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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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아침에 먹은 해장국을 화장실에서 다 게워냈다. 부검실에 토막 난 조각이 맞춰진 채 누워있는 시체를 처음 마주한 것까지는 좋았다. 문자를 찾아내는 3분도 안 되는 시간이 3시간만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입을 막고 뛰쳐나가는 나를 부검의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토막 난 시체는 오히려 비현실적이어서 징그럽진 않았지만 풍겨나는 악취가 참을 수 없이 고약했다. 멀건 위액만 나오도록 전부 게워낸 뒤에야 세면대에서 입을 헹궜다. 태형 형은 시체 냄새에 익숙한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만 나를 지켜봤다. 차라리 화장실의 구린 냄새가 향기로울 정도였다.

“전부 확인했어?”

태형 형은 짧은 시간동안 내가 다 확인을 마쳤는지 묻고 있었다.

“네.”

올라오는 토기를 가라앉히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토막 난 시체에 팔뚝에 문신처럼 ‘K3’가 붙어있었고, 심장 부근의 오른 가슴엔 ‘묵야’라는 글자가 있었다. 어쩌면 유진의 예감이 맞아떨어지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K3, 묵야. 이 두 단어였어요.”

“이번도 K3와 연관된 건가?”

“그럴지도, 아닐지도 모르죠.”

“다른 건 없었어?”

“네.”

태형 형은 다시 확인해주길 바라는 눈치였으나, 더는 무리였다. 어서 국과수를 벗어나고 싶었다. 건물 전체에서 요동치는 검은 문자와 악취들이 내 정신을 좀먹어가고 있었다. 형은 창백하게 질린 나를 보더니 서둘러 건물을 나왔다.

“괜찮아?”

“괜찮아요, 좀 있으면 가라앉혀져요.”

형의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이제야 살 것 같았다. 형의 어깨에 붙은 ‘자살’을 터뜨려서 없앴다. 부검실을 떠돌던 문자가 형에게 달라붙은 듯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문자는 상성이 맞는 곳으로 이동하는 습성이 있다. 나쁜 기운을 가진 문자가 무턱대고 랜덤으로 붙어오는 것이 아니다. 즉,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자살′과 같이 그와 관련한 문자가 달라붙기 쉽다는 소리다. 하지만 태형 형에게 자살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형,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왜?”

급작스러운 내 물음에 형이 움찔했다.

“아니에요. 혹시 힘든 일 있거나 하면 말해주세요.”

“고맙다.”

형이 끊었던 담배를 입에 물고 차를 출발시켰다. ‘유진, K3, Kill’ 형에게서 문자들이 흡사 와르르 하다시피 쏟아져 나왔다. 연결이 되지 않는 단어들이었다. 형은 이미 내가 형의 생각을 읽었다고 판단한 듯 진지하게 말을 건넸다.

“K3의 약자가 뭔지 알아?”

“글쎄요.”

“Kill. 죽이다 라는 뜻이야.”

3이라는 숫자가 붙은 것을 보면 3번째 시험 작이라는 소리일 수도 있다. 

“이주율도 관련되어 있을지 몰라. 너 괜찮겠어?”

“네.”

“유진에게 듣자하니 묵야가 너희 집에서 신세지고 있다며, 살인은 아니지만 다른 건으로 묵야를 송환할거야. 그 때 너도 같이 있어주었으면 해.”

“형, 근데요.”

결국엔 말을 꺼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저 묵야는 못 읽어요.”

“뭐?”

태형 형이 차의 속도를 줄였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그 사람 단어를 생성하지 않아요.”

‘거짓말’ 회색의 단어가 나폴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그 단어를 없애진 않았다. 태형 형이 그렇게 생각하다면 아무리 없애도 소용없는 노릇이니.

“거짓말 아니에요 형. 제가 뭣 때문에 형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럼 그 남자도 너희 같은 능력이 있는 거야?”

“저도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제 생각을 읽거나 유진처럼 사이코메트리를 하는 것 같지 않아요.”

태형 형은 묵야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보다 더 당황하고 있었다. 

“주율이도 그렇대?”

“글쎄요, 그건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내가 읽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이주율 역시도 그 사람을 읽기란 불가능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주율이 패악을 부리겠지만, 능력 면에선 녀석보다는 내가 한 수 위였다. 이주율은 사람에게서 생성되는 문자를 하나도 빠뜨림없이 보지는 못한다. 만들어지는 문자중에서도, 그 중 강렬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들을 읽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낭패 가득한 태형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희한테 쫄면 사다주기로 했는데 깜빡했네, 주인아 너도 오랜만에 장희 얼굴 보고 갈래?”

“아니에요, 괜히 신경 쓰이게 하기 싫어요.”

얼마 안 있으면 아이가 태어날 텐데, 형수님에게 내 출현으로 하여금 부담감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문자를 읽는 내 능력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나와 마주하는 것을 반길 리가 없다. 태형 형 같은 사람 몇몇만이 특이한 사례일 뿐. 그래도 전부가 나를 내치는 세상은 아니니 그리 각박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집 근처 도로에 세워주세요. 걸어 들어갈게요.”

“그래.”

