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28)

#3

경찰청 앞에서 잡은 택시는 시트의 가죽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신차였다. 손님을 태운 전적도 많지 않아서 심각한 문자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주인 형, 뭐해?”

시작되는 멀미 때문에 한참 눈을 감고 있었더니 유진이 내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 골까지 울려대는 통에 눈뜨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여기서부터 라도 걸어갈까 하는데 순간이동을 한 것 마냥 집 앞에 도착해있었다. 살았다. 기다시피한 걸음으로 택시에서 내렸다. 신차 특유의 가죽 냄새 때문에 더 멀미가 심했던 것 같다. 

“괜찮아?”

“응.”

유진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내 등을 두드렸다. 먹은 게 삼각 김밥 하나라 나올 토사물도 없었다. 바지 뒷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다. 대문 앞이 휑한 게,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내 바이크!!!!!!”

대문 앞은 원래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과자 봉지 하나만 굴러다녔다. 이럴 수가! 경찰일 도와주면서 한푼 두푼 모아 구입한 내 바이크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누군가 트럭에 바이크를 실어간 것이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었다. 도심에서 자동차의 부품이나 바이크의 도난이 비일비재하다던데 내가 당할 줄이야. 바이크 내부 부품만 조각내 팔아도 수백은 될 것이다. 손에 힘이 빠져 열쇠를 떨어뜨렸다.

“어? 주인형 바이크 어디 갔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차라리 경찰청 주차장에 세워져있었으면 이런 도난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태형 형에게서 괜히 바이크를 찾아왔나 싶었다. 아무리 태형 형이 경찰에 몸담고 있다지만 허공으로 뜬 내 바이크를 찾을 순 없을 것이다.

“아스팔트로도 사이코메트리 가능해?”

난 바이크가 세워져있던 땅을 가리켰다.

“가능하긴 한데. 너무 복잡해. 이 도로를 이용한 사람이 수백, 아니 수만 명은 될 테니까. 거기서 형 바이크에 관련한 것만 찾는 건 바늘에서 백사장 찾기야.”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겠지. 미국인의 말실수 따윈 아무래도 좋다. 넋 놓은 사람처럼 힘없이 열쇠를 주워들었다. 파리 한 마리도 잡을 수 없는 사람처럼 힘들게 대문 열쇠구멍에 키를 꽂았다. 그나마 할부금이라도 끝나서 망정이지, 아직 갚을 돈이 남아있었다면 살인사건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바이크 범인 찾는데 혈안이 됐을 것이다. 세상은 좁다, 살다보면 도둑놈 정도는 만나겠지. 그 때까지 복수의 칼날을 갈아두겠다.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고 거실로 올라오자 유진은 뒤에 남아서 신을 나란히 정돈시켰다. 내 방으로 비척비척 들어가 씻지도 않고 침대 위에 누웠다. 누운 상태로 굼벵이처럼 몸을 이리저리 틀어 캐시미어 코트를 벗었다. 자자, 차라리 자고 내일 오전 늦게나 일어나자. 안 그러면 화병 생기겠다. 툭툭, 유진이 방문을 노크했다.

“들어와.”

“밥 안 먹고 잘 거야?”

“안 먹을래, 잘 거니까 문 닫아.”

문자들이 거실의 빛을 찾아 나가려 하기에 서둘러 말했다. 

“하긴 벌써 11시네. 형, 옆에서 자도 돼?”

“안 돼.”

“알았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꼭 저렇게 묻는 녀석이 이상했다. 마치 내게서 차가운 답을 듣기를 원하는 것만 같달까. 유진이 불을 꺼주고, 방문 까지 닫았다. 반짝이는 문자들이 저들끼리 뭉쳐서 밝은 빛을 만들어냈다. 이불을 머리꼭대기까지 뒤집어쓰고 빛을 차단했다. 내 기분을 위로하듯 이불 위로 올라오는 문자들의 빛이 간간히 감은 눈앞을 아른거렸다.

