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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15/15)

후일담

달그락달그락. 두 마리의 백마가 끄는 마차가 거리를 지나쳤다. 찐빵모자를 눌러쓴 여러 명의 아이가 마차가 떠난 길을 따라 뛰어다녔다.

거리에 늘어선 노점상은 채소, 과일, 생선 등 식재료를 파는 상인들과 흥정하는 인원들로 북적거렸다.

어느 곳 하나 빠짐없이 소란스럽고 활기가 넘치는 거리였다.

“참으로 활기찬 거리가 아닙니까.”

하얀색 서방식 음인 의복을 차려입은 수현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거리를 둘러보며 장 상궁에게 물었다. 장 상궁 역시 서방식 약식 드레스를 갖춰 입고 있었다.

“마마, 아직 낯선 곳입니다. 이렇게 돌아다니시는 걸 폐하께서 알기라도 하시면 크게 노하시는 게 아닐까 걱정되옵니다.”

이제 태화는 흔적도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에도 장 상궁은 아직도 ‘마마’와 ‘폐하’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그것은 한번 모신 분은 끝까지 저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신념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러니 이제 그만 들어가시지요. 혹여나 마마의 몸에 무리가 갈까 두렵사옵니다.”

“조금만 더 있다가요.”

“마마.”

태화 황궁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수현은 여전히 고집불통이었다. 덕분에 장 상궁의 이마에 주름살만 늘어 갔지만, 그래도 요즘 들어 마마가 웃는 일이 많아 장 상궁은 행복하기만 하였다. 

태어나 자라왔던 대륙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그녀는 누구보다 걱정이 많았다. 낯선 곳에서 마마가 잘 적응하실 수 있을까 걱정되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장 상궁의 기우였다. 수현은 새롭게 시작될 삶에 대한 부푼 꿈을 갖고 있었고, 그 꿈은 낯선 곳에서 삶을 시작하면서 현실이 되어 버렸다.

신문물과 새로운 사람들, 처음 보는 거리의 풍경까지. 이곳의 모든 것들이 수현을 즐겁게 했다. 그간 가슴속에 쌓인 아픔을 치유해 주듯, 새로운 삶이 그에게 커다란 행복을 선사해 주었다.

“마마. 이제 더는 안 되겠습니다. 곧 폐하께서 돌아오실 시간입니다. 분명, 마마께서 안 계신 것을 알면 크게 놀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수현을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는 또 있었다. 배에 오르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수현만을 바라보며 그에게 헌신하고 있는 한 사람.

“마마.”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이만 돌아가도록 하죠. 참, 장 상궁님의 고집은 이길 방도가 없군요.”

“마마만 할까요.”

“……장 상궁님?”

오랜 시간 동안 떨어져 지내야 했던, 비틀린 인연 속에 이제야 다시 만나게 된 한 사람.

“어서 서두르시죠. 분명 폐하께서 집에 먼저 도착한다면 난리통이 날 것입니다.”

바로, 명휘였다.

“지난번에도 몰래 외출하신 마마로 인해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으셔서 소인이 어찌나 곤욕을 겪었는지 기억하시죠? 소인이 곤란한 상황을 즐기는 게 아니시라면 서두르시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 상궁의 표정에는 싫은 기색이 전혀 없었다. 폐하가 마마를 아끼는 모습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웃음이 절로 드리워지는 그녀였다.

비단 장 상궁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장 상궁의 얘기를 듣는 수현의 얼굴에도 한껏 웃음이 드리워져 있었으니. 

지금 수현은 행복했다.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는 삶이, 명휘와 함께 하는 삶이 너무도 행복했다. 그렇게 따듯한 늦봄 햇살 아래 수현의 얼굴은 화사하게 빛났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 * *

“폐, 폐하. 벌써 오셨나이까.”

설마가 사람 잡는다 했던가. 두 사람이 집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소파에 앉아 한껏 얼굴을 구기고 있는 명휘의 모습이었다. 명휘는 길게 길렀던 머리를 짧게 자르고 역시나 서방식 정장을 갖춰 입고 있었다. 태주가 주로 입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의복이었다.

“오셨어요?”

수현은 한껏 해맑은 표정으로 인사하였다. 하지만 명휘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였다. 지난번처럼 집을 뒤집어 놓지는 않았지만, 심기가 불편한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뚜벅뚜벅.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가 수현에게 다가왔다. 수현의 앞에 멈춰 선 그가 잔뜩 인상을 쓴 채로 내려다보았다.

찡그린 미간에도 수려한 얼굴은 오히려 더 멋스러웠다. 한껏 심통이 난 그를 보며 수현은 해맑게 미소 지었다.

“하.”

수현이 미소 짓는 모습 앞에서 결국 명휘의 표정도 풀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가 저를 보며 웃어 보이는데 어찌 계속 인상 쓰고 있을 수 있겠는가? 

헛숨을 뱉어 낸 그가 뒤늦게 수현을 끌어안았다. 잠시 떨어져 있었다고, 반나절 만에 마주한 그의 반려자가 애틋하게만 느껴졌다. 중저음의 근사한 목소리로 그가 수현의 귀에 속삭였다.

“어디 갔다 온 게요. 걱정했잖소.”

“미안해요. 밖이 너무 궁금해서…….”

“당분간은 나와 있을 때만 나가기로 하지 않았소?”

“알겠어요.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게요.”

명휘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더니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수현의 이마로 짧게 입 맞췄다. 매끈한 이마에 붙었다 떨어지는 말캉한 느낌이 좋으면서도 부끄러워, 수현의 두 뺨이 수줍게 물들었다. 

“이만 올라가서 쉬지요. 밖에 돌아다녀서 많이 피곤할 텐데.”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거늘, 수현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래서 그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그저 빤히 쳐다보는데, 그보다 먼저 눈치챈 장 상궁이 나서서 말하였다.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마마. 오늘 외출하여 많이 지치셨을 텐데, 이만 올라가서 쉬시지요.”

장 상궁까지 나서서 쉬라고 하니 수현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저 의아한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보는데 명휘가 수현의 손을 잡아끌었다. 

명휘의 손에 이끌려 수현은 곧장 2층으로 향했다. 두 사람의 침실로 곧장 들어섰다. 

“흡!”

쾅, 문이 닫히자마자 명휘는 곧장 수현의 입술을 찾았다. 수현은 다소 놀란 듯했으나 곧 두 눈을 감으며 밀려 들어오는 따듯한 살덩이에 제 혀를 가져다 비볐다.

쪽, 쪽, 두 사람은 서로의 혀를 빨아들이며 끊임없이 입술을 부딪쳤다. 명휘는 아예 수현의 얇은 아랫입술을 물고 살짝 이로 깨물기도 했다. 언제 먹어도 수현의 입술을 맛있기만 했다. 꼭 잘 익은 과실을 빨아먹는 것처럼 단맛이 느껴졌다.

한참 동안 서로의 혀를 빨며 서로를 느끼던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져 나간 건, 명휘가 수현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을 때였다.

분을 바른 것처럼 보드라운 목덜미를 명휘가 살며시 빨아들였다. 옷깃 위로 살짝 드러난 부위를 빨며 그는 한 손을 내려 수현의 가슴 위로 얹었다. 산달이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잔뜩 부푼 수현의 젖가슴이 옷 속에서 느껴졌다.

부드럽고 말캉한 가슴을 명휘는 한껏 주물렀다. 옷 위로만 만지는 게 아쉬워 그는 단추를 풀어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안에 착 감겨 오는 살갗의 느낌은 즐기며 아래서부터 위로 가슴 전체를 쥐어 잡아 올렸다.

커다란 손에 가득 찰 만큼 살이 차오른 젖가슴을 쥐고 떡 주무르듯 조물조물하였다. 

“흐읏!”

수현은 곧장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을 터뜨렸다. 가뜩이나 모유가 들어차기 시작하면서 종종 통증을 느끼는 부위라 살짝 쥐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꽤 아픔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단지 아프기만 한 것만은 아니었다. 명휘가 젖가슴을 주물러 댈 때마다 손안에서 뭉개지는 작은 돌기가 은근히 성감을 유발하는 거였다. 음인의 신체 중 가장 예민한 성감대인 젖꼭지가 건드려지자 수현은 다소 끈적해진 신음을 흘려 댔다.

명휘의 입술이 닿아 있는 목도, 손에 자극받는 젖꼭지도 다 기분 좋아서 저절로 흥분감이 차올랐다.

감은 눈이 파르르 떨리고, 입술이 점점 더 벌어졌다. 고개를 슬며시 쳐올리며 등 뒤에 있는 문에 슬쩍 기대었다.

