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2. 선우의 스무 살, 첫사랑 (9/10)

외전 2. 선우의 스무 살, 첫사랑

스무 살의 끝 무렵, 선우가 지명을 받고 손님의 옆에 가 앉았다.

“제, 제가 사실 첫눈에 반했거든요.”

앉자마자 손님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여태껏 반했다 농을 던지는 손님들은 있었어도 쑥스러운지 눈도 못 맞추며 진심인 듯 말을 더듬는 사람은 없었다. 이건 뭔가, 했다.

“네?”

“너무 진부하죠?”

“네? 아, 아닙니다.”

신기한 사람이었다. 접대부를 앉혀 놓고 소개팅을 했다.

그는 대학 친구들과 클럽이나 몇 번 가 본 게 전부라 했는데,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접대부를 어찌 대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앉혀 놓고 한다는 게 호구 조사였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어디 살아요? 같은 거.

선우에게 물은 만큼 제 얘기도 했다. 이름은 김성훈, 나이는 스물넷, 직업은 대학생, 거주지는 서울이라고. 값을 치르고 산 접대부에겐 그럴 필요가 없는데, 예의를 차렸다.

성훈은 허우대가 좋고 인상이 부드러웠다. 모범생 이미지의 평범한 학생이 어떻게 노블레스에 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노블레스는 VIP만을 위한 전용 라운지라 아무나 받아 주지 않는 회원제였고, 회원이 아닌 이가 방문하려면 단순 입장료 명목으로만 큰돈을 지불해야 했다. 어중이떠중이가 일회성으로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왔다는 건, 잭팟이 터졌거나, 회원인 가족을 빽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팔았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보통들 그랬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선우는 대충 추측하고 말았다. 캐물을 입장도 아니고, 손님이 오면 온 거지 실례되는 질문을 할 수는 없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래. 그럼 너도 형이라고 해.”

선우가 당황하여 네? 하고 반문하자, 성훈이 웃었다.

그는 좀 따듯하게 웃어 주었다.

“난 사장도 회장도 아니라서 형 아니면 딱히 부를 말이 없을걸? 그럼 성훈 씨 할래?”

“아……. 형이라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

손님을 형이라 부르자 진짜 형이라도 생긴 것 같았다. 부르기만 해도 듬직했다.

“감사하긴 뭘.”

일절 터치를 안 하던 성훈이 손을 올려 선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선우는 그게 설레어서 당황스러웠다.

“술 많이 마셨어? 밤새 술 마시는 것도 힘들겠다. 마시기 싫으면 마시지 마.”

“아, 괜찮습니다.”

“속에 안 받는 거 같은데? 안 마시면 돈 못 번다고 혼나나? 흑기사 해 줄까?”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우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딱딱한 대답을 했지만 그의 장난기 어린 미소에 볼을 붉혔다.

시시콜콜한 대화가 이어졌다. 게임 이야기, 영화 이야기, 취미 생활 같은 걸 말했다. 술을 따르기 위해 앉은 주제에 연애질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대로 안녕, 하고 헤어지면 정말 간지러울 것 같았는데 관계를 하기는 했다. 돈을 냈으니 당연했다. 성훈은 쭈뼛쭈뼛 옷을 벗어 나갔다. 첫날밤을 보내는 연인처럼 내외했다. 그가 그러니 이미 발가벗고 멀뚱히 서 있던 선우도 어색했다.

“어……. 저기 있잖아.”

“네.”

“아프면 말해.”

그 말이 뭐라고. 선우는 그 한 마디에 성훈이 저를 창부로 보지 않는다고 믿었다.

***

성훈은 선우의 연락처를 알아 갔다. 둘은 서로의 시간을 쪼개 매일 전화기가 뜨거워질 때까지 통화했다.

