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막연히 모르는 곳으로 갈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소프숍이 있는 지역은 멀지 않았다. 이 중사가 무감한 얼굴로 설명했다.
“옛날에는 이쪽 일대가 미군 주둔지 아니었습니까. 파견된 에스퍼 특수군이 즐길 거리가 필요했나 봅니다.”
치영은 그 말에 창밖을 보고 있던 시선을 돌려 그를 흘끗 바라보았다. 이 중사는 에스퍼 출신인 듯했다.
‘즐길 거리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손진화나 손진화의 부관이나 똑같이 역겨운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이 한 말이 뭔지 자각도 없는 사람에게 화낼 에너지가 없었던 치영은 며칠째 굶은 터라 핑핑 도는 시야에 두 눈을 감고 헤드레스트에 뒤통수를 기댔다.
이 중사는 치영의 그런 기색은 신경 쓰지 않는지, 말을 이었다.
“지금 가는 곳에선 말씀드린 신분대로만 행동해 주십쇼.”
치영이 새로 받은 신분은 ‘이창주’라는 이름의 26세 남성으로 치영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다.
가이드이자 소프숍에서 일하던 형이 지지난해 성병으로 죽은 뒤 천애고아가 된 이 남성은 일반인임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찾기 위해 소프숍까지 굴러들어 왔다는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꽤 구구절절한 위장 신분이었다. 가이드도 에스퍼도 아닌 일반인이 그들의 존재를 알려면 가까운 혈연 중에 이능력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굳이 그런 시나리오를 짠 듯싶었다.
차는 막힘없이 나아가 주한미군 기지가 있던 한적한 동네에 멈춰 섰다. 이 중사는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멀리서 내려줄 수밖에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치영이 가야 할 소프숍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길을 안내해 주고, 대포폰 하나를 내밀었다. 치영은 말없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내려준 곳으로 데리러 오겠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냥 가려다가 입을 열었다.
“1천 원만, 아니 3천 원만 꿔 주시면 센터 가서 갚겠습니다.”
“담배 사시려고요? 사제 담배는 3천 원보다 가격이 더 나가지 않나?”
이 중사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치영은 그냥 고개를 저었다. 이 중사가 피식 웃으며 지갑에서 5천 원을 꺼내 건네주었다. 말한 액수보다 넘쳤지만 치영은 별말 하지 않고 고맙다고 말한 뒤 내렸다.
차가 내려 준 곳엔 인적이 무척 드물기는 해도 오래된 편의점 하나가 보였다.
먼저 그곳으로 들어간 치영은 빵 하나와 우유 하나를 계산한 뒤, 가게 밖으로 나와 햇빛과 빗물에 의해 칠이 다 벗겨진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빵의 포장지를 벗겼다.
며칠 만에 음식물을 받는 속이 아팠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뭐라도 입에 집어넣어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꺼 둔 핸드폰이 신경 쓰이긴 했다. 바로 돌아가 춘란의 에스퍼들이 차려 준 음식을 먹겠다고 약속했던 터라 괜히 찔렸다. 면접을 보고 돌아간다 해도 시간이 무척 늦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치영은 이곳에서 얻어 내야 할 것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빵을 입안에 욱여넣은 뒤, 우유를 마셔 한꺼번에 삼켜 버렸다. 그런 다음, 빵 봉투를 곱게 접어 쓰레기통에 넣고 우유갑 역시 접어 분리수거까지 마친 후 이 중사가 말했던 방향으로 향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인적이 드물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외제 차도 간간이 끼어들어 있어 그 끝에 유명한 맛집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가이드 매춘을 하는 작은 마을 길목에 늘어선 차들일 뿐이었다.
치영은 환멸 난 표정을 지우려 노력하며 천천히 길목을 따라 들어가기 시작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데다가 입고 있는 옷이 평범하여 늘어선 차들 중 치영을 가이드로 아는 이는 없는 듯했다.
그게 아니었으면 지나가는 치영의 뒤통수에 대고 휘파람을 불어 댔을 것이다.
치영은 이 분위기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악 부대에서 지낼 때도 가끔 심부름을 위해 이 음습한 동네와 비슷한 곳에 몇 번 들른 적이 있었다.
가이드 매춘은 이악 부대의 주된 수입원이라 말단인 치영도 가끔 일손이 모자랄 때는 거들어야 했다.
그때의 얼굴과 달라진 부분이 있으려나.
다행히 이곳으로 오기 전 이 중사의 안내에 따라 타인의 얼굴까지 변형이 가능한 페르소나 에스퍼의 이능으로 얼굴을 바꾼 참이었다. 치영을 아는 사람이 봐도 식별 불가능할 정도로 다른 얼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란히 늘어선 차들의 창문에 비치는 얼굴을 들여다보며 치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악 부대에 있었을 때의 저를 알아보는 이가 있으면 안 될 텐데, 하는 괜한 걱정이 들었다.
다시금 이런 곳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오게 될 줄은 몰랐다.