수현이 몸을 뒤로 늘어뜨리자 명휘는 물고 있던 목덜미에서 입술을 떼어 냈다. 기다란 목을 타고 내려온 그가 앞섶을 더 벌려 주무르고 있던 가슴에까지 이동했다. 둥글게 떠오른 부푼 살덩이를 향해 혀를 내밀었다.

“으응…….”

혀를 길게 내뺀 명휘가 볼록 튀어나온 돌기를 진득하게 핥아 올렸다. 자잘한 돌기가 빼곡한 살덩이가 젖꼭지 끝을 스치자 신경을 타고 짜릿한 기분이 수현의 전신으로 촤르르 퍼져 나갔다. 

기분이 좋았는지 수현이 몸을 살짝 떨며 신음을 흘려 댔다. 명휘는 혓바닥으로 젖꼭지를 몇 번 더 핥았다. 침으로 축축이 젖은 젖꼭지로 기어이 입을 묻기까지 했다. 한 손으로 잡아 올린 탓에 한껏 봉긋해진 젖을 한입에 넣고 쭉쭉 빨았다. 젖꼭지가 빨리니 혀로 핥아 댈 때보다 더 진한 자극이 몰려왔다.

아찔하게 꺾어 올린 고개에 가늘고 긴 목선이 두드러졌다. 명휘는 오른쪽 젖을 입에 문 채로 왼쪽 손을 들어 올려 수현의 입술을 찾았다. 검지와 중지를 입속에 집어넣은 그가 수현의 혀에 문댔다. 융단처럼 한없이 부드러운 느낌이 손끝에 전해졌다.

애무하듯 혀를 문질러 대는 두 개의 손가락을 수현은 본능처럼 빨기 시작했다. 명휘의 손가락이 젖어 드는 것처럼, 수현의 젖가슴 또한 명휘의 타액으로 흠뻑 젖어 들고 있었다.

명휘는 젖꼭지를 빠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이를 세워 돌기를 잘근잘근 씹어 대기도 했다. 혀끝으로 돌기의 끝 부분은 톡톡톡 건드리다 씹어먹듯 깨물며 빨았다.

“하으응…….”

입안에 들어차 있던 손가락이 빠져나가자마자 수현은 길게 여운을 담아 신음을 내뱉었다. 명휘는 침으로 범벅이 된 손가락을 곧장 수현의 왼쪽 가슴으로 가져갔다.

침이 잘 발린 손가락의 끝이 젖꼭지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오른쪽 가슴은 혀로, 왼쪽 가슴은 손가락으로 자극해 대니 수현은 참을 수 없이 성감이 끓어올랐다.

한쪽 젖꼭지만 건드려 줘도 미칠 것 같은데, 둘을 같이 자극해 대니 견뎌 낼 방법이 없었다. 

“흐응, 서방님. 그, 그만…….”

수현은 명휘를 폐하 대신, 그의 반려자로 호칭했다. 그것은 명휘가 저에게 존대하며 ‘부인’이라 부르기 시작하며 바뀐 것이었다.

“왜, 쾌락이 지나치오?”

물고 있던 젖을 놓고 명휘가 답하였다. 여전히 얼굴을 젖가슴 가까이 붙인 채였다.

“흐응…… 못 견디겠어요…… 더는…….”

숨을 몰아쉬며 말하는 수현이 사랑스러워 명휘는 살며시 미소 지었다.

수현을 배려하기 위해 이제 그만 젖꼭지를 놓아주어야겠다고 결심한 그가 아쉬웠는지 두 개의 젖가슴을 모아 가운데 얼굴을 묻었다. 젖무덤에 잔뜩 얼굴을 파묻은 그가 수현의 살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보드라운 살결만큼이나 사랑스러운 꽃향기가 몰려왔다.

작고 소박한 보랏빛 꽃을 닮은 음인의 색향에 명휘의 피가 단번에 아래로 쏠렸다. 급한 듯 바지 속에서 꿈틀대는 좆을 느끼며 명휘가 수현의 젖가슴에서 얼굴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이어 수현의 몸을 감싸고 있는 임부복의 단추를 정성스레 하나하나 풀어 나갔다.

단추가 모두 풀린 임부복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고…… 반라의 모습을 한 수현의 모습이 명휘의 시야에 가득 담겼다. 잔뜩 차오른 성감에 눈조차 바로 뜨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는 수현의 모습을 명휘는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았다.

살이 한껏 오른 두 가슴은 침으로 젖어 봉긋하게 서 있었고, 그 아래로 커다란 배가 둥글게 자리해 있었다.

반라의 수현을 바라보는 명휘의 눈빛은 황홀함에 물들어 있었다. 언제 보아도 임신한 수현의 몸은 경이로웠고, 또 아름다웠다. 명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 앞에 무릎 꿇어앉았다.

제 새끼가 들어 있는 배 위로 그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가져다 대었다. 양수로 가득 찬 배는 단단했지만, 얼굴에 맞닿은 그 느낌만큼은 그렇게 포근할 수 없었다.

명휘는 소중한 부인을 위해, 아이를 위해 불룩한 배를 따라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명휘의 마음은 입술을 타고 그대로 수현에게 전해졌다. 이제껏 성감에 절어 고개를 젖히고 있던 수현은 천천히 시선을 내려 명휘를 쳐다보았다. 세상 누구보다 저와 제 아이를 아껴 주는 한 양인이 무릎을 꿇은 채 배에 입 맞춰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은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수현은 어쩐지 가슴이 벅차올라 눈시울이 붉어졌다. 행복했다. 행복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제 앞에 있는 명휘가 저의 사람이라서, 그의 아이를 가질 수 있어서 그래서 너무 행복했다.

“수현아.”

수현의 눈가가 촉촉해진 것을 눈치챈 명휘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평소 부르는 ‘부인’이라는 호칭이 아닌 이름을 부르며 벌거벗은 상체를 살포시 끌어안았다.

혹여나 아기에게 무리가 갈까 조심스러워하면서 명휘는 수현의 벗은 몸을 다정하게 감싸주었다. 넓은 가슴만큼이나 듬직한 양인의 체향이 한껏 풍겨 왔다. 

수현은 명휘의 품에서 눈물을 머금은 두 눈을 감았다. 속눈썹에 대롱대롱 매달린 눈물방울이 명휘의 옷을 적셨다.

제 양인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포근한 체향을 한껏 들이마시며 수현이 미소 지었다.

“행복합니다.”

“…….”

“너무 행복해서 잠시 눈물이 났습니다.”

“수현아…….”

“서방님과 함께 할 수 있어 너무도 행복합니다.”

그대로 명휘의 입술이 수현의 입술에 맞닿았다. 두 사람이 뜨겁게 혀를 섞었다. 서로의 숨결을 나누고 침을 받아먹으며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겨 침대로 향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진심인 만큼, 서로의 몸을 탐하고자 하는 욕망의 크기도 결코 작지 않았다.

입맞춤이 끝나는 대로 명휘는 시온을 침대에 눕혔다. 누운 상태에서 저를 올려다보는 수현과 눈을 마주하며 거칠게 옷을 벗어 나갔다. 언제 보아도 멋있는 양인의 몸이 단번에 드러났다.

손을 쫙 펴도 다 가리지 못할 커다란 가슴과 빼곡히 짜여 있는 복근. 힘이 바짝 들어가 근육 선이 잡혀 있는 단단한 허벅지와 그리고…… 가운데 매달려 있는 긴 살덩이까지.

모든 게 한없이 색스럽고 야성적으로 느껴져 수현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도 그랬지만 지금까지도 명휘의 몸은 세상 그 어떤 양인보다 멋있었다. 비단, 몸뿐만이 아니라 얼굴까지도.

처음 명휘를 본 순간 수현은 사실 크게 놀랐었다. 상상 속 황제의 모습과 제 눈앞의 황제가 너무도 달랐기에. 이토록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가 황제일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기에.

그리고 이제 와 인정하는 것이지만, 사실 그때 수현은 살짝 흔들렸었다. 첫눈에 반할 만큼 멋진 명휘의 모습에 가슴이 뛰었던 것이다. 그때 그것을 눈치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수현은 철저하게 뛰어 대는 제 심장을 무시해야만 했다.

그때 수현에겐 제 삶의 모든 것을 걸고라도 복수해야 한다는 생각뿐이 없었으니까.

수현이 잠시 벗은 몸을 보고 넋을 놓는 동안, 전라의 모습을 한 명휘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수현의 바지를 벗겨 냈다. 서방의 의복은 태화의 것보다 훨씬 복잡한 구석이 있었지만 명휘는 이미 익숙해진 상태였다.

곧 바지는 물론, 속옷까지 벗겨지고 수현 역시 명휘처럼 나신이 되어 버렸다.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모두 걷어치우니 수현의 색향이 더욱 짙어졌다. 그 향기의 근원을 명휘는 알고 있었다. 수현의 엉덩이 사이, 양인의 좆물을 받기 위해 존재하는 그 작은 구멍이 그 근원지였다.

