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로우, 곤니치와, 안녕-18화 (18/29)

[18]

맹세코, 이러려던 게 아니었다. 비련의 여주인공마냥 청승맞게 비를 맞으며 앉아있었던 것도, 더러워진 옷을 세탁 맡기지 않겠다고 했던 것도, 결국 맡겼던 세탁이 늦어진다는 말에도 그럼 아예 내일 찾겠다고 한 것도, 슬슬 취기가 오르는 그를 향해 ‘우와, 술 잘 마시네요, 세네요’ 부추기며 빈 잔에 와인을 붓고 또 부어주었던 것도, 결코 이럴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물론 세탁이 늦어진다는 말에 ‘이때다!’ 싶어 그 몰래 냉큼 내일 찾겠다고 했을 때는 조금이라도 더 그와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러니까…… 이렇게 노골적인 의도는 없었다.

<난 잘 몰라요. 그러니까 당신이 하나하나 다 설명해 줘야 해. 내가 어떻게 해줘야 하죠? 아니, 당신이 먼저 보여줘 봐요. 남자들끼리는, 어떻게 하죠?>

내 멱살을 잡고 그대로 침대 위로 넘어트린 뒤, 내가 어떤 변명을 하기도 전에 다짜고짜 내 입술을 물고 빨았다. 나는 뭐가 뭔지 몰라 그저 눈을 말똥말똥 뜬 채 내 입술과 혀를 무방비한 상태로 그에게 맡겨 버렸다. 튼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아힘에 의해 결국 입술이 찢어진 것 같았다. 혀끝으로 피맛이 났지만 그는 그것을 열심히 핥았다. 찌릿한 느낌에 그를 떨쳐내려 했지만 아힘은 내 혀를 잘근 깨물고는 미약한 내 저항조차 물리쳤다.

응, 응, 응, 입속에서 웅얼거리는 말이 울려나왔지만 나조차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내 입속의 말이 무슨 내용인지 알 수는 없었다. 겹쳐진 입이 살짝 떼어질 때마다 서로의 입에서 와인 냄새가 맡아져 더 취하는 것 같았다. 입술을 물어뜯기면서도 나는 그의 긴 속눈썹을 황홀하게 훔쳐보았다. 그러다 문득, 무척이나 아줌마스러운 생각,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덩달아 흥이 올라 적극적으로 물고 빨며 응해주었다. 물론, 그런 내 자신에 대해서는 곧 부끄러워졌다. 그래도 적극적인 호응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그 ‘웬 떡’이 점점 뜨거워지더니 도저히 혀 안에 넣고 천천히 음미할 수 없을 만큼이 되었을 때에는 이 ‘낯 두꺼운 아줌마’도 당황하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을 내 입술과 혀를 가지고 놀던 그가 천천히 눈을 뜨고 내 위에서 몸을 일으킨 후였다. 이제 정신을 차렸나, 싶었는데 혼자 조용히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하더니 또 뜬금없이 이번에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아힘……. 취했어요. 당신, 취해서 그러는 거예요.>

갑자기 호모가 돼 버린 것 같은 자신을 자책할까, 나는 얼른 그의 그런 행동을 ‘술 탓’으로 돌려버렸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인상을 찌푸린 채 ‘몰라요, 보여줘요, 어떻게 하죠?’하는 말을 지껄인 것이다.

<뭘… 뭘 보여 달란 말이에요. 무슨 말인지……. 아힘, 당신 취했어요.>

<맞아요. 취했어요. 그러니까, 이 김에 시험해 봐야겠어요. 내 안에 들어있는 게 뭔지. 제기랄, 당신 탓이야. 그러니까 해답도 당신이 갖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난 해봐야겠어.>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대체 뭘 해봐야겠다고->

<당신도 그걸 하나요? 자위 말이야.>

노골적인 말에 나는 입을 합, 다물어버렸다. 나는 귀가 금방 물들어 버린다. 그게 언제나 콤플렉스였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당황해서 귀를 빨갛게 물들인다고, 부끄러워한다고, 친구 녀석들의 놀림감이 되곤 했다. 두 손으로 귀를 막아버리자, 그가 얼른 내 두 손을 떼어내고 자신의 붉은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보여줘, 봐야겠어.>

……. 몸으로 실험을 해봐야겠다는 건가. 이런 경우는 흔하다. 이성애자인 남자가, 혹은 이성애자였던 남자가 동성애자에게 유혹을 받거나, 그래서 자신 또한 묘한 느낌이 들 때는 우선 몸으로 확인하려 든다. 나는 그런 구차한 과정들이 싫어서 오로지 동류들과만 관계를 가졌지만, 그런 이야기는 주위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결과는 반반. 동성애자에게 유혹을 받고 흔들렸다는 것 자체가 우선은 이미 그러한 기미가 있어왔다는 증거였다. 동성의 몸을 보고 흥분을 하면, 그것으로 Game Over.

