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범이 떠난 후 선우는 하루 종일 할머니께 집중했다. 내일이면 할머니를 한 달이나 못 볼 테니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선우는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말을 마치 강박처럼 지켰다. 한번 된통 당해 본 이래로 제가 무얼 어떻게 해도 할머니께 너무 못하는 것 같고 불안했다.
할머니가 마을 회관에 놀러 가실 때에도 함께 가려 했는데 네가 노인네들 사이에서 뭘 하겠냐며 할머니가 거절하셨다. 하긴 할머니에겐 친구들인데 친구들과 노는 곳에 눈치 없이 끼는 건 또 아닌 것 같았다.
마루에서 하는 일 없이 뒹굴며 자두를 먹는데 범에게 전화가 왔다. 서울에 잘 도착했냐 묻는다는 게 그만 온 신경이 할머니에게 가 있어 미처 챙기지 못했다. 아차, 한 선우가 냉큼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도 하지 않고 조심히 가셨어요? 먼저 물었다. 한 소리 듣기 전에 미리 선수를 쳤다.
[오냐, 빨리도 묻는다.]
“죄송해요. 깜박했어요.”
[나 좀 상처 받았는데, 밤에 폰섹 해 줄 거야?]
“내일 그냥 섹스해요.”
전화기 너머의 범이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그냥 섹스래, 어흐, 하며 변태같이 좋아했다. 혹시 선우가 내일 오지 않고 더 있겠다 그럴까 퍽 조마조마했었는지 저 혼자 ‘씨발, 살았다.’ 하고 중얼거렸다. 갑자기 목소리를 깔고 ‘선우야, 네가 나 살렸다.’ 이러기에 선우는 그저 피식 웃었다. 아직 돌아가지도 않았는데 그는 잘 생각했다면서 벌써부터 요란한 환영을 해 주었다. 아무튼 안 어울리게 간지러운 사람이었다.
[할머니 댁에 보니까 술 담근 거 많더라?]
“네, 할아버지가 술을 좋아하셨어요. 이제 할아버지도 안 계신데 한 번씩 담그세요.”
[손주 사위 주려고 담그신 거네. 좀 싸 와. 신랑 밤에 힘 좀 쓰게.]
할머니가 반주를 하겠느냐 권할 땐 괜찮다더니, 내숭을 떨었던 건지 이제 와 아쉬운 모양이었다. 선우는 범을 살짝 비웃었지만 그래도 범이 제 할머니 댁에서 갖고 싶은 게 있어 다행이었다.
할머니는 뭐라도 하나 챙겨 보내고 싶어 안달이면서 자신이 가진 것들이 부잣집에 보내기엔 보잘것없는 것들이라 생각하는지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빈손으로 보내긴 뭣하고, 그렇다고 딱히 싸 줄 것도 없어서 미안해했다.
할머니가 오시면 범이 술을 탐낸다고 당장에 말해 드리고 싶었다. 아마 크게 좋아하실 거다.
“힘이 너무 넘쳐서 그런 거 먹음 큰일 난다면서요.”
[아 물론 내가 그런 거 안 먹어도 되는 사람이긴 한데, 마누라가 어리고 기운이 좋으니까. 나도 마누라 계속 홍콩 보내 주려면 지금부터 관리해야지.]
선우는 참나, 하고 제 어이없음을 표현했지만 이내 복분자요? 인삼이요? 하고 물었다.
[야관문도 있는 거 같던데?]
선우가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그건 또 언제 봤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야관문주의 존재는 선우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더덕, 인삼, 이상하게 생긴 풀, 또 이상하게 생긴 풀, 복분자, 매실, 하도 종류가 많아서 야관문주가 어떻게 생긴 건지 몰랐다. 선우는 이따 할머니께 여쭤봐야겠다 생각하며 일단 알겠노라 전했다.
[내일 준석이가 가는 거 알지?]
“네.”
[옆에 타면 죽는다. 준석이가.]
선우는 장난기가 발동해 ‘그럼 저는요?’ 했다.
[너? 너는 좀 맞아야지. 자지로.]
괜히 물었다. 선우가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어우 징그러, 라고 읊조렸다.
[준석이랑 세 마디 이상 하지 말고. 외간 놈이랑 말 많이 섞어 주는 거 아니다.]
“네.”
[할머니도 같이 모시고 올라오든지. 할머니 계시면 우리 이선우 재롱도 늘고, 난 좋은데.]
선우도 속으로 생각은 해 본 일이었다. 차마 범에게 말을 꺼내지 못했을 뿐이었는데, 범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할머니를 모시고 오라 했다. 물론 할머니가 거절하실 테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선우는 ‘됐어요.’ 하지 않고 ‘나중에요.’ 했다. 할머니 건강 검진도 시켜 드려야 하고, 혹시나 후에 부탁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말이다.
범은 ‘언제든지.’라고 답해 주었다. 선우는 더욱 고마워져 ‘복분자도 갖다 드릴게요.’ 하며 애교 아닌 애교를 부렸다. 범은 그게 뭐라고 좋아 죽었다.
[어휴, 여보 나 안 재우려고? 씨발, 설렌다. 오빠 요강 깰 준비하고 있을게.]
“뭘 안 재워요. 한 번만 싸기로 약속했잖아요.”
[하루 못 봤으니까 두 번 싸게 해 줘.]
“그럼 전 네 번 싸야 돼요. 기운 빠져서 안 돼요.”
[선우야, 우리 섣불리 결정하지 말고 일단 내일 다시 얘기해 볼까?]
내일 다시 이야기하면 왠지 범에게 말려들 것 같았다. 하지만 때마침 돌아온 할머니 때문에 더 이상 몇 번 싸냐 하는 주제로 설전을 이을 수 없었다.