#

꾸륵꾸륵 거리는 소리에 배가 고파서 일어나니 창을 통해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문자들이 창문에 달라붙어 따뜻함에 몸을 부벼댔다. 귀여운 녀석들. 창문으로 손을 뻗자 녀석들이 내 손을 간질이며 달라붙었다. 하나 하나 떼어내서 다시 원래의 자리로 올려준 다음, 방을 나왔다. 소파 위를 보니 긴 장신의 남자가 옆으로 누운 채 쌔근대고 있었다. 묵야다. 소파의 길이가 부족한지 종아리부터 밖으로 삐져나와있었다. 옆으로 다가가 묵야가 누워있는 곳과 마주보는 소파에 앉았다. 자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깨어있을 때보다 더 어려 보였다. 예민해 보이는 성격인데도 피곤했는지 가죽이 마찰되는 소리에도 감은 눈이 미동하지 않았다. 묵야의 어깨로 무언가 검은 물체가 질척하게 기어올랐다. 커다란 거머리 같기도 했고, 문자들이 뭉쳐있는 덩어리 같기도 했다. 슬며시 다가가서 어깨에 붙은 것을 잡아 떼어냈다. 손 안에서 구기자 핏덩이를 터뜨린 것처럼 잔해들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흩어진 조각들이 다시 저들끼리 뭉치려 하고 있었다. 그것을 밟아서 없애버렸다. 대체 뭐지? 묵야를 카페에서 만났을 때 봤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하고 이불을 들어 묵야의 몸 이리저리를 살피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소파 앞에 쭈그린 채로 고개를 들자 잠에서 깬 묵야가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묵야의 하반신을 덮고 있던 이불을 든 상태로 굳어버렸다.

“대담한데.”

여전히 내 손은 묵야의 중심 위에서 떠있었다. 반사적으로 중심을 보자 여타 다른 남자와 다를 바 없이 묵야의 기둥이 바지 위로 꼿꼿하게 드러나 있었다. 절대 다른 의도는 없었는데 침이 꿀꺽 넘어갔다. 지퍼를 뚫고 나올 듯한 기세였다. 놀라서 이불을 휙 내려놨다. 묵야가 내 팔을 잡아 자신의 몸 위로 나를 쓰러뜨렸다. 철푸덕하고 엎어졌는데도 묵야는 아픈 기색 없이 허리에 손을 감았다. 내 목덜미를 잡아 자신 쪽으로 내리눌러서 입술을 맞댔다. 뜨거운 혀가 예민한 입안의 살점을 훑었다. 묵야는 내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고 뒤로 물러나는 내 혀를 더 깊이 탐했다. 이불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하반신에 닿는 묵야의 기둥이 딱딱했다. 허리를 눌러 비비자 내 성기도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묵야가 번쩍 일어나 나를 밑에 깔고 올라탔다. 커다란 손을 내 사타구니에 집어넣어 엉덩이 뒤의 구멍을 꾹 눌렀다. 이대로 누워있다간 큰일을 치룰 지도 몰라 묵야를 밀어냈다. 묵야가 물러나지 않아서 이번엔 몸을 비틀어 소파를 빠져나오려 했다.

“하고 싶다. 싫어?”

“그, 딱히 아주 싫은 건 아닌데, 사람이 있으니까.”

머뭇거리며 나온 답에 내 스스로가 놀라버렸다. 물론 싫지는 않다. 안방에는 유진도 있을 것이고, 건너 방에는 이주율이 있을 지도 몰랐다. 

“나는 상관없는데.”

묵야가 소파 밑으로 반쯤 내려간 내 상체를 끌어올렸다.

“저는 상관있어요.”

정신이 퍼뜩 들어서 묵야의 품을 빠져나왔다. 아침이면 성욕이 활발해지는 건 남자로선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묵야의 끈적하고도 섹시한 행동에 그대로 넘어갈 뻔했다. 묵야가 내 팔을 잡아끌어서 가볍게 입술을 맞댔다.

“아쉽군.”

묵야의 목소리에선 정말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묵야도 몸을 일으켜 소파에 똑바로 앉았다. 

“제 방에서 편히 잘래요? 아직 이른 시간인데.”

