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루 내내 생각해보니 유진을 통해 태형 형에게 전달하는 것보단 내가 직접 전화를 하는 편이 확실하다는 판단이 섰다. 어제 밤에 나갔던 이주율은 퇴근할 시간이 넘었는데도 초인종을 누르는 일이 없었다. 아직도 일하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바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열쇠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 녀석이라 함부로 집을 비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이주율만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었다.
“유진.”
아직 유진이 잠을 자고 있는 안방을 두드렸다. 잠에서 깬 유진이 부스스한 눈으로 문지방에 섰다. 잘 때도 목을 꽉 채운 터틀넥을 입은 유진은 눈이 잘 떠지지 않는지 흰자위가 도드라졌다.
“what’s the dillyo?”
확실히 잠에서 깨지 않은 것 같다. 문턱에 기대고 있는 유진의 팔뚝을 툭 치자 커다란 덩치가 휘청했다. 순간 푸른 눈동자가 제자리를 찾았다.
“아, 주인 형, 왜?”
그 전까지는 거의 잠꼬대 수준이었던 듯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
“너 오늘 어디 나갈 일 있어?”
“음… 아직 모르겠는데?”
“주율이가 언제 올지 몰라서 걱정이네. 난 나가봐야 할 것 같거든.”
“Ok, 내가 이주율 기다릴게. 잘 다녀와.”
유진이 눈을 감고 손을 흔들었다. 다시 침대 위로 쓰러지는 녀석이 금세 코를 골았다. 저래갖고 초인종 소리나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혹시 모르니 안방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내 방으로 돌아가 태형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형수님이었다.
“주인씨에요? 오랜만이네요.”
형수님은 휴대폰에 저장된 내 이름을 확인한 듯 먼저 인사를 건넸다.
“네, 오랜만이에요 형수님. 잘 지내셨죠?”
“그럼요. 언제 한 번 집에 놀러 와요. 우리 얼굴 본지도 꽤 됐죠?”
역시, 전화는 타인의 문자가 보이지 않으니 편했다. 내게 꺼림칙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상대라도 마음 놓고 대화할 수가 있었다.
“네, 조만간에 찾아뵐게요.”
“태형씨 지금 샤워 중인데 있다가 전화하라고 할까요?”
“예, 그럼 또 연락드릴게요.”
태형씨, 주인씨한테 전화 왔어요. 라는 소리가 들리며 전화가 끊어졌다. 컴퓨터 책상 의자에 앉아 휴대폰 액정을 툭툭거리며 형의 전화를 기다렸다. 채 오 분이 안됐을 무렵 태형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했었구나.”
“네, 형.”
태형 형의 목소리에서 거리감이 느껴지는 건 필시 기분탓이겠지.
“어제 유진이에게 이야기 들었어요.”
“그래, 어떻게 할래?”
“죄송하지만, 묵야 뒤를 캐내는 건 못하겠어요. 하지만 약사 사건은 될 수 있는 데까지 도움 드릴게요.”
“그래, 그렇겠지.”
실망이 가득한 목소리에 혐오감이 뒤섞여있었다. 이렇게라도 형과의 인연을 이어야 하는 건가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일은 언제부터 도울 수 있어?”
“아무 때 나요.”
“그럼 1시간 안에 너희 집으로 김형사 보낼 테니 같이 가해자 만나봐. 형식상 아내가 실종상태라 구류도 못하고 있으니까 약국에 있을 거야.”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흔한 게 김씨 성이건만 형의 부서에 김형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내게 적대감을 내비치는 한 남자뿐이었다. 교회 집사 사건 때 마주쳤던 형사. 찜찜하고도 불쾌한 기운이 휴대폰을 타고 흘렀다.
그 날 태형 형이 단지 홧김에 내게 혐오감을 품었던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나와의 만남을 꺼려하지 않았을 테니까. 내 생각은 점점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렀다. 형이 묵야와 나의 관계를 이용하기 위해 연락을 취했다는 의심의 추가 잔뜩 기울었다. 태형 형의 연락에 마냥 기뻐한 것도 잠시였다. 나는 아마도 이 일을 마지막으로 형과의 인연을 끊게 되는 상황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최선까지 노력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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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까지 유진의 코고는 소리가 요란했다. 유진은 미국인 특유의 암내가 안 나는 대신 코골이가 대단했다. 초인종이 울리자 코고는 소리가 끊겼다. 유진이 후다닥 튀어나왔다.
“어? 형 나간다고 하지 않았어?”
유진이 인터폰을 들고 선 내게 물었다. 잠귀가 밝으니 이주율이 오면 문 열어줄 걱정은 한시름 덜었다.
“김형사님이야. 형 나갔다 올게.”
“알았어. 난 좀 더 잘래.”
“그래, 자라.”
스니커즈를 구겨 신고 마당에 세워진 바이크를 흘끔 봤다. 김형사와 동승하고 싶진 않았지만 목적지를 모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대문 앞에는 사이렌을 달지 않은 중형 자동차 한 대가 서있었다. 조수석 문을 열자 산더미 같은 과자봉지들이 시트 위에 가득했다. 김형사가 치워줄 생각을 하지 않기에 내 손으로 직접 쓰레기들을 밑으로 떨어뜨렸다.
“안녕하세요.”
김형사는 고개만 까닥했다. 그 날 형사과에서 꺼림칙하게 헤어진 뒤로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김형사는 뒤끝이 많은 남자인지 툭툭 내 뺨을 건드리는 문자들을 생성해냈다. ‘건방진 새끼, 돌팔이, 씹새, 까불지마.’ 등등 소멸시키기조차 귀찮은 것들이었다. 소멸된 순간 잠시나마 적대감이 사라질지 모르나 어차피 금세 똑같은 단어들을 배출할 게 뻔했다.
“김형사님, 지금 김형사님이 생각하는 거 다 들리거든요. 하실 말씀 있으시면 그냥 대놓고 하세요.”
어디로 향하는지 말도 하지 않은 김형사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사람 마음도 읽어요?”
나를 단순 사이코메트러로 알고 있는 김형사는, 그럴 리 없지 하면서 여유만만하게 웃었다. ‘돌팔이’ 누런색의 문자가 이마를 툭 치고 튕겨나갔다.
“저 돌팔이 아닙니다.”
김형사의 문자를 읽어냈더니 그가 화들짝 놀랐다.
