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치영은 자연스레 물러나려 했다.
안전 요원이 왔으니, 어떤 이유 때문에 쓰러진 건지 모를 환자의 몸에 손을 대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 안전 요원이 그런 치영을 붙잡았다.
“소위님, 가이드라고 하셨지 말입니다. 응급 병동까지 이동하면서 가이딩 좀 해 주실 수 없겠습니까.”
“네?”
당황하여 묻자, 요원이 부탁하는 게 난감하다는 듯 미안한 얼굴을 했다.
“에스퍼로 갑자기 발현한 듯한데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긴급 가이딩이라도 해서 바이털을 안정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소위님 괜찮으시면 병동까지만이라도 동행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 네, 알겠습니다.”
치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요원들과 함께 공익을 들것에 옮기는 걸 도왔다. 매점을 나와서 복도를 걸을 때까지 치영은 이름 모를 공익의 손을 잡고 가이딩을 시도했다.
F등급인 자신의 가이딩이 위급 환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기는 했지만, 공용 가이딩실에서 근무하며 위급 상황인 에스퍼들을 꽤 자주 가이딩 해 보았으니 경험을 살려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하면 그가 정신을 차릴 수 있게끔 돕고 싶었다. 일하다가 갑자기 쓰러진 걸 보니 어쩐지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들것과 함께 올라타면서도 치영은 공익의 손을 놓지 않고 성심성의껏 가이딩을 수여했다.
아주 가느다란 맥동처럼 움직이던 에스퍼 파장이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마치 치영의 가이딩 파장에 기운을 얻듯이.
치영은 그 감각을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보통 에스퍼 파장은 대부분 이런 느낌이었다. 맥놀이처럼 툭툭 튀기다가도, 치영이 손을 대면 안정을 되찾는 그래프 같기도 했다.
그래서 늘 자기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것 같은 백한의 파장이 신기했다. 대부분의 ESP 파장은 치영의 가이딩에 의해 잃었던 길을 찾듯 얌전히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인데, 백한의 파장은 치영에게 닿기만 하면 더욱 날뛰며 엉겨 붙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로비를 빠져나온 치영과 요원들은 그들이 타고 온 센터 내 군용 구급차에 올라탔다.
적십자 마크가 박혀 있는 국방색 차량의 후면 문을 연 요원들이 들것을 들어 올린 뒤 치영을 바라보았다. 치영은 짧은 한숨을 속으로 삼키며 구급차 내부로 올라탔다.
치영이 구급차 내부 벽면을 따라 늘어선 벨트가 달린 기다란 의자에 앉았을 때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허인나였다.
—왜 안 와요! 여기 돼지 새끼들이 안 소위님 샌드위치까지 다 처먹을 것 같다고요!
그녀의 뒤편에서 형인이, “인나야, 돼지 새끼들이 뭐니. 여기 네 상관이 몇이나 있는데. 돼지라고 해라.”하며 조곤조곤 타이르는 소리가 들렸다.
치영은 조금 난감한 얼굴로 요원들을 흘끗 바라본 뒤 말했다.
“…지금 에스퍼 한 분이 가이딩 고갈 상태의 위급 상황이라 임시 가이드로 병동까지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공익이 갑자기 발현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라 치영은 최대한 간략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작전 브리핑 중 멋대로 사라진 것과 다름없었지만 어쨌든 공용 가이딩실에서 근무하는 만큼 이게 치영이 해야 할 일인 것은 맞았다.
—엥? 어떤 정신 나간 놈이 길 가다가 갑자기 가이딩이 고갈돼요? 그놈이 안 소위님 괜히 귀찮게 한 거 아니에요? 누군지 계급이랑 이름 외워 둬요. 아시겠죠?
허인나가 황당하다는 식으로 혀를 차며 격분했다. 춘란의 대원들에게 치영의 상황을 보고하는 듯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그녀가 상황을 정리했다.
—그럼 소위님, 병동 가서 바로 연락 주세요. 김 중위님이 병동으로 마중 가실 거예요.
“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브리핑 중이었으니 차로 데리러 오겠다는 거구나, 싶어졌다. 치영은 제 잘못도 아니면서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사과했다. 괜히 폐를 끼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작전에 있어서 치영이 VIP 전담 경호 가이드를 해야 하니, 그를 빼놓고는 브리핑을 진행하지 못할 것이다.
그사이에 구급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센터 내 규정 속도를 무시하고 달려 어느새 에스퍼 병동 앞에 그들을 내려 주었다.
들것을 먼저 내리고 치영 역시 땅에 발을 내디디면서도, 이석의 시간까지 빼앗은 듯해 송구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치영의 표정 없는 얼굴 위로도 그 기색이 드러난 것인지, 마중 나온 응급 군의관에게 보고를 하는 동료를 바라보던 안전 요원이 치영에게 말했다.
“바쁜 일 있으신데 저희가 괜히…….”
“아닙니다. 환자가 먼저입니다.”
요원들을 따라 병동 안으로 들어가며 치영은 얼른 부정했다. 그는 복이 없는 대신 염치가 넘쳐 괜히 제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을 신경 쓰고는 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가이드로서 이제 막 발현한 것 같은 에스퍼의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만이라도 가이딩을 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거 때문에 다른 일에 폐를 끼칠까 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이다.