명휘는 수현의 몸을 잡아 조심스럽게 뒤집었다. 배가 부른 탓에 정상위로는 관계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수현은 자연스럽게 엎드린 채로 둔부를 들어 올려 자세를 잡았다.

명휘에게서 폴폴 풍겨 오는 다디단 체향과 곧 처들어올 커다란 살덩이에 대한 기대감에 절로 가랑이 사이가 젖어 들었다.

명휘는 수현의 뒤꽁무니에 자리를 잡았다. 가는 다리 위에 볼록 솟아 있는 두 덩이의 살을 각각 양손으로 붙잡았다.

손안에 꽉 차는 살덩이를 잡고 몇 번 주무르던 그가 양옆으로 잡아당겨 구멍을 벌렸다.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큼 작은 구멍이 애액을 머금은 채로 입을 벌렸다.

촉촉하게 젖은 내벽은 유난히 더 붉게 물들어 명휘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주름진 육벽이 촘촘히 들어차 있는 구멍은 딱 보기에도 저의 큰 좆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보였다. 이미 몇 번이나 수현의 구멍에 좆질을 한 명휘는 그 구멍이 얼마나 쫀득하게 제 좆을 조여 올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수현의 구멍 맛을 떠올린 그는 참을 수 없이 성욕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입안에 절로 침이 고였다. 명휘는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구멍을 맛보기 위해 고개를 꺾어 엉덩이 사이로 입술을 처박았다.

구멍 입구에 짧게 입 맞춘 그가 혀를 내밀어 구멍 주변을 핥아 나갔다. 주름진 구멍 입구의 살을 발라 먹듯이 샅샅이 핥아 대니, 살이 녹진해지며 점점 풀어졌다.

명휘는 부드러워진 입구의 살을 혀끝으로 계속 긁어 대다가 천천히 구멍 속으로 집어넣었다. 좁디좁은 구멍은 밀고 들어오는 혀를 반기며 한껏 끌어안았다. 주름진 육벽의 느낌이 맞닿은 혀를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명휘는 혀를 넓게 펴 구멍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두툼한 혀에 구멍이 점차 벌어졌지만, 워낙 쫀쫀한 탓에 그새 좁아지며 혀를 물어 왔다. 

명휘가 혀를 가지고 마치 좆을 들락이듯 구멍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혀뿌리까지 모두 구멍 속에 처넣고는 내벽에 혓바닥을 문지르며 야한 맛을 즐겼다.

갈고리 같은 혀끝으로 내벽을 긁어 댈 때마다 수현의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명휘는 수현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혀로 계속해서 구멍 안쪽 구석구석을 모두 긁어 주었다.

“아……!”

정성 들여 구멍을 핥아 주는 명휘에 보답하듯, 수현은 한껏 높아진 교성을 쏟아 냈다. 애액이 점점 샘솟고, 거기에 명휘의 침까지 더해져 구멍 밖으로 물이 줄줄 흘렀다.

회음부를 지나 고환을 담은 음낭까지 액체가 흘러내렸다. 명휘는 구멍 속에 처박아 둔 혀를 빼내어 음낭부터 구멍까지 크게 핥아 올렸다. 질척한 액체가 혀에 쓸려 명휘의 입속으로 딸려 들어갔다.

애액 맛을 본 명휘는 그걸로는 모자란다고 느꼈는지, 아예 구멍에 입을 맞대고 쭉쭉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시큼하면서 미끈한 애액을 흡입하며 목구멍으로 넘겼다.

언제 맛보아도 환상적인 애액은 명휘의 양기를 더욱 빳빳해지게 했다. 애액까지 들이마신 이상,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명휘가 그대로 제 긴 좆을 부여잡았다.

“흐읏!”

정성껏 풀어 준다고 풀어 줬음에도 워낙 작은 구멍은 명휘의 좆을 쉽게 받아먹지 못했다. 워낙 두껍고 큰 탓에 머금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구멍이 곧 찢어질 것 같고 아래 골반이 뻐근해져 왔지만, 그럼에도 행위를 멈출 수 없었다.

체향과 애무에 이미 흥분할 대로 흥분한 몸이 되려 명휘의 좆이 더 깊은 곳까지 다다르기를 바라고 있었다.

수현의 구멍에 좆 머리를 겨우 끼워 넣은 명휘는 밀려오는 쾌감에 한껏 인상을 쓴 채로 멈추어야만 했다. 수현의 구멍이라면 정말 미친 듯이 쑤셔 댄 것 같은데 아직도 쫀쫀하게 물어 올 때마다 참을 수 없이 흥분되었다.

길고 큰 좆이 천천히 구멍을 벌리며 더 깊은 곳으로 밀려 들어갔다. 좆 모양을 따라 벌어진 내벽이 두꺼운 좆을 감싸며 조여 왔다. 탄력 있는 육벽의 움직임에 들어찬 좆이 조금씩 크기를 더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자궁 속에 아이가 들어 있는 바람에 평소보다도 압박감이 크게 느껴졌다.

“으응, 응…….”

기어이 그 커다란 좆이 뿌리 끝까지 모두 구멍 속에 모습을 감추자 수현은 길게 여운을 담아 신음을 내뱉었다.

명휘는 제 좆이 구멍 안에 무사히 안착하자, 두 팔을 내뻗어 수현의 복부를 어루만졌다. 둥근 배를 쓰다듬으며 마른 등의 척추를 따라 입을 맞췄다. 

좆 머리로는 자궁의 입구를 뭉근하게 문지르고, 손으로는 계속해서 배를 더듬었다. 제 새끼를 어루만지는 듯한 행위에 배 속의 아이도 기분이 좋았는지 발길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맞닿은 배에서 태동이 느껴지자 격한 감동이 몰려왔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감정을 담아 명휘가 말했다.

“우리 아이도 기분 좋은 것 같소. 느껴지오?”

들어찬 좆에 겨우 숨을 몰아쉬면서도 수현은 애써 답하였다.

“제 어미가…… 기뻐하고 있음을 아는 게지요…….”

스스로 기쁘다고 말하는 수현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수현을 연모하는 만큼, 그와 그의 배 속에 든 아이가 소중한 만큼 명휘의 욕망도 더없이 커져만 가고 있었다.

거칠게 박아 대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그가 천천히 허리를 뒤로 빼내었다. 미끈한 물을 뒤집어쓴 좆이 선단만 남겨 둔 채, 밖으로 빠져나왔다. 

흥분한 탓에 핏줄이 잔뜩 서 흉측한 좆을 다시금 구멍 안을 향해 밀어 넣었다. 흐으으, 수현의 가는 허벅지가 떨려 왔다. 감각을 견뎌 내기 힘든지, 침대보를 손에 쥐고 끌어당겼다.

성감이 가득 차오른 얼굴은 홍시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벌어진 입술 새로 달뜬 숨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한번 구멍 밖에 다녀온 좆은 이제 본격적으로 들락임을 시작했다. 워낙 비좁은 데다, 아이까지 들어차 있어서 조여 오는 압박감이 크디 컸다.

내벽이 눌러 대는 힘만으로도 그대로 좆이 터져 버릴 것만 같은데, 자궁에 좆 머리가 닿을 때마다 내벽이 잘고 빠르게 떨어 대는 터라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명휘는 혹여나 흥분한 저의 행위가 거칠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허리를 움직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애가 타 수현은 더욱 엉덩이를 추어 올렸다. 본능적으로 자꾸만 좆을 씹어 대는 아래 구멍 때문에 명휘의 좆은 그야말로 끊겨 버릴 것만 같았다.

명휘가 수현의 한쪽 엉덩이를 잡아 주물렀다. 야들야들한 살 맛을 느끼며 숨소리를 섞어 말했다.

“예나 지금이나 부인의 구멍은 내 좆을 끊어먹지 못해 안달이구려.”

성감에 취한 와중에도 수치심이 몰려와 수현의 목덜미까지 단번에 붉어졌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아이가 들을까 겁납니다…….”

“우리 아이도 알아야 하지 않겠소?”

“무엇을…… 말씀입니까?”

“제 어미와 아비가 이토록 궁합이 좋다는 것을요.”

“……서방님!”

상스러운 얘기에 수현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여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귓바퀴를 붉게 물들인 채로 아등바등하는 그의 모습이 명휘의 시야에 확 박혀 왔다. 명휘가 입술을 세게 짓씹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궁에 구멍이 뚫리도록 콱콱 세게 박아 대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애꿎은 엉덩이 살만 쥐 뜯었다.

“아프, 아프옵니다.”

수현이 침대에 얼굴을 처박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명휘는 손짓을 멈출 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세게 허리를 처박을 것만 같았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계속해서 허리 짓을 이어 갔다.