형의 운전 솜씨는 좋은 편이기에 멀미가 심하게 일진 않았다. 다만 뒤집힌 속이 엉망이 된 채 돌아오지 않을 뿐이었다. 이럴 땐 우유를 먹는 게 상책인데. 형수님께 안부 인사를 전해달라고 한 다음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명월 수퍼처럼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는 없으니 안심하고 500ml를 구입했다. 천원이 훌쩍 넘어가는 우유 가격에 혀를 내둘렀다. 날마다 고공 행진하는 물가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달려들었다. 우유팩의 입구를 벌려서 편의점에 배치된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편의점 직원이 무슨 해괴한 짓이냐는 눈빛으로 나를 주시했다. 속을 달래려면 차가운 우유가 아닌 데운 우유가 최고였다. 30초가 안되게 우유를 데웠다. 뜨끈뜨끈한 팩에 담긴 우유를 마시며 집으로 걸었다. 풍랑을 만난 배처럼 요란하게 요동쳤던 속이 한결 나아졌다.

거실 소파에 앉은 유진이 텔레비전을 틀어놓은 채 낄낄거리고 있었다. 너, 분명 오늘부터 호텔 간다고 하지 않았나? 빈 우유팩을 재활용 비닐봉지에 넣고 소파에 앉았다.    

“왔어?”

텔레비전 쇼프로에 집중하고 있던 유진이 웃는 얼굴 그대로 나를 반겼다.

“열쇠 내놔.”

“What? I don′t get it.”

유진이 히죽거리며 금발 머리를 쓸어 올리는 건방진 태도를 보였다. 

“기브 미더 키!”

한자 한자 또박또박 발음해서 손을 내밀었다. 유진이 쳇, 퉁명스러운 말투로 딸기가 달려있는 키홀더를 건네주었다. 

“나 내쫓을 거야?”

“놀러오는 건 좋아. 대신 미리 연락하거나 벨 누르고 정식으로 찾아와.”

“Ok~.”

유진이 알아들었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간절기용 재킷을 벗은 다음 욕실로 향했다. 양치질을 하고 나오니 유진이 내 재킷을 만지작거리면서 헥헥거리고 있었다. 아니, 사실 그런 추접한 모습은 아니었다. 유진의 얼굴이 평소와는 다른 웃음을 짓고 있기에 싸한 한기가 돌았다. 다른 점을 찍어서 말할 순 없지만 어리고 순진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뭐해?”

재킷에 손을 넣고 음산하게 웃던 녀석의 눈동자가 경련했다. 눈뜨고 자다 일어난 사람 같기도 했다. 유진이 사이코메트리를 하던 중이라고 확신했다. 

“뭐야, 별 거 아니었네. 죽인 다음에 토막 낸거래?”

“아니, 살아있는 상태에서. 정확한 사인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과다출혈로 사망한 게 아닐까 예상한다더라.”

말하고 있는 내 몸이 잘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종이에 베이는 생각을 해도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데 산 상태로 뼈와 피부가 잘려나갔다니. 화장실로 달려가 토를 했던건 악취뿐만 아니라 검시관에게 그 말을 듣고 난 후였다. 지금 내 팔 다리가 잘 붙어있는지 시선을 내리깔고 확인했다.

“음, 재미로 죽였나? 아니면 목적이 있어서? 어쨌든 재미있네.”

유진이 짓궂게 웃었다. ‘funny’ 진한 보라색의 같은 단어가 유진의 주변으로 세 개 이상 생성됐다.  

“살인사건이 끔찍하지 재미있냐?”

“형이 토한 건 끔찍했어.”

그것 까지도 봤단 말이야? 해장국을 게워냈으니 충분히 끔찍할만했다. 

“이번 건은 손 안 데려고 했는데, 따로라도 알아봐야겠네.”

“왜?”

“재미있으니까.”

지금 유진의 얼굴을 의태어로 표현하자면 생글생글이 제일 적당한 단어였다. 

“너, 호텔은 언제갈거야?”

“이주율 나가면.”

“뭐?”

“주인 형도 동생하고 둘이 있으면 위험하잖아.”

“그건 내가 걱정할 사정이고.”

이주율이 다시 한 번 덤벼든다거나 나를 폭행하면 바이크와 함께 사라지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이주율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내게서 생겨난 문자를 엿보았을 테니.

“한국 사람들은 이상해. 왜 그렇게 혈육관계에 목을 매? 형도 그렇구....”

“나도 한국 사람이니까.”

그리고 내게 남은 가족이라곤 이주율 하나였다. 녀석과 함께 해왔던 모든 시간들이 낭비였다고나 후회라고 생각지 않는다. 이주율이 없었다면 나 홀로 이 능력을 가지고 정상적으로 살아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자아 형성과 붕괴가 이루어지는 사춘기 시절엔 이주율을 통해 안식을 찾았었다. 우리는 가족과 동시에 동족이었다.

“시체에서 읽힌 것들은 있어?”

“똑같아.”

“같다는 말은... 묵야라는 글자만 읽혔다는 소리네?”

“아니 K3도.”

푸른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다. 내가 과연 진실만을 말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선이었다. 바다의 색을 띄고 있는 유진의 눈동자는 동양인의 검은색보다 깊어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계속 보고 있다 보면 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음, 마약 사건은 원래 큰돈이 오가니 살인까지도 가능하겠지. 형, 나 나갔다 올게.”

