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주 입이 찢어지겠구나.
“그럼요. ……네, 거기 나도 지나간 적 있어요. 그런데 너무 비쌀 것 같아서 그냥 지나쳤는데. 정말 거기서 밥 사주는 거예요?”
미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파리에서도 그리고 서울에 도착했다고 예상되는 날에도 전화가 없다고 엘씨오는 우울해 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미나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다며 당장 찾아 나서야겠다고 짐을 쌌다가 풀었다 했다. 물론 내가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았지만.
어쨌든 드디어 미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하루 종일 전화기 앞에서 얼쩡거리던 엘씨오는 쏜살같이 수화기를 들고는, 그 후부터는 계속 얼굴이 느물느물해져 있었다. 나는 그 옆에 꼭 달라붙어, 아니, 실은 계속 엘씨오에게 밀리고 차이면서도 무슨 작당들을 하는지 꼭꼭 알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마도 아힘 슈미츠, 그 남자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겠지. 잘 되었나 보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네, 잘 됐네요. ……그럼 장거리 연애? 아… 그건 좀 힘들겠구나.”
힘들긴 개뿔. 그 남자가 좀 꽉 막힌 구석이 있어서 그렇지, 아니, 오히려 그런 남자가 한번 문 것은 놓지 않는다. 그래, 아힘 슈미츠, 힘내라.
그리고 한참 대화 도중에 나를 힐끗 바라본다. 내 이야길 하는 건가? 귀를 더 쫑긋거린 채 그의 얼굴 옆에 달라붙자 여지없이 귀를 잡아당긴다. 야비한 놈. 본성은 이런 주제에 그저 미나 앞이라면 착한 강아지마냥 헤헤 거리기나 하고, 곧 죽어도 매너는 살뜰하게 지키는 척 연기하고. 언젠가 몰래 카메라를 찍어 이 녀석의 이런 모습을 미나에게 보내버릴 것이다.
“알았어요. 지금 거기 몇 시죠? ……아, 그럼 잘 자요. 네, 알았어요. 안녕.”
전화를 끊고 엘씨오는 기운이 쑥 빠져 소파에 털썩 몸을 던졌다. 냉큼 다가가 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오랜만에 살가운 제스처를 취하는 데도 엘씨오는 고개를 돌린 채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손을 휘휘 저으며 ‘피곤해, 저리가’ 명령했다. 나쁜 놈. 내가 개새낀 줄 알아.
“한국이래? 잘 도착했대?”
“응.”
“…그 남자랑은 어떻게 됐대?”
“너도 들었잖아.”
“못 들었어.”
“귀 쫑긋 세우고 있는 거 다 봤거든?”
“그래도 잘 안 들렸어. 뭐래? 다시 사귀기로 했대? 죽어도 못 헤어지겠다지?”
“안드레아!”
소리치며 불쑥 일어나버렸다. 그 덕에 나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씩씩거리며 올려다보자 이를 악문 채 노려보다가 자기 방으로 올라가버렸다. 나쁜 놈, 정말 나쁜 놈.
그리고 여지없이, 그날 밤은 그가 나를 찾았다. 아니, 내가 그를 찾았다. 문을 열기 전부터 방문 밖에서 그의 신음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이럴 줄 알았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김없이 이런 상태가 된다. 성질머리 하곤.
“엘씨오…….”
다가가 속옷을 마저 벗고 침대 위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그에게 꼭 붙들려 버렸다. 언젠가, 미나가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 미나는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지르고, 그러나 꼼짝도 못한 채 몸을 굳히고 있었지만, 나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그가 두 팔과 다리로 내 몸을 꽉 둘러 감싸면, 마치 양수 속에 있는 태아가 된 것 같다. 가슴을 결박한 팔을 향해 고개를 내려 입을 맞추어주자 그제야 조금 느슨해진다.
나는 힘들이지 않고 그를 조절하는 방법을 안다. 강하게 저항하면 오히려 더 위험해 질 수 있다. 부드럽게, 그러나 이쪽에서 더 적극적으로 나오면 한층 얌전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병을 섞어버린다. 융화된 병은 자연스레 발화된다.