자유롭지 못한 허리 짓에 명휘는 대신 쥐어 잡은 엉덩이 살을 늘렸다 오므리며 좆을 자극했다. 허리를 유연하게 돌려 내벽에 좆기둥을 비벼 댔다.

구석구석 문질러 대는 커다란 살덩이에 수현은 점차 끈적해진 신음을 흘리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끈적한 액체를 매개로 맞닿아 비벼지는 생식기에서 끔찍하리만큼 좋은 느낌이 전해졌다. 

“으응, 좋아…….”

수현은 저도 모르게 본심을 뱉어 내고야 말았다. 본능에 취약한 몸뚱어리는 어느새 성감이 잔뜩 차올라 끊임없이 들어찬 좆을 빨아 대고 있었다.

두 개의 생식기가 맞닿아 있는 접합부를 타고 끈적한 애액이 새어 나왔다. 가랑이 사이를 애액이 촉촉하게 물들이는 동안, 음경이 잔뜩 발기해 불뚝한 배를 툭툭 쳐 댔다.

한 방울 선액을 매단 좆 머리가 잘 익은 과실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뒷구멍을 쑤셔 주는 커다란 좆이 매끈한 살 속에 감춰진 둥글고 작은 기관을 툭툭 건드릴 때마다, 수현의 좆도 한 번씩 꿈틀거리며 몸을 추어올렸다.

“서방님…… 더 안쪽에…… 안에…… 으응…….”

명휘가 야살스러운 말을 조금이라도 뱉으면 금세 얼굴을 붉히며 창피해했던 수현은 이제 스스로 허리를 흔들며 명휘의 좆을 찾아 댔다.

대담해진 수현의 움직임에 명휘는 머릿속에 남아 있던 한 가닥의 이성마저 툭, 끊기는 것 같았다. 

더는 견딜 수 없어 명휘가 고간을 깊숙이 처박았다. 둥근 좆 머리가 배 속을 세게 짓눌렀다. 내장이 뭉개지고, 안에 고이 감추어져 있던 아기집까지 그 영향이 전해졌다.

귀두에 닿는 미끈한 감각을 즐기며 명휘가 조금씩 좆질에 속도를 더했다.

“으응, 응. 으으응, 응!”

드나드는 좆이 내벽을 문지르며 쾌감이 증폭되었다. 수현은 침대보에 처박았던 얼굴을 추어 올리고 교성을 쏟아 냈다. 눈썹이 팔(八)자 모양으로 추어 올라가며 미간이 좁아졌다. 벌어진 입을 타고 침이 번져 입꼬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흔들리는 몸짓을 따라 발기한 좆이 계속해서 덜렁거렸다. 둥근 배에 바짝 붙을 정도로 몸을 세우곤, 선액을 질질 흘려 댔다. 불룩한 배에 미끈한 액에 펴 발렸다. 명휘의 좆이 드나드는 구멍 입구에선 투명한 액체가 마찰로 하얗게 거품이 되어 피어올랐다.

흥분한 명휘가 더없이 빠른 속도로 허리를 움직였다. 더는 파고들 수 없는 곳에 좆 머리를 비벼 대며 수현의 골반을 잡아당겼다.

“아응, 서방님. 으응, 응, 아으응.”

“이렇게, 천박하게, 굴어서야. 우리 아이가, 어미를 뭐라, 생각하겠소?”

“으응, 싫습니다. 그런 말…….”

“부인의 구멍은, 그리, 생각 안 하는 것 같소만?”

명휘가 크게 허리를 휘둘렀다. 귀두만 남긴 채 뒤로 물러났던 좆이 다시금 안을 파고들며 수현을 즐겁게 해 주었다.

굵고 단단하기까지 한 좆이 구멍의 어느 지점을 스쳤을 때, 수현은 유난히 더 자지러지며 과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곳이 수현이 좋아하는 곳임을 아는 명휘는 자세를 바꿔 집중적으로 그곳만 후벼 파기 시작했다.

“흣! 으응! 아, 안 돼! 그렇게 하면, 흐응!”

말로는 안 된다 하면서 수현은 엉덩이를 더 들어 올리며 적극적으로 몸을 맡겼다. 이제껏 두 무릎으로 침대를 딛고 씹질에 몰두하던 명휘는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발로 침대를 디딘 채 아예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렸다. 

구멍 입구와 가까운, 살 속에 파묻힌 작은 기관이 계속해서 자극받기 시작했다. 수현은 행복에 겨운 비명을 내지르며 계속되는 쾌감에 몸을 맡겼다. 온몸이 타오를 듯 끓어오르고 눈에 열이 올랐다.

찔러 주는 자지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며 쑤셔지는 곳 외에 다른 곳의 감각이 모두 죽어 버렸다. 이미 온몸을 잠식한 성감이 한계에 다다르며 참을 수 없는 곳까지 이끌었다.

황홀한 감각의 정점에서 수현은 그대로 모든 것을 터뜨려 버리고야 말았다.

“아응!”

짧은 비명과 함께 배에 맞닿아 있는 수현의 좆에서 뜨거운 액체가 터져 나왔다. 울컥거리며 요도를 타고 좆물이 쏟아져 나오는 동안, 수현의 뒷구멍은 행복에 겨워 들어찬 살덩이를 살뜰히 씹어 대기 시작했다.

“씹!”

요동하는 내벽이 명휘의 좆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졌다. 신음하는 수현의 골반을 세게 끌어안은 그가 좆을 끝까지 처박고 엉덩이를 빠르고 잘게 떨어 댔다.

수축과 이완을 초 단위로 해 대는 내벽에 자극받아 명휘의 좆에서도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세차게 물을 내뿜으며 명휘의 좆 또한 발광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몸뚱이를 떨어 대며 수현의 내벽을 쳐 댔다. 수현의 구멍 역시 힘주어 명휘의 좆을 물어 댔다. 물고 빨아대는 내벽에 안으로 흘러 들어가지 못한 좆물이 밖으로 찔끔찔끔 새어 나왔다.

“아응, 응, 으응…… 으으응…… 하으응…… 하으…….”

사정을 끝낸 수현이 달뜬 숨을 내쉬며 추어올렸던 고개를 침대에 파묻었다. 격한 쾌감을 만끽하며 어느덧 터져 버린 눈물이 침대보에 닿아 둥글게 적셔 나갔다. 부드러운 이불보에 뜨거워진 볼을 부비며 수현은 연신 가쁜 숨을 쏟아 냈다.

“후우…… 후…….”

명휘 역시 사정을 끝내고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수현이 싸지른 정액으로 범벅한 부푼 배를 손으로 더듬었다. 둥근 배의 살갗에 정액을 얇게 펴 발랐다. 미끈해진 배를 연신 쓰다듬으며 좆으로는 미끈한 내벽을 문질렀다.

사정의 여운을 즐기며 한참 동안 수현의 구멍 속에 머물러 있던 좆이 천천히 밖으로 밀려 나왔다.

좁은 구멍을 가득 메우고 있던 살덩이가 빠져나가자, 가득 들어찬 좆물이 밖으로 주르륵 흘러나왔다. 명휘는 손으로 좆을 잡고 귀두 끝으로 흘러나온 좆물을 훑었다. 하얗고 끈적한 액체로 범벅이 된 좆 머리를 가지고 수현의 머리 쪽으로 이동했다.

“으응…….”

명휘는 늘어져 있는 수현의 얼굴을 살포시 그러잡아 들어 올렸다. 아직 사정의 쾌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제 앞에 자리한 좆을 쳐다보았다.

좆에서 명휘의 체향이 강하게 풍겨 왔다. 수현을 늘 황홀경으로 몰고 간 그 냄새였다.

“서방님…… 냄새…….”

양인의 체향에 취한 수현이 몽롱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명휘가 천천히 수현의 머리통을 잡아당겼다.

붉게 물든 입술에, 뜨거워진 볼에 대고 마구 좆 머리를 비벼 댔다. 뜨겁게 달궈진 좆 머리가 비벼 대자 수현은 본능처럼 입을 벌렸다.

벌어진 입으로 좆 머리가 천천히 밀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액이 발라진 좆 머리를 수현은 망설임 없이 핥기 시작했다. 꿀처럼 달기만 한 양인의 정액을 혀끝으로 할짝이다 입술을 아예 묻고 빨아먹었다.

사정 직후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상태에서 귀두가 강하게 빨리자 명휘는 고개를 추어 올리며 연신 탄성을 뱉어 냈다.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수현의 혀 놀림을 즐기던 명휘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러곤 제 좆을 빠는 수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하얀 액체를 얼굴에 덕지덕지 바른 채로 나른하게 속눈썹을 늘어뜨린 모습이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이대로 다시 한번 좆을 처박지 않고서는 못 견딜 만큼.

