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혐오 만세-61화 (61/114)
  • 61화

    치영은 그대로 가이드 병동 앞에서 김민우를 만났다. 백한은 민우의 차 보조석 문을 열고 치영을 들어 올리다시피 해서 떠밀었다. 엉덩이를 움켜쥔 채로 말이다.

    “이 변태 하마 새끼…….”

    “응, 치영이 잘 가고. 야, 얘 잘 감시해라. 밥도 먹여, 꼭.”

    “알겠습니다. 대대장님은 어디 가십니까?”

    김민우가 열려 있는 보조석 창문을 통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백한은 보조석 차 문을 닫으며 손을 휘저었다.

    “알 필요 없고 저녁 먹이고 과일도 깎아드려. 존나 말랐어, 안치영이.”

    “예예.”

    다시 한번 시큰둥하게 대답한 김민우가 기어를 변속시키더니 차를 출발시켰다. 치영이 기백한에게 뭐라 따질 시간도 없었다.

    가이드 병동의 야외 주차장을 빠져나가며 김민우가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아니, 안 소위 대체 어디 갔었습니까. 우리 중대 전원이 안 소위만 찾았는데. 나중에는 기백연 소령님도 왔었습니다.”

    기 실장님이? 치영의 안색이 약간 창백해졌다. 폐를 끼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그게…….”

    “꼬박 하루 동안 사라져 버려서 허인나가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허 중위님이요?”

    “그 새끼가 안 그래 보여도 정이 많습니다. 정 많은 주제에 사람은 또 가리는데, 희한하게 안 소위는 오자마자 낯 가리는 것 없이 좋아하더라고요. 인교 놈도 그렇고.”

    거기까지 말한 김민우는 선바이저를 내리며 민망하다는 듯이 “뭐, 나도 그렇고…….”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치영은 제 귓등이 타듯이 붉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쑥스러웠다. 그렇게 걱정을 해 줬다고 생각하니 뭐랄까, 황송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현재도 동죽대의 소속이지만 그쪽에는 치영을 한 번도 못 본 대원들도 있었다. 치영도 그들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서로 소 닭 보듯 하기 바빴다.

    그 탓에 이렇게 걱정했다는 듯이 말할 때마다 그들의 원 안으로 들어간 기분이 들어 어쩔 줄 모르겠는 것이다.

    마치 제가 정말로 춘란대의 일원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각으로 치부하고 넘기려고 해도 자꾸만 들러붙는 것을 떨치기 어려웠다.

    입술을 달싹이며 아무 말 못 하고 있자 능글맞게 웃은 김민우가 자연스레 화제를 넘겼다.

    “안 소위가 북쪽 숲속에서 발견됐다는 건 들었죠?”

    “네.”

    “그거 인나 자식이 발견한 겁니다. 그냥 딱 봐도 안 소위는 의식 잃은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데 애가 울고불고하면서 얼굴이 땀이랑 눈물에 다 젖어서 안 소위 업고 오는데…….”

    “아…….”

    “지금도 안 소위 준다고 제 사비로 장 봐 와 가지고 박 대위님한테 요리시키고 있습니다. 가면 고마웠다고 한마디만 하시면 됩니다.”

    치영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한 것인지, 혹시나 부담스러워할까 봐 그저 인사면 된다고 상황을 축소시킨 김민우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치영은 김민우 덕에 그것들이 다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제 실종에 춘란의 대원들이 그렇게 신경을 써 줬다니 고맙기 이를 데 없었다.

    치영은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입술을 달싹였다. 청각이 예민한 에스퍼가 아니면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감사합니다…….”

    그 인사에 김민우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함인지 과장된 목소리를 내었다.

    “근데 대대장님이 진짜 장난 없게 화 많이 내셨습니다.”

    기백한이……? 치영은 믿기지 않아 다시금 물었다.

    “…기 중령, 님이요?”

    “안 소위 찾기 전까지 수색 대원 왜 안 빼 주냐고 센터장실까지 올라가서 망나니처럼 굴다가 센터장님 화나셔서 헌병대원들 부르고 그랬습니다. 기백연 소령님도 우리 대대장님 말리느라 애먹으셨고요.”

    …그래 보이지는 않았는데 이상하다.

    치영은 저 혼자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백한이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게 윽박지르고, 평소처럼 싸가지 없는 말만 하며 사람 속을 박박 긁어놓기만 했다. 그래서 치영은 믿지 않았다.

    ‘…뭐 또 저 혼자 수틀린 구석이 있었나 보지.’

    정상적인 사람이 또라이의 생각을 모두 읽을 수는 없는 것이다. 깊이 생각해 봤자 상식인인 자신만 피곤해지는 상황이 온다.

    그 때문에 치영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그보다 허인나와 이인교, 춘란의 막내들이 제 걱정에 눈이 부을 정도로 울었다는 말에 더 감격했다.

    ‘뭘 해 준 것도 없는데 왜 날 좋아해 주지.’

    치영은 그게 이상했다. 지금까지 치영에게 오는 관심들은 모두 조건이 붙었다.

