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28)

#4

아버지의 품에 안겨 있던 어린 이주율이 중얼거렸다.

“아빠, 이성일이 누구야?”

이주율의 두 손을 잡고 손장난을 하던 아버지가 웃는 상태로 굳었다. 소파에 앉아 아버지께 선물 받은 로봇을 공중에서 왔다갔다 거리던 내 손마저 굳고 말았다. 집안 가득 기어 다니는 문자. 그것은 이성일이라는 이름이었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그 이름을 발설해선 안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 문자는 어머니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이었으니까.

“아빠, 왜 화났어?”

아버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주율이 아버지의 얼굴이 아닌 허공을 보고 말했다. ‘배반, 이성일, 윤주희, 아이, 누설, 능력’ 아버지는 복잡한 형태로 뒤엉킨 문자들을 생성해내고 있었다. 나는 로봇을 내리고 이주율을 빤히 쳐다봤다. ‘말하지 마.’ 이주율이 내게서 생성되는 단어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말하면 안 되는 거였어? 아빠?”

이주율이 아버지의 목에 매달렸다. 지옥의 수문처럼 굳게 닫혀있던 아버지의 입이 벌어졌다. 이윽고 아버지에게서 독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이름은 어디에서 들었니?”

아버지는 이주율이 아닌 내게 묻고 있었다. 아버지는 웃고 있었지만 이주율의 허리를 감싼 손에는 힘줄이 서있었다. 나는 지나친 독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아버지의 시선을 피해 로봇만 내려 봤다.

“엄마한테 들었어.”

이주율이 크게 답했다. 이주율은 어머니에게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문자를 읽은 것뿐이었다. 

“만날 만날 엄마는 그 생각만 해.”

“무슨 생각?”

“이성일. 이성일. 이성일.”

이주율이 아직도 바닥을 기어 다니는 이름을 보며 중얼거렸다. 늘 우리를 보고 웃음을 지으며 손에는 선물을 한가득 사오시던 아버지가 그 날 이후부터는 분노에 찬 시선과 함께 손에는 골프채를 들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한 번도 자신의 아들들에게 그 남자의 이름을 꺼낸 적이 없다고 울부짖었고, 나와 이주율은 아버지가 말하는 사랑의 매를 견뎌야했다. 평화롭던 행복은 아이의 순진함 물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아버지는 이주율과 내가 당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말했다.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당신이 생성한 모든 문자는 우리를 부정했다. 하지만 나도 당신도, 어머니도 알고 있었다. 당신과 꼭 닮은 웃음, 지나치게 흡사한 눈매,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훨씬 많이 빼닮은 이주율이 당신의 자식이 아닐 리가 없었다. 오히려 집 안의 그 누구도 닮지 않은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아버지는 모든 분노를 우리에게 향했다. 우리가 아니었으면 아버지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또는 모른 척한 채 가정을 유지했을 것이다. 집안을 도둑고양이처럼 조심스레 돌아다니지 않으면 재떨이가 날아왔고 칭찬을 받기 위해 상장을 내밀면 손이 날아왔다. 어머니는 집 안의 썩은 가구처럼 조용히 낡아갔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이성일이라는 남자의 이름을 생성해냈다. 다행이도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그녀의 다정한 손은 나를 향해있었다. 아버지에게 매를 맞은 빈도수는 이주율이나 나나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주율의 상처 따윈 개의치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내 상처뿐인 듯 했다. 

방치된 채 고통에 신음하는 이주율이 나를 쳐다봤다. 눈두덩이 퉁퉁 부어서 나를 보고 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나는 내 상처를 치료하는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 녀석을 껴안았다.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녀석이 무슨 짓을 해도 결국 용서하고 말았던 건. 그 어리고 솔직한 그 녀석을 지켜줄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훌쩍 커버린 이주율은 아버지의 매를 막아내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더욱 나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를 폭력으로 괴롭혔고 이주율은 말로서 아버지를 괴롭혔다. 그리고 난 침묵했다. 나는 당신이 불쌍했다. 자신의 진짜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모든 것을 부정하는 당신이. 그리고 그만큼 증오스럽기도 했다. 

이주율은 나완 달리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현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마도 아버지는 이주율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내면까지 파헤쳐 독한 말을 내뱉는 녀석이 끔찍했을 테니까.

“이주인, 떠나자.”

“어디로?”

차이나카라의 교복이 몸에 알맞게 붙은 이주율이 터진 내 입술에 연고를 발라주었다. 녀석은 이미 채비를 마친 사람처럼 덤덤해보였다. 

“이 곳만 아니라면 어디든 좋아.”

“돈은?”

현실적인 내 충고에 이주율이 소파 밑으로 주저앉았다. 나를 올려보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무 일이나 하면 되지.”

“우린 미성년자야.”

“그래서? 지금 나를 버리겠단 거야?”

“주율아, 아니라고 말해. 지금이라도 가서 모든 게 거짓이었다고 말해.”

이주율이 입술을 비틀었다. ‘너마저.’ 그것은 연약한 몸짓으로 바닥을 향해 낙하했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타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그 모든 사실들을 거짓이라 말하라고?”

나는 침묵으로서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너는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었다. 단지 지옥 안에서 마음 둘 곳이라곤 나밖에 없었기에 그것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중이었다. 이주율이 이를 드러내며 내 멱살을 쥐었다.

“사랑해. 이주인 사랑해! 그러니 나를 보라고!”

“이주율 아니야. 넌 지나친 형제애를 사랑으로 착각하는 것뿐이야. 우린 가족이잖아.”

“세상에 그 어떤 새끼들을 봐도 나처럼 형을 사랑하진 않아. 형한테 욕정하거나 네 뒤를 내 정액으로 가득 쏟아주고 싶다거나 그 딴 욕정은 하지 않는다고! 너도 나를 사랑하잖아?”

소리쳤다가 곧 애절하게 매달리는 녀석의 손을 떼어냈다. 녀석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이주율 사랑해. 동생으로서 너무 사랑하고 있어.”

“떠나자, 주인아. 이제 충분하잖아.”

