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2/15)

11.

정오가 지나자 퍼붓듯 쏟아져 내리던 비가 그치었다.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았으나 하늘엔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하였다. 습한 기운이 만연한 땅이 여기저기 웅덩이가 고여 질척거렸다.

어둑한 하늘 아래, 태화 황궁의 서화문(西華門)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궐을 드나드는 신하들이었으나 간혹 상전의 심부름을 하는 나인들도 섞여 있었다.

줄지어 기다리는 인원 안에 숨어서 수현도 복장을 달리한 채 몸을 감추고 있었다. 평소 귀비가 입는 빨간색 의복이 아닌, 하얀색 천으로 만들어진 평상복이었다. 귀비의 얼굴을 아는 이가 그리 많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수현은 혹여나 저를 알아보는 이가 있을까 잔뜩 몸을 움츠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다음!”

긴 시간이 흘러 수현의 차례가 되었다. 험상궂은 얼굴을 한 문지기가 퉁명스럽게 손을 내밀어 보였다. 털이 덥수룩한 손이 매우 큼직했다.

“아패(牙牌)를 보여 주시오.”

수현과 그의 나인이 수문장에게 아패를 내밀었다. 수현이 미리 준비해 놓은 아패였다. 성명과 출신, 관직 등을 기록한 아패를 문지기가 살펴보는 동안, 수현의 옆에 있던 나인이 정중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저는 영화궁에 속해 있는 여어(女御) 입니다. 귀비마마의 명을 받아 봉인(縫人)을 궁에 데려왔다가 함께 나가는 길입니다.”

아패를 훑어보던 문지기가 시선을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한 명은 눈에 익은 얼굴이 분명한데, 다른 한 명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아라.”

입술을 몇 번 짓씹다 수현이 고갤 들어 올렸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문지기를 바라보니, 험상궂은 표정으로 문지기가 물어 왔다.

“봉인이라 하였다?”

“예…… 그렇사옵니다.”

“궁 안에는 내사복(內司服)이 있거늘, 어찌 시사(市肆)의 봉인이 궐에 들어왔단 말이더냐.”

꿀꺽, 마른침이 수현의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그는 최대한 침착하게, 준비해 온 얘기로 답하였다.

“귀비마마께서 아끼는 상궁에게 사복을 지어 주길 바라셨나이다. 황궁의 의복을 담당하는 내사복에선 이를 할 수 없으니, 직접 소인에게 오라 하시어 일을 맡기셨나이다.”

문지기가 나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저자의 말이 틀림이 없으렷다?”

“예. 틀림없이 그렇사옵니다.”

문지기는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는 듯하더니 그대로 고개를 까닥여 보였다. 그만 가 보라는 것이었다. 문지기의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수현과 나인이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내디딜 때마다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겨우 몇 걸음만 걸으면 서화문이었거늘, 그 짧은 길이 십 리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거기, 잠깐!”

그렇게 줄지어진 군중에 섞여 수현이 어렵게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던 그때, 별안간 뒤에서 수현을 잡아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순, 수현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자리에 선 채로 어찌하지 못하고 입술을 짓씹는데, 옆에 있는 나인이 대신 뒤를 돌았다.

문지기의 옆에 또 다른 문지기가 바짝 붙어 있었다. 둘은 수현과 나인을 보며 무엇인가 속닥이는 듯하더니, 잔뜩 인상을 쓴 채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신지요.”

나인이 애써 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온 문지기가 의뭉스러운 사내를 다시 한번 눈여겨보며 물었다.

“한데, 귀비마마께서 며칠 전에도 봉인을 궁에 들이시지 않았는가.”

“……그렇사옵니다.”

“그때 보았던 봉인은 저리 생기지 않았던 것 같은데?”

“다른 봉인을 불러들이셨나이다.”

나인과 대화를 끝낸 문지기는 그래도 석연치 않다는 듯 옆에 문지기와 다시금 조용한 말을 나누었다.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들의 표정만큼은 매우 심각했다.

“다시 얼굴을 보여 보아라.”

일이 틀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은, 문지기가 다시금 수현에게 얼굴을 들어 보라 했을 때였다. 수현은 한참이고 망설였다. 방법이 없어 그가 천천히 얼굴을 들어 올렸다. 목덜미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어 댔다. 새파랗게 질린 입술 색만큼이나 그러쥔 빈주먹이 덜덜 떨리었다.

“…….”

수현의 얼굴을 쳐다보는 문지기들의 눈이 가늘어졌다. 의심쩍다는 듯 요리조리 살펴보던 그가 옆에 있는 이와 조용히 속삭였다.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듯 온 세상이 조용했다. 눈앞이 아찔하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그만 보내 주었으면 좋겠건만,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문지기에, 심장이 자꾸만 타들어 갔다.

“흣!”

얘기를 끝낸 문지기가 대뜸 수현의 팔뚝을 낚아챘다.

“무, 무슨 짓입니까!”

놀란 나인이 소리치며 달려들었지만, 나머지 문지기에 가로막혀 나가떨어져야만 했다. 팔뚝을 붙잡힌 채로 수현의 동공이 정처 없이 떨리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문지기를 쳐다보는데, 잔뜩 굳은 얼굴로 힘주어 말했다.

“잠시 하문할 것이 있으니 너는 궐로 가야겠다.”

문지기가 세차게 수현을 잡아끌었다. 그대로 덩치 큰 사내에게 이끌려가며 수현이 발버둥을 쳤다. 이대로 궐에 끌려간다면 신분이 들통날 것이 분명했다.

“마마!”

그때, 끌려가는 수현을 보며 나인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분명 실수로 한 말이었지만, 그녀가 뱉은 말은 그 어떤 말보다도 문지기에게 확신을 줄 수 있었다.

“마마……?”

혹여나 하는 생각에 문지기의 손아귀에 든 힘이 느슨해졌다. 문지기의 힘이 느슨해진 틈을 타, 수현이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곤 세게 불알을 걷어찼다.