“김형사님이 말씀대로 남들이 생각하는 거 읽을 수도 있구요. 호남씨 사건 때 제가 중학생 물건 중 하나라도 만지는 거 보셨어요?”
“그, 그건 그런데.”
“저 사이코메트러 아니에요.”
“그럼?”
“가만히 있어도 사람 생각이 들려요. 그러니 저한테 할 얘기 있으시면 직접 하세요.”
이래저래 설명하기도 귀찮고 김형사에게 욕설을 받는 것도 이골이 나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김형사가 여전히 의심 짙은 눈으로 나를 살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아차산’ 김형사의 불신은 침묵으로 이어졌다.
“아차산 가요?”
김형사가 입을 쩍 벌리고 나를 봤다. 열쇠고리에 있는 내 표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참……. 그래갖곤 세상 살기 참 힘들었겠네요.”
생각보다 인정이 빠른 김형사는 속으로 나를 욕한 점에 대해 민망해하고 있었다. 타인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위로의 말만 전할 뿐 그 고통의 강도가 얼마나 거센지는 모른다. 하지만 김형사의 말에는 어느 정도의 진심이 담겨있었기에 모른 체 하진 않았다.
“예전엔 힘들었는데, 지금은 견딜 만 해요.”
“김경위님이 그래서 덕을 많이 보셨구나.”
김형사가 아하, 하면서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의 절반이상은 조소였다. ‘불합리.’ 잔뜩 일그러진 글자였다. 유심히 눈여겨보지 않았으면 벵골어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녀석을 손으로 잡아 터뜨렸다.
어린이대공원 후문에 위치한 아차산역에 다다라서 차가 서행했다. 작은 사거리가 나오고 롯데리아를 지나 번잡한 상가들 틈 사이에 약국이 하나 보였다. 구멍가게만큼이나 비좁았다. 약국의 앞에 떡하니 차를 세운 김형사가 내 몸을 가로질러 손을 뻗었다. 그대로 검지를 올려 약국을 삿대질 했다.
“저기 키 작고 흰 가운 입은 남자, 저 남자가 마누라 죽여 유기한 새끼에요.”
김형사는 에라, 이 개새끼 하면서 창문 밖으로 침을 퉷 뱉었다. 김형사보다 먼저 내려 약국으로 향했다. 김형사가 내리면서 제가 뱉은 침 제가 밟았다며 요란법석을 떨었다.
“어서 오세요.”
약사는 내가 손님이라고 생각했는지 다가온 내가 병의 증상에 대해 말하길 기다렸다. 뒤따라 김형사가 들어왔다. 김형사를 알아보는 약사가 움찔했다.
“이보쇼, 박카스 하나 주쇼.”
김형사는 건방진 자세로 약국 테이블에 팔을 걸치고 손가락을 까딱 까딱거렸다. 시간을 길게 끌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일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부인 분이 실종되셨다구요.”
“네. 그렇습니다.”
약사는 불어 선생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작았다. 그의 뿔테 안경 역시 두께가 대단했다. 아주 가끔 이런 식으로 타인에게서 불어 선생의 흔적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내 가장 큰 후회는 불현듯 나타나 그리운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내가 무례할 정도로 남자를 빤히 쳐다봤는지 약사가 눈을 내리깔며 뿔테 안경을 들어 올렸다. 별다른 문자는 없었다. 아니, 약사 자체가 아내에 대해 생각하기 싫어하는 듯 했다. 약사는 정신을 분산시키며 다른 잡념들을 꺼냈다. 그럴 때는 생각을 피할 수 없도록 딱 꼬집어 질문 하는 게 최고였다.
“아내 분, 죽였어요?”
그제야 뿔테에 숨겨진 약사의 눈과 마주쳤다. 여태껏 내가 그를 쳐다봤던 일은 방금 던진 질문에 비하면 무례함에도 속하지 않았다. 속을 읽을 수 없도록 깊게 가라앉은 그의 눈빛을 보고 문득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무신경한 질문은 남자를 수치스럽고도 치욕적이게 만들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제가 아내를 죽였다면 저 역시 자살을 했을 겁니다.”
‘저수지’ 약사에게서 글자가 생성됐다. 보통의 저수지를 떠올린 것이라면 푸른색을 띄는 것이 당연하건만 저 글자는 진한 고동색이었다. 아내를 죽여 저수지에 던졌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랬다면 살인에 관련한 다른 문자라도 나와야 했다. 멍하니 그 글자를 올려보고 있자 약사가 나를 불렀다. 뒤늦게 답하며 시선은 여전히 약사의 머리 위를 향했다.
“그럼 왜 가구나 입고 있던 옷들까지 전부 새 것으로 교체하신 겁니까?”
“아내의 흔적이 남아있으니까요.”
“실종된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신 것 같군요.”
“네.”
남자는 솔직했다. 서에서도 이렇게 말을 했을 테니 얼마든지 살인범으로 의심을 받을 만했다.
“아내는 매운탕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생선을 한 점도 먹지 못하는 여자였는데요. 그런데 자주 매운탕을 먹으러 간다며 집을 비웠습니다. 커다란 생선을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쇼?”
한 입에 박카스를 털어 넣은 김형사가 빈 병을 재활용통에 던졌다. 쨍그랑하며 안에 들어있던 유리들이 박살났다. 약사는 그런 건방진 행동에도 불쾌함을 표시하지 않았다.
“알았습니다. 가시죠, 김형사님.”
고자세로 버틴 김형사의 팔을 잡아끌었다. 김형사가 기겁을 하며 나를 떼어냈다. 나를 사이코메트러라 생각한 잔재가 아직 김형사에겐 남아있는 듯 했다. 김형사는 다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따라 나왔다. 나는 밖으로 나와 우리를 쳐다보는 약사에게 허리를 굽혔다.
“왜 그래요, 이주인씨?”
“저 약사 분 아내를 살해할 사람은 아니에요. 제가 보기엔 실종이 맞는 것 같구요.”
“네? 뭐라던가요?”
차에 올라타는 김형사가 흥미진진한 눈을 반짝였다. 김형사는 아래로 손을 뻗어 과자봉지 사이에서 자일리톨 통을 찾아냈다. 내게도 하나 내밀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생선을 못 먹는 사람이 매운탕이라고 먹을 수 있겠어요?”
“못 먹겠죠?”