당장 들것에 실려 의식을 잃은 상태인 공익도 아닌 치영이 미안할 일은 아니었다. 그건 그저 공교로운 일에 불과했다.
그러나 때때로 아주 악한 사람들이 자신의 악함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처럼, 치영처럼 선한 사람은 제가 선한 줄을 모르고 살아간다.
제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일에 안타까워하며 그 착한 마음을 소비하는 동안, 그 반대의 사람들은 치영 같은 이들을 갉아 먹기만 했다.
그 예로, 들것에 실려 에스퍼 병동으로 향하는 공익근무 요원을 들 수 있다. 그는 치영과는 정반대의 인물상이었다.
“저 사람한테 닿자마자 이상한 게 흘러드는 것 같더니 쓰러진 거예요.”
깨어나자마자 그렇게 주장하는 공익 요원을 보며 치영은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에스퍼 병동으로 들어와 응급의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가이딩을 얼마나 해 주었으며, 그가 처음으로 가이딩을 받았을 때 어떤 상태였는지 소상히 설명하는 동안, 공익은 두통이 오는지 머리를 잡고 일어나 있었다.
그가 깨어난 걸 보고 살짝 반가워진 치영이 ‘깨어났네요.’ 하는 말을 건네기도 전에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저 사람이 내 에스퍼 능력인지 뭔지 하는 거 다 빼 간 거 아니에요?”
공익이 여전히 파리한 얼굴로 악다구니를 쏟아 냈다.
깡마른 몸에 작은 키, 공익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신체는 에스퍼의 것과는 현저하게 달랐다.
에스퍼들은 보통 체격이 다부지고 키가 크다. 김이석 소령처럼 키가 작을 수는 있겠지만, 그 역시 가까이서 보면 골격근의 두께가 두껍고 기골이 탄탄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에스퍼로 발현하기 전까지 미성숙한 신체일 경우에도 발현 후에는 갑자기 사람이 달라진 듯 한 달 안에 골격근량이 눈에 띌 정도로 증가하고는 한다.
가이딩이 고갈되었을 정도면 발현한 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다는 얘기인데, 침대에 누워 있던 몸을 일으킬 때도 갖은 애를 쓸 정도로 복근이 얇은 공익 요원의 신체는 에스퍼로 발현 후 시간이 경과했다고 보기 힘들었다.
가이드면 몰라도 에스퍼들은 발현 전에도 뼈대가 굵다. 유전인자가 있지만 미발현된 일반인들도 그러했다.
한마디로, 공익의 신체는 에스퍼로 발현할 수 있는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익은 자신의 주장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는 조금 전, 병동 스태프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에스퍼로 갑자기 발현했는데 또 갑자기 이능력이 사라졌네.”
“발현 인자도 없었는데 애초에 발현은 어떻게 한 거지?”
“그러니까. 게다가 또 이능력이 사라진 건 또 뭐야.”
그들이 들고 있던 건 공익 요원의 에스퍼 발현 검사지였다. 공익은 자신이 느꼈던 고통이 에스퍼 발현의 징후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사라지다니?
센터에 들어와 복무하는 공익이라면 누구나 에스퍼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된다. 북미권에서 유행하던 코믹스로 만든 영화라든지, 초능력자를 다루는 무수한 만화와 웹툰들.
그것이 실재하는 세상이 이면에 존재하는 걸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승리감에 도취되는 것이다.
그는 자라면서 자신이 그런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보통의 사람이었다면 그를 깨달은 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집중하겠지만 그는 아니었다.
억울하기만 했다. 똑같이 태어났는데 누구는 이능력을 쓸 수 있는 초인으로 태어나고, 누구는…….
그러나 그는 마치 신처럼 전지전능한 능력을 쓰는 에스퍼들보다, 가이드라는 존재가 더 싫었다.
신체적 능력은 저와 다를 바가 없으면서도 에스퍼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아무런 노력 없이 군에 들어와 어마어마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재수 없었다.
그래서 그 말을 듣자마자 저를 가이딩 하러 따라왔다는 치영을 지목한 것이다.
사실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도 없었다. 에스퍼의 발현에 대해서 자세한 사항을 알지 못하는 그는 그저 억울한 마음에 치영을 지목했을 뿐이다.
치영의 손이 닿는 순간 전류가 터지듯 몸 안에서 스파크가 이는 것 같았다. 그 후에는 목이 졸린 것처럼 숨쉬기가 힘들어 기절했었다.
에스퍼 발현 시 느낄 수 있는 통증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발현의 흔적인 희미한 파장뿐이었다. 이능력은 영원히 소실된 상태라는 잔인한 말과 함께.
가이드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에스퍼들에게 열등의식을 느낀다는 소문은 알음알음 들어 알고 있었다.
저 안치영이라는 가이드도 막 발현한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껴 그런 식으로 제 이능력을 앗아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말이 안 되는 얘기지만, 졸도 후 깨어나 멍한 머리와 치받는 분노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꼭 누군가 머리에 생각을 입력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제 능력을 빼앗은 이가 바로 저 가이드라고 소리 높여 분노하도록 말이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저 가이드의 부당함을 알리라고 머릿속 누군가가 끊임없이 속삭였다.
그는 핏발 선 눈으로 치영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