“아니, 충분할 만큼 잤어. 네 방에서 자다간 못 참을 가능성이 크고.”

묵야의 답에 어떤 표정을 지어줘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었다. 

“회를 사왔는데,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우지 않았어.”

“아~ 깨우지. 냉장고에 넣어놨어요?”

“아니, 바로 먹지 않으면 신선함이 떨어진다고 해서 버렸는데.”

그 아까운걸! 시무룩해지자 묵야가 자신의 옆에 나를 앉혔다.

“오늘은 저녁 시간 맞춰서 들어올게, 다시 사오면 되니까.”

“저녁내로 제가 들어올지는 모르겠어요.”

“왜?”

“에비스 토막 살인 사건 도와주기로 했거든요. 오후에 부검실에 가기로 했어요.”

“비위 약하지 않아?”

“그렇긴 한데. 어쩔 수 없죠 뭐.”

“무리하진 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할수록 참으로 기묘한 동거관계였다. 무협지로 따지면 정파와 사파의 조합이라고나 할까..... 오늘 유진이 호텔로 나갈 테니 묵야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테고, 이주율만 처리하면 됐다. 말하기가 무섭게 이주율이 제 방에서 걸어 나왔다. 트레이닝 바지만 걸친 채로 상반신은 탈의 상태였다. 그동안 운동을 꾸준히 했는지 복근이 탄탄했다. 기모 재질로 만들어진 저 트레이닝복은 내가 녀석의 18번째 생일에 선물해준 것이었다. 많이 입었으면 늘어났을 법도 한데 여전히 새 것처럼 반질반질했다. 이주율이 하품을 찢어지게 하며 내 옆에 털썩 앉았다. 세 명이 앉기엔 소파의 크기가 벅찼다. 내가 반대쪽 소파로 향하려 하자 이주율과 묵야가 동시에 내 팔을 하나씩 붙들었다.

“물 먹으러 가니까 이것 좀 놓지? 놓으시죠?”

반말과 존댓말을 할 상대를 번갈아 보며 손을 뿌리쳤다. 주방으로 건너가 냉장고에 있는 차가운 생수를 들이켰다. 빈속에 물이 가득 차니 뱃속이 더 꼬륵꼬륵 거렸다. 냉장고 안에 먹을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밖에 나갈 생각에 샤워를 하려 욕실로 향했다. 칫솔 통에 칫솔이 무려 네 개나 꽂혀있었다. 각기 색들이 확연히 달라서 칫솔이 헷갈릴 일은 없었다.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옷을 벗었다. 평소 샤워하는 버릇대로 양치질을 하고 머리부터 감기 시작했다. 샤워기의 물소리 때문에 이주율과 묵야의 대화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따뜻한 물의 느낌이 좋아서 계속 맞고 있자 이주율이 문 밖에서 소리쳤다.

“빨리 나와, 나도 씻게.”

하여간, 저 성질머리하곤. 고등학교 때는 샤워를 오래하는 나 때문에 녀석의 등교시간도 같이 늦어지곤 했었다. 그 때도 저렇게 빨리 나오라며 성화였다. 물기를 털고 옷을 입었다. 이주율이 이글이글한 눈으로 욕실 앞에 서 있었다.

“씻어.”

방으로 돌아가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갖춰 입었다. 나가는 길에 묵야의 코트는 세탁소에 맡길 생각이었다. 침대 시트를 정리하고 책장 구석에 끼어서 버둥대는 ‘밤이슬’까지 꺼내준 뒤 거실로 다시 나왔다. 이번엔 묵야가 씻고 있는지 트레이닝복을 완벽히 입은 이주율이 소파에 앉아 맥주를 먹고 있었다.

“아침밥도 안 먹고 술부터 먹냐?”

“왜? 걱정돼?”

“걱정돼. 너 위암걸리면 내가 책임져야 할 거 아냐?”

이주율이 기분 좋은 듯 웃었다. 이주율은 다 먹은 맥주의 허리를 손으로 구겨서 몸통을 얇실하게 만들었다. 욕실에서 머리를 말리고 나온 묵야의 머리가 단정했다. 그러고 보니 안방은 열려있는데 유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유진은?”

