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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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로는 가게의 입구부터 엉망이었다. 양탄자가 이리저리 휘말려 구석에 처박혀 있었으며 높이가 낮은 테이블도 제멋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다친 사람들은 이미 병원으로 이송되었는지 과학수사관들과 경찰 외에는 눈에 띠는 피해자가 없었다. 태형 형이 들어오는 나를 보고 반갑게 손짓했다.

     “주인이 왔어?”

    “네. 형”

     나를 알아보는 몇몇 형사들이 손을 흔들었다. 고개를 숙여 그들에게 화답했다. 내가 여전히 사이코메트러인 줄 알고 내게 닿지 않으려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태형 형은 내 팔을 잡아 미로의 통로로 데려갔다. 여전히 좁고 음침한 길이었다. 이러니 괴한에게 습격을 받아도 도망치지 못했을 법하다. 안에서부터 흘러오는 퀴퀴한 냄새가 후각을 괴롭혔다.

    통로의 끝에서 펼쳐진 내부의 광경은 참담 그 자체였다. 채 옮겨지지 않은 시체 세구가 하눈에 봐도 편하게 죽지는 못한 것 같았다. 콧대가 내려앉은 얼굴과 이빨이 나가 바닥에 떨어진 것만 봐도 사망 원인을 충분히 유추할 수가 있었다. 요새 들어 시체를 자주 접하니 이거 참. 형사도 못할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제외한 수사관과 형사들은 익숙한 장면인지 누구도 구역질을 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문자가 지나치게 많아요. 여기서 고르기란 쉽지 않겠어요.”

    형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못내 미안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알아낸 것이 아닌 자백이라 해야 할지. 고백이라 해야 할지 말하기 어려운 묵야가 말해준 진실을 고자질 하고 싶진 않았다. 저 끝에 시체 한 구의 팔다리가 기형적인 상태로 꺾여있었다. 일주일 전 시가를 물고 있었던 남자였다.

    “k3를 판매한 건 저 남자였어요. 형.”

    “그래. 제일 엉망으로 쥐어 터진 걸 보니 그렇겠네.”

    주변을 둘러보며 가장 최근에 생겼을 짙은 색과 선명함을 띄고 있는 문자들을 찾았다. 한글들 사이에 처음보는 언어가 섞여 있었다.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 보이는 글자였다. 그것들은 시체의 몸에도 몇 개씩 붙어있었고, 여전히 허공을 배회하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지렁이 같이 생긴 글자는 꽤나 또렷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만 하루 내에 생긴 글자가 확실했다.

    “형, 처음 보는 문자가 있어요. 저번에 왔을 때는 없던 문자들이에요.”

     형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처음 보는 문자?”

    “표현하자만 지렁이 같은 문자랄까.”

    “뭐?”

    형도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겠는 문자라서 달리 말해줄 사실이 없었다. 그 중 음산하게 넘실대는 지렁이 생김새의 문자를 잡아 주머니에 넣었다. 기운 좋게 발버둥치는 녀석은 마치 살아있는 벌레 같았다.

    “일단 하나는 넣어뒀으니 어떤 문자인지 알아볼게요.”

    “서로 갈래?”

    “그래도 되구요.”

    태형 형이 무전기를 들었다.

    “난 서로 돌아간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들 해.”

    무전기에서 연달아 답변이 돌아왔다. 미로 같은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가자 내가 나가는 것을 반기는 형사들이 보였다. 너무 벌레 취급하면 아무리 나라도 상처받는데...물론 빈말이었다. 익숙하니 이젠 아무렇지도 않았다.

    “뭐 타고 왔어?”

    “바이크요. 형은요?”

    “나야 삐뽀삐뽀지.”

    태형 형이 손을 들어 사이렌 흉내를 냈다.

    “그럼 금방 따라갈께요. 저 먼저 출발해요.”

    바이크에 올라타서 헬멧을 썼다. 뺨이 쓸릴 때 느껴지는 아픔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기에 이를 악 물었다. 각오하고 쓰니 처음처럼 고통스럽진 않았다.

     화려한 네온사인의 길을 비껴가며 바이크의 속력을 점점 올렸다. 도로에 나와선 유진이 기겁을 할 정도의 속도로 달렸다. 바람이 얼굴에 들이닥치는 일은 없었지만 헤드라이트가 길게 번지는 자동차들 덕에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차가 밀리지 않는 늦은 밤 시간대라 바이크보다는 더 자동차가 빠른 것 같았다. 경찰청 주차장에는 나보다 늦게 출발한 태형형의 자동차가 반듯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형의 경찰차 옆에 내 바이크를 주차하고 본관 내부로 들어갔다. 주머니에 손을 넣자 문자가 이리저리 발광을 했다. 콱 . 소멸시켜버릴까 하다 어떤 문자인지 파헤쳐야 하기에 참았다. 비상구로 3층 계단을 올라 형이 있는 형사과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형이 안으로 들어오라며 손짓해다. 형사과 내부에는 빈자리가 태반이었다. 그나마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형사들은 자신들의 앞에 가해자나 피해자로 보이는 사람들을 놓고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오후면 햇살이 잘 비치는 양지 바른 형의 책상으로 향했다. 컴퓨터가 새 것임을 자랑하듯 태형 형 책상에 놓인 LCD모니터의 크기가 엄청났다. 족히 22인치는 되어 보이는데. 돈 안쓰기로 소문난 경무과에서 큰 인심을 베풀었나? 다른 자리를 보면 아직도 손바닥만 한 모니터이건만. 무결점을 자랑하는 형의 모니터가 그 사이에서 당당히 위용을 과시했다. 형이 빈 의자를 끌어와 자신의 의자 옆에 놓았다.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봤다.

