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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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하고 누군가 어깨를 치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일어났다. 꿈인가 싶어 눈을 비비는데 경찰복 세 명과 사복을 입은 태형 형이 앞에 서있었다.

“이 자식아, 용의자 가둬놓고 잠이 그렇게 오냐?”

“형 왔어요? 저기 안에 묶어놨어요. 확인 해봐요.” 

“도망갔으면 네 책임이다?”

태형 형이 주방 안쪽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용의자 녀석은 굼벵이처럼 기어서 도망가려고 했는지 꼴이 가관이었다. 장롱 앞에 깔려있던 이불이 문앞까지 끌려와있었다. 침을 겔겔 흘린 터라 이 겨울에 이불 빨래하게 생겼다. 태형 형이 손짓하자 경찰제복들이 녀석을 일으켜서 밖으로 질질 끌고 나갔다. 태형 형이 손님용 그루터기 의자에 앉았다.

“저건 왜 여기까지 굴러들어왔냐?”

“글쎄요. 아마 만만해 보이는 시골 가게에 보내놓고 잠잠해지면 찾아올 심산이었나 보죠.”

“그 놈이 마약을 여기로 보냈어?”

“네. 그러니까 여기까지 굴러들어왔겠죠.”

“마약은 어딨어?”

태형 형이 주변을 이리저리 둘렀다. 뭐, 고자질은 취미가 아니니까.

“어제 경찰복 입은 두 명이 와서 가져갔어요.”

“뭐?”

“어제 그 사람들도 경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네요?”

태형 형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웃었다. 그 앞에 오늘 볶아 가루를 낸 특상 급의 향이 풍기는 커피를 올려주었다.

“이자식, 알면서도 그냥 줬구나?”

태형 형은 내 이상한 특기를 알고 있는 단 한사람이었다. 나는 모호하게 웃으면서 커피를 홀짝였다. 

“복잡한 건 질색인 거 알잖아요. 형.”

“그래서 서에서도 나갔고 말이지.”

아직도 그쪽 세계에서 발 땐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지 태형 형이 궁시렁 댔다. 사실 발을 뗐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경찰 일은 조금 거들어 준 셈이니까. 그래도 그 때는 페이가 지금보다는 훨씬 좋았는데… 정신적으론 지금이 행복하니 물질적인 풍요보다 정신적인 풍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지금의 나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근데 얼굴만 놓고 보면 묵야보단 태형 형이 더 조폭에 가까운데. 눈썹 위에 일자로 찢어진 상처도 그렇구.

“누가 가져갔는데?”

“경찰복 입은 남자들이라니까요.”

“대충 알거 아냐?”

“그건 형이 알아봐야죠. 미안해요 형.”

“마음에도 없는 소리 지껄이지 마.”

태형 형이 열 받는지 커피를 원샷 했다가 그대로 뿜었다.

“앗뜨거! 야! 말을 해줘야지!”

“이 계절에 아이스커피가 어디 있어요? 당연히 뜨거운 커피지.”

얼음을 동동 띄운 생수를 앞에 대령해줬다. 태형 형이 그 컵 안에 혀를 푹 담갔다. 저 컵은 니코틴이 쩔어있을테니 평소보다 배는 깨끗이 씻어야지. 태형 형이 용의자가 끌려나간 문을 보며 쯧쯧거렸다.

“처음엔 마약 배달책이었는데, 약에 눈이 멀어 저 꼴이 난거지. 쯧쯧, 부모가 돈 줄도 아니고 약 살 돈 안 준다고 살해를 해버리니. 게다가 우리가 먼저 잡은 게 저 새끼한텐 다행이야. 저 놈이 배달했어야 할 마약을 빼돌려서 사파 패거리들이 저 놈 찾겠다고 난리가 났지 뭐냐? 그 놈들 손에 잡혔으면 그냥 끽이지. 요새 새끼들은 정신이 돈 놈이 왜이리 많냐?”

“그러게나 말이에요.”

내 예감이 대충은 맞았다. 저 고딩 녀석이 마약을 빼돌려서 우리 가게로 보낸 것. 하루만 빨랐어도 용의자 녀석은 어제 마약을 찾으러 온 덩치들에게 죽임을 당했을 지도 모르겠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넌 계속 여기에 있을 거야?”

“특별한 이유 있지 않으면 그럴려구요.”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그 능력도 좋은 일에 발휘되는 거지. 숨겨서 뭐하냐? 그리고 봐라, 너 아무리 촌구석에 박혀 살아도 꼭 이런 사건들에 연루되잖아.”

그러게나 말입니다. 속으로 푹 한숨을 쉬었다.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서 사건 사고가 워낙 많이 터진터라 시골로 오면 잠잠할까 싶었는데 딱 일 년 반 동안만 조용했다. 형 말대로 어딜 가든 소용이 없는 게 아닐까 염려가 됐다. -딸랑딸랑- 용의자를 연행한 경찰들이 다시 들어오나 했더니 의외였다. 아침에 서울로 올라갔다던 묵야가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묵야는 성큼성큼 이쪽으로 걸어와 태형 형 옆에 앉았다. 묵아갸 시골에선 볼 수 없는 젊은 남자인 태형 형을 흘끔 보더니 곧 보석함만한 상자를 내게로 들이밀었다. 태형 형도 옆에 앉은 묵야에게 자연스레 시선이 향하다 삽시간에 눈이 찢어질 듯 부릅 떠졌다. 태형 형의 주변으로 검은 형태의 글씨가 나타났다. ‘묵야’  태형 형도 익히 아는 얼굴인가 보다. 글자의 색을 보자니 굉장히 묵야를 싫어하는 기색이었다.

“너 이 새끼.”

태형 형의 욕설에 묵야가 인상을 찡그렸다.

“절 아십니까?”

“그럼 알고말고.”

태형 형이 자리에서 번쩍 일어섰다.

“형! 싸울 거면 나가서 싸워요!”

