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야, 소주잔. 멀었어?”
“…갑니다.”
개새끼. 사람 이름을 뭐같이 불러.
그러나 치영은 험악한 생각과는 다르게 표정 없이 쟁반 위의 밥을 날랐다. 스테인리스 쟁반에 싸구려 그릇들을 한꺼번에 올려 두고 이리저리 오가며 바쁘게 움직였다.
단정한 생김새의 치영은 어깨까지 기른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었다.
미용을 위해 기른 것도 아니고 멋 때문에 묶은 것도 아니라 지저분한 몰골이었지만, 얼굴이 원체 단정하게 생긴 탓에 그저 머리 묶을 시간도 없이 바빴구나 생각될 뿐이었다.
그렇다면 안치영의 정체가 함바집 이모님이냐고? 아니. 치영의 직업을 굳이 말하자면 반정부군 ‘이악 부대’의 가이드 겸 시다바리다.
그런데도 ‘소주잔’이라는 거지 같은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치영의 가이딩 양이 무척이나 작았기 때문이다.
가이드들은 가이딩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
비장, 림프계 밑에 퍼져 있는 생산 기관에서 가이딩을 생산해 내는데, 사람에 따라 장기가 갖고 있는 능력치가 천차만별이듯 가이드들의 가이딩도 그러했다.
치영은 그 가이딩 저장량이 형편없는 가이드였다.
그러나 늘 가이딩 부족에 시달리는 반정부군으로서는 그것도 감지덕지였기에, 어린 치영의 납치를 감행했다.
낳아 준 사람은 있으니 태어났을 뿐, 길러줄 부모가 없어 보육원에 살던 치영은 학교 친구들이 문방구에서 떡볶이를 사 먹는 것을 부럽게 바라보다가 별안간 납치당해야 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치영은 열여덟 살이 된 지금도 반정부군인 이악 부대에서 가이딩과 잡일을 도맡아 해 오고 있었다.
정부 구역을 벗어날수록 가이드가 귀한 형편이긴 하나, 이쪽 동네에서까지도 치영의 가이딩으로는 성에 안 찬다는 에스퍼들이 많아 여태 찬밥 신세인 인생.
그러나 인생사 새옹지마. 약간의 결벽증과 크나큰 회피형 애정 결핍으로 인해 타인과의 접촉을 눈물 나게 싫어하는 치영으로서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쥐꼬리만 한 양에 지친 에스퍼들은 이제 치영을 포기하여 건들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치영은 날랐다. 밥을, 국을, 반찬을, 후식용 믹스 커피까지. 그런 뒤치다꺼리라도 해야 이 거지 같은 곳에 비벼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굼뜬 것 봐라. 얼른 안 오냐.”
에스퍼들은 보통 가이드를 제 밑에 두고 싶어 했다. 치영이 이악 부대에 처음 왔을 때도 그러했다.
치영이 어린 것도 상관없다는 듯, 다 크면 아저씨랑 각인 맺자며 꼬시는 변태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도 모두 치영의 가이딩 등급 F를 받기 전의 일이었다.
찔러 보던 손길들은 치영이 별 볼 일 없는 가이드라는 것을 알자마자 바로 거둬졌다.
오히려 그것이 편했다. 외부에서 잡아 온 가이드들을 인신매매하는 것이 아예 절차로 박혀 있는 이곳 에스퍼들은 치영을 팔아 버리지도 않았다.
워낙 미미한 양이니 팔아 봐야 크게 돈을 벌지도 못할 것이라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잘나가던 이악 부대는 3년 사이에 크게 기울었다.
춘란인지 추국인지 하는 부대의 부대장이 새로 역임한 이후로 늘 참패했기 때문이다.
가이드 인신매매로 한몫 당기던 걸 어찌 알았는지, 이악의 가이드 강제 수용소를 털어 버린 덕분에 자금줄이 끊겼다.
덕분에 이악은 테러범들 주제에 막노동이라도 나가서 돈벌이를 해 와야 하는 형편에 처해 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일을 잘하는 사람이 적이라니. 하층 중에 하층인 이악에 달라붙어 기생하는 치영 같은 인간은 어찌 살라고.
원래 그런 대대적인 소탕 작업에서는 치영처럼 쓸모없는 꼬리부터 잘리는 법이다.