    “형, 보너스로 받은 거에요?”

    새 컴퓨터는 태형 형 자리에만 있는 것을 확인하곤 물었다.

    “보너스가 어디 있겠냐? 아, 이거? 내 돈으로 산 거지. 가뜩이나 나이 들면서 눈 안 좋아지는데 코딱지만한 모니터는 눈에도 안 들어오더라.”

    “형, 아직 젊잖아요.”

    “너한테 그런 소리 듣기 싫다. 너도 서른 넘어봐.”

    “아직 상상이 안 되네요.”

    불과 오년 전에 내가 이렇게 살아갈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앞으로 서른이 되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도 예상하기 어려웠다.

    “네가 말한 문자가 대체 뭐야?”

     주머니에서 발광이 난 문자를 잡아 꺼냈다. 손 사이를 빠져나가려는 것을 꽉 쥐어 잡았다. 이런. 조금만 더 힘을 줬으면 소멸시킬 뻔했다. 엄지와 검지로 글자의 끝을 쥐고 한참을 노려봤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언어였다.

    “형,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 같은 글씨체를 가진 언어가 있어요?”

    “지렁이?”

    “뭐랄까. 아랍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동양권 문자인 것 같긴 해요.”

    “기다려봐.”

    태형 형이 검색창을 열어서 지렁이 같은 문자라며 검색어를 적었다. 어째 나와 생각하는 수준이 비슷했다. 우리 수준의 사람들이 많은지 아랍어가 떡하니 검색한 웹문서에 있었다. 지렁이가 기어가는 말같아요. 라고. 내가 잡고 있는 문자는 아랍어와 비슷한 글자였지만 아주 똑같지는 않았다.

    “아랍어는 아닌 것 같아요. 아랍어보단 더 딱딱한 느낌이 난달까.”

    “기다려봐.”

     혀잉 각 국가의 언어 종류를 쭉 나열한 검색표를 보여줬다. 그것을 훑어 보다가 같은언어라는 느낌이 오는 것을 발견했다. 내 손에서 빠져 나간 글자 녀석이 모니터에 찰싹 붙은 것이다. 그것도 자신과 흡사하게 생긴 글자에.

    “뱅골어네요.”

    “뱅골?”

    “네.”

    모니터에 자석처럼 붙은 녀석을 억지로 떼어냈다. 다시 손에서 놓자 녀석은 모니터에 빼곡이 적혀있는 각 나라의 문자들 중에, 좀 전과 같은 곳인 벵골어에 달라붙었다. 두 번 확인 했으니 틀림없다.

    “미로에서 새로 생성됐던 문자들은 전부 벵골어였어요.”

    “아. 이거 참. 어려워지네.”

    “형, 저 벵골어는 해석 못해요.”

    “그래. 알고 있어.”

    태형 형이 마우스를 클릭해서 창들을 닫았다. 그러자 자기네 나라의 언어에 달라붙으려던 녀석도 다소 얌전해 졌다.

    “벵골어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쳐도 제가 이 글자를 잘 그려줄지 자신이 없는데요.”

    한글도 찌그러진 채 형태를 유지하는 것들도 많았다. 내 모국어이니 해석이 가능한 일이지. 만약 영어나 일본어였다면 대체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그것보다 벵골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겠냐?”

    “그건 그렇죠.”

    “… 주인아, 이주율이 사파에 있는 건 확실하지?”

    화살이 이주율에게로 향했다. 태형 형의 물음에 오만가지 생각들이 오갔다. 

    “네…….”

    “혹시 주율이가 거기서 너희 능력을 말한 건 아닐까?”

    “형은 괴한을 고용한 게 사파라고 보세요?”

    “그렇지 않고서야 의심 가는 곳이 없잖아. 조사해보니 전성그룹은 저번 토막 살인과도 아무런 연관이 없었어. 그럼 남는 건 사파 하나지.”

    괴한을 고용한 의뢰인은 묵야다. 내가 사실을 알고 있다 한들 말할 생각도 없을뿐더러, 법적인 효력이 없는 자리에서의 증언이니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다. 손에 잡힌 벵골어를 소멸시켰다. 끄으으으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 것 같다. 

    “사파에서 문자를 읽을 수 없도록 외국인들을 고용한 게 아닌지 의심이 가.” 

    묵야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내가 괴한들의 정체를 알고 있어 불리해지지 않겠느냐는 말에 대한 묵야의 답. 과연 그럴까? 라는…. 나는 단순히 괴한들이 사파의 어깨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외국인을 고용할 줄이야. 태형 형의 말처럼 이주율이 우리의 능력에 대해 누설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러기엔 나는 이주율을 믿었다. 녀석은 그런 위험한 무리수를 던지는 타입은 아니었다. 이주율이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발각되는 순간 녀석은 조직에서의 자리가 위험해질 것이다. 특히 배신과 음모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조폭들 사이에서 이주율의 능력이 환호 받을 리는 없었다. 오히려 알려지는 즉시 제거가 된다면 모를까.

    “태형 형, 무슨 생각하고 있는 줄을 알겠는데요. 주율이가 말 할리는 없어요.”

    “확신해?”

    “네. 이주율이 문자로 사람의 생각을 읽을 줄 아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조직에서 제거 1순위 대상이 될 테니까요.”

    형도 듣고 보니 그렇단 식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너무 앞서갔나 보다 주인아, 미안하다. 생각해보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폭력상해 사건들도 꽤 증가하는 추세거든. 뒤탈이 없으니까 가끔은 그들을 킬러로 고용하기도 해.”

    “네.”

    “외국인 노동자는 그놈의 인권단체 옹호로 지문 인식도 불가능하니…….”