“흣!”

그래서 명휘는 다시 한번 수현의 몸을 침대 위에 눕힐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후배위가 아닌 정상위로. 배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베개를 허리를 받친 그가 수현의 양 다리를 어깨에 걸쳤다,

다시금 파고들어 오는 단단한 좆에 수현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강인하지만 부드럽게 안을 헤집는 살덩이를 느끼며 점점 쾌락에 젖어 들었다.

저에게 모든 것을 내맡긴 채, 두 눈을 감은 수현의 얼굴을 명휘는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세상에 단 한 사람, 누구보다 소중한 수현의 얼굴을 오래도록 쳐다보며 그가 천천히 허리 짓을 이어 나갔다.

* * *

커다란 창을 통해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붉은 커튼 사이로는 봄에 새로 피어난 초록 잎새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가지에선 드문드문 이름 모를 새의 모습 또한 보였다.

한껏 열어 둔 창에 새들 지저귀는 소리가 크게 전해졌다. 초여름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으응, 응…….”

명휘는 자리에 누워 제 몸에 올라탄 수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얀 햇살이 수현의 살결 위에 부서지며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살결 위에 흔들리는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부풀어 오른 젖이 출렁였다. 아이를 담고 있어 둥글게 솟아난 배 아래에는 발기한 좆이 달라붙어 껄떡댔다. 흔들리는 몸짓을 따라 잔뜩 흘러나온 애액이 두 사람 사이에서 쩍쩍 달라붙었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아응, 응! 으응. 흐응…… 하읏!”

수현은 두 팔을 뒤로 뻗어 침대를 짚고 상체를 뒤로 젖혔다. 정강이를 바닥에 댄 채로 허벅지에 힘을 주어 둔부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잔뜩 좁아진 구멍이 스스로 움직이며 들어찬 좆을 씹어 댔다. 기분 좋은 부위를 단단한 좆 머리에 비벼 대느라 가는 허리가 색스럽게 움직였다.

“응!”‘

한참 동안 명휘의 위에서 움직이던 수현은 어느 순간 허리를 꼿꼿이 펴며 고개를 격하게 꺾었다. 천장을 바라볼 정도로 고개를 젖힌 그가 입을 벌린 채 교성을 쏟아 냈다.

방 안에 울려 퍼지는 고음의 신음과 함께 수현의 배 아래 깔린 좆에서 정액이 쏟아져 나왔다.

명휘가 몸을 일으켰다. 상체를 세운 채로 자리에 앉아 바들바들 떨리는 수현의 몸통을 꽉 붙들었다. 수현의 몸이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한 그가 침대에서 허리를 튕기며 좆을 쳐올렸다.

사정하며 물을 내뿜는 내벽을 좆 머리가 빠른 간격으로 두들겼다. 수현은 자지러지며 온몸으로 울부짖었다.

“아응, 좋아! 응! 아으으응, 좋아, 응! 응!”

힘줄이 설 정도로 팔에 힘을 빡, 준 명휘가 욕망 어린 눈빛으로 수현을 노려보았다. 이윽고 붙잡은 수현의 몸통을 위아래로 잡아 흔들며 그도 사정하기 시작했다.

밤사이에 몇 번이나 사정을 했음에도 또다시 맞이한 절정의 순간은 명휘에게도, 수현에게도 너무도 황홀키만 했다. 허공으로, 배 속으로 각자 정액을 뿌려 대며 두 사람은 달뜬 신음을 내뱉었다. 

뜨거운 숨결이 순식간에 두 사람을 휘감았다. 지저귀는 새소리마저 두 사람의 신음에 가려져 멀게만 느껴졌다. 명휘는 사정이 끝날 때까지 수현의 몸통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하얀 살 위로 벌겋게 손자국이 나, 가는 허리를 더욱 부각해 주었다.

“하으, 흐…… 흐으으…… 하아…….”

사정이 끝나는 대로 수현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늘어졌다. 명휘는 허리를 끌어안고 수현의 몸을 제게 기대게 했다. 수현은 넓은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힘겨운 듯 몸을 들썩였다.

아직까지 안에 처박힌 좆이 죽지 않고 꿈틀대고 있었다. 아득하게 밀려오는 성감에 몸을 파르르 떨며 명휘의 목에 입술을 묻었다.

명휘는 땀에 젖은 수현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넘겨 주며 수현의 어깨에, 쇄골에 입 맞췄다.

전날 밤에 시작된 행위는 밤이 깊어져도 계속 이어졌다. 거의 새벽에 동이 틀 때쯤 잠이 들었지 싶다.

햇살이 찾아와 두 사람의 단잠을 깨웠을 때는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몸을 찾아 입을 맞추고 성기를 맞대었다.

이렇게 관계 후, 성기를 꽂은 채로 땀으로 젖은 몸을 부비는 순간까지도 명휘의 욕망은 꺼질 줄 몰랐다. 수현은 명휘에게 끝 모를 갈증이었다. 몸을 아무리 먹어 치워도 또 먹고 싶어만 졌다.

하지만 이미 날이 밝았고, 아이까지 가진 수현과 더 관계하는 것은 무리였다. 아쉽지만, 다시 날이 저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기침하셨나이까.”

때마침 소란이 잠재워진 틈을 타, 문밖에서 장 상궁이 말하였다. 그녀는 쿵쿵거리는 소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제야 말을 꺼낸 것이다.

“네. 일어났어요.”

행복한 듯, 명휘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던 수현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답하였다. 이에 닫혀 있던 하얀색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명휘는 아무렇게나 침대 한쪽으로 밀려나 있던 이불을 끌어와 헐벗은 수현의 몸을 감쌌다. 이미 저도 그렇고 수현도 그렇고 벗은 몸이라면 아랫것들에게 수없이 보여 왔지만, 이곳에 와서 생활한 뒤로는 자제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준비해 왔습니다. 아무래도 아래에 내려와 드시기 힘드실 것 같아서.”

장 상궁이 웃음을 섞어 말하자, 그녀의 뒤를 따라 두 명의 하인이 들어왔다. 그녀들은 동방인이 아닌 서방인으로 이곳에 와서 고용한 현지인이었다.

금발에 초록 눈을 하고 검은색 메이드복을 차려입은 여인들은 침실 탁자 위로 가지고 들어온 쟁반을 올렸다.

이제껏 황궁에서는 본 적 없는 서방의 음식이었다. 갓 구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크루아상과 딸기잼, 달걀 스크램블과 두툼한 소시지, 그리고 상큼한 오렌지주스와 고소한 우유가 그것이었다.

두 사람의 아침 식사를 배달한 하인들은 고개를 숙여 보이곤 곧장 몸을 물렸다. 그럼, 맛있게 드시지요. 인사를 건넨 장 상궁 또한 방을 나섰다.

둘이서만 남은 방 안, 고소한 빵 냄새가 진동하자 수현은 금방 허기가 돌았다. 입덧은 끝났지만, 배 속에 든 이의 몫까지 챙겨 먹어야 하다 보니 먹성이 좋아진 그였다.

“그만 식사해야지요.”

명휘가 수현의 볼에 살포시 입 맞추며 말했다. 수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명휘는 조심스럽게 수현의 몸을 들어 올렸다.

수현의 구멍에 껴 있던 좆이 빠져나가며 들어차 있던 정액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명휘는 얇은 이불로 수현의 몸을 감싼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현은 명휘의 목에 팔을 두르고 넓은 가슴에 얼굴을 기대었다. 몸통만 겨우 가린 탓에, 하얀 천 아래로 가는 두 다리가 훤히 드러났다. 명휘는 그대로 수현을 안고 식탁 앞에 앉았다.

수현을 내려 둘 것 없이 안은 채로 쟁반 위에 놓인 포크를 집어 들었다.

“내려 주세요.”

이런 자세를 하고 밥을 먹는다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부끄러워 수현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명휘는 수현의 청을 무시했다.

그저 입가에 미소를 드리운 채로 부드럽게 조리한 달걀 요리를 떠 올렸을 뿐이었다.

명휘가 달걀 스크램블을 얹은 포크를 수현의 입 앞에 들이밀었다. 수현은 그 커다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눈치를 보았다.

명휘가 직접 퍼 주는 음식을 받아먹자니 너무도 민망하였다. 도무지 입술이 벌어지질 않았다.

눈치만 보는 수현을 가만히 빤히 쳐다보다가 명휘가 한마디 했다. 포크 위에 얹어진 달걀 요리만큼 부드러운 말투였다.

“어서 받아먹지 않고.”

“내려 주시면 제가 직접…….”

“아니. 내가 직접 먹여 주고 싶소.”

수현은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눈동자만 굴려 대는 수현이 귀여워 명휘는 계속해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처음엔 수현과 떨어지는 게 싫어 안고 먹여 주려 했는데, 이쯤 되니 당황하는 모습이 귀여워서라도 계속 붙들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먹을 거요?”

