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게 대체 무슨 난장판이야…….
“빌어먹을! 허…헉… 처음 볼 때부터 너 맘에 안 들었어!”
“으윽! 이 자식이! 미나 어딨어! 무슨 짓을 한 거야!”
“하아…하…그걸 네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알아! 읏! 내가 그 꼴을…하앗… 그냥 두고 볼 것 같아?! 다시는 그 사람 앞에 갈 수 없도록 다리를 분질러주지. 으읏!”
“미나한테 무슨 일 있으면 너부터 죽을 줄 알아!”
뭐야. 왜 남의 집에서 싸우는 거야? 아니, 대충 알겠다. 저 남자, 며칠 전에 미나와 동행이라던 사람이다. 엘씨오 입에서 미나 이름까지 나왔으니…… 그렇단 말이지?
둘도 생각하지 않고, 뛰어 들었다. 그 난장 격투기장 속으로.
“아악!”
“안드레아, 잘 한다! 물어! 아예 물어뜯어버려!”
“놔! 놔! 안 놔?!”
놔주긴. 저 잘생긴 얼굴에 상처를 입히다니, 두 배로 갚아주마. 사람들은 의외라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 나는 평화주의자다. 싸우는 것은 싫어한다. 그래서 특별한 싸움 기술 같은 건 모른다. 그렇게 무식하게 싸우는 건 싫다. 그래서, 물었다. 꼬집었다. 할퀴었다.
그런데 두 번은 생각할 걸 그랬다. 알고 보면 마음 여린 엘씨오가 그 남자를 내게서 구해주고, 자기 방에 쏙 들어가 버렸다. 알고 보면 입이 무거운 엘씨오는 그 남자에게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남자 혼자 흥분해서 떠벌리는 이야기를 그의 방문에 귀를 바짝 갖다 대고 들어보니, 역시 두 번은 생각할 걸 그랬다.
“둘이 작당을 한 거야? 말해!”
“미나를 믿지 못하는 인간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해.”
“제기랄, 미나라고 부르지 마!”
그러니까, 저 남자는 아직도 엘씨오와 미나가 특별한 사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그럼 둘이서 해결을 보지 왜 죄 없는 우리 엘씨오에게 와서 저 난리를 피우는 걸까. 더 확확 그어주는 건데, 이를 바득바득 가는 도중, 머리에서 초록 불이 반짝였다. 멍청이, 안드레아. 저 남자는 내 편이다. 우리는 한 편이 되어야 했다.
엘씨오는 미나와 완전히 끝났다고 말했지만, 전화기를 꼬옥 부여잡고 애틋한 얼굴이 되어 통화하는 걸 보니, 다 끝나긴 개뿔. 미나 쪽은 어떤지 몰라도, 아니 저 남자를 보아하니 한참 잘 되던 중이었겠는데, 엘씨오는 아직 멀었다. 그렇다면 이쪽이 나설 수밖에. 미나가 혼자가 되어버리면 엘씨오가 흔들릴 것이다. 둘을 확실하게 떼어놓는 방법은, 엘씨오에게는 내가, 그리고 미나에게는 저 남자가 필요하다.
“저기…….”
착한 얼굴로 노크를 하고 방문을 빼꼼 열었다. 그리고 반성하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과연, 멱살을 붙잡고 싸우기 직전이었다.
“넌 나가, 안드레아.”
“이대로라면 계속 싸울 게 뻔하잖아. 흥분 좀 가라앉혀. 당신은 좀 나와. 나하고 대신 얘기해요.”
“좋아. 너도 끝내주지.”
씩씩거리며 그 남자가 흥분한 채로 걸어 나왔다. 뭐, 뭐야. 난 왜 끝내준다는 거야! 잔뜩 겁먹고 엘씨오를 바라보았지만, 이 녀석은 본 척도 하지 않았다. 나쁜 놈.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남자, 미나를 나까지 붙여먹었다. 세상에, 이런 눈 빠진 놈을 봤나. 내가 어딜 봐서 안는 쪽이란 말인가. 그리고 미나는 또 어딜 봐서? 어느 쪽이든 끔찍하다. 난 그렇게 근육 미발달 신체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미안하지만, 당신 애인은 내 취향이 아니야.”