    한 해마다 외국인 노동자의 범죄가 느는 것은 뉴스를 통해서 접했다. 그로인해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순박한 노동자들까지 손해를 보는 실정이었다. 

    “형, 사파 측에서는 K3 판매를 중단했다면서요.”

    “그렇지.”

    “그럼 혹시 K3를 아직도 판매하는 사람들을 사파 측에서 처리하는 게 아닐까요?”

    “자기들 최고의 돈벌이가 마약 팔이인데, 녀석들이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까?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이지만 다른 사유가 있는 거라 생각해.”

    “그렇기도 하지만.”

    힌트는 여기까지만 주기로 했다. 묵야가 그랬어요, 형. 사유는 K3의 판매를 중단하라는 경고를 무시한 녀석을 처벌한 거래요. 그러니 묵야를 취조하세요. 일러라 일러라 일본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골만 지끈거렸다. 

    만일 사파가 미로를 덮친 괴한이었고, 그 문자들 안에서 묵야가 시킨 짓이라는 단어들이 조합됐으면 나는 사실대로 말했을까? 아마 사실대로 태형 형에게 이야기 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로인해 묵야가 감옥에 다녀오면 매달 면회 가는 수뿐이 없고. 처음엔 그가 감옥에 가면 절대 면회 안가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사이에 사람 마음이 이렇게나 바뀌었다. 

    “대체 몇 번째 허탕 치는 건지. 그 녀석이 나타나기 전엔 이렇게까지 견고하지 않았는데….”

    태형 형이 심하게 불쾌감을 표출했다. ‘묵야’ 태형 형의 위로 검은 글자가 올라왔다.

    “묵야요?”

    “그래. 근 2년 전에 갑자기 나타나선 떡하니 이사자리를 꿰차고 앉았지. 그 전엔 어디서 뭘 했는지도 오리무중이야.”

    “야이 시팔 새끼야!! 제대로 주둥이 안 놀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육두문자가 날아왔다. 잔뜩 움츠리고 앉아있는 남자가 서류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친 형사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형사는 다시 한 번 가죽케이스로 된 서류를 내리쳤다. 남자 머리 위에 있던 문자가 만화처럼 납작하게 찌그러졌다가 뽕하고 제 모습을 찾았다. ‘억울해’ 흘러내리는 눈물 같은 글자가 남자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십쌔야, 구제해주겠다잖아. 근데 왜 이렇게 발뺌만 해? 하여간 너 같은 놈들이 세상에 병균을 퍼뜨린다니까.”

    계속해서 쏟아지는 형사의 욕설에 짜증이 확 솟았다. 내가 다가가려 하자 태형 형이 손목을 붙들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럼 뭐가 중요해요?”

    “저런 피라미 사건보다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태형 형을 내려 봤다. 사건의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던 사람이 왜 이러나 싶었다. 

    “형, 왜 그래요?”

    “왜 그러냐니?”

    “…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형에게 충고할 만한 위인이 못되었다. 입을 다물었다. 대신 손목을 뿌리치고 얼굴이 꽤 익숙한 형사에게 다가갔다. 손버릇이 이주율 만큼이나 좋지 못한 남자다. 내 동생이라 감싸는 건 아니지만, 이주율은 자신도 모르게 미치는 경우고 이 남자는 알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모욕감을 주는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부류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둘 다 비슷하게 나쁘기는 하다. 그래도 이주율이 핀트가 나가버려 두드려 패는 일은 나 하나로 족하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내 일을 제외하곤 이주율이 밖에서 이성을 잃고 날뛰는 경우는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오히려 화가 나면 날수록 냉정해지는 쪽에 가까운 녀석이었다. 

    “김형사님 안녕하세요.”

    형사의 성이 금방 떠올라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예, 오랜만이네요.”

    김 형사가 탐탁지 않게 내 인사를 받았다. 어디부터 말을 꺼낼까 고민하는 찰나에 태형 형이 내 뒤에 와서 섰다.

    “김형사, 주인이가 좀 도움을 줄까 하는데.”

    “네? 필요 없어요.”

    ‘사이코메트리 따위.’ 비과학적 수사를 불신하는 김형사 다웠다. 

    “무슨 사건이야?”

    태형 형이 내 대신 사건의 전말을 요구했다. 김형사가 짜증을 숨기지 않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차마 자신보다 직급이 놓은 태형 형의 요구에 불응은 하지 못한 채 마지못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요기 뒤쪽에 청산교회 아시죠?”

    “알지.”

    신도수가 수천은 넘는 규모가 꽤나 큰 교회라는 걸 나 역시 알고 있다. 

    “거기 집사님 집이 털렸어요.”

    “전 도둑질 안했어요!”

    기가 죽어있던 남자가 언성을 높였다. 그럼에도 박력은 없었다.

    “넌 닥치고 있어 새끼야. 하여간, 이 사람이 소독 전문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인데, 집사님 집을 소독하러 들어간 날 집사 사모님이 곗돈 이백을 서재 책상 위에 올려놓은 걸 깜빡 했다지 뭡니까, 중학생 아들만 집에 두고 나갔다왔는데 이미 소독은 끝난 뒤였죠. 돈을 책상 위에 둔 지도 모르고 잊고 있다가 저녁쯤에 돼서야 아셨답니다. 그래서 신고가 들어왔고요. 자수하면 형이 감량되는데 왜 이렇게 버팅기는지 모르겠어요.”

    김형사의 말이 끝나자 태형 형이 뒤에서 내 팔을 툭 쳤다. 할 말 있으면 어서 하라는 신호였다.   

    “집안 소독할 때 한 사람씩 다니나요?”