“억!”

배알이 뒤틀리는 고통에 문지기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리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수현이 재빨리 발걸음을 내디뎠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또 다른 문지기가 수현을 잡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이를 놓칠세라 나인이 사내에게 매달렸다.

“놔라! 놔라 이년아!”

“아니, 아니 되옵니다. 마마를 보내 주시어요!”

“이년이!”

나인은 죽을 각오를 하고 이를 악물었다. 우악스럽게 떼어 내는 손길에 나가떨어지다가도 다시 달려들어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그러자 사내는 나인에게 발길질을 하며 소리쳤다.

“여봐라! 당장 마마를 뫼셔라! 어서!”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서화문을 지키고 있던 나머지 병사들이 다가왔다. 사내가 다급하게 손짓으로 도망치는 수현의 뒷모습을 가리켰다.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는 수현을 쫓아 사내들이 뛰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며 지켜보는 사람들을 밀치고, 지나가는 수레에 우당탕탕 부딪치며 수현은 허겁지겁 달아났다. 뒤에서는 계속해서 쫓아오는 이들이 악을 쓰며 귀비를 불러 댔고, 땅에 고여 있는 빗물이 자꾸만 튀어 옷을 더럽혔다.

헉헉. 숨이 끝까지 차올라 폐가 뚫려 버릴 것처럼 아팠다. 정신없이 내달리는 통에 세상이 저를 향해 달려드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었다. 정확히 저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하면서도 수현은 미친 듯이 달려 나갔다.

쓰러질 듯 말 듯 위태로운 몸짓이 무척이나 애처로웠다. 새하얗게 질려 있던 얼굴은 불게 열이 오르고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평민처럼 단정하게 묶었던 머리는 거친 움직임에 풀어져 산발이 되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마마! 귀비마마!”

징그럽게 쫓아오는 사내들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고막을 할퀴었다. 승냥이에게 쫓기는 작은 짐승처럼 수현의 눈동자를 두려움이 잔뜩 뒤덮었다. 폐가 찢길 듯 숨이 차오르고, 한계에 다다른 몸이 후들거렸지만, 수현은 쉬지 않고 계속 달려 나갔다. 

그런 그의 발걸음은 어느덧 이름 모를 산자락에까지 와 닿아 있었다. 망설일 새도 없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처량한 숲속에서 쫓기는 자의 숨소리와 쫓는 자의 고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날은 더욱 어두워져 흡사 해가 진 저녁처럼 보였다. 어두운 숲을 헤치는 사내들의 손길이 우악스러웠다. 그들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바람에 휩싸인 숲만 청승맞게 우짖고 있었다.

* * *

잔뜩 젖어 질척거리는 땅을 내리찧으며 말발굽이 달그락거렸다. 커다란 근육이 드리워진 허벅지를 출렁이며 검은색 건장한 말이 쏜살같이 내달렸다. 고삐를 쥐어진 자는 연신 튼실한 허벅지를 차며 ‘이랴! 이랴!’ 소릴 내질렀다.

흙탕물을 잔뜩 튀기며 뛰던 말이 발을 멈춘 것은 어느 산 중턱에 들어서고 나서였다.

“워, 워.”

고삐를 세게 잡아당기는 사내의 손짓에 말이 푸드덕 울음소릴 내며 자리에 섰다. 사내는 산허리 아래 비탈길을 내려가고 있는 한 무리를 눈여겨보았다.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긴 행렬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붉은 칠을 하고 황금으로 치장한 난여를 탈 수 있는 사람은 하늘 아래 단 한 분밖에 없었으니까.

“이랴! 가자!”

사내가 다시금 거칠게 말의 배를 걷어찼다. 다시금 흑마가 세차게 발을 굴렀다. 그대로 비탈길을 타고 말이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흙에 고인 빗물이 사방으로 튀고, 말은 재빨리 달려 그새 난여를 따라잡았다.

“폐하! 황제 폐하!”

다급하게 다가오는 사내에, 행렬의 최선방을 지키고 있던 태감이 뒤를 돌아보았다. 불룩 튀어나온 눈두덩이를 씰룩거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다가오는 사내를 지켜보았다. 이내 궁에서 보낸 전령임을 눈치챈 그가 손을 들어 올려 행렬의 이동을 중지시켰다.

“태감 어른!”

단번에 태감에게 당도한 사내가 말을 멈추었다. 그대로 말에서 내린 그가 고개를 꺾어 태감께 인사하였다.

“자네가 여긴 어인 일인가.”

“급히 폐하께 보고드릴 일이 있어 이리 찾아오게 되었나이다.”

“급히 보고라.”

그럴 일이 없을 텐데, 태감은 의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손을 내밀었다. 사내가 태감에게 두루마리로 된 서찰을 전하였다. 그것을 전해 받은 태감은 둘려 있는 끈을 풀어 종이를 펼쳐 보았다.

“이, 이건.”

글을 읽어 나가던 태감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었다. 잔뜩 메마른 입술 새를 비집고 탄식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내뱉지 못한 말이 쓰게 안으로 삼켜졌다. 그가 굳은 얼굴을 하고 종이를 다시금 말았다.

“폐하.”

난여에 난 창으로 가 태감이 고했다.

“궐에서 서신이 도착했나이다.”

이미 안에서 상황을 전해 들은 명휘였기에 잠자코 창을 통해 손을 내밀었다. 태감이 잔뜩 몸을 조아리며 명휘의 손에 간주지(簡周紙)를 넘겼다.

전언을 확인하는 동안 명휘는 말이 없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길이 고요했다. 먹구름에 가려 어둑해진 하늘 아래, 오로지 폐하의 명을 기다리는 이들만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폐하, 어찌하시겠나이까.”

상전의 답을 기다리던 태감이 여쭈었다. 그러자 듣기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낮은 목소리가 난여에서 흘러나왔다.

