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오리의 이름은
떡두꺼비 같은 딸을 낳은 지 3일, 선우는 아직 입원 중이었다.
미역국을 떠먹던 선우가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쳐다보는 게 범인지 유 회장인지 확인해 보기 위함이었다. 둘 다였다. 부자가 쌍으로 너 나 할 것 없는 열렬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선우는 왜 저래, 를 속으로 삼키고 범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한 입 줘요?”
“뺏어 먹을 게 없어서 마누라 밥을 뺏어 먹냐. 형이 네 밥은 안 건드린다. 오리 밥은 건드려도.”
범은 선우의 가슴팍에 슬쩍 눈길을 주었다가 다시 선우의 눈을 바라보며 찡긋 윙크했다. 선우는 그의 눈을 피하기 위해 제 눈을 깔았다. 그가 쏘는 윙크를 정수리로 튕겨 냈다. 돌아가라고.
“그럼 왜 쳐다봐요?”
“네가 이선우니까 쳐다보지.”
범은 실없는 대답을 했고, 진짜 답은 옆에 있던 유 회장이 내놓았다.
“선우야, 내가 우리 오리 아주 좋은 이름을 받아 왔는데 말이야.”
“좋기는, 퍽이나 좋겠다.”
범이 제 아버지의 말을 끊고 다 들리는 혼잣말로 비아냥거렸다.
유 회장은 ‘뭐 이 새끼야?!’ 하며 발끈했지만 이내 산모 앞에서 큰 소리를 낸 게 미안했는지 큼큼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 톤을 낮췄다.
듣자 하니 오리의 이름을 골라 달라고 이러는 거였다. 범이 원하는 이름과 유 회장이 원하는 이름이 서로 다른지 선우는 자신도 모르는 새 결정권자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 선우한테 까여 봤어요? 그거 마음 찢어져요. 연세도 있는데 충격받지 마시고 까이기 전에 돌아가세요.”
“뭐 이 미친놈아?! 까이기는, 대봐야 아는 거지! 나 유금성이가 오리 할아비 되는 사람이야. 나도 말할, 그 뭐야, 말할!”
“권리요.”
“그래, 그거. 그게 있다 이 말이야.”
부자의 대화를 듣던 선우가 관자놀이를 눌렀다. 가른 건 배인데 골이 울렸다.
유 회장은 눈치가 귀신이었다. 표정이 좋지 않은 선우를 향해 멋쩍게 웃어 보이고는 다시 헛기침을 하며 언성을 낮췄다.
“저…… 그래서 어떤 이름으로 하고 싶으신데요?”
선우는 범인지 유 회장인지 상대를 특정하지 않고 허공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그에 유 회장이 냉큼 반응했다. 제가 들고 온 패를 내보이기 전에 ‘선우야, 이름은 말이야, 탁! 들었을 때 딱! 꽂혀야 된다고.’ 하며 사족을 붙였다.
“그런 의미에서 금이 어떠냐 금이. 유금. 둘째는 은이 하면 딱이잖냐. 싫어? 싫으면 비. 유비. 둘째는 바람이나 태풍이 하면 되고.”
선우가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오, 하고 감탄했다. 기대도 안 했는데 아이디어가 좋았다. 하지만 마음에 든다는 건 아니었다.
가뜩이나 돈 때문에 오리를 가진 선우는 오리에게 부를 바라는 듯한 이름을 지어 주기 미안했다. 돈줄로 보는 것 같아 금이는 싫었다.
비도 별로였다. 제 팔자를 닮아 오리의 인생에도 비가 많이 내리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누구의 인생에나 비 내리는 시기가 있겠지만 오리만큼은 비가 와도 금방 개는 삶이기를, 하고 바랐다. 혹시 이름이 비였다가 저처럼 5년 내리 비만 오면 어쩌나. 안 될 일이었다.
퍽 특별하고 예쁜 이름들이긴 하지만 선우는 그냥 평범한 이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리는 할아버지가 조폭인 것부터 평범치 않아서 더욱이 평범한 이름이 필요했다.