“근데 왜 약사의 부인은 자주 매운탕을 먹으러 집을 비웠을까요.”
“음…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약사는 아내가 실종된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집안의 모든 가구들을 버린 것이었다. 아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외도를 한 거예요. 여자는 외도상대에게 갔구요. 실종보다는 가출에 가깝겠네요. 서에서 진술을 받을 때도 여자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을 테니 의심을 받았겠죠.”
나는 주머니에서 약사 모르게 가져온 문자를 꺼냈다. 손 안에 갇힌 녀석이 발버둥을 쳤다.
“김형사님 저 여기서 내려주세요.”
“아니 왜요? 아직 집까진 멀었는데요?”
“볼 일이 생각났어요.”
아차산과 집의 중간 지점인 테헤란로에서 내렸다. 김형사는 앞으로 종종 보자며 자신의 일을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물론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손 안에 가두고 있던 ‘저수지’를 풀었다. 녀석이 방향을 가늠하는 듯 휘청휘청 거렸다. 곧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약사가 생성해낸 저수지는 실제 저수지가 아닌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사념체였다. 타인을 향한 마음에서 우러난 문자는 그 상대방에게 달라붙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저수지’ 역시 약사가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문자였다. 그렇다면 이 녀석이 향할 곳은 단 한 곳, 아내가 있는 방향이었다. 게다가 약사는 아마도 아내가 어디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듯 해보였다. 바람에 휘날려 갈 듯 약하게 이동하는 문자의 뒤를 쫓았다. 다른 문자들과 섞여 ‘저수지’를 놓치지 않도록 유심히 지켜봐야 했다. 먼 거리가 아니면 좋으련만. 몇몇의 사람들과 부딪히긴 했지만 한 곳만 응시하고 가는 내가 장님인 줄 알고 피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조금씩 녀석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나도 걸음을 재촉해 따라갔다. 실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약사에게서 불어 선생을 떠올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김형사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삼십분이 넘도록 녀석의 뒤를 따라갔다. 어느 상가의 문 앞에 이르러서 ‘저수지’의 행동이 굼떠졌다. 녀석은 이윽고 그 상가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고개를 들어 간판을 확인했다. [매운탕 전문 저수지] 아내가 바람난 상대가 매운탕 집 주인이었나 보다. 우스운 상황인데 재미있지는 못했다. 매운탕 가게로 들어가자 우락부락한 사내가 매운탕 냄비를 나르고 있었다. 카운터에 앉아있는 여자가 나를 쳐다봤다. ‘저수지’는 여자의 근처에서 배회할 뿐 다가가지 못했다.
“혼자 오셨어요?”
여자가 내게 물었다. 새빨간 입술에 짙은 눈 화장이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초라한 약사의 부인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화려했다.
“식사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럼?”
“자신의 일은… 자신이 정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 쪽의 남편 분께서 살해 용의자 취급을 받고 계시니까요.”
독설과도 같은 내 말에 여자는 카운터에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아있었다. 다시 밖으로 나가는 나를 붙잡지 못했다. 약사에게 찾아가 이혼을 신청 하거나 그대로 가출한 채 살거나 하는 선택은 여자의 몫이었다.
삼성역으로 통하는 지하도가 보였다. 지하철은 타고 싶지 않았다. 한 시간은 족히 걸리겠지만 집까지 천천히 걷기로 했다. 여자와 약사도 처음에는 서로가 사랑해서 결혼을 했을 텐데 왜 저지경이 됐는지 모르겠다. 그들만의 사정이 있었겠지. 그래도 서글펐다. 나 역시 지금은 묵야의 마음을 확신하지만, 몇 년 또는 몇 십 년이 지나도 지금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 생각하자…. 일어날 리도 없는 끝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한 시간이 조금 넘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관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이크만 대문 밖으로 끌었다. 바이크를 타고 태양을 머금은 아스팔트 도로를 내달렸다. 갈 곳은 오로지 하나였다. 묵야의 호텔. 이렇듯 허전한 마음이 들 때면 그가 보고 싶었다. 비록 호텔에 묵야가 없을지라도 그 안에서 그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기다림은 아마도 부질없거나 지루한 시간은 아닐 것이다.
카드키로 객실을 열자 오늘도 어김없이 청결한 소독제 냄새가 났다. 신발을 벗는데 익숙하지 못한 구두가 보였다. 굽이 십 센티는 넘을 만한 여성용 구두가 가지런하지 못한 채 나뒹굴었다. 혹시 손님용 객실로 바뀐 건 아닌가 의심했지만, 프런트에 있는 중년남자는 13층으로 오르는 나를 막지 않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실내화를 신었다. 쓱쓱 끌리는 슬리퍼의 소음이 신경을 건드렸다. 손 뼘 하나쯤 열려있는 문틈으로 침대에 앉아있는 묵야가 보였다. 금방 샤워를 마쳤는지 목욕 가운만을 입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이대로 돌아갈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손은 이미 침실의 문을 벌컥 열고 있었다. 갑작스레 열린 문에 묵야가 나를 돌아다봤다.
침실용 2인 테이블 의자에 구두의 주인인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허리까지 오는 긴 웨이브의 머리카락과 투명한 피부는 만지면 녹아버릴 듯 했다. 약사의 아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미인이었다. 화장을 짙게 하지 않았음에도 여자는 화려하게 만개한 꽃 같았다. 나를 본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묵야는 반쯤 풀어헤쳐진 목욕 가운을 걸친 채로 내게 다가왔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려 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내 앞에 선 묵야를 향해 주먹을 날린 것은 나조차도 막을 수 없는 충동이었다.
내 주먹에 입술이 터진 묵야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자가 까악 소리를 지르며 묵야에게로 다가왔다. 티슈를 뽑아 묵야의 입술에 대는 그 상황을 기가 막히게 지켜봤다. 묵야는 여자의 손길을 귀찮다는 듯 쳐냈다.
“이주인, 오해를 하는 것 같군.”
묵야가 낮게 속삭였다. 현장을 목격했는데 오해랄 것도 없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개새끼야, 잘 먹고 잘 살아라. 욕설을 뱉어주고 싶었지만 노려보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약사 걱정해줄 때가 아니라 내 앞가림부터나 잘 해야 했었다. 묵야가 내 허리를 감싸 쥐고 갑자기 입술을 틀어박았다. 찢겨진 묵야의 입술을 타고 시린 피 맛이 났다. 묵야를 떼어내고자 발로 정강이를 수차례 깠지만 그의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묵야의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떨어진 묵야의 입술이 피로 흥건했다. 안에서 나온 묵야의 혀는 피가 나는 상처를 쓸고 들어갔다.