선우는 내일 봐요, 하고 범의 전화를 끊었다. 선우의 귀에 어렴풋이 ‘뽀’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전화는 이미 끊어진 뒤였다. 뽀뽀해 달라는 소리였을 게 뻔했다. 선우는 문자로 ‘쪽쪽’ 두 글자를 남겨 주었다.
「어디에 해 준 건지 알려 줘야 상상을 하지.」라는 답이 왔다.
「자지요.」 하자마자 선우의 전화기엔 다시금 불이 나기 시작했다. 선우는 씩 입꼬리를 올렸지만 전화는 받지 않았다. 곧장 할머니께 달려갔다.
“할머니, 형이 할머니가 담근 술 먹고 싶다네?”
선우의 예상대로 할머니는 손자에게 무언가 줄 게 생겨 크게 반가워하셨다. 선우는 차마 야관문주를 달라 콕 집어 말할 수 없어 ‘뭐, 뭐 있어~?’ 하며 은근히 할머니를 떠보았다. 결국 야관문과 복분자만 가져가는 건 너무 속 보이는 일인 것 같아 썩 가져갈 필요가 없는 것들까지 전부 챙겼다. 더덕주 같은 건 데리러 오느라 고생일 준석에게 나누어 줘야겠다 생각했다.
***
선우는 할머니와의 이별 역시 힘들었다. 준석이 도착해 트렁크에 짐을 나르는데 선우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준석이 제 짐을 조금만 천천히 실어 주었으면 했다. 허나 준석은 타고난 일꾼임을 보이듯 신속하게 몸을 놀렸다.
할머니는 매일 전화하는데 뭐가 그리 걱정이냐 선우를 달랬다. 그러다 ‘너 사돈댁에는 한 번씩 전화 드리니?’ 하며 잔소리를 했다.
선우는 가끔 연락 드려 안부도 여쭙고 한다 거짓말을 했지만 속으로는 회장님께 전화해 아버님 소리를 하는 게 평생 가능이나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애당초 범의 아버지는 선우를 씨받이로 고용했고, 범의 형은 제 물건을 빨아 보라 하다 못하니 뺨을 후려갈겼다. 선우는 솔직히 범의 가족들에게 언제고 정이 갈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범에게 더 미안하기도 했다. 범은 선우의 할머니께 싹싹하게 잘만 하니까.
선우는 저도 노력해야 한다 머리론 생각하면서도 노력한다고 제가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 원체 가깝지 않은 사람에겐 사근사근 살갑게 굴지 못하는 성격이라 걱정이었다. 그 성격 덕에 접대부 시절엔 안 맞을 매도 벌어 맞았다. 재수 없다, 싸가지가 없다, 맞아야 정신 차린다, 하는 이유들로.
선우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졌다. 가뜩이나 할머니와 헤어지는 것도 슬픈데, 서울로 올라가면 범의 가족들도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웃으면서 가야 할머니 마음이 편하지. 다음 달에 또 보는데.”
할머니는 예쁜 내 새끼, 하며 선우를 따듯하게 다독여 주었다.
“응. 할머니도 웃어.”
선우는 애써 미소를 걸고 할머니께 손을 흔들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시울을 조금 붉혔지만 눈물을 떨어뜨리지는 않았다. 그냥 그렁그렁 매달고 있다 그 채로 말렸다.
범을 떠올렸다. 그러면 웃음이 났다. 차에 가득 실린 할머니의 정성 어린 술들이 할머니 대신이라 스스로를 위안하며 선우는 씩씩하게 길을 나섰다.
***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선우는 준석에게 차비 대신 더덕주를 건넸다.
“태워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더덕준데, 드세요.”
여러 말도 안 하고 딱 두 마디를 건넸다. 이런 걸로 생색을 내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할머니가 직접 담그신 거다 하며 종알종알 떠들기도 뭐했다. 선우는 집 안까지 다시 짐들을 옮겨 준 준석에게 쭈뼛쭈뼛 술을 건넨 뒤 돌아섰다.
준석은 집이 떠나가라 감사합니다! 인사하곤 이미 등을 돌린 선우에게 조직원들과 나눠 먹겠다는 말을 전했다.
혼자 드시든 나눠 드시든 상관은 없었지만 선우는 다시 준석을 돌아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네.’ 했다. 그러다 아, 하고 잠시 멈춰 가시오가피주도 건넸다. 조직원들 머릿수도 많은데 더덕주 하나로는 모자랄 것 같았다. 그들에게 썩 애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이왕 내는 차비인데 짜게 굴긴 뭐해서 그냥 주었다.
“형수님, 이거 저희 다 주셔도 됩니까?”
“네.”
선우는 복분자와 야관문만 남겨 놓으면 된다 굳이 설명하지 않고 그저 네, 했다. 할머니 정성이 있으니 맛있게만 마셔 준다면 좋을 것 같은데, 조직원들이 사는 별채로 소주병과 맥주병이 궤짝으로 오가는 광경을 창문 너머 몇 번 목격했던지라 그건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준석도 다들 술이라면 환장한다 했다.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저녁에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 하는데 덕분에 아주 잘됐습니다. 제가 고기 맛있게 구워다 드리겠습니다!”
준석이 사람 좋게 웃으며 우렁찬 목소리로 다시 한번 감사를 전했다.