“얘 이거 좆같다는 표정이야.”
범이 선우의 의사를 대신 전했다. 그치이~? 하며 선우의 볼에 쪽, 뽀뽀했다.
그가 하는 양은 선우가 봐도 얄미웠다. 당하는 유 회장은 얼마나 얄미울까.
선우는 회장님의 뜻을 거절하는 게 미안해 그럴싸한 핑곗거리를 생각해 냈다. 싹싹하게는 못해도, 최소한의 배려는 해 드려야 했다. 좆같다는 데서 마무리 지을 순 없었다.
“아……. 이름은 예쁜데요, 금이 하면 은이가 좀…… 아무래도 금이 더 비싸니까…….”
“그래? 그럼 유비 하자.”
“아……. 유비로 하면 관우랑 장비도 있어야 될 거 같은데……. 셋째까진 생각이 없어서요…….”
선우는 회장님께 뭔가를 종알종알 말하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 그에게 말을 길게 해 본 역사가 없었다. 그래서 말꼬리가 자꾸 늘어졌다. 제가 생각해도 바보같이 말했다.
“이야- 유비, 관우, 장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선우야, 너무 좋다! 나는 이렇게 대갈, 아니 머리가 잘 굴러가는 애들만 보면 아주 예뻐 그냥.”
유 회장이 똑똑하다 칭찬을 해 주며 호탕하게 웃었다. 셋째 생각이 없다는 선우의 말은 못 들은 척했다.
선우는 깨달았다. 직설적인 거절을 하는 게 맞았다고. 괜히 정중히 거절하려다 첫째 낳고 3일 만에 셋째 이름까지 짓게 생겼다.
“거 둘째도 딸내미 나오면 관우, 장비를 어떻게 합니까? 예? 그때 가서 첫째 이름 바꿔요? 사람이 미래를 보고 행동해야지 말이야. 아버지, 요즘 같은 시대에 미래를 못 보면요, 존나게 뒤처지는 거예요. 알 만하신 분이 이러실 거예요?”
범은 아버지를 나무라며 한숨을 팍팍 쉬었다. 유 회장은 약간 설득 당한 표정이었지만 대번에 알겠다고 하진 않았다. 기 싸움이 팽팽했다.
선우는 조용히 눈동자를 굴려 가며 강 건너 깡패들의 싸움을 구경했다. 콩가루도 이런 콩가루가 없는 집인데 재미는 있었다.
회장님은 잠시 합죽이가 되었다가 금세 반격할 말이 떠올랐는지 입을 떼셨다.
“그러는 너는, 뭐 선화? 생각을 해 봐라. 선화가 무슨 임팩트가 있냐? 그게 어디 큰 사람이 될 이름이냐고!”
범은 선화가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선우는 무난한 이름을 원하는 범이 의외였다. 웬일이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의 철딱서니로 보아선 유망주나 유레카 같은 걸 하자고 덤벼들 줄 알았다.
“우리 아버지 또 세상모르는 소리 하시네. 요즘 세상이 뭐 이름 특이하다고 크게 되는 줄 알아요? 오리 시대엔 특히나 더, 개천에서 용 나고 그러는 시대가 아니라고. 부와 명예는 부모가 주는 거라니까?”
“…….”
“그니까 오리 할아버지, 이만 가셔서 오리 물려줄 돈이나 많이 버세요. 가오 안 살게 애한테 큰사람 바라지 마시고! 아버지나 큰사람 되시라고.”
“……그럼 선녀 어떠냐, 선녀. 그것도 싫으냐?”
“아 진짜 거, 나무꾼 만날 일 있어요?!”
“……새끼 성질은. 너 말 잘한다?”
“그걸 이제 아셨어요? 지셨으면 좀 가세요. 아버지 얼굴 오래 보면 우리 선우 심란해.”