    “아뇨, 두 사람이 짝을 이뤄서 다니죠. 그런데 실질적으로 집안에서는 방 하나당 혼자씩 맡는 답니다. 그 서재 소독을 맡았던 게 이 사람이고요. 뻔하죠, 월급 110도 안 되는 박봉이 눈앞에 놓인 공돈 200을 보니 눈 돌아간 거죠.”

    김형사의 말에 내가 다 화가 날 지경이었다.  

    “제가 그 방에 갔을 때는 돈 봉투 따위는 없었다니까요. 좀 믿어주세요.”

    “그래서 책상 지문 검사 해봤더니 네 목장갑 지문이 나온 거잖아.”

    “소독하는데 책상에 닿을 수도 있죠. 하루에 몇 십 군데씩 도는데 그걸 어떻게 기억합니까….”

    소독회사 직원은 절대 돈을 훔치지 않았다. 만일 남자가 범인이라면 그에 관련한 문자 하나라도 나오기 마련이다. 억울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김형사님은 눈앞에 돈 오백이면 눈 돌아가시겠네요.”

    건방진 내 말투에 김형사의 얼굴이 벌게졌다. 형사들 평균 봉급이 대강 얼마인지는 짐작 간다.

    “말을 그따위로 하나!”

    “그따위로 만드시니까요. 저기, 그 날 집 안에 중학생 남자애 하나 있었다고요?”

    “네, 그랬어요. 그 집 사모님은 보지도 못했고요.”

    내 질문에도 남자는 여전히 위축된 태도로 대답했다.

    “자자, 일단 집사님 오시기로 했으니까 그 때 얘기 해보시죠. 그래도 신앙이 있는 분이시라 이 사람이 자수하면 돈 200만 돌려받고 고소 철회 하신다니까.” 

    김형사가 의자를 훽 돌렸다. 꼴도 보기 싫어 라는 느낌의 문자들이 내게로 쏟아져 내렸다. 개중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도 있었다. 저토록 내게 적대적인 이유를 모르겠다. 김형사는 나를 만난 첫날부터 그랬다. 김형사는 뒤가 구린 인간임에 틀림없다. 

    태형 형이 의자를 가져와 소독 회사 직원 옆에 놓아줬다. 태형 형도 그 옆에 의자를 더 가져와 앉았다. 

    “소독을 갔을 때 책상 위에 김형사님이 말씀하시는 돈 없었나요?”

    “몇 번을 말해야 믿어줄지 모르겠습니다.”

    소독 회사 직원이 울먹거렸다. ‘왜?, 안 믿어, 안했어.’ 결백을 주장하는 문자들이 내게 달라붙었다. 나를 향한 남자의 마음이었다. 

    “믿을게요. 그 집사라는 사람들 올 때까지 기다려보세요. 결백하다면 꼭 도와드릴 테니까요.”

    기운 없이 늘어진 남자의 손등을 두드렸다. 내가 정의감에 불타는 사도는 아니지만 이런 상황을 보고도 못 본체 하는 인간말종은 아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호남이요.”

    “네, 전 주인이에요.”

    호남씨에게 안심을 심어주기 위해 내 이름도 밝혔다. 태형 형이 바빠 죽겠는데 귀찮게 한다면서 투덜댔다. 내가 변했듯이 형도 변할 수 있었다. 태형 형은 내가 아는 예전의 그 사람 같지가 않았다. 

    향현문자 27

    남자와 영양가 없는 대화를 주고받다 대화거리가 떨어졌을 때쯤 집사라는 남자와 가족들이 찾아왔다. 호남씨를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에는 자비가 가득했다.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니라 집사라는 사람 자체가 예수가 된 듯 했다. 나 역시 신이 있다고는 믿지만 신을 믿는다는 빙자 하에 돈이나 뜯고 다니는 인간들은 혐오했다. 집사에게 붙어있는 문자들이 그의 품성을 대신 알려주었다. ‘간음, 9시, jk호텔, 쫑구자매’ 현재 집사가 생각하는 것이 빤히 보였다. jk호텔에서 쫑구자매와 불륜이라도 저지를 속셈인가보지?

    “오셨습니까? 집사님!”

    김형사가 과도하게 좋아하며 집사를 반겼다. 집사의 사모라는 작자도 사람 좋게 웃었다. 신기하게도 여자에게는 생성된 문자가 없었다. 혹시 묵야 같은 사람인가 싶어 눈여겨보게 됐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용서’ 라는 단어가 여자의 귀걸이 밑에 붙어있었다. 여자는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전혀 모르는 눈치다. 중학생이라는 아들도 부모의 뒤에 서있었다. 청소년도 증인으로 칠 수 있으니 따라온 것이겠지. 녀석을 쳐다보는데 눈이 마주친 순간 내 눈을 회피했다. 어라? ‘바이크’ 녀석이 생각하는 것이 형상화 됐다. 바이크? 라니…. 경찰청에 들어오다 내 바이크를 구경이라도 한 건가? 그 멋들어진 자태를 녀석도 알아보는 중이었다. 아니, 그러기엔 문자의 형태가 불안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회색으로 일렁이는 ‘바이크’는 곧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형제님, 솔직히 얘기해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진실에는 늘 관대하시답니다.”

    집사라는 남자가 호남씨의 손을 잡았다. 호남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 정말 아니에요. 믿어주세요.”

    “저도 이번에 드리는 기회가 마지막입니다. 호남씨. 이제 진실해지세요. 재판까지 가면 서로가 힘들어집니다.”

    집사가 죄 없는 남자에게 자백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게 지금 뭐하는 상황인지 모르겠다. 결백한 사람 하나 앉혀놓고 바보 만드는 거지 싶었다. 집사는 용서라는 명목 하에 자신이 호남씨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자랑했다. 중세 마녀사냥과 다를 바가 뭔가.