“나갔다가 안 와도 돼. 호텔가서 자라.”

유진이 징징거리면서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잔뜩 쳐진 눈썹으로 올려보는 것에 나도 모르게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더 예뻐해 줘.”

“아서라, 얼른 나가.”

“초인종 누를게.”

유진의 이마를 밀어냈다. 텔레비전의 전원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쾅, 하고 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거실바닥이 흔들렸다. 기운도 좋다. 저러다 언젠가 대문 박살내지 않을까 싶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죽 생각해봤지만, 묵야가 연관됐을 지도 모르는 사건에 관계되고 싶지 않은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손을 뗄까 하다가도 묵야라는 남자의 대한 궁금증 때문에, 쉽게 사건이 포기 되지 않았다. 만일 묵야가 깊이 관련되어 있거나 또는 묵야가 토막 살인범이라고 한다면? 눈앞이 깜깜했다. 호감이 가는 상대가 생겼는데 알고 보니 그 남자가 살인마였다는 비극은 맞이하고 싶지 않다. 

한눈에 봐도 묵야는 감옥체질이 아니다. 나도 감옥으로 면회 가는 체질은 더더욱 아니고.... 그러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차피 사건에 한 발 내딛었으니 한 시라도 바삐 움직여 문자들을 수집하는 게 급선무였다. 일단 묵야가 토막 살인 사건의 범인이 아니라는데 믿음을 걸고 싶다. 세상에 어떤 잔인한 살인자가 그 먼 곳까지 싱싱한 회를 사들고 온다는 말인가? 이만큼 내가 그를 생각하는 것을 보니 묵야의 회공세가 퍽 감동적이었긴 했나보다. 

유진에게 뺏은 열쇠를 내 방 책상에 던져놓고 밖으로 나왔다. 그 사이 위용한 자태를 자랑하는 내 바이크가 떡하니 인도에 서있었다. 새 것임이 분명한 타이어가 반딱반딱 거렸다. 타이어가 반짝 거린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휠이 더 눈부셨다. 무려 금장휠이었다. 싸구려 금색이 아닌 순도 100프로의 금을 녹여 칠을 한 마냥 색이 짙었다. 야마하 R6 몸체 위에 훌쩍 올라탔다. 보통 부르기 쉽게 알식이라고 말하는데 이 녀석은 그런 촌스런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대범한 바이크였다. 시동을 걸자 엔진까지 새 것으로 교체했는지, 과도한 흥분을 참으며 웅웅거리는 진동소리가 사타구니를 울렸다. 바이크에 성욕을 불태우는 변태는 아니었지만 그 자극이 나쁘지는 않았다. 

도로를 질러나가자 바이크가 참았던 신음소리를 발산하기 시작했다. 말을 타는 듯한 전경자세로 상체를 최대한 앞으로 숙였다. 핸들 바로 밑에 달린 냉각팬에서부터 따뜻한 바람이 나와 손을 달궈주었다. 어제보단 날이 춥지 않은 것을 보니, 바야흐로 바이크로 도로를 질주하기에 좋은 날씨가 도래하고 있었다. 본래 체감으로 느끼는 가속도는 실제 달리는 속도가 아닌 순간가속도에 의해 좌우된다. 자동차로서는 그 느낌을 완벽하게 경험할 수 없지만 이 녀석은 달랐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그 사실을 직접 이해시켜주는 것이 바이크다. 그래서 다들 속도감에 미치게 되는 것이다. 

에비스 호텔 건물이 보이자마자 클러치를 쥐었다. 속도를 줄여가며 호텔 지하 주차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하 3층은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접근금지 테이프가 둘러져 있었다. 떡대들이 지키고 있을 줄 알았는데 괜한 기우였다. 테이프가 둘러지지 않은 여유공간은 바이크 한 대 정도는 드나들 수 있을 법했다. 그 틈을 이용해 지하주차장 내부로 들어섰다. 평소엔 자동차들로 가득 찼을 주차장이 한산했다. 어디서 토막 시체가 발견됐는지는 안쪽에 한 번 더 둘러진 폴리스 라인을 보고 알았다. 주변에 핏자국은 없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긴 해도 주차하는 것이 최종목적인 곳이기에 문자들이 바글바글하진 않았다. 대게 남아있는 문자들은 카지노나 섹스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시체가 발견된 부근에서 눈에 띠는 단어가 있었다. ‘판매상’ 바닥에 넓적하게 붙어있는 그 글자를 들어올렸다. ‘판매상’과 함께 같이 딸려오는 글자가 있었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지 않았으면 눈치 채지 못했을 법했다. 투명한 색으로 넘실거리는 ‘보복’ 이란 단어였다. 판매상에 붙어있는 보복이라……. 흩어진 퍼즐을 짜 맞추듯 생각을 정리했다. 신종마약 K3를 유통시킨 것은 사파였다. 피해자인 카지노 팀장이 K3의 판매상중 하나였다면, 그가 보복을 당할 일이 뭐가 있을까? 혹시 K3 과다 복용으로 후계자가 죽은 전성그룹의 복수? 보란 듯이 시체를 토막 내서 에비스에 버린 점을 들자면 그럴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런데 왜 토막난 시체에 묵야라는 단어가 남아있었을까? 