그러나 그런 불평을 얼굴 밖으로 드러내는 대신 치영은 얌전히 반찬을 대거리하던 에스퍼의 앞에 두었다. 앞에 있는 음식들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와구와구 처먹는 꼴이 역겨울 정도였다.
속으로 욕하는 것을 들었는지 에스퍼가 치영을 꼬나보았다.
“근데, 아까부터 눈깔을 왜 자꾸 그따위로 뜨지?”
“…….”
별것 갖다 시비를 터는구나. 치영은 속으로만 한숨을 쉬었다.
원래 바깥에 나가서 돈도 못 벌고 여기저기 발에 치이는 못난 놈일수록 집에 들어와 애먼 아내를 때리고 어린 자식새끼들 머리끄덩이를 잡는 법이다.
이런 지랄도 하루 이틀이 아닌지라, 치영은 그저 가만히 인내했다. 숨을 죽이고 저를 마른 나무 밑동처럼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모든 태풍이 지나가 고요해지고는 하지 않은가.
그러나 치영의 처세술은 너무도 수동적이었고, 오늘도 정부의 물류 센터 급습에 실패한 이악 부대는 군량미가 얼마 남지 않은 탓에 식사 시간이 되자 모두 날카로워진 상태였다.
눈치를 보고 바닥에 엎드려야 하는 생 중 하나인지라 뱀처럼 배를 바닥에 붙이고 기어 다니며 동냥을 살펴야만 하는데, 치영의 경우에는 눈치가 훌륭한 반면, 처세술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그 탓에 이런 상황까지 일어나고야 마는 것이다.
“이 새끼야, 왜 눈을 그렇게 뜨냐고!”
애먼 사람을 기어코 한 대쯤 때려야 분이 풀리겠다는 듯이, 에스퍼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높게 쳐들었다.
뺨을 맞는 것보다 귀 옆을 맞는 것이 훨씬 기분이 더러운데 어쩌지 싶어 치영은 제게 날아올 손바닥의 각도를 가늠하던 중이었다.
굉음이 울렸다. 지척에서 천둥이 치듯, 치영의 온몸을 뒤흔들 정도로 커다란 소리였다.
“뭐, 뭐야—!”
다들 놀라서 고개를 쳐들었다. 이악의 임시 거처 천장이 통째로 찢겨 있었다. 철골과 슬레이트가 종잇장처럼 아스러지는 광경을 보며 치영은 숨죽여 몸을 낮췄다.
당황한 이악군들이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유리를 깨고 비상벨을 누르자,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무기고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도 있었고, 들고 있던 토카레프를 아무 곳에나 겨냥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이능을 불러일으키는 에스퍼들도 있었다.
난리를 틈탄 치영은 주방 쪽으로 달려가 자재 트레이 중 가장 큰 것 밑에 숨었다.
눈치 빠른 치영이 제 목숨을 챙기는 동안, 정부군의 급습에 식사 후 휴식을 취하던 이악군들은 끈 떨어진 허수아비처럼 픽픽 쓰러져 버렸다. 속수무책이었다.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삼엄했다. 이능도 제대로 써 보지 못한 채 죽어 버린 이들이 산더미였다.
치영은 제가 숨어 있던 곳 바로 앞으로 날아와 떨어진 사체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포이즈너였는지 입 밖으로 내뱉으려던 염산 덩어리가 미처 분출되지 못한 채로 입안에서 터져 볼의 한쪽 면이 녹아 있었다.
주륵 흘러내리며 연기를 풍기는 녹색의 액체가 역겨웠다. 어제만 해도 치영에게 밥을 받아 가던 남자 중 하나였다.
“란, 진입 완료.”
가까운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특수 기동대 복장을 한 여러 정부군 사이에서 홀로 검은색 차림이었다.
신체 그 자체가 무기인 자, 에스퍼였다.
저벅저벅, 다가오는 그 군홧발 소리에 치영은 이를 악물었다.
이악에서는 납치한 가이드들에게 모두 칩을 심었다. 이악 소속의 에스퍼들 이외의 에스퍼에게 가이딩을 하게 되면 심장 옆에 심은 칩이 터져 죽게 된다.