하지만, 이건 너무 빠르다. 더구나 그와 이런 관계를 바란 게 아니었다. 그저 마음만 받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를 난데없이 게이라이프로 끌어들일 생각은 절대 없었다. 그리고 위험하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26년을 이성애자로 살아온 남자에게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는 자칫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

그런 경우는 수없이 많이 봐 왔다. 밤마다 게이바 화장실 한 칸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게슴츠레한 눈으로 오고가는 남자들을 유혹하는 남자들.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으며 건실한 사회 구성원이었던 한 남자가 뒤틀린 정체성으로 혼란에 빠져 어떻게 망가지는 지는, 슬프도록 많이 봐 왔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은 과연 옳은가. 그의 말대로, 내 탓이 크다. 나는 마음만을 원한다고, 내 마음만을 알아주길 원한다고 말했지만, 마음만을 원한다는 건 또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또한 마음이 먼저인가, 몸이 먼저인가. 마음이 반응하면 몸이 따르는 걸까, 또는 몸이 반응하면 마음이 따르는 걸까.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내 몸을 보길 원한다. 하지만 그는 내 몸을 봄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보길 원하는 것이었다. 모르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의 말뜻을 그보다 더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을 원한 죄, 그의 눈을 비껴 바라본 죄, 그리고 조금이나마 그를 혼란에 빠뜨린 죄. 내가 그에게 친 덫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는 그에게 꼼짝없이 옭아매이고 말았다.

시선을 떼지 않고 바라보는 그 앞에서 나는 그저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고만 있었다. 머리는 복잡하다. 많은 것이 떠오르고 가라앉고, 이해는 되지만 동감은 되지 않고, 욕망을 끓어오르지만 용기는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화, 화장실 좀…….>

우선은 피하고 싶었다. 아니, 나라도 먼저 술을 좀 깨야할 것 같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침대에서 내려와 발을 떼는데, 갑자기 그가 뒤에서 허리를 둘러 안았다. 흡, 하고 숨이 들으킴과 동시에 또 입으로 손이 올라왔다. 너덜너덜해진 손톱을 앞니로 가져다 대는데 순간 뒤에서 그의 손이 아래로 내려왔다.

<뭐, 뭐하는 거예요!>

그가 사준 트렁크가 허무하게 내려갔다. 깜짝 놀라 도망가려 했지만 그가 더 빨랐다. 한쪽 손으로 속옷을 내 무릎까지 내린 뒤 얼른 일어나 다시 나를 자신의 품에 꼭 끌어안았다. 허리에 둘러진 그의 팔이 몸을 꽉 조여왔다. 속옷이 내려진 채 달랑 나이트가운 하나만 입고 그의 품에 안겨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두 손을 그러모아 바들바들 떨고 있는데, 그가 또 갑자기 손을 가운 안으로 집어넣었다.

<읏! 아…아힘!>

몸이 튕겨나갔지만 그의 팔에 다시 당겨졌다. 한 손은 가운 한쪽을 젖힌 채, 또 다른 한 손을 내 앞을 움켜쥔 채로 아힘은 고개를 숙여 자신이 쟁취한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개 숙인 그의 얼굴이 자연스레 내 귀와 맞닿았다. 발바닥이 간질간질해져 왔다.

