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28)
  • #4

    중학교 때 국어 선생은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독후감 숙제를 내주었는데 나는 그 때마다 책은 읽어보지 않고 줄거리만 베껴 쓰기에 여념이 없곤 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이 선정한 책의 종류는 유명한 베스트셀러 소설이 대부분이었다. 독후감 숙제에도 익숙해져 갈 무렵이었다. 오체불만족이라는 책이 그 주의 독후감 과제였었다. 지금도 저자의 이름이 기억난다. 오토다케 히로다타. 이상하게도 그 책은 줄거리가 아닌 첫 장부터 손이 갔다. 다 읽는 데는 저녁부터 시작해 그 날 새벽을 꼬박 새야했지만 처음으로 독후감이라는 숙제를 편법 없이 이행했었다. 책의 저자는 팔다리가 없이 태어난 장애우였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당차게 세상을 살아나가는 그의 모습은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휠체어를 탄 채로 농구도 하고 야구도 했으며 명문 대학에 입학한 낙척전이고 용기 있는 남자였다. 행여 책을 읽었더라도 장애를 가진 남자의 심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그 누구도 백프로 공감하진 못할 것이다. 나 역시 오늘부로 깨달았다. 당시에 나는 그의 심정을 반의반도 헤아리지 못했다는 걸.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상체 아래부터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체불만족의 저자처럼 팔다리가 전부 사라진 건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식물인간처럼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했다. 뻣뻣한 목만 돌려 묵야를 올려다봤다. 나보다 먼저 잠에서 깬 묵야가 내 얼굴 위로 손을 흔들었다. 내가 눈뜨고 자는지 확인하려는 행동 같았다.

    “주…….”

    “주?”

    내 말을 따라하는 묵야가 내 입술에 귀를 바짝 붙였다.

    “죽겠어요.”

    묵야가 침대 선반에 올려두었던 머그컵을 들었다. 머금은 물을 내 입에 흘려주었다. 미지근한 물이 무리 없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아파?”

    “아프진 않은데, 몸이 안 움직여요…. 얼마나 잤어요?”

    시계를 올려보려다 곧 포기했다.

    “8시간 정도.”

    “많이 잤네요. 대체 어젠 몇 번이나 한 거예요?”

    “네 번.”

    거짓말 하지 마라. 내가 기억하는 것만 네 번이었다. 입을 꾹 다물고 노려보자 묵야가 그럼 아마도 다섯 번? 이라며 정정했다. 그것도 거짓말 같았다. 다섯 번도 충분히 무리한 숫자지만 내 몸이 오체불만족이 되기엔 부족했다. 적어도 여섯 번 이상은 했다는 데 내 손목을 걸겠다.

    “묵야씨는 다정하면서도 어딘가 좀 거친 데가 있어요. 특히 섹스 할 때요.”

    “미안하다.”

    “사과하라고 한 말은 아니에요. 어젠 내가 하라고 했으니까. 출근 해야죠?”

    “괜찮아 질 때까지 옆에 있을 테니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저 배고파요.”

    묵야가 부리나케 일어나서 가운을 챙겨 입었다. 카운터에 전화를 연결한 묵야가 아침 식사는 죽으로 올리라며 음산하게 경고했다. 영양이 듬뿍 담긴 죽으로 가져오라며. 

    룸서비스로 가져온 죽은 전체적으로 붉은 기가 도는 낙지김치죽이었다. 낙지가 쓰러진 소도 되살린다는 풍문은 있는데 나는 소가 아니니 번쩍 일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묵야가 내 몸을 일으켜 베개를 덧댄 침대머리에 앉혔다. 묵야가 자신의 허벅지 위에 죽이 담긴 쟁반을 올렸다. 묵야는 낙지김치죽의 윗부분을 슬슬 떠서 호호 불었다. 

    “아 해.”