“위로 올라가.”
그가 명령한다. 엘씨오의 경우 치료가 더 힘든 이유는, 그가 완전한 몽유 증상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몽유병 환자들은 ‘그 때’의 일을 다음날이면 완전히 잊어버린다. 그래서 자신이 몽유 증상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엘씨오도 그런 듯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몽유의 시간은 짧아지고, 그 자신도 자각하는 시간은 길어진다. 일테면, 몽유의 자아와 자각하는 자아가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그건 얼마나 잔인한 병인가. 자신의 가장 추한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 그래서 그는 나를 혐오한다.
엉덩이 골 사이로 그가 자신의 뜨거운 페니스를 비비면 나는 그 사이 자위로 얼른 한 번 빼내야 한다. 언제나 처음은 아직 몽유의 자아가 지배하는 그의 위로 올라가 스스로 움직여야 하므로, 최대한 고통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다. 미끈하게 터져 나온 것을 스스로 겉과 속까지 꼼꼼히 바른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 소리에 군말 않고 올라간다.
“아…아아, 엘씨오… 아파, 누르지 마. 으읏…”
자세를 잡고 우뚝 선 그의 것에 오일을 바른 뒤, 젖어있는 뒤를 열고 서서히 내려앉지만, 그는 인내심 없이 내 허리를 잡고 누른다. 미끌거리다 자꾸 엇나가기만 하자, 밑에서 인상을 쓰며 신음하는 것이 보인다. 잠깐만, 잠깐만. 겨우 끼워 맞춘 후 이를 악물고 한 번에 내려앉자 그가 깊게 탄성한다. 아아, 엘씨오. 교접한 부분이 뻣뻣하게 당여오지만, 찢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흥분시키는 건 교접한 부분이 아니라, 꽉 들어찬 느낌의 아랫배 쪽이다. 가끔 그가 사납게 움직이면 토악질이 날 때도 있지만, 보통은 그 직전의 느낌까지도 좋아한다.
“잠깐, 아아… 기다려, 엘씨오.”
숨을 고르기도 전에 그가 내 허리를 부여잡는다. 억지로 움직이려는 것을 엉덩이를 살짝 떼어내자, 목 안 깊은 곳에서 으르렁 소리를 내며 허벅지를 찰싹 때린다. 아! 아픈 신음을 내질러도 소용없다. 이럴 때의 그는 사나운 짐승 같다. 잘못 반항했다간 정말 목이 물려 뜯길 지도 몰라. 그러나, 미나와 했을 때는 어땠을까. 이처럼 사납고 함부로 움직였을까? 아아, 머리를 저으며 생각을 지우려했다. 그러나 애써 생각을 지우기도 전에, 내가 먼저 움직이지 않아 안달 난 그가 사납게 허리를 쳐 올린다.
“아! 으응…… 엘씨오, 아파…아, 아아…”
“흐읏! 으으… 아아…”
“이름, 이름을 불러줘, 엘씨오. 아, 아, 으읏!”
“하…하아…”
그러나 끝까지 그의 입에서 내 이름을 나오지 않는다. 두고 봐, 너. 이를 악물고 허리를 띄웠다 내려앉는다. 입에서 끔찍한 신음이 나온다. 엘씨오도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다시 인상을 지푸린 채 내 허리를 잡고 한 번 더 높이 띄운다. 끝까지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온 것을 손으로 지탱한 채 허리를 내릴 때엔 정확하게 포인트를 맞춘다. 척추를 타고 전기가 찌릿 흐르는 것 같다. 제길, 모르겠다. 그리고 마음껏 허리를 움직이며 교성을 질렀다.