“나는 떠나지 않아.”

‘복수’ 라는 내 생각을 읽은 이주율이 내 두 뺨을 감쌌다. 

“독한 새끼. 넌 진짜 지독하게도 독한 새끼야.”

이주율이 터진 내 입술을 깨물었다. 아득하는 소리와 함께 새로운 생채기가 생겨났다. 이주율의 입술엔 붉은 핏자국이 묻어있었다. 마치 녀석의 입술이 다친 것만 같았다.

“일 년이야. 딱 일 년. 그 이상은 나도 못 참아.”

“주율아, 제발…….”

이주율을 정신병원에 집어 처넣겠다는 아버지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이주율을 해리성 정체감 장애, B군 성격장애-반사회성 장애-로 판단 내려 이미 입원허가서까지 받아놓은 상태였다. 그는 우리의 부모였고, 밖에선 선망 높은 의로운 경정 나리였다. 빗나간 청소년 아들 하나쯤 정신병원에 집어 처넣는 것은 그에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니라고 말해. 다 잘못했다고 말해.”

“왜 내가 그런 거짓말을 해야 해? 이주인 잘 들어. 일 년이라고 했어. 늘 우리가 곁에 있어서, 우리 밖에 없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착각을 했다고? 그래, 좋아.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내가 널 떠나있는 일 년의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돌아와서도 이 내 마음이 수그러들지 않는다면 너도 인정해.”

“이주율….”

“사랑해, 이주인.”

나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녀석이 강원도의 어느 한적한 정신병원으로 이송될 때까지도 나와 보지 않았다. 결국 내가 녀석을 버린 것이었다. 내 분노가 더 컸기에 녀석과 같이 도망가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분노를 밖으로 표출하거나 부모에게 반항한 적이 없었다. 나는 이주율의 말대로 현실적이고 지독한 놈이었다. 그대로 그 때 이주율과 도망갔다면, 우린 집안에 있던 시간만큼이나 행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린 미성년자이며 수중에는 돈도 없었다. 아버지가 나를 아무리 구타해도 결국엔 내가 성년이 되기 전까지만 가능한 폭력이었다. 

나는 착한 놈도 겁쟁이도 아니었다. 단지 숨죽여 기회를 기다렸을 뿐인, 수년간 똬리를 튼 탐욕스런 뱀이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갈수록 내 아버지는 늙어갈 것이었다. 늙은 것은 추함과 동시에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나는 나와 이주율이 느꼈던 그 절망감을 당신에게도 베풀어줄 생각이었다. 이주율을 정신병원에 집어넣었다면 나 역시 당신에게 그만한 보답을 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내가 그 어떤 것을 하기도 전에 당신들은 떠나버렸다. 당신이 자살을 선택한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하지만 이주율이 죽인 것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녀석을 용서하지 못한다. 

왜 이주율 스스로 제 손을 더럽혔는지, 왜 혼자서 그런 무거운 짐을 졌는지에 대해서…. 

당신들이 죽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확신했다. 나는 진정 당신들의 자식이었으며 어머니가 사랑한 이성일이 누구든 간에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나와 같은 능력을 가진 이주율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 다른 핏줄에서 태어났다면 이렇듯 같은 능력을 지닐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능력을 가진 것도 말이 안 되는 판국에 형제라는 사실까지 더해졌으니, 우리가 한 핏줄이라는 것을 더는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가끔 아버지에게도 우리처럼 이런 능력이 있던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을 가졌다. 그가 범죄 검거율 일순위의 성공가도를 달리면서 고속승진을 한 엘리트였다는 것은 경찰 내에서도 유명한 사실이었다. 태형 형도 아버지가 있었기에 알게 된 사람이었다. 태형 형은 아직도 당신이 최고의 형사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참 억울한 사실이다. 집안에선 폭군으로 군림한 당신이 사회에선 인정받는 남자였다는 것이.         

나는 식어가는 시트의 온기를 아쉬워하며 눈을 떴다. 아마 울고 있었는지 베개가 축축했다. 몸을 일으켰다. 연고의 효과로 인해 엉덩이 안쪽의 열이 가라앉아있었다. 멍한 눈을 껌뻑거리며 침대 옆 커피테이블에 놓인 종이를 발견했다. 다가가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일이 있어서 먼저 나가본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자고 있었으면 좋겠지만-

문장이 간결했다. 글씨체 또한 프린트로 뽑은 것만큼이나 딱딱하며 명확했고. 정신없이 벗어뒀던 옷들이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려있었다. 바지 뒷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밤 11시. 잠깐 잤다고 생각했는데 체력 소모 때문인지 한참을 잔 것 같았다. 옷을 챙겨 입고, 목욕 가운을 세탁통으로 보이는 그물망에 집어넣었다. 바이크 키는 찾지 않아도 좋을 장소에 놓여있었다. 묵야가 써놓은 메모지 옆이었다.

신발을 신고 전력을 공급하는 카드키를 뽑아내자 객실이 캄캄해졌다. 1층에 도달하자 시간이 시간인지라 수많은 커플들이 로비를 지나쳐 나와 반대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안내 데스크에 카드키를 반납했다. 조금 민망해서 쓱 지나쳐가는데 직원이 큰 소리로 나를 불러 세웠다.

“고객님!”

고개를 돌리자 역시나 나를 지목하고 있었다. 데스크까지 다가가서 영문을 모른 채 섰다.

“전, 저기 위층에서 나오는 건데.” 

“네, 알고 있습니다.”

마흔은 넘어 보이는 남자가 빙긋 웃으면서 내가 반납한 카드키를 도로 내밀었다.  

“묵야님께서 이 카드는 고객님께 전달하라 하셨습니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내 앞으로 쭉 밀려온 카드키를 멍하니 쳐다봤다.

“저도 깊은 뜻은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카드키를 선뜻 줍지 않자 남자가 공손한 태도로 직접 카드를 들어 내밀었다.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럼 또 뵙겠습니다. 살펴 들어가십시오.”