“뭐야?”
“내 취향은 저쪽이야. 엘씨오.”
“하, 하지만 당신은 저 남자와 사촌이라고…….”
“그래서, 알게 뭐야?”
어벙벙한 표정의 남자에게 픽 비웃어줬더니 곧 굳게 입을 다물고 무시무시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럼 그때 호텔에선 왜 같이 나온 거지? 엘씨오에게 다른 애인이 있다던데 그게 당신인가? 그가 아직도 미나와 연락하는 걸 알고 있는 건가? 등등, 주방 앞에서 그 무식한 손에 어깨를 꽉 잡힌 채 이런저런 심문에 꼬박꼬박 답변해야만 했다.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대답해주자 그 남자는 그제야 어깨를 놓아 주었다.
“그럼… 그 사람이 당신 둘을 이어주려고 한다고? 대체 왜…….”
“내 말을 콧구멍으로 들었어? 그 이유야 내가 알게 뭐야? 그냥 도와준다니까 넙죽 받는 거지. 뭐, 오지랖이 넓은 거겠지.”
“…미련한 사람.”
내가 보기엔 당신이 더 미련한 것 같소. 조금 한심한 표정으로 노려봐주자,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커다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자학하는 건가? 슬금슬금 벗어나려는데 그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물 좀 줘’ 명령했다. 네가 따라 마셔라! …하려는데, 좀 불쌍해 보여서 그냥 찬물을 건네주었다. 어찌됐든, 그와 나는 한 편이 아닌가.
“저기, 엘씨오랑 통화하는 것 엿들었는데 말이야. 미나는 파리에서 여행을 마칠 거래. 출국일이 앞으로 나흘… 아니, 이제 삼일 남았던가? 파리는 넓지만 샤를 드골 공항은 좁지.”
남자가 머리를 들고 눈을 반짝였다. 그렇지, 바로 그런 자세다. 쟁취해, 사랑은 쟁취하는 거다. 그리고 미나의 옆에 딱 달라붙어 있어. 엘씨오가 허튼 생각하지 못하도록.
남자는 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미안하다는 사과도 하지 않고, 의자를 밀어 넘어뜨리기까지 하고 쏜살같이 밖으로 튀어나갔다. 나는 되지도 않는 ‘행운을 빌어요!’ 타령을 했다. 남의 사랑 따위 알 게 뭐야, 하지만 그게 내 사랑에 도움이 된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넘어진 의자를 다시 세우고 있는데, 위에서 쿠당탕 소리가 났다. 거실로 나가보니, 엘씨오가 외출 준비를 한 채 내려오고 있었다. 설마…….
“어디 가?”
“미나한테 가 봐야겠어. 저 자식이 미나한테 무슨 짓을 한 것 같아.”
“미나가 지금 어디 있는 줄 알고!”
“지금 즈음이면 파리에 가 있겠지.”
“미친 자식. 그래서, 파리를 뒤집어서 미나를 찾겠다고?! 파리가 무슨 아랫마을인 줄 알아?! 정신 차려, 엘씨오! 넌 이제 미나한테 아무 것도 아니야!”
성큼성큼 걸어 현관문을 여는 그를, 뒤에서 안아버렸다. 힘으로는 그를 다시 끌어올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의 약한 곳을 알고 있다. 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 그러나 절대 버릴 수 없는 것.
“가지 마. 나가면, 다신 너랑 안 잘 거야. 네가 아무리 미쳐 날뛰어도. 아니, 아예 이 집에서 나가버릴 거야.”
“안드레아… 제발 날 좀 놔줘…….”
현관문에 머리를 기댄 채 그가 웅얼거렸다. 하지만 안 돼. 놓을 수 없다. 그건 그도 잘 알고 있다. 놓을 수 없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그 또한 내가 아니면 안 된다. 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 그러나 절대 버릴 수 없는 것. 우리는 절대 치유할 수 없는 불치병,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