    안치영이 가이드라서, 안치영이 S++급 에스퍼와의 매칭률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서. 그런 조건들이 붙어야만 사람들은 치영의 존재를 인식했다.

    애정을 준 것도 아니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넨 것도 아니고, 고작 관심을 받는 데에만 그렇게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가이딩실에서도 처음에는 서먹서먹했었다. 가이딩실 사람들은 치영이 백한과의 각인을 믿고 처지가 안 좋은 가이드인 자신들에게 잘난 척을 할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나 치영이 묵묵하게 일만 하고 성실히 행동하자, 그런 시선을 곧바로 거둬 주었다. 치영은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제 노력을 알아차려 준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것도 조건인 것은 마찬가지다. 치영은 제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증명해야 하는 삶을 살아왔다. 무조건적인 애정 같은 건 제게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춘란의 에스퍼들은 달랐다. 그들에게 따로 노력하여 다가가려는 시도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은 그저 다른 때처럼 뻣뻣하게 행동했다.

    원래 성격이 약간 무뚝뚝한 편이라, 가뜩이나 표적이 되기 십상인 센터 내 위치상 그런 성격은 득보다는 실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치영이 입을 다물수록 고압적이고 예의가 없다고 생각했다. 살갑게 다가가면 그건 그것대로 위선적이라고 느낄 거면서 말이다.

    치영은 그런 취급이 익숙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냥 원 밖으로 밀려나겠거니 싶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기복이 심한 우울증이 기승을 부리기도 했기 때문에 더 무력했다.

    그러나 춘란의 에스퍼들은 치영을 오해하지 않았다.

    치영의 진심을 매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펴 주었다. 치영에겐 그것이 제게 찾아온 행운으로도 여겨지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할 뿐.

    “저… 김 중위님, 바쁘지 않으시면 들르고 싶은 곳이 있는데…….”

    그래도 그들이 보여 준 호의를 당분간은 즐겨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애써서 밀어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서서 제 발목을 간지럽히는 파도처럼 다가온 옅은 온기를 잡으려 하지 않고 그저 느끼고만 있고 싶었다.

    그들이 모종의 이유로 제게 실망한다고 해도 지금의 기억이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쨌건 그들이 저에게 보여 준 호의에 약간이나마 보답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뭘, 어디를 들르게요. 지금 안 소위 몇 끼를 굶었는지나 알아요? 가서 빨리 밥 먹어야지.”

    “아……. 그래도 꼭 들렀다 가고 싶습니다.”

    김민우는 제 대대장에게는 한없이 까칠해도 나머지 에스퍼들에게는 물러 터지듯 순한 가이드가 처음으로 제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신기했다.

    빨리 밥을 먹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마냥 무시하기도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민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빨리 들렀다 가야 해요.”

    “네, 감사합니다.”

    치영은 꾸벅 인사를 한 뒤 누림동에 들렀다 가자고 했다. 누림동에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마카다미아 넛츠로 만든 아이스크림이 유명한 체인점이고, 다른 한 곳은 젤라또로 유명한 체인점이었다.

    치영은 지난번 순이네를 찾다가 그중 마카다미아 넛츠 아이스크림 가게를 발견했지만, 김민우에게 설명하려니 헷갈렸다. 그 탓에 막상 도착한 곳은 젤라또 가게였다.

    “나는 이 앞에 차 대고 있을 테니까 얼른 다녀와요.”

    “네.”

    차 문을 열고 나온 치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누림동에서 쓰는 돈은 군번이 적혀 있는 아이디 카드와 연동되어 있다.

    선결제 후차감 방식인데 그달의 합산한 지출 금액이 그다음 달 월급에서 차감되어 나머지만 지급되는 형태였다.

    치영은 그동안 정말 필요한 생필품이 아니면 구매하지 않았다. 텃밭을 기르기 위해 비료나 모종삽,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하는 검은 비닐 한 마를 산 것 외에는 저를 위해 써 본 일이 없었다.

    옷이나 속옷 등은 전부 군 지급품을 사용했다. 기백한은 옷이나 속옷들을 모두 유명 브랜드에서 구매하는 듯했지만, 치영은 받는 것이 있는데 굳이 다른 걸 구매하여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소비하는 것은 거의 처음이다 싶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어쩐지 가슴이 떨렸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고아로 자란 탓에 용돈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었고, 그다음엔 오지 산골짜기에 틀어박혀 간혹 장을 보러 읍내에 가는 것이 아니면 내내 이악 부대 안에서만 생활했었다.

    그러니 뭔가를 사러 상점에 방문하는 것 자체가 낯설기 그지없었다.

    “어서 오세요.”

    파란색 브랜드 로고가 박힌 모자를 쓴 종업원이 치영을 향해 인사했다. 치영은 놀라 문을 닫고 그 자리에서 짧게 고개를 꾸벅였다.

    저도 모르게 행진 때처럼 박자를 맞춰 걷게 되었다. 다른 군대보다 조금 더 느슨한 센터의 특성상 종업원은 치영이 이제 막 교육을 마친 신병인 줄 아는 듯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