순간 무릎을 급히 일으켜 세웠다. 건물로 통하는 비상구가 열리며 두 사람 이상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차장의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내게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피해서 숨어야 할 이유는 두 가지나 됐다. 첫째, 나는 폴리스 라인을 침범해온 일반인이고 둘 째, 이곳을 운영하는 자들이 바로 조폭이기 때문이다. 기둥에 찰싹 붙어서 귀만을 세웠다. 그 중 한 남자의 목소리는 익숙했다. 얼굴을 보지 않아도 중저음의 듣기 좋은 음성이 누구의 것인지 알았다. 묵야.

“토요일까지 정리되니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묵야가 누군가에게 안심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고개만 살짝 내밀어서 확인할까하다 그만두었다. 괜히 걸려서 치도곤을 당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내 쪽으로 다가오는 무리를 피해 네모난 기둥의 다른 면으로 이동했다. 저들끼리 이야기하는데 정신이 팔려있기에 내가 엿듣고 있는 것은 모르는 눈치였다. 

“시선이 쏠리는 것은 사양이다. 믿고 있으니 잘 처리해. 전성그룹 아들놈 새끼 죽은 것도 복잡한데 별일이 다 생기는군.”

“경찰보다 먼저 찾아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쇼.”

가래가 끄는 듯한 늙은 남자의 음성에 묵야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답했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토막 살인에 대해 사파는 별 관련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카지노는 토요일부터 운영 재개하나?”

“예, 이전무에게 듣기론 그렇습니다.”  

“그래, 수완이 좋은 녀석이니 알아서 하겠지.”

카지노 이전무라면 이주율을 뜻했다. 동생에 대한 성정을 생판 모르는 타인에게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그들의 대화는 거기서 종결됐고, 차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재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고양이보다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더 바싹 기둥에 붙었다. 누군가 차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테이프를 제거하는 중이었다. 검은 세단이 도로를 누비는 것처럼 빠르게 빠져나가고 다시 비상구 쪽으로 남은 남자들이 이동했다. 그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기둥 이리저리를 오갔다. 드디어 비상구 문이 닫혔다. 안심이 섞인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간이 작은 편은 아니지만 심장이 두근거렸다. 손에 쥐고 있던 두 개의 문자가 무사한지 확인하곤 주머니에 넣었다.

“고양이, 이리 나와.”

기둥 반대편에서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게 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으니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내가 아는 고양이는 회를 좋아하던데.”

묵야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기둥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여전히 먼지 한 톨 붙지 않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내 쪽을 바라보며 서있었다. 정장을 입은 남자를 보고 섹시하다고 느낄 일은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한쪽 입 꼬리를 슬쩍 올린 묵야를 보고 그 생각을 정정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묵야가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빼서 검지를 들었다. 시선을 이동해 그가 가리킨 방향을 봤다. 그 끝엔 내 바이크가 떡하니 세워져있었다.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하지만 묵야가 이런 기가막힌 타이밍과 함께 주차장에 모습을 드러낼 줄은 몰랐다. 

“여기는 무슨 일로 왔지?... 아, 경찰일인가?”

도박을 하러 왔다는 오해를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도와줄 거라도 있나?”

“아뇨, 볼일은 끝났어요. 이제 돌아가려구요.”

“그럼, 회 먹으러 갈까?”

달콤한 음성과 감칠나는 회맛의 기억이 어우러져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 그럴까요?”

묵야에 내게 손을 내밀었다. 손잡고 가자는 뜻인가 싶어 경악스러웠다. 계속 내밀고 있기에 반사적으로 묵야의 손바닥 위에 내 손을 올렸다. 묵야가 내 손가락을 꽉 쥐었다.

“이 손도 좋긴 한데.”

묵야가 다른 쪽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바이크 열쇠.”

“네? 왜요?”

“내가 네 뒤에 타고 가는 것보다, 네가 내 뒤에 타는 게 알맞은 그림이지 않을까?”

“묵야씨 차 없어요?”

“너 멀미 심하잖아.”

여자나 고양이로 불릴 만큼 작거나 보호를 받아야 할 여리여리한 체형은 아니지만, 이런 식의 배려는 묵야에 대한 내 감정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바이크 탄 본 적은 있어요?”

“물론 있지.”

“언제요?”

날 때부터 고급 세단이나 타고 다녔을 법한 묵야에게서 나온 답은 조금 신선했다. 

“아마.... 10년은 된 것 같군.”

“그럼 묵야씨가 제 뒤에 타는 걸로 하죠.”

묵야는 잠시 생각이 복잡하게 얽힌 반응을 취했다. 나를 어떻게 설득할까 고민하고 있는 듯도 했다.

“장소.”

“네?”

“갈만한 횟집 있어?”

회를 좋아하긴 해도 딱히 즐겨 찾는 횟집은 없었다. 혼자서 먹으러 가기엔 가격도 양도 과한 음식이기에 자주 못 먹는 사정도 있었고. 

“없긴 한데요.”

“괜찮은 곳을 알지.”

그러니까 바이크 열쇠를 어서 내놓으란 말씀? 바이크 뒷자리에 타본 적이 없어서 묵야에게 멀미가 있을 거란 공수표를 날리지는 못했다.   

“아니면 호텔은 어때?”

“네?”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묵야가 검지로 내려간 턱을 탁 닫아주었다.