“네…”

쇳소리가 나오는 답을 전한 뒤 카드키를 들고 여전히 영문을 모른 채 로비를 걸어 나왔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 것인지…. 언제라도 찾아오라는 뜻인가, 아니면 그 방을 선물하겠다는 뜻인가. 물론 전자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카드키를 뒷주머니에 쑤셔 넣고 바이크가 세워진 주차장으로 향했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차들이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차종 역시 고급 외제차가 주를 이룬 것을 보니 뒤가 구린 인간들이 많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탁- 뒤편에서 한 남자가 내 어깨를 치며 지나갔다. 어찌나 빠른 걸음인지 뭐라고 항의할 새도 없었다.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은 글자를 봤다. 남자와 부딪히면서 내게 묻은 문자였다. ‘K3’ 그 문자를 털어내고 저만치 앞을 걸어가는 남자를 따라잡으려 걸음을 빨리했다. 남자의 주변으로는 온통 K3라는 글자가 떠다녔다. 얼마나 많이 생성해냈는지 바닥에 뚝뚝 흐를 정도였다. 이번엔 ‘빨리, 필요해’ 반복되는 단어가 남자의 몸을 휘감았다. 남자는 은색의 벤츠에 몸을 실었다. 나 역시 서둘러 바이크에 올라탄 뒤 시동을 걸었다. 차 안의 남자는 한참이나 운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시간동안 곰곰이 생각해봤다. 따라가 볼까? K3가 유통이 금지됐다고 들었었다. 하지만 저 남자를 따라가면 그게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반복된 K3와 필요하다는 글자는 남자가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라는 것을 대변했다.

드디어 남자가 올라탄 벤츠가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급히 헬멧을 뒤집어쓰고 바이크에 시동을 걸었다. 저만치 멀어진 벤츠를 부지런히 뒤따라갔다. 도로에 나와선 30m정도의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은색의 벤츠를 미행했다. 차체가 휘청휘청 거리는 것이 음주운전의 전형과 닮아있었다. 벤츠의 뒤를 따라가는 차들이 알아서 속도를 줄이거나 혹은 벤츠를 추월해나갔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교차로 가운데서 음주단속을 행했지만 벤츠의 주인이 먹은 것은 술이 아닌 마약이니 단속에 걸릴 리가 없었다. 바이크를 탄 나 역시 단속을 피해갈 수 없기에 단속기계의 빨대에 힘껏 바람을 불었다. 물론 무사통과. 헬멧을 다시 쓰고 초초한 눈으로 벤츠를 쫓았다. 번잡한 도심으로 향하는 벤츠는 장난감 기차같이 늘어선 차들의 틈에서 좀 전보다는 나은 운전솜씨를 발휘했다. 아직 이성은 남아 있나보다. 

벤츠는 논현동의 한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일차선 골목길에는 화장을 곱게 하고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과 머리에 빳빳하게 힘을 준 연예인 급의 남자들이 각자의 일을 찾아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밤거리의 네온사인이 한낮처럼 환하게 빛났다. 이제 간판에 불을 켜는 가게도 수없이 많았다. 문자들이 쏟아지는 건 무릇 사람들에게서 뿐만이 아니었다. 저 수많은 간판들도 형형색색의 불을 밝히며 잡다한 문자들로 섞여있었다. 헬멧을 쓰고 있지 않았으면 빛에 눈이 멀어 벤츠를 놓쳤을 것이다. 

벤츠가 멈춘 곳은 헤어숍 앞이었다. 주차선이 그어져있는 곳은 차량 세 대만이 주차할 수 있었다. 벤츠의 주인은 마지막 남은 한 자리에 반듯하지 못하게 주차를 한 뒤, 시동도 끄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전봇대 옆에서 벤츠의 남자가 향하는 곳을 유심히 쳐다봤다. 남자는 지상의 헤어숍이 아닌 지하의 [미로]라는 술집으로 내려갔다. 바이크의 시동을 끄고 건물 앞으로 다가갔다. 

남자를 따라 지하로 들어가 보려다 누군가 올라오는 기척에, 건물 내부 벽에 등을 기댔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자세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눈이 반쯤은 풀린 남자가 나를 아래위로 훑으며 히죽댔다. ‘K3’ 남자의 어깨 위에 무겁게 올라탄 문자는 질이 나쁜 귀신처럼 남자의 몸을 짓눌렀다. 나는 지하에는 관심이 없는 척 헤어숍으로 향하는 윗계단을 올려봤다. 남자가 내 앞으로 바싹 붙어서 흩어지는 담배연기에 얼굴을 들이댔다. 

“구름이다 구름.”

남자는 킬킬거리면서 담배 연기를 손으로 휘적휘적 거렸다. 연기가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는지 남자가 울상을 지었다. 남자에게 반쯤 핀 담배를 건네주었다. 남자가 보물을 받은 사람처럼 신이 나서 덩실거렸다. 뻐금거리며 담배 연기를 내뿜는 남자가 유리문을 활짝 열었다. 낄낄거리는 경박한 웃음소리가 닫히는 유리문 틈 사이로 파고들었다. 곧이어 밑에서 또 다른 남자가 올라왔다. 벤츠의 주인이었다. 만족할 만한 마약을 얻었는지 표정이 풀어져있었다. 빨리나 필요하다는 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 남자의 몸엔 ‘K3’와 ‘천국’만이 남았다. 남자의 몸에 붙어있는 K3를 손으로 뭉개 없앴다. 남자는 도를 아십니까? 의 전파자를 쳐다보는 듯 불쾌한 시선으로 나를 향했다. 

“나한테 볼일이라도 있습니까?”