    “그 쪽 학생, 이름이 뭐에요?”

    중학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존댓말을 하는 어른인 나를 보고 중학생이 깜짝 놀랐다. ‘싫어, 경찰청.’  

    “부모님 때문에 따라왔어요?”

    중학생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눈알이 쏟아지지 않도록 밑에 손을 깔아야 할 듯싶다. 

    “그 쪽은 누구신데?”

    집사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집사가 나를 궁금해 하는 것 따위는 관심 밖이다. 그리고 남자가 불륜을 하는 것도 내 관심사에서 먼 얘기고. 불륜을 저지른다고 남자를 쓰레기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집사라는 남자를 상종하기 싫은 건 옆에서 보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내비치는 저 위선 때문이었다. 

    “학생, 들어오다 야마하 바이크 봤죠?”

    “네….”

    ‘R6, 더 좋은, 코멧’ 학생에게서 생성된 문자를 한자도 놓치지 않았다. R6는 내 바이크 종이고, 코멧이라면 학생들이 자주 끌고 다니는 저렴한 가격대의 바이크였다.

    “그거 내건데, 금장 장식 끝내주지 않아요?”

    “봤어요, 그게 형 거였어요?”

    “네. 학생도 바이크 좋아해요?”

    “미치도록요.”

    R6의 주인이 나인 것을 알자마자 녀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R6는 학생의 신분이라면 감히 탐낼 수 없는, 그들의 언어로 치자면 레어템이었다. 특히 바이크를 좋아하는 학생에겐 꿈의 알식이라고 보면 됐다.

    “체인도 금장이던데.”

    “어두울 텐데 자세히도 봤네요.”

    집사가 바이크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우리를 못마땅하게 봤다. 여자는 아들의 관심사가 바이크라는 걸 알았다.

    “흐, 흔히 볼 수 없는 거니까…….”

    집사의 눈치를 보면서 학생이 말을 더듬었다.

    “코멧은 탈 만 해요?”

    중학생이 화들짝 놀라 발걸음을 뒤로 옮겼다. ‘안 들켜, 우연.’ 학생을 위협하는 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우연이 어디 있겠어요, 들키지 않는 진실도 없고요. 코멧 150만원이면 사죠? 일 년 전 시세로는 그랬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175’ 숫자가 중학생의 머리에서 아른댔다.

    “175만원이면 바가지 쓰고 샀네요. 학생이라 시세를 모를 줄 알고 비싸게 팔았나본데. 내가 가서 다시 흥정 봐줄까요?”

    “뭐하는 겁니까!”

    집사가 버럭 내게 성을 냈다. 그의 호통은 개의치 않았다.

    “학생, 코멧은 어디서 샀어요? 내가 바이크에 대해선 지식이 많은데 물어보고 싶은 것 있으면 물어요.”

    사근사근한 내 말투에 녀석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의 진실을 원하면서 자신들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에 비로소 공포에 사로잡힌다. 나는 공포를 가져오는 집행자였고, 내 공포는 내 스스로가 가져왔다. 미칠 듯이 싫었다. 이렇게 궁지로 몰아넣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차라리 진실을 모르고 살고 싶다. 원한다면 그 누구든 이 빌어먹을 것을 가져갔으면 여한이 없겠다.

    ‘누명, 잘못, 과오, 충동. 죄책감.’ 학생의 머리가 복잡해졌는지 생성되는 단어들도 고리로 연결되듯 연쇄적으로 흘러나왔다.

    “잘못했으면 진실을 말해. 죄책감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니까. 충동적인 과오라면 고칠 수 있어.”

    내 독설에 학생이 아이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울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 이주율이 아버지에게 독설을 내뱉던 그 날이 생각났다. 아버지에게서 생성된 문자들을 전부 그에게 내뱉었을 때 그는 저렇게 울지 않았다. 덤덤한 표정으로 우리를 폭행했을 뿐. 태형 형이 그만 하라며 나를 붙들었다. 

    “집사님, 진실대로 말해주길 원한다고 하셨죠? 그럼 아드님한테 진실을 물어보시죠. 그럼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을 테니.”

    집사와 그의 부인이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했다. 아들이 우는 이유를 집사의 부인은 어느 정도 눈치를 챘다. 여자가 달고 온 용서는 호남씨가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향해있었다. 여자는 처음부터 진실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집사는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집사 부인이 호남씨에게 허리를 잔뜩 굽혔다. 

    “못나게 키워서, 죄 없는 호남씨에게 이런 수모를 겪게 해서 미안합니다.”

    여자가 가슴 깊이 사과를 전했다. 호남씨는 오히려 자리에서 일어나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사람이 너무 착해도 문제다. 집사는 이게 무슨 일이냐며 여자를 다그쳤다. 이제 나머지 일은 그들이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 구경할 시간도 아깝다. 한없이 피곤해지는 바람에 사무실을 나왔다.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싶어 휴게실로 걸었다. 태형 형이 뒤따라왔다. 

    지나치게 단 자판기 커피를 뽑아 형에게 건네고 또 한잔을 뽑아 내가 들었다. 작게 열린 창문 틈을 타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태형 형이 의자에 앉아 담배를 물었다. 

    “여기 금연이고, 형도 금연 중 아니었어요?”

    “괜찮아. 담배라도 안 피면 요샌 못살겠지 싶다. 휴게실에 금연이라 붙어있어도 지키는 녀석이 몇이나 되겠냐? 스트레스로 따지면 선두를 달리는 직업인데.”

    “그렇죠.”

    “너도 한 대 줄까?”

