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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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기 전에 치킨 봉지는 분명 치웠는데…. 거실 테이블에 난자하게 흩어진 치킨과 뼛조각들을 보고 생각했다. 이주율과 유진이 소파에 부대껴서 잠을 자고 있었다. 맥주캔 수십 개와 소주병 네 개가 굴러져 다녔다. 멀쩡한 맥주는 딱 두 개가 남아있었다. 바닥에 앉아 소파에 기대어 맥주를 먹었다. 녀석들이 부족했던 치킨을 다시 사왔는지 멀쩡한 부위 세 개가 동그랗게 놓여 있었다. 다리, 가슴살, 날개살 순서대로였다. 내가 알기론 이주율은 양주는 마셔도 소주를 마시지 못한다. 그렇다면 저 소주는 유진이 먹었다는 소린데… 소주를 마시는 외국인과 맥주를 마시는 이주율. 이상한 조합이었다. 

술기운에 내가 들어온 지 모르고 두 녀석 다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눅눅해진 치킨의 튀김을 떼어내고 살만 파먹었다. 맥주 두 캔을 다 비우고 나니 부족한 마음에 편의점에 갔다 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이 게슴츠레한 이주율이 일어나는 나를 붙잡았다.

“어디가.”

“편의점. 술 사러 갈 거야.”

“그럼 내 것도 사와.”

대화소리에 잠에서 깬 유진이 끼어들었다.

“난 소주.”

“둘 다 그냥 자라. 나 이제 백수 돼서 돈 없어.”

이주율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지갑을 꺼냈다. 만 원권 다섯 장을 빼서 내 손에 쥐어줬다.

“용돈.”

“너 맞을래?”

“술 먹을 만큼 사와.”

“백수들의 모임도 아니고…….”

옆면의 접착부분이 너덜거리는 슬리퍼를 신고 편의점까지 걸었다. 다시 돌아왔을 때 녀석들이 자고 있었으면 좋겠지만, 혹시 깨어있을지도 모르니 맥주 열두 개와 소주 두 병을 샀다. 묵직한 비닐봉지를 양 손에 들고 집까지 다시 걸었다. 

거실바닥에 그 무거운 것들을 내려놓으니 손바닥에 빨간 줄이 죽죽 그어져있었다. 한숨 잤기에 술기운이 달아난 두 놈이 벌건 눈으로 나를 기다렸다. 비척비척 걸어와 봉지를 들고 테이블로 향하는 이주율이 투덜댔다.

“안주는?”

“치킨 있잖아.”

“다 먹었어.”

“그냥 술만 먹어.”

“아, 됐어. 족발이랑 보쌈이나 시키자.”

우리 집에 있는 금발 미국인이 족발이나 보쌈을 시키란다…. 이주율이 거실 서랍장을 열어 배달음식 쿠폰을 와르르 쏟았다. 저거, 치우는 건 또 내 몫이지. 이주율이 그 중에서 족발&보쌈 야식 전문 쿠폰을 찾아냈다. 이주율은 팅팅 부운 내 얼굴이 배경인 휴대폰의 액정을 눌렀다. 주소를 두 번이나 확인하곤 주문을 마쳤다. 주문한지 삼십 분 내에 도착을 안 하면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가게였다. 실제로 그 시간을 재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나 싶었다. 

초인종이 울릴 때까지 유진은 홀로 소주를 반병이나 비웠다. 이주율이 화장실 간 사이에 배달이 온 터라 유진이 계산을 하러 현관 앞까지 달려갔다. 배달원이 장신의 외국인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걱정 마세요. 나 한국말 유창해요.”

“아, 예. 정말 잘하시네요.”

배달원이 유진의 등 뒤로 소파에 앉아 있는 나를 흘끔 봤다. 

“3만 2천원입니다.”

좀 전에 술을 사고 남은 돈까지 합해 유진이 계산을 마쳤다. 배달원이 한국말 잘하는 유진이 신기한지 나가면서도 연신 뒤돌아봤다. 유진은 테이블 위에 족발&보쌈 모둠을 풀어헤쳤다. 서비스로 딸려온 막국수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화장실에서 한바탕 비우고 온 이주율이 중간에 떡 하니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주인 형, 많이 마셔.”