“이주인. 소개하지, 내 누나다.”
나는 묵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당황한 채로 여자를 내려다봤다. 여자는 곤란한 얼굴로 눈썹을 모으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 상태로 여자가 나를 훑었다.
“처음 뵙겠어요. 묵야 누나 희야예요.”
머리에서 종이 땡땡땡 울렸다. 여자에게서 문자가 생성되진 않았지만, 둘이 짜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여자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니 묵야와 남매라고 고백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법하게 닮아있었다. 특히 일자로 닫힌 저 올곧은 입매가 특히나. 다리에서 힘이 쭉 빠졌다.
“오해하셨나본데, 미안해서 어쩌죠?”
“아, 아닙니다. 실례를 범했습니다. 이주인이라고 합니다.”
허리를 꾸벅 숙이자 희야는 딱딱한 인사치레는 됐다면서 손을 내저었다. 찢겨진 묵야의 입술로 손을 가져갔다. 묵야가 내 손가락을 깨물었다.
“왜 말을 안했어요!”
묵야를 조용히 채근했다. 창피함에 얼굴이 벌게졌다.
“말할 시간이 없었는데. 바로 이 화끈한 주먹이 날아왔으니까.”
묵야는 내게 맞고도 기분이 좋은지 깨물던 내 손가락을 자신의 손안에 가뒀다. 그러게 처음부터 말을 하지. 눈앞의 여자가 묵야의 누나란 사실보다 묵야에게 주먹을 날린 내 자신이 더 놀라웠다. 피할 수 있었음에도 묵야는 그러지 않았다. 아직도 피가 배어 나오는 묵야의 입술에 안타까움이 들었다. 내게도 충분히 폭력적인 성향이 있었구나. 이건 아버지 때문이 아닌 순전한 내 본성이었다. 아까 같은 상황에서 아무 말도 못한 채 펑펑 우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우는 대신 복수의 주먹을 날려주는 게 옳았다. 내 오해이긴 했지만.
“너무하네, 삼 년 만에 보러 왔더니 완전히 문전박대야.”
“볼 일이 있으면 밖에서 봐도 충분해. 다음부터는 허락도 없이 함부로 찾지 마.”
묵야는 자신의 누나에게 타인을 대하듯 차갑게 내뱉었다. 자신을 희야라고 소개한 여자는 묵야의 독설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직 내 얘기 다 안 끝났어.”
아무래도 자리를 피해줘야 할 상황 같았다. 묵야에게 잡힌 손을 빼내려 했다. 묵야가 내 손을 휙 끌어당겨서 뒤에서부터 허리를 감싸 안았다. 빠져나오려 앞으로 버둥댔지만 결국 제자리였다.
“할 말 있으면 해.”
“자리 비켜드릴게요. 묵야씨 이 손 좀 놓죠?”
“괜찮아요. 묵야가 저럴 정도면 주인씨가 있어도 별 상관없다는 거니까.”
묵야가 내 허리를 감싼 채로 거실 밖으로 질질 끌고나왔다. 소파에 나를 앉혀두고 오늘도 어김없이 놓여있는 한라봉을 까서 내 손에 툭 올려주었다. 묵야의 누나가 우리의 맞은 편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입을 멍하니 벌리고 내 손에 놓인 한라봉을 바라봤다. 먹고 싶어 하는 모양새라 그녀 쪽으로 한라봉을 내밀었다.
“드실래요?”
“아니, 아니에요. 그러려고 본 게 아니라 하도 기가 막혀서. 내일 장의사 하나 알아봐야겠다. 네 관 짜려면.”
그녀가 손을 올려 관 짜는 사람처럼 묵야의 키를 가늠했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는 소리 같았다. 묵야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렸다. 검지를 잡아 바닥에 내리자 다시 툭하고 올라왔다.
“말 해.”
“아버지 쓰러졌다며?”
희야의 아버지는 묵야의 부모이기도 했다. 엿들은 생각은 아니었는데 코앞에서 대화를 나누니 귀가 활짝 열려있을 수밖에 없었다.
“맞아, 앞으로 일주일이 고비라고 하더군.”
아버지의 병세가 짙음에도 두 남매는 영화 속에서나 본 부모의 재산만 노리는 대기업의 자제들처럼 냉정한 상태였다.
“이번에 쓰러지면 못 일어나실 가능성이 크다고 들었어. 그래서 한국에 들어온 거야. 약속은 이행하고 있겠지?”
“약속이 아니라 일방적인 부탁 아니었나?”
“그게 그거지.”
“아직 윤곽이 뚜렷하진 않아.”
“그 정도로도 충분해.”
가느다랗게 눈을 뜬 희야가 묵야의 답에 배부른 사자처럼 만족스러움을 내비쳤다.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들으며 희야를 바라봤지만 문자는 생성되지 않았다. 신기한 남매였다. 볼 일을 다본 그녀가 소파에서 일어섰다. 나도 번쩍 일어나서 그녀를 배웅했다. 엎어졌던 구두를 세워 신으니 나와 마주하는 시선이 비슷해졌다. 희야의 머리에서 ‘열정’이 떠올랐다. 그 글자는 붉다 못해 타오를 지경이었다. 그녀는 묵야처럼 아예 문자를 생성하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다.
“묵야, 이제 너도 내가 어떤 마음인지 알겠지? 호호. 그럼 잘 있어요. 주인씨.”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희야가 묵야에게 경쾌한 웃음을 날리며 문을 닫았다.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까지 희야는 곱게 다듬어진 손을 올려 입술을 막고 웃는 게 보였다. 달칵 객실 문이 닫히고 머리 위로 잔뜩 그늘이 졌다. 묵야는 벌어진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댔다. 여전히 시큼한 피 맛이 느껴졌다. 혀를 내밀어 묵야의 아랫입술을 핥아주었다. 묵야가 그 혀를 자신의 입속으로 빨아들여 잘근잘근 씹었다.
“하아, 오늘은 출근 안했어요?”
“어제부터 쭉 병실에 있다가 사십분 전에 들어왔지.”