성훈은 제 일상을 이야기했다. 밥 먹는다, 학교에 간다, 헬스장에 간다, 집에 간다, 특별한 동선이 아닌데도 그날그날 생긴 에피소드를 재미나게 풀어 말했다. 적어도 선우에겐 재미있었다. 누나 때문에 점심에 까르보나라를 먹었는데 칼칼한 전골이 땡긴다는 소리까지 다 웃겼다.

성훈은 선우에게도 일상을 물었는데 선우는 말할 수 없었다. 일상이 일뿐인데 제 일터에서 생긴 에피소드들은 하나같이 부적절하고 부도덕했다. 호감을 갖는 상대에게 말하기엔 수치스러운 내용이었다. 대신 과거를 이야기했다. 늘 자랑스러운 엄마나 할머니를 이야기했고 제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이야기했다.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제대로 만나 본 적도 없는데 어느새 보니 막역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관계를 다지다 성훈이 데이트 신청을 해 왔다.

선우는 주말에 카지노로 오겠다는 성훈을 만나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선우의 사정상 카지노를 멀리 벗어나면 안 되었고 오랜 시간 비워서도 안 되었다.

선우가 있나 없나 수시로 단속을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혹시 몰랐다. 말도 없이 멀리 갔다 무슨 일을 당할지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데이트 장소는 주차장이 되었다.

선우는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그의 차를 찾았다.

이왕이면 같은 주차장이어도 야외 주차장에서 햇살을 맞고 싶었는데, 성훈은 후미진 곳, 먼지가 수북이 쌓인 차들 사이에 제 차를 대고 있었다.

카지노의 주차장엔 그런 차들이 많았다. 차주들이 카지노의 지박령이 되어 버려 오래도록 찾지 않은 차. 보고 있노라면 아빠 차가 생각나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성훈이 저를 보고 손을 흔들기에 선우는 저도 모르게 굳혔던 표정을 풀었다.

성훈의 차는 번지르르한 스포츠카였다. 대화를 나눌 때 보면 겸손하고 수더분하여 딱히 부잣집 아들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대학생이 이런 차를 타는 걸로 보아 집이 잘사는 모양이었다.

선우는 조금 위축된 마음으로 첫 데이트를 시작했다.

성훈의 차 안에서 섹스했다. 사실, 그는 좀 아프게 했다. 함부로 하지 않을 뿐 잘하진 못했다.

선우는 아프면 말하라는 소리에 넘어가 놓고 등신같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 안이 좁아 그런 거라고 속으로 그를 변호했다.

아프고 불편했던 섹스 후에 그가 휴게소에서 사 온 김밥과 캔 커피를 먹었다. 그럼에도 불만스럽지 않았다. 제대로 된 데이트를 못 하는 건 저 때문이니까. 소박한 행복이라도 주는 그가 마냥 고마웠다.

데이트는 주말마다 이어졌다.

섹스, 김밥, 캔 커피. 늘 같은 패턴이었다.

데이트를 시작한 후로 성훈은 매일 하던 전화를 하지 않았다. 평일에 나누던 통화가 다섯 번에서 세 번으로, 세 번에서 두 번으로 줄었다. 그래도 만나기만 하면 애정 어린 말들을 쏟아 주었다.

-같이 조금만 힘내 보자. 형한테 부탁할 거 있음 언제든지 말해. 형이 도와줄게.

말이라도 어디냐 하는 말을 참 잘했다.

-네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아닌데 뭐, 괜찮아. 형은 다 이해할 수 있어.

위로도 곧잘 했다.

또한 그는 사랑한다는 말도 종종 속삭였다. 선우는 사랑한다 하지 못했는데 그는 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

하루는 선우가 용기를 내어 실장님께 허락을 받았다. 외출 허락이었다. 조금 길게 다녀올 거라 말해야 했다.

“너 잠 못 자고 일하러 나올 수 있겠어? 일에는 지장 가지 않게 해라.”

“네, 감사합니다.”

“피곤하다, 손님 못 받는다, 지랄하기만 해 아주.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30분에 한 번씩 어디 있다 보고하고. 왠지는 알지?”