“당장 궁으로 돌아갈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선황제에게 제를 올리지도 않았는데,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감은 이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귀비마마의 일이라면, 무엇을 제쳐 놓고라도 늘 우선으로 챙겼던 황제였기에.

“예, 그리하겠습니다.”

태감이 고갤 들어 올렸다.

“태화의 황궁으로 돌아갈 것이다.”

쩌렁쩌렁. 숲의 나무를 타고 태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예, 분부를 받잡겠나이다. 일제히 소리친 이들이 행렬을 갖춰 회향하기 시작했다.

황제 일행이 궁에 도착한 것은 늦은 저녁이었다. 낮 동안 잠시 그쳤던 비가 다시금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빗속을 가르며 명휘는 곧장 궐 안에 있는 뇌옥(牢獄)으로 향했다. 이는 왕부정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곳으로, 황실에 속한 왕부정에 가둘 수 없을 만큼의 높은 신분의 죄인을 하옥하는 곳이었다.

“폐하를 뵈옵니다.”

뇌옥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명휘의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그들의 인사에 답조차 하지 않고 명휘는 문 앞으로 향했다. 이를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태감이 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문을 열어라.”

끼이익. 오래된 나무문이 신음을 뱉어 내며 열리었다. 어둠 속에서, 몸을 늘어뜨린 채 쓰러져 있는 수현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반듯한 미간이 주름을 만들어 내며 일그러졌다. 이제껏 황궁으로 향하며 억지로 억눌렀던 분노가 삽시간에 온몸에 퍼져 나갔다.

‘기어이. 네놈이……!’

끓어 넘치는 분노를 타고 그러쥔 빈주먹이 바들바들 떨리었다. 요즘 들어 조금 고분고분해졌다고 생각했거늘, 이제 조금 곁에 두고 지낼 만해졌구나 안심하고 있었거늘! 보란 듯 도망치다 잡혀 온 귀비에 극심한 배신감이 느껴졌다.

“폐하.”

열린 문을 두고도 들어서지 않는 황제를 보며 뒤에서 태감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혹여나 이대로 돌아가시려는 작정인가 싶어 의중을 물으려는데, 빗소리에 파묻혀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만 물러가거라.”

“하오나, 폐하.”

“물러가라 하였다.”

태감은 무어라 덧붙이려던 입을 다물고 그대로 몸을 조아렸다. 예, 폐하. 그리하겠나이다. 한마디 내뱉은 그가 뇌옥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과 함께 물러났다.

오롯이 홀로 남게 된 명휘는 꽉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 문턱을 넘었다. 자리에 서서, 어둠 속에서 명휘가 수현을 내려다보았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은 여기저기 할퀴고 찢겨 피가 묻어 있었다.

얼굴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넝마가 되어 있었다. 황실의 사람임을 대변하는 붉은색의 의복은 오간 데 없고 여기저기 찢긴 하얀색 옷을 걸치고 있었다. 다른 이로 위장하여 궁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더니, 평민으로 보이려 했던 것 같았다.

‘어리석은 이가 아니던가.’

참으로 그랬다. 아무리 감추고 숨긴다 한들 제 미색이 숨겨질 리가 없을 텐데. 어찌 귀비는 그것을 모른단 말인가.

저를 단번에 홀린 얼굴이었다. 숨 막히게 매혹적인 향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분명 명휘는 그에게 반했을 것이다. 이토록 사람의 혼을 빼어 놓는 외모를 타고났으면서, 어찌 숨기고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명휘의 속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이리 초라한 모습을 하고도 수현의 미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초췌한 모습이 양인의 마음을 더욱 흔들었다. 분명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하여도. 문을 열고 그의 모습을 확인하기 전까지만 하여도, 기어이 죽여 버리겠노라 다짐했거늘. 막상 마주한 수현의 얼굴은 그런 명휘의 의지마저 꺾이게 하였다.

“하…….”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명휘가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두 눈을 감은 채, 저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잠들어 있는 이를 더욱 가까이 보기 위해 그가 상체를 숙였다. 속눈썹을 길게 드리우며 곱게 감긴 눈이 간간이 움찔거렸다. 아픔을 호소하는 것인지, 아니면 악몽을 헤매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살포시 감긴 눈을 바라보다 명휘는 시선을 더욱 아래로 옮겼다. 살짝 벌어진 입술에선 색색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친 숨이 드나들고 있었다. 유난히 하얀 살결 때문에 더욱 빨갛게 보이는 입술에 명휘의 시선이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다. 저가 뜨겁게 빨아 대고 핥아 댔던 그 여린 살이 명휘의 마음을 마구잡이로 흔들어 댔다.

그때쯤, 명휘의 마음속에는 기묘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것은 단순히 분노라고 치부하기엔 조금 더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이었다. 분명 화가 났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하지만 이곳에 쓰러져 있는 수현을 봤을 때 그는 이상하리만큼 안도마저 느껴야 했던 것이다.

제 손에서 벗어나려 했던, 도망쳐 버리려 했던 그의 작은 새는 이렇게 다시 붙잡혀 새장 안에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잃어버렸더라면, 영영 이대로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날아갔더라면. 분명, 걷잡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제정신일 수 없었을 테니까.

온 나라를 피바다로 물들여서라도 찾아내고 말았을 터였다. 방방곡곡을 뒤져서라도 찾아내 다릴 분질러 곁에 묶어 둘 터였다. 한번 마음먹은 소유물이 제 손을 떠나는 꼴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볼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기특하게도 이렇게 스스로 잡혀 와 있었다. 제가 손을 쓰지 않아도 스스로 붙잡혀 이곳에 갇혀 있지 않은가.

‘결국, 너는 나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처음부터 내 것이었으니까. 네가 아무리 거부하려 애써도, 결국 너는 내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었으니까. 조금 더 확실히 해 두어야 했다. 저 여린 몸뚱어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주인을 벗어나려 한다면 어떠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는지 확실히 알게 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네가 알게 될까. 그리 모진 관계조차도 처연하게 받아들이는 어리석은 너를 어찌하면 깨우치게 할 수 있을까.’