유진이 내게 맥주를 내밀었다. 녀석이 이런 술판을 벌여놓은 건 전부 나를 위해서였다. 기특했다. 이주율이 겉절이에 보쌈을 싸서 우걱우걱 씹었다. 입맛이 별로 없어서 맥주만 홀짝이는 나와는 다르게 유진도 막국수를 씹지도 않고 후르륵 먹었다. 잘들 먹는다. 술을 마시면 평소보다 식욕이 돌긴 하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그래도 취하고 싶은 밤이었다.

“근데 이주인.”

이주율이 대놓고 내 이름을 불렀다. 

“형이라고 불러.”

“왜 백수야? 경찰일 돕는다고 설레발치지 않았어?”

이주율이 내 말은 사뿐히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건 어떻게 알았어?”

족발을 먹던 이주율이 행동을 딱 멈췄다. 아차 싶은 모양이었다. 태형 형을 따라 경찰일을 도운 건 이주율이 집을 나가고 나서였다. 하기야 시골에 카페를 차린 것도 이미 알고 있던 녀석인데 그거 하나쯤 못 알아낼까 싶었다. 

“그냥 적성에도 잘 안 맞고. 어디 알바나 구해봐야지.”

“잘 생각했어. 집에 있어. 내가 벌어 먹여 살릴 테니.”

“아직 저금해 놓은 돈 있어. 너한테 손 안 벌려.”

유진이 막국수가 입에 붙는지 제 앞에 놓고 젓가락을 왔다갔다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은 젓가락질도 썩 잘했다. 

“둘이 안 닮은 듯 닮았네.”

“형제니까.”

나는 유진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이주율이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형제, 개뿔.’ 그 글자를 손바닥으로 짝짝 터져 소멸시켰다. 이주율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봤다. 녀석은 자신에게서 생겨난 글자가 어떤 건지 보지도 못했나보다.

“너희 둘도 사이좋게 지내.”

“미쳤냐?”

이주율이 빈 맥주캔을 우그러뜨렸다. 행여나 녀석 손이 알루미늄에 베일까 맥주캔을 뺐었다. 취기가 거나하게 오른 이주율이 유진의 앞에 놓인 막국수를 뺐었다.  

“너만 입이냐, 새끼야.”

술에 취하면 평소에 싫어하는 행동 따위는 잊나보다. 유진의 젓가락이 수십 번은 오갔을 막국수를 이주율이 먹었다. 보쌈 한 점을 새우젓양념에 찍어서 입에 넣었다. 고기가 씹히는데 무슨 맛인지도 잘 모르겠다. 

“태형 형, 원래 그런 사람이야. 너무 상처받지 마.”

‘hypocrite’ 유진이 태형 형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뜻했다. 저 단어는 필수 영단어 속해있던 것이라 기억이 났다. 위선자. 

“태형 형은 그런 사람 아니야.”

“주인 형은 사람이 너무 좋네.”

“둘이 무슨 소리 하는데?”

막국수에 정신이 팔려있던 이주율의 입술에 양념이 흥건히 묻어있었다. 티슈를 뽑아서 녀석의 입술에 벅벅 비볐다. 이주율이 씨익 웃었다. 애기 때의 얼굴이 아직 남아있었다. 

“빨리 말 해. 무슨 소리야?”

똑똑한 이주율도 저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 테니 발뺌하기 곤란했다. 이주율이 새 맥주캔을 따서 내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들며 이주율에게 물었다. 

“hypocrite. 무슨 말인지 알아?”

“위선자잖아. 그게 뭐?”

이주율이 무슨 생뚱맞은 소리를 하냐는 식으로 물었다.

“너 안 보여?”

“뭐가?”

“저 문자.”

유진의 어깨에 붙어있는 ‘hypocrite’를 잡아뗐다. 이주율의 눈앞에서 흔들자 녀석이 아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 보여.”

“뭐?!”

“저 양키 놈 건 못 읽어. 안 나와.”