“네, 알겠습니다.”

“너 이렇게 나가면 감시하는 거 얼마나 신경 쓰이고 귀찮은지 알아? 그래도 믿으니까 보내 주는 거다. 알아서 똑바로 해.”

“네, 감사합니다.”

돈은 돈대로 찔러주고 싫은 소리를 들어 가며 허락을 받았다. 그럼에도 선우의 마음은 두둥실 떠올랐다. 성훈에게 부탁해 엄마와 할머니를 보러 갈 참이었다. 미안해서 기름 값이라도 보태라는 의미로 봉투에 돈도 담았다. 기름 값을 여러 번 하고도 남을 액수였다.

성훈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내니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할머니 댁? 그럼, 괜찮지.”

“고마워요, 형.”

“시간 있으니까 제대로 데이트 좀 하다 슬슬 다녀오면 되겠네.”

“…….”

선우에겐 퍽 간절한 일이었는데 그는 ‘슬슬 다녀오자.’라고 가벼이 표현했다.

‘미안한데 바로 좀 가 줄 수 없을까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엄마든 할머니든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그와 오늘만 보고 말 사이는 아니니까. 다음에 또 부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나저나, 그가 하고 싶다던 제대로 된 데이트는 뭘까? 혹시 바닷가까지 달릴 수 있을까.

선우는 차에 올라 준비했던 봉투를 좌석 옆으로 슬쩍 떨구고 씩 웃었다. 부푼 기대를 안고 드라이브를 즐겼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드라이브는 금세 끝이 났다.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도착한 곳은 낡은 모텔이었다. 모텔을 본 선우가 안절부절못했다.

“저 형, 죄송한데요…….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선우는 간밤에 손님을 잘못 받아 뒤가 너무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다. 성훈이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제 연인이었다. 대충 이런 일이 있겠구나 지레짐작하는 것과 제 입으로 다른 이와 잤다 말하는 건 달랐다. 그래서 난감한 얼굴을 하고 에둘러 말했다.

“어? 아……. 괜찮아! 그냥 놀지 뭐.”

성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얼핏 그에게 실망하는 기색이 스치는 걸 보았다. 선우는 죄인이 된 것 같은 심정이었다. 눈치를 보며 그의 뒤를 따랐다.

모텔방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데이트였다. 그래도 성훈은 아프다는 선우에게 하자고 달려들진 않았다. 선우를 안고 사랑을 속삭이다 내내 핸드폰을 하며 뒹굴거렸다.

선우는 이렇게 죽이고 있는 시간이 아까웠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빨리 엄마에게 가고 싶어 초조했다.

한참을 멍하니 기다리다 뒹굴거리는 성훈에 손으로도 해 주고 입으로도 해 줬다. 떳떳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모텔까지 와서 아무것도 안 하니 저렇게 핸드폰만 보나 싶었다. 연인에게 빨리 가자는 말 한 마디를 못 해서 그런 짓을 해 줬다.

그런데, 해 주자마자 바로 출발한다 그럼, 그건 또 그것대로 어쩌나 싶었다. 쪽팔리게 슬플 것 같았다. 정말 이 때문에 안 가고 버틴 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조금 울고 싶었는데 웃었다.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저도, 성훈이 형도 엄마를 보러 가는 길이 기분 좋기를 바랐다.

성훈이 사정을 마치고 샤워를 하겠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형 샤워만 하고 출발하자.”

선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정말이지 간신히 입꼬리를 올렸다.

성훈이 자리를 비운 새에 성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까부터 그렇게 핸드폰을 보더니, 메시지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선우의 시선이 자연히 핸드폰으로 향했다. 미리 보기로 내용이 조금 떠올랐다. ‘선우’라는 제 이름이 스쳤다.

선우는 뭔가에 홀린 듯 성훈의 핸드폰을 들었다. 그렇게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보았다.