선우는 바비큐 파티라는 말에 조직원들로 북적북적할 마당 풍경을 떠올리곤 벌써부터 낯을 가렸다. 어차피 끼지도 않을 텐데, 왜 낯을 가리는지 저도 저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
제 방으로 올라온 선우가 다락의 공기를 킁킁 들이켰다. 이틀 밤을 떠나 있었는데 방 안에선 라임 향이 은은히 풍기고 있었다. 제가 없는 사이 범이 들어와 냄새를 풍겨 놓고 간 모양이었다. 좋은 냄새에 선우의 입가엔 미소가 걸렸다. 오리도 좋아하는 냄새이니 오리 몫까지 두 배로 맡아 주었다.
선우는 다락이 좋았다. 이곳에 있으면 바깥 사람들을 훤히 내다볼 수 있었고 반대로 바깥 사람들은 선우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다. 다락은 높은 곳에 숨어 세상을 관망하는 기분을 선사했고 그것이 낯선 환경에 떨어진 선우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선우에게 다락은 저만의 요새였다. 그래서 여전히 다락을 고집했고, 고로 범과는 계속 각방이었다.
선우는 침대에 누워 할머니께 무사히 왔다 전화를 한 뒤 범에게도 도착을 알렸다. 그는 아직 회사에 있는 것 같아 간단히 문자로 남겼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바로 전화가 왔다. 범은 제게 먼저 연락했냐, 할머니께 먼저 연락했냐, 하는 실없는 질문을 했다. 당연히 할머니라 하니 뜬금없이 ‘노력할게.’ 했다. 그러곤 ‘넌 하지 마. 기운 빠진다.’고도 했다.
선우가 픽 웃었다. 선우는 노력해도 어찌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무력감이 심해 노력이 싫었다. 노력해도 엄마가 살아 돌아오지 않으며, 노력한다고 할머니가 늙지 않는 건 아니다. 몸도 마음도 지치기만 한 게 노력인데 범은 그런 노력을 제게 쏟아 주고, 똑같은 노력을 바라지 않았다. 그 여유가 참 멋있었다.
‘너네 아빠 말하는 거 봐라. 되게 멋지다. 힘이 남아도시나 봐.’
오리에게 범의 미담을 알렸다. 범에게 직접 멋지다고 말해 주면 가운데 덜렁이는 무언가를 달고 당장에 하자며 달려올 것 같아 오리에게만 말해 주었다.
“네. 안 해요.”
범에게는 무뚝뚝한 대답만 남겼다. 그래도 쪽 뽀뽀 소리는 내 주고 전화를 끊었다.
***
선우는 아주머니가 차려 준 점심을 먹고 낮잠에 빠졌다. 모셔 가고, 모셔 오는 차 안에 앉아 가서도, 와서도 주는 밥을 먹고 뒹굴거리는 게 전부였는데 여행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몸이 고단했다.
병든 닭처럼 비실비실 잠에 취해 있다 휴대폰 진동에 잠이 깼다. 정신이 안 차려져 전화를 받기 위해 허둥대는 사이 전화는 뚝 하고 끊어져 버렸다.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확인해 보니 범이었다.
아직 밖이 환한데 이미 시간은 저녁 일곱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마당에선 시끌벅적한 소음이 들려왔다. 회식을 준비하는 조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들이 내뱉는 단어는 열에 아홉이 욕이었다. 기다란 테이블이 세팅되었고 커다란 그릴도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선우가 안 덥나? 하고 생각하는 중에 냉풍기로 추정되는 물건 앞에 옹기종기 모여 바람을 쐬고 있는 조직원들이 보였다. 아, 안 덥겠구나. 선우는 멀뚱멀뚱 창밖을 바라보며 조금씩 정신을 차렸다.
범에게 다시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폰을 집어 드는데 ‘오셨습니까, 형님!’ 하는 소리가 선우의 방까지 쩌렁쩌렁 울렸다. 준석 하나만 소리를 쳐도 골이 다 울리는데 단체로 저러니 귀청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선우가 다시 창가로 눈길을 주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범이 보였다. 조직원들을 구경할 때와는 달리 선우의 눈빛에 영혼이 담겼다. 창가 더 가까이로 다가갔다. 범은 휘적휘적 걸어오다 고개를 들어 선우가 서 있는 창가를 보았다.
범은 항상 저쯤에서 눈으로 선우를 찾으며 귀가했다. 선우가 보이면 씩 웃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선우와 눈을 맞추곤 찡긋 윙크를 보냈다.
선우는 어지러운 마당 풍경에서 조직원들을 지워 내고 범만 남겼다. 히죽 웃음이 났다. 선우가 웃자 범은 마당 한복판에서 윽! 제 심장을 부여잡는 시늉을 했다. 조직원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저렇게 사람이 얼빠져 보이는데도 조직원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저런 모습이 도리어 너무 또라이 같아 피하는 걸까? 미친놈은 피하는 게 상책이니까. 저렇게 주책바가지인데 얕보이지 않는 게 신기했다.
머지않아 쿵쿵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선우는 가만 침대에 앉아 범의 발걸음을 셌다. 두세 개씩 올랐는지 발소리는 금세 끊겼다.
똑똑똑, 오는지 다 아는데 그는 노크도 빼놓지 않았다.
“전화는 왜 안 받아?”
“잤어요…….”
범이 선우의 머리를 쓸어 주며 아직 잠이 붙은 눈가에 쪽쪽 입 맞췄다.
“더 잘래?”
선우는 심드렁히 ‘아니요.’ 하면서도 그의 다정한 목소리가 듣기 좋아 슬쩍 웃었다.
범은 한참을 별말 없이 선우만 바라보았다. 선우를 꽉 껴안고 간간이 선우의 볼에, 입술에, 이마에, 입을 맞췄다.
“저녁 안 드세요?”
“너부터 먹으면 안 돼?”
