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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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오후시간이 돼서야 몸을 운용할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 묵야식 마사지를 받은 덕에 삐걱대던 관절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물론 엉덩이는 여전히 아팠다. 데려다 주겠다는 묵야의 권유를 거절하고 바이크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대문 앞에 한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주율이나 유진은 아니었다. 그 둘이 저런 중후해 보이는 밤색의 바바리코트를 입을 리가 없었다. 다리를 벌려 바이크에서 내리자 엉덩이가 욱신거렸다. 며칠 동안은 소중한 구멍에게 휴식시간을 줘야할 성 싶었다.

    “이성일씨?”

    주름의 흔적이 거의 없는 이마, 눈가가 조금 쳐지긴 했지만 그것이 노화 때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아버지의 동생이라던 그는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버지보다 열 살 이상은 더 어려 보였다.

    “잘 어울리는군.”

    마당 안에 바이크를 들여놓는 나를 보며 이성일이 인자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시죠?”

    “커피를 마시러 갔는데, 가게가 망했더군.”

    “화재가 났었어요.”

    “너를 보러가는 핑계거리가 사라져서 그냥 찾아올 수밖에 없었어.”

    솔직하게 본심을 내뱉는 그를 문전박대하진 않았다. 아직도 커튼이 젖힌 내부는 캄캄하기만 했다. 이주율도 유진도 집 안에 없는 듯 했다.

    “들어오세요.”

    신발을 벗고 어두운 거실의 불을 밝혔다. 부엌으로 가서 밥솥을 열어보았더니 아침에 해놓은 양에서 하나도 줄지 않았다. 이주율은 아직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사파 회장이 쓰러졌으니 저마다 의협심을 발휘해서 병실을 지키고 있는 장면이 상상됐다. 그 중 베지밀을 빨고 있을 이주율이, 노인네 죽으려면 빨리 죽으라며 속으로 구시렁댈게 훤했다. 부엌에서 나오자 이성일이 거실을 서성였다. 

    “식사 하셨어요?”

    “하고 왔어.”

    “그럼 뭐라도 드실래요?”

    “아니, 괜찮아.”

    “앉으세요.”

    내 허락을 내려지지 않는 이상 격식을 차릴 생각이었는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이성일의 시선은 닫힌 안방의 문을 향해있었다.

    “제희는… 아니 형은 어디에 안치됐어?”

    “납골당에요. 자유로 청아공원이에요. 약도 적어드릴까요?”

    “아니, 아니 됐어.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주머니에 담긴 휴대폰이 진동했다. 묵야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난 이제 출근. 손에서 네 냄새가 진동한다.] 

    마사지를 하느라 내 몸 곳곳에 닿은 묵야의 손에 내 체취가 묻었나보다. 설마, 이상한 냄새는 아니겠지. 피식 거리며 답변을 보냈다. 

    [비누로 박박 닦아요. 오늘도 수고하세요.] 

    하트를 뿅뿅 그려서 보낼까하다 진지하게 받아들일 묵야이기에 참았다. 

    “사귀는 사람?”

    묵야의 문자에 정신이 팔려서 이성일과 대화 중이란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묵야의 문자는 늘 몰려드는 해일과도 같았다.

    “네.”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답했다. 

    “좋은 사람이야?”

    “흠, 아마도요. 저한테만은 더없이 좋은 사람이에요.”

    “그래, 그게 좋지. 너무 오지랖이 넓어도 정작 자기 사람에게는 소홀한 법이야.”

    문자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경찰직에 몸담고 있는 그는 나보다 더 오랜 삶을 문자와 함께 보내온 남자였다. 남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생각을 읽으며 후회한 적은 없어요?”

    “늘 하고 있지.”

    “그런데 왜 경찰 일을 하세요?”

    “할 게 이것뿐이니까. 내게 있어 마음에 안정을 둘 곳은 일이 전부지. 나는 결혼하지도 않았고, 앞으로 할 생각도 없거든.”

    “부인의 생각을 읽는 것이 싫어서요?”

    이성일이 무슨 소리냐며 손을 내저었다. 

    “내가 문자를 읽어낼 수 없는 사람을 찾고자 하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물론 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로또 1등에 붙을 확률보다도 낮겠지만 말이야.”

    그럼 나는 로또 1등에 붙고, 그 돈으로 로또를 샀더니 또 1등에 붙은 사람이었다. 

    “사실은 어제…. 제 실수로 죽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제가 그들의 문자를 읽지 않았더라면 서로 모른 척 살았을 텐데, 제가 진실을 말해주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죽었어요.”

    이성일이 그런 일 정도야……. 씁쓸하게 내뱉었다. 그는 내 예상대로 더 많은 사건과 사연들 속을 헤쳐 지나온 남자 같았다.   

    “지금껏 아는 분을 도우려고 가해자들 생각을 읽어왔어요. 그런데 이젠 하지 않으려구요.”

    담담했던 이성일이 인상을 구겼다. 불쾌한 기색이 완연했다. 무언가 크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해 보였다. 

    “형사 중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했지? 혹시 그 사람을 도우려고 그런 거니?”

    “네.”

    “대체 왜 그랬어?… 제대로 미쳤구나.”

    당황과 충고가 범벅된 목소리였다. 나는 의문을 띄웠다.

    “아니, 아니지. 제희 그 놈이 너희에게 알려주지 않았으니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겠지.”

    이성일은 생각을 정리하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이 이성일에게서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주인아. 우리는 남을 도와선 안 돼. 네가 주체가 돼서 돕는 건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네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금물이야.”

    이성일이 말하고자 하는 점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내가 요즘 들어 느끼고 있는 것이기에.

    “특히 검사들이나 경찰들을 돕는 건 굉장히 위험해. 내가 외사 경찰이 된 이유는 내가 주체가 되어 사건을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어. 네가 형사를 도왔다면 그 형사는 자립성을 잃어버리게 됐을 거야. 네 덕분에 어떤 사건이든 쉽게 쉽게 처리할 수 있었으니 더 큰 사건들만 바라겠지. 사람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으니까.”

    서울에서 시골로 들어갈 때 나를 붙잡던 태형 형이 떠올랐다. 휴식을 원해 떠나던 나를 탐탁지 못한 표정으로 배웅했던 형이었다. 

    “공짜로 도운 건 아니에요. 저도 경찰 측에서 사례금 비슷한 걸 받으면서 생활해왔구요.”

    내가 보고 있던 태형 형이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사례금? 살인 용의자나 지명 수배범도 몇 번 잡아봤을 테니 족히 몇 천은 되겠구나.”

    이성일은 진지하게 묻지 않았다. 그도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고 있을 테니까.

    “우리나라 공권력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돈을 지급할 것 같아? 정신 나간 소리지. 건당 얼마씩 받았어? 일이십? 혹은 이삼십? 그렇다면 그 돈은 그 형사의 사비일 가능성이 커.”

    이성일의 말대로 수고비는 보통 십만 원에서 이십 만원이었다. 내 안에서 쌓아올린 태형 형의 모습은 이미 금이 가 있었다. 처음부터 내 멋대로 형의 이미지를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외로웠고, 나를 위로해준 사람은 형뿐이었다. 한 달 정도는 태형 형과 같은 집에서 살았지만, 그 이후로는 전화 통화나 서에서 보는 일이 전부였다. 내게 수고비를 지급할 때는 늘 휴대폰 문자를 통해 이루어지곤 했었다. 사실 형과 직접 얼굴을 맞댔던 일보다 전화 통화를 한 기억이 더 많았다.

    “외로웠을 거야, 주인아. 그러니 네가 이용당해도 좋으니 기댈 사람이 필요했을 테고.”

    나는 내게서 생겨난 문자를 보지 않았다. 이성일은 내 본심을 낱낱이 꿰뚫고 있었다.

    “사람을 믿고 싶었겠지.”