성훈과 친구들의 대화는 몹시도 외설적이었다. 대부분이 선우를 두고 하는 성적인 희롱이었다. 적나라한 단어들은 머리에 쉬이 박혔다. 꽁씹, 같은 단어가 선우의 머리를 더럽혔다.

그들은 비싼 걸 싸게 먹는 맛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하룻밤 따먹는 데만 몇 백씩 드는 선우가 캔 커피만 사 줘도 뒤를 대 주니 성훈은 제 친구들 사이에서 위인 신화를 쓰고 있었다.

성훈은 선우에게 부러 더 싸구려만 해 주고, 부러 더 싸구려만 먹인 거였다. 그게 그의 재미였다.

「얘 지금 지 엄마 보러 가고 싶어서 안달 났다.」

그는 제가 빨리 엄마에게 가고 싶어 초조해하던 마음도 알고 있었다.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티가 났나 보았다. 그는 그 사실을 조롱했다. ‘못 간다 그럼 어쩌는지 볼까.’ 하며 남의 간절함에 장난질을 쳤고 ‘빨아 주면 생각해 봐야지.’ 하며 거드름을 피웠다.

모든 메시지들의 중간중간엔 키읔 자가 수도 없이 들어갔다. 그들은 지금, 이게 웃겼다.

그들이 주고받은 한 마디, 한 마디와 수많은 키읔 자가 선우의 온몸에 날카로이 박혔다. 선우는 심장을 걸레 삼아 피 흘리는 몸을 벅벅 닦았다. 걸레를 걸레로 닦으니 몸이든 마음이든 어느 쪽도 깨끗해지지 않았다. 절망적이었다.

수전증에 걸린 사람처럼 손을 덜덜 떨며 모텔 방을 빠져나왔다.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 불결했다. 선우가 불결한 건 자기 자신이었다.

정처 없이 걷다 택시를 불러 카지노로 돌아갔다. 혼자라도 엄마를 보러 가 볼까 했지만 일그러진 제 얼굴을 펼 자신이 없었다. 어찌어찌 편다 해도 엄마는 알 것이다. 엄마는 알아줄 게 분명했다. 그래서 갈 수가 없었다.

택시에서 내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땅만 보며 걸었다. 고개를 숙인 수준이 아니라 땅에 처박은 수준이었다.

그렇게 걷다 퍽, 하고 양복을 입은 남자의 가슴팍에 머리를 박았다. 딱딱했다. 골초인 듯 담배 냄새가 진하게 났다.

‘근데 뭔 담배 냄새가 상큼하냐, 희한하네.’

선우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선우의 시야엔 그의 구두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를 쳐다보지 않고 죄송합니다, 했다. 그러곤 그를 지나쳐 가던 길을 갔다. 대충 사과하고 ‘사과했으니 됐지?’ 하듯 제멋대로 가 버렸다.

“어이, 싸가지 존나 없는 아가야.”

선우는 등 뒤로 들려오는 소리에도 멈춰 서지 않았다. 목소리가 위협적이었는데도 눈에 뵈는 게 없어 무시했다.

“애니까 봐준다 너. 어깨 딱 피고, 대가리 들고. 똑바로 걸어 이 새끼야.”

표현이 과격할 뿐 엄마 잔소리 비슷한 내용이었다. 웃기는 아저씨다.

그래도 속으로 감사하단 인사를 전했다. 많이 그리웠던 말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작 스무 살,

엄마를 잃기 전이었고 세상을 놓기 전이었다. 많이 어렸고, 또 어리석었다.

접대부의 사랑은 사랑이란 이름을 달기에도 천박하고 추잡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잠시나마 희망을 가졌던 선우는 제 첫사랑을 보란 듯이 후지게 끝맺었다. 퍽 어울리는 결말이었다.

그래도 애니까 봐준다.

선우는 남자의 말을 속으로 새기며 남은 스무 살을 살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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