“아버지 병실에요?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가 봐요.”
묵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옆집 사는 강아지가 앓아누운 것보다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주율이는 어제 급히 모임 있다고 나가던데, 묵야씨는 참석 못했겠어요.”
“주율? 아아, 네 동생? 네 동생도 왔던 것 같던데.”
“네?”
이주율이 묵야의 아버지 병실에 갔었다고? 멈춰있던 머리를 굴려보았다. 그녀석이 병문안을 갈 사연이 있을 턱이 만무했다. 혹시 묵야의 아버지가 카지노 손님인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이주율이 갈 이유는 되지 못했다.
“묵야씨 아버지가 누구신데요?”
묵야는 내 말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내 머리 냄새만 맡았다.
“주율이가 병문안을 갔을 정도면…. 묵야씨 아버지, 혹시 저도 아는 사람이에요?”
“아마, 알지도 모르겠군.”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설마 내 부모와 관련되어 있는 사람은 아니겠지?
“사신후.”
“!”
이보다 더 놀랄 수는 없었다. 평생에 걸쳐 놀랄 일을 오늘 다 겪어 앞으로 어떤 깜짝 선물을 받아도 덤덤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사씨 성을 가졌고 네이밍 센스가 제로인 사파의 우두머리. 그게 바로 사신후였다.
“사묵야?!”
바싹 붙어있는 묵야를 올려보고 물었다.
“그 성은 좋아하지 않아.”
“아버지가 진짜 사파 우두머리였어요?”
“아마도.”
태형 형과 우스갯소리로 했던 농담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말이 씨가 되는 경우가 이럴 때를 말하는구나.
“왜 그동안 말 안했어요?”
“묻지 않았으니까.”
그건 그랬다. 묵야에 대해 내가 아는 사실이라곤 사파의 대표이사이며, 벵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고용해 미로를 공격했고, 나를 꽤나 아니 아주 많이 좋아한다는 것뿐이었다. 보통의 연인처럼 자주 만나며 몸을 섞긴 했지만 정작 서로에 대해 아는 사실이 많지 않았다. 묵야 역시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진 못했다. 개인적인 사정을 이야기하는 걸 즐기지 않는 내 성격을 아는 탓이었다. 묵야는 어떤 말이든 내 입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형제가 누나와 묵야씨, 단 둘이에요?”
묵야의 외꺼풀에 매달린 속눈썹이 내리깔렸다. 쌍커풀이 없는데도 눈이 깊어보였던 이유는 숱이 짙은 속눈썹 때문이었다.
“둘이지, 아니 배다른 형제까지 포함하면… 총 다섯이군.”
묵야의 정력이 사신후에게서 유전됐다는 판명이 났다.
“묵야씨가 몇짼데요?”
“위로 형이 둘, 방금 본 누나가 하나있지.”
네이밍 센스 빵점인 사신후가 자식들의 이름에까지 영향권을 행사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사일, 사이, 사삼, 사사….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지었다면 나는 아마 묵야를 사삼씨 정도로 불렀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럼 다들 가업에 종사하는 거예요?”
순화해서 가업이고, 직설적이게 말해 조폭일이다.
“그렇지.”
에비스 주차장을 홀로 조사하러 들어갔을 때 묵야가 존댓말을 했던 남자들이 묵야의 형제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산싸움이 엄청나겠네요.”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군.”
사신후가 죽고 나면 대파란이 일어날 것임을 예견했다. 이주율이 긴자로 향하기 전 생각했던 둘째이사, 셋째이사의 형제싸움에 묵야도 포함되어 있는 듯 보였다. 이래서 모든지 적당한 게 좋다. 돈이 너무 많아도 걱정, 없어도 걱정이니. 그런 점으로 따지면 이주율과 나는 재산 싸움을 할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누나가 부탁한 일은 뭐였어요? 아, 그냥 호기심이니까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요.”
“이런….”
묵야가 두 손을 포개 자신의 입술로 가져다댔다. 너무 깊이 캐물었나? 싶었을 때 묵야가 눈을 접고 웃었다.
“네가 내게 관심을 보이는 게 미치도록 기쁘다.”
말과 같이 솔직히 기쁨을 내비치는 남자의 모습이 묘하게 섹시했다. 나름 좋아한다는 오오라는 풍겼다고 생각했는데 묵야는 잘 느끼지 못했나보다.
“관심은 많아요. 묵야씨에게 궁금한 것도 많고.”
그러니 어서 질문에 답하라며 재촉했다. 묵야는 내 물음에 늘 솔직한 대답을 주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나는, 재산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어. 그런 사람을 자극한 게 내 바로 위의 형이지. 어쩌면 매부의 욕심이 지나쳤을 수도 있겠지만.”
“누님이 결혼하셨나 봐요.”
희야의 동안의 외모는 언뜻 보면 묵야의 동생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젠 미망인이지.”
“남편 분이 돌아가셨어요?”
“그렇지, 아니 아마 살해당했다는 게 옳겠군. 지시한 자가 누군지는 알고 있었지만 손을 쓸 수가 없었지.”
“지시한 자라면 살인을 사주한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그렇지. 그게 내 위의 형이었어. 누나는 복수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형제들의 분란을 용서치 않던 사람이었어, 그래서 누나는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즉 묵야의 형이, 매부의 살인을 청부한 자라는 말이었다. 사신후는 그 점을 알면서도 희야에게 침묵하기를 종용했고……. 이 끔찍한 가족사를 이야기하는 묵야는 방관한 채 사태를 객관적으로 지켜보는 제 3자와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남자는 나와 관련된 일을 제외하면 감정이 없어 보일 정도로 무심했다. 묵야의 종아리에 새겨진 여자는 절규에 가깝게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지만, 반대로 보면 지독한 환의에 광적인 면모를 비추는 두 얼굴의 야누스 같기도 했다.
묵야가 내 관자놀이에 입술을 댔다. 오늘따라 더 스킨십이 짙었다. 묵야의 아랫입술엔 벌써 딱지가 내려앉았다.
“미안해요. 아깐 좀 흥분해서.”
“괜찮아. 주먹이 꽤 세더군.”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지 물주먹은 아니었다. 소파에 앉아 묵야가 내 몸을 지분거렸다. 귀찮게 느껴질 정도로 엄지와 검지로 젖꼭지를 가지고 놀았다.
“살도 없는데 거기가 좋아요?”
