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8)
  • #5

    내가 그 깊은 시골에 카페를 차렸을 때 가장 반대를 했던 사람은 태형 형이었다. 이주율도 차사고 이후 모습을 감췄고, 부모님의 장례를 치룬 것도 내가 아닌 태형 형이었다. 당시 나는 부모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방향을 잃어버린 분노 때문에 실의만 가득했던 나였다.

    부모님의 장례식장에서도 넋을 놓고 있는 나를 대신해 태형 형이 찾아오는 조문객들을 맞이하며 상주노릇까지 했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장례식절차를 모두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태형 형 덕분이었다. 태형 형은 아버지 한참 밑의 부하였지만, 가끔씩 우리 집을 방문할 때면 나와 이주율에게 용돈을 주고 가곤 했었다. 아버지는 잔인하고 치밀해서 우리들의 얼굴에 상처를 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옷 안의 몸은 멍투성이였지만 얼굴은 생채기 하나 없이 말끔했었다. 우리가 학대 받고 있다는 것을 이웃에 살고 있는 사람도 알지 못했다. 태형 형은 항상 우리에게 너희는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으니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라고 했다. 이미 머리가 큰 중학생이었던 난 아버지를 향한 형의 찬사에 보이지 않는 비웃음만 머금었었다. 삼일장이 끝나는 날, 형은 거실 소파에 멀뚱히 앉아있는 내 손을 꽉 붙잡았다. 형은 단순히 내가 부모를 잃은 충격에 멍해있는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주인아, 정신 차려야지. 아버지가 이런 널 보시면 좋아하시겠니?”

    형의 두 손이 내 손을 더 꽉 붙들었다.

    “제희 선배가 널 얼마나 아꼈는데.”

    태형 형은 내게 위로의 말을 연신 건넸다.

    “정신 놓으시기 하루 전에 날 보시면서 그랬다. 이제 우리 두 아들, 당신 대신 부탁한다고.”

    나는 거실의 바닥을 보던 시선을 겨우 들었다. ‘선의, 거짓말.’ 나를 위한 거짓말이라는 형의 속마음이 쏟아졌다. 픽 웃고 말았다.

    “정말 아버지가… 그랬어요?”

    “그래. 그러니 형이 앞으로 널 돌봐주마.”

    “저 성인이에요 형. 말씀은 감사하지만 도움 같은 건 필요치 않아요.”

    “주인이도, 주율이도 아버지가 너무 사랑한다고 하셨어.”

    태형 형은 그저 내 기운을 북돋기 위해서 빈말을 건넸을 뿐이었다. 비틀려버린 내 마음은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태형 형을 향해버렸다.

    “형, 난 거짓말과 진실을 누구보다 잘 구분할 줄 알아요.”

    태형 형의 한쪽 눈가가 빠르게 경련했다. 내 손을 꽉 잡았던 형의 손에서 태나지 않을 정도로 힘이 빠졌다. 이번엔 반대로 내가 형의 손을 꽉 잡았다. 

    “형은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해요?”

    ‘영웅.’ 답변도 하기 전에 형의 생각이 튀어나왔다. 나는 형보다 더 빠르게 말을 꺼냈다.

    “영웅이라고 생각하죠?”

    태형 형이 미간을 좁혔다. 대체 뭐지? 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충격?, 뇌진탕’ 형은 내 반응이 뇌진탕 때문이라거나 부모를 잃은 충격 때문이라 여기고 있었다. 

    “머리는 멀쩡해요. 충격을 받지도 않았어요.”

    생각하는 족족 속마음을 읽어내는 나 때문에 형은 입을 벌렸다. 

    “말했잖아요. 나는 진실과 거짓을 알 수 있다구요.”

    “무슨 소리니? 주인아.”

    “사람들의 생각이 보여요. 그 누구 할 것 없이.”

    “뭐?”

    ‘정신병원, 이주율, 농담.’ 형의 생각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단어들이었다. 

    “맞아요. 주율이도 이 것 때문에 정신병원에 갔죠. 농담 아니에요.”

    형이 두 손을 추욱 내렸다. 나는 형이 내 아버지를 포장하지 않았으면 했다. 남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보든 상관없었지만 내게까지 그들의 이상을 강요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한 적이 없어요.”

    “그렇지 않아.”