내 윽박에 태형 형이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묵야가 건넨 상자를 열자 빼곡하게 깔린 얼음 위에 탱글탱글하니 신선해 보이는 회가 올려져있었다. 이런, 정말 사오다니. 잠시 난감한 눈으로 묵야를 봤다. 묵야는 이글이글 거리는 눈빛의 태형 형을 무시하고 주머니를 뒤적여 또다른 무언가를 올려주었다. 초고추장. 저걸 주머니에 넣고 왔어?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너 묵야하고 아는 사이야?”

“네.”

“어제 경찰복을 입고 온 놈이 이 놈이지?”

형이 뒷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려는 자세를 취했다. 

“아뇨. 묵야씨는 정장 입고 왔는데요.”

“마약을 가져간 게 이 놈이 아니라고?”

“네, 가져간 사람은 경찰복을 입은 사람들이었어요.”

“경찰인가?”

묵야가 태형 형의 정체엔 별관심 없다는 듯 초고추장이 담긴 동그란 통의 뚜껑을 따주었다. 

“좋아한다며, 먹어. 회.”

회를 좋아하긴 하지만 태형 형의 눈초리가 예사롭지가 않아서 대놓고 식도락을 하진 못하겠다.

“젓가락은 가게에 있을 것 같아서 얻어오지 않았는데.”

묵야는 먹지 않고 아연하게 회만 바라보는 것이 젓가락 때문이라고 생각했나보다. 태형 형이 송곳니를 드러내 보이면서 나와 묵야를 번갈아 노려봤다.

“형도 먹을래요? 묵야씨도 먹어요.”

수저통에 담긴 젓가락 3쌍을 준비해 앞으로 내밀었다. 형은 삐진 곰처럼 입을 한댓발 내밀고 있었고, 묵야는 좀 전부터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아무 말 없이 상대 쪽의 말만 듣더니 마지막으로 그래, 지금 가지. 하며 전화를 끊었다. 오자마자 가려는 모습에 괜히 회가 좋다고 말했나 싶었다.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했다. 묵야가 아무 뜻도 없이 내게 회를 사다줬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맛있게 먹어. 간다.”

“네, 가세요.”

“또 오세요가 맞지 않을까?”

“그럼 또 오시구요.”

묵야는 시키는 대로 말하는 내 태도가 대단히 흡족한 듯 했다. 저 남자에게선 왜 생각의 사념들이 글자로 떠오르지 않는지 다시금 궁금함이 들었다. 혹시 한글을 모르는 것은 아닐 테고. 아니지, 그럴 수도 있다. 휴대폰 문자를 부하가 대신 보내줬었지 않나? 아니 이것도 아니지, 묵야가 직접 휴대폰에 자신의 이름과 내 이름을 저장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태형 형에게서 살기가 물씬 피어올랐다. ‘묵야, 쓰레기, 왜?, 읽지 마!’ 네 단어가 형의 주변으로 우르르 쏟아졌다. 나도 읽기는 싫은데 눈에 보이는 것 어떡하나.

“형, 회 먹어요.”

모르는 척 젓가락을 형 쪽으로 쭉 밀었다. 

“안 먹어. 대한민국 청렴한 경찰은 조폭 새끼가 가져온 청탁 물은 받지도 먹지도 않는다.”

“근데 이거 형한테 준 게 아니라 나한테 준 건데.”

“입에 들어가면 그게 그거야!”

“왜 그렇게 싫어해요? 조폭 한두 번 봐요?”

“한두 번 보는 조폭류가 아니니 그렇지.”

말장난을 맞받아치는 태형 형이 회를 쩝쩝대는 내 모습을 얄밉다는 듯이 봤다. 서울에서부터 한참을 왔을 텐데 회는 지금 배에서 잡아 올려 뜬 것만큼이나 신선했다. 근 이년만인가? 회의 쫄깃함과 초고추장의 시큼달달한 맛을 느끼며 입안에서 녹였다. 고마우니까 문자라도 보내놔야겠다. 회의 절반쯤 먹어치우고 검지 손 하나로 문자를 꾹꾹 눌렀다.

[잘 먹었어요, 너무 맛있습니다. 앞으론 사오지 말아요.] 

전화가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답문자가 왔다. 

[왜?] 

왜라니? 아아, 사오지 말라는 말이 왜냐고 묻고 있었다. 

[미안하니까요. 조심히 올라가세요] 

회를 다 먹을 때까지 답문자는 오지 않았다. 회와 문자 삼매경에 빠져서 있자 태형 형이 내 앞 테이블을 탁탁 쳤다. 

“손님 응대가 뭐 이래?”

“형이 왜 손님이에요. 나한테 신세지러 온 거지.”

“와, 세금밥 먹던 놈이 자영업자 되니까 조폭하고도 친구로 지내고 변해도 너무 변했네.”

넋두리를 하는 꼴이 얄밉진 않았다.  

“공무원도 아니었는데 무슨 세금밥이에요. 난 일한 만큼 거둬갔던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 친구 아니에요.”

“친구가 아니면?”

연인? 스스로 생각하고도 기가 막혔다. 연인은 무슨. 

“그냥 특이한 사람.”

“너한테도 특이한 사람이 존재해?”

“뭐, 좀 그래요.”

“하긴 그 놈은 누구에게나 특이하긴 하지.”

묵야에 대해선 나 역시 아무런 정보가 없기 때문에 태형 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타인에 대한 호기심을 제 3자에게 듣는 것이 이렇게나 흥미진진할 줄은 몰랐다. 읽히지 않으니 이런 재미도 있구나.

“뭐가 특이한데요?”

다 알면서 왜 물어? 라는 눈빛이었다. 묵야는 글자를 생성하지 않는다고 말할까하다 그만두었다. 묵야의 생각을 전혀 알 수 없다고 하면 아마 더 길길이 날뛸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 놈 사파 이거잖아.”