명휘는 앉은 자리에서 오래도록 생각에 잠기었다. 그런 그의 시선에 문득 젖은 수현의 살결이 보였다. 찢긴 천 사이사이로 보이는 살결이 유난히 시선을 잡아끌었다. 설원에 피어난 한 떨기 꽃처럼, 군데군데 붉게 물든 하얀 살결이 미치도록 색욕을 자극했다.

불현듯, 그런 명휘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음인이었다. 제 앞에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이는 틀림없는 음인이었다. 양인의 씨를 품어 양인을 잉태할 수 있는 유일한 형질. 그러했기에 황실에서는 대대로 후사를 잇기 위해 음인을 궁에 들이지 않았던가.

‘그래. 너는 음인이었지.’

음인은 그 어떤 성별보다도 모성애가 강했다. 그러니 황제의 용종을 품어 황손을 잉태한다면 그도 더는 어찌 못할 터였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도망 칠 궁리 따위, 절대 생각하지 못할 터였다. 제 배 속에 든 아이의 아빠를 두고 어찌 도망갈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명휘의 얼굴엔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너의 자궁에 씨를 뿌릴 것이다. 너의 자궁을 뚫고 들어가 가장 깊은 곳에 내 씨를 심을 것이다. 그리하면 너는 나의 아기를 갖게 되겠지. 태화의 황좌를 이어받을 양인을 말이야.’

이제껏 수많은 관계를 해 왔지만, 명휘는 한 번도 그에게 결착을 시도하지 않았다. 무릇 음인은 평인 여자와 달라서 결착이라는 과정을 통해서만 임신할 수 있었다. 결착은 음인의 생식기 안에서 양인의 성기가 한계까지 부풀어 오르며 배 속에 숨겨진 자궁을 찢고 그 안에 씨를 뿌리는 것을 말했다.

여태껏 수현을 장난감 정도로만 생각했던 명휘는 그에게 결착을 시도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삐뚤어진 집착과 소유욕에 눈이 먼 그가 결국 내린 결론은 수현을 임신시키는 것이었다. 저를 향한 수현의 증오가 얼마만큼 큰 것인지는 몰라도, 그것이 모성애를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

수현을 임신시킬 생각만으로도 벌써 명휘의 체향이 짙어졌다. 아까부터 발딱 서 있는 생식기는 삽입을 재촉하며 침을 질질 흘려 대고 있었다. 수현을 향해 그가 손을 내뻗었다. 피가 번져 붉게 변한 옷자락을 천천히 걷어 냈다.

긴 옷자락이 거두어지자, 얇은 천이 잔뜩 달라붙은 다리가 보였다. 보는 것만으로도 끓어오르게 하는 가느다란 두 다리를 훑어보며 명휘가 침을 다셨다. 잔뜩 차오른 성욕에 목 뒤가 다 뻐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명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개를 비틀어 꺾으며 성욕으로 물든 모가지를 매만졌다. 잔뜩 부풀어 올라 꺼떡대는 좆을 느끼며 그가 체향을 한껏 풀었다. 이쯤 했으면 눈을 뜰 만도 하였다. 아무리 정신을 잃었더라도, 이 정도 체향에 반응하지 않을 음인은 없었으니까.

“으음…….”

명휘의 예상대로 수현이 조금씩 눈을 깜빡였다. 몇 번이고 찔끔거리며 움직이던 눈꺼풀은 일순간 콧구멍을 파고 들어오는 강한 체향에 각성하듯 확, 뜨여졌다. 본능적으로 향이 나는 곳을 향해 수현이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느른한 눈빛을 한 채로 거만하게 저를 내려다보는 한 명의 양인이 보였다.

“흡!”

수현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참을 수 없는 공포가 발끝에서부터 밀려왔다. 이제껏 맡아 왔던 체향과는 차원이 다른 농도였다. 너무도 무거워 그대로 공기 아래로 가라앉을 것만 같은 체향에 온몸이 달달 떨려 오기 시작했다.

“정신이 드는 것이냐.”

공포에 휩싸인 수현과 달리 체향의 주인은 한없이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차라리 화를 내고 윽박이라도 지르면 덜 두려웠을 것을. 차라리 너그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에 수현은 살기를 느껴야만 했다.

“그대의 얼굴이 이리도 상하니 짐의 마음이 아프다.”

바들바들 떨어 대는 가여운 음인을 앞에 두고 명휘가 몸을 숙이었다. 공포로 가득한 수현의 볼을 쓸어내리며 가볍게 매만졌다. 핏기가 가신 볼을 타고 찢어진 입꼬리로 명휘의 손이 옮겨 갔다. 아직은 마르지 않은 피를 엄지손가락 끝에 묻힌 채로 그가 입가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한지에 먹물이 번지듯, 새하얀 얼굴에 피가 번져 나갔다.

“아마도 목이 마를 테지.”

거만한 표정으로 명휘가 몸을 일으켰다. 그대로 뇌옥의 구석으로 향한 그가 물을 한 바가지 떠올렸다. 자리로 돌아온 그가 자리에 선 채로 천천히 바가지를 기울였다. 지쳐 버린 몸뚱이가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본능처럼 떨어지는 물을 향해 입을 벌렸다.

길게, 길게 아래를 향해 흘러내리는 물을 허겁지겁 받아마셨다. 입 안에 바로 고이지 못한 물이 흘러넘쳐 기다란 목을 타고 옷깃을 적셨다. 얇은 천이 젖어 들며 속살에 잔뜩 들러붙었다. 그 모습을 즐기려는 듯 명휘는 물줄기를 옮겨 수현의 몸 전체를 적셨다. 야하게 들러붙는 천 조각에 은근히 내비치는 속살이 선정적이었다.