정확한 의사전달에 비해 심히 어눌한 목소리. 약에 취해있는 듯했다. 그것을 무시하고 마지막 남은 K3를 없애자 남자의 눈이 잠시 경련했다. 약 기운을 몰아내고 이성을 찾는 듯 했으나 곧 풀어진 눈으로 휘청휘청 자신의 차를 찾아갔다. 남자의 머리위로 다시금 K3가 올라왔다. 문자를 없애봐야 찰나 동안만 그 문자에 대한 생각이 사라질 뿐이다. 아무리 문자를 없애 뜨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 이번에도 참지 못했다. 뒤집히기 시작한 속이 울렁거렸다. 긴 호흡으로 역류하는 속을 가라앉혔다. 재킷 안쪽에 지갑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가게 명칭인 미로는 세로로 적혀진 궁서체의 한글로 가게 유리문을 장식하고 있었다. 밖에선 안이 보이지 않도록 문의 코팅이 진했다. 당기시오라는 표지판이 붙어있었지만 당길 수 있는 문고리가 없었다. 안으로 밀자 당기시오란 말이 무색하도록 미끄럽게 열렸다. 환기가 되지 않는 지하의 특성상 가게 안은 담배연기로 매캐하게 차있었다. 

심장을 쿵쿵 울려대는 하우스 비트의 음악과 턱이 낮은 테이블 밑에 깔려있는 양탄자, 그 양탄자 위에서 넝마가 된 옷을 정리하지 않는 사람들. 아편굴을 방불케 하는 음산함이 도처에 가득했다. 가슴을 다 드러낸 여자가 한남자의 품에 안겨서 속삭이고 있었다. 여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입안에 넣고 쪽쪽 빨았다. 성적인 행동이 분명하기에 당황스러웠다. 어색하게 웃어주자 양탄자 위에 앉아있던 여자가 내 쪽으로 기어왔다. 

여자는 내 하반신에 손을 뻗어 지퍼를 내리려 했다. ‘펠라’라니. 여자에게서 생겨난 문자를 읽고 부리나케 떨어졌다. 생각보다 많이 뒷걸음질을 쳤는지 술을 팔고 있는 바에 등이 닿았다. 여자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남자와 시시덕거렸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뭐 드릴까요?”

뱅글 돌아서 바를 차지하고 있는 직원을 봤다. 아랫입술과 코에 피어싱을 한 젊은 남자였다. 피어싱 때문인지 남자의 입술이 퉁명스럽게 튀어나와있었다. 

“술 드려요?”

음악 소리 때문인지 피어싱이 고함치다 시피 말을 건넸다. 

“아뇨, 술 말고. 이거요.”

허공에 K라는 글자를 그려 넣었다. 피어싱이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아래위로 보고는 검지를 들어 저 안쪽을 가리켰다. 가리킨 방향의 끝에는 어두운 터널 같은 길 하나가 뚫려있었다. 약과 술에 취한 사람들을 헤치며 그 통로로 이동했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이동할 정도로 폭이 좁았다. 어둡기는 달 없는 밤 같아서 손으로 우둘투둘한 벽을 훑으며 걸어야했다. 밑으로 내려가는 좁은 통로는 일자가 아닌 지그재그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다. 왜 가게 명을 미로라고 택했는지 십분 이해했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졌을 때쯤 반대편에서 나오는 사람이 보였다. 나는 게처럼 벽에 바싹 붙어 그 사람이 나갈 수 있도록 도왔다. 불이라도 나면 아마 미로 안쪽에 있는 사람은 깡그리 불타죽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나가려는 사람들에 의해 압사로 눌려죽거나. 미로의 끝에는 입구에서 본 것만큼이나 넓은 공간이 펼쳐져있었다. 진정한 아편굴은 바로 이곳이었다. 시가를 물고 있는 남자가 타버린 끝을 잘라냈다. 

그 남자가 K3의 공급 책이란 느낌이 바로 왔다. 남자가 생성한 문자는 숫자였다. 그것은 분명 돈 단위였다. 멀쩡한 나를 알아채곤 약에 취한 사람들에게서 생성된 문자들이 내게 붙으려 안달이었다. ‘섹스, 살인충동, 지옥, 천국, 공포, 쾌락.’ 서로 상성할 수 없는 문자들이 한데 뒤섞여 나뒹굴었다. 검은 색을 띠고 있는 천국은 지옥과 어울렸다. 내가 수집한 문자 중에도 천국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저런 더러운 색은 아니었다. 그 녀석은 반짝거림으로 따지자면 최상급 수준에 달했다. 어서 내 방으로 돌아가 그 천국을 보고 싶었다. 

시가를 물고 있던 남자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재빨리 잔뜩 썼던 인상을 풀었다. 허우적거리는 사람들 틈에 멀쩡한 것은 시가를 문 남자와 나 뿐이었으니, 그 남자가 나를 주시한 것은 당연했다. ‘형사?’ 라는 단어가 남자에게서 튀어나왔다. 나는 눈을 풀어지게 뜨고 남자 쪽으로 다가갔다. 속이 한껏 뒤집혀있었으니 연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시가의 눈초리가 의심스러웠다. 

“K3. 그쪽한테 구입할 수 있죠?”

“K3가 뭔데?”

“Kill 3요.”

시가가 피식 웃었다.

“누구 소개 받고 왔는데?”

확실한 답을 알면서 타인에게 물음을 던지는 질문자는 필시 정답을 꿰고 있다. 예를 들자면 선생의 경우, 학생에게 문제의 답을 원할 때 선생은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그 문제의 정답을 먼저 생각한다. 그 답이 학생이 말하는 답과 맞는지 비교하는 것이 물음의 정석인 것이다. 그러니 시가가 답에 대해 떠올리는 순간 그에게서 생성되는 문자를 읽어내면 그만이다. ‘Rj’ 시가에게서 나온 문자를 놓치지 않았다. 

“Rj에게 소개 받았습니다.”

시가가 요즘 너무 예민해졌어. 중얼거리곤 양탄자 밑을 걷어냈다. 바닥을 파 만든 엉성한 구멍이 드러났다. 그 안에는 투명한 비닐 팩에 담긴 연두색의 캡슐들이 가득했다. 시가는 그 중 손바닥보다 작은 비닐 팩 하나를 꺼냈다. 캡슐 6개가 들어있는 봉지였다. 

“한 번에 2개 이상 먹으면 기냥 골로 가는 거야. 알간?”