선우가 미간에 주름을 만들자 범은 그 주름에 쪽쪽 뽀뽀했다. 뽀뽀를 받으면 흐물흐물 풀어져 다시 반질반질한 미간이 되었다.
“어제 네 방에서 딸딸이 쳤어.”
선우가 픽 웃으며 어쩐지, 하고 작게 읊조렸다.
어쩐지 방에 라임 향이 솔솔 나더라니. 범은 멋지게 사랑이라도 고백할 것 같은 목소리로 퍽 없어 보이는 고백을 했다. 어디 나가 풀 데도 많았을 텐데, 그래도 제 방에서 딸딸이나 친 범이 조금 사랑스러웠다.
선우가 범의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불쌍해서 해 주는 거야? 그럼 내 자지도 좀 가엾어 해 줘 봐. 얘가 어제 너 없다고 아주 질질 울었어. 네 생각만 해도 벌떡 서서 질질 울더라고.”
울었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입가엔 음흉한 미소를 걸었다.
선우는 속으로 오리도 저러진 않겠다 하며 오리 아빠에 대한 한심함을 표했다. 정말이지 오리도 저를 하룻밤 못 봤다고 질질 짜고 그러진 않을 것 같았다.
선우는 칭얼거림이 너무 심한 범의 자지를 애잔함과 징그러움을 담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래도 좀 짠한 건 있어서 살짝 빨아 줄까 하는데 수하들이 범을 찾았다. 무슨 만인의 아버지도 아니고, 범이 나가 한 마디를 해 줘야 식사를 시작할 수 있나 보았다.
“하, 우리 나비 다 넘어왔는데.”
범이 안타까워했다. 저 씨팔새끼들 도움이 안 되네 어쩌네 하며 흉흉한 기색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선우는 제가 왜 나비인지 모르지만 구태여 묻지 않았다. 나비 소리만으로도 오글거리는데 이유를 들으면 더 오글거릴 것 같았다. 나비가 좀 문란한가? 짝짓기를 이리저리 많이 하고 다니나? 잠깐 생각한 적은 있지만 그 이유로 범이 저를 나비라 부를 것 같진 않았다. 제 아다를 따먹었다고 신나 죽는 사람인데, 그럴 리가.
범은 선우를 데리고 다락방을 나섰다. 어깨동무인지 포옹인지 모를 어정쩡한 자세로 선우에게 들러붙어 한 계단, 한 계단 천천히 내려갔다.
“너도 마당에서 같이 먹을래? 알파 새끼들 집에서 다 치웠다. 냄새 안 나.”
“저기 껴서요? 아니요……. 형 드시고 오세요.”
“그래, 잘 생각했어. 외간 놈들한테 얼굴 오래 보여 주고 그러는 거 아니다. 구워다 대령할 테니까 나랑 집에서 먹자. 오붓하게.”
범은 ‘오붓하게’를 강조하며 눈썹을 능글맞게 올리고 선우의 엉덩이를 꾹- 쥐었다.
하여간 추행이 상습이었다. 그럼에도 범이기에 싫지 않았다.
그냥 만지게 두었다. 할머니 댁에서 이 나쁜 손을 하도 때리고 구박한지라 좀 미안한 것도 있었다. 선우는 범이 제 엉덩이를 터뜨릴 듯 주무르는 데도 도리어 엉덩이에 힘을 풀었다.
범은 ‘말랑, 씨발.’ 하며 현관 앞에 서서 한참을 나가지 못했다. 선우가 배고프니 빨리 가서 고기를 좀 얻어 오라 하자 그제야 발걸음을 뗐다.
범이 나가고 선우는 부엌으로 가 범을 기다렸다. 아주머니도 오늘 바비큐 파티를 알고 계셨는지 상에는 고기 외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차려져 있었다. 된장찌개와 쌈채소에 선우의 광대가 볼록 올라갔다.
“저…… 여사님…….”
아주머니께 좀처럼 먼저 말을 거는 일이 없는 선우가 아주머니를 불렀다.
기존에 계시던 가사 도우미 아주머니와 선우의 임신 수발을 담당하는 아주머니, 두 분 다 아주 적극적인 자세로 선우에게 뭐가 필요하냐 물었다. 범과 결혼하기로 한 소식을 어디선가 들은 모양인지 너무 극진한 대접을 해 주셨다.
선우가 머쓱하게 뒷목을 긁적였다.
몸이나 팔고 굴러먹다 들어온 씨받이일 때와는 다르게 대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으나 조금 씁쓸했다. 나는 똑같은 나인데, 타인의 태도는 제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변했다. 세상이 원래 그런 법인데 선우는 그 세상이 조금 지겨웠다. 아마 할머니와 있다 와서 더 그럴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잠시 현실을 잊어버리곤 했다.
선우는 눈을 밝히는 아주머니들께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 댁에서 가져온 술을 찾았다.
조그만 유리잔에 야관문주 한 잔, 복분자주 한 잔을 따라 두었다. 한 잔씩만 따라 두고 술병은 다시 넣어 달라 청했다. 한 잔 이상 먹이면 범이 아니라 제가 큰일 날 것 같았다. 잠시 센치했던 기분이 빛깔 고운 술을 보자 쉽게도 날아갔다. 선우는 범과 고기를 기다리며 그에게 할머니의 술을 전해 줄 기대에 부풀었다.
얼마 후 범이 나타났다.
범의 손에는 선우가 준석에게 주었던 술들이 들려 있었고, 그의 얼굴은 굉장히 심술 맞은 기색을 띠고 있었다.