“이상하지. 그대의 몸이 젖어 들수록 짐의 목은 더 목말라 오니까.”

물이 동나 버린 바가지를 바닥에 내버렸다.

“그리도 짐에게서 벗어나고 싶더냐?”

흑룡포를 감싼 허리띠를 풀었다. 단단한 두 다리를 감싼 바지춤마저 풀어내자, 속에 감추어 있던 거대한 살덩이가 해방되었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보아라. 짐의 손아귀에 들어왔을 땐 다시 못 기어 나가도록 그대의 아래를 갈가리 찢어 줄 테니.”

그대로 명휘가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지쳐서 반항조차 하지 못하는 수현의 두 다리를 잡아끌어 거칠게 옷을 벗겨 나가기 시작했다.

지독한 체향에 수현의 몸이 벌벌 떨려 왔다. 옷가지가 거칠게 풀어헤쳐지는 와중에도 수현은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다물리지 않는 입에 윗니와 아랫니가 달달 떨리며 부닥쳐 왔다. 온몸을 엄습해 오는 지독한 공포감에 신경이 마비되는 것만 같았다.

“흣!”

명휘가 수현의 몸을 뒤집어 돌렸다. 둔부를 잡아 올려 가는 두 다리를 벌렸다. 볼록 솟은 볼기짝을 잡아 벌리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작은 구멍이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색을 잃지 않은 연분홍색의 구멍이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아직 젖지 않은, 뻑뻑한 구멍으로 명휘가 얼굴을 처박았다. 잔뜩 오므라든 구멍 속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수현이 몸을 파닥였다. 파고드는 혀에 차갑게 식은 몸이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끊어먹을 듯 꽉 조여 대는 구멍에 대고 씹질을 하듯 혀로 드나들었다. 혀끝을 구부려 여린 속살을 긁어 대니 내벽의 주름이 꿈틀대는 게 느껴졌다. 밑구멍에 대고 입맞춤을 하듯 명휘가 혀를 놀렸다. 혓바닥을 넓게 펴서 구멍을 벌려 나가며 주름 구석구석을 틈틈이 핥았다.

“흐으……!”

내벽에 비벼 대는 혀에 맞춰 수현의 입안에서 야릇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숨 막히는 체향에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 대고 있으면서, 혓바닥에 애무 당하는 구멍만은 즐거웠는지 연신 입구를 조여대며 들어찬 살덩이를 씹어 댔다.

명휘는 아예 혀를 이용해 씹질을 하듯 구멍을 넘나들었다. 슬슬 구멍을 타고 애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애액에 뒤섞인 침이 자꾸만 새어 나와 입술을 더럽혔다. 그가 줄줄 흘러내리는 애액을 후루룩, 빨아먹었다. 마지막으로 구멍 입구를 덮고 있는 여린 살을 한번 깨무는 것으로 얼굴을 떼어 냈다.

갖가지 액체로 범벅이 된 입술을 손등으로 닦았다. 제법 박음직하게 풀린 구멍을 바라보며 그가 제 좆을 잡아 들었다. 아가리에서 침이 질질 흘러내리는 좆 머리를 잡고 녹진해진 구멍의 입구에 껴 맞췄다.

미끈한 애액을 타고 벌겋게 익은 귀두가 안으로 밀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갖고 태어난 구멍이 너무도 작았기에 매번 넣을 때마다 빠듯했다. 

구멍 입구의 주름이 펴지며 빠듯하게 입을 벌렸다. 버거운 좆 머리를 받아먹으며 입구가 한계까지 벌어졌다. 힘겨워하는 구멍처럼 수현의 입에서도 안쓰러운 비명이 흘러나왔다.

천천히 밀고 들어오는 단단한 살덩이에 좁은 통로의 속살이 짓눌리기 시작했다. 고통과도 닮은 쾌감에 수현은 도리질을 하며 고개를 추어올렸다. 

손으로 힘주어 꺾으면 부러질 것 같은 가는 허리가 덜덜 떨렸다. 개처럼 엎드린 자세 덕분에 바닥을 짚은 무릎이 까지며 피가 새어 나왔다. 그나마도 뒤에서 치고 들어오는 좆에, 까진 무릎 따위는 신경조차 쓸 수 없었지만.

사람의 팔뚝만큼 기다란 좆이 절반가량 구멍 속에 처박혔다. 명휘는 허리와 엉덩이를 유연하게 놀리며 구멍이 반쯤 삼킨 좆을 살짝 꺼냈다 넣기를 반복했다. 

좆 기둥의 표면이 어느 정도 미끈해졌다 느꼈을 때, 그대로 퍽, 뿌리까지 한 번에 박아 버렸다.

“흐아아!”

단번에 끝까지 처박힌 좆에 수현이 비명을 내질렀다. 이대로 아래가 반으로 쪼개지는 것 같아 괴로운데, 명휘는 그런 수현의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다는 듯 세차게 허리를 추어올렸다.

“읏! 아읏! 하으으, 읏!”

무식하게 커다란 살덩이가 세차게 배 속을 찍어 댔다. 수현의 골반을 잡은 채로 명휘가 좆을 들락일 때마다 그의 몸을 장식하고 있는 갖가지 근육이 꿈틀대며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 반듯하게 튀어나온 기립근을 타고 땀방울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넓은 등짝에 박혀 있는 광활한 광배근이 불끈거리며 몸집을 불려 댔다.

미끈하게 파고 들어가 폭신하게 속이 차오른 살에 대고 좆을 비벼 댈 때면, 좁디좁은 통로가 주름이 펴질 정도로 아찔하게 늘어났다. 

언제 넣어도 질리지 않는, 넣을 때마다 끔찍하게 좋은 속살이 명휘의 좆에 쩍쩍 달라붙었다. 주름이 잔뜩 펴질 정도로 늘어난 내장이 꿈틀대는 게 선연하게 느껴졌다. 뜨겁고 단단한 살덩이에 몸을 비벼 대는 내장을 느끼며 명휘가 그대로 세게 허리를 처박았다.