    태형 형이 변한 것이 아니었다. 형은 언제나 그대로였다. 묵야로 인해 내 외로움이 사라지며 가려졌던 진실이 보이기 시작해 형이 변했다고만 생각했다. 내 안의 태형 형은 좋은 기억들로만 짜깁기 되어 있었다. 의심스러운 부분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했다. 입 발린 소리조차 진실로 여길 정도로.   

    “많이 외로웠나 봐요. 알면서도 아닌 척 할 정도로요.”

    “지금은 괜찮나보구나.”

    “네, 외롭지 않아요.”

    “앞으로 그 형사의 일은 돕지 않는 게 좋겠다. 얼마나 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남자는 분명 너를 시기할 거야. 자신은 아무리 해도 너처럼 사건의 꼬임을 쉽게 풀어내지 못하니까. 네가 좋든 싫든 앞으로도 너를 이용하려 하겠지.”

    나를 이용하는 건 좋다. 하지만 묵야를 이용하고자 하는 건 추호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앞으론 그럴 일도 없어요. 어제를 계기로 장님하기로 했으니까요.”

    “장님?”

    “우리의 입에서 나가는 말은 독이에요. 쓰디쓴 진실은 독약이죠.”

    자살한 영국 수사관의 심정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다. 그에겐 묵야와 같은 버팀돌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홀로 문자들의 독기를 견디다 못해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다. 

    “나 역시 나로 인해 불행해진 사람들, 행복해진 사람들을 수없이 봐왔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없을 정도의 일은 언제나 태산과도 같이 즐비하지. 그러니 나는 사건에만 집중해. 그 외의 문자들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함이라면 문자를 읽어내는 내 행동들이 전부 합리화 될 수 있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향현사들은 전부 나와 같은 일을 해. 혼자 짊어지기 힘드니까 법이라는 굴레 속에 짐을 전가하지.”

    이성일의 말대로 향현사들이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사람에게서 진실을 읽어내는 일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오히려 향현사들은 범죄자들의 진실만 읽어내는 직업에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법을 집행해 진실을 읽어내면 죄책감은 발생하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여가시간을 즐기거나 또는 상대방을 마음을 전부 읽어내며 사랑을 하는 것보다, 일을 하고 있는 시간이 더 행복할 테지. 우리는 겉으론 웃고 있어도 허공을 떠도는 고독감은 가릴 수가 없다. 

    “함께할 사람이 있는 저는 행운아네요.”

    “그래 정말 다행이지. 주인아. 네가 만나는 사람은 진실하니?”

    “글쎄요. 진실한지 아닌지는 알 수 없죠. 문자를 생성해내지 않는 사람이니까.”

    이성일이 적잖이 놀랐다.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을 보는 시선과 다름없었다.

    “운이 좋네. 문자도 생성하지 않는 사람을, 그리고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처음엔 호기심이 더 컸어요. 그러다 사랑하게 되는 건 순식간이었구요. 그에게서 문자가 보였다 하더라도 전 사랑했을 거예요. 그는 제게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남자거든요.”

    구태여 내 연인이 나와 같은 성(性)이란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성일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외롭지 않게 돼서 다행이다.”

    수많은 시간이 흘러도 내 아버지를 잊지 못하는 이성일이 내 사랑에 축복을 표했다. 내가 이 남자를 집에 들인 이유는 아마도… 연민 때문이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이성일은 꼭 이주율 같았다. 이성일이 우리에게 잘못한 일은 없었다. 그러니 그가 우리에게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에게 짐을 내려주기 위한 마법을 부리고 싶었으나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소리 내어 감정을 전하는 것뿐이었다.

    “우리가 학대받았다고 해서 죄책감을 가지실 필요는 없어요. 죗값은 죽은 사람들의 몫이에요. 어쩌면 이미 죽음으로서 값을 치룬 걸지도 모르구요.”

    만일 내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이렇듯 찾아온 이성일과 어떻게 됐을까? 내 어머니는 또 어땠을까? 행복해졌을까? 더 불행해졌을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제희가 너만 같았다면 좋았을 텐데.”

    남자는 씁쓸히 웃었다. 그 후론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문득 그에게 내 수집품을 보여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그렇듯 그의 기분이 더 나아질 질도 모를 일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이주율인가 싶어 한달음에 달려갔다. 화면이 흑백이라서 색은 확인되지 않지만 금발 머리가 분명한 유진이 미친 듯이 손을 흔들었다. 대문을 열어주고 이성일에게 수집품은 조금 후에 보여주기로 했다. 

    베지밀을 편의점 봉투에 가득 채워온 유진이 소파에 앉은 이방인을 보고 놀랐다.

    “어라? 손님?”

    이성일이 외국인의 침입에 깜짝 놀랐다. 

    “응, 넌 어디 다녀와?”

    이성일은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도중 시트콤처럼 들이닥친 노란 머리가 신기한 듯 했다. 유진이 꼬리를 흔들며 이성일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한국말 잘하는 미국인 유진입니다.”

    침체됐던 분위기를 살리는 유진다웠다. 녀석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이성일은 여전히 눈도 깜빡이지 않고 유진을 쳐다봤다. 유진이 그렇게 신기한가? 토마스라는 이름을 가진 이성일의 반응이 이상했다. 서양인들이 많은 곳에서 살다 왔을 텐데도 이성일은 유진의 등장에 지나치게 놀란 상태였다. 토마스씨? 하고 이성일을 툭툭 칠 뻔했다. 유진도 자신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이성일의 행동 때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유진은 편의점 봉투에서 베지밀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미국인 사온 베지밀 한 번 드셔보실라우?”

    유진이 텔레비전에서 본 사투리를 흉내 내며 베지밀을 흔들었다. 이성일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잘먹겠습니다도, 괜찮습니다도 아닌 전혀 생뚱맞은 말이었다.

    “Eugene Raynerius Jaclyn!”

    이성일은 유진과 흡사할 만큼 유창한 영어 발음을 쏟아냈다. 그가 외친 이름은 유진의 풀네임을 지칭하는 듯 했다. 웃고 있던 표정 그대로 유진이 굳었다. 그것도 잠시 유진은 편의점 비닐 봉투를 거실에 집어던졌다. 베지밀이 비닐 봉투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유진이 테이블 위에 놔둔 바이크 열쇠를 바람같이 낚아챘다.

    “sorry, I′ll borrow your motorcycle for a while!”

    흥분한 유진이 영어 랩을 쏟아 부으며 밖으로 튀어나갔다. 옷깃하나 잡을 새도 없었다. 현관 밖으로 녀석을 따라 나갔을 때, 이미 유진은 바이크를 끌어내서 과격한 엔진소리와 함께 사라진 뒤였다. 구두를 반쯤 구겨 신은 이성일이 바이크가 지나간 방향을 뒤따랐다. 바이크는 이미 저 멀리로 사라진 터라 사람의 발로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었다. 편의점 근처까지 뛰어갔던 이성일이 이내 포기하고 멈춰 섰다. 양 손을 허리에 올리고 가슴팍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이성일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대문 앞에 선 내게 터덜터덜 걸어 돌아왔다. 대체 무슨 상황이 생긴 줄도 모르고 입만 벌렸다. 그저 바람과 함께 사라진 유진이 내 바이크를 훔쳐갔다는 사실만 깨달았다. 이성일이 숨을 씩씩대며 내 앞에 섰다. 

    “헉, 헉. 나이가 나이라서 이젠 뛰기도 힘드네.”

    헥헥 거리는 그에게 떠듬떠듬 말을 건넸다.

    “유, 유진하고 아는 사이세요?”

    “너는 저 녀석하고 어떻게 아는 사이야?”

    이성일은 오히려 내게 반문하고 있었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죠.”