태형 형이 오른 팔을 불끈 쥐어가며 흔들었다. 오른팔이라 이건가? 사파라면 한동안 경찰 측에서 일할 때 자주 부딪혔던 조폭 무리였다. 카지노에서부터 물장사, 도박장, 골프장. 가릴 것 없이 수십 가지의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거물 조폭이다. 검찰에서 알아낸 연수입만 해도 300억을 육박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300억이니 마약이나 불법 물장사로 거둬들이는 돈은 그 배는 될 것이다. 사파와 관련한 사건이 터져도 피라미들만 감옥에 들어가니 윗대가리는 절대 잡을 수조차 없었다. 사파 회장의 오른팔이라면 뒷세계에서 잔뼈가 굵은 자일 텐데, 그러기엔 묵야의 나이가 너무 어렸다. 

“그 사람 스물일곱이던데요?”

“그렇지. 그래서 더 특이한 놈 인거야. 하늘에서 뚝 떨어지다시피 해서 사회장 오른팔이 된 거니까.”

사파가 사파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 조직의 우두머리의 성이 사씨이기 때문이었다. 네이밍 센스 한 번 저렴하다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혹시 사회장 아들 아닐까요?”

“설마 !…….”

태형 형이 화들짝 놀랐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의 핵심을 찌른 듯한 표정이었다. 그냥 내뱉은 말인데 저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맞다, 태형 형은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면 팥으로 매주를 쑨다해도 믿는 사람이었다.

“형형,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냥 내가 나오는 대로 말한 거니까.”

“말이 나와서 말인데 녀석한테 읽힌 정보 큼지막한 거 몇 개만 알려주면 안 돼?”

“안 돼요. 개인 프라이버시란 게 있는데. 그 사람이 사건의 용의자두 아니구요.”

경찰을 도와 일을 할 때도 확실한 용의자가 아니면 사람들에게서 생성되는 문자를 제공해주지 않았다. 생각하는 것들이 그대로 남에게 읽히는 것만큼 창피한 치부도 드물다. 묵야의 경우는 단순히 내게 읽히지 않는 거지만.

“야박한 자식. 선량한 시민 등쳐먹고 사는 조폭들 잡는데 일조를 해야지.”

“글쎄요. 전 조폭한테 등쳐 먹힌 적이 없어서.”

오히려 받았죠. 비어버린 회상자를 흔들었다. 안에 담긴 얼음이 녹아 주륵 테이블을 적셨다. 태형 형이 꼴좋다 라는 식으로 웃었다. 저럴 때보면 저 형도 참 애 같다니까. 남은 얼음을 싱크대에 와르르 쏟아버렸다. 초고추장은 요긴하게 쓰일 때가 많으니 냉장고에 보관하기로 하고, 회상자는 재활용 봉투에 투척했다. 

“형은 안가요?”

“아아, 박정해라. 이년 만에 보는 이 형을 내쫓고.”

“정확히는 일 년 반이죠.”

“경찰차와 따로 왔어. 용의자는 데려갔으니 난 좀 숨 돌려도 돼.”

“그럼 편하게 있다 가세요.”

진심을 담아 말했는데 태형 형이 번쩍 몸을 일으켰다. 꼭 방금 내가 한 말을 기다렸다는 표정이었다. 

“가라고 문전박대하면 더 있구 싶고, 있으라고 가면 가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야. 말만 고맙게 듣고 간다. 생각 있으면 다시 돌아오구. 대한민국 경찰이 해결 못하는 사건은 없지만 네가 있으면 매우 편하거든.”

자부심이 가득한 경찰께서 컬러링은 왜 그런 식이십니까? 짭새가 날아든다니요.

“모르겠네요. 일은 나름 재미있긴 했었는데, 리스크가 좀 커서요.”

형의 주변으로 ′회유, 부탁, 이주인,′ 세 글자들이 생성됐다. 글자들을 연결해서 유추해내지 않아도 감이 딱 왔다. 형이 다시 권유를 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았다. 경찰 일을 돕는 동안 얼마나 많은 피를 토했던가. 득음을 하는 단계로 따지면 무형 문화제로 백 년 전에 자리 잡았을 거다. 지독한 문자들은 그대로 놔두면 주변 이들에게까지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비비거나 발로 밟으면 문자가 없어지는 것을 알기에 지금도 버릇처럼 행하지만, 독한 심리를 품은 글자를 없앨수록 내 몸에 차곡차곡 쌓이는 독기운들은 피처럼 응어리져서 결국엔 밖으로 표출된다. 그나마 자체정화능력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었다. 

“일 꼭 안 도와줘도 되니까 다시 도시로 올라와. 이런데서 썩어 사는 거 보기 좋지 않다.”

“아직 싱싱하다니까요.”

“젊은 놈이 여자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고 해야지.”

“그러기 힘든 거 아시잖아요.”

능력을 숨긴 채 친구와 연인을 만든 적도 있었다. 역시나 관계는 늘 초반부터 엉망이 됐다. 속 편히 눈 가리고 아웅 한 채 살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태형 형과도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이유가 형이 겉과 속이 한결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조심히 올라가요, 형.”

“그래 고맙다. 덕분에 진급은 따 놓은 당상이다.”

“뭘요.”  

태형 형이 절반 이상이나 남겨놓은 아메리카노를 내가 마셔버렸다. 묵야가 가져온 생두는 내가 구할 수 없는 최고급임을 알기에 한 방울도 버리기가 아까웠다. 식어서 쓴 맛이 더해진 커피는 딱 내 취향이었다. 

타지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건 처음이고 또 형까지 서울로 올라가자 공허함이 밀려왔다. 텅텅 비어버린 카페는 창밖으로 보이는 겨울 산의 풍경만큼이나 싸늘했다. 사람이 싫지는 않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독한 문자와 읽기 싫어도 보이는 타인의 생각 때문에 껄끄러운 것뿐이다. 