“몰라.”

이주율이 뭔 상관이냐는 듯 투덜댔다. 

“밥 먹으러 갈사람?”

내 물음에 답은 않고, 묵야와 이주율이 서로 코트와 점퍼를 챙겨 입고 나를 따라 나왔다. 커다란 두 남자를 데리고 집 근처의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해장국가게 부근엔 호빠나 아가씨들 룸이 많아서 전부터 장사는 잘됐다. 아침시간인데도 소주를 먹고 있는 테이블이 많았다. 온돌방과 식탁 두 종류가 있었지만, 신발을 벗기가 귀찮아 식탁에 앉았다. 이주율과 묵야를 나란히 내 반대편에 앉혔다. 

“해장국 세 개 주세요.”

여기 메뉴는 오로지 해장국 밖에 없었다. 게다가 1분이면 음식이 나오기 때문에 오래 기다려야 할 수고를 덜지 않아도 됐다. 나온 해장국에 밥을 말아서 꾸역꾸역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해장국의 맛이 일품이었다. 이주율과는 자주 왔기에 서로 입맛에 맞는 것을 알았지만, 묵야 역시 잘 먹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지노 팀장 죽었다며?”

밥 먹으면서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이주율에게 말을 건넸다. 이주율이 해장국을 떠먹던 것을 멈추고 물을 마셨다. 

“관계되지 마.”

“이미 도와주기로 했어.”

“그럼 그만 둬.”

“싫어.”

이주율의 밥숟가락이 내 쪽으로 날아오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녀석이 분노했다. 

“미친놈이 아니라 폭군이군.”

묵야가 덤덤히 해장국을 먹으면서 이주율에 대한 생각을 정정했다. 

“과찬이죠, 이사님에 비하면 말입니다.”

“밥 먹을 때 으르렁 좀 대지 말래?”

해장국이 얹힐 것만 같아 짜증이 확 났다. 내가 한번 체하면 며칠은 고생하는 것을 잘 아는 이주율이기에 입을 다물었다. 뚝배기의 바닥까지 드러내 보일 정도로 포식하고 배를 두드렸다. 먹는 것이 빠른 편이라 묵야와 이주율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지갑을 열어 계산을 하는데 묵야가 내 팔을 잡았다. 얼마 하지도 않는데 이정도 쯤이야. 현금으로 내서 계산을 마쳤다. 

“얻어먹어서 미안하군.”

“회 사오신다면서요.”

“그렇지.”

나란히 셋이서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갔다. 이주율과 묵야는 열린 대문 앞에서 들어오지 않았다. 

“안 들어와?”

“늦었어, 호텔 가봐야 해.”

트레이닝복을 입고 출근하겠다는 이주율이었다. 묵야 역시도 다른 볼일이 있어보였다.

“묵야씨도?”

“에비스는 아니야. 난 아버지와 약속이 있어서.”

“네, 그럼 오늘 하루도 수고들.”

미련없이 손을 흔들고 대문을 닫았다. 그 때 묵야의 손이 닫히는 대문 사이에 떡하니 꼈다. 깜짝 놀라서 문을 다시 열었다.

“잊을 뻔 했다.”

“네?”

“어제 네 바이크보니 타이어가 엉망이기에 사람시켜서 수리 맡겼어.”

걱정거리가 단박에 사라졌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바이크는 도난 당한 것이 아니라 정비소에 간 것이었다. 입가가 자제가 안 되도록 찢어졌다. 

“다행이네요, 전 누가 훔쳐간 줄로만 알았어요.”

“미안,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수리비 얼마드는지 알려주세요. 드릴게요.”

“괜찮아. 다녀올게.”

묵야가 대문을 닫아주었다.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배도 부르고, 바이크도 찾았고. 아 맞다, 오늘 아침 안 먹기로 했었는데 깜빡 잊고 있었다. 비위가 약한 편이긴 하지만, 설마 정말 토하겠어?……. 째지는 기분이란 게 바로 이런 거구나. 토막 시체를 볼 걱정 따위도 저 멀리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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