    유진이 던진 베지밀이 거실에 씨를 뿌리고 있었다. 열 개나 되는 것을 주워서 하나만 남기고 냉장고 안에 넣었다. 남겨놓은 베지밀에 빨대를 꽂아 이성일에게 내밀었다. 목이 타는 이성일이 빨대를 빼고 베지밀을 쭉쭉 빨아마셨다. 저런 점까지도 이주율과 비슷했다. 

    “유진이 무슨 죄라도 지었어요?”

    “죄? 너 정말 모르는 거야?”

    “지금 무슨 상황인지 전혀 감도 안 오는데요.”

    “유진 라이네리오 제클린. 그 놈 풀 네임이야.”

    유진은 이름이겠고, 라이네리오는 미들네임, 제클린이 아마도 유진의 아버지나 어머니 성인 듯 했다. 그런데 그게 어떻다는 거지?

    “K3, 너도 잘 알지?”

    “알죠.”

    “정말 복용해? 설마… 너 그래서 제클린을 곁에 뒀던 거야? 허허, 단단히 미쳤군.”

    이성일이 나를 벌레 보듯 내려봤다. 오해는 풀어야 인지상정이다.

    “K3는 수사 도와 줄 때 피치 못할 사정으로 딱 한 번 복용했었구요, 마약은 취미 없어요. 그리고 유진은 제가 아는 형의 의붓동생이에요.”

    오해를 풀어주었음에도 이성일의 표정은 밝아지는 법이 없었다.

    “설마… 아는 형이.”

    “제가 일 도와준 형사에요. 그 형의 의붓동생이 유진이구요.”

    “허허…….”

    이성일은 인생을 다 산 노인처럼 허탈한 웃음을 내비쳤다. 그는 베지밀을 반도 먹지 않고 손에 담아두었다. 

    “K3, 그 공급책이 저 녀석이잖아.”

    “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겨도 놀라지 않을 거란 어제의 다짐이 산산조각 났다. 놀라운 일은 항상 예상치 못한 데서 찾아오니 그 때마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에요. 유진이 왜!”

    “라이네리오 제클린. 미국에서 지명수배범이야. 이미 인터폴에서 공조하라는 서류도 날아왔고.”

    “유진이 지명 수배범이라구요?!!”

    지금 내 얼굴은 열쇠고리에 있는 사진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좀체 표정을 관리할 수가 없었다. 지명수배범이라니… 유진이 그 대형견이!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성일이 이득도 없는 농담을 던질 리가 없었다. 

    “유진이라는 이름보단 라이네리오 제클린이나 Rj로 더 잘 알려져 있지. 미들네임이 수도자의 이름이라니…. 마약 파는 놈 주제에 참 아이러니 한 녀석이야.”

    “그 녀석, 크리스찬이거든요.”

    성당을 다녔다는 유진의 말이 떠올랐다. 미국 사람들은 대게 미들네임을 세례명으로 정했다. 유진 라이네리오 제클린. 머릿속에서 영어단어를 짜 맞췄다. 두 번째의 미들네임과 세 번째의 패밀리네임의 앞 글자를 따면 Rj였다. 내게 K3를 판매한 시가가 누구의 소개로 왔냐며 물었던 그 닉네임인 것이었다. 그렇다면 태형 형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자신의 동생이 K3 판매책인 것을 알면서도 서에 드나들도록 허락했다는 소린가? 뇌가 침입자의 손가락으로 마구 휘저어지고 있었다.

    “유진이 저랑 서에도 몇 번 같이 갔었어요. 다른 형사들도 있었는데 그런 말은 없었는걸요.”

    “공문이 내려온 지 이제 일주일이 조금 넘었어. 외사과는 13층이니 3층의 형사과와 별 상관이 없지. 하물며 외사경찰들이 제클린을 봤다하더라도 어느 지명수배범이 당당히 경찰청을 드나든다 하겠어, 나도 떠올리는 데 한참 걸렸는걸…. 범죄자치고 상판이 잘났으니 나도 기억하는 거겠지만.”

    “그럼 태형 형은 모르는 건가?……”

    “태형 형?”

    “유진의 의붓 형이요.”

    “설마 모르겠어? 알면서 모른 척 한 게 아닐까?”

    “그럴 사람은 아닐 거예요.”

    솔직히 확신은 기하지 못했다. 

    “그래도 조사는 해야 돼. 난 이만 서로 돌아가야겠다.”

    이성일이 벗어두었던 바바리코트를 챙겼다. 나는 서둘러 나가는 그에게 인사도 건네지 못했다. 여태껏 Rj와 유진이 하나로 연결되는 일련의 과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진은 나와 이주율의 앞에선 순한 대형견일 뿐이었다. 가끔씩 투견의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아무나 무는 미친개는 아니었다.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넋 나간 꼴로 앉아있었다. 아연하게 움푹 들어간 뺨을 때려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렇지, 전화! 주머니를 뒤적거려 휴대폰을 찾아냈다. 유진에게 해봤자 받지도 않을 테니 먼저 태형 형에게 전화를 연결했다. 곧 여보세요, 하고 태형 형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형!”

    “주인아, 형 지금 약사 건 때문에 머리가 아프거든. 경찰의 강압수사다 뭐다 난리도 아니다. 네가 혹시 약사 몰아붙이기라도 한 거냐?”

    “…그러진 않았어요.”

    “나중에 전화하자.”

    차갑게 끊으려는 태형 형을 붙잡았다.

    “형, 유진이 지명 수배범이래요.”

    “……누가 그러디?”

    놀라지 않는 태형 형 때문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금 내가 상상하는 일들이 현실화 되지 않기를 바랐다.

    “외사과 경찰이요. 지금 경찰청으로 들어간다는데…….”

    “나중에 전화할게. 끊는다.”

    급하게 전화를 끊은 태형 형에게 다시 전화를 할까하다 그만두었다. 형은 유진이 지명 수배범이라는 내 말에도 별달리 놀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설마, 형은 이미 유진이 K3를 한국에 공급한 자란 걸 알았던 걸까? 그랬으면 왜 사파에게 모든 화살을 겨냥했던 거지? 사파가 K3를 매입한 건 사실이지만, 최초 공급책은 유진이었다. 혹시 묵야도 알고 있던 건 아닐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묵야에게 서둘러 전화를 넣었다. 전화벨이 채 세 번이 울리기도 전에 묵야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사도 없이 바로 용건만 쏘아붙였다.

    “묵야씨, 혹시 유진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었어요?”

    “무슨 소리지?”

    “유진이 K3 판매책인 거 알았냐구요?”

    “유진이 누군데.”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물었다. 

    “우리 집에 있던 미국인이요!”

    “아, 그 미친 미국인. 그 미국인이 왜?”

    “방금 외사경찰에게 들었는데 유진이 지명 수배범인 마약 판매자래요. 그것도 K3!”

    “…….”

    묵야가 잠시 침묵했다. 다다다 쏟아졌던 내 말에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같았다.

    “이주인, 기다려 내가 갈 테니. 아니, 지금 당장 지체 없이 트러스티로 가.”

    묵야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서려있었다. 늘 덤덤한 남자가 저러니 나까지 긴장이 됐다. 

    “왜 그래요? 바이크도 유진이 훔쳐가서 바로 갈 수도 없어요. 대체 무슨 일인데요?”

    “내 말 들어, 이주인. 뒤따라 갈 테니 더는 묻지 말고 바로 호텔로 가. 지금 당장.”

    처음으로 묵야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정신은 여전히 멍했지만 묵야의 조급함이 내 발길을 재촉했다. 묵야가 괜히 저럴 사람은 아니었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묵야는 유진의 정체에 대해 까맣게 모르는 것 같았다. 혹시 이주율도 위험한 건 아닐까? 옷을 입으면서 이주율에게도 전화를 넣었다. 한참이나 신호가 가고 휴대폰을 떼어서 봤을 땐 통화시간이 50초를 넘기고 있었다. 끊고 다시 전화를 걸려는 찰나 이주율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다짜고짜 왜라니. 하여간.

