 사람들에게 맹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절세의 미소년을 본 그들의 반응은 각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