범의 훠이훠이 손짓에 아주머니들은 이른 퇴근을 했다. 아주머니들은 심기가 편치 않아 보이는 범을 보며 선우에게 잠시 안쓰러운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짐을 챙겼다.
‘그치, 제가 사는 게 먼저지.’
선우는 속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아주머니들은 문 닫는 소리도 거의 안 내다시피 하며 조용히 사라졌다.
식탁 위에 떡하니 더덕주와 가시오가피주를 올려놓은 범은 허리에 척 손을 얹고 선우를 가만 내려다보았다.
선우도 시선을 올려 범을 보았다. 제가 보기에 범은 진심으로 화난 것 같진 않았다. 범의 기색은 화보단 심술에 가까웠다. 다른 말론 징징. 허나 인상이 인상인지라 아주머니들이 도망간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갔다.
“이걸 왜 다시 들고 오셨어요?”
범은 되레 제게 뭐라 하는 듯한 무구한 선우의 눈빛에 허! 하고 혀를 찼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선우의 표정이 조금 꼴렸다.
“불륜 증거 수집했다, 왜? 너는 말이야, 할머니가 손주 사위 준 걸 홀라당 외간 놈한테 갖다 바쳐?”
어우 유치해, 선우는 간신히 표정 관리를 했다. 너무 유치해서 저도 모르게 업신여기는 표정이 나올 뻔했는데 그러면 범이 진짜로 삐질 것 같아 무표정을 유지했다. 솔직히 고기는 어디 가고 술만 들고 왔냐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았다.
“그냥 운전하느라 수고해서 드린 거예요. 할머니가 너무 많이 싸 줘서. 그건 야관문도 아니에요.”
술만 따라 깨끗한 병에 담아 온지라 복분자 빼고는 빛깔로만 구분하기 힘들었다. 진한 갈색, 연한 갈색, 초록빛이 감도는 갈색, 이랬는데 솔직히 알 게 뭔가 싶었다. 할머니께서 뭐가 뭐다 일러 주긴 했지만 까먹을 수도 있으니 선우는 야관문 병에만 매직으로 ‘형’이라 적어 두었다.
선우가 주섬주섬 자리를 털고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아주머니가 넣어 둔 술병을 꺼내 오기 위함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냉장고 한 켠을 할머니의 술이 차지하고 있었다. 다음 달까지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열어 보면 될 것 같아 선우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선우는 냉큼 야관문주를 꺼내 범에게 ‘형’이라 쓰인 술병을 건넸다. 형 거는 따로 있어요, 하며 특별히 챙긴 양 굴었다.
좀 더 아양을 떨면 이 싸움을 더 빨리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투는 여전히 딱딱하기만 했다. 그래도 다행히 범의 표정이 조금 풀어지는 것 같았다. 범은 말없이 선우가 써 놓은 글씨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선우는 눈동자를 굴리며 무슨 말을 더 할까 고민했다. 미안하다 그럼 진짜 딴마음이라도 있었던 것 같으니 미안하다 할 수도 없었다. 어쩌지? 하는데 무언가 퍼뜩 떠올랐다.
“천연 비아그라래요…….”
선우는 정말 순수한 호기심에서 야관문주의 효능을 검색해 보았다. 정력 얘기밖에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 선우의 머릿속에 남은 가장 강렬한 표현 하나가 저것이었다. 남사스럽지만 범이라면 저 노골적인 표현을 퍽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아 말해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범은 씨발을 읊조리며 먹기도 전부터 꼴린다 중얼거렸다. ‘비아그라’라는 단어 하나에도 꼴릴 수 있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선우가 쓴 ‘형’이라는 글씨에 자지를 비비고 싶다고도 했다. 선우는 멀뚱히 그 소리를 들으며 비비든지 말든지 밥이나 빨리 먹었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준석 씨 죽이고 오셨어요?”
“왜, 죽였음 어쩌게! 편드냐?”
“아니요.”
“죽였어도 내 편이지?”
“네.”
선우가 뚱하게 답했다. 하지만 범은 그 뚱한 답변을 굉장히 흡족해했다. 뭐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듯 귀찮아 보이는 기색이 아주 마음에 쏙 든다면서.
범이 어흐, 하고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곧장 다시 정색했다. 위엄을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웃을 거 다 웃어 놓고 그러니 썩 위엄이 있지는 않았다. 심지어 앞섶도 두툼히 올라 있어서 더욱 없어 보였다.
“너, 일단 밥 먹고 보자.”
듣던 중 반가운 소리에 선우가 쪽, 범의 볼에 입을 맞췄다.
범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웃음을 참다 결국은 터뜨렸다. 그래 이겨 뭐 하냐, 마누라 이기는 거 아니다, 하고 혼잣말을 했다.
때마침 범의 수하가 맛있게 구운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한가득 들고 들어왔다. 소시지와 대하도 있었다. 고소한 고기 냄새에 선우의 위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범은 고기를 두고 나가려는 수하를 불러 세워 대가리를 박고 있는 준석을 그만 일어나게 하라 명했다.
“그 새끼 불쌍한 새끼야. 죽었대도 우리 선우가 눈 하나 꿈쩍 안 한단다. 인생 존나게 잘못 살았는데 고기라도 많이 처먹으라 그래라.”
수하는 우렁차게 ‘알겠습니다, 형님!’ 했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는데 어쨌든 머리를 그만 박고 고기를 먹으라는 소리니까 그것만 전하면 될 것 같았다.
범이 수하와 무슨 말을 하든 선우는 밥을 먹었다. 범이 배도 두 배로 고플 임산부 먼저 먹으라 그래서 기다리지 않고 먹기 시작했다. 할머니도 항상 먼저 들어, 내 새끼 얼른 먹어, 그래서 먹으라면 진짜 먹는다. 배고팠던 선우는 발까지 달랑달랑 흔들며 신명나게 먹었다.
