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그날로부터 딱 5년째가 되는 날의 아침이었다.
“…좆같아.”
치영은 욕설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뒤늦게 울린 알람을 주먹으로 깡 내려쳤다. 삐비빅, 하고 울려 대던 전자시계가 주먹을 맞고 나동그라졌다.
오늘도 알람이 울리기 전에 기상했다. 더 잘 수 있는데도 기상 시간 전에 눈이 떠진다는 것이 얼마나 거지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지.
그것도 10분, 20분 차이라면 성질이 뒤집어지게 끓어올랐다. 치영은 몇 년 새 그다지 좋지는 않던 성질머리가 더 심각해졌다.
뭐, 그럴 만한 사건이 꽤 많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제 인생이 싫은 자라고 해도 아침 해는 공평하게 뜨는 법. 출근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치영은 비척비척 일어나 옷을 훌러덩 벗어 버렸다. 간밤에 꿈자리가 사나웠는지 식은땀을 꽤 흘렸다. 해서 샤워부터 할 요량이었다.
헐벗은 채로 거실을 가로질러 욕실로 들어갔다.
숙소는 혼자 쓴다. 보통 팀이 따로 배정되면 그 숙소를 쓰는데, 치영은 팀이 배정될 정도로 고등급의 가이드가 아니었다.
웬만한 등급의 가이드들에게는 다 팀이 있는지라, 가이드 전용 숙소는 텅텅 빈 상태였다.
치영은 인기척이 얼마 없는 숙소를 제집처럼 쓰고 있었다. 경비실에서 마스터키를 훔쳐 옆방 문을 딴 뒤, 거기는 창고로 사용했다.
그나마 이 숙소만이 치영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이곳은 안락했고, 누구도 치영을 상관하지 않으니까.
치영 역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외로움만이 안치영의 안락이자 친우였다. 익숙한 옷처럼 도저히 벗어 던져 버릴 수 없는.
대충 고양이 세수에 양치만 끝낸 다음, 치영은 공용 가이딩실 가이드복으로 갈아입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준비를 다 하는 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출근 존나게 싫어.”
치영은 혼자 사는 사람들 특유의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말은 그렇게 하는 주제에 착실하게 컨버스의 끈을 조이고 있다.
보통의 가이드들이 센터 내에서도 군화를 신는 반면, 치영은 컨버스나 슬리퍼를 주로 신었다.
묶인 팀이 없어 임무나 훈련을 받아 본 적도 없고, 소속이 가이딩실인지라 컨버스로도 충분했다.
치영은 도어록이 잠긴 것을 확인한 뒤, 천천히 숙소를 빠져나왔다. 센터 내를 상시 운행하는 가이드 전용 카트가 오고 있었다.
가이드 전용 숙소 정거장에서 탑승한 이는 치영이 전부였다.
카트는 탈탈거리며 센터 안을 순환했다. 카트 안에는 아직 팀이 배정되지 않은 가이드들만 타고 있었다.
신병들인가 본데, 곧 에스퍼를 만날 생각에 들뜬 듯 저들끼리 지지배배 떠드는 꼴이 퍽 귀엽기도 했다.
사실 치영은 소속 중대가 따로 있었다.
가이드이자 에스퍼인 기백연 소령이 팀장으로 있는 동죽대였다.
동죽대는 에스퍼‧가이드 특수 대학 의예과나 간호학과를 졸업해 의사, 간호사 면허가 있는 에스퍼나 전투 가이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동죽대가 간호 부대긴 하지만, 순수 전투력으로만 등급을 매겨도 센터 내 상위 3팀 안에는 들어간다.
치영은 이 동죽대 소속이었다. 하품도 나오지 않는 저등급의 가이드임에도 말이다.
—이번 정류장은 공용 가이드실입니다.
친절한 안내 방송이 나오자, 치영은 카트의 벨을 눌렀다. 지지배배 떠들던 가이드들이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공용 가이드. 그 단어가 주는 어감을 이제 막 센터에 들어온 신병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치영은 개의치 않고 카트에서 내렸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이 그… 버림받은…, …5년째…, …F등급.”