인생의 첫 기억부터 문자들과 함께 했기에 처음엔 사람들 모두가 나처럼 떠도는 문자들을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뭉쳐있는 문자들이 먼지뭉치와 다르다는 걸 깨달은 것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다. 자주 허공을 응시하는 바람에 한동안은 사시라는 별명도 붙었었고, 귀신같이 남들 속마음을 알아차려 박수무당이라는 별명도 있었었다. 학생들에겐 한없이 선량한 선생이 실은 학생들을 쓰레기 보듯 생각했다는 것도 전교에서 나만 알았다. 그 선생은 아마 홀로 자신을 따르지 않는 나를 굉장히 불편해했었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욕하거나 한심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나만해도 때에 따라 겉과 속이 다르니까. 태형 형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너무 솔직한 거다. 솔직히 태형 형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오늘이 그 유명한 아무도 찾지 않는 산속의 카페 설정인가. 콜록.”

순간 기침이 나와서 손으로 막자 목 안에서 튀어나온 뭔가가 꿈틀댔다. 손바닥에서 꿀렁이는 글자를 보니 ‘재회’였다. 혹시 새벽에 입을 벌리고 잤나? 문자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입안에 담고 있었다니. 글자색을 보니 익숙한 보라색이 아니라 벚꽃 색과 흡사했다. 재회에 대해 두근거리는 상대방의 마음이 느껴지는 글귀였다. 누구 건지는 모르겠다. 녀석도 없애버리긴 아까워 허공에 풀어주었다. 나폴나폴 거리며 상성이 맞는 글자가 몰려있는 안쪽의 방으로 이끌리듯 들어갔다. 실은 독기가 가득한 문자를 없애는 이유 중에 하나도 저기 안에 있는 녀석들 때문이었다. 독기를 머금은 문자는 저런 예쁜 것들을 먹어치운다. 독기에 연약한 글자들은 제 몸들이 어둠에 녹아버리기 일수다. 

위이이잉-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휴대폰이 몸의 위치를 이동시켰다. 

[미안해할 것 없어 ^0^] 

묵야의 늦은 답문자였다. 이제는 이모티콘 공격이냐? 그가 바쁠 지도 모르니 전화하기도 뭐했다. 다행히 문자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웃음을 머금고 액정을 두드렸다. 

[문자 잘 못하시면 전화해도 되요. 부하 직원한테 대신 보내달라구 하면 좀 그렇잖아요.] 

발송을 누르자 편지가 묵야에게로 날아가는 모양이 됐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한 이삼 분을 보냈을까 답변이 왔다. 

[내가 직접 보내는 거다. 전화는 계속 할 수 없으니 연습하려고^0^] 

그럼 저 이모티콘은 또 누가 알려줬나 보다. 묵야의 주변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잘못된 예가 가득한 듯 했다. 아마 좋은 뜻의 이모티콘이라고 알려준 것 같은데, 남자가 남자한테 보낼 때 쓰기엔 좀 그랬다. 

[그래요. 일 열심히 하세요.] 

이번에는 바로 답장이 왔다. 

[응^0^] 

이모티콘 하나로도 사람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니 역시 문자의 힘은 존경스럽다. 묵야가 입을 벌리고 응~하고 웃고 있는 모습은 상상인데도 감히 상상이 안됐다. 평범한 사람과 전혀 다른 묵야의 침입은 그야말로 내게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말 호기심이 이주인을 죽일지도 모르는데……. 게다가 남자는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조폭의 오른팔이란다. 당신은 왜 다른 사람과 다른 거지? 태형 형 말대로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 건가? 

묵야와 같이 지낸다면 나도 평범한 사람이 되어 그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보이지 않는 마음에 전전긍긍하며 겉과 속이 다름에 상처 받을 않을 것이란 기대감에 사로잡혔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타인과의 평범한 관계는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심지어 부모와도 말이다. 인지하자마자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묵야와 했던 아무것도 아닌 대화들이 즐거웠던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교제를 신청하는 남자를 미친놈이라 몰아내지 않은 것도. 원하든 원하지 않던 내 자신이 묵야라는 남자에게 끌리고 있었다. 묵야는 도시를 피해 촌구석이라는 단단한 알속에 숨어있는 나를 찾아냈다. 운명적인 만남과는 거리가 먼 마약 사건에 연루되긴 했지만. 

도시가 아닌 이런 시골에 있어도 내 인생이 바람 잘 날 없다면 다시 도시로 나가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묵야도 매일 8시간을 걸려 왕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지금 내게 있어 순수한 관심의 대상은 묵야라는 남자뿐이다. 남자가 나타날 때부터 소곤대던 소리가 이제야 제대로 들렸다.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울림이 거세진 것이다. 

“두렵지도 않냐?”

스스로에게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묵야라는 남자의 존재가 무섭기도 했다. 그가 조폭이라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을 한 치도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내 능력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왔지만, 지금 와서 사라진다면 아마 더 깊은 인간 불신에 걸려 산속 절로 틀어박힐지 모른다. 내 능력이 제한된 묵야와 같이 있는다면 지금보다 인생이 즐거워지지는 않을까? 흔들흔들, 나는 갈대요. 그대는 바람이고. 나도 충동적인 성향은 아니라고 자부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묵야에게 문자를 넣었다. 

[제가 서울에 있는 게 좋겠어요? 아님 이곳에 있는 게 좋겠어요?] 

문자가 꼭 떠보는 느낌이 들었지만, 사실 이 가게에도 3할의 미련은 있다. 즉시 묵야에게 답이 왔다. 

[서울^0^]

저 이모티콘에 대해서도 시간이 나면 충고를 해줘야겠다. 위이이잉, 답문자를 보내려고하는 동시에 전화가 울렸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전화를 하지.

“네, 여보세요.”

“왜 그런 걸 묻지?”

묵야의 목소리가 듣던 이래 최고로 거칠었다. 

“슬슬 가게 접고 다시 도심으로 들어가 볼까 하구요.”

“왜?”

“묵야씨도 만나야 하구.”