    묵야의 말대로 입을 벌리자 따끈한 죽이 들어왔다. 낙지의 자잘한 살점들이 오독오독 씹혔다. 김치의 매콤함도 감칠맛 났다. 문신남이 식혀주는 죽은 꿀맛이었다. 간간히 물을 먹으며 죽 그릇을 비워갔다. 

    “묵야씨는 안 먹어요? 아, 맞다 뜨거운 거 못 먹지.”

    “아침은 원래 잘 안 먹는 편이야.”

    나랑 있는 동안은 꼬박꼬박 아침을 챙겨 먹었기에 몰랐다. 게다가 원래 안 먹는 사람치고 잘 먹기도 했었다.

    “챙겨먹어요. 아침이 하루의 일과를 좌우한대요.”

    “그러지. 자, 아 해.”

    묵야가 또다시 식힌 죽을 입 안에 넣어주었다. 마지막 바닥에 남은 잔해까지 싹싹 긁어서 먹자 막 잠에서 깼을 때 보다는 훨씬 살 것 같았다. 

    “텔레비전 보고 싶은데요.”

    “침대에 누워있는 게 나을 텐데.”

    “그럼 이불 째로 말아서 소파에 데려다 줘요.”

    “이제 어리광이 뭔지 아는 것 같군.”

    묵야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그래도 당신이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니 불평은 하지 마라. 라고 얘기는 안 해도 됐다. 묵야의 얼굴엔 불평보다는 뿌듯함이 더 많이 감돌았으니까. 저 무표정함속에서 많은 표정을 찾아내는 내 자신이 신기했다. 문자뿐만 아니라 이제는 무표정한 사람들의 얼굴도 읽는 능력이 생기는 건 아닐까? 이불에 둘둘 말린 채 소파로 이동됐다. 텔레비전을 켜주는 묵야가 내 머리맡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었다. 

    “짱구 안 해요?”

    “짱구?”

    “투니버스 틀면 짱구 할 걸요.”

    카페에 있을 때는 채널이 4개 밖에 나오지 않아 시청하지 못했지만, 서울 집에 살고 있을 때는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뒹굴며 짱구를 틀어놓는 게 다반사였다. 

    “그건 몇 번이지?”

    “일단 채널 돌려봐요. 내가 스톱하면 멈춰요.”

    “그러지.”

    거의 끝 채널까지 돌리고 나서야 투니버스가 나왔다. 

    “아아 거기 스톱! 스톱이요! 스톱!”

    “하하, 그래.”

    묵야는 한 단계 더 넘어간 채널을 뒤로 물렸다. 묵야의 웃음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전원을 켜는 묵야는 평소의 무표정함 그대로였다. 흔히 볼 수 없는 묵야의 호탕한 웃음을 놓친 게 아쉬웠다. 

    화면에선 철수가 짱구에게 갖은 짜증을 내고 있었다. 예전에 봤던 시리즈지만 볼 때마다 새로워 그냥 나뒀다.

    “이 만화 한 번도 안 봤어요?”

    “만화를 본 적이 없는데.”

    이 남자를 어찌하면 좋을까? 카페에서 처음 만났을 때 듣기론 인생을 재미있게 산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만화도 안 보고, 취미생활도 없어 보였다. 대체 어디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지 모르겠다. 

    “저 만화 작가, 죽었대요. 산에서 실족사 했다고 뉴스에서 봤어요.”

    “그래? 그럼 저 만화는 누가 만들지?”

    “저건, 이미 만들어져있던 애니메이션이구요 재방송이죠. 작가 실족사 소식에 저 진짜 슬펐어요. 짱구 제일 좋아했는데.”

    “나를 제일 좋아해줬으면 좋겠는데.”

    “그건 그래요.”

    묵야가 허리를 잔뜩 굽혀 쪽하고 가볍게 뽀뽀를 했다. 한가로운 주말의 부부처럼 여유를 즐기는 기분이었다. 

    “근데 누나가 그 문신 보고 뭐라고 안했어요? 자길 뱀한테 졸려 죽게 하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내 몸에 문신은 그들이 원해서 한 것뿐이야.”