묵야가 가슴에 있는 살을 끌어 모아 손 안에 움켜쥐었다. 겨드랑이의 살점까지 당겨졌다. 묵야는 얼굴을 내려 손에 그러쥔 가슴살을 쭉쭉 빨았다. 젖꼭지가 떨어져나갈 것 같은 흡인력에 묵야의 얼굴을 밀어냈다. 뽁하고 떨어져나가고 물린 유두의 살들은 벌써 발갛게 출혈이 되어있었다.
“사실은 엉덩이가 제일 좋다.”
“변태 아저씨 같네요.”
“그런가.”
묵야가 소파에 나를 휙 드러눕혔다.
“내가 없었으면 기다리려 했나?”
“네, 보고 싶어서요.”
묵야가 윗도리를 벗겨내기 쉽도록 만세를 했다. 목덜미에 묵야의 이가 박혔다. 왠지 오늘은 평소보다 끈질기고 거칠 거란 예상이 들었다. 묵야의 입술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놨으니 오늘은 어느 정도 참아주기로 마음먹었다. 묵야의 검지가 튀어나온 젖꼭지를 깔짝거렸다. 따뜻한 입술안의 혀가 남은 젖꼭지를 까슬하게 쓸어내렸다. 질척한 소리에 배꼽 아랫부분이 뜨거워졌다. 참을 수 없는 느낌에 양다리를 붙였다. 묵야는 억지로 내 다리를 벌려 다물지 못하게 그의 다리로 고정시켰다.
“밤 샜을 텐데 피곤하지 않아요?”
옆구리의 살을 혀로 핥는 묵야를 내려 봤다. 묵야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자고 가.”
“음… 그럴까요?”
바지를 벗긴 묵야가 소파에 앉았다. 팔목을 잡더니 내 몸을 소파 위로 일으켜 세웠다. 묵야의 얼굴에 반쯤 선 내 성기가 닿았다. 묵야는 그 기둥을 한 번에 품었다. 뜨거운 동굴이 성기를 뽑아버리듯 빨아들였다. 묵야의 어깨를 잡고 하반신이 녹아내리는 감각을 견뎌냈다. 푹신한 소파에 발이 미끄러지자 묵야는 내 엉덩이를 잡아 몸을 지탱해주었다. 손가락 하나가 구멍의 입구에서 간질 간질거렸다. 푹하고 메마른 손이 들어온 순간 발끝에 찌릿찌릿 전기가 일었다.
“하아, 이러다가… 진짜 변태되겠어요.”
쭉 빨아들었던 성기를 놓고 묵야가 물었다. 바짝 선 내 성기가 침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왜?”
“자위 할 때도 뒤가 아니면 만족이 안 될 것 같아서요.”
내 말에 묵야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저런 식의 웃음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묵야는 어깨에 오른 내 손을 잡아 등 뒤로 가져왔다.
“해 봐.”
뭘요? 라고 반문할 정도로 순진하진 않았다. 묵야가 내 성기를 물었다. 등 뒤로 향했던 손을 내려 묵야의 손가락이 박혀있는 구멍부근을 매만져봤다. 묵야의 손가락은 끝의 한 마디 정도를 제외하고 전부 구멍 안에 박혀 있었다. 묵야가 손을 쑥 빼자 구멍이 따끔거렸다. 나는 뒤에 있던 내 손을 가져와 입 안에 담았다. 혓바닥에 있는 침을 두 손가락에 끌어 모았다. 축축한 그것을 내려 엉덩이 구멍 안에 하나를 푹 꽂아 넣었다. 살살 안을 긁자 말랑거리는 내벽이 손가락을 감쌌다. 저도 모르게 허리를 흔들어 묵야의 입 안 더 깊숙이 성기를 들이밀었다. 묵야의 손가락이 같이 구멍 안으로 엉겨들었다. 묵야는 쑤셔 넣은 중지로 구멍의 살을 옆으로 쭉 늘렸다. 그 틈으로 손가락 하나가 더 들어왔다. 묵야가 내벽 안에 있는 내 손가락을 툭툭 건드리며 안의 살들을 함부로 쑤셨다. 내가 손가락을 빼내자 묵야도 성기를 물었던 입을 떼었다.
“네가 꼭 마약 같다.”
“마약 해봤어요?”
“아니.”
“근데 어떻게 알아요.”
“그러게.”
묵야가 나를 소파에 천천히 내리 눕혔다. 손바닥을 보이게 내린 손가락으로 구멍을 마찰했다. 틈을 찾으며 구멍의 입구를 배회하던 손가락 세 개가 갑자기 푹 박혔다. 발끝이 꼿꼿하게 섰다. 어이없게도 성기에서 정액이 피핏 튀어나왔다. 묵야는 이제 내 안쪽의 어느 곳이 전립선인지 눈감고도 알았다. 쑤셔 넣은 손가락을 퍽퍽 움직이면서 내 얼굴을 살폈다. 이를 물고 신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버텼다. 묵야는 손가락을 굽혀 내벽의 살을 밑으로 내리 끌었다. 당겨지는 아래는 내부의 살들이 밖으로 뒤집혀 나올 것 같았다. 전라의 상태로 구름을 타고 손을 내젓는 천장의 명화를 올려다보며 사정의 끝을 맛봤다. 힘을 잃은 성기가 푸들거리며 밑으로 쳐졌다. 묵야는 봐주지 않고 손가락 하나를 더 쑤셔 넣었다. 지나치게 빡빡했다. 고개를 내려 보니 움직이는 손목만 보여 주먹이 틀어박힌 듯한 착각이 찾아들었다.
묵야는 허벅지를 주무르던 손을 올려 자신의 어깨에 걸쳐져 있던 가운을 끌어내렸다. 가운이 스르륵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용이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이제 그만 넣어줘요.”