이주율이 나보다 문자를 보는 능력은 떨어진다는 걸 알았지만, 녀석에게도 아예 문자를 읽어낼 수 없는 상대가 있을 줄은 몰랐다. 

“유진 것만 못 읽어?”

“이주인,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주율이 손으로 보쌈을 집어먹었다. 유진은 우리의 대화에 별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지 소주를 병째 들고 마셨다.

“종종 안 읽히는 인간들이 있어. 넌 여태까지 없었어?”

“…없었어.”

묵야만 제외하면. 

“하긴 네가 나보다 능력은 더 좋으니까.”

나보고 잘난 체 하냐며 성을 낼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녀석이 새로운 맥주를 따면서 말을 이었다.

“오십 명 중에 한 명? 아니 백 명 중에 한 명 꼴로 안 읽히는 놈들이 있어. 여자든 남자든 성별에 관계없고, 그들에게 우리 같은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 그런데 공통적인 게 있더라고. 안 읽히는 놈들은 하나 같이 자아가 존나 강하다는 거야. 남들이 파고들지 못할 정도로 단단해서 생각을 읽을 수도 없어. 그런 놈들은 문자가 안 나와.”

묵야를 제외하곤 여태까지 내가 읽지 못했던 사람은 없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다 만나보고 접해보지 못했으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주율은 읽지 못하지만 나는 유진의 생각을 문자로 볼 수 있었다. 그럼 이주율에게 있어 유진은 자아가 강한 사람일 테지. 이주율과 내가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상대라도 이주율은 보지 못하고, 내게만 보이는 문자들이 있었다. 내가 한 사람에게서 스무 개의 문자를 본다면, 이주율은 그것의 절반 정도를 봤다. 그렇다면 이주율이 사람들에게서 생겨나는 문자를 전부 볼 수 없듯이 나도 유진의 문자를 전부는 볼 수 없다는 소린가? 생각해보니 유진에게서 생겨나는 문자의 빈도수는 다른 이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물론 그런 점들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읽을 수 없을수록 더 좋은 현상임이 틀림없으니.

“저 새끼 생각 따윈 알고 싶지도 않으니 상관없어. 사실은 다른 새끼들 생각 따위도 알기 싫고.”

이주율이 낄낄댔다. 유진이 빈 소주병을 옆으로 치우고 새로운 병을 꺼내들었다.

“너희 둘 다 너무 마시는 거 아니야?”

“형도 좀 마셔, 취하려고 먹는 술이잖아.”

유진의 손에 들려있는 참이슬이 양주병이었으면 꽤 어울렸을 텐데. 어디서 듣기론 해외에선 소주가 양주보다 비싸다고 했다. 

“미국에선 소주가 얼마나 해?”

“음. 16불에서 17불? 비싸서 잘 안 사먹어.”

“16불이면 한국 돈으로 얼마정돈데?”   

“2만 원쯤 하려나 모르겠네.”

유진은 소주 한 병을 비운 사람치고 혀가 멀쩡했다. 이주율이 게슴츠레 한 눈으로 나를 유심히 봤다. 손을 내밀어 내 뺨을 주물 거렸다.

“상처 안 남아서 다행이다.”

아직도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둔 이주율이 애잔했다.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자도, 때린 사람은 못 그러는 게 이주율이었다. 아버지는 수없이 우리를 구타해놓고도 어떻게 그리 영원한 잠에 드셨을지 모르겠다. 산소가 없는 게 다행이었다. 직접 산소까지 찾아가서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내 줄 생각은 추오도 없었다. 나도 참 독한 놈이다. 그러니 태형 형도 버리고 묵야를 선택했겠지.   

“왜 슬퍼해.”

이주율이 내 머리카락에 묻은 문자를 떼어냈다. ‘상실’ 슬픔이 전염된 글자는 보기만 해도 우울해졌다. 이주율은 문자를 소멸시키지 못한다. 대신 내가 그 녀석을 없애버렸다. 

“안 슬퍼.”

“그래, 슬퍼하지 마…. 나 때문에 슬퍼하지도 말고, 그 누구 때문에라도 슬퍼하면 안 돼. 주인이 넌 너무 힘들었으니까… 이제 그러면 안 돼.”