우당탕탕, 뭔가가 요란하게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묵야갸 휴대폰을 떨어뜨렸던 것 같다. 뭐가 그리 동요할 일이라구.

“아직 안 끊겼지?”

“네. 잘 들려요.”

“살 집은 있어?”

“네,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은 아직 서울에 있네요.”

“아쉽군.”

뭐가 아쉽다는 건지는 묻지 않았다. 

“서울 올라가면 연락드릴게요.”

“이사 할 때 도와줄게.”

“아니에요. 어차피 짐도 별로 없어서 이사랄 것도 없어요. 카페는 팔리지도 않을 테니 방치해두고 가야죠 뭐.”

“언제 올라올 생각인데?”

“오늘? 아니면 내일?”

무책임하게까지 들리는 내 말에 묵야가 조금 느린반응으로 답했다.

“그래.”

묵야는 내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올라갈 거라 생각했는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너도 꽤 충동적이네.”

목소리에 웃음기가 얄핏하게나마 스며들었다. 

“네, 저도 그렇지 않다고 자부해왔는데 이상하네요.”

묵야가 했던 말을 따라하자 들릴 듯 말듯하던 웃음소리가 확연히 드러났다. 

“지금 데리러 갈게. 세 시간 정도 걸릴 거야.”

“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어요.”

“내가 하고 싶어. 먹고 싶은 건 없고?”

“네. 좀 전에 먹은 회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래, 그럼 끊자.”

“네.”

휴대폰을 끄고 제일 처음 빈 포대 자루 하나를 방으로 끌고 들어왔다. 나폴나폴 떠다니는 예쁜 문자들을 포대 자루 안에 끌어 담았다. 아직 낮이라 반짝거리지는 않았다. 흘린 것들도 몇 개 있겠지만 숨기 좋아하는 문자 녀석들도 있기에 눈에 보이는 것만 챙겼다. 그리고 분리수거를 해놓은 쓰레기들과 일반 쓰레기를 밖에다 내다버린 다음, 옷가지를 정리했다. 세 시간이면 가게를 깨끗이 하는데는 무리가 없을 거다. 가게에서 음식을 팔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다. 재료들이 남아있었다면 처지곤란 이었을 테니까. 볶지 않고 남은 생두까지 챙겨서 문 앞에 끌어다 놨다. 집에는 로스팅 기계가 없어서 직접 프라이팬에 볶아야 할지도 모른다. 커피를 원체 좋아해서 번거로워도 아마 그렇게 해먹지 싶다. 문득 내가 이 지역을 떠나면 가장 기뻐할 사람이 떠올랐다. 바로 묵야도 태형 형도 아닌, 택배 기사 아저씨였다. 

이런…. 바닥을 대걸레로 닦는데 무언가가 반짝했다. 용의자 녀석이 들고 있던 칼이었다. 형도 나도 뭐가 이렇게 엉성한지.... 픽 웃음이 나왔다. 청소에 정신이 팔려있었더니 벌써 저 밖이 어둑어둑했다. 투명 비닐봉지를 뒤집어서 손잡이를 쥐었다. 그 상태로 봉지를 다시 뒤집자 그 안에 칼이 얌전히 담겼다. 태형 형에게 전화를 연결했다. 새가 날아들고, 그 다음 짭새가 날아들기도 전에 형이 전화를 받았다.

“이주인군, 내 목소리 그새 듣고 싶었어?”

“형, 용의자 흉기 두고 갔어요.”

“뭐?! 야, 흉기 가지고 있다는 말은 안했잖아!”

“그건 그러네요. 어쨌든 좀 있다 서울 올라가면 바로 형한테 갈게요. 참고로 제 지문은 안 묻었어요.”

“서울?!”

침을 대량 투척했을 것이 분명한 고함소리였다. 

“너 서울 올라오게?!”

“네, 가려구요.”

“역시 네가 이 형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려 주는 구나.”

“꼭 그런 건 아닌데.”

묵야 때문이라고 말하면 만나자마자 저 흉기로 나를 협박할 것 같기에 입을 다물었다. 

“일단 올라와서 얘기하자. 나도 용의자 취조 중이야.”

“벌써요?”

“그렇지. 아 맞다 내가 웃긴 얘기 하나 해줄까?”

“만나서 들으면 안 돼요?”

“15초 내에 웃겨줄게. 그 용의자 새끼가 왜 네 가게로 마약 포대 보냈는지 알아?”

“글쎄요.”

“오지 마을 찾아서 마약 보낼 만한 곳 수소문 했는데, 딱 그 동네에 네가 운영하는 카페가 걸린 거지. 사전조사차 직접 찾아가 밖에서 지켜보는데 하루 종일 네가 허공만 이리저리 응시하고 있었다고 하더라구. 네가 시골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장님인 줄 알았대. 캬하하. 진짜 웃기지 않냐?”

별로요……. 형은 정말 15초도 안되서 저 긴 말을 다다다 뱉어냈다. 아마 고등학생 용의자 녀석은 손님이 없어 나폴거리는 문자들에게 정신 팔려있던 내 모습을 장님의 애처로운 눈빛이라고 생각했나보다.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형이 경박하게 웃던 웃음을 거뒀다. 민망해하는 게 뻔히 보인다. 거짓이라도 웃어줄걸.

“밤늦게까지 있을 거죠?”

“응. 얼렁 와 보고 싶어.”

“끊어요.”

-딸랑딸랑- 타이밍 좋게 가게 문이 열렸다. 휴대폰을 든 채로 모습을 드러낸 남자를 봤다.

“통화중이더라.”

“아, 네 지금 끊었어요.”

묵야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보였다. 하루 종일 잠을 못 잤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 놀리려던 건 아니지?”

“뭐가요?”

“서울 올라온다는 거.”

“네, 사실이에요.”