맞는 말만 하네. 똑똑한 신병들이 아닐 수 없다.
치영은 표정 없는 얼굴 그대로 걸음을 옮겨 가이딩실이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날씨는 이제 막 꽃이 피는 것치고 더웠다. 녹지근한 햇빛이 아직도 팔뚝에 달라붙어 있었다.
치영은 천천히 안으로 걸어가 공용 가이딩실의 문을 열었다.
“안 소위 왔는가.”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소위님.”
좋은 아침이라는 인사에는 대꾸하지 않았다. 치영에게는 좋은 아침이라는 것이 없었으니까.
“소령님 안쪽에 계시네. 인사부터 드리고.”
“네.”
가이딩실 치프가 휙, 하고 휘파람을 불며 엄지만 치켜든 손으로 뒤쪽을 가리켰다. 치영은 가방만 제자리에 두고 실장실로 향했다.
똑똑—.
노크를 하자 안쪽에서 나지막하게, “들어와.” 하는 소리가 들렸다.
치영은 문을 열었다. 빼꼼 열린 문 안쪽으로 고개만 쑥 들이밀고는 까딱였다. 인사만 하고 바로 나갈 생각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들어오랬지, 안치영.”
“곧 가이딩 시작 시간인데… 넵. 들어갑니다…….”
들어가기 싫어 미적거리는 치영의 모습에 백연이 봐주지 않고 인상을 쓰자, 치영은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나. 치영은 더 버티지 않고 실장실 안으로 몸을 완전히 들이밀었다.
백연은 그런 치영을 흘끔 보더니 쯧, 하고 혀를 찼다.
“밥은.”
“이제 막 일어났는데…….”
“말이 왜 이렇게 짧아.”
“안 먹었지 말입니다.”
“비쩍 곯아 가지고. 본관이 쫓아다니며 일일이 밥을 입에 떠 넣어 줘야 먹나?”
백연의 잔소리에 치영은 냅다 초점부터 흐렸다.
백연의 어깨 언저리를 바라보며 시선을 흐리면, 제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부사수에게 짜증이 난 백연이 잔소리를 멈춰 줄 것이다.
“됐다. 본관 입만 아프다.”
“…….”
“…부른 이유는 자네도 알 거다.”
“잘 모르겠습니다.”
치영은 뒷덜미를 긁적이며 말했다.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도 뒷머리가 짧은 터라 금방 말라 있었다.
백연의 눈썹이 치솟았다가, 치영이 정말 모르는 듯하자 다시금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기백한 소령 귀국 명령이 내려왔다.”
“…….”
치영은 늘 그랬던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간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기백한.
7년 전 치영은 백한에 의해 반정부군인 이악 부대에서 구출되었다.
“…자네가 원한다면 전북 센터나 강원 센터로 보내 줄 수 있다. 그래, 아예 쉬다 오는 것도 좋겠지.”
백연은 백한의 쌍둥이 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에는 치영을 걱정하는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치영은 담담하게 그걸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소문이야 거기나 여기나고……. 곧 전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역?”
“임무 하나를 맡았습니다. 완료 시에 전역할 거라고 윗선에도 말해 놨습니다.”
치영의 말에 백연의 눈매가 잠시 가늘어졌다. 치영은 그녀가 무언가를 가늠하듯 저를 빤히 보는 순간에도 멀뚱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치영의 제대에는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윗선이라니.
치영의 등급으로, 치영의 계급으로 닿을 수 있는 윗선이라고는 가장 높아 봤자 백연, 그녀 자신이 다일 텐데 무슨 윗선.
치영은 백연의 의아함은 풀어 줄 생각이 없는지 가만히 기립한 상태였다.
붙잡고 몇 대를 패든, 저런 얼굴을 하면 끝까지 입을 다무는 치영을 알고 있기에 백연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대로 해. 중간에라도 힘들면 말한다.”