시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투리와 표준어를 섞어가며 비아냥거렸다. 시가는 검지 하나를 폈다가 곧바로 엄지와 검지를 붙여 0자를 만들어냈다. K3의 가격이었다. 지갑을 꺼내 십 만 원권 수표를 내밀었다. 시가가 지금 장난 하냐는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야, 이 새끼 봐라. 십만 원? 애새끼 장난이야? 영하나 더 붙여야지.”

백만 원이라니……. 저 조그만 캡슐 6개의 가격이 시골에서 운영하던 한 달 카페 수입보다도 많았다. 수중에 있는 현금이라곤 삼십만 원이 전부였다. 그것도 은행가기가 힘든 시골에서 몇 달간 고이고이 모아놓은 돈이었다. 서울에 올라왔으니 조만간 은행에 들려 저축하려 한 건데…. 손이 바르르 떨렸다.

“지금 현금이 30밖에 없는데요.”

“Rj를 어디서 알았어? 너같은 거지새끼를 소개시켜 줄 용자가 아닌데?”

‘남창, 호스트.’ 남자가 내 정체에 대해 유추하는 문자들이 툭툭 내 뺨을 건드렸다. 나는 조금 부끄럽다는 듯이 머리를 긁었다.

“저희 가게에 손님으로 오셨었는데 제가 마음에 든다면서 소개시켜 주신 거라…….”

“그래?”

시가의 표정이 단박에 밝아졌다. 

“너 어디서 일하는데?”

“논현동은 아니고, 역삼 쪽에서 일합니다.”

“크크. 거기가 Rj 활동권이긴 하지.”

그냥 찔러본 건데 정확히 표적을 향해 날아갈 줄은 몰랐다. 시가가 비닐 팩을 팔랑거리며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다음에 올 때는 가불 쳐서라도 돈 가져와라 아그야.”

내게서 삼십만 원을 쏙 빼가는 시가가 뒷주머니에 수표를 구겨 넣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 이 캡슐 6개로 홀랑 날아가다니. 돈 벌기 참 쉬운 세상이구나. 시가를 보면서 속으로 이죽거렸다. 캡슐을 재킷 주머니에 넣고 몸을 틀었다. 그 때 시가의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아그야, 그 잠깐 서봐라.”

“네?”

뜨끔해서 목만 틀었다. 시가가 연두색 캡슐을 하나 꺼내더니 이리오라며 나를 손짓했다. 

“처음이니 서비스는 하나 줘야지 않겠나? 이리와 봐라.”

한사코 거부하고 싶었다. 시가는 물기가 촉촉한 맥주병 안에 그 캡슐을 퐁 떨어뜨렸다. 내용물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병을 빙빙 두르더니 병의 주둥이를 다가온 내 입술에 붙였다.

“시원하게 함 원샷 해봐라. 삼십분만 지나면 뿅 갈 테니.”

시가가 낄낄댔다. 마약을 사러온 자가 공짜로 주는 마약을 마다한다면 말이 안됐다. 태형 형에게 줄 증거물이 필요해서 산 K3가 이렇게 무덤을 팔 줄이야. 시가가 보지 못하도록 아랫입술을 꽉 물고 맥주를 마셨다. 원샷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두 모금 마시고 떼자 시가가 언성을 높였다.

“성님이 주는 건데 어델 남겨? 어서 예쁘게 다 마셔봐라.”

무사히 빠져나가려면 다 먹는 수밖에 없었다. 눈 딱 감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론 재빨리 나가서 토할 생각이었다. 

“감사합니다!”

시가에게 맥주병을 비운 것을 확인시키고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서둘러 미로의 통로를 향해 걸었다. 다행히 시가가 다시 붙잡는 일은 없었다. 긴 터널을 벗어나 밖의 계단을 오르기까지 숨을 꾹 참았다. 바이크가 세워진 전봇대까지 한달음에 달려가 때마침 옆에 있는 하수구 구멍에 안에 있는 맥주를 게워냈다. 맥주거품이 목구멍을 가득 메웠다. 한숨 자기 전에 먹은 회들은 전부 소화돼서 다행이었다. 침을 모아서 입안에 남은 것들을 전부 뱉어냈다. 맥주를 뱉어냈다 해도 약기운이 돌지 않은 거란 확신은 없었다. 

바이크에 시동을 걸고 최대한의 속력으로 집을 향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뒤집어쓴 헬멧안의 숨이 뜨거워졌다. 바이크에 앉은 몸체가 바람에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사기꾼 자식, 삼십분이 걸려야 퍼진다더니 십오 분도 안돼서 약효가 돌고 있잖아. 앞을 달리는 차들의 후미 등이 파스텔을 칠한 것 마냥 길게 늘어졌다. 이를 악 물었다. 이대로 집까지는 족히 삼사십 분은 걸린다. 여기선 차라리 묵야의 호텔이 더 가까웠다. 

내 정신력으로 버티는 한계가 어디까지 일지 가늠되지 않았다. 첫 번째 차선을 따라 똑바로 달리고 있다 생각했는데 눈을 크게 뜨고 보니 두 번째 차선의 가운데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도로에 깔린 온갖 문자들이 달려들었다. 바이크로 그것들을 짓밟고 나가려했지만 타이어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시야가 뒤엉킨 문자들로 가려져갔다. 자동차 한 대가 내게 욕설을 하며 지나갔지만 무슨 욕이었는지도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정신이 엉망이 되기 전에 본능적으로 묵야의 호텔을 향하고 있었다. 

향현문자 20

바이크를 아무데나 주차하고 무너지는 눈을 간신히 들었다. 은은했던 로비의 주황빛이 지나치게 밝았다. 안내 데스크에 있는 사람이 걱정스레 나를 불렀지만 무시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손잡이에 몸을 잔뜩 기대고 13층의 버튼을 눌렀다. 제대로 눌러지지 않아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했다.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내부는 중력을 거부당한 것처럼 몸이 붕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한 번의 멈춤도 없이 올라간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뒤 카드키를 객실 문에 붙였다. 하악하악거리는 숨이 뇌까지 달구었다. 카드키를 전력지급 콘센트에 꽂아 넣고 욕실로 달렸다. 무너지는 다리는 누군가가 뒤에서 잡고 있는 것 마냥 무거웠다. 