<작아…….>

<아힘!>

<그러니까 당신이 제대로 보여줘.>

<그, 그런, 갑자기 어떻게……. 그럴 순 없잖아요! 으으… 좀… 놔 봐요, 아아…….>

<하지만 이거, 그냥 잡기만 했는데 이렇게 됐어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 것은 그와 입술을 부빌 때 부터 이미 조금씩 기미가 왔다. 내 위에 누운 그가 그것을 알아차릴까 애써 몸을 조금씩 움직이며 하반신을 떼어낸 것이었다. 거기다 그와 나이트가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딱 붙어있다는 상황하며 (물론 그의 옷이 있었지만) 귀 뒤로 맞닿아있는 그의 뜨거운 얼굴,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래, ‘그냥 잡기만’했을 뿐이지만 어쨌든 아힘 슈미츠, 그의 손으로 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되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아, 알았으니까 우선 좀 놔요!>

<보여줄 겁니까? 확실하게, 모두 다.>

그가 내 눈 옆으로 입술을 바짝 붙인 채 말했다. 낮은 목소리와 눈가에 와 닿는 그의 뜨거운 숨결 때문에 숨이 가빠왔다. 이러다, 마음을 허락하기도 전에, 아니 그가 원하는 대로 제대로 한번 보여주기도 전에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알았어요. 그러니까 좀 놔줘요.>

두 눈을 질끈 감고, 나는 항복기를 들었다. 엉엉 울며 두 손바닥을 삭삭 빌고 싶었다.

<응, 아아…… 아!>

먼저, 와인을 한 잔, 무식하게도 벌컥벌컥 들이켰다. 좀 더 취할 필요가 있었다. 머릿속이 왈칵 뒤집어질 것처럼 지끈거렸다. 그리고 사형장에 끌려가듯 느릿느릿 침대 위로 올라서, 침대헤드에 베개를 세운 뒤 몸을 기대어 누운 채 다리를 벌려 세웠다. 차마 나이트가운을 모두 벗을 수는 없었다. 조명이라도 좀 낮춰달라고 했지만 아힘은 선명하게 보아야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쩔 수 없이 가운은 걸치기만 했다. 그게 그거지만.

<하아…하… 으으, 응, 응, 으……>

싸늘하게 식어서 페니스는 원래의 크기대로 축 늘어져 있었다. 하지만 침대 옆에 의자를 딱 붙이고 앉아 다리 사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아힘 슈미츠 덕분에, 그리고 술기운에 더불어 다시 기운을 차렸다. 그가 보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워 미칠 지경이었지만, 그것이 또 묘하게 흥분되었다.

어느새 나도 열중하고 있었다. 주름 하나하나를 빼놓지 않고 쓰다듬고 길고 짧게 리드미컬하게 손을 움직였다. 좀더, 좀더, 하는 욕망에 다른 손으로는 스스로 가슴을 쓰다듬었다. 딱딱해진 유두가 손끝에 걸릴 때에는 허리가 튕겨 올랐다. 그 모든 것을 아힘은 그저 고요한 눈빛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와인 한 잔을 꿀꺽꿀꺽 마시더니 또 한잔 따라 아예 한 손에 든 채 구경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제기랄! 그 와인 좀 갖다 버려요! 내가 포르노 배우가 된 것 같잖아!>

<아, 미안.>

바락 소리를 지르자 그는 의외로 얌전하게 말을 들었다. 바닥에 글라스를 내려놓은 그는 다시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내 얼굴과 내 다리 사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신기하다고? 더럽다고? 하지만, 자기도 하는 거면서! 물론 혼자 있을 때 말이다.

<아, 아, 아아…이제, 응, 이제, 읏! 하…하아……. 끝났어요.>

엉덩이에 힘을 줘 바짝 치켜든 채, 발가락을 잔뜩 움츠리며, 드디어 끝냈다. 배에 우윳빛 액체가 쏟아졌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그를 바라보자 아힘은 이제 내 배 위에 쏟아진 것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손에 질펀하게 묻은 것을 닦아낼 것을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그가 티슈를 뽑아들고 다가왔다. 손을 내밀어 그것을 받아들려는데 그가 돌연 손을 홱 낚아챘다. 그리고 내 손의 것을 자신의 손에 묻혔다. 진득한 점성을 이용해 그것을 손가락 사이로 비벼대더니 또 문득 내 배 위를 바라보았다. 안 돼, 하고 가운으로 덮으려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가 더 빨랐다.

<으응… 하지 말아요, 문지르지 마…….>

그가 손바닥을 편 상태로 내 배를 문질렀다. 아니, 배 위의 것을 문질렀다. 피부에 와 닿는 점성과 그의 손바닥의 움직임, 부드러움과 까칠함이 동시에 느껴져 또 슬그머니 서는 것 같았다. 몸을 돌리려 했지만 그가 팔을 아프게 꽉 쥐고 있었다.