“아, 회는 룸서비스가 안 되는군.”

진실과 장난기가 교묘하게 섞여있는 말투였다. 결국 묵야의 손에 바이크 열쇠를 올려주고 말았다. 묵야가 망설임없이 바이크 몸체에 올라탔다. 확실히 미관상으로는, 나보다 묵야가 윤기나는 검은털의 짐승에게 더 잘 어울렸다. 한국사람 평균 신장보다 커다랗기 때문인지 묵야는 바이크에 앉고도 발이 바닥에 닿았다. 그와 반대로 까치발을 해야 간신히 닿는 내 다리를 내려 봤다.

“뭐해?”

자기 비하에 빠지기 직전에 묵야가 다가오라며 손짓했다. 상황은 조금 불만족스러웠지만 뒤에 올라타 묵야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저도 모르게 순간 입 안이 침이 말랐다. 지금 내가 긴장을 하고 있나? 어이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단순히 손을 잡는 소심한 행위에 심장이 두근대는 십대 청소년도 아니고.... 그럼에도 쿵쾅거리는 가슴이 묵야에 등에 닿지 않도록 허리를 꼿꼿이 세워야했다. 묵야가 헬멧을 내게 씌워주려고 하기에 극구 거부했다.

“안전 운전만 하시면 필요 없어요.”

헬멧을 묵야의 얼굴에 씌워주었다. 폭주족 느낌이 나는 헬멧은 딱딱한 정장과 전혀 융화되지 못했다. 묵야의 헬멧을 탁 친 다음 출발하세요라고 말했더니 그의 몸이 조금 울렸다.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찬바람이 무방비한 얼굴을 내리쳤다. 묵야의 등에 옆으로 튼 얼굴을 한껏 기댔다. 묵야는 십년 만에 타는 것 치고 안정적인 운전솜씨를 발휘했다. 족족 걸리는 신호가 짜증났는지 일차선 도로인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뒤에 타는 것은 앞에서 직접 운전을 하는 것보다 좋게 말해 스릴이 넘쳤고, 나쁘게 말해 불안했다. 뒷자리의 거센 엔진의 울림과 함께 앞 사람에게만 자신을 의지해야한다는 불안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바이크에서 뒤에 탄 사람이 믿을 것은 오로지 운전자뿐이다. 유진이 하얗게 질려 겁을 먹었던 일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거꾸로 생각하면 유진이 내게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같다. 나 역시 묵야에 대한 신뢰감이 없었다면 차라리 멀미나는 그의 세단을 타고 갔을 테니. 묵야의 허리를 세게 감자 바이크 속도가 빨라졌다. 옆으로 보이는 도로변의 가로수들이 휙휙 스쳐지나갔다. 

언덕을 오르자 서울 시내가 보이는 둔덕이 나타났다. 복잡한 서울에서 이런 한적한 곳이 있다니 놀라웠다. 한정식 집과 오리고기집들이 즐비한 길을 달리며 다시 둔덕을 내려가는 도로가 시작되는 곳쯤에서 방향을 틀었다. 쇼군이 살만한 지붕이 겹겹이 올려진 일본식가옥이 보였다. 일식집 한 번 꽤나 거창했다. 먼저 바이크에서 내리고 묵야도 벗은 헬멧을 핸들에 걸었다.

“엄청 크네요.”

“내부는 그렇지도 않아.”

“안에는 쇼군이 살고 있나보죠?”

웃으라고 한 소린데 묵야가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쇼군? 가게 이름은 긴자인데?”

“아뇨, 일본식 이런 가옥에는 쇼군이 살지 않을까 해서요.”

“이건, 절을 본따 만든 게 아닌가?”

묵야는 각 층마다 기와가 덮여진 6층 목조건물을 올려봤다. 우리나라 전통 가옥에도 문외한이다시피 하는데 옆 나라인 일본까지 꿰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당연히 확인을 바라는 묵야의 물음에 답해줄 지식이 없었다. 사실 그게 중요하랴, 회 맛만 일품이면 충분하다. 

미닫이문이 양쪽에서 열리며 기모노를 입은 여성 두 명이 허리를 잔뜩 굽혔다. 긴 복도의 끝에서 게다를 신은 중년여자가 바삐 걸어 나왔다. 잔머리 한 올 남기지 않고 머리카락을 위로 틀어 올린 여자는 꼭 옛날의 엄마를 떠올리게 했다. 겉으로 보기엔 완벽했지만 속은 엉망이 되어있던 여자. 사실 닮은 것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에 강박증이 있다 싶을 정도로 머리를 틀어 올린 것밖엔 없었다.

“어머나, 오셨어요? 미리 언질을 주셨으면 마중을 나갔을 텐데요.”

여자는 내 어깨 너머를 흘끔거렸다. 다른 일행이 있나 확인하는 중이었다. 

“사회장님께서는?”

여자가 원하는 손님은 내가 아니라 사회장이라는 자였나 보다. 사회장, 사회장. 혹시 사파의 우두머리? 사씨가 흔치 않음을 알기에 확신했다.

“늘 회장님과 같이 오라는 법은 없지.”

“호호, 그렇죠. 요새 하도 뜸하시기에 혹여 직원들이 실례를 한 게 아닌지 걱정이 돼서요.”