묵야는 가게 문 옆에 죽 늘여놓은 짐들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묵야가 가게 문을 열어놓은 채로 짐들의 제일 위에 올려놓은 포대 자루 하나를 힘을 주어 들었다. 포대 자루는 납작하지 않고 무언가 가득 차 있는 것처럼 통통했다. 아, 그건 아닌데……. 몸에다 잔뜩 힘을 줬던 묵야가 허리를 삐끗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 포대 자루에는 문자들이 들어있어서 무지 가벼운데… 묵야가 티가 날까말까하는 당황스러움으로 나를 봤다. 묵야에게서 글자들이 나오지 않아도 알겠다. 이건 뭐냐? 는 반응.

“아, 그건 그 뭐랄까. 집에 인테리어 소품으로 쓰려구요. 가볍다는 걸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묵야는 통통하게 공기가 들어간 포대 자루를 발로 밟아 푹하고 납작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문자를 생성해내긴 해도 없애지는 못한다. 묵야가 밟았더라고 하더라도 문자가 소멸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안심했다. 묵야는 광채가 번쩍번쩍하는 검은 세단 트렁크에 내 짐들을 실었다. 작은 화분까지 다 옮겨 넣고는 손을 탁탁 털었다. 아무래도 손이 두 개라 혼자 하는 것보단 빨리 처리가 끝났다. 여행용 가방에 꾸려놓은 옷을 뒷좌석에 내려놓는 것으로 가게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사실 완벽하게 떠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서울로 올라가는 것은 정말 충동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도록 커피 기계와 난방, 수도시설은 그대로 둘 생각이다. 묵야가 그런 내 생각을 나무라기라도 하듯 무뚝뚝하지만 다정하게 말했다.

“잘 해줄게. 후회하지 않을 거다.”

“글쎄요. 사귀자는 거에 대한 답은 아직 오케이 안 했어요.”

“서울로 올라가는 이유 중에 나는 없어?”

“아뇨, 있기야 하죠.”

겉과 속이 다른 게 바로 이거다. 서울로 올라가는 이유의 9할은 묵야 때문이다. 

“그거 꽤 기쁜데.”

묵야의 입가에 미소가 머물렀다. 순식간에 지워지긴 했지만, 잠시 넋 놓고 바라볼 정도로 다정해보이기도 했다.

“갈까?”

“네.”

안쪽 방으로 들어가 패딩 점퍼를 챙겨 입고 열쇠를 찾았다. 패딩 점퍼에서 툭 하고 ‘밤이슬’ 떨어졌다. 하늘거리는 그 글자를 잡아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드디어 찾았다. 이 녀석의 색은 검지만 특유의 반짝거리는 빛을 가지고 있어 놓치고 싶지 않은 문자였다. 워낙 겁이 많아 숨기 좋아하는 녀석이라 이렇게 나타난 것이 행운이었다. 두고간 물건이 없나 가게를 한번 쓱 두른 뒤 밖으로 왔다. 필요한 게 있으면 다시 돌아오면 되니 이제 출발해도 상관없었다.

 묵야가 세단 앞에서 담배를 펴고 있었다. 발목까지 오는 트렌치코트가 잘빠진 묵야의 몸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묵야는 운전석 문을 열어 담배꽁초를 차 안의 재떨이에 비벼껐다. 자연을 사랑하는 조폭이라니. 정말 신선하다.

 “왜 그렇게 웃어?”

 “재미있어서요.”

“뭐가?”

“글쎄요.”

 애매하게 대답하고 뒷자석의 문을 열었다. 묵야가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내 어깨를 잡아 뒤로 뺐다.

“뒷자석은 짐으로 꽉 찼어. 앞에 타.”

 뒷자석에 짐이라곤 내 옷을 담은 여행용 가방이 전부였다. 묵야가 조수석 문을 열고 고개를 까딱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자 ‘밤이슬’이 내 손을 피해 도망 다녔다.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내가 조수석에 앉자 묵야도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차안은 풀가동되는 히터 덕분에 훈훈했다. 묵야는 긴 코트를 벗어서 뒤좌석에 휙 던져놓고 안전벨트를 맸다. 벨트는 좀 답답하긴 하지만 묵야의 운전 실력이 어떨지 모르기에 일단은 느슨하게라도 맸다. 카페를 찾을 장주 할배가 마음에 걸렸지만 늦은 시간이라 언질을 넣고 가기에도 뭐했다. 아마 할배라면 드디어 내 카페가 망해서 도시로 올라갔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려가자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일반 고속도로에서도 멀미를 하는데, 덜컹거리는 산길은 오죽하겠냐만은. 창문을 열어 신선한 산 공기를 마시자 속이 한결 나아졌다. 그 귀한 회를 먹었는데 도로 뱉을 순 없지. 코로 공기를 양껏 들이켜서 입으로 천천히 뱉어냈다.

 “멀미가 심한 편인가?”

 묵야가 걱정스런 눈길로 내 얼굴을 훑어봤다. 어쩜 창백하게 질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산길이라 그래요. 도로로 나가면 괜찮아질 거예요.”

“헬기라도 가져올 걸 그랬군.”

“네?”

요즘 조폭은 헬기까지 타고 다니나보다. 하긴 눈으로 보이는 연수입이 300억이나 되는 직장에 몸담고 계시는데 당연할 지도 모른다.

“농담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농담이다. 라는 소리가 얼마나 안 어울리는지 묵야 본인은 모르는 듯 하다.

“서울 어디에 살아?”

겨우 산길을 벗어나 좁은 도로에 정착하자 지끈 거렸던 골이 가라앉았다. 짐 때문에 일단은 집부터 들러야했다. 형한테 가는 것은 그 후다.

“신림동이요.”

주소를 불러주자 묵야가 내비게이션을 가동시켰다. 라디오도 노래도 나오지 않는 차 안은 내비게이션의 친절한 목소리만이 침묵을 달랬다. 묵야의 차를 쭉 둘러보는데 떠다니는 문자가 단 한 개도 없었다. 문자가 없는 공간은 또 처음이라 왠지 모를 적막함이 들었다. 미우나 고우나 평생을 같이 해온 녀석들이었다.