    “누나가 그런 문신을 새기라고 했다구요?”

    “그렇지.”

    어제 봤던 여자는 순수하면서 화려함을 동시에 갖추곤 있었어도 뱀에 물려죽는 자신의 초상화를 좋아할 사이코 같진 않았다. 침실에서부터 묵야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우우우웅 지진이 이는 것처럼 강력했다. 처음에 무시하던 묵야는 소리가 신경 쓰이는지 침실로 이동했다. 전화를 받지도 않고 다시 나온 묵야가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전원만 끄고 돌아온 듯 했다.

    “바쁘면 나가봐도 되요. 전 여기서 쉬다가 괜찮아지면 나갈게요.”

    “한가해.”

    짱구를 보면서도 무표정한 남자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봐도 저 모습을 그대로 일 것 같았다. 하긴 놀이기구에서도 초인의 경지를 이룩했는데 프로그램 하나로 얼굴이 바뀔까. 

    짱구가 끝나고 파워레인저 같은 전대물이 시작됐다. 몇 년 전에는 전대물도 좋아했는데 취향은 흐르는 물처럼 변하는 법이니 지금은 영 별로였다.  

    “리모컨 줘 봐요.”

    “아니, 원하는 데에서 멈춰 줄 테니 말만 해.”

    묵야가 3초 간격으로 채널을 돌렸다. 채널이 한 바퀴 돌아가고 KBS에선 오전 뉴스가 한창이었다. 카페에서 하던 버릇대로 오전 뉴스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세계각지에서는 내전이 일어나고 화염병이 날아다녔다. 유진이 관심 많은 세계 뉴스가 끝난 뒤 우리나라 사건 사고 방송이 시작됐다. 묵야가 머리를 만져주는 손길이 기분 좋아 멍하니 아나운서의 입모양만 쳐다봤다. 아나운서가 기자를 연결한 순간이었다. 살인사건을 알리는 뉴스 내용에 눈을 번쩍 뜰 수밖에 없었다. 내용인 즉슨, 얼마 전 아내 실종사건으로 살인용의자 누명을 썼던 약사가 아내와 함께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실종됐다 생각한 아내는 단순 가출로, 자택을 찾아온 그녀를 남편이 목 졸라 살해한 뒤 자신도 다량의 독극물을 먹고 자살했다는 경위에 힘이 실린다며 추측성의 가까운 기자의 설명이 덧붙여졌다. 정신에 찬물이 끼얹어져졌다. 의심할 것도 없었다. 어제 내가 만나고 왔던 그 사람들이었다. 몸이 덜덜 떨렸다. 내 이상반응에 묵야가 내 몸을 끌어당겨 뒤에서부터 껴안았다. 그럼에도 떨림이 쉽게 멈추지 않았다.

    “왜 그래? 아파?”

    “…….”

    이불 안에 숨겨진 내 몸은 순식간에 땀으로 흠뻑 절었다. 이마에도 송글송글 땀이 올라왔다. 차가운 공기와 맞닿자 금세 서늘함이 느껴졌다. 

    “… 봤어요?”

    “어떤 걸?”

    “방금 뉴스요.”

    “…살인 사건?”

    “네…. 어떡해요. 제가, 제가 찾아가라고 했어요. 제가, 제가 등을 밀었어요.”

    “이주인, 무슨 소리야.”

    그들이 죽으라고 밀어붙인 게 나였다. 나는 단지, 부인이 약사를 찾아가 모든 걸 정리하길 바랐을 뿐이었다. 약사가 여자를 죽일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나는 그 약사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 약사는 단지 불어 선생의 외견을 닮은 사람일 뿐이었다. 내 커다란 착각이 두 사람의 죽음을 만들어냈다. 죄책감이 전신을 불태웠다. 묵야는 차가워진 내 목덜미에 따뜻한 숨을 불어 넣었다.

    “천천히, 천천히 무슨 일인지 얘기해봐. 이주인.”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말들이 쏟아졌다.