유 회장이 간다, 가!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선우가 배웅을 위해 몸을 움직거리자 범이 선우의 어깨를 눌러 제지했다.
“수술한 사람 일어나게 하지 마시고, 조속히 가시는 게 미덕입니다 아버지.”
“그래, 가 보마. 선우야 괜찮다, 있어라. 저 새끼 주둥이로 빨리 꺼져라 안 하는 게 어디냐.”
회장님은 범이 제게 사용한 ‘조속히’ 와 ‘미덕’이란 단어를 되뇌며 코오- 감탄했다. 그러곤 정말 종종걸음으로 사라지셨다.
병실이 고요해지자 범은 험악했던 인상을 부드럽게 풀고 선우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온순한데 아버지껜 왜 그러는지 모를 일이었다.
선우가 형은 진짜 왜 그래요, 하며 범을 타박했다.
“내가 뭐. 우리 아버진 원래 거칠게 다뤄 주는 거 좋아해. 가서 진짜로 돈 많이 벌어 오실걸? 연세가 들수록 자꾸 삶에 자극을 줘야 된다고. 한자리에 고이면 썩어.”
“그거 우리 할머니 들으라고 하는 소리 아니죠?”
범이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얘 이거 말하는 것 좀 봐라.’ 했다. ‘세상에’를 덧붙이며 한껏 오버했다. 회장님이나 범이나 정신 사나운 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범은 목소리가 멋져 참을 만했다.
“너 그렇게 오빠 서운한 소리 할 거야? 할머니가 어떻게 고인 물이냐, 청정수지.”
범의 비유에 선우가 해사하게 웃었다. 회장님껜 구구절절 나쁜 말만 하더니 제게는 예쁜 말만 하는 게 기특했다.
“하아……. 여보 웃으니까 자지 서는 거 같아.”
“근데 왜 선화예요?”
선우는 범의 헛소리를 못 들은 척 넘겼다. 자연스레 궁금한 걸 물어 주의를 돌렸다. 범은 왜 선화인지 대답해 주었다. 듣고 보니 뜻은 단순했다. 선우가 낳아 준 꽃이라고, 선화.
선우는 그가 썩 진지한 태도로 작명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선우 딸이라고 선녀를 하자는 유 회장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럴 거면 서연이나 하은이는 어때요? 요즘은 그런 이름 많이 하지 않아요?”
“……왜, 선화는 싫어?”
“아니 뭐 싫은 건 아닌데, 꼭 하고 싶은 거예요?”
“어. 내 새끼 누가 봐도 꽃 같지는 않잖아. 내가 이름이라도 그렇게 해 주고 싶어 그래.”
범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는 저를 똑 닮은 딸에게 큰 책임감을 느끼는 듯했다. ‘통뼈더라, 고목나문 줄 알았잖아.’ 하고 중얼거렸다.
“우리 선화 예쁘기만 한데 왜 그래요!”
“어? 너 선화라고 불렀다? 선화 하는 거다?”
“아 알았어요.”
범은 제 뜻대로 선화가 되었는데도 계속 구시렁거렸다. 우리 여보는 은방울꽃 같은데, 하면서.
“형은 백합 제일 좋아한다면서요.”
“은방울꽃은 백합과야.”
“무슨 조폭이 그런 걸 다 알아요?”
“알면 네가 그렇게 쳐다봐 주니까. 아, 이 새끼 별걸 다 아네, 하고 신기해해 주니까. 그래서 알지.”
범이 선우의 머리칼을 넘겨 주며 말했다. 선우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저 사람이 왜 멋있는지 아직도 미스테리지만 범은 종잡을 수 없이 멋있었다.
“오빠 항상 새로울게.”
선우는 무뚝뚝하게 네, 하고 답했다. 얼굴이 빨개지는 게 민망해 부러 다른 생각을 했다. 오리 생각.
유선화, 라고 한번 불러 보았다.
너무 예뻤다. 나무 같은 오리에게 꽃 같은 이름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