    “괜찮아요.”

    창문을 본 채 눈을 내리깔았다. 

    “너 얼굴은 왜 그래?”

    “하하, 이제 보셨어요.”

    “또… 주율이가 그런 거냐?”

    “…….”

    “다음번에 그 놈 난동 부리면 112에 신고해.”

    “그러기 전에 제가 묵사발 만들어 놓으려고요.”

    이주율이 난동을 부리게 된 사연을 설명하자면 K3에 취했던 시점부터 시작해야하기에 태형 형에게 시시콜콜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태형 형이 다 마신 커피 잔을 재떨이로 사용했다. 

    “주인아.”

    “네.”

    “힘드냐?”

    “그렇죠.”

    형도 그렇듯이 태형 형 앞에선 숨기지 않았다. ‘탐, 능력.’ 내 몸을 휘감듯 문자들이 달려들었다. 

    “형, 제가 부러울 게 뭐가 있어요. 하루만 저처럼 살아봐요. 미치지 않은 게 신기할걸요, 저야 태어날 때부터 이래서 적응은 됐지만… 사실 저도 처음엔 모든 사람들이 저처럼 문자를 볼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어릴 때부터 눈 나쁜 사람이 자신이 보는 흐린 시야를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요.”

    “그래도 나는 너나, 주율이, 유진이가 부럽다.”

    “저는 형이 부러워요.”

    태형 형과 나는 서로가 다른 이상을 꿈꿨다. 커피는 너무 달아서 입맛이 썼다. 

    “유진이 귀찮게는 안하지?”

    “네, 귀여워요.”

    “귀여워?”

    형이 화들짝 놀랐다. 

    “꼬리 흔드는 게 꼭 대형견 같던데요.”

    태형 형이 말을 잇지 못하고 담배를 빨았다. 자못 진지해보여서 유진과 태형 형 사이에 말 못하는 사연이 숨겨져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형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듯 문자가 나오지 않았다. 

    “유진이에게 주율이가 다시 집에 들어왔다는 말은 들었어.”

    “저 이 꼴로 만들고 다시 나갔지만요.”

    “뻔뻔해도 양심은 있는 놈이네.”

    “그래서 더 포기 할 수 없어요.”

    어떨 때는 녀석을 놓고 싶기도 한데, 반대로 나마저 녀석을 버릴 수는 없었다. 언젠가 내가 아닌 다른 이가 이주율의 마음에 들어가 녀석을 치유해줬으면 바랐다. 그저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가족으로서의 사랑뿐이니까.

    “유진이도 지엄마 그렇게 죽고 나서 나서 많이 힘들었을 거야.”

    “네?”

    유진의 엄마라면 녀석이 말했던 그 마마?

    “내가 전에 유진이의 친모 쪽과 왕래가 좀 있었다고 했었지?”

    “네, 기억해요.”

    “정신이 멀쩡한 여자는 아니었어, 그래서 양아버지가 우리 어머니와 혼인하고 나서도 몇 번 돌봐주러 갔었고.”

    유진에게 듣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그저 철없는 여자가 아니었나? 게다가 이미 사망했다니….

    “어머니로부터의 유전이었어, 유진의 사이코메트리 능력은. 유진은 조절할 줄 알지만 녀석 어머니는 그러지 못했지. 사물들을 만지는 걸 극도로 꺼려했어. 그러다 서서히 미쳐간 것 같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여자였지만, 이해가 갔다. 온갖 물건들에게서 사념이 읽힌다면 정상적인 생활은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양아버지도 버티다 못해 이혼을 신청했지. 그리고 미군생활을 하면서 정이 붙었던 한국에 와 우리 어머니랑 만난 거야. 우리 부모님은 끝까지 유진을 키우고 싶어 했지만, 녀석이 미국의 어머니에게 돌아가기를 원했어. 유진이 미국에 간지 일 년도 안돼서 녀석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녀석은 오년정도 있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온 거지.”

    담배를 세 개째 피운 태형 형이 목을 가다듬었다. 유진은 왜 아직도 자신의 어머니가 살아있는 것 마냥 내게 이야기를 한 걸까? 그저 유진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너도 유진이도, 그리고 주율이도 다 하나 같이 소중한 동생들이야.”

    “알아요, 형. 그래서 늘 감사하고 있어요.”

    “자식, 알면 잘 해. 시골에 틀어박히지나 말고.”

    태형 형이 내 어깨를 퍽 쳤다. 먹고 있던 커피가 뿜어져 나올 뻔했다.

    “생각은 다 정리 된 거야?”

    회피하듯 떠났던 나였다. 서울로 다시 돌아왔으니 형은 내가 안정을 찾은 것이라 여겼다. 

    “네, 그럭저럭요.”

    “근데 대체 묵야와는 어떤 사이야?”

    본론으로 들어간 태형 형이 다시 진지해졌다. 시골의 카페로 묵야가 회를 사온 이후로 계속 내게 묻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아니면 묵야가 우리 집을 찾았던 일을 유진에게 들었거나. 사이좋은 사이. 라고 대답하기도 애매했다. 사귄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곤란했고.

    “어쩌다 보니 친분이 쌓였어요. 좋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억울한데, 너는 내 진실을 늘 알지만 나는 모르니까.”

    “그것도 그러네요.”

    태형 형이 더 캐묻고 싶어 하기에 한숨으로 답을 대신했다. 태형 형을 돕는 일을 그만두고 묵야와 사귀자니 형에게 몹시 미안했고, 반복되는 사건에 휘말리면서 그와 관계를 유지하자니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골치 아팠다. 

    “형, 제가 만일 형 돕는 일 그만 두면 어떨 것 같아요?”