여자는 입을 가리고 웃는 채로 뒷걸음질을 했다. 다시 손을 내려 안쪽으로 안내를 해드리겠다며 우리 앞을 걸었다. 일자형의 긴 복도 바닥엔 바다를 헤엄치는 몸통 긴용이 꿈틀댔다. 끝나지 않는 용의 몸체를 따라가며 용의 몸에 달린 발의 갯수를 세어보았다. 20쌍이 넘었다. 어디까지 가야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인내심이 바닥났음 즈음 눈앞의 장지문이 활짝 열렸다. 그 안에는 만한전석를 차려야 가득찰까한 거대한 식탁이 놓여있었다. 좌식의자의 안으로 다리를 내려놓을 수 있는 다다미 바닥이 있었다. 이곳의 주인은 심각한 수준으로 용을 사랑하는지 식탁과 좌식의자에서도 전부 용무늬가 꿈틀거렸다. 반대편에 앉은 묵야가 내게 메뉴판을 내밀었다.

“먹고 싶은 것으로 주문해.”

메뉴판을 내려 보는데 가격이 전혀 적혀있지 않았다. 얼마나 비싸기에 가격까지 생략한단 말인가? 이미 더치페이를 하기로 한 마음은 굳혔으니 이왕 먹는 거 즐겁게 먹기로 했다. 벚꽃 무늬가 수놓아진 메뉴판엔 이름도 생소한 회들이 적혀있었다. 한국사람 상대로 하는 가게에 웬 일본어란 말이냐? 쓰게 웃으면서 묵야쪽으로 메뉴판을 밀었다.

“회면 충분해요.”

밖에서 대기 중이던 기모노 아가씨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매우 불편했다. 이 남자에게 지나칠 정도의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나는 이런 고급 요정을 닮은 횟집보단 가족적인 분위기의 일반 횟집이 더 좋았다. 주문을 마친 묵야가 진지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옮길까?”

내 굳은 표정의 이유를 간파해낸 묵야가 일어설 채비를 했다. 

“아뇨! 주문도 마쳤는데 먹고 가야죠.”

“내가 아는 횟집은 이곳 뿐이라…….”

묵야가 다른 횟집을 떠올리는 듯 말꼬리를 늘였다.

“여기가 싫다는 건 아니구요. 저한테는 좀 부담스러운 가게 같아서요.”

“나도 그래. 한 대 펴도 될까?”

그럼요, 나도 딱 피고 싶은 찰나니까. 서로 담배를 물고 앉아있는 것이 영화에서나 봐왔던 야쿠자들의 집회 같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묵야씨는 회 좋아해요?”

“나쁘진 않아. 일 때문에 필요이상으로 자주 찾곤 하지만.”

잠시 잊고 있었다. 묵야가 조폭 중에서도 높은 직급을 가진 남자라는 사실을. 일반적인 횟집에 어깨들을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일에 관련된 이야기도 마약이나 카지노가 주를 이룰 텐데 이런 은밀한 장소가 제격인 법이겠지.

“그럼 무슨 음식 좋아해요?”

“네가 끓여준 된장찌개.”

웃음이 나왔다. 참으로 서민적인 남자다. 내가 끓인 된장찌개의 맛이 빈말로도 맛있다고는 못할 텐데. 

“지금껏 먹은 음식 중에 가장 훌륭했어.”

“생각보다 미각이 저렴하시네요.”

코스 형식으로 요리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회가 가장 먼저 상 앞에 대령됐다. 다섯 가지가 충분히 넘어 보이는 회종류가 만개한 꽃모양으로 만들어진 천사채 위에 봉긋하니 얹혀있었다. 흰 살결에 만지면 톡 튕겨져 나갈 것 같은 신선함이 가득했다. 대화가 주류인 손님들을 위한 가게인지 순식간에 식탁은 음식으로 가득 찼다. 중국 황제의 만찬은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소리는 이럴 때 하는 것이다. 전복과 성게알, 해삼, 뿔소라가 각각의 은접시에 담겨있었다. 막 따온 생굴은 그 자태만으로도 탱글탱글했다. 입맛을 돋우기 위한 고등어회, 갈치회, 한치회가 묵야와 내 앞에 두입거리는 될 법하게 놓였다. 쌈장에 갈치회를 찍어 깻잎에 쌌다. 입안에 넣고 씹자 배에서 갓 뜬 회를 품고 있는 듯 했다. 겉보기에만 그럴싸했으면 빛 좋은 개살구다 했을 텐데, 이건 빛도 좋고 속도 꽉 찬 석류 알이었다. 이것저것 하나씩 맛보자 묵야가 기분 좋은 듯 웃었다.

“맛은 어때?”

“최고네요.”

“다행이군.”

묵야는 굴조개 한두 개를 맛보더니 이윽고 내가 먹는 것만 쳐다봤다. 

“왜 안 먹어요?”

입이 짧은 묵야가 걱정되는 듯 물으면서도 젓가락을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다.

“식사한지 얼마 안돼서.”

“그래요? 그럼 괜히 왔네요.”

“아니, 먹을게.”

묵야가 느릿한 동작으로 회를 한 점 집어서 입에 넣었다. 알겠다. 이 남자는 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초고추장에 아예 푹 담갔다가 회를 먹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물론 나도 초고추장의 맛으로 회를 먹기도 하지만, 회의 흰 살점이 아예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초고추장을 묻히는 사람이 회 본연의 맛을 사랑한다고 보긴 어렵다. 