<이제 됐잖아요. 봤으니까……. 자, 어땠어요? …읏! 그만 좀 하고! 말해 봐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냥… 신기해. 재미있어. 그게 좀 귀엽기도 하고.>

<뭐라구요?!>

나는 바락 몸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그가 조금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내 게 귀엽다고?! 그럼 네 건 얼마나 당당하냐, 그 당당한 것 한번 보자! 손을 그의 바지 위로 뻗다가 순간 멈칫하고 부끄러워져 다시 침대 위로 발랑 누워버렸다. 그리고 그에게로 등을 돌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런데 아힘은 그런 내 반응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무덤덤하게 내 어깨를 흔들었다.

<일어나 봐요. 아직 모르겠단 말입니다.>

<봤잖아요!>

<모두 보여주기로 했잖아요. 마스터베이션은 이성애자들도 해요. 당신은 확실하게 모두 다 보여주기로 했어.>

<세상에… 설마…….>

<남자끼리는 어떤 식으로 하지?>

아아, 제기랄. 먼저, 와인을 또 한 잔, 벌컥벌컥 들이켰다. 완전히 정신을 잃고 싶었다. 다행히 모든 물체가 두 개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두 개로 보이는 것 중에는 아힘 또한 포함되어 있어서, 그 빌어먹을 ‘아무 것도 모르는 남자’도 두 명이 되어버렸다. 나는 베개 두 개를 쌓아 그 위로 몸을 엎드려 누웠다. 자연스레 엉덩이가 들렸다. 이번에는 아힘은 내 뒤가 완전히 보이도록 의자의 위치를 옮겨 앉았다. 미끈한 것, 오일이나 로션이 필요하다는 말에 아힘은 군말 없이, 그러나 약간 비틀거리며 욕실에서 바디오일을 가지고 나와 건네주었다.

<읏!>

뒤쪽을 풀어주기 전에 먼저 다시 한 번 앞쪽을 흥분시켜야 했다. 상황이 주는 흥분과 더해 페니스는 전보다 빨리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느끼는, 아니, 이런 상황에서 더 잘 느끼는 나는 정말! 내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하지만 허리가 달달 떨려왔다. 그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더 흥분되었다. 그가 내 뒤를 보며 혐오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염려하며 나는 오일을 듬뿍 묻힌 손을 뒤로 뻗었다.

<아! 으으- 응, 으응…….>

이가 악물렸다. 고개를 베개에 처박아 버렸다. 손가락 한두 개 정도야 이제 그리 아픔을 느끼지 않고 넣을 수 있었지만, 스스로 팔을 돌려 한다는 것이, 그리고 넣는다는 생각과 뚫려진다는 생각이 일치하다보니 몸이 먼저 긴장을 했다. 우선 중지 하나를 넣고 주름을 살살 편 뒤 약지까지 밀어 넣었다. 엉덩이 근육이 바짝 긴장한 것이 느껴졌다. 의식적으로는 힘을 풀려고 노력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뻣뻣하게 힘이 들어갔다.

<으읏… 하…하아…>

손가락을 다시 빼냈다. 그리고 오일을 좀 더 듬뿍 묻혔다. 아니, 이번에는 아예 손바닥에 조금 담아 직접 묻히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오일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상체를 돌려 뒤를 보는데 문득 아힘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엉덩이 골 사이에 오일을 부은 뒤 다시 상체를 베개 위로 엎드려 누웠다. 미끈거리는 오일의 도움으로 이번에는 좀 더 쉽게 들어갔다. 하지만 두 번째 손가락은 역시 조금 힘겨웠다. 릴렉스, 릴렉스, 속으로 릴렉스를 외치며 숨을 고르게 쉬도록 노력했다.

세 번째 손가락을 넣고 나자 숨이 탁 트였다. 머리를 조금 들고 있던 페니스는 이미 잠잠해져 버렸다. 또 한 번 숨을 몰아쉬며 서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구부려 내벽을 찬찬히 훑었다. 단단하게 아물려 있어 움직임이 쉽지 않았다. 어느새 이마가 축축하게 젖어왔다. 끙끙거리며 손을 놀리는데, 나도 잘 아는 곳을 건드리고 말았다.