하지만 치영은 아니었다. 능력이 너무도 미미하여 칩도 심지 않았던 것이다. 치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살아남으려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부군은 등급이 어떠하든 ‘폭발하지 않는’ 가이드에게는 그 출신을 따지지 않고 열려 있다고 들었다.
그리하여 치영은 온몸의 가이딩을 짜내어 방사했다.
그 미세하고도 먼지 같은 가이딩이 매끄러운 군홧발에 닿았는지.
“까꿍. 넌 누구니.”
상대가 치영을 알아차렸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듯이 깨끗하고 간결한 목소리에, 치영은 숨을 집어삼켰다.
태산이 그러할까. 마치 거인을 만난 기분이었다.
* * *
춘란대는 동죽대, 추국대와 더불어 센터 최고의 에스퍼 부대다. 간호 부대인 동죽대, 군 내 비밀경찰 부대인 추국대와 달리 오로지 전투만을 위한 부대이기도 하다.
그들은 육지전, 해상전, 공중전 할 것 없이 능통했다. 아니, 능통해야 했다. 춘란의 팀장인 기백한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세 부대 중 전방 공격을 맡은 것은 춘란대였다. 그들의 오늘 임무는 반정부 테러 단체인 이악군의 기지 중 하나를 소탕하고, 다른 기지와의 커넥션을 제거 및 수거해 오는 것이었다.
뭐, 어쨌든 수거를 하기는 했는데 좀 요상한 게 같이 딸려 왔다.
“그건 뭐야.”
“몰라. 임자 없는 것 같길래 주워 왔는데. 냄새도 좋고.”
백연이 백한을 향해 물었다. 기백연은 백한의 쌍둥이 누이였다. 신장이 192cm에 달하는 백한 옆에서도 그다지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188cm의 키에, 백연 역시 백한과 같은 고등급의 에스퍼였다.
남매는 그다지 닮지 않았다. 백연이 찬바람 불게 생긴 냉미인이라면, 백한은 웃기만 해도 햇살이 비치는 듯한 착각이 일게끔 만드는 화사한 생김새였으니까.
꼭 옛 문명의 신화 속 태양신과 달의 여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들 남매는 센터의 최상위 팀인 춘란과 동죽의 팀장이었다.
표정 없는 누이를 바라보던 백한은 어깨에 들쳐 맨 가이드가 흘러내릴까 봐 다시금 추스른 뒤 고개를 까닥였다.
“가이드?”
“그런가 봐. 닦아 놓으면 꽤 예쁠 것 같아서.”
백한이 피식 웃었다. 쌍둥이 동생의 비릿한 웃음을 흘끗 본 백연의 한쪽 눈썹이 치솟았다.
저 새끼가 오늘따라 뭘 잘못 먹었나, 하는 표정이었다.
백한은 남자 가이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본인이 한 번도 티를 내지 않았기에, 백연으로서도 모른 척해 주고 있지만 말이다.
드물게 즐거워 보이는 기색이 수상했다. 백연은 토카레프를 권총집에 집어넣으며 쯧, 혀를 찼다.
“칩이 있으면 가이딩 받는 동시에 너도 죽는다.”
“없어. 아까 가이딩 하는 걸 봤으니까.”
백한이 혀를 내밀어 제 아랫입술을 훑었다. 백연의 무표정 위로 미세한 짜증이 떠올랐다.
아무리 정리가 되었다 한들, 현장 한가운데에서 동생의 욕정이나 보고 싶지는 않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백한이 씩 웃었다.
“연아, 나 이거 집에 가져가도 되냐?”
“마음에 들었나 보지?”
“응. 난 우는 가이드가 좋더라.”
백한은 어깨에 메고 있던 가이드를 작전 차량에 내려놓으며, 그 뺨에 말라붙은 눈물 자국을 툭 건드렸다.
엉엉 우는 꼴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한 방울 툭 울더니 그대로 고꾸라져 기절해 버렸다.
발치에 스미듯 끼치던 가이딩이 죽여 주게 맛있었다.
데리고 가 한 번만 더 해 달라며 조를 작정이었다.
재미있는 게 들어왔네.
백한이 씩 웃었다.
“얼른 깨라. 나랑 놀자.”
그러고는 기절해 있는 가이드의 뺨을 툭 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