집이 비어서 다행이다. 양쪽 부모님이 모두 있을 때는 입을 막고 하느라 숨이 막힌다. 그런데도 상황파악 못하고 계속 찔러오는 엘씨오가 야속해 한껏 노려보면, 제정신도 아니면서 얼굴을 끌어당겨 키스로 입을 막는다. 아아, 그 순간만은 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가슴에 손을 댄 채 체중을 실어 허리를 움직이다가, 문득 그의 입술을 본다. 목안 신음을 흘리며 살짝 벌려진 그 입술. 입맛을 다시다가 결국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춘다. 또 얼굴을 밀어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순순히 입을 열고 혀를 내어준다. 맛있어, 넌. 말캉말캉한 혀를 씹다가 자연스레 허리 쪽은 내버려두니, 가만히 두고 보지 않고 엘씨오가 또 사납게 허리를 쳐댄다.
“으응! 엘씨오!”
하지만 엘씨오. 이 순간만큼은, 내 몸만이라도, 조금은 날 좋아하지 않아?
샤워기를 위에 꽂아두고 정수리부터 세찬 물줄기를 맞아가며 끙끙 힘을 쓴다. 제길, 콘돔도 쓰지 않았는데 그가 멋대로 안에 싸버렸다. 집안에선 처치도 곤란해서-물론 부모님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몰상식한 행동을 하진 않겠지만- 그와 할 때는 웬만하면 콘돔을 쓰지 않고, 신호가 오면 아슬아슬하게 빼내어서 손으로 처리해주고 마는데 이번엔 늦었다. 엘씨오도 나도, 완전히 정신을 잃고 해댔다.
체력이 약한 편도 아닌데 이렇게 하면 한번만으로도 힘들다. 허리가 뻐근하고 아래가 후끈거린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아랫배는 묵직하고 구역질도 올라온다. 손가락으로 그의 정액을 빼내자 단단히 딛고 선 다리가 확 풀려버렸다. 결국 등으로 물줄기를 맞으며 주저앉은 채 마저 안을 깨끗하게 한 다음, 샤워를 끝냈다.
“미안.”
“됐어.”
침대헤드에 베개를 세운 채 편하게 기대앉은 주제에,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미안’ 한마디 하면 끝인 줄 안다. 빼낼 때마다 얼마나 기분 더러운데. 퉁명스레 대답하곤 몸에서 뚝뚝 흐르는 몸을 수건으로 거칠게 닦으며 속옷과 잠옷을 챙겨들었다. 아무도 없으니까 좋구나, 발가벗고 다닐 수도 있고. 머리를 탈탈 털며 이불을 걷는다. 저 녀석은 게을러서 저 더러운 이불을 그냥 덮고 잘 게 뻔하니까. 그래놓곤 미나한텐 깔끔한 척, 침대 매너 좋은 척, 내숭을 떨었겠지.
“야, 넌 아무리 나만 있다 그래도, 어떻게 하나도 안 가리고 그렇게 발랑 벗고 다니는 거야?”
“뭘, 새삼스레.”
웃긴다. 저는 얼마나 걸치고 다니기에. 신경질이 나서 그가 몸을 꽁꽁 감싼 시트를 확 들어 젖혔다. 그러자 엘씨오는 다리를 확 오므렸다. 그래도, 다 봤다.
“변태….”
보는 걸로도 서냐? 방금 뺐는데, 또? 그런 주제에 무슨. 칫칫 입을 삐죽이며 시트를 돌돌 마는데, 그가 손을 뻗는다. 아슬아슬하게 허리를 앞으로 빼내어 잡히진 않았지만, 땀이 삐질 흘렀다. 위험하다. 한 번으로도 충분히 힘들어. 거기다 제정신일 때의 엘씨오는 집요하기가 끝이 없으니까 더 힘들다. 거칠고 집요하고 함부로 군다. 세 박자를 골고루 갖추었다. 시트로 앞을 가리며 뒤로 주춤 물러서자, 엘씨오는 느긋하게 다시 몸을 뒤로 기대었다. 그리고 무뚝뚝하게 손가락을 까딱까닥, 했다.
“이리 와.”
“싫어.”
“…안드레아.”
“……. 넌 치사한 새끼야.”
정말 치사해, 넌. 약한 곳만 건드리고.
하지만 엘씨오, 내가 없으면 안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