“하으으!”

고간이 볼기짝에 부닥치며 퍽,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닭 볏처럼 늘어진 커다란 알집이 좆질을 따라 수현의 고환을 때렸다. 흘러나온 애액에 젖어 두 개의 음낭이 끈적하게 붙었다. 천천히 빼었다 세게 치고 들어오는 허리 짓을 좇아 커다란 알이 떨어졌다가 쩍, 달라붙었다.

늘 받아먹는 좆이었거늘, 오늘따라 단단해진 살덩이가 짓눌러 대는 압박이 너무도 심했다. 숨 막히는 체향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데, 하물며 아래를 쑤셔 대는 좆은 더 못 견딜 것 같았다. 

좆으로 가득 찬 배 속이 불룩하게 솟아오르고 꺼지기를 반복했다. 배 속에 멍이라도 든 것처럼 찌릿한 감각이 계속되었다. 이대로는 한시도 참아 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마안…… 그만! 하으윽!”

견디다 못한 수현이 소릴 내질렀다. 귓가를 잔뜩 물들인 채로 그가 격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도무지 이겨 낼 수 없는 감각에 바닥을 긁는 손톱이 깨져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힘들더냐?”

“제발…… 싫어…… 못해…….”

“분명, 그대의, 아래를, 찢어 준다 했거늘.”

“그만…… 그마안!”

“이 정도도. 후…… 못 견뎌서야.”

퍽. 

좆 머리가 배 속을 다시금 콱, 찍었다.

“으아아! 하으으, 아!”

수현이 기겁할 듯 눈을 까뒤집었다. 강간당하는 배 속이 엉망진창이 되어 아팠다. 괴로움에 견디다 못해 수현이 허릴 뒤로 물렸다. 어떻게든 도망가고 싶어 바닥을 손바닥으로 짚은 채 앞으로 기었다.

이에 질세라 명휘가 냅다 수현의 머리채를 잡았다. 한 손으로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며 구멍에 집어넣은 좆으로 내벽을 문대었다.

“아으으으! 흐아아!”

더는 들어갈 곳이 없음에도,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는 좆 때문에 금방이라도 배에 구멍이 뚫릴 것만 같았다. 밀리고 밀린 내장이 그대로 명치 근처에서 불룩하게 뭉쳤다. 커다란 알이라도 들어찬 듯, 명치 부근이 둥글게 솟아 올랐다.

잡고 있던 수현의 머리채를 높고 명휘가 상체를 숙였다. 두 손으로 불룩해진 뱃살을 매만졌다. 제 좆 모양을 본뜬 양 자리 잡힌 언덕이 얇은 가죽 위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여기가 내 새끼가 들어설 집이다.’

음인의 배 속 안에 깊이 숨겨진 자궁을 뚫고 제 씨를 심을 생각을 하니 몸이 끓어올랐다. 이미 충분히 커다랗게 부푼 좆이 다시금 몸집을 불리기 시작했다.

몸을 바짝 붙인 채로 명휘가 수현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대는 음인이 어찌 아이를 가지는지 알고 있더냐?”

일순, 고통 속에서 헤매던 수현이 두 눈을 부릅떴다. 설마 하는 생각에 온몸이 그대로 굳어 버리는 것만 같은데, 명휘는 느릿한 손길로 계속해서 배를 쓰다듬어 댔다.

“그대의 가장 깊은 곳, 그곳에 있는 자궁을 뚫을 것이다.”

“……아…… 안 돼…….”

“짐의 옥근으로 그대의 자궁을 뚫고. 그 안에 씨를 뿌릴 것이다.”

“제발…….”

“그리하면 그대는 짐의 아이를 갖게 되겠지.”

“제발…….”

“태화의 유일한 황손 말이야.”

“제발…… 하으읏!”

수현의 배가 점점 빵빵해지기 시작했다. 배를 터뜨릴 듯 커다랗게 부푼 좆은 멈출 줄 모르고 계속해서 몸집을 불려 나갔다. 

점점 불어나는 배를 내려다보며 수현이 사시나무 떨듯 떨어 댔다. 두려움과 공포, 그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끔찍한 느낌이 정신없이 몸을 뒤덮었다.

“아아악!”

산처럼 불룩해진 배에서 끔찍한 고통이 전해졌다. 수현은 혼절할 듯 소릴 질러 대며 몸을 떨어 댔다. 배 속에 가득 찬 좆에 내장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것 같았다.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리고 감당할 수 없는 통증이 하반신을 때려 댔다. 손발이 뒤틀리고 벌어진 입에서 침이 줄줄 흘러내렸다. 눈앞이 껌껌하여 한없이 까마득했다.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 채 배 속에서 밀려오는 고통만이 또렷했다.

“흐아악! 하으으, 으아!”

짐승처럼 울부짖는 수현의 목덜미를 명휘가 깨물었다. 교미 중에 목덜미를 물린 암고양이처럼 수현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실신하듯 떨어 댔다. 목덜미의 살을 파고드는 이빨에도 아래쪽 통증이 너무 심해 어떤 통각조차 느낄 수 없었다. 이제껏 겪어 왔던 그 어떤 고통보다도 극심한 고통이었다.

까무러칠 듯 괴로워하는 수현을 바라보는 명휘의 눈빛엔 광기가 가득했다. 점점 더 커져 자궁을 찢어 나가는 좆의 느낌이 미치도록 황홀했다.

수현이 괴로워하면 괴로워할수록, 미쳐 가면 미쳐 갈수록 그가 느끼는 쾌감이 배로 증가했다. 그야말로 수현을 통째로 씹어 삼켜 버리고만 싶은 기분이었다.

“사. 살려…… 살려…… 주세…… 흡!”