“알겠습니다.”
“나가 봐.”
치영은 대답 없이 경례 후 몸을 돌려 그대로 실장실을 빠져나갔다.
백연은 그걸 물끄러미 보다가 품 안에서 담뱃갑을 꺼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러다 불을 붙이지 않은 채로 무언가를 생각했다.
센터 내 최고 부대인 춘란, 추국, 동죽.
백연은 그 동죽대의 팀장이었다.
잔존 가이딩 양이 얼마 남지 않아 퇴역을 앞두거나, 일반인으로 살기에는 가이딩을 할 줄 알고 그렇다고 어느 팀으로 들어가 전용 가이드가 되기에는 모자란 이들이 모여 있는 공용 가이딩실의 실장을 맡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공용 가이딩실 실장을 맡은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안치영이 불쌍해서.
* * *
7년 전, 백연의 쌍둥이 백한은 반정부군 이악에서 가이드 하나를 주워 왔다.
반정부군의 칩이 심어져 있지 않은 가이드는 실로 오랜만이라, 센터는 의례적으로 치영을 검사했다.
그의 가이딩 등급은 F. 센터 내 은어로 사탕 껍질.
겉보기에는 예뻐 그 안에 달달한 사탕이 들어 있는 줄 알고 까 봤더니, 그저 사탕 부스러기가 묻은 껍질만 남았다는 뜻이다.
그렇게 미미한 가이딩 양에도 불구하고 치영이 제대를 권유받지 않고 소위의 직급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기백한 때문이었다.
피를 나눈 남매인 백연과의 매칭 테스트에서도 60%밖에 보이지 않아 S+ 등급에도 불구하고 늘 가이딩 부족에 시달리는 백한이, 치영과의 모의 매칭 테스트에서 95%의 매칭률을 보인 것이다.
“이것 봐, 예쁜 것. 얼른 커서 시집와라. 모시고 산다, 내가.”
매칭 검사실 밖을 산모 들여보낸 예비 아빠처럼 서성거릴 때는 언제고, 결과가 나오자 백한은 꽤 의기양양하게 굴었다.
유아 청소년 가이드 인권 문제 때문에, 가이드들은 성년이 되는 1월 1일에야 에스퍼와의 완전한 매칭률 검사가 가능하다.
치영이 센터에 처음 들어와서 행한 모의 테스트의 상위 버전으로, 이 테스트의 결과에 따라 페어나 각인을 할 수 있는 에스퍼가 확정되고는 했다.
그리고 치영은 센터에 온 지 2년 만에 매칭 테스트를 할 수 있었다. 그 2년 동안 많은 소문이 떠돌았다.
백한이 드디어 가이드와 페어를 이룰 것이라는 소문, 페어가 아니라 그저 하룻밤 가이딩을 받고 그 F등급의 가이드를 버릴 것이라는 소문 등.
2년 동안 백한이 센터에 있던 시간은 많지 않았다. 동부 유럽 쪽에 내전이 발발하여 돈벌이에 눈이 먼 군부가 기백한과 춘란대를 동부 유럽의 전쟁터로 파견했기 때문이다.
돈을 받고 용병처럼 나가 있던 백한은 기어코 승전하여 돌아왔다. 제 어린 가이드가 성년이 되는 날인 1월 1일에 맞춰서 말이다.
매칭 테스트를 끝내고 바로 각인할 수 있게끔 각인 신청과 남산에 있는 호텔 스위트룸까지 예약해 뒀었다던가.
그렇게 2년을 기다린 그들은 그날 파국을 맞이했다.
“…근데 이게 뭐니?”
백한이 발견한 것은 매칭률 검사표 우상단에 적힌 치영의 이름 옆에 표시된 치영의 성별이었다.
M. 남성.
그 글자들을 발견한 순간, 백한은 그 자리에서 뛰쳐나가 토악질을 했다.
오물을 뒤집어쓴 얼굴로. 이런 모욕은 처음이라는 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