난감해하던 수현이 결국 입을 벌렸다. 그 작고 예쁜 입술 속으로 노란빛의 달걀 요리가 쏙 들어갔다. 입안에 퍼지는 고소함을 느끼며 수현이 작은 입을 오물오물했다.

수현이 먹는 모습을 보자니 명휘는 먹지 않아도 배가 다 부른 것만 같았다. 먹는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운 수현이었다.

“이제 그만. 제가 직접 먹을게요.”

다시금 포크를 놀리는 명휘를 보며 수현이 얼굴을 붉혔다. 이만 자리에서 내려가려 몸을 틀어 보지만, 몸통을 꽉 붙잡은 팔뚝에 꼼짝조차 할 수 없었다. 힘으로는 절대 명휘를 이길 수 없는 그였다.

수현은 하는 수 없이 명휘의 무릎에 앉은 채로 몇 번 더 음식을 받아먹었다. 달걀 스크램블 한 입, 작게 자른 크루아상 한 입, 밭에서 바로 딴 듯 싱싱한 채소를 버무려 만든 샐러드 한 입, 다시 크루아상 한 입.

모이를 받아먹는 새끼 새처럼 수현의 입이 연신 오물거렸다. 그러다가 너무 저만 먹는 게 아닌가 싶어서 수현이 한번은 명휘가 내미는 포크를 물렸다.

“서방님도 드셔야지요, 어찌하여 저만 주시는 겁니까.”

그의 말을 듣고 명휘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대로 제 입으로 포크를 가져갔다. 부드러운 달걀 요리를 입 안에 넣고 으깬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포크를 들고 있던 손으로 수현의 얼굴을 잡아 제게 돌렸다. 그대로 입술을 맞붙이고 혀를 내밀었다.

“……!”

입술 사이를 비집고 나온 명휘의 혀가 부지런히 움직여 제 입속에 들어 있는 달걀 요리를 수현의 입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수현은 제 입속에 밀려오는 음식물에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명휘를 쳐다보았다.

명휘는 특유의 나른한 눈빛으로 수현을 바라보며 입안에 든 것을 옮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명휘의 입안에 들어 있던 음식물이 곧 수현의 입안으로 모두 넘어갔다. 수현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그것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수현이 음식을 삼키는 걸 확인한 명휘는 그대로 달걀 스크램블을 한입 더 떠먹었다. 역시나 입 안에 넣고 잘게 씹은 그가 다시금 수현의 입술을 찾았다.

이번에는 그저 넘겨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현의 입안에 혀를 밀어 넣고 음식물을 굴리기까지 했다. 수현은 또한 명휘의 혀를 받아들이며 입을 맞추고 침과 함께 음식물을 받아 목구멍 속으로 넘겼다.

두 번이나 같은 방식으로 음식을 받아먹은 수현은 차츰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이제 그는 부끄럽다는 생각마저 버리고 적극적으로 명휘의 혀가 넘겨주는 음식물을 받아먹었다.

마지막으로 명휘가 자른 토마토를 입 안에 넣고 입술을 부닥쳤을 때, 수현은 저가 먼저 토마토를 받아먹고 씹어서 명휘에게 넘겨 주었다.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으깨진 토마토가 몇 번이고 오갔다. 다디단 침과 함께 섞인 시큼한 토마토즙이 명휘의 목구멍으로도, 수현의 목구멍으로도 넘어 들어갔다.

“맛있어…….”

침이 번진 입술을 스스로 핥으며 수현이 야릇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 눈빛은 비단 명휘뿐만 아니라 어떤 양인이 보아도 견디지 못할 만한 것이었다.

입에 머금은 오렌지주스를 수현에게 먹인 뒤에 명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탁에 왔을 때처럼, 두 팔로 수현을 들어 안은 채 그가 침대로 향했다.

명휘는 그대로 수현의 몸을 침대에 눕혔다. 정말 자제하려고 했는데…… 이미 바짝 발기한 좆이 그의 이성을 앗아가 버렸다. 그것은 작은 보랏빛 꽃 향기를 내뿜는 수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봄날, 들녘에 만발한 자정향이 방 안을 온통 메웠다. 두 사람의 몸이 살포시 포개어졌다.

* * *

요란하게 아침은 맞이한 명휘는 정오가 지나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정갈하게 검은색 의복을 차려입고 짧은 머리를 한 명휘는 서방에서도 눈에 띄는 미남이었다. 동방인답지 않게 큰 키와 넓은 어깨, 그리고 정으로 깎아 만든 것 같은 선이 굵은 얼굴 덕분이었다.

특유의 차갑고 날카로운 눈매는 무릇 서방의 현지인들에게 신비하고 매력적으로 비추어졌다. 거기에다가 극양인 특유의 체향까지 더해져, 모든 현지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동방에서 온 이 미남을 두고 왕실에서는 특히나 관심을 가졌다. 그가 동방에 있는 거대 제국의 황제였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그와 만나기를 요청해 온 것이었다.

흰머리를 돌돌 말아 올린 우스꽝스러운 차림을 한 여왕은 단번에 명휘에게 푹 빠져들었다. 통역관이 없다면 대화조차 할 수 없는 사람임에도 단번에 그에게서 감출 수 없는 카리스마를 느꼈다.

여왕은 명휘의 망명을 받아 준 것은 물론, 공작이라는 작위와 함께 거대한 영토까지 선물했다. 비록 이제는 멸망한 나라의 황제라는 허명만 남았다지만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던 군주에 대한 예의를 보인 것이다.

덕분에 명휘는 이제 공작이라는 지위로 이 땅에 살게 되었다. 황제가 아닌, 한 명의 양인으로서 수현의 곁에 있고 싶다던 그 말을 지키기 위해. 이제 수현과 함께 이곳에서 또 다른 명휘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항구로 바로 가 주게.”

마차에 올라탄 명휘가 통역관에게 말했다. 그는 명휘의 곁에 수족처럼 따라다니며 통역 및 기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이였다. 

지시를 받은 마부는 항구를 향해 말을 몰았다. 두 시간 정도를 달려 명휘를 태운 마차가 항구에 도착했다. 항구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트렁크 가방을 이만큼 쌓아 두고 다른 대륙으로 여행을 떠나는 귀족부터, 새로운 일터를 찾아온 노동자까지.

북적이는 그곳에서 명휘는 마차에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몇 개의 배가 정박해 있었지만 그리 규모가 크지 않았다. 아직 기다리는 배가 도착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도 잠시, 곧 물살을 가누며 멀리서부터 커다란 배가 항구를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정박한 선박들과는 확연히 다른,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배였다.

거대한 물살을 가누며 배가 항구에 맞닿았다. 끼룩끼룩 갈매기 떼가 몰려들고, 구름 같은 인파의 웅성거림이 허공을 가득 메웠다.

곧 닻을 내린 커다란 배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긴 거리를 오간 배답게 그곳에서 내린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의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내리지.”

그제야 명휘가 몸을 움직였다. 마차에서 내린 그는 통역관과 함께 배가 정박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야말로 개미 떼같이 몰려드는 인파 속에서 그는 어렵지 않게 기다리던 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따가운 태양 아래, 갈색빛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걸어오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태주였다.

“기태주.”

명휘가 태주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태주 또한 수많은 사람 속에서 명휘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어떤 군중 속에 섞여 있다 하더라도 명휘의 존재감은 감추어지지 않았으니까.

“오랜만일세.”

의젓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는 명휘에 태주 또한 화사한 웃음으로 답하였다.

“오랜만일세.”

“오는 길은 괜찮았고?”

“덕분에.”

간단한 인사를 끝낸 두 사람은 곧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짧아진 명휘의 머리카락만큼 두 사람의 모습은 예전과 달라졌지만, 풍기는 느낌만큼은 다름이 없었다.

오랜 벗에게로 명휘가 먼저 태주에게로 손을 뻗었다. 이윽고 단단한 두 가슴이 맞붙었다. 그간 눈으로 볼 수 없어 마음속으로만 안녕을 빌어야 했던 벗을 반기며, 뜨거운 포옹을 선사했다.

그것은 저를 위해, 그리고 저의 가장 소중한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이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했다. 저와 수현을 위해 태주는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으니까.

“누가 보면 내가 자네 정인이라도 되는 줄 알겠군.”

태주는 그리 농을 하면서도 손을 내밀어 명휘의 등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그간 쌓아 두었던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털어 냈다. 

“이럴 게 아니라 어서 이동하지. 긴 여행길에 고단했을 텐데 말이야.”

명휘가 먼저 몸을 물렸다. 

“배 안에서 식사를 제대로 챙기기나 했는가? 변변치 않았을 텐데.”