 “서울가서 할 건 있어?”

 침묵을 고수해왔던 묵야가 듣기 좋은 음성으로 물었다.

“마냥 놀지만은 못하죠. 묵야씨는 무슨 일 하시는 데요?”

“착한 일로 말해줄까, 아니면 나쁜 일로 말해줄까? 네가 골라.”

묵야킨라비스써리원도 아니고.

“이왕이면 착한 일이 좋겠네요.”

“음…….”

묵야는 잠시 생각에 잠겨서 헤드라이트로만 비추는 아스팔트 도로를 응시했다. 눈동자만 돌려 나를 보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없는 것 같네.”

그럴 거면 왜 고르라고 했는데?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묵야와 이야기하면 할수록 당연하게도 저 남자에 대한 흥미가 새록새록 일었다.

“나쁜 일 하는 남자는 취향이 아니야?”

“꼭 편견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거 다행이군.”

좋은 차종이라 그런지 멀미가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다. 묵야의 차를 살펴보면서 느낀 거지만 말했던 대로 매우 청결한 남자였다. 자동차 내부에 사람의 손이 잘 닿지 않는 구석까지 먼지 한 톨 없었다. 차 안의 인테리어라곤 묵야의 전화번호가 적힌 주차번호판이 전부였다. 그것마저도 알루미늄 판에 딱딱한 글씨체였다. 

하이패스를 통과하며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점점 서울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묵야는 갓길 바로 옆 차선을 이용해 도로를 질러나갔다. 우리보다 속도가 빠른 자동차들이 앞을 휙휙 비껴갔다. 속도위반 카메라를 감지해주는 내비게이션이 있어도 묵야는 처음부터 일정한 속도를 유지했다. 몸이 뒷좌석에 찰싹 달라붙을 정도로 속도를 내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조폭에 대한 편견이 없다는 건(나도 몰랐지만) 그냥 예의상 한 말이었나 보다. 대게 봐온 조폭들은 언행이 거칠었고, 다른 이들에게 세보이고 싶어 하는 이미지가 있었다. 

묵야의 뒤쪽에서 자동차 한 대가 클락션을 울렸다. 고속도로에서 클락션을 울릴 일이 뭐가 있나싶어 사이드 미러에 비친 뒤차를 봤다. 묵야의 차종만큼이나 비싸보이는 외제차가 우리 뒤에 바싹 따라붙어서 헤드라이트까지 빛냈다. 세 개나 되는 옆 차선은 텅텅 비어있었으니 빨리 달리지 않는 묵야를 재촉하는 행동은 아니었다. 묵야는 그것을 무시하며 묵묵히 운전을 했다. 계속 울려대는 클락션 소리에 저절로 인상이 써졌다. 음주운전 하는 놈인가? 그 때 뒤의 차가 옆 차선으로 이동하더니 묵야의 창문 쪽으로 무언가를 던졌다.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확인은 못했지만 차 안에 모아뒀던 쓰레기인 것 같았다.

“아는 사람이에요?”

매우 불쾌한 짓거리에도 여전히 무표정한 묵야에게 물었다.

“아니, 모르겠는데.”

그 차가 속도를 올려 우리 앞으로 끼어들더니 끽하고 급제동을 해다. 묵야의 차는 앞의 차를 박기 직전에 멈춰섰다. 여행용 가방이 뒷좌석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앞의 차가 다시 속도를 올려 도로를 질러나갔다. 차선을 이동해서 갈 법도 한데 묵야는 계속 속도를 줄였다 올렸다 장난질 쳐대는 앞 차의 뒤를 달렸다. 속도가 제멋대로가 속이 뒤집혀버렸다. 내가 주먹을 쥐고 입을 틀어막자 그제야 묵야는 차선을 변경했다.

“미안. 멀미가 심한 걸 잊고 있었다.”

“저 앞의 운전자 취했나 봐요.”

“그런가?”

아무 흥미 없다는 듯 내뱉는 말투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우리가 이동한 차선을 외제차가 추월해와 또 똑같은 짓을 반복했다. 모르는 사람이 하는 장난치고는 악질적이었다. 묵야가 창백하게 질린 나 때문인지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뺨을 스쳤다. 이번엔 외제차가 옆 차선으로 이동해 우리와 나란히 달렸다. 제 집 안방도 아니고, 저 따위로 운전할거면 왜 면회를 땄는지 모르겠다. 기분이 저조해진 상태로 옆을 보니 내 또래로 보일 법한 녀석들이 낄낄거리며 욕설을 고래고래 질렀다. 먹고 있던 맥주병을 도로에다 그냥 투척하기까지 했다. 도심으로 나온 지 불과 몇 시간도 안됐는데 벌써 이런 놈들을 보다니. 순박하기만 했던 동네 사람들이 새삼 그리워졌다.

“야! 꼬우면 박아! 거기 존만이들~! 야야!”

외제차 조수석에 앉아있던 남자 하나가 고함을 지르며 묵야 쪽으로 맥주병을 날렸다. 달리는 차의 문에 부딪혀서 병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묵야가 갓길로 차선을 이동했다. 

“멀미 많이 나?”

“그냥저냥요. 제가 왜 시골이 좋은지 아시겠죠?”

묵야가 곤란한 듯 웃었다. 그리곤 갓길까지 따라온 양아치들의 차를 보고 급정차했다. 뒤의 차가 묵야의 뒷범퍼에 툭하고 부딪히며 급격하게 섰다. 묵야는 안전벨트를 푸르고 밖으로 몸을 뺐다. 나는 묵야의 갑작스런 행동에 불안한 눈으로 창문만 열어 목을 길게 뺐다. 묵야가 뒤차의 운전석 쪽으로 가더니 창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다시금 클락션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내 상상이 맞다면 아마 묵야가 운전자의 머리를 운전대에다 박고 있는 것 같았다. 곧 운전자의 몸이 창문을 통해서 이끌려져 나왔다. 묵야가 힘으로 빼낸 것이었다. 잘 보이지 않지만 녀석의 상태가 좋아보이진 않았다. 나도 급히 차에서 내려 묵야 쪽으로 다가갔다. 운전자였던 녀석의 코와 입이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꿈에 볼까 끔찍한 모습이라 눈살이 찌푸려졌다. 묵야의 거친 행동에 차 안에 있던 자들에게서 공포심을 읽을 수 있었다. 잘못 걸렸다라는 느낌의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신들의 친구인 운전자가 엉망으로 맞는데도 나와 보는 녀석조차 없었다.