    “너 지금 어디야?”

    “어디긴, 병원이야. 노인네 골골대며 꼴딱거리는데 드럽게 안 죽네.”

    노인네 죽으라며 이주율이 고사를 지낼 거라는 내 예상이 어느 정도는 들어맞았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주율에게 속사포로 말을 쏟아냈다.

    “너 유진이 K3 마약 판매자인 거 알았어?”

    “…뭐? 무슨 개소리야, 꿈 꿨어?”

    “삼촌이… 아니다, 아니야. 얘기하자면 길어. 나 지금 트러스티 호텔로 가거든? 너도 그쪽으로 와.”

    “뭐? 이 시발! 니네 둘이 빠구리 뜨는 거 보여주겠단 심보야?! 이주인! 너 두 다리 전부 끊어놓고 창고에 가둬버릴 줄 알아!”

    귀에 댔던 휴대폰을 떼어냈다. 휴대폰의 내장 스피커가 터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너야말로 무슨 헛소리야! 일단 오고 나서 얘기해. 나 지금 급히 나가야 할 거 같으니까.”

    “이주인! 끊지 마! 야!”

    끊자마자 이주율에게서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왜 또 전화야. 일단 호텔로 오라니까, 만나서 얘기해. 전화로 하기엔 사연이 길어.”

    “진짜, 그것뿐이야?”

    “그럼 또 뭐가 있어! 끊는다.”

    이동하기 편한 농구화를 꺼내들고 마당을 봤다. 바이크를 타려던 타이밍에 유진이 가져갔단 사실을 다시금 되새겼다. 그 동안 유진에게서 마약에 관련한 문자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었다. 타인에 비해 문자가 적게 나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감쪽같이 숨길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유진은 항상 나와 대화하던 중에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곤 했었다. 특히 태형 형에 관해서는 더더욱.

    몇 번 신지 않아 새것처럼 뻑뻑한 농구화에 발을 넣었다. 바닥은 푹신했다. 밖이 어두컴컴했지만 가로등에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마당을 가로질러 대문을 급히 열어젖혔다. 대문 앞에 길을 막은 까만 언덕이 하나 솟아있었다. 아니, 이건 언덕이 아니었다. 대문 앞에 바싹 붙여 불법주차를 강행한 봉고차였다. 봉고차의 유리전면은 새까맣게 썬팅이 되어있었다. 불길한 기분에 고개를 틀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내 머리를 후려갈겼다. 골프채로 맞은 충격에 버금가는 고통이 뒤따랐다. 어질한 몸을 휘청이자 눈 밑까지 복면을 올려 쓴 남자가 나를 잡아 봉고차에 실으려 했다. 열린 봉고차 내부에서 두 사람이 더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세 남자가 내 몸을 옭아맸다. 발버둥을 쳤지만 블랙홀로 끌려들어가는 사람처럼 저항이 무기력했다. 뒤통수에 다시 한 번 충격이 따르고 조수석과 뒷좌석의 문이 쾅-닫혔다. 

    내려맞은 충격에 의해 눈앞이 깜깜했다. 잘못 맞은 게 분명했다. 아무리 어두워도 앞은 분간할 수 있을 텐데 봉고차 내부는 창문하나 없는 방같이 까맸다. 놈들 중 누군가 내 입안에 천뭉치를 틀어넣고 재갈을 물렸다. 머리 위에는 천까지 덮어 씌웠다. 코로 뜨거운 숨이 뱉어졌다가 다시 내 얼굴에 부딪혔다. 누구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입 안에 가득 담긴 천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누가 이런 짓을 사주 한 건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려봤다. 지금 상황에서 의심이 가는 인물은 유진뿐이었다. 묵야의 부하라면 이런 지독한 짓을 할 리가 없었다. 바이크도 훔쳐간 게 모자라서 이젠 납치까지 해! 

    “눈만 가리면 된다고 했잖아. 저러다 숨 막혀 죽으면 어떡해.”

    옆에 앉은 남자가 퍽이나 고맙게 내 걱정을 해주었다. 그래, 참으로 고맙긴 한데 납치 한 것 자체가 이미 글러먹었다. 

    “입 다물어. 목소리 기억하면 어쩌려고 그래!”

    “목소리를 어떻게 기억해. 아니라고 우기면 그만이지.”

    “하긴 그런가? 돈만 받음 장땡이지 뭐.”

    머리가 지끈지끈 거렸다. 뒤늦게 눈가를 타고 무언가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분명 피였다. 덜컹덜컹 거리며 승차감 제로인 봉고차가 속력을 올리자 멀미가 일었다. 내 목과 양 팔을 잡고 있던 남자가 까슬까슬한 밧줄로 손과 발을 꽁꽁 묶었다. 천으로 덮인 시야가 먹칠을 한 것 마냥 검기만 했다. 

    “이 새끼 대가리에서 피나는데?”

    “안 죽어. 걱정 마.”

    가만히 들어보니 세 명 이상의 목소리였다. 그들의 목소리는 내 또래이거나 나보다 어리게 들렸다. 옆에 앉은 녀석이 내 몸을 옆으로 휙 밀었다. 새우처럼 쪼그린 자세로 누우니 차가 급정거 할 때마다 몸이 앞으로 굴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굴러간 내 몸을 옆의 녀석이 원래대로 돌려놨다. 자비를 베풀 듯 방직된 천 틈으로 공기가 실낱같이 들어왔다. 

    “거기서 왼쪽으로 틀어. 아니 오른쪽이다.”

    “썅년아, 방향도 구별 못하냐?”

    “가끔 헷갈려서 그래. 왜 욕질이야, 개년아.”

    남자끼리 년년이라는 욕을 쓰는 걸 보니 어린 녀석들이 확실했다. 음주 단속하는 경찰도 꼭 이럴 땐 없었다. 차는 신호에 멈추기만 할 뿐 누군가가 제지하는 법이 없었다. 운전은 또 얼마나 거친지 속이 미식 거렸다. 천으로 막혀있어서 토를 해도 나만 손해기에 천을 악물고 참았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묵야이거나 이주율이겠지. 진동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려고 주머니에 담긴 휴대폰을 팔꿈치로 꾹 눌렀다. 누군가 나를 유심히 보고 있었는지 소리쳤다.

    “야, 저 새끼 주머니 봐봐.”

    몸을 잔뜩 웅크려 휴대폰을 뺏기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주먹이 머리에 쥐어 박혔다. 고통에 끙끙대는 동안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빼앗아갔다. 발로 휴대폰을 퍽퍽 짓밟는 소리와 함께 곧이어 창문을 여는 소리도 들렸다. 창밖으로 휴대폰을 던진 것이 분명했다. 

    “썅년아, 얌전히 있어. 그럼 얌전히 보내줄 테니까.”

    “보내주긴 한데? 죽이는 거 아니야?”

    “시발년아, 그걸 말하면 더 발버둥 칠 거 아냐!”

    “모르지. 죽이려고 잡아오란 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이 개년 다리 존나 섹시하네. 뭘 처먹고 이렇게 쭉 뻗었냐?”

    옆에 앉은 놈이 내 허벅지를 주물주물했다. 내 허벅지는 묵야 전용이다. 곧 죽을 지도 모르는 때에 별 잡생각을 다한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틈이 생기면 어떻게든 도망쳐야 했다. 허벅지를 타고 안쪽으로 손을 들이미는 새끼를 한데 묶인 발로 걷어찼다. 내게 차인 녀석이 내 얼굴을 짓눌렀다. 뺨에 쓸리는 천의 감촉이 꺼칠꺼칠했다. 

    “뒷보지 걸레 만들기 전에 얌전히 있어. 시발 년이 어디서 발길질이야.”