“끼니는 거르지 않았다네.”

“좋지 않았다는 말이군.”

“그렇게 들리나?”

두 사람이 마차로 향하는 동안 마부가 다가와 태주의 짐을 건네받았다. 두 사람이 마차에 올라타고, 곧 짐을 실은 마부 또한 마차 앞에 올라탔다. 마지막으로 통역관까지 타고 나서야 마차가 움직였다. 왔던 길을 거슬러 가며 마차가 달려 나갔다.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는 마차가 덜커덩거렸다. 흔들리는 마차 속에서 태주는 창밖을 빤히 내다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무역을 해 왔던 장사치로 서방에 머무른 시간이 꽤 되긴 했으나, 오래간만에 보니 감회가 또 남달랐다. 그간 많이 변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떤가. 이곳에서 생활하는 건 불편하지는 않고?”

창밖에 두었던 시선을 거두며 태주가 먼저 말을 건네었다.

“어디 사람 사는 곳이 다를 데가 있겠는가.”

“그래도 황궁에서 지내는 것만은 못하지 않겠는가.”

“지긋지긋한 간신들 안 봐서 좋으네만.”

두 사람 사이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평소에 차갑디차가운 성정의 명휘라도 오랜 벗과 함께 있을 때면 농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렇다니 다행일세. 이곳에서 작위를 받았다고?”

“그렇다네. 공작이 되었네.”

“이런. 이제야 자네에게 말을 놓게 되었는데, 다시 존대해야 하는 건가.”

“전에도 내가 존대하라 한 적 없는 것 같은데?”

“감히 천자에게 말을 놓을 정도로 간이 크지 않아서 말이야.”

“간이 크지 않다라…….”

명휘는 뒷말을 붙이지 않고 속으로 삼켰다. 다 지난 일이긴 하지만 괜히 들먹여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가 않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태주는 아무렇지 않게 명휘의 속마음을 들추었다.

“왜. 감히 마마에게 흑심을 품은 이에게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다고?”

태주가 무척이나 아무렇지 않게 말했기에, 명휘는 다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

“다 지난 일 아닌가. 이미 인정한 것이기도 하고.”

태주가 명휘를 보며 한껏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을 보고서야 명휘도 굳은 얼굴을 풀 수 있었다. 그랬다. 태주의 말이 맞았다.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 인정한 일이기도 했고.

“이제 태주 자네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었나 보군.”

“그럴 리가.”

“그러면…….”

“자네의 진심을 믿을 뿐이지.”

명휘는 가만히 고개를 돌려 제 벗을 바라보았다. 배려심이 느껴지는 따듯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는 옛 생각에 잠기었다.

화마가 태화 황궁을 휩쓸었던 그때.

명휘는 오랫동안 사경을 헤매었다. 아무리 강인한 극양인이라 할지라도 그 불길 속에서 살아남기란 무리였다. 거의 다 죽어 가는 황제의 옥체를 거둔 것은 다름 아닌 태감이었다.

그는 혹여나 성치 않은 폐하의 모습이 적에게 노출될 것을 염려해 은밀히 궁 밖으로 향하였다.

그가 찾아간 곳은 전 재상의 집이었다. 이런 난리통에 태감이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오직 그뿐이었기에.

태감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관직에서 물러나 남은 생을 초야에서 보내고 있던 전 재상은 목숨이 위태로운 황제를 정성을 다해 보살폈다.

용한 의원을 불러들여 폐하의 옥체를 보살피게 하고, 구하기 어려운 온갖 약재를 구해 왔다.

또한, 의식이 없는 명휘를 대신해 함락당한 태화를 되찾기 위한 방도를 세우고 있었다. 비운을 맞이한 황국을 다시 황제의 손에 되찾아 드리려 했다.

태화는 한낱 성해의 봉기군 따위에 함락 당할 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황제의 부재로 이 지경이 되었지만, 폐하만 눈을 뜨면 모든 걸 다시 되돌릴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황제의 옥체가 호전되기만을 바라고 있었는데.

“폐, 폐하! 정신이 드시옵니까!”

정신이 든 명휘의 입 밖에서 나온 첫 마디는 너무도 뜻밖의 것이었다.

“귀비는…… 귀비는 어찌 되었느냐.”

명휘는 태화가 아닌 귀비를 먼저 찾았다. 이에 태감이 잔뜩 몸을 조아리며 답하였다.

“폐하. 폐하께서는 지금 옥체를 먼저 보존하셔야 합니다. 귀비마마의 안위는 그다음에…….”

“귀비가 어찌 되었느냐 물었다.”

끝내 귀비만 찾는 명휘에 태감은 하는 수 없이 사실을 고백하였다. 불난리 속에 사라지셨다고.

명휘는 성치 않은 몸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에라도 귀비를 찾아갈 기세였다. 그런 그를 붙들면서 태감이 울부짖었다. 폐하, 부디 성체를 보존하시옵소서. 우선은 폐하께서 기력을 되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폐하.

명휘가 다시 자리에 쓰러지고 나서야 소동은 가라앉았다.

하지만, 고작 그 순간뿐. 명휘는 다시 정신이 들면 깨어나 귀비를 찾았고, 그때마다 태감은 그를 말리고 나섰다. 몇 번이고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만 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명휘의 몸은 호전되었고, 화재를 당하기 전과 다름없을 정도로 완치되었다.

하지만 몸이 편안해질수록 명휘의 마음은 편할 수가 없었다. 그는 긴 시간 동안 오로지 한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그것은 제가 돌보아야 할, 다시 제 손으로 되찾아야 할 태화에 대한 생각이 아니었다. 오로지 떠나보낸 귀비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그 불길 속에서 스스로 죽을 생각까지 했다. 귀비를 위해. 귀비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귀비가 불 속에 갇힌 그 순간, 명휘는 확실히 깨달았던 것이다. 수현을 향한 제 마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수현을 살릴 수 있다면 제 목숨 따윈 기꺼이 버릴 수 있다는 것 역시.

그때는 생각에 앞서 몸이 먼저 움직인 거였다. 거의 본능처럼 그는 수현을 살리고자 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던 속마음이 그리 움직이게 한 것이었다.

불구덩이 속에서 울부짖는 수현의 목소리를 희미하게 들었던 것도 같다. 그 순간, 명휘는 행복했다. 제 손으로 수현을 살릴 수 있었기에. 그리고 또 슬펐다. 그간 제 진심을 깨닫지 못하고 수현을 아프게 했던 순간들이 후회되어서, 저 때문에 상처받았을 수현에게 미안해서.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수현을 그리 괴롭게 하진 않았을 텐데…….

“폐하.”

그런 명휘의 마음을 눈치챈 전 재상이 늦은 밤 찾아왔다.

“지금 폐하를 괴롭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노공의 물음에 명휘는 오래도록 시름에 잠기었다.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그토록 수현을 아프게 했던 그 순간, 순간들이.

“한 사람을 아프게 했다. 내 곁에 있는 그 긴 시간 동안.”

눈이 내려앉은 것처럼 새하얀 눈썹이 지그시 아래로 떨어졌다. 세월의 흔적이 남은 이마의 주름살이 펴지며 노공은 깊게 생각에 잠기었다. 그간 제가 보아 온 황제의 모습은 차갑고 냉정했으며,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잔혹했다.

하지만 지금의 황제는 그 누구보다도 감정에 치우쳐 있었다. 그간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은 모습이었다. 무엇이 그를 이리 만들었을까. 무엇이 얼어붙어 있던 그의 심장을 깨뜨린 것일까.

“그땐 몰랐었지. 짐만 보면 날카롭게 가시를 드러내는 그를 꺾어 버리고 싶었거든. 다신 그 오만한 얼굴을 들어 올리지 못하도록, 짐의 품 안에서 지게 만들고 싶었다.”

노공은 또 생각했다. 어쩌면 황제의 진짜 모습이 지금 이 모습이었던 건 아닐까 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전, 어린 황태자는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해맑은 눈을 갖고 있었다. 그것이 제 아비의 손에 가려지고 물들여지면서 사라지게 되었지만, 어떠한 계기로 되찾게 된 것일 거라고.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참 우습지 말이야. 이렇게 후회할 걸 알았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을…….”

노공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금 폐하께서 가장 중히 여기시는 것은 떠나보내신 그분이십니까.”

명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한때 거대한 대제국을 이끌었던 황제가 한 명의 음인이 제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그리 답했다.

“소신, 감히 폐하께 말씀드리기 어렵사오나, 한 말씀만 올리겠나이다. 소신이 이 나이가 되도록 살아오다 보니 깨닫게 되는 것이 하나 있었사옵니다. 그것은 연(緣)이옵니다.”

“연이라…….”

“사람은 본디 타고난 운명을 등에 지고 살아갑니다. 폐하께서 그리 모진 시간을 견디며 황좌에 오르신 것도 같은 이치겠지요.”