수하는 그런 선우가 신기해 잠시 눈길을 주었다. 먹으란다고 진짜 먹네, 생각했다. 1초면 끝날 시선이었는데 지척에서 보니 살짝 연예인 보는 느낌도 있고 해서 저도 모르게 2초가량 더 쳐다봐 버렸다. 제 딴에는 냉큼 시선을 거뒀다고 생각했지만 범에게 발각되어 험한 소릴 들었다. 안구를 적출 당하고 싶냐는 소리였다.
“준석이 일어나라 그러고 네가 가서 박아, 이 새끼야.”
“네! 죄송합니다, 형님!”
수하가 떠나고 범은 씩씩거리며 식탁에 앉았다. 제 밥그릇은 선우의 맞은편에 놓여 있는데 엉덩이는 선우의 옆자리에 갖다 붙였다. ‘씨발 오늘 이 새끼고, 저 새끼고 다 마음에 안 드네.’ 하며 인상을 구겼다.
선우는 그런 범을 슬쩍 쳐다보곤 직접 깐 새우를 범의 입에 넣어 주었다. 밥이나 드시라는 의미였다.
범은 선우의 손가락까지 씹어 먹을 기세로 새우를 받아먹고 씩 웃었다. 아오 요 이쁜 거, 이게 내 거지, 하며 선우의 볼에 쪽쪽 뽀뽀했다. 침을 묻히는 건지 뽀뽀를 하는 건지 모를 만큼 축축한 뽀뽀였다.
범은 입에 든 걸 삼키고 선우가 따라 놓은 술잔을 들어 한입에 털어 넣었다. 고기에 빠져 있던 선우도 그 순간만큼은 범에게 눈길을 주었다.
범은 털어 넣은 술을 입 안에 머금고 잠시 음미한 뒤 삼켰다. 주당이 틀림없었다. 선우는 범을 가만 바라보며 범의 반응을 기다렸다. 할머니의 술을 칭찬해 주었음 했다. 할머니께 전하면 기뻐할 테니까. 칭찬을 안 해 주면 거짓말로 지어내 전해도 되었지만 이왕이면 범이 진심으로 말해 준 걸 전하고 싶었다.
범은 크으, 하는 시원한 소리를 내며 맛이 죽인다 했다. 그의 만족스러운 대답에 선우가 볼록 광대를 올렸다.
“선우야.”
“네?”
“그래도 네 맛이 더 좋다.”
취했나 의심해 볼 법도 하지만 범은 원래 맨 정신에도 저런 소릴 잘만 했다. 선우는 그의 헛소리를 능숙하게 무시하고 안주로 조금 덜 익은 것 같은 소고기를 집어 건넸다. 선우도 덜 익은 소고기가 좋지만 임신 중이라 찝찝했다. 어떤 건 바짝 익고, 어떤 건 덜 익은 게 아마 범과 제 것을 구분해 구워 준 것 같았다.
범은 곧이어 두 번째 술잔도 털어 넣었다. 붉은 빛깔의 복분자주였다.
“크으-.”
안 그래도 아저씨 같은데 ‘어우, 선다 씨발.’ 하며 먹자마자 효험을 보는 것 같다고 방정을 떠니 더 아저씨 같았다.
피식, 웃은 선우가 범의 입에 다시금 고기를 넣어 주며 그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범은 입에 든 고기를 씹어 삼키자마자 끊임없이 질척였다.
“선우야, 오빠 취한다.”
“네. 취하세요. 집인데 뭐 어때요. 방에 가서 주무시면 되죠.”
선우의 강력한 철벽에도 불구하고 범은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마무리했다.
“네 미모에 취한다.”
범의 헛소리와 함께 선우가 따라 놓은 술 두 잔은 금세 털려 버렸고 범은 이어 준석에게서 뺏어 온 술병을 따려 했다. ‘형’이라고 써진 술은 아껴 먹을 거라고 묻지도 않은 소릴 덧붙이며 애같이 웃었다.
선우는 술 먹은 사람을 상대하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알기에 범을 만류했다. 저 병을 따는 순간 범은 홀짝홀짝 금세 한 병을 다 마셔 버릴 것 같았다. 마시는 품새나 속도가 딱 그랬다.
“밖에 회식하는데 그건 그냥 밖에 좀 줘요.”
“내 거야. 할머니가 나 준 거잖아. 너도 내 거고.”
늘 유치하지만 들어 본 중 가장 유치한 소리였다. 원래 같으면 ‘네. 다 드세요.’ 하며 설득할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만 왠지 모르게 술은 적당히 마셨음 했다.
‘아, 이게 혹시 바가지 긁는 건가?’
선우는 혼자 생각하고 혼자 쑥스러워 뒷목을 긁적였다.
“아니 이따 섹스 안 하실 거예요? 많이 마심 안 서요.”
“난 대꾸리로 마셔도 서던데. 세상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오빠 발기 걱정이야.”
선우는 할 말을 잃고 설득을 포기했다.
“……아, 네.”
“알았어, 알았어. 마누라가 마시지 말라는데 말 들어야지. 근데, 말 들으면 이따 상 주냐?”
“무슨 상이요?”
선우의 물음에 범은 안 물어봐 줬으면 어쩌려고 그랬나 싶을 만큼 신속히 답했다.
“두 번 싸고 가슴 빨래.”
마치 선전 포고인 듯 비장하게도 말했다.
선우는 입에 넣었던 된장찌개가 풉 하고 터져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막아 냈다. 당당하면 다인 줄 안다 정말.