    태형 형의 동공이 이상할 정도로 팽창했다. ‘배은망덕, 분노.’ 그 문자들을 휙휙 잡아서 없애버렸다.

    “제희 형이 널 얼마나 자랑스러워 할 텐데 그런 소리를 해.”

    이제희, 내 아버지의 이름이 형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마음은 싸하게 식었다. 

    “그렇겠죠, 아주 자랑스러워하실 거예요.”

    중학생에게 독설을 퍼붓던 말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태형 형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는지 대견하다며 연신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근데 태형 형, 그거 알고 있어요? 예전과는 아주 많이 달라진, 그런 느낌이요. 이 년 전의 나와, 일 년 전의 내가 다르듯이 형도 그래요. 변해가는 게 당연한데 거기에 대해 회의감을 품는 게 이상한 건가요? 이 년 전의 형은 적어도 호남씨 같은 피해자가 있으면 참지 않았어요. 크고 작은 사건의 유무 따위는 형에게 중요하지 않았거든요. 형은 누명쓰는 사람 없이,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한 획이 되고 싶다고 했었잖아요. 근데 왜 내 눈에는 그런 형의 모습이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요. 뭐가 형을 그렇게 만들었어요? 형이 생각한 자살, 그것과도 연관이 있어요? 형이 그렇게 잡아넣고 싶어 하는 묵야와 나의 관계를 알게 되면 형은 나를 용서해줄 건가요?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나는 형을 잃게 되는 건가요? 태형 형, 저는 말이죠……. 묵야를 사랑하고 싶어요. 그에게 사랑을 배우고 믿고 신뢰하고 싶어요. 그게 너무 지나친 욕심이라면 포기해야하는데 그러고 싶지가 않아요. 

    이번만큼은 형이 내 생각을 읽어주었으면 했다. 나는 되도록 형이 원치 않는 물음은 하지 않았다. 내게 진실을 만을 말해야하는 형이기에, 나는 형이 말하기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 건드리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지금까지 형과 나의 관계가 이어질 수 있었던 특효법이기도 했다. 나는 태형 형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의 꾹 다물린 입에서는 그 어떤 질문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

    “태형 형, 다시 당부하지만,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 해주세요.”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특별하게 힘든 건 없어.”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국과수에서 형에게 붙었었던 자살이 어째서인지 계속 마음에 걸렸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볼게요.”

    태형 형이 쓰레기통에 종이컵을 던져 넣었다. 

    “그래, 고생 많았다.”

    “근데 형, 앞으로 시체가 있는 데는 좀 가리고 싶은데요.”

    “그래? 왜 속이 많이 불편해?”

    “네, 아무래도 꿈자리가 뒤숭숭해요.”

    “그것도 익숙해지면 괜찮아.”

    “형… 저 시체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요.”

    우는 소리를 했다. 

    “주인아, 너 정말 경찰에서 정식으로 일해 볼 생각 없니?”

    “지금은 생각 없어요. 죄송해요.”

    “아니야, 내 욕심이지 뭐. 조심해서 들어가.”

    “네, 형. 연락드릴게요.”

    경찰에 뼈를 묻을 생각은 앞으로도 없었다. 경찰복을 입은 순간 내 수명은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확신했다. 가끔씩 사건을 도와주는 건 무리가 없으나 생업으로 삼기에는 정신적인 타격이 너무 컸다. 조용한 카페에서 원두나 볶는 게 내 적성에 알맞았다. 

    비상구 계단을 이용해 1층으로 내려와 바이크까지 달려갔다. 이렇게라도 운동을 해줘야 기초체력이 생기지. 묵야가 했던 말이 내심 마음에 걸렸다. 바이크의 앞에 자신 없이 어깨를 떨어뜨린 채 서 있는 인영이 보였다. 성인이라고 하기엔 여물지 못한 체구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바이크 앞에 서 있던 인물이 고개를 들었다. 형사과에서 내가 궁지로 몰아붙였던 중학생이었다.

    “여기서 뭐해요?”

    “형, 기다렸어요.”

    내게 복수를 하고자하는 마음은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한결 가벼워진 얼굴이었다. 

    “형… 대체 어떻게 알았어요?”

    “뭐를요?”

    “그니까, 제가… 서재에 있는 돈 가져간 거요. 그리고 바이크 산 것까지…….”

    소심하고 후회되는 마음으로 나를 쳐다보는 녀석이기에 거리감이 느껴지도록 사용했던 존댓말을 걷어치웠다.

    “형이 전생에 먹물이 든 항아리였거든.”

    “네?”

    “그거 몰라? 도둑 잡는 전래동화.”

    “모르겠는데요.”

    요즘 녀석들은 상상력을 풍부하게 북돋아 주는 전래동화가 필수 독서 항목이 아닌가보다.

    “어느 고을에 귀한 보물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감쪽같이 도둑을 맞은 거야.”

    급작스럽게 시작된 전래동화 이야기에 녀석이 멍청하게 눈을 깜빡였다.

    “고을 원님은 도둑을 잡기위해 야심한 밤이 되자 동네 주민들을 다 모았어. 그런데 주민들이 모인 장소 가운데는 커다란 항아리만 떡하니 놓여있는 거야. 원님 왈, 이 항아리 안에는 도둑만을 골라 무는 신통방통한 두꺼비가 들어있으니, 두렵지 않은 자는 다가와서 항아리 안에 깊숙이 손을 넣으라고 말했지.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지만 결백을 증명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항아리에 손을 넣어야했지. 원님은 횃불을 끄고 캄캄한 어둠속에 주민들로 하여금 하나둘씩 항아리에 손을 넣게 했어. 주민들 모두 손을 집어넣은 것을 확인한 원님이 다시 횃불을 켰지.”  