목구멍에 손가락을 찔러 넣어 구역질을 시작했다. 속에서 나오는 거라곤 위액 밖에 없었다. 약은 이미 체내에 스며들어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는 듯 했다. 제길, 정신을 이따위로 만드는 약이 뭐가 좋다고 처먹어대는지. 욕설이 저절로 나왔다. 약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킬 수 있을까 싶어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셨지만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물이 역류되어 입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약기운이 언제가 돼야 가실지 모르겠다. 게다가 K3는 과다복용으로 죽은 사람도 존재했으니, K3는 아마도 헤로인 급으로 높은 독을 가진 물질일 것이다. 

완벽하게 환각상태에 빠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보듯 뻔했다. 전에도 수없이 마약사건 수사에 협조한 경험 덕에 마약에 대한 지식은 충분했다. 마약의 효과는 복용한 사람에 따라 예측이 불가능하다. 지나친 행복감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사지가 뒤틀리거나 잘려져 나가는 고통의 환각을 맛보는 사람들도 있다. 시간과 공간의 감각이 사라지며 초자연적인 상태로 들어서는 것이 환각의 정점이다. 즉 음악을 보고 색을 듣게 되는 현상을 말했다. 

묵야의 방에는 문자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약 기운에 문자까지 더해졌으면 미치기 일보직전까지 갔을 것이다. 약기운에 휩쓸리지 않도록 온갖 생각들을 떠올리는데 누군가가 웃고 있었다.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인지도 헷갈렸다. 기절하듯 잠이라도 들었으면 좋겠는데, 온몸이 덜덜 떨리는 추위에 이가 닥닥 떨리기만 했다. 욕실의 바닥이 얼음장이었다. 기어 나와 욕실 문턱에 앉았다. 

힘겹게 들어올린 눈앞엔 아버지가 골프채를 들고 서있었다. 여기저기 패인 자국이 있는 골프채엔 피가 묻어있었다. 내게로 날아오는 골프채를 잡았다. 지금의 나는 속수무책으로 맡기만 하던 어린 몸이 아니었다. 그 골프채를 잡고 아버지를 향해 휘두르려고 하자 그 목적을 이룰 대상은 이미 없었다. 손을 내려 보니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확신했다. 나는 마약을 복용하면 고통을 겪는 부류란 것을. 

저기 침대 근처에 선 아버지가 몸을 웅크린 이주율에게 골프채를 휘둘렀다. 저 인간이 언제 저기로 이동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주율을 구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침대까지 비틀비틀 걸어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녀석을 껴안았다. 그러자 작은 손이 나를 껴안고 어깨를 쥐어뜯듯이 흔들어댔다.

“이주인!”

뺨을 때리는 손길이 간지러웠다. 환각 속에 빠진 내 정신을 일깨우려는 손짓이 느껴졌다. 내 어깨를 흔들었던 건 이주율이 아닌 묵야였다. 아니 이게 현실인지 환상인지도 헷갈린다. 

“너 왜 이래?”

묵야의 얼굴이 여러 겹으로 겹쳐졌다. 지독한 멀미 속에 묵야의 몸을 껴안았다. 고정된 묵야의 몸을 잡고 있으면 안전할 것만 같았다. 앞에 선 아버지가 내게 골프채를 휘둘렀다. 막지 못했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당신은 이제 내게 아무런 해를 가하지 못한다.  

“아버지, 보세요. 그렇게 일찍 가시면 어떡해요. 보답할 기회는 주셔야죠.”

묵야의 어깨에 기댄 채 골프채를 들고 선 남자를 비웃었다. 나오는 모든 말들이 제어가 되지 않고 입 밖으로 줄줄 샜다. 

“대체 왜 이래! 이주인!”

묵야가 고함을 쳤다. 처음 듣는 큰 소리였다.

“미치겠어. 머리가.... 머리가 깨질 것 같아.... 그러니 소리 지르지 마요.”

온몸이 덜덜 떨렸다. 춥다, 마약 복용의 안 좋은 사례란 사례는 전부 내 것에 해당되는 듯했다.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은 이미 드라이아이스처럼 변했다.

“추워, 추워.”

묵야의 살을 탐하고자 그의 정장을 벗겼다. 따뜻한 그의 피부를 만끽하고 싶었다. 묵야의 드레스셔츠를 벗겨 그의 쇄골에 뺨을 댔다. 그럼에도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묵야가 내 옷을 벗겨서 침대위로 올렸다. 떨어진 옷가지들 틈에서 묵야가 K3가 담겨있는 비닐팩을 잡아들었다.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묵야는 K3를 어디서 구했느냐며 나를 추궁하는 것 같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시트를 그러쥐고 추위를 달래보려 해도 소용없었다. 묵야가 내게서 시트를 빼앗아가고 그의 맨몸을 댔다. 탄탄한 묵야의 피부에 닿은 손바닥이 한 치의 틈도 없이 그에게 달라붙었다. 내 이상행동에 묵야가 시선을 맞췄다. 도무지 한 곳에 시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풀려있는 시야는 그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분간되지도 않았다. 

“이주인, 이런 건 취미가 아니야.”

묵야가 짐승처럼 위협적인 목소리를 자아냈다. 언뜻 보인 그의 차가움에 심장이 지끈했다. 묵야의 이가 목덜미에 박혔다. 행동은 거칠었지만 내 옆구리를 어루만지는 손은 다정했다. 뜨거운 숨이 유두를 먹어치웠다. 그의 혀가 닿는 곳마다 온몸이 말랑말랑해져갔다. 묵야는 단단해진 젖꼭지를 꽉 쥐어 잡았다.

“앗!”

쾌감어린 탄성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묵야는 젖꼭지를 잡아 끌어올리듯이 당겼다. 배꼽까지 내려간 그의 입술이 곧 내 성기에 다다랐다. 뜨겁고 질척한 동굴 안으로 성기가 사라졌다. 묵야의 부드러운 머리칼에 손을 집어넣었다. 빨아 당기는 힘에 의해 허리가 위로 들렸다. 