어두운 방 안에 처절한 비명이 메아리쳤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견디다 못한 수현의 입에서 비명조차 흘러나오지 않게 된 그 순간!

팍, 하고 수현의 배 속에서 파열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배 속이 산산조각이 났다. 갈기갈기 찢긴 배 속에서 기어이 자궁의 문이 뚫렸다. 벌어진 구멍의 사이로 세차게 좆 머리가 파고 들어갔다.

“흣!”

명휘의 얼굴이 격하게 일그러졌다.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쾌감과 함께 좆 머리에서 정액이 터져 나왔다. 폭포수처럼 콸콸 쏟아져 나오는 뜨거운 액체가 막 구멍이 뚫린 자궁을 채워 나갔다. 불룩해진 배 속에 양인의 씨물이 가득 들어차고 있었다.

“크흣! 컥!”

혼절한 듯 소리조차 내지르지 못하는 수현을 붙들고 명휘가 고개를 추어올렸다. 황홀경의 극치를 넘어선 쾌락에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신음을 뱉어 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씨물을 쏟아 내며 커다랗게 부푼 좆 머리로 자궁을 문질렀다. 자궁 안에 씨를 심듯, 두드려 대는 좆 머리에 수현의 온몸이 진동했다.

“커억! 크으…… 흣!”

늘어진 수현의 몸을 명휘가 등 뒤에서 붙잡고 안아 올렸다. 불룩해진 수현의 뱃살을 거칠게 쓸며 그가 계속해서 목덜미를 씹어 댔다. 근육으로 빼곡하게 찬 엉덩이가 바들바들 떨리고, 두꺼운 허벅지에 힘이 팍 들어갔다.

명휘는 있는 힘껏 마지막 좆물까지 다 쏟아 냈다. 저조차도 감당되지 않는 황홀함에 취해 그대로 수현의 얼굴을 돌려 입술을 찾았다. 정신을 잃은 듯, 눈조차 뜨지 못하고 길게 늘어뜨린 혀를 게걸스럽게 빨아 댔다.

“하아, 하아. 하…… 하아. 하…….”

입맞춤이 끝나는 대로 명휘가 얼굴을 떼어 냈다. 수현은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로 늘어져 있었다. 허리를 천천히 놀리며 아직도 부풀어 올라 뺄 수 없는 좆으로 수현의 자궁을 유린했다.

“이제 그대도 어찌할 수 없겠지.”

의식조차 없는 수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대의 배 속에 나의 씨가 자라게 될 테니.”

명휘의 얼굴에 소름 끼치는 미소가 번졌다. 

잔뜩 부풀어 오른 수현의 배처럼, 하늘에는 둥근달이 떠올랐다. 마치, 갓 만들어진 생명을 축복하듯 서글프면서도, 스산한 빛을 내뿜으며.

* * *

건청궁 정전에 모든 신하가 모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돌을 집어삼킨 듯 무겁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궐 안이 온통 흉흉했다. 소문을 빌리자면, 귀비가 몰래 도망치려다가 잡혀 왔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중양절 제를 지내기 위해 떠났던 황제도 회향해야 했고.

그들은 또 무슨 화가 저에게 미칠까 걱정하고 있었다. 오늘 어전회의도 피바람이 불까 싶어 더없이 근심만 쌓여 갔다.

그렇게 다가올 시간을 앞두고 그들이 바들바들 떨어 대고 있던 그때, 정전의 문이 열리며 황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황좌에 앉은 천자를 보며 신하들이 한목소리를 내었다. 다들 공포에 절어 잔뜩 몸을 조아리고 있는데, 의외로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폐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의를 시작하라.”

신하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분명 무슨 사달이 나도 당장 나야 정상인데, 폐하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도무지 어찌 된 영문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폐하, 중양절에 관한 사안부터 아뢰겠나이다.”

재상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에 신하들은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라도 폐하께서 노하시려나, 그들의 등허리를 타고 한 줄기 땀이 흘러내렸다.

“지난 중양절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정사가 어지러워졌나이다. 선황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제를 지내야 마땅하온데 못다 치른 제는 어찌하오이까. 다시 선황의 능을 찾으시겠나이까.”

저, 저. 이리도 융통성 없는 자를 보았는가. 재상을 지켜보는 신료가 혀를 내둘렀다. 가뜩이나 폐하의 심기가 불편할 터인데 회의 초반부터 이리 사달을 자청하니, 참으로 딱했던 터였다.

이제 정말 화를 입겠구나.

누구라도 이 화를 누그러뜨려야만 했다. 서로 눈치만 보던 신료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내었다.

“폐하, 소신이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명휘가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재상의 말도 틀림없는 사실이오나, 이는 어디까지나 나라의 안위가 우선되어야 할 것으로 지금과 같이 궐 안이 어수선할 때에는 훗날을 기약하심이 옳은 줄로 아뢰옵니다. 폐하,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간신들이 입을 모아 합창하였다. 세월의 흔적 따라 새하얗게 물든 수염을 늘어뜨린 재상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저 간신들이 저가 낸 의견에 바득바득 반대하며 달려드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그였다.

다들 숨죽이며 답을 기다리는데, 정작 명휘는 딱히 이렇다 할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느른하게 내려앉은 눈으로 그저 무심하게 말했을 뿐이었다.

“궐 안이 수선하다 하였느냐.”

이제껏 잘만 놀려 대던 입이 어쩐지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것이. 폐하, 아무래도 귀비마마의 일도 있고…….”

“귀비의 일이라……?”

“저, 마마께서 궐을 나서려다 발각되시어 뇌옥에 갇히셨다고…….”

말끝을 흐리는 신하를 보며 명휘가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해 보였다. 그는 의자에 깊게 파묻은 몸을 일으켰다. 벌벌 떠는 쥐새끼를 앞에 둔 고양이처럼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하고 그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대는 누구에게 그 말을 전해 들었더냐.”

“예? 폐하, 그것이 아니오라 소신은…….”