당시에 치영은 어렸던 데다가 가이딩 양이 무척 적어 이쪽 길로 빠지지 않았을 뿐이지, 조금만 더 있었다면 아마 그나마의 작은 가이딩 양까지 탐을 내는 에스퍼들에 의해 이 동네로 흘러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곳은 치영의 또 다른 미래가 되었을 수도 있는 곳이었다.
치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급하게 먹었던 빵과 우유가 단전에서 내려가지 않은 채 꽉 막힌 기분이 들어 명치를 툭툭 쳐 댔다.
치영은 점점 마을의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정육점 같은 빨간 불빛 아래 서 있었다. 매춘 업소들이었다.
“어귀에 콜라숍이라고 쓰여 곳이 있을 겁니다. 뭐 밖에는 7080 콜라장이라고 안내되어 있을 텐데 그건 그냥 눈속임용이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가이딩 매춘 업소가 있을 겁니다. 그 동네에서 제일 크게 사업장을 연 놈들이에요. 이악 부대가 직접 운영하는 곳이죠.”
이 중사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휘황찬란한 무지개색 그림의 코팅지가 붙여진 출입문을 열었다.
안은 꽤 시끄러웠는데 한물간 가요가 크게 틀어져 있었다. 발라드임에도 스피커가 큰지 한때 유행했던 소몰이 창법으로 노래를 부르는 남자 가수의 목소리가 찢어지게 들렸다.
이 중사에게 들었던 소프숍의 정보들을 떠올리며, 치영은 조금 더 안쪽으로 향했다. 가게 안에는 질척한 공기가 떠다녔다. 기체 주제에 질감이 있는 것 같은 그런 공기인지라 치영은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무도회장처럼 플로어가 있는 공간 뒤로 테이블과 소파들이 놓여 있었다.
심부름을 나올 때 보았던 곳들과 달리, 이곳에는 에스퍼가 아닌 일반인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아마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받는 손님들인 듯했다.
무대 뒤로 돌아가면 가이드를 통해 성매매를 하는 장소가 나오는 구조일 것이다. 치영이 천천히 둘러보며 걷자, 지나가던 웨이터가 이질감을 느낀 것인지 다가와 물었다.
“자리 찾으세요, 손님? 혼자 오셨어요? 저희 연결 잘해드리는데. 손님 같은 타입은 또 누님들이 진짜 좋아하시니까.”
“아… 그게 아니라 저는 소개 받고 왔습니다. 오늘 면접 보러 오라 하셔서.”
“어? 아아-! 난 또……. 그럼 이리로 들어오면 안 돼요. 저쪽 밑에 계단 보이죠? 저기로 내려가세요.”
웨이터는 친절했던 기색을 지우고 바로 치영을 떠밀 듯 무대 옆 복도로 내몰았다. 일자로 생긴 복도 끄트머리에 어둑어둑한 곳이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인 듯했다.
치영은 웨이터에게 고맙다는 말없이 그리로 향했다. 웨이터가 치영의 등을 쿡쿡 쑤셔 미는 것이 짜증 났던 터라 딱히 감사 인사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대로 걸어 들어간 치영은 철제 계단을 내려가 지하로 향했다. 지하는 공기가 배로 안 좋았다. 시멘트에서 올라온 곰팡냄새와 질척한 습기의 냄새가 났다.
지하 복도에는 백열등이 아닌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자 주백색 등이 켜진 3평 정도의 사무실이 나왔다.
치영이 그쪽을 바라보자, 허름한 사무실에 어울리지 않는 새것처럼 보이는 사무 책상에 앉은 살집 있는 남자가 이리로 오라 손짓했다.
“이름이 이창주?”
“네.”
치영은 그리로 다가가며 대답했다. 남자의 키는 꽤 작은 데다가 살로 인해 어깨가 둥근 편이었다. 곱슬머리에 나이는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는 손을 까딱거려 치영을 부르더니 책상 앞에 플라스틱 의자를 끌고 와 치영에게 앉게끔 했다.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앉은 치영은, 그러고 보니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성매매 일당에게 인사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반과 면접을 보러 왔는데 인사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다행히 상대는 별생각 없는지 쌓여 있는 서류를 뒤적거린 다음에 이능으로 바뀐 치영의 얼굴이 프린트 되어 있는 이력서를 꺼내 펄럭거렸다.
“고등학교는 나왔다고.”
“네.”
“그럼 악셀은 할 줄 알고?”
차의 액셀을 말하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가 엑셀을 말하는 듯해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흠, 하고 목을 울리더니 대답했다.
“아니, 우리가 일단 애들 관리해 주고 이런 사람이 필요한데, 젊은 애 고용한 김에 악셀 정리 같은 것도 해 줬으면 싶어서.”
“그 정도는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 파일을 제게 맡기지는 않겠지만 대충 돌아가는 사정을 알면 이악 부대의 대장이 언제쯤 방문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치영이 쉽게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 역시 만족한 건지 이력서에 동그라미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