“그만해요!”

내 고함소리에 뭐에 홀린 것만 같았던 묵야의 눈빛이 서둘러 제자리를 잡았다. 묵야는 운전자의 머리를 잡은 채로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봤다. 눈가가 슬쩍 경련하더니 묵야가 입술을 옆으로 끌었다. 비웃음이 아닌 뭔가 실수를 했다는 표정이었다. 묵야는 운전자를 보닛위에 내팽개친 뒤 손을 운전자의 옷에 닦았다.

“대신 자동차 수리비는 안 받지.”

묵야의 차를 보니 범퍼는 아주 미세하게  구겨져있을 뿐이었다. 물론 묵야의 차도 외제차지만 저 남자의 병원비가 더 나올 수준이었다. 묵야가 내 팔을 잡고 다시 조수석 쪽으로 이동했다. 초조해보이고 화가 난 얼굴이었다. 나를 조수석에 구겨 넣고 자신도 운전석에 앉았다. 묵야가 내 안전벨트를 단단하게 매주더니 급격하게 차를 출발시켰다. 가끔씩 엉뚱하고 귀여운 모습도 있지만 역시 조폭은 조폭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묵야를 잘 보지 못하고 휙휙 지나가는 도로만을 응시했다.

 “놀랐어?”

 묵야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그런 건 아닌데.”

“미안. 멀미도 심한데 그대로 내버려뒀으면 네가 더 힘들 것 같아서. 잠시 흥분했던 것 같다.”

 묵야의 말대로 좀 전의 그 차와 계속 씨름을 했으면 분명 차안에 토악질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맞아도 싼 것들이지만 피칠갑이 되도록 떡을 내준 것은 조금 심했다.

“폭력적이라 생각해도 좋아. 그래도 너한테는 아무 짓도 안 할테니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말아줬으면 좋겠군.”

 묵야가 후회가 가득한 눈으로 내게 진심을 전했다. 어차피 묵야가 처리하지 않았으면 그들에게 내 주먹이 먼저 나갔었을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양아치라는 족속들을 혐오했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 얌전했던 것만도 아니고. 한 때는 내 능력 때문에 마음이 빗나가서 폭력 사건에 휘말린 적도 몇 번 있었다. 그 때마다 경찰서에서 나를 빼내 준 사람이 태형 형이고.... 시비를 건 자들에게 주먹을 날리는 일을 참지 못했던 부끄러운 과거가 떠올라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무서웠어?”

 묵야가 손을 내밀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남자, 뭔가 크게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나를 그저 소심하고 연약한 남자로만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비록 폭력과는 거리가 멀게 생겼지만 겁이 많거나 싸움을 못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그 고등학생 놈도 제압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긴 묵야 역시도 그 용의자가 흉기를 들고 있던 것을 모르니......

 묵야의 손길이 너무 다정해서 한동안 그러고 가만히 있었다.

“무서운 건 아니에요. 그러다 죽으면 어떻게 해요. 전 깜빵으로 면회가는 취미는 없어요.”

“죽을 정도는 아니었어. 죽이려고 마음 먹으면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그건 그렇다. 묵야의 표정이 아까보다는 한결 밝아져 있었다. 깜빵으로 면회가기 싫다는 말에 기분이 조금 풀린 듯 했다. 농담은 아니었다.

“묵야씨. 조폭이죠?”

핵심을 찌르는 내 말에도 묵야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렇게 보이나?”

“보이는 건 아닌데. 오늘 낮에 태형 형 봤었죠? 우리 카페에서요.”

묵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형이 묵야씨를 알더라구요. 경찰이거든요. 묵야씨가 꽤나 유명하다고 하던데.”

 “그런가.”

묵야의 말투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남자가 흥미 있어 하는 대화는 오로지 나와 관련된 일인 것만 같았다. 솔직히 기분은 좋았다. 나 역시도 이 남자에게 지나칠 정도의 흥미가 있으니.

“저 아마 서울 올라가면 경찰 일 도울지도 몰라요. 카페 일 말고는 그것밖에 해 본적이 없어서.”

“그건 상관없지만, 몸도 안 좋은데 집에서 쉬는 게 어때?”

기운이 펄펄 넘쳐서 탈인데....아!내가 피를 토했던 것을 보고 아프다고 짐작하는 건가? 그 현상에 대해선 딱히 설명해줄 것이 없었다. 묵야에게 비치는 내 이미지는 창백한 얼굴로 피를 토하는 폐병 환자와, 도심을 피해 시골로 기어들어간 마음 연약한 남자일지도 모르겠다. 혹시 그 약한 이미지 때문에 내게 관심이 있는 거라면 매우 곤란한데. 원래 내 성격을 알면 질려서 떠나가는 거 아냐?

하, 벌써부터 이런 걱정이나 하다니. 묵야가 내가 싫어 떠나간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인데 서울까지 올라온 마당에 묵야가 떠난다면 꽤 상처받을 것 같다.

“생각보다 묵야씨 존재가 큰가 봐요.”

도로를 달리던 차가 휘청했다. 묵야가 잠시 놓쳤던 핸들을 단단히 잡았다. 이럴수가. 묵야의 얼굴에 약간의 화색이 돌았다. 저 남자 혹시 부끄러워하고 있는 건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자 무뚝뚝한 얼굴로 금세 바뀌어있었다. 단순히 착시 현상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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