범은 사레가 걸릴 뻔한 선우에게 물을 건네며 ‘천천히 먹어야지.’ 했다. 천천히 먹고 있던 선우는 억울했다. 어이가 없어 가만 범을 쳐다보는데 범은 씩 웃으며 ‘나는 빨리 먹어도 된다.’ 했다.
“나는 막 허겁지겁 먹어 줘. 섹시하게.”
“……됐고요. 가슴은 안 돼요.”
선우가 단호히 거절했다. 지난번엔 왠지 참아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경솔하게 만지라고 했지만 이건 안 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은 바가 있었다.
범이 인상을 구기고 후- 한숨을 뱉었다.
선우는 조금 쫄았지만 쫄았다는 티는 내지 않았다. 눈알을 굴려 슬쩍 범의 눈치를 보았다. 어지간히 기어오르라고 화를 내려나? 생각했다.
허나 범은 늘 그래 왔듯 선우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별안간 제 수하들을 욕하기 시작했다.
“하, 이 새끼들 랍스터는 왜 안 갖고 와?!”
범이 전화를 들려는 순간 누군가 문 밖에서 형님을 외쳤다. 목소리가 준석인 듯했다. 범에게 혼이 났을 터인데 목소리는 여전히 우렁차고 해맑았다. 벨도 누르지 않고, 노크도 하지 않고, 순수한 육성으로 집 안에 있는 사람을 불렀다. 목청이 안 좋으면 깡패도 못 할 것 같았다.
“형님! 랍스터 구워 왔습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범은 준석에게 대충 들어오라 이르고, 선우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려 주며 달콤한 목소리로 선우를 꾀었다.
“선우야, 랍스터 먹고 다시 생각해 볼래? 너 랍스터 먹어 봤어? 형 그거 잘 부순다.”
선우는 랍스터 소리에 귀를 쫑긋했다. 일단 범의 말대로 먹고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랍스터는 고사하고 살면서 대하나 꽃게도 먹어 본 기억이 얼마 없었다. 준석이 들어와 식탁 위에 랍스터를 올려 두자 선우의 입이 떡 하니 벌어졌다. 고소한 버터 냄새와 함께 노릇노릇 구워진 거대한 랍스터는 위용이 대단했다. 이미 손질이 다 되어 있어 살만 쏙 빼 먹으면 될 것 같았다.
그러니 자기가 다 빠개 주겠다는 둥 하던 범은 랍스터를 보고 화를 냈다. 거참 오늘 되는 게 없네, 하며 투덜거리다 선우가 식탁 밑으로 손을 뻗어 앞섶을 만져 주자 이내 허으,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다물었다.
범은 제가 뺏어 왔던 술을 준석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그러곤 선우에게 그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게 했다. 선우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포용력과 제 넓은 아량을 어필하고 싶은 듯했다.
범은 할머니가 주시는 거니 아껴 먹어라, 항상 할머니께 감사한 마음을 가져라, 등의 말로 준석을 훈계하며 선우가 다 민망할 정도로 할머니를 칭송해 주었다. 그래도 할머니가 준 것을 소중히 생각해 주어 고맙긴 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형님!”
“오냐, 한 방울 흘릴 때마다 한 대씩 처맞는 줄 알아라.”
“예! 알겠습니다!”
범은 하는 멘트가 꼭 동네 양아치스러웠지만 선우는 그 양아치 형이 제 편이라 나름 든든했다. 세상은 맞고 사는 것보단 때리고 사는 게 나았다. ‘오리야, 명심해라.’하며 오리에게도 일러 주었다.
그런데 제가 말해 놓고도 너무 개똥철학을 가르치는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서 다시 정정했다. ‘안 맞고, 안 때리는 평탄한 세상을 살아라.’라고.
준석은 커다란 소리로 선우에게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뒤 떠났고, 범은 랍스터 살을 발라 선우에게 먹여 주기 시작했다. 후후 불어 식혀도 주었다.
선우는 가만히 앉아 입만 벌렸다. 한 번씩 좀 느끼하다 싶으면 범이 파무침도 집어 주고 김치도 집어 주었다. 맛있었다. 근데 막,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맛은 아니었다. 선우가 태어나 처음 먹어 보는 랍스터의 맛을 평가했다. 별거 아니네 뭐, 하며 속으로 우쭐대 보기도 했다.
새로운 경험이 선우의 세상을 풍요롭게 했다. 선우는 세상에 조금 재미를 느꼈다.
“맛있어?”
“네.”
“기분 좋아?”
“네.”
“할머니 댁에도 몇 마리 보내 드릴까? 술값은 내야지. 가족 간에도 계산은 확실히 하는 거다. 마누라랑 서방 사이 빼고.”
범은 ‘내가 너 홍콩 보내 주고도 돈 안 받는 거 알지? 오빠만 믿어라. 평생 공짜로 보내 줄게.’ 따위의 헛소리를 주절대며 저 혼자 키득키득 좋아했다. 무시하던 선우는 술값이란 말에 범에게 하려던 말이 번뜩 떠올랐다.
“아, 맞다!”
할머니께선 범이 방에 놓고 간 돈 봉투를 발견하곤 놀라 자빠질 뻔하셨다. 선우가 매달 생활비 명목으로 용돈을 드리는 것도 있고, 이번에 내려가서 따로 챙겨 준 돈도 있는데 오십만 원만 드려도 많다 하실 분에게 오백만 원을 놓고 왔으니 그랬다.
“할머니한테 무슨 용돈을 그렇게 많이 드렸어요? 우리 할머니 심장 떨어질 뻔하셨잖아요.”