    나는 아버지에게 학대받은 모든 사실들을 고스란히 털어놓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렇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학대했다 하더라도 태형 형에게는 한없이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형의 이상을 내가 용납할 수 없는 것처럼, 형에게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를 이해시킬 이유가 없었다.

    “언제부터였니?”

    형은 아직도 의심반 믿음반인 태도였다.

    “처음부터요. 태어나기를 이렇게 태어났어요.”

    “주율이도?”

    “그럴 거예요.”

    “그럼… 제희 선배도 그 사실을 알고 주율이를 그…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던 거니?”

    정신병원을 말하는 형의 어조가 조심스러웠다. 

    “꼭 그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요.”

    “그렇구나.”

    태형 형이 내 능력을 알게 되자마자 나를 피하거나 꺼려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형은 내렸던 손을 다시 올려 내 손을 잡아왔다. 나는 전에 단 한 번, 중학교의 동급생 친구에게 내 진실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처음 며칠은 대수롭지 않게 지내던 녀석이 하루 이틀 지날수록 나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상처를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나는 태형 형이 내게서 멀어지리라 확신했다. 

    “주인아, 나는 네 앞에서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을게. 앞으로 너를 위한 거짓말도 하지 않을 거야.”

    형이 다짐을 하듯 내 눈을 들여다봤다. ‘신뢰, 확신.’ 형은 보란 듯이 내게 진실임을 알렸다.

    “주인아, 믿어줘.”

    “…….”

    믿음이란 게 얼마나 부질없는 지도 잘 안다. 믿음은 깨지기 쉬운 얇은 실린더보다도 더 연약했다. 형과 나는 한참동안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주율의 부재가 내고는 소리의 강도는 점점 거세졌다. 미련한 녀석. 저렇게 피곤하면서 추운 밖에서 잘도 버텼다.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 내 이불을 유진의 위로 덮어주었다. 눈을 감은 미국인이 깰까싶어 살금살금 걸어 방을 나왔다. 방문을 닫는데 문자 녀석들이 유진의 피해 사방으로 흩어져있었다. 외부인의 침입에 깜짝 놀란 겁 많은 토끼 같았다. 

    욕실 거울에 비친 사람을 보고 너 누구냐? 라며 뒤로 자빠질 뻔했다. 볼거리에 걸린 것처럼 양 뺨이 팅팅 부어있던 것이다. 울긋불긋한 뺨이 손 만대도 비명을 지를 것 같은 고통을 선사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이틀은 지나야 붓기가 빠질 정도였다. 그동안은 집에서 자숙하며 지내야지. 비실비실한 걸음으로 도착한 소파에서 정장 윗도리를 벗었다. 휴대폰을 꺼내 묵야에게 문자를 꾹꾹 눌렀다. 

    [저 잘 도착했어요. 오늘도 파이팅.]

    보내고 나서 잠시 후회했다. 오늘도 파이팅이라는 말은 조폭에게는 단순히 힘내라는 말이 아닌 잘 싸우라는 의미로 전달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미 문자는 떠났으니 돌이킬 수가 없다. 텔레비전을 켜고 음량 막대를 3개로 줄였다. 호텔에서 묵야와 밥이라도 든든히 먹어 다행이었다. 이 상태로는 그 어떤 진수성찬도 먹기 괴롭다. 우우우웅. 답문자가 도착함을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그래, 피곤할 텐데 푹 쉬어^0^]

    분명 이모티콘 보내지 말라고 얘기한 것 같은데……. 씰룩거리는 입매가 통증을 호소했다. 한동안은 웃지도 말아야겠구나. 이번엔 이주율한테 문자를 넣었다. 

    [주율아, 남한테 화풀이 하지 말고 오늘 하루 조용히 보내라.] 

    그대로 뛰쳐나간 녀석이 다른 곳에서 광적인 면모를 보일 것이 분명하기에 충고를 건넸다. 문자신이 엄지손에 내렸는지 보낸 지 수초 만에 답이 도착했다. 

    [미안해. 사랑해.]

    이주율에게 엉망으로 맞았지만 상처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녀석은 자신이 더 아파할 것이면서 늘 저랬다. 몸을 다시 일으켜 냉장고로 향했다. 얼굴이 너무 아파 엉덩이 안쪽의 통증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언제 얼린 것인지도 모르는 얼음을 꺼내서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았다. 앞으로 녹아버릴 물이 새지 못하도록 위를 동여맸다. 그것을 뺨에 슬쩍 가져다댔다.  