    걸레는 이미 네 입이다. 하고 싶은 말을 못하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놈이 이젠 내 엉덩이까지 주물 거렸다. 

    “씨발년아 그만 좀 주물러라. 저새끼 호모 짓하는 거보면 토 쏠린다니까.”

    엉덩이를 주물 거리던 녀석이 손을 딱 놨다. 방금 앞에서 들려온 쉰 목소리의 주인이 이들의 우두머리인 듯 했다. 쉰 목소리가 호모 포비아여서 다행이었다. 그보다 저 쉰 목소리가 왠지 익숙한 듯 한데…. 좀체 어디서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욕설이 이곳저곳에서 난무하고 체감상으로 한 세 시간은 달린 것 같은 때 봉고차가 멈춰 섰다. 옆에 놈이 봉고차의 뒷문을 열어 나를 밖으로 끌어내렸다. 발이 묶여있어 콩콩 뛰어야 했다. 누가 내 등을 휙 밀자 맨땅에 헤딩하다시피 엎어졌다. 발로 내 몸을 툭툭치며 낄낄대고 웃던 놈이 손목을 감은 밧줄을 잡아 질질 끌었다. 자세를 곧추세우려 했지만 번번이 넘어지길 반복했다. 쾅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안에 나를 던져 넣었다. 패거리들이 전부 들어오자 굉음과 함께 다시 문이 닫혔다. 

    “얼마나 있어야 한대?”

    “몰라, 세 시간 내에 연락 준다고 했어.”

    “저새끼 숨 막혀 죽기 전에 천 벗겨.”

    “안 돼. 우리 얼굴 보면…….”

    “어차피… 돈만 받고 나면 상관없잖아?”

    얼굴을 덮은 천이 벗겨나갔다. 환기되지 못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침침한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흐릿하게나마 내부의 풍경이 들어왔다. 반듯한 직사각형의 협소한 공간이었다. 천장에 백열전구가 달려있었고, 주변은 어디서 주워왔을 것이 분명한 소파와 냉장고, 텔레비전이 순서대로 놓여있었다. 직사각형 모서리의 끝에는 창문이 뚫려있어 그곳으로 미비하게나마 환기가 이루어졌다. 컨테이너박스 내부를 개조한 방이었다. 

    나를 납치했던 녀석들의 얼굴을 하나씩 뜯어봤다. 저들이 얼굴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건 곧 언제든 나를 죽이겠단 뜻이었다. 녀석들은 아무리 많이 봐줘도 고등학생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여드름이 얼굴 전체를 덮은 놈과, 키가 제일 작은 놈, 좀 반반하게 생겼다 싶은 녀석에, 얼굴이 까무잡잡한 것 빼고는 아무특징이 없는 녀석까지 총 네 명이었다. 곧 쉰 목소리가 익숙하게 느껴졌던 이유를 깨달았다. 저들 중 반반한 녀석과 나는 초면이 아니었다. 얼마 전 카페에서 이주율과 어깨를 부딪쳤던 젊은 남자였다. 게다가 나를 보며 20장이라는 뜻 모를 숫자를 생성해낸 녀석이기도 했다.

    “나 기억해?”

    눈을 커다랗게 뜬 내게 쉰 목소리가 다가왔다. 자극해봐야 좋을 것 없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력이 꽤 좋은가보네.”

    쉰 목소리가 내 두뇌회전을 칭찬했다. 

    “그렇게 겁먹지 마. 얌전히 있으면 살려서 돌려보내 줄지도 모르니까.”

    열은 받았지만 겁먹지는 않았다. 구태여 쉰 목소리의 잘못된 판단을 지적할 필요는 없었다. 모르는 척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는 시늉을 했다. 컨베이어벨트 안에는 문자들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즉 녀석들의 아지트는 아니었다. 까무잡잡의 어깨에 ‘성욕, 섹스, 좆, 보지.’ 눈뜨고도 보기 싫은 글자가 올려있었다. 내 쪽으로 향하고 싶어 하는 문자지만 다가오지는 못하고 까무잡잡의 어깨에만 매달려있었다. 아무래도 까무잡잡이 내 허벅지를 주무르던 녀석 같았다. 까무잡잡은 성욕으로 이글이글한 눈을 한 채 옆에서 냉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쉰 목소리의 눈치를 살폈다. 쉰 목소리가 놈들의 우두머리라는 것에 확신을 가졌다. 나머지 둘도 쉰 목소리의 부하로 보여 더 볼 것도 없었다. 쉰 목소리가 내 입을 묶었던 재갈을 풀었다. 침이 말라붙은 천은 쉽사리 뱉어내지지가 않았다. 녀석은 입 밖으로 슬쩍 나온 천의 끄트머리를 잡아당겼다. 축축하게 젖은 천이 더럽다는 듯 바닥에 휙 던져버렸다. 

    “켁. 콜록. 쿨럭.”

    마른기침이 뱉어졌다. 

    “소리 질러도 소용없어. 여긴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으니까.” 

    쉰 목소리가 낡은 삼인용 소파에 앉았다. 놈을 유심히 쳐다봤다. 쉰 목소리가 꿇어앉힌 내게 다가와서 싸대기를 날렸다. 내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내가 두 손만 멀쩡했어도 넌 핵주먹에 맞아 죽었다. 그래도 이주율에게 맞아 입이 터졌을 때보다는 덜 아팠다.

    “아야, 아파요.”

    내가 소리를 지르거나 발광할 거라 생각했는지 쉰 목소리의 머리 위로 ‘의외’가 떠올랐다.  

    “전화기 줘봐.”

    쉰 목소리가 까무잡잡에게 손을 내밀었다. 쉰 목소리가 휴대폰을 쥐고 나를 냉담하게 내려 봤다. 전화를 거는 녀석은 상대방을 확인하자마자 장사를 시작했다.

    “10장 더 얹어주시죠. 반항하는 바람에 우성이 녀석 다쳤으니까, 병원비는 지급해야죠. 싫습니까? 싫으면 이대로 풀어주고…. 우린 미성년자라 법적으로 두려울 것도 없거든요. 물론 협박하는 게 아닙니다, 흥정하는 거지. 뭐, 이해가 빨라서 좋네요.”

    여기는 가출 청소년 네 명이 범죄의 길로 들어선 현장이었다. 미성년자에게 큰 감투를 씌운 우리나라 법이 문제였다. 법을 어긴 미성년에게는 성인 못지않은 엄중한 처벌을 가해야한다. 그래야 나처럼 불쌍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지. 

    흥정을 마친 쉰 목소리가 전화를 끊자마자 까무잡잡은 얼굴을 찌푸렸다.

    “살살 때려줘.”

    “이 악 물어.”

    쉰 목소리의 주먹이 까무잡잡의 아구를 날렸다. 까무잡잡이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벌리자 쪼개진 이가 떨어졌다. 

    “이빨 하나에 천만 원이면 싸게 치는 거잖아. 그치 우성아?”

    쉰 목소리가 까무잡잡, 아니 우성을 달래고 있었다. 피가 질질 나는 녀석이 헤죽 웃었다. 나는 천천히 그들을 살펴보고 입을 열었다. 최대한 자극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누가, 누가 사주했어요?”

    쉰 목소리가 소파에 털썩 앉았다. 여드름이 냉장고에서 꺼낸 콜라를 쉰 목소리에게 내밀었다. 

    “나도 몰라.”

    진심이었다. 나를 납치하라 사주한 자의 정체에 대해선 물음표로 떴을 뿐이었다.

    “얼마나 받기로 했는데요?”

    “20장.”

    이천만원…. 쉰 목소리를 처음 만났던 날, 내 몸을 휘감고 지나간 ‘20장’은 놈이 생각한 내 몸값이었다. 나는 진부하지만 효력이 강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40장 줄게요.”

    “뭐?”