“흐읏! 아아….”

귀두를 마찰하는 그의 혀가 지나가고 도톰한 살이 깨물렸다. 묵야는 내 기둥의 살갗을 혀로 쓸어 올리며 다시금 연약한 살을 씹었다. 강약을 조절해가며 쾌감과 아릿한 고통을 주는 묵야의 애무에 정신이 녹아버릴 지경이었다. 벌린 입안의 수분을 공기가 전부 먹어 치워갔다.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손을 내려 묵야의 것을 쥐자 그도 터질 것처럼 발기해있었다. 묵야의 얼굴을 잡아 위로 올려 입술을 맞댔다. 사막처럼 메말랐던 입안이 촉촉하게 젖어갔다. 

묵야를 침대 위에 넘어뜨리고 나도 상체를 숙여 그의 성기를 물었다. 갈라진 요도의 틈에서 시큰한 선액이 혀를 적셔주었다. 귀두만 무는 것도 벅찼다. 귀두 밑의 파인 홈까지 간신히 입안에 집어넣자 그의 성기가 꿈틀거렸다. 완벽하게 다물려지지 않은 입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묵야의 기둥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것이 아까워 혀로 쓱 핥아 올렸다. 규칙 없이 박힌 구슬 때문에 기둥이 울퉁불퉁했다. 구슬이 박혀 튀어나온 곳을 혀로 꾹 누르자 묵야의 손이 내 머리를 쥐었다. 그의 커다란 손이 귀를 막아 둔한 울림이 퍼졌다. 그것은 쿵쿵대는 심장소리와도 비슷했고, 여러 사람들이 웅얼대는 소리와도 같았다. 둔중하게 흩어지는 소리 속에 오로지 세상엔 묵야와 나만 존재하는 듯 했다. 

할짝할짝 기둥을 핥는 것이 감질났는지 묵야가 내 머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성기를 집어 처넣었다. 기둥이 어금니에 긁히며 쑤셔 박혔다. 목젖을 지나 구역질이 날 것 같이 안쪽의 살을 툭툭 건드렸다. 목젖이 덜렁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메말랐던 입안엔 거짓말 같이 샘이 넘쳐났다.

“크핫, 아….”

성기를 뱉어내려고 하자 묵야의 행동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묵야의 기둥이 내 혀를 꾹 내리누르고 안쪽의 길을 트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그의 것을 입에 문채로 올려보자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눈빛엔 쾌감이 잔뜩 서려있었다. 혀의 뒷면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온 기둥을 핥았다. 손으로 그 구슬을 갉작거리자 묵야가 순식간에 나를 뒤로 엎었다. 묵야의 성기가 타액으로 번들번들 빛났다. 묵야가 정상위의 자세로 내 허벅다리를 들어올렸다. 엉덩이를 벌려 구멍의 살이 뻐개지듯 그의 것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아아!!!!”

귀두가 전부 들어오고 천천히 남은 기둥들이 안으로 쑤셔 박혔다. 차라리 한 번에 들어오면 편할 텐데, 격차를 두고 안으로 전진하는 그의 것에 선명한 감각들이 되살아났다. 

“빨리, 빨리.”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며 묵야를 채근했다.

“큭….”

낮은 탄성과 함께 묵야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그럴수록 그의 근육이 단단해져갔다. 묵야는 내 바람을 이루어주기라도 하듯 한 번에 뿌리까지 처박았다. 

“아아아… 아아!!!!”

온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깊은 내부를 찍어 올렸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묵야가 움직였다. 길게 빠지는 기둥을 따라 묵야의 것을 둘러싼 점막들이 딸려나갔다. 아래가 점점 벌어지는 것은 그의 두터운 귀두 때문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나갔던 기둥이 퍽하고 틀어박힐 때마다 발끝이 꼿꼿하게 섰다. 따라갈 수 없을 속도로 허리를 움직이는 묵야가 내 젖꼭지를 움켜쥐었다. 반대쪽의 유두는 입안에 물어 잘근잘근 씹었다. 가슴이 들어 올려 그가 더 쉽게 핥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가 입을 떼어내자 가슴의 살이 발갛게 부풀어 올랐다. 

묵야는 혀끝을 딱딱하게 세워 젖꼭지를 툭툭 건드리곤 그 가슴을 한껏 베어 물어 먹어치우듯 굴었다. 묵야가 빨아올렸다가 떼어낸 곳에는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한 피가 가슴살 바로 밑에서 발갛게 충혈 되어 있었다. 묵야는 거친 숨을 내쉬며 내 입술을 먹어치웠다. 입술이 그의 거센 움직임에 쓸려나갔다. 묵야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아랫입술을 엉망으로 만들어놓는 와중에도 내 신음소리만이 더 거세졌다. 묵야가 안에 성기를 박은 채로 내 몸을 빙글 돌렸다. 양 손으로 옆구리를 잡아들어 일으켜 안으로 퍽퍽 처박았다. 팔에는 상체를 세울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부드러운 시트에 얼굴이 함부로 비벼졌다. 

“으흣! 아아, 아아….”

입안에서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하는 신음들이 시트의 안쪽으로 흩어졌다. 묵야가 내 배에 손을 둘러 한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엉덩이 골 바로 위를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기둥이 쑤셔지는 바로 윗부근에 압력이 가해지자 뻐근한 느낌이 배가 되어 찾아왔다. 기둥이 뱉어질 때마다 아랫배에 힘이 들어갔다. 빠듯한 안쪽을 쑤셔 올리는 묵야의 힘이 거세졌다. 울퉁불퉁한 기둥을 따라 내벽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모든 장기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묵야의 행동을 따르고 있었다. 인지하자마자 순식간에 두려움이 찾아들었다. 손을 뻗어 침대의 앞으로 기어가는 것을 묵야가 차단했다. 

“이주인, 이주인.”