“모진 시간이라 하였느냐.”

“소신은 기억합니다. 폐하께서 그 작은 나무 상자에 갇혀 몇 날을 보내셔야 했던 그때를 말이지요.”

“…….”

“달라진 폐하의 눈빛을 보면서, 소신은 수많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비록, 잃어버린 그 순수한 눈빛이 한탄스러웠으나, 또 한편으로는 기대가 컸지요. 이리 모진 경험을 딛고 일어나신 분이니 분명 큰 제국을 운영할 것이다. 그 어떤 나라에 견주어 봐도 손색이 없을 찬란한 황국을 만드실 것이다.”

그때를 회상하듯 노공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일었다.

“그리고 미천한 소신의 생각은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폐하께서는 잔혹할 만큼 차가웠지만, 그만큼 현명하게 나라를 이끄셨지요. 태화가 그리 성대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어린 나이에 황좌에 오르신 폐하 덕분이었습니다.”

“늘 잔소리만 늘어놓더니, 재상의 입에서 이런 소리를 듣게 되는 날이 올 줄 몰랐네.”

“소신은 이미 재상이 아니지 않사옵니까. 관직에 있질 않으니, 이제 이런 얘기도 쉽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충신은 쓴 말을 내뱉고, 간신은 단 말을 내뱉는다던가. 명휘가 선황에게 질리도록 들은 얘기였다. 그래서 명휘는 재상을 좋아했다. 늘 쓴 말만 내뱉었지만, 그의 말에는 늘 진심이 담겨 있었기에.

“폐하께선 폐하의 운명을 받아들여 착실히 이행해 오신 것입니다.”

“짐이 그러했더냐.”

“예.”

“…….”

“그리고 사람 사이의 인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인연…….”

“폐하께서 적국의 왕자님을 받아들이신 것도, 정해진 인연에 의함이었을 테지요.”

명휘는 떠올렸다. 어렸을 적, 전쟁통에서 만난 그 커다란 눈의 아이를. 

생각해 보면 참 우스운 인연이었다. 그의 가족은 제 애비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비록, 그의 어미만큼은 저가 어찌 살릴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피에 남은 업보가 어찌 다 사라졌다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수현과 이렇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운명일지도 몰랐다. 이미 시작부터 뒤틀린 사이였으니까.

“그리고 짐과 귀비의 연은 거기까지였던 것이지…….”

말이 끝자락이 깊은 여운을 담아 길게 늘어졌다. 체념하듯 말하는 황제를 노공은 지그시 바라보았다. 긴 세월을 살아온 이답게 모든 것을 초월한 온화한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뭐라…….”

“귀비마마와의 인연은 그리 짧은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 무슨…….”

“어쩌면 그 모진 운명 속에서도 두 분이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끊으려야 끊어 낼 수 없는 연이 두 분 사이에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

“비록 폐하께서 짊어진 운명이, 그리고 그분이 짊어진 운명이 서로를 멀어지게 했을 뿐이옵니다. 다른 길을 향해 흐르는 그 운명 때문이리라 생각하옵니다.”

흑색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그의 머릿속이 온통 복잡하게 뒤섞였다. 그는 수현에게 원수의 자식일 뿐이었다. 그를 오랫동안 괴롭게 했고, 아픔을 주었다. 

하지만 만약 저가 황제가 아니었다면? 황좌에 있는 이가 아니었다면? 제 운명을 버리고서라도 그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황제가 아닌 단 한 명의 양인으로서 그의 앞에 선다면……?

“폐하.”

“…….”

“폐하께서 하명만 하신다면, 당장에라도 적군을 물리치고 황궁을 되찾아오겠나이다.”

“…….”

“어찌하시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운명을 좇으시겠습니까.”

“…….”

“아니면. 폐하께서 얻고자 하시는 연을 찾으시겠습니까.”

명휘는 답을 하지 않았지만, 이미 노공은 그가 무슨 대답을 할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폐하의 선택을 그는 존중했다.

어린 나이에 운명의 굴레에 갇혀 숱한 시련을 견뎌 내야 했던 황제였기에, 이제라도 폐하 본인을 위해 살길 바랐던 것이다.

“이제 보니 그대는 태화의 충신이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나에게 태화를 버리라 이르는 걸 보니.”

모든 결단을 내린 명휘가 웃으며 그리 말했다. 이에, 노공은 자리에서 몸을 한 발짝 물리었다. 그러곤 명휘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그간 태화를 이끌어 준 군주에게 표하는 마지막 경의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전 재상은 귀비마마의 거처를 명휘에게 전해 왔다. 그간 성해의 요새에서 지내다가 기태주와 함께 남쪽 지방에서 머물고 있단 소식을.

그리하여 명휘는 남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수현이 태주와 함께 서방으로 떠나기로 한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기억나는가?”

긴 생각의 끝에서 명휘를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 건 태주의 목소리였다. 명휘는 고개를 정면을 응시했다. 무겁지만은 않은 목소리가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무엇을.”

“그때. 자네에게 내가 물었었지. 무엇 때문에 다시 그분을 찾으려 하는 것이냐고.”

“…….”

“그리고 자네는 답했어. 이제라도 뒤틀린 인연을 다시 바로잡고 싶다고.”

명휘가 피식 웃었다. 그리 말했었던가, 너스레를 떨어 보지만 태주의 진지한 목소리는 바뀔 줄 몰랐다.

“사실 그 전부터 알고 있었네. 자네의 그분을 향한 마음이…… 진심이라는걸.”

“…….”

“어쩌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었네. 그분을 향한 자네의 마음이 그토록 간절한 걸 알면서도…… 그분을 곁에 두고 싶은 내 욕심 때문에.”

태주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명휘의 표정은 한껏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명휘는 알고 있었다. 오랜 벗이었던 두 사람이 한 사람을 향해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음을.

그리고 저를 위해, 그의 막역한 친구가 그 마음을 포기해야 했음을.

“그때. 뒤늦게나마 내가 왜 자네에게 서방으로 떠나는 배의 출발 시각을 알려 주었는지 알고 있나?”

명휘가 천천히 태주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복잡한 감정을 담은 눈으로 그를 주시했다.

“그분을 위해서였네. 그분이 자네를 원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을 하고는 태주는 명휘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을 보며 명휘는 가슴속에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감정은 여전히 태주에게 남아 있는 미안함과 또 한편으로는 이런 저를 받아 준 수현에 대한 고마움에 기인한 것이었다.

“미안하네. 자네에게 여러모로.”

진심으로 전한 말에 태주는 방긋 웃어 보였다.

“미안할 게 뭐 있겠는가. 그분이 선택한 일인 것을.”

“기태주…….”

“그분이 자네를 원치 않았다면. 나도 물러서지 않았을 걸세.”

“…….”

“비록, 그분의 마음을 얻지 못한들 계속 그분의 곁을 지켰을 걸세.”

태주의 말에 명휘도 짧게나마 웃음을 내비쳤다.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른, 장난기가 묻어 있는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앞으로 그런 일 없을 걸세. 이제 그 자리는 내가 늘 지킬 테니까.”

“지금 내 앞에서 으스대는 건가? 아깐 미안하다 하더니.”

“생각해 보니 자네 말이 맞는 것 같아서. 내가 미안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애초에 내 정인이었던 것을.”

“자네, 너무 태세 전환이 빠른 거 아닌가?”

“아니지. 아까는 예의상 건넨 말이었네만.”

두 사람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간 묵혀 있던 감정을 깨끗이 지워 낸, 그런 웃음이었다.

“그분께선 별일 없이 잘 지내고 계신가? 이제 산달이 얼마 남지 않았을 텐데.”

“너무 잘 지내셔서 탈이지. 이제 막 홀몸으로도 나 몰래 모르는 동네에 산책도 나다니시고.”

“그래? 혹, 자네한테서 도망갈 채비를 하는 건 아니시고?”

“거,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린 게군.”

“몰랐나? 자네 때문에 속 썩는 날 있으면 바로 내가 낚아채려고 했는데.”

“허. 내가 호랑이를 불러들였군.”

달려 나가는 마차 안에서 두 사람은 끝없이 농을 주고받았다. 그런 그들의 유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곧 마차는 거대한 성에 당도할 수 있었다.

잘 가꾸어진 정원을 지나, 마차는 으리으리한 대저택의 앞에 섰다. 보랏빛 꽃향기의 주인이 사는, 그 저택의 앞에.

“이만 내리지.”

두 사람이 곧 마차에서 내려와 저택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다. 문이 열리고, 대저택의 안주인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향긋한 꽃내음처럼 화사한 미소로 그가 두 사람을 보고 미소 지었다.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환한 미소였다.

<황제의 품에 지다>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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