    “풀어주면 40장 줄게요.”

    “개소리 지껄인다. 풀어주면 경찰서로 향하겠지.”

    나는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휘적휘적 저었다. 쉰 목소리가 콜라를 벌컥벌컥 마셨다. 

    “같이 집으로 돌아가서 바로 드릴게요. 은행 갈 필요도 없으니까.”

    쉰 목소리가 위협적이게 걸어왔다. 내 이마에 말라붙은 피를 손가락으로 긁었다. 힘이 실려 있어 살이 패는 것만 같았다. 

    “쌍년아, 너 부자야? 돈이 막 튀어? 사천만원이 너한테는 돈도 아니냐 씨발년아? 근데 이걸 어쩌나. 너를 납치한 값은 딱 20장. 그 값어치뿐인데.”

    ‘혐오, 묵살’ 쉰 목소리가 다시 소파로 돌아가며 내게 내뱉은 문자였다. 너희가 나를 납치했던 낡은 우리 집을 봐라. 어떻게 사천만원이 돈이 아니겠냐? 사십만원도 없어서 허덕이는 판국인데. 쉰 목소리는 냉정함을 유지하려했지만 아직 고등학생 밖에 안돼서 그런지 쉽사리 흥분하는 것 같았다. 

    “돈은 받았어요?”

    “선금 50프로 받지 않은 이상에야 움직이지 않아. 그게 우리야.”

    까무잡잡이 자랑스럽게 깨진 이빨을 들이밀었다. 선금을 이미 받았다는 소리는 누군가가 내 납치를 구체적으로 계획했다는 소리였다. 내게 원한을 품었을 사람을 생각해봤다.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물며 대형견 유진이 계획적으로 나를 납치했을 리도 없었다. 하지만 그동안 본색을 숨기고 있었으니 확신해선 안 됐다.

    “조금 자둬. 사주한 사람이 오면 님아 빠염 일 테니까.”

    여드름이 킬킬대고 웃었다. 납치를 사주한 사람이 저들에게 나를 죽이라 지시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녀석들은 내가 죽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가만히 누워 있다가 죽어 줄 생각은 없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묵야나 이주율을 기다릴 수도 없었다. 그들이 날 찾았을 때 시체상태면 매우 곤란하니까. 묵야와 이주율이 내 시체를 부여안고 눈물을 질질 짜게 만들어선 안됐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일단 놈들에게서 읽히는 문자를 이용해 탈출의 확률을 높여야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곧 문자를 이용해 저들을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장님으로 살고자했는데 필요도 없는 공양미 삼백석이 지급됐다. 심청이는 사주한 사람이니 인당수에 빠뜨려 죽여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저린 무릎을 쭉 펴고 기회를 기다렸다. 이불을 깔려있던 바닥에 까무잡잡과 여드름이 드러누웠다. 먼지가 폴폴 날리는 이불을 덮고도 무리 없이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여드름이 까무잡잡에게서 등을 돌렸다. ‘시끄러.’ 쑥 올라온 글자가 킬킬대는 까무잡잡을 향했다. 여드름은 곧 잠을 자려는 것 같았다. 까무잡잡은 텔레비전에 집중한 터라 아무 문자도 생성하지 않았다. 땅꼬마처럼 키가 작은 녀석은 소파에 앉은 쉰 목소리의 옆에서 그를 흘끔흘끔 올려봤다. ‘잘생겼다, 뽀뽀, 맞는다.’ 땅꼬마는 짝사랑을 열렬히 구애 중이셨다. 쉰 목소리가 땅꼬마의 머리를 옆으로 밀어냈다. 땅꼬마의 문자는 읽히지 않더라도 기분은 나쁜가보다.    

    “너… 뭘 그렇게 쳐다봐.”

    쉰 목소리의 목소리가 나를 향했다. 

    “아무 것도 안 봤는데요.”

    “눈깔 뽑아 버린다.”

    ‘말대꾸’ 성냥심지의 푸른 불 색을 띤 문자가 튀어나왔다. 서둘러 쉰 목소리에게 사과를 건넸다.

    “죄송합니다.”

    “말기는 잘 쳐듣네.”

    말기가 아니라 글자귀겠지. 할 말 다 못하니 속으로 구시렁대는 것만 늘었다. 슬슬 작업을 시작해도 되겠다.

    “거기 소파에 앉은 분이 그 쪽 참 좋아하나 봐요.”

    땅꼬마가 화들짝 놀라며 내게 튀어왔다. 키는 작아도 달리기는 재빨랐다. 

    “닥쳐, 뭔 개소리야!”

    땅꼬마가 발로 내 얼굴을 후려쳤다. 맷집에 일가견이 있으니 이정도야 참을 수 있었다. ‘비밀, 팬티. 자위’ 얼굴이 발개진 땅꼬마가 비밀스런 생각을 펼쳐 놨다.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진실은 툭만 찔러줘도 봉선화처럼 터지기 마련이다. 어리면 어릴수록 자극하긴 더 쉬웠다. 

    “그 쪽 팬티 하나 사라졌지 않아요? 그걸로 자위했다는 거 같던데.”

    쉰 목소리가 고개를 비틀어 나를 내려다봤다. 이게 공포로 인해 미쳤나? 이런 반응이었다. 그런데 뒤에 선 땅꼬마의 얼굴이 여드름 저리가라 할 정도로 확 불타올랐다. 

    “정말인가 보네.”

    내 말에 쉰 목소리가 땅꼬마를 봤다. ‘더러운 새끼’ 쉰 목소리에게서 딱 하나의 문자가 생성됐지만 임팩트가 꽤나 강렬했다. 중증의 호모 포비아였다. 쉰 목소리는 얼굴에 고구마를 올리면 따끈따끈하게 익을 땅꼬마의 멱살을 잡았다. 

    “넌 왜 빨개지고 지랄이야!”

    “아, 아니야. 안 빨개.”

    “진짜로 팬티 훔친 새끼마냥 뭘 벌벌 떨어!”

    “그, 그렇지 않아!”

    ‘주머니, 안 돼, 설마.’ 안 되긴 뭐가 안 돼. 차라리 아예 생각하질 말지 그랬냐. 

    “주머니 뒤져봐요. 거기 볼록한데 혹시 팬티 있는 거 아냐?”

    왼쪽 보다 볼록한 땅꼬마의 오른쪽 주머니에 쉰 목소리가 손을 쑤셔 넣었다. 그 안에서 팬티 하나가 걸려나왔다. 몸매를 드러내 보일 화끈한 삼각팬티였다. 쉰 목소리가 팬티를 패대기치더니 발로 땅꼬마의 복부를 걷어찼다. 땅꼬마가 큭하면서 뒤로 나자빠졌다. 이 난동에 자고 있던 여드름과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까무잡잡이 일어났다. 쉰 목소리가 사정 봐주지 않고 땅꼬마를 짓밟았다. 여드름과 까무잡잡이 말리려 하자 더 성이 나서 발로 걷어찼다.

    “더러운 개새끼! 죽고 싶냐! 정희도 네년 때문에 떨어져 나간거지!”

    “저, 정희는 아니야. 난 아무 짓도 안했어!”

    발발 떠는 땅꼬마가 팔을 들어 올려 머리를 보호했다. 보호막도 소용없이 컨테이너박스 바닥에 머리가 깨져 피를 질질 흘렸다. 맞은 곳이 잘못됐는지 땅꼬마는 납치 될 때의 나처럼 머리를 감싸 안고 끙끙거렸다. 그 머리에 연거푸 발길질을 해대던 쉰 목소리가 성을 풀지 못한 채로 나를 노려봤다.   

    “넌 뭐야, 뭔데 알았어?”

    “글쎄요. 그냥 알았는데요.”

    저자세로 쉰 목소리를 올려봤다. 쉰 목소리의 광적인 모습에 여드름과 까무잡잡의 머리로 공포가 피어올랐다.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말 해. 어떻게 알았냐고!”