이주율이 나를 껴안았다. 술 냄새가 거나하게 났다. 녀석의 등을 두드려주고 웅얼거리는 녀석을 달랬다.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녀석 중에 하나가 이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더 힘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주율이 내 어깨에 얼굴을 올리고 쌕쌕거리는 숨을 내뱉었다. 막국수가 다 소화되지도 못했을 텐데 잘도 잔다. 이주율을 소파에 뉘이고 바닥에 앉아 맥주를 홀짝였다. 유진이 우리 둘을 번갈아가며 구경했다. 

“미안, 너무 둘이만 얘기했지.”

“아냐, 재미있었어.”

“술이 센가 보네.”

소주를 마시다가 간간히 맥주를 마시는 유진을 보며 말했다. 

“정신력의 차이지.”

유진이 뻗은 이주율을 보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앞으로 어쩔 거야?”

“글쎄.”

“묵야와 사귄다는 얘기는 나도 꽤 충격적이었어.”

솔에 곯아떨어진 이주율이 더 이상 깰 리 없기에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유진은 평소의 순종적이었던 모습을 버리고 진지하게 물었다.

“주인 형, 그가 좋아?”

“그러니 태형 형과 이렇게 됐겠지? 아니… 좋아. 그 사람을 좋아해.”

“정말인가 보네.”

“그렇지.”

벌써 세 캔째였는데 맥주를 마신 것 같지도 않았다. 새롭게 캔을 따서 이번엔 빠른 속도로 마셨다. 목이 따끔거렸다. 유진의 말처럼 이런 날은 취해야 했다. 

“나도 주인 형 마음에 들었는데.”

“거짓말 하지 마, 너는 진심이 안 느껴져.”

애널 섹스라던지, 큐트 라던지. 전부 흥미위주였을 뿐 진심은 없었다. 

“You′re very observant.”

빠른 영어 발음만 들어선 전혀 몰랐지만 곧이어 생겨난 ‘observant’ 덕에 유진의 말뜻을 파악했다. 뭐, 관찰력이 예리함, 좋음 이정도인 듯 했다. 하루에 영단어 10개씩은 외워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불현 듯 묵야가 전에 유진의 말을 전부 알아들었던 기억이 났다. 5년 정도 해외에 있었다고 했는데 그가 있던 곳이 이스라엘이나 이라크가 아닌 영어권인가 싶었다. 작은 사회, 억압된 곳이라는 생각에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치안이 불안정한 곳들만 상상했었다. 혹은 수감소를 예로 들었으니 섬처럼 작은 곳일 수도 있겠다. 

“한국은 즐거워. 난 이 나라가 좋아.”

외국인에게 한국에 대한 즐거움을 심어줬다니 다행이다. 어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 한국 관광홍보대사로 위촉돼 활발한 활동을 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빠르게 알콜을 섭취한 덕에 술기운이 슬슬 올라왔다. 

“태형 형, 어떻게 지내는지 가끔 나한테 얘기라도 해줘.”

태형 형과 마지막 연결고리인 유진이라도 있어서 적잖이 안심이 됐다. 

“나 그 사람하고 별로 안 친해.”

“형이잖아.”

내 주변에 왜 이렇게 형을 형이라 부르지 않는 홍길동들이 많은지.

“주인 형, 졸린 것 같은 눈이야. 자.”

남은 맥주를 입에 털어 넣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주율 옆에서 자기엔 녀석의 전적이 있으니 부담이 컸다. 방안에서 나를 기다리던 문자들이 와르르 달려들었다. 술기운에 흐려진 시야에 오늘따라 녀석들이 더 예뻤다. 지나치게 예뻐서 삽시간에 사라져버릴 듯한 허무함도 같이 밀려들었다. 나풀나풀 거리는 수천 마리의 나비들이 나를 위로했다. 정신없게 혼을 빼놓은 녀석들 덕분에 태형 형을 상실한 슬픔은 중화되어갔다. 혹시나 형에게 연락이 올까 기대해봤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용기가 없어서 형에게 연락도 하지 못했다. 나를 더러운 벌레쯤으로 취급하는 형에게 나는 이제 혐오의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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