“회 안 좋아하죠?”

묵야가 약점을 찔린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좋아해.”

간장을 찍은 황돔 한 점을 묵야에게 내밀었다. 묵야가 눈을 내려 그 회를 보더니 내가 내민 젓가락을 입에 품었다. 씹지 않고 입 안에서 녹이듯 굴리는 모습에 확신을 더했다.

“회는 씹어 먹어야 제 맛이죠.”

짓궂은 내 말투에 묵야가 회를 꼭꼭 씹었다.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에 녹차를 내밀었다. 묵야는 하아, 한숨을 쉬더니 잔에 담긴 물을 한 번에 다 들이켰다. 

“네가 준 것만 아니었어도 뱉었을 거다.”

묵야는 회를 싫어하는 것을 이미 들켰으니 숨길 필요가 없다는 듯 굴었다.

“한 점 더 드릴까요?”

“사양할게.”

혼자서 먹기엔 양이 지나치게 많았다. 그렇다고 포장해가기엔 금세 상할 것 같고. 그것보다 묵야와 둘이 밥을 먹었다고 하면 이주율이 길길이 날 뛸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먹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먹어 위장을 늘려야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데로 갈 걸 그랬네요.”

“앞으론 좋아하도록 노력해보지.”

회를? 아니면 나를? 물어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동행한 사람은 먹지 않는데 혼자 먹고 있으려니 염치가 없었다. 물론 그 알량한 염치는 화려한 식탁 앞에서 점점 바래가고 있었지만. 버터가 버무려진 랍스터를 먹는데 묵야의 시선이 계속 내게 고정되어 있는 것이 거슬렸다. 왜 저렇게 쳐다보나? 싶을 정도였다. 녹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안에 남은 음식들의 잔해를 없앴다. 생각이 문자화 되지 않으니 그가 무슨 마음으로 나를 쳐다보는지 애로사항이 생겼다. 보통 사람이라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늘 맛 볼 것이다. 타인의 생각을 엿볼 수 없는 게 당연한 이치니까. 그가 나를 쳐다봄이 부담스러움과 동시에 신선하고 간지러운 감정이 섞여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해요?”

내가 남에게 생각을 묻다니. 태어난 이래 처음이었다.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답을 들을까하는 생각.”

“긍정이요?”

“사귀자고 했던 말, 자꾸 잊는 것 같은데?”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에요.”

이 남자와 있으면 내가 대단한 매력남이라도 되는 듯 했다. 

“아니, 사실…….”

꿈틀거리는 산낙지를 어금니로 오독오독 씹었다. 목구멍으로 넘기기 전에 묵야가 말을 이었다.

“자제력이 언제까지 발휘될지 자신이 없어진다.”

혼자 중얼거리듯 말하는 묵야였다. 묵야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의 절반이상이 성욕으로 물들어져 있는 것은 이미 알았다. 대한민국 평범한 남자라면 성욕과 애정은 딱 비례하는 관계일 것이다.

“사귀지 않고 자는 방법도 있잖아요.”

묵야는 인상을 설핏 찡그렸다.

“널 하룻밤 상대로 삼고 싶지 않은데.”

“하룻밤 말고 여러번 잘 수도 있구요.”

“그런 섹스 프렌드는 사양하지.”

“저도 묵야씨 좋아해요. 물론 거기엔 성적인 것도 있구요.”

생각보다 더 덤덤하게 말이 튀어나왔다. 

“근데 제가 지금 엮인 일이 아시다시피 에비스 살인사건이고, 거기에 묵야씨가 관련되어 있을 지도 모르고…….”

돌려 말하다가 입을 축였다. 역시 이럴 땐 그냥 직설적인 것이 편하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묵야씨가 만일 그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이면요? 전 그런 끔찍한 살인마와 성관계 할 생각도, 사귈 생각도 없거든요.”

말이 끝나자마자 하하하, 하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묵야가 재밌다는 얼굴로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늘 희미하게 웃을 뿐이지 딱딱한 얼굴만 하고 있어서 묵야가 저렇게 어린아이처럼 웃을 것이란 상상은 안 해봤다. 저렇게 보니 그의 나이보다도 한참 어려 보였다. 인상도 훨씬 부드러웠고. 무표정한 얼굴보다는 이쪽이 더 취향이다.

“아니야. 딱 잘라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

묵야는 여전히 휘어진 눈으로 내게 단언했다.

“음.... 장애물이 있는 사랑이면 더 불타오르려나요?”

“나는 이미 충분히 타오르고 있는데.”

이주율, 살인사건, K3 등등 장애물과 문제들은 지나치게 산재해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 남자와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나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사람들과의 평범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 수 없으면 하고 바래왔다. 오로지 순수한 신뢰를 바탕으로 연인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이들이 부러웠다. 내게 있어 신뢰는 가질 수 없는 꿈이기도 했다. 그런 내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남자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언제까지고 시간을 끌며 이 기대감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묵야는 내가 그토록 원했던, 당연하고도 평범한 사람의 관계를 이루어 줄 수 있는 남자였다. 