    쉰 목소리가 손목이 묶인 밧줄을 잡아 나를 일으켰다. ‘정희, 김종훈, 발설, 섹스.’ 쉰 목소리에게서 후회색인 연한 보랏빛의 문자들이 속속들이 나타났다.   

    “저기 땅꼬, 아니 엎어져 계신 분 이름이 김종훈인가요?”

    쉰 목소리뿐만 아니라 나머지 녀석들도 화들짝 놀랐다. 쉰 목소리가 입술을 틀었다. 내 멱살을 잡아서 음산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너, 사람 새끼야? 귀신 새끼야?”

    “사람 새끼인데요.”

    ‘건방진’ 뾰족하게 선 문자가 내 코를 퉁 치고 지나갔다. 

    “죄송합니다. 건방지게 안 굴게요.”

    쉰 목소리가 하, 하면서 기가 찬 듯 웃었다. 

    “그 쪽이 저기 쓰러진 분과 섹스라도 하셨나봐요? 후회하고 계시네요. 근데 그 쪽이 남자분과 섹스 한 걸 저 분이 정희라는 여자분께 말한 거 같네요?”

    쉰 목소리가 내 싸대기를 때렸다. 모욕감이 느껴지는 손찌검이었다. 혀로 터진 입 안을 훑었다. 다시 반대쪽 싸대기가 짝하고 날아갔다.

    “너 대체 뭐야?”

    “사람이요, 아! 건방지게 대답한 건 아니에요.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의 생각을 읽는 사람이라 서요.”

    “뭐?”

    간장공장 콩장장의 수준으로 내뱉었더니 쉰 목소리가 움켜쥔 멱살에 힘을 실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거 전부 읽을 수 있다구요. 속으로 하나만 강렬하게 생각해봐요. 그럼 맞춰 볼 테니.”

    ‘미친년’ 쉰 목소리는 나를 저렇게 생각하나보다. 

    “저 미친년 아닌데요.”

    “하하… 뭐야 이건. 너…진짜야?”

    “네, 진짠데요.”

    쉰 목소리가 잡은 멱살을 탁 놨다. 균형을 잃은 몸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쉰 목소리가 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물었다. 불을 붙인 담배를 빨며 연기를 내 얼굴에 뿜었다. 

    “너 그래서 납치 사주 당한거야?”

    “아마도 그런 것 같은데요.”

    “사람 마음을 어떻게 읽어?”

    ‘의심, 수작’ 글자가 보기 힘들게끔 일그러졌다.

    “제가 죽음 앞에서 수작 부리겠어요? 의심 안하셔도 되요.”

    생각이 읽힐 때마다 쉰 목소리의 표정이 기괴하게 비틀려졌다. ‘흥미, 돈벌이, 방법, 계약위반, 이용’ 어린놈이 참 욕심도 많았다. 나를 사주한 자에게 넘겨주지 않으려고 생각하는 듯했다. 우리의 능력을 알게 되면 이용하고 싶어 하는 게 사람심리라는 이성일의 말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방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있으면 속마음이 들려요. 이걸로 돈도 많이 벌었구요. 우리 집 봤죠? 별로 좋은 주택도 아닌데 제가 사천만원을 어떻게 현금으로 가지고 있겠어요. 다 편법으로 벌었으니까 그렇죠. 실은 도박이 제 밥줄이에요.”

    ‘아쉬움, 죽음.’ 저 문자를 보고 나서 확신을 얻었다. 돈을 받고 나서 나를 죽일 생각이었던 게 확실했다.

    “이래도 절 납치한 값이 20장 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납치를 사주한 사람은 절 죽일 생각이 없을 걸요? 제 능력을 이용하려는 수작을 부리겠죠. 어쩌면 도박판에서 만난 사람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네요. 판을 벌이는 족족 제가 돈을 긁어모으니까요.”

    내 말에 긍정하면서도 여전히 의심하는 쉰 목소리가 담배를 내 다리사이에 비벼 껐다. 

    “너 거짓말이면 좆을 잘라낼 줄 알아.”

    “생각을 해보세요. 지금까지 그 쪽 생각, 말로 하지 않았어도 다 알아냈잖아요. 그게 단순히 우연이겠어요?”

    “그건 그렇지. 그럼 저 새끼들 생각도 읽어봐.”

    쉰 목소리의 화살이 여드름과 까무잡잡에게로 향했다. 둘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어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좀 머리가 둔해 보이는 자들이었다. 

    “의뢰비용, 네 명이 나누기로 했죠?”

    일단 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냈다. 여드름은 여전히 멍청한 표정이었다. 까무잡잡만이 내 질문에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불공평, 분배.’ 글자가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아하, 우두머리인 쉰 목소리가 돈을 더 많이 가지기로 한 듯 했다. 

    “어라? 저 두 분 불만이 많네요. 특히 그 쪽한테요. 분배가 늘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니야! 난 그런 적 없어!”

    여드름이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까무잡잡이 허를 찔린 것처럼 말을 더듬었다.

    “나, 나, 나도야. 주율이 네가 더 많이 갖는 게 당연하지.”

    머리가 펑 하고 터졌다. 쉰 목소리의 이름이 주율이란 말이야? 주율은 흔한 이름이 아니기에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전혀 내 동생 이주율 같진 않았다. 쉰 목소리가 까무잡잡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까무잡잡의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어놓았다.

    “이름 부르지 말라고 했지, 새끼야.”

    “어차피 제가 다 읽는 데 상관없잖아요.”

    “끼어들지 마.”

    “네.”

    얌전히 대답하고 다시 공격 태세를 갖췄다. 조금만 힘쓰면 저들을 와해시키는 일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한 게, 같이 동업했던 이들일수록 서로를 의심하는 일이 더 잦은 법이었다. 그렇기에 저 쉰 목소리도 동업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내게 흥미를 보이는 것이고. 장작이 타기 시작한 아궁이에 땔감을 더 넣을 차례였다. 활활 타올라라.

    “내가 지금은 참고 있지만 언젠가 형세역전 할 거라는 생각을 하시는 데요.”

    “이, 인간질이야!”

    이간질이겠지. 미국인인 유진보다도 한국말을 잘 구사하지 못하는 까무잡잡이었다. 

    “그래, 이간질일 수도 있겠지….”

    까무잡잡을 패던 쉰 목소리가 나를 돌아봤다. 주먹에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나는 눈을 피하지 않고 녀석을 마주봤다. 쉰 목소리가 픽 웃었다. 

    “근데 이간질이면 어때? 내가 니년을 이용하면 이렇게 고생 안 해도 쉽게 돈 벌 수 있는데, 그렇지?”

    내게 확답을 원하는 쉰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끄덕 해주었다. 쉰 목소리가 바닥을 굴러다니던 쇠파이프를 들었다. 반항도 못하는 여드름과 이미 피거품을 뿜어내는 까무잡잡을 복날 개 잡듯 후려졌다. 퍽퍽 하는 소리와 함께 쇠파이프가 움푹 팼다. 살과 뼈가 터지는 장면을 도저히 보지 못하겠어서 고개를 돌렸다. 그럼에도 소리는 여실하게 들려왔다. 손을 들어 올려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묶여있어서 바르작거리기만 했다. 곁눈질로 비치는 곳에는 두 녀석이 뻗은 채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저 미친놈이 나까지 저 지경으로 만들지는 않을까 슬슬 걱정이 들었다. 

    쉰 목소리가 쇠파이프를 질질 끌고 내게로 걸어왔다. 쇠파이프를 타고 핏물이 흘러내렸다. 갑자기 몸을 휙 돌리더니 제일 처음 뻗었던 땅꼬마의 허리를 쇠파이프의 끝으로 내리찍었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쉰 목소리가 쇠파이프로 내 턱을 들어올렸다. 피냄새가 진동했다. 