묵야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의 부름에 답하지 못한 채 그저 헉헉거렸다. 묵야는 뒤집혔던 내 몸을 옆으로 틀게 해 허벅다리를 자신의 어깨에 걸쳐 올렸다. 그의 손이 방치된 채 고개를 들고 있는 내 성기를 그러쥐었다. 선액을 질질 흘리는 기둥에서 질척한 소리가 났다.  

“아아아! 아아!”

묵야가 내 성기를 터질 듯이 붙잡고 흔들었다. 묵야의 성기가 안으로 쿡 쑤셔질 때마다 사정감이 몰려왔다. 묵야의 기둥에서 튀어나온 어느 한 점이 내벽의 제일 민감한 부분을 문질러댔다. 묵야는 아래를 꽉 쥐고 쉽사리 사정을 허락하지 않았다. 

“놔, 놔줘… 아윽!”

두 손을 내려 묵야의 손을 내 성기에서 떼어내려 했다. 묵야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차며 허리를 차올리는 속도에 맞춰 내 기둥을 마찰했다. 퍽하고 한계까지 뱃속을 치고 올렸을 때 내 성기를 잡은 묵야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 정액이 참았던 것을 토해내는 만큼 거세게 팟하고 튀어 올랐다. 젖꼭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정액의 질척거림에 소름이 돋았다. 묵야가 가슴을 문지르자 온통 정액으로 매끈매끈해졌다. 

사정 할 때도 움직임을 봐주지 않던 묵야가 이제는 흡사 아래를 망가뜨리듯이 움직였다. 어느새 나를 똑바로 눕히곤 내 어깨 위로 두 팔을 벌려 몸을 지탱했다. 시야는 온통 용의 얼굴뿐이었다. 그의 쇄골에서 꿈틀거리는 용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였다. 검은 용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내게 달려들었다.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얼굴을 돌렸다. 묵야가 내 두 손을 잡아 위로 그러쥐었다.

“눈 감지 마.”

불안한 눈으로 묵야를 올려봤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피하자 묵야의 종아리에서부터 뱀이 스물스물 기어올랐다. 가슴께까지 올라온 뱀이 입을 쩍 벌려 발갛게 부푼 가슴을 깨물었다. 지독한 환각이다. 그와 동시에 묵야가 내 안에 정액을 싸지르기 시작했다. 배 안이 뭉클하게 가득 찼다. 사정을 하는 묵야가 내 허리를 받치고 위로 들어올렸다. 정액이 저 안 깊숙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아, 아아. 놔. 놔주세요!”

정액을 전부 몸안으로 들이붓는 묵야의 태도에 두려움이 앞섰다. 몸 깊은 곳의 장기가 묵야의 정액으로 범벅되고 있었다. 묵야의 성기가 무섭도록 다시 부풀어 올랐다. 성기를 앞뒤로 쑤걱쑤걱대며 구멍 안에서 부피를 키웠다. 완벽하게 단단해져 쿵쿵 내리찍는 기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토기가 올라와 입을 틀어막았다. 욕실에서 잔뜩 먹었던 수돗물이 위에서부터 역류해 손 틈새를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묵야가 쏟아 부은 정액이 나온 것은 아닐까 잠시 걱정이 들었다. 묵야가 움직임을 멈추고 내 몸을 끌어올렸다. 아래가 연결 된 채로 그의 허벅다리에 앉혀졌다. 

“토할 것 같으면 해.”

묵야는 입을 막은 내 손을 떼어내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게 만들었다. 나온 것은 물과 섞인 위액뿐이었지만 시큼한 냄새가 났다. 몸이 저 바닥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느낌에 그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더, 더 해요.”

“아프잖아.”

“상관없으니…. 빨리…”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엉망으로 만들어달라는 말은 목구멍에서만 맴돌았다. 묵야가 다시 움직임을 재개했다. 쿡쿡 쑤시고 빠져나갈 때마다 쿨럭거리며 안에 싸놓은 정액들이 빠져나왔다. 안을 헤집는 소리는 점점 난잡해져갔다. 아래서 위를 칠 때 헛구역질이 몰려왔다. 묵야는 그럴 때마다 커다란 손으로 내 등을 쓸어내렸다. 얼굴은 점점 무거워져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묵야는 아이를 안듯이 내 허리와 뒷목을 손으로 받쳤다. 묵야의 손길이 따뜻해서 눈꺼풀이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으읏… 아아아!”

눈을 감자 묵야가 안을 쑤시는 감각이 적나라해졌다. 정액들이 마찰을 도와 제멋대로 안을 쑤시게 만들었다. 울퉁불퉁한 묵야의 성기가 구멍 끝에 걸쳐졌다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처음보다 더 긴 시간동안 안을 탐하는 묵야는 쉽사리 사정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삼키지 못한 침이 묵야의 어깨를 흥건하게 적셨다. 묵야가 퍽퍽 때려 박으며 고개를 돌려 내 귀를 잘근잘근 씹었다.

“이주인. 내 이름 불러봐.”

“아아! 아아아!”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자 아득하는 소리와 함께 귀가 더 세게 깨물렸다. 뿌리까지 처박힌 성기가 뱃속에서 꿈틀댔다.

“묵야! 아아! 묵야!!”

혀까지 딱딱하게 굳어버려 발음이 질질 샜다. 묵야가 나를 안은 자세 그대로 침대에 드러눕혔다. 푹하고 들어온 성기가 중앙을 가로지르지 못하고 무방비하게 조이기만 했던 내벽의 오른쪽 살을 밀어냈다. 시큰시큰한 감각 때문에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묵야는 계속 그 지점을 쑤시며 뺨이며 입술이며 할 것 없이 키스를 퍼부었다. 아무리 물밖에 없을 지언즉 토를 했기 때문에 더러우니 그만두라 하고 싶었지만 이미 말은 나오지 않았다. 묵야가 다시 배 안 깊숙이 사정을 시작했을 때 드디어 정신을 놓고 말았다. 뱃속을 흘러내리는 정액이 꿈틀대는 뱀처럼 길게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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