“말해 보아라. 지금 영화궁에서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귀비를 누가 그리 모함했단 말이더냐.”

“……폐, 폐하.”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다. 귀비는 예전에도 지금도 영화궁에서 잘만 지내는데, 왜 그런 소문이 도는 것인지.”

이에, 여태껏 오만한 입을 놀려 대던 신하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읍소하였다. 뒤늦게서야 아차 싶었던 터다.

“폐, 폐하! 소신이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궐 안에서 도는 허언의 실상도 파악하지 못하고 입에 올린 소신의 죄입니다, 폐하!”

혹여나 오늘 불 피바람의 주인공이 제가 될까, 정전이 떠나가도록 울부짖었다. 

눈물로 호소하는 이를 바라보며 명휘는 그저 피식, 입꼬리를 추어올렸다. 귀찮다는 듯 그가 손짓하였다. 그만 치우라는 뜻이었다. 오늘만큼은 기분이 좋아 딱히 피를 보고 싶은 생각이 없던 그였다.

“폐, 폐하!”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망극하옵니다, 폐하. 

고요한 정전 안에 목숨을 건진 신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댔다.

“신들은 듣거라.”

최고 근엄한 자가 입을 여니, 모든 신하가 입을 다물었다.

“귀비에 관한 허언은 짐도 들어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그 소문의 출처를 밝혀 엄벌을 내릴 터이니, 그대들도 더는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것이야. 알겠느냐?”

여부가 있겠나이까, 그들이 외쳤다.

“또한, 흉흉한 소문이 돌아 귀비의 안위가 심히 걱정되니, 짐이 궐을 떠날 수는 없다. 제는 태화전에서 약식으로 진행할 터이니, 그대들은 그리 알고 있거라.”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들이 다시금 외쳤다. 하나같이 황제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혈안이 된 와중에, 오로지 재상만은 표정을 굳히고 있었다.

“다음.”

더는 이 문제에 대하여 논할 생각이 없다는 듯, 명휘가 다음 안건에 관해 물었다. 곧 신료 한 명이 사안을 꺼냈고, 평소와 다름없이 회의가 진행되었다.

회의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미시가 되어서야 겨우 회의를 끝낸 신하들이 마지막으로 황제께 예를 갖추었다. 구름처럼 웅성거리며 그들이 정전을 빠져나가는 동안, 어찌한 일인지 재상은 오래도록 자릴 지키고 서 있었다.

“재상은 아직 볼일이 남은 게요?”

그 모습을 보며 명휘가 이죽거렸다.

“폐하.”

세월의 온갖 풍파를 겪은 늙은이의 하얀 수염이 씰룩였다. 곧은 성정만큼이나 묵직한 목소리로 그가 고하였다.

“실은 신에게 독군어사로부터 서찰이 하나 도착하였나이다.”

독군어사라는 말에 명휘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폐하와 태화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나이다. 소신에게는 차마 자세히 전할 수 없다 하였으나, 분명 위급한 상황이라 하였나이다.”

명휘의 눈꺼풀이 낮게 내려앉았다. 이는 저도 인지하고 있는 바였다. 다만, 결단을 내리기엔 마음에 걸리는 한 사람이 있어 계속 미루고 있었어야 했을 뿐.

“한없이 미천한 소신이 감히 폐하의 뜻을 헤아릴 순 없겠으나, 이번 일이 혹, 귀비마마와 관련된 것은 아닐는지요.”

명휘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폐하께선 태화의 유일한 주군이십니다. 감히 바라옵건대. 폐하께선 사사로운 정에 이끌림 없이 정사를 돌봐 주시옵소서.”

“이보시오, 재상.”

이제껏 묵묵히 듣고만 있던 명휘가 입을 열었다.

“나는 늘 그대를 태화의 충신이라 여겼소.”

“폐하.”

“그리하여 그대가 하는 쓴소리를 모두 받아 주었지. 그건 그대가 더 잘 알 것이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하나.”

늙은이의 눈동자에 황제의 시선이 날카롭게 꽂힌다.

“매번 귀비의 일을 걸고 넘어지는 그대를 내 어찌 더 봐주어야 할지 모르겠소.”

재상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오늘이야말로 정전에 발을 들이는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 보시오. 짐이 그대에게 어찌해 주어야 할지.”

재상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힌 그가 바닥에 엎드려 황제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폐하.”

바닥에 납작 엎드렸던 몸을 일으킨 황제의 앞에 섰다.

“그간 폐하를 모실 수 있어, 영광 또 영광이었나이다. 비록 어린 나이에 황좌에 오르셨으나, 그 현명함만큼은 노신(老臣)조차도 매번 감복해야 했나이다.”

진심으로 고하는 말이 황제의 마음을 잔잔하게 울렸다.

“소신은 이만 정사에서 물러나겠나이다. 소신의 불충을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고, 지금껏 그래 왔듯 앞으로도 태화의 무궁한 앞날을 현명하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이만 물러가겠다는 충신을 보며 명휘는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더는 다른 이들의 입에서 귀비의 얘기가 도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그간 보여 준 그대의 충심을 잊지 않을 것이오.”

감정이 배제된, 무뚝뚝한 답변에도 노신은 입가에 웃음을 드리웠다. 폐하의 마지막 모습을 뇌리에 남겨 둔 채로 그가 정전을 벗어났다.

넓은 정전 안에 홀로 남은 명휘에게 태감이 다가왔다.

“폐하, 이리 재상을 보내셔도 괜찮겠나이까.”

그가 재상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고 있었기에, 태감이 걱정스레 물었다.

이에 명휘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할 것이 남았다는 듯, 의자에 몸을 깊게 묻고 머리를 짚었을 뿐.

“……위급한 상황이라…….”

그런 그의 머릿속에서는 아까 재상이 고하였던 말이 반복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결단이 필요한 시점 같았다.

<황제의 품에 지다> 4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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