‘정열’ 타오르는 붉은색의 문자가 묵야에게로 향했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서둘러 그 글자를 손안에 가뒀다. 모기라도 잡는 행동에 묵야가 내 손을 주목했다. 대게 점쟁이들은 자신의 일은 점치지 못한다는데 왜 나는 내게서 생겨나는 문자를 볼 수 있는지 씁쓸했다. 정열…. 그것은 내 내부에서 맹렬하고도 적극적이게 일어나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주는 문자였다.

“참 특이해.”

“그럴 거예요.”

허공을 향해 손을 내젓거나 멍한 것을, 단순히 특이하다고 생각해주는 묵야에게 감사했다. 보통은 사이코나 정신병자로 알겠지.

“만나 볼까요?”

비록 후회만으로도 남을 관계가 될지도 모르지만, 평생의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이 기회를 놓치기는 싫었다. 남자는 카페에서도 그렇듯 충분히 나를 충동적이게 만들었다. 묵야는 내 답에 놀란 눈치였다. 내가 시간을 끌며 내숭을 떨거나 밀고 당기기를 할 줄 알았나? 굳이 그런 시간낭비를 할 필요가 있겠나 싶다. 

흔들리는 감정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나니 회 맛이 더 일품이었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독한 문자들이 싫어서 도시를 떠났는데, 도시의 남자와 사랑에 빠지다니. 이거 참, 사람일 알 수 없다는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 

“식사는 언제 끝나지?”

묵야가 조급한 듯이 테이블을 두드렸다. 긍정적인 답을 내뱉자마자 성욕을 불태우는 묵야였다. 나 또한 섹스를 언제 했는지 조차 까마득했다. 자위행위는 아주 가끔씩 하는 편이었다. 내가 수집해놓은 문자들이 순진한 빛으로 깜빡이는데 거기서 성욕을 해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아직 절반도 못 먹었어요. 이런 진수성찬을 버릴 순 없죠.”

“원할 때곤 언제든 사줄게.”

“얻어먹는 건 그다지 취향이 아니라 서요. 더치페이로 하죠.”

약간의 긴장과 설렘이 복합적인 형태를 띠고 찾아들었다. 다들 이런 기분에 연애를 하는 건가? 

“네 손에서 놀아나는 것만 같군.”

불현 듯 깨달으니 나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웃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야.”

“우리 알게 된지 일주일이 채 안됐죠?”

“그렇지.”

“저를 죽이지 않고 가는 대신 사귀자고 했구요.”

묵야는 자신이 그런 말을 한 것조차 잊어버렸다는 듯 시선을 위로 했다.

“고백하는 사람치곤 그리 훌륭하진 못한 말이었는데 저도 그쪽한테 끌리니 참 신기하죠?”

“정정하지. 네가 좋다. 그러니 너와 만나고 싶다.”

내가 원하는 말을 정확히 잡아서 건네주는 묵야라는 남자는 어쩌면 나보다도 더 남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능력자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좋습니다. 그런 얼굴로 고백하면 누구라도 넘어가겠죠.”

“얼굴?”

남자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별 자신감이 없는 듯 했다. 아니면 애초에 관심이 없거나.

“잘 생겼잖아요.”

“다행이군.”

묵야가 내 팔을 잡아 일으켰다. 들고 있던 젓가락을 놓쳐버렸다. 위가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더는 먹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회만 집었다 들었다 할 뿐이었으니. 

“하지만 얼굴은 네 쪽이 더 잘생겼다.”

묵야가 나갈 것을 종용했다. 내 외모는 못생긴 얼굴도 잘생긴 얼굴도 아닌 평범 그 자체였다. 마치 묵야의 망언 어록을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쉬운 눈으로 남은 음식들을 바라보며 밖으로 나왔다. 내 손을 잡고 복도를 걸어가는 묵야의 걸음이 평소보다 빨랐다. 애정과 성욕이 비례하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기에 거부할 의사는 없다. 지갑을 꺼내 계산을 도우려는데 묵야는 아무런 절차도 거치지 않고 화려한 가게를 빠져나왔다.

“계산은요?”

“내 소유야. 그러니 원할 때면 언제든지 와도 돼.”

입을 벌리고 6층짜리 목조건물을 올려봤다. 내가 한 평생 내내 열심히 돈을 모아도 가지지 못할 황금성이었다. 

“부자시네요.”

순수하게 놀랐을 뿐이다.

“원한다면 다 네 것이 될 수도 있어.”

이쯤에 이르면 현대판 신데렐라를 찍어도 될 수준이었다. 분수에 넘치는 제물과 복은 사양이다. 많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삶이 제일 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것은 돈과 사람 전부 마찬가지였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넘쳐흐르니 불행한 일이 가득했다. 바이크에 올라타 묵야의 허리를 붙들었다. 그의 배꼽 위로 뭔가 단단한 것이 닿기에 더 손을 위로 올렸다. 뒷주머니에 꽂아둔 휴대폰이 진동했다. 전화 올 곳이라곤 이주율, 유진, 태형 형 밖에 없었다. 몸에 느껴지는 진동은 곧 바이크의 엔진으로 가려졌다. 차가운 공기를 한껏 머금자 날아갈 것만 같았다. 나도 사랑이 하고 싶다. 내가 당신의 마음을 못 읽어도 좋으니, 단순히 신뢰만으로 구성된 순수한 사랑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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