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그러는 동안에도 노상 방뇨를 갈기던 놈은 제 동료로 보이는 이를 툭툭 쳐 가며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저 새끼 손도 안 닦았잖아. 더러워…….
치영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남자의 동료가 그들이 숨어 있는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다소 박색인 남자와는 다르게, 그의 동료는 차분한 분위기의 미남이었다. 백한처럼 화려한 생김새는 아니나, 얼음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냉정한 인상이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 묘하게 낯이 익었다. 어쩐지 익숙한 듯한 생김새. 치영이 기억 속에서 그의 얼굴을 뒤질 때였다.
찌잉, 하는 느낌이 두정골을 갈라놓을 듯 몰아쳤다.
“…허억!”
치영은 저도 모르게 숨을 집어삼켰다. 두통이 다시금 도진 것이다.
평상시에 있던 두통보다 몇 배는 더 강력했다. 구토감이 일었다. 땅이 위로 올라오는 것같이 일렁였다.
귀에서는 계속해서 삐이— 하는 이명음이 들렸다.
“뭐야 저새끼들은……. 음? 너 왜 이래.”
그들의 동태를 살피던 백한이 이상을 감지한 듯 치영을 돌아보았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러고 있을 틈이 없는데도, 치영은 저도 모르게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러다가 이내 손을 뻗어 땅을 짚었다.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잡을 수 있는 이성의 전부였다. 두통을 감내하는 것만으로도 큰 인내가 필요했다.
결국, 쪼그려 앉아 있던 치영은 두 눈동자가 돌아간다고 느끼자마자 기어코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백한이 반사적으로 치영을 잡아챘지만 이미 사지가 축 늘어진 뒤였다.
문제는 그들이 숨어 있던 곳이 풀밭인지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크게 났다는 점이다.
“뭐야, 거기 누구야!”
놈이 이쪽의 기척을 알아챈 듯 소리쳤다. 일반인도 눈치챌 수 있을 만한 소리였기 때문에 저쪽이 민간인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가 않았다. 백한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치영은 그 와중에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체온이 삽시간에 낮아진 듯한 몸을 끌어안고 백한은 한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그때였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소음기가 씌워진 듯한총의 탄발음이 났다. 이쪽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남자의 동료가 남자를 향해 쏜 것이었다. 물고 있던 담배를 툭 떨어트린 남자의 몸이 무너져 내려 제가 지려 둔 오줌 구덩이 위로 퍽 엎어졌다. 즉사였다.
“쯧.”
백한은 혀를 차며 사지가 늘어진 치영의 허리를 팔로 휘어 감아 제 옆구리에 단단히 붙이고는 벌떡 일어섰다.
남자를 살해한 그의 동료가 전속력으로 백한의 반대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뛰는 폼이나 속도를 보니 저쪽도 에스퍼가 틀림없었다. 민간인이 아님을 확인한 백한은 그대로 제 어깨 위에 치영을 둘러메고 뛰었다.
백한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바람에 그의 어깨 위에 짐짝처럼 매달려 있던 치영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의식을 차렸다고 해서 고통이 사그라든 것은 아니었다. 눈이 까뒤집히며 구토감이 이는 것을 참는 데에만 집중하기에도 벅찼다.
“헉, 윽!”
“내 등에 토하면 죽여 버린다, 치영아.”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상태에서도 백한의 목소리는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뜻밖의 상황에 흥분한 듯 호전적으로 들렸다. 에스퍼의 신체가 맹렬히 아드레날린을 뿜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백한은 심심한데 잘 걸렸다는 생각을 했다. 약간 신나기 시작했다.
파병에서 돌아와 전에 없이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중이긴 했다. 간만에 시작된 토끼 사냥을 이벤트성 퀘스트로 여기며 백한은 허벅지 근육을 부풀렸다.
일반인에 비해 아드레날린 분비량이 상당히 많은 에스퍼들은 그 분출량을 몸이 견딜 수 있도록 비약적인 심장근육과 수의근을 갖고 있다.
그는 폭발적인 하체 근육을 이용하여 달렸다. 맞닿은 치영으로부터 미미하게 가이딩이 새어 나왔다.
꼭 질주하는 중에 연료를 주입받는 기분이었다. 달리는 전차에 석탄을 들이붓는 느낌에 입꼬리가 저절로 째졌다.
굳이 중력 ESP를 쓸 필요도 없었다. 이대로 추격전을 즐기자 싶었다. 라면 먹기 전 간단한 준비운동으로 치면 될 일이다.
백한은 혀를 내밀어 제 아랫입술을 핥았다. 하필이면 치영과 닿아 있는 바람에 아랫도리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달리기에 거슬릴 정도는 아닌지라 백한은 개의치 않고 속력을 높였다.
“…어쭈.”
그러나 상대 역시 만만치 않았다. 달리며 방향을 꺾는 것이 야산을 잘 알고 있는 놈이었다.
…여기를 잘 알고 있다고? 어떻게? 이곳은 군사 지역으로, 지형을 파악할 수 있는 임야도와 상공에서 본 지도 등은 모두 군사 기밀로 처리되는 곳이다. 철책에 둘러싸인 터라 검문소의 검문을 받지 않으면 산을 오를 수도 없다.
텃밭을 일군 인근 주민도 딱 하나 있는 개구멍으로 들어와 약 열 평 정도의 땅에 파와 상추를 심어 둔 것이 다였다. 위치 역시 산 중턱이 아닌 산 입구였다.
이 산을 저렇게 잘 아는 새끼가 에스퍼다? 수상한 냄새가 너무 나지 않은가.