<아, 아!>

허리가 꺾였다. 엉덩이 근육이 한순간 움찔거렸다. 몸을 바들바들 떠는데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도저히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확인할 용기가 없었다. 그런 순간에도 앞은 차근차근 반응이 왔다. 앞도 만지고 싶었지만 나머지 한 팔은 상체를 받치고 있는지라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허리를 움직여 아래에 뭉쳐진 시트로 자극을 주었다. 이런 꼴이라니. 부끄럽고 민망하고 죽을 만큼 창피했지만, 본능을 거역할 수 없었다. 뒤에서 이런 꼴을 보고 있는 아힘이 무슨 생각을 할지, 듣지 않아도 뻔했다.

<으응- 아, 아, 아아…… 흣!>

치욕스러움이 쾌감으로 변해갔다. 뒤를 헤집고 있는 손가락은 이제 자유롭게 유영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내 손이 대신하고 있었다. 깊고 빠르게, 그러나 리드미컬하게 움직여주는 게 좋다. 엇박으로 허리를 놀릴 때마다 까물어치곤 했다. 그러다 또 가끔 천천히 그러나 큰 원을 그리며 휘둘려질 때면 눈앞이 캄캄했다.

술기운이 확 올랐다. 아아, 이제 정말 확실하게 가는구나. 정신이 어찔해졌다. 이젠 몰라. 그리고 나는 허리와 엉덩이는 물론 온 몸을 바스락거리며 움직였다. 구겨진 시트에 딱딱한 유두가 쓸릴 때마다 무언가 왈칵왈칵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흑! 흐흑- 으응…… 흐으…>

신음과 함께 눈물이 같이 터져 나왔다. 뒤쪽의 시선이 온 몸을 골고루 핥고 물고 빠는 것처럼 쾌감이 강했다. 베개에 처박았던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머리가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는 신경쓸 수 없었다. 손가락을 하나만 더, 하나만 더 넣고 싶었다. 아아, 부족해, 더, 더, 조금 더. 새끼손가락을 밀어 넣으려는데 문득 뒤에서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바스락거리며 몸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손은 경직되었다. 그래도 눈물은 계속 쏟아졌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페니스가 어떤 기대로 단단하게 섰다.

<그 손은 뭘 대신하죠?>

그가 내 어깨를 잡고 고개를 돌렸다. 그와 얼굴을 마주한 내 얼굴은 눈물과 콧물 범벅이었다. 그는 잡았던 내 어깨를 놓아준 뒤 바닥에 놓아두었던 와인 잔을 들고 홀짝였다. 그 모습을 보자 흡, 하고 다시 눈물이 터졌다. 나는 뭔가 억울한 어린아이처럼 흑흑거리며 울었다. 그러자 그는 여전히 와인을 조금씩 마시며 내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주었다. 커다란 그의 손이 내 이마의 땀을 훔쳤다.

<왜 울죠? 아파요?>

나는 여전히 흑흑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눈물 때문에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팽팽하게 기가 오른 페니스가 아파왔다. 마저 끝내고 싶었다. 허리를 움직였지만, 힘이 하나도 없었다. 위로 들려있었던 엉덩이가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내 얼굴만을 바라보며 송글송글 맺힌 땀과 눈물을 닦아주었다.

<말해 봐요. 당신 이 손은, 내가 생각하는 게 맞습니까?>

<아아- 그만, 이제 제발 그만…….>

나는 매달리듯 상체를 틀어 그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얼굴을 그의 배에 묻고 흐느껴 울었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다. 그의 허리를 두 팔로 껴안은 채 지끈거리는 머리를 기대었다. 그러나 아힘은 그런 내 얼굴을, 내 얼굴만을 손으로 떼어낸 채 고개를 들게 했다. 그리고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내 걸 빨아주는 겁니까?>

가슴에 와 닿은 그의 바지앞섶이 볼록해져 있는 것을 그때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흐느껴 울며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                                               *                                                *

-저기… 민하야, 너한테만 말하는 건데 말이다.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그러니까 말이야……. 저기, 여자들은… 왜 그걸 해달라고 하면 그렇게 화내는 거지?

-그거? 그거라니?

-아, 그거. ……. 결혼 약속도 했는데, 왜 그렇게 얌전을 떠는 거지?

-아… 그거.

D, 네가 후회할 것 두 번째. 넌 부부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 즐거움을 놓쳤어.

미안하지만, 지희씨는 참한 여자인 것만은 확실하지만…… 참하기만 하다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라는 건 너도 잘 알겠지?

(스스로 이런 말 하긴 좀 쑥스러운데, 나는 남자가 어디에 미치는지 알아. 나도, 남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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