    “너, 옷 벗어봐.”

    “네?”

    ‘사진, 협박.’ 음산한 기운을 가진 문자들이 긴 궤적을 남기고 내 하반신으로 다가왔다. 

    “저 남자거든요. 사내새끼가 알몸 사진 찍힌다고 해서 협박거리가 될 것 같아요?”

    “그건 그렇지. 그럼 뭐가 있을까? 다리 하나 분질러놔 병신 만들면 되려나?”

    동시에 쉰 목소리가 쇠파이프를 높게 쳐들었다. 묶인 손을 번쩍 들어올렸다.

    “잠깐만요! 저 이용하시려면 얼마든지 하세요. 대신에 7:3으로 나눠요. 저 카지노나 도박판 괜찮은데 아는데 쏠쏠해요.”

    “그걸 어떻게 믿어?”

    “제가 목숨의 위협을 이렇듯 자주 받거든요. 그냥 저 따라다니면서 보디가드 정도로만 계시면 될 듯한데. 싸움도 잘 하시고 하시니…….”

    임기응변의 끝은 허무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설득력 없는 말이었다. 

    “내가 7이야?”

    의외로 먹혔는지 쉰 목소리가 쇠파이프를 겨드랑이에 끼고 손가락 일곱 개를 폈다.

    “아뇨 아뇨, 제가 7이죠.”

    “씹년아, 장난 하냐? 5:5로 해.”

    “그건 폭리잖아요.”

    다시금 높이 쳐들린 쇠파이프가 거세게 내리쳐졌다. 몸을 잔뜩 움츠려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쇠파이프는 툭 하고 어깨 위에 오르는 것으로만 그쳤다.

    “5:5로 해. 아니면 여기서 뒤지던가.”

    “네, 5:5로 해요.”

    “입 벌려.”

    “네?”

    “주둥아리 쳐 벌리라고 쌍년아.”

    “네네.”

    입을 벌렸다. 쉰 목소리가 지퍼를 우렁차게 내렸다. 놈이 축 수그러진 자신의 성기를 꺼내더니 내 입에 쑤셔 넣으려고 했다.

    “물면 강냉이 다 털릴 줄 알아.”

    비릿한 성기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깨물어서 뜯어버리고 싶었지만 이빨은 털리고 싶지 않아서 성기를 담은 채로 얌전히 있었다. 녀석도 내 입에 오랄을 할 생각은 없는지 휴대폰으로 사진만 찰칵 찰칵 찍었다. 열 장도 넘게 면밀히 사진을 찍은 쉰 목소리가 성기를 빼냈다. 손으로 침이 묻은 성기를 닦아 다시 지퍼 안으로 집어넣었다.

    “넌 씹새끼야, 튀면 이 사진 인터넷이고 길거리고 할 거 없이 올라갈 줄 알아. 니네 동네 게이 포르노 스타 되는 거야. 알겠어?”

    나름 현명한 녀석이었다. 전라인 남자의 사진보다 동성의 성기를 물고 있는 사진이 협박거리론 더 좋았다. 

    “네네.”

    쉰 목소리가 보지 못하도록 침을 퉤 뱉었다. 쉰 목소리는 엎어져서 신음 하는 녀석들의 등짝을 걸레처럼 두들겨주었다. 이미 정신을 잃은 놈도 있었지만 매질은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높이 올렸던 쇠파이프가 아래로 계속해서 처박혔다.

    “그러다 죽겠어요!” 

    “너도 배신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 썅년아.”

    쉰 목소리가 보란 듯이 동업자였던 녀석들을 매타작했다. 저러다 저들이 정말 죽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됐다. 이간질을 할 생각이었지 살인을 하라며 등을 떠민 건 아니었다. 

    순간 귀에서 이명이 일었다. 삐-하는 수신음 소리가 뇌리에 직격했다. 관자놀이가 빠개질 것 같은 고통이 찾아오고 한쪽 눈이 제멋대로 경련했다. 묶인 손으로 고통스런 관자놀이를 감싸 쥐었다. 연신 쇠파이프를 내려찍는 쉰 목소리의 등이 흐릿하게 번졌다. 누군가 내 머리를 꽉 쥐고 터뜨리려는 것만 같았다. 눈을 깜빡이자 어느새 쉰 목소리는 쇠파이프가 아닌 골프채를 들고 있었다. 골프채를 든 사람은 쉰 목소리가 아니라 내 아버지였다. 제기랄! 묵야가 걱정했던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K3를 복용하고 난 후 아주 극히 드문 확률로 그 경험이 재연되는 플래쉬백 효과.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재수 없음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그, 그만!”

    내 고함 소리에 이주율을 후려치는 아버지의 등짝이 움찔거리며 멈췄다. 골프채를 든 아버지가 내게 다가왔다. 입을 비릿하게 틀고 골프채로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너 왜 그래?”

    아버지의 얼굴에서 쉰 목소리가 흘렀다.

    “야, 너 왜 그러냐고.”

    아버지의 골프채를 잡았다. 그는 골프채를 뺏으려 하는 내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연이어 골프채를 바닥에 내던진 아버지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너 눈깔이 왜 이래? 야, 정신 차려.”

    내 뺨을 찰싹 찰싹 때렸다. 바닥에 떨어진 골프채를 환영 속의 내 아버지가 주워들었다. 내 어깨를 잡고 있는 녀석이 이주율로 변했다. 아버지가 골프채를 들고 이주율을 향해 내리쳤다. 나는 묶인 손을 이주율의 목뒤로 감았다.

    “그만해요! 그만!!”

    이주율이 내게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을 쳤다. 그래도 있는 힘을 다해 녀석을 껴안았다. 아버지가 후려치는 골프채는 나와 이주율의 위로 무자비하게 쏟아졌다. 

    “그만하세요, 그만 때리시라구요!”

    불쌍한 내 동생 어디 다치기라도 할까봐 그 망가진 다리 때문에 도망치지도 못하는 녀석이 또 아프기라도 할까봐 두려웠다.

    “안 떨어져? 야, 떨어지라고! 야, 너 대체 왜 그래!”

    “괜찮아, 괜찮으니까. 이대로 있어.”

    형이 있으니까 괜찮아…. 부탁하듯 속삭이는 내 말에 내게 안긴 이주율이 반항을 멈추고 얌전히 몸을 내맡겼다. 나는 녀석을 내리눌러 내 밑에 가두고 쏟아지는 아버지의 매를 대신 맞았다. 아프진 않았다. 그래, 단지 환영일 뿐이었다. 벗어나고자 하는데,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한 낙인이었다. 나는 이주율의 따뜻한 몸을 안고 흐느꼈다. 원하든 그렇지 않든 학대의 흔적은 내 안 깊숙이 남았다. 나는 그것을 인정해야했다. 이겨내는 것이 아닌 인정을 하는 것이 고작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주율이 내 등을 끌어안았다. 아직 어린 녀석이 나를 위로하듯 등을 토닥였다. 그 모습에 매질을 하던 아버지가 행동을 멈췄다. 아버지는 골프채를 바닥에 내리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한 번도 당신이 울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당신이 우는 일은 내 꿈일 뿐이라고 치부했었다. 그런 당신이 지금 내 환영 속에서 울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환영이 아닌 내가 본 과거의 흔적이었다. 거센 매질로 인해 내가 정신을 잃을 때가 되면 당신은 항상 울곤 했었다. 그 울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리고 여전히 알고 싶지 않았다. 흐느끼는 등을 끌어안은 이주율이 괜찮다며 나를 토닥여주었다.

    핏-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뒤로 꺾였다. 정신이 다잡을 수가 없이 멀어졌다. 귀를 울리던 이명 소리는 다 감긴 테이프처럼 끊어졌다. 테이프가 다시 반복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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