“그거? 꿈 값. 할머니가 오리 태몽 꾸셨잖아.”
범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심장이 떨어질 일도 쌨다는 듯 가장이 그 정도도 못 벌어 오면 쓰냐 했다. 사고방식이 조금 전통적이긴 하지만 책임감 없는 가장보다는 훨씬 좋은 듯했다. 선우는 문득 엄마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무슨 원한 같은 게 남아 제가 아빠와는 정반대의 사람을 만나도록 조종하고 있는 게 아닐까 했다.
그래, 범 같은 사람이 저를 사랑할 리가 없는데. 혹시 속 안에 엄마가 들어찬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선우는 범이 제 입 앞으로 랍스터를 발라 나르는 것까지 조금 의심스러웠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긴 하지만 손가락을 들어 콕 하고 범의 볼을 찔러 보았다. 범이 쳐다보자 그 볼에 쪽 뽀뽀했다. 혹시 엄마야? 빙의했어? 마음으로 물었다.
“씨발. 안 되겠다, 상 엎자.”
‘아, 우리 엄만 예쁜 말만 한다. 고로 엄마는 아니고 범이 맞다.’
선우는 엄마가 아니라 조금 실망했다가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범이 그냥 범인데도 저를 좋아한다. 귀신에 씌지 않은 멀쩡한 범이 맨 정신으로도 저를 좋아한다. 선우가 볼록 광대를 올렸다가 내렸다.
그 찰나를 캐치한 범은 선우의 미소를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여 그대로 상을 엎었다.
***
식탁을 엎었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였다. 범은 선우가 엉덩이를 붙일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식탁 위 접시들을 막무가내로 밀었다. 몇몇은 와장창,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고, 몇몇은 식탁 끝에 걸려 간신히 살아남았다.
범은 접시가 깨지는 소리에 씩 입꼬리를 올렸다. 더욱 흥분하는 듯했다.
퓨즈가 나간 범의 눈빛에 선우는 업소에서 가끔 보았던 뽕 맞은 손님이 떠올랐다. 뭐지? 뭐 때문이지? 뽕 안 맞았는데, 하다 떠오른 건 복분자와 야관문이었다. 망했다.
범이 선우를 휙 안아 들어 식탁 위에 앉혔다. 혀가 뽑힐 듯한 키스를 해 오기 시작했다. 입가가 온통 침 범벅이었다. 범은 일부러 키스를 못했다. 선우의 뒤통수를 커다란 손바닥으로 고정하곤 얼굴 아무 데나 침을 묻히며 마구 달려들었다. 혀가 아리다 못해 닳을 것 같을 때까지 빨아 젖혔다.
고기 냄새, 된장찌개 냄새, 버터구이 랍스터 냄새가 나야 하는 그들의 식탁을 진득한 라임 향이 덮었다.
선우도 범의 목 뒤로 팔을 두르고 그의 키스를 적극적으로 받아 주기 시작했다. 뒤로 전립선을 찔러 주는 것도, 성기를 흔들어 주는 것도 아닌데 선우 역시 키스만으로도 숨을 헐떡일 만큼 흥분했다.
혀를 얽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범은 티셔츠 때문에 잠시 떨어져 나갔던 입술을 보상받듯 선우의 뒤통수를 더 세게 휘어잡으며 머리카락도, 혀도 다 뽑아 버릴 기세로 허겁지겁 선우를 먹었다.
앞섶이 다 터져 나갈 만큼 흥분되는 키스를 나누니 곧이어 앞섶의 해방을 위해 바지도 벗어 던졌다. 바지는 입술을 떼지 않고도 벗을 수 있었는데 정신없는 키스로 선우의 손이 자꾸 미끄러지자 범이 도왔다. 범은 선우의 바지를 찢을 기세로 끌어 내렸다. 선우는 말갛게 드러난 맨다리를 범의 등 뒤로 둘렀다.
입술이 죄 헐도록 빨아 대다 키스가 멈추고 촉촉 짧은 뽀뽀가 이어졌다.
“선우야, 저기 봐 봐.”
선우가 네? 하고 범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순간, 범은 훅 고개를 내려 선우의 유실을 입에 머금었다.
“하읏……!”
선우의 고개가 절로 젖혀졌다. 이번엔 선우가 범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기세로 잡아챘다. 짧아서 많이 안 잡혔다.
‘하아, 씨, 나도, 깍두기, 컷을, 하든가, 해야지.’
생각이 뚝뚝 끊겼다. 하지만 머지않아 츄릅츄릅 침 소리를 내며 가슴을 마시다시피 하는 범에 그 뚝뚝 끊기는 생각마저 못 하게 되었다.
선우가 퍽퍽 범의 머리를 때렸다. 범은 반격이라도 하듯 이를 감춘 입술로 선우의 유두를 잘근잘근 씹어 주었다.
“어흐윽……. 으윽……!”
선우는 정체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헤벌레 벌어진 입에선 침이 줄줄 흘렀다.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아프다, 아프다, 생각하던 게 머리가 터져 나갈 듯한 쾌감으로 변모할 때까지 범은 선우가 패든 말든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그는 빤다면 빠는 사람이었다.
뒤로만 가는 걸 넘어 이젠 가슴만 빨았는데 갈 것 같았다. 선우가 애타게 형을 찾았다. 형, 형……! 그래도 범이 안 떨어져 나가자 ‘제발’까지 붙여 가며 애원했다.
“제발, 형, 형! 싸, 쌀 것 같아.”
범은 그제야 선우의 가슴팍에 박았던 얼굴을 떼고 스윽 고개를 들어 올렸다. 뜨거운 눈빛으로 선우를 직시했다.
손