    “흐아아, 나 죽어.”

    절로 우는 소리가 나왔다. 어찌나 쓰라린지 정말 엉엉 울고 싶었다. 어렸을 땐 이주율과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자라왔는데 다 자라서 이러고 있으니…. 입맛이 썼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얼음찜질을 계속 했다. 곁눈질로 휴대폰을 찾아내 태형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자로 하기엔 할 말이 너무 많았다. 태형 형의 컬러링엔 여전히 짭새가 날아들고 있었다.

    “그래, 주인아.”

    “에, 헝 저에요.”

    만두를 문 발음 그대로 나왔다. 

    “너 목소리가 왜 그래?”

    “그럴 일이… 있었어요.”

    입을 쩍 벌려가며 고통에 신음했다. 그래도 정확한 발음을 위해 노력했다. 

    “형, K3 아직도 판매되고 있는 거 아세요?”

    “뭐?”

    몰랐구나.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다.

    “논현동 미로라는 가게에서 판매되고 있어요. 지하에 있는 가게인데 들어가서도 미로 같은 통로를 지나야 아편굴이 나와요. 경찰들이 대놓고 들어가면 아마 도망갈 가능성이 클 거예요.”

    “미로? 정확한 위치가 어떻게 돼?”

    “형 혹시 유로 헤어숍이라고 알아요? 2층부터 4층까지 규모가 꽤 큰 헤어숍이던데. 차병원 사거리에서 좌측에 술집 몰려있는 번화가 지역 쪽이에요.”

    “그래, 어디쯤인지는 대강 알겠다.”

    “그 건물 지하에 있는 게 미로에요. 시가를 피우는 남자가 공급책이구요.”

    얼음을 요리저리 옮겨가며 화를 달랬다.

    “주인이 넌 어떻게 알았어?”

    “지나가다 K3에 중독된 사람 꼬리를 따라갔더니 큰 몸통이 나오더라구요.”

    “그래, 수고했다. 무슨 일 있던 건 아니고?”

    “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일단 팀 구성해서 계획 구성한 다음에 연락하마.”

    “예, 수고하세요.”

    형은 내 정보라면 의심하는 일이 없었다. 확실한 사실이 아니면 형에게 보고 하지 않는 내 성격을 아는 탓이다. 마약 단속의 경우 잠복을 하거나 팀을 구성해 현장을 들이닥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클럽이나 논현동 길거리에서 마약이 암암리에 거래되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K3는 마약 중에서도 위험하다고 판명된 약물이니 팀까지 구성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확실히 위험한 녀석이긴 했다. 어제 내가 꿀꺽한 바로는 그랬다. 감기기운이 찾아오는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얼음물이 완전히 녹을 때까지 찜질을 한 뒤 방으로 들어갔다. 벽에서 아등바등 거리던 문자들이 내가 들어오자마자 삽시간에 달려들었다. 강아지로 따지면 수백 마리는 될 법한 양이었다. 

    “너희 오늘따라 왜 그래?”

    문자에 입이 달린 것도 아니고, 답이 올 리 없었다. 무겁게 달라붙은 녀석들을 탈탈 털어내고 침대 위에 올랐다. 유진의 몸을 덮은 이불을 다시 들어 올려 내 몸에 덮었다. 으슬으슬 떨리는 게 타인의 온기가 필요할 정도였다. 김밥처럼 이불을 돌돌 말아 발가락하나도 나오지 않도록 몸을 움츠렸다. 유진의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긴 했지만 신경이 쓰일 정도는 아니었다. 편히 자는 유진의 모습에 오히려 자장가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자던 도중에 잠에서 깨니 유진이 침대 맡에 앉아서 나를 내려 보고 있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비슷한 포즈였다. 유진의 어깨에는 몇몇 개의 단어들이 생성되어 있었지만 전부 내가 알지 못하는 영어였다. 영단어에는 강하다고 착각했던 게 부끄러웠다. 고등학교 때는 매일 50개씩 외웠는데……. 곧 잠시 돌아왔던 정신이 저 멀리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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