구멍을 헤집던 묵야의 손가락이 하나둘 빠져나왔다. 벌름거리는 구멍을 묵야가 빤히 쳐다봤다. 한 번의 터치 없이 발딱 선 그의 것이 구멍의 입구에 맞춰졌다. 약을 올리듯 부벼대는 그의 귀두가 매끌매끌 했다. 축축하게 젖어있는 귀두가 아래를 벌렸다. 손가락으로 충분히 풀어줬는데도 빠듯했다. 구멍에서 힘을 빼려 했지만 좀처럼 성기의 출입이 용이하지 못했다. 쿠퍼액으로 젖은 귀두가 쑥 들어왔다. 그 뒤에 메마른 기둥이 살을 밀어내며 진입을 시도했다. 살과 살이 하나가 된 것처럼 떨어지지 않고 달라붙었다. 손을 올려 묵야의 입 안으로 두 손가락을 넣었다. 묵야는 검지와 중지 사이사이를 혀로 적시고 성기를 빨던 것처럼 내 손가락을 춥춥 끌어당겼다. 타액으로 충분히 젖은 손을 내려 묵야의 울퉁불퉁한 기둥에 발랐다. 묵야는 반쯤 들어간 기둥을 약간 뒤로 뺐다가 다시 안으로 쑤셔 박았다. 침으로 젖어 매끄러워진 기둥이 안으로 쑤욱 들어왔다. 기둥이 전부 틀어박히자 묵야의 탄탄한 불알이 엉덩이 밑에 닿았다. 내벽이 갑작스러운 침입에 수축을 반복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살들이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흐읏…으….”
괴로운 듯이 몸을 뒤틀었다. 묵야는 내 허리를 꽉 조여 잡았다. 땀이 솟아 소파 가죽에 등이 달라붙었다. 아무런 예고 없이 묵야가 추삽집을 하기 시작했다. 가슴팍에 싸놓았던 정액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상체를 더럽혔다. 묵야는 비스듬한 각도로 오른쪽의 내벽을 쑤셔 올렸다. 그의 기둥이 아랫배를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은 힘이 뒤따랐다.
“앗! 아악!”
처음 한 번에 비명이 터졌다. 계속 해서 내벽을 쿡쿡 쑤시자 그 부근의 살들이 아려왔다. 기분이겠지만 볼록하게 오른쪽 아랫배가 솟아오른 불안함이 들었다. 묵야가 허리를 잡았던 한 손을 내려 내 아랫배를 내리눌렀다. 압박감에 그의 기둥을 뱉어내고만 싶었다. 뒤로 밀려나가던 묵야가 퍽하고 허리를 쳐올렸다. 이를 악물자 침이 옆으로 흘렀다. 묵야가 혀를 내밀어 내 턱을 핥았다. 짐승의 혓바닥 마냥 까슬했다. 비스듬했던 자세를 고쳐 잡은 묵야가 안쪽을 아무렇게나 쑤셔 박았다. 묵야의 발기한 기둥은 어느 쪽으로도 쳐져있지 않았지만 광폭하게 쑤시는 기둥은 내벽의 어느 곳도 놓칠 수 없다는 듯 안을 거칠게 탐했다. 구슬들이 내벽의 살을 요란하게 긁어내렸다. 삽입이 너무 깊어서 영영 그의 기둥이 빠져나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어느새 묵야의 손은 발기한 내 성기를 쥐고 있었다. 앞뒤로 고통과 쾌감이 반복적이게 찾아들었다. 안을 헐어내리는 이 통증이 고통인지 쾌감인지 구분이 되지도 않았다.
묵야의 귀두가 전립선을 쿡하고 거세게 찌른 순간 다시 정액을 쏟아내고 말았다. 가슴팍은 말라붙은 정액과 함께 새로운 정액으로 범벅이 됐다. 묵야가 손을 뻗어 젖꼭지를 꼬집었다. 정액 때문에 미끌하며 손이 떨어져나갔다. 묵야가 잠시의 틈을 두고 움직임을 둔하게 했다. 사정을 지연시키려는 행동이 느껴졌다. 거친 숨을 고르며 천천히 말했다.
“한 번에… 한 번. 오늘만 없던 걸로 하죠.”
묵야를 만나오면서, 그가 저렇게 태나게 좋아하는 것은 처음 봤다. 남들 눈에는 그럴 리 없겠지만 내 눈에는 한없이 귀여웠다.
“후회하지 마.”
“안 해요. 오늘은 저도 실컷 하고 싶으니까.”
사랑을 나누는 행위가 섹스에만 국한 된 건 아니지만 가장 마음을 나누기 쉬운 방법이기도 했다.
“이주인, 장의사 불러야 하는 건 아니지?”
농담을 하는 그의 뺨을 잡아 끌어당겨 키스했다. 묵야는 올라간 내 입꼬리를 검지로 쿡쿡 찔렀다.
그의 용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눈을 감자 기둥이 거세게 박혀들기 시작했다. 구멍을 긁는 기둥이 구슬이 수백 개처럼 느껴졌다. 그 정도로 빠르게 퍽퍽 안을 쑤시고 있었다. 사정을 참았던 묵야가 내 불알을 잡아 올려 깊숙이 처박았다. 결국 참고 있던 내 입에선 괴로운 신음이 새어나왔다. 생으로 들어간 그의 것에서 정액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가 싸지른 정액이 뱃속 곳곳을 항해하는 느낌이었다. 여섯 일곱 번에 걸쳐 그의 기둥이 움찔움찔 거렸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슴팍에서 내가 싸놓은 정액이 주르르 떨어졌다. 가죽 소파를 타고 흐르는 정액은 등까지 적셨다.
묵야가 기둥을 밖으로 슬쩍 빼내자 안을 채웠던 정액이 벌어진 틈을 타고 줄줄 흘렀다. 묵야는 조금 수그러진 기둥을 내부에서 빼지 않고 부드럽게 마찰했다. 쉴 새도 없이 그의 성기가 다시금 부풀었다. 늘어나는 기둥에 맞춰 구멍도 점점 당겼다. 묵야가 나를 끌어안아 들었다. 휙하고 몸이 들리며 현기증이 일었다. 연결된 부분에서부터 카펫으로 정액이 뚝뚝 떨어졌다. 묵야가 걷는 반동에 의해 기둥이 슬쩍슬쩍 내부를 쑤셨다. 특히 구슬이 튀어나온 부분이 구멍의 끝에 걸려있어서 드득거리며 밖과 안을 오갔다.
침실에 나를 뒤집어 눕힌 묵야가 배 안쪽으로 높은 베개를 넣어주었다. 배가 눌리며 안에 남아있던 정액이 밖으로 나가려 요동쳤다. 묵야는 완벽하게 발기한 기둥으로 다시 안을 쑤셨다. 질척한 정액이 마찰을 도왔지만 혹사당한 내벽은 여전히 욱신거렸다. 쿨쩍쿨쩍 하며 그가 박을 때마다 정액이 딸려 나왔다. 얼마나 많이 쌌는지 내 엉덩이에 닿는 묵야의 불알에도 정액이 흥건했다.