    “어제…. 아는 형사 분과 약국을 찾아갔어요. 약사는 아내가 실종됐다고 신고를 했는데, 경찰에선 약사가 아내를 죽이고 시체를 유기했다며 의심을 했어요. 그래서 조사하러 간 거였는데….” 

    묵야는 두서없는 내 이야기를 그가 말한 대로 천천히 인내심을 갖고 들었다.

    “약사는 아내를 죽이지 않았어요. 아내는 외도 탓에 가출한 것 뿐이었구요.”

    “그래서.”

    “전 그 아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어요. 찾아가서 남편이 의심받고 있으니 아내였던 사람으로서 그래선 안 된다고 말했구요…. 그런데 저럴 일이 생길 줄은 몰랐어요. 정말이에요.”

    눈이 뻑뻑했다. 저들의 죽음에 모든 책임이 내게 있는 것 같았다. 묵야의 숨으로도 체온이 돌아오지 않는 차가운 목덜미에 뜨거운 손이 닿았다.

    “이주인, 네가 잘못 한 건 없어. 착각하지 마.”

    묵야가 내 얼굴을 돌려 시선을 맞혔다. 나는 차마 그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고개를 내렸다. 묵야가 다시 내 얼굴을 잡았다. 그를 직시하게끔 만들었다.

    “선택은 그 여자가 한 거다. 여자를 죽인 선택도 남자가 한 것이었고. 거기에 네 책임이 있을 리는 없어.”

    “제가 아니었으면 부인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거예요.”

    “타인인 네 말로 인해 죄책감을 갖고 집으로 돌아갈 여자였다면, 언제든 가벼운 충격에 의해서도 돌아갔을 거다. 굳이 네가 아니어도 말이지. 운이 나팠다. 이주인.”

    단순히 운으로 치부하기엔 내 잘못이 너무 컸다. 이젠 그 어떤 사건에도 엮이고 싶지가 않았다. 이성일의 염려대로 내가 읽는 생각들은 독이 깔린 덫이었다. 내가 내뱉는 말들은 상대방을 향해 뻗어나간 올가미고. 그러니 그들을 몰아붙여 옭아맨 것이 바로 나였다. 오늘처럼 내 능력이 끔찍한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이주인, 네가 저들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그렇지… 않아요.”

    도시는 사람과 사연이 너무 많았다. 진실과 교묘히 뒤섞인 거짓에 함께하는 삶이 진정 이 도시의 모습이었다. 진실을 모른 채로 놔두는 것이 때론 이득이 된다. 유진의 말대로 솔직한 진실만이 마냥 좋은 것도 아니었다. 늘 경험을 통해 깨우치니 후회가 뒤따라왔다. 

    “돌아가고 싶어요. 카페로.”

    “이주인, 날 두고 가지 마.”

    내가 카페로 돌아가면 지금처럼 묵야와 잦은 만남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반복적으로 장거리를 오는 그가 먼저 지칠지도 모른다. 나는 죄책감보다 지금 이 남자를 잃는 것이 더 두려웠다. 묵야와 함께 한다면 도시의 독들을 상대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힘든 건 매한가지라도 묵야만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투정 한 번 부려본 거예요. 그래도 언젠간 카페로 돌아갈지 몰라요. 지금 계획으로는 묵야씨가 은퇴하면 같이 그 카페로 들어가서 사는 건데. 어때요?”

    “좋은 생각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은퇴하라는 소리는 아니에요. 묵야씨가 원할 때, 그래야만 할 때를 말하는 거죠.”

    묵야는 아무런 대답 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이젠 아무것도, 그 어떤 것도 함부로 내뱉지 않으려고 해요. 그 대가가 너무 크다는 걸아니까.”

    내 능력에 대해 아무 것도 믿지 않는 묵야의 앞에서 다짐했다. 문자는 나 혼자 삼키고 가야하는 독이다. 나는 이후로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했다. 나는 장님이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장님이 보는 환각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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