백한은 이 땅의 평화를 수호하기로 마음먹은 군인답게 저 새끼를 꼭 잡아 족쳐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인 흥미나 전투 본능이 이끌어 낸 아드레날린 때문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는 지리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산등성이를 위아래로 오가며 도망치는데 손끝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윽.”
게다가 등에 걸쳐 둔 치영이 덜렁거리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할 수 없지. 백한은 다시금 쯧, 혀를 찼다.
그는 두 번 혀를 차게 만든 새끼를 단 한 번도 살려 보낸 적이 없다.
백한은 기어코 멈춰 치영을 내려 두었다.
안 그래도 어지러워 죽겠는데 미친 속도로 달리는 에스퍼의 어깨에 실려 퉁퉁 튕겨 오른 터라, 치영의 안색은 이제 하얗다 못해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무장공비 잡으면 포상 휴가 가는 거 알지? 형이 우리 치영이 포상 휴가 보내 준다.”
지랄……. 누가 니네 치영이야. 아픈 와중에도 치영은 백한을 향해 욕을 짓씹었다.
치영이 저를 향해 속으로 욕을 하든 말든 관심도 없는 기백한은 그대로 단전에 집중했다. 그러고는 서서히 이능 파장을 분출하여 공기 중의 중력을 배가시켰다.
밀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기체가 흘러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중력이 낮은 곳을 향해 공기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렇게 밀도가 높아진 공기가 소리의 매질로 작용함으로써 아주 작은 소리에도 포탄이 울리는 것처럼 큰 소리가 퍼져 나가게 만드는 것이다.
“춘란—!”
그리고 기백한이 높아진 공기의 밀도를 이용하여 함성을 내질렀다. 백한의 성대를 타고 나간 목소리가 폭발적으로 응집된 공기를 타고 퍼져 야산을 쩌렁하게 울려 댔다.
라면에 넣을 파를 서리한답시고 인이어를 끼고 오지 않았으니, 공기를 폭발시켜 산 전체에 목소리가 울려 퍼지게 한 것이다.
“윽…….”
소리파에 가까이 있던 치영은 기어코 먹은 것 없이 헛구역질을 했다. 가뜩이나 이명 때문에 괴로운데, 저 무식한 하마 새끼가 대공포를 쏘듯 소리파를 내지르니 두통에 앓고 있던 치영에게는 머릿속에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섬광 같은 고통이 몰아쳤다.
장대한 소리에 놀란 산새들이 요란하게 날아올랐다.
“애들 오면 넌 바로 복귀해. 저 새끼 잡아서 갈 테니까.”
가물가물한 시야에, 백한이 그대로 등을 돌려 달려가는 것이 들어왔다.
차가운 흙바닥에 누운 치영은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빙글빙글 도는 세상을 잠시 그대로 두었다.
컨트롤타워로부터 멀리 오기는 했어도, 춘란대의 에스퍼들은 제 대대장과의 협업이 잘되니 소리가 들리자마자 출발했을 것이다.
백한만큼 빠르지는 않더라도 치영이 있는 곳으로 금세 모일 것이다. 저는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등골이 오싹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구토감 때문인가 두통 때문인가 생각해 봤으나 그것과는 결이 달랐다. 불길하고 음울한 기분이 등골에 달라붙어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느낌이더라. 치영은 미간을 좁혔다. 꼭 가이딩이 빠져나갈 때와 느낌이 비슷했다.
두통은 여전한데 땅이 제 가이딩을 흡수하는 느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못 본 새 무시무시한 걸 달고 다니게 됐구나, 사이야.”
다정한 음색이었다.
옆으로 쓰러진 채 누워 있는 치영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고개를 돌릴 힘도 없어 눈알만 데룩 굴려 올려다보니, 누군가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역광이라 얼굴을 확인하기가 힘들었다.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한참 찾았지 뭐야. 너를 땅에 묻어도 보고, 장례도 치러 주고.”
“…….”
“근데 이런 곳에 있었네.”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 친한 척을 하는 것이 이상했다. 그 와중에도 두통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위잉, 하고 부는 것이 바람인지 이명인지 모르겠다.
치영은 제가 두 눈을 뜨고 있는지도 몰랐다. 눈동자들이 제각각 돌아가거나 동공이 심하게 좁혀져 빛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커다란 파장 속으로 들어간 듯 웡웡 울리던 두통의 양상이 뾰족하고 날카로워지더니, 이내 대바늘이 되어 뇌의 한 곳을 집중적으로 찌르는 듯했다.
극심한 고통에 치영은 숨을 밭게 쉬었다. 입을 열면 그 즉시 신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상대는 그런 치영의 상태는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아까워서 눈물 날 뻔했단다.”
“…….”
“근데 이렇게 잘 있었다니.”
내가 열이 좀 받네.
상대가 키득거리며 손을 뻗어 치영의 머리카락을 넘겨 주었다. 그의 손이 닿자마자 치영의 두 눈이 커졌다. 점점 심해지던 두통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 머리통을 두 개로 쪼개는 기분이었다. 마치 누군가 몽둥이로 후려친 수박처럼 쪼개진 느낌이었다. 치영은 쉴 새 없이 꺽꺽거렸다. 정신을 놓기 직전이었다.
“그래. 어차피 또 볼 거니까.”
“…….”
“잘자, 사이야.”
다정한 목소리.
꼭 치영을 걱정하는 것같이, 아주 따뜻한 음색이었다. 멀어져 가는 의식의 끝자락에서 치영은 생각했다.
‘누군데 친한 척이야, 미친 새끼.’
그 뒤로는 암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