“아아아! 아앗!!”
거칠게 허리 짓을 하며 묵야가 내 얼굴을 틀어쥐었다. 옆으로 파고든 묵야의 입술이 내 혀를 빨아 당겼다. 숨이 막혀 얼굴을 다시 돌렸다. 침대 시트 위로 침이 뚝뚝 떨어졌다. 묵야가 뒤에서 탁탁 쳐올리자 시트를 그리던 타액도 흩뿌려지는 물감처럼 수를 그렸다. 묵야의 몸이 내 몸을 짓눌렀다. 베개와 함께 양 쪽에서 샌드위치가 되자 배안에 남아있던 정액이 내부에서 펑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누, 누르지 마요!”
손을 뒤로 뻗어 묵야의 복부를 밀어냈다. 묵야가 내 두 손을 등 뒤로 그러쥐고 다시 안을 때려 박았다. 그동안 참아왔던 성욕을 한 번에 발산하듯 거침이 없었다. 묵야의 두 번째 사정이 시작될 때야 말로 내 입을 저주했다. 섹스 한 번에 두 번 사정이라고 할 걸. 정액을 싼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묵야가 바람피웠다고 오해했을 때도 울지 않았는데 눈물이 찔끔 시트에 배어 나왔다. 묵야가 내 몸을 돌렸다. 내부가 촉촉하게 젖어있어서 박혀 있는 기둥이 돌아가는데도 별 무리가 없었다.
“울 정도로 좋았나보군.”
묵야가 대단한 오해를 하며 내 눈 꼬리를 쓸어내렸다. 묵야가 내 허벅지를 양쪽으로 넓게 벌려 잡았다. 그 상태로 허리만 깊숙이 들이밀었다.
“하아, 아아아…….”
묵야가 움직일 때마다 흡사 안에 담긴 것들이 전부 딸려나갈 기세로 이동했다. 빠른 움직임에 빠져나가려 했던 정액이 다시 장기 깊숙이 들어찼다. 누군가가 뱃속 가득 물이 찬 내 몸통을 잡고 위아래로 흔드는 느낌이었다. 허리 아래부터 감각이 둔해지고 그에 반해 안의 내벽은 점점 예민해져갔다. 그의 기둥에 박힌 구슬이 음탕하게 내벽들을 짓눌렀다. 이를 문 신음만 뱉어가며 묵야를 올려다보려했다. 흡사 눈이 까무룩 해졌다.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은 정액으로 가득차서 쿨쩍거렸다. 묵야의 기둥이 뒤로 나갈 때마다 설사를 하는 것처럼 정액이 줄줄줄 샜다. 정말인가 싶어 손을 내려 그 흥건한 액을 확인했다. 투명하고 묽은 정액이 전부였다. 묵야가 그 손가락을 내 입에 쑤셔 넣었다. 혀에 미끄덩하게 감기는 정액의 맛이 비릿했다. 흔들흔들 거리는 머리가 멀미하는 것처럼 혼미해졌다.
묵야가 안에 새로운 정액을 싸지를 때마다 멀어졌던 정신이 돌아왔다. 뜨거운 정액으로 인해 안이 타들어갈 것 같았다. 묵야는 기둥을 완전히 뺏다가 다시 콱 쑤셔 넣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안을 뚫기를 반복했다. 벌어진 구멍에서 속수무책으로 정액들이 쏟아졌다. 묵야는 빼낸 기둥을 내 입술로 가져다댔다. 아직도 딱딱하게 발기돼서 정액으로 범벅이 된 기둥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벌어진 입술에 그의 귀두가 닿았다. 입안을 침범하는 성기를 혀로 밀어냈다. 대체 몇 번째인지 그만하라며 사정하고 싶었지만 메말라버린 목구멍에서는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뻐끔뻐끔 거리는 게 전부였다. 몸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현실과 꿈을 경계에서 정신이 왔다갔다 거렸다.
혼미함속에 다시 눈을 떴을 땐 묵야가 정신을 차리라며 안에 넣었던 기둥을 더 거세게 쳐올렸다. 순간 그 충격에 실금을 할 뻔 했다. 아니 정말 실금을 했는지 배 위가 축축했다. 내 몸이 제어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굴었다. 이제는 무섭기까지 했다.
“으으…….”
지독하게도 덤벼드는 남자에게 힘도 들어가지 않는 주먹을 쥐어 밀어냈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묵야가 미안하다며 낮게 욕설을 뱉는 건 같았지만 정확히는 뭐라고 했는지 들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시야가 까무룩 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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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땐 침대에 앉아있는 묵야가 내 이마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 손길이 너무 다정해서 너무 독하지 않았냐며 화를 내려던 생각이 가셨다. 입 안은 묵야가 물을 축여줬는지 촉촉했다. 그래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내가 눈을 뜬 것을 알아차린 묵야가 속삭였다.
“조금 더 자.”
묵야씨도 이틀 내내 못 잤잖아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를 내는데도 힘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다시 눈을 감았고, 어느 순간부터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정신이 멀어졌다.
배터리가 충전되는 것처럼 손을 까닥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돌아왔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묵야는 여전히 깨어 있는 상태로 내 이마에 물수건을 갈아주고 있었다. 아마 저 차가움 때문에 깬 것 같았다.
“뭐… 뭐해요?”
“식은땀을 흘려서.”
“그랬어요?”
목소리가 완전 쉬어서 헤비메탈 락의 보컬이 되도 좋을 법했다. 묵야가 반성하는 듯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미안하다. 자제하질 못해서.”
“이리와요, 자요.”
내 몸을 덮은 이불을 들었는데 손이 덜덜 거렸다. 묵야가 그 손을 꽉 잡고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내 몸을 끌어안자 경련이 일었다. 묵야가 더 세게 나를 끌어안았다. 뺨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자, 더는 괴롭히지 않을 테니까.”
근육이 내 의지를 벗어나 경련한 건데 묵야는 내가 겁먹은 줄로만 착각한 듯 했다. 오해를 풀어줄 기운도 없었다. 그저 그의 따뜻한 팔뚝에 얼굴을 기대고 잠을 마저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