    그새 내 이야기에 집중한 녀석이 다음 말을 기대하는 눈을 빛냈다. 

    “어떻게 됐을 것 같아?”

    “도둑의 손에 두꺼비가 물려있었어요?”

    “하하, 아니. 항아리 안에 두꺼비는 없었어. 항아리를 채웠던 건 검은 먹물뿐이었지.”

    “그럼 도둑의 손에만 먹물이 묻지 않았겠네요. 도둑은 무서워서 항아리에 손을 깊이 넣지 않았을 테니까요.”

    “똑똑한데 그것도 틀렸어.”

    녀석이 말한 것이 정답이었지만 녀석이 모르는 전래동화니 내 마음대로 각색하려 마음먹었다. 

    “도둑하고 도둑의 어머니의 손에만 먹물이 묻어있지 않았어.”

    모자가 짜고 도둑질을 한 건가요? 라는 멍청한 물음을 던지면 주먹으로 머리를 한 대 쥐어줄 생각이었다. 똑똑한 녀석답게 내 말뜻을 금세 이해했다. 자식을 아끼는 어머니 밑에서 자랄 수 있는 너는 분명 행운아다. 아들을 위해 허리까지 조아려 머리를 굽히는 부모는 흔치 않다. 자식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야 말로 부모의 흉이니까.

    “나도 네 나이 땐 바이크가 사고 싶었어. 돈도 없고, 아버지가 워낙 무서워서 엄두도 못 냈지만.”

    “그래도 지금은 알식이 타잖아요.”

    “R6라고 불러. 알식이는 촌스러워. 네 바이크는 어쩌기로 했어?”

    “엄마랑 팔기로 약속했어요. 스무 살 될 때까지는 안타려고요.”

    “나쁜 녀석은 아니구나 너.”

    “그렇다고 착한 녀석도 아니에요.”

    질질 짜던 것과는 다르게 대답 한 번 시원시원했다. 특별이다. 웬만해선 안태우지만.

    “집까지 데려다 줄까?”

    “헐, 정말요?”

    “너 반성하는 건 맞아?”

    “네…. 그 아저씨한텐 정말 죄송해하고 있어요. 그동안 계속 밤잠도 설치고…”

    어린 녀석이 충동에 의해 도둑질 한 것을 호남씨가 뒤집어썼으니 뒤로 고꾸라져서 코가 깨진 셈이다. 그래도 오해가 전부 풀려서 안심이었다. 

    “주말마다 봉사활동 가기로 했어요. 그것도 아저씨랑 약속한 거구요.”

    “착하네. 뒤에 타라.”

    “근데 형. 정말 형이 전생에 도둑잡는 항아리였어요?”

    순수하게 묻는 녀석의 머리에 헬멧을 씌웠다. 답은 해주지 않았다. 바이크를 산 아래로 최고 천천히 몰아 언덕 위의 교회로 향했다. 시속 30키로 이하로 달리는 내게 녀석이 헬멧의 스모크 실드를 열어 투덜댔다.

    “형! 알식이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요?”

    “뭐가!”

    천천히 달리는 와중에도 엔진소리와 바람소리는 거셌기에 서로의 육성이 우렁찼다.

    “완전 삐까뻔쩍하게 개조해놓고 굼벵이처럼 달리면 실례잖아요!”

    “이렇게 빠른 굼벵이 본 적 있냐?”

    너만 뒤에 안 태웠으면 원래는 눈썹이 뽑힐 정도로 달린다. 속력을 내지 않아도 엔진과 타이어의 힘이 좋아 언덕을 무리없이 올랐다. 교회 건물 바로 옆에 붙은 주택에 녀석을 내려주었다.

    “어? 우리 집 어떻게 알았어요?”

    “교회 옆이 보통 집사님 집 아니야?”

    “그래요?”

    “아마 그럴 걸.”

    녀석이 헬멧을 벗어서 내게 툭 내밀었다.

    “ 형 싸움 잘해요?”

    “누구한테 맞지 않을 만큼만.”

    “에이. 얼굴 보니까 터진 사람 같은데요.”

    “내가 못 이기는 녀석이 있어.”

    “누군데요?”

    “내 동생.”

    “헤. 저도 우리 형한테는 항상 이겨요. 덩치는 커다래서 싸우기만 하면 만날 질질 짜기만 해요.”

    “그건 절대 네가 이기는 게 아니야. 형이 봐주는 거지.”

    내가 제대로 마음먹고 죽기 살기로 싸우면 이주율도 아마 무사하지 못할 거다. 그렇게 녀석을 때릴 수가 없어서 문제지.

    “공부 열심히 해. 이건 너무 진부한가? 그럼, 도둑질은 하지 마.”

    “절대 안 해요!”

    녀석이 허리를 굽혀 꾸벅 인사했다. 아직 소년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가진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주율이 어렸을 땐 이 녀석처럼 나름 귀여운 맛도 있던 것 같은데. 

    “형 간다.”

    이를 악물고 뺨을 지나가는 헬멧을 단번에 눌러썼다. 바이크에게 느리게 달렸던 점에 대한 사과를 하듯 밤거리를 실컷 쏘았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그리움에 마음이 사무쳤다. 묵야가 보고 싶었다. 미친 거지, 사건에 중심에 있을 묵야가 이렇게도 보고 싶다는 건. 그가 일주일 동안 우리 집 앞에서 어떤 마음으로 기다렸을지……. 깨어있을 때면 늘 내 전화를 기다린다는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첨가되지 않았다는 걸 이제 알 것 같았다. 지금 내가 그 감정을 느끼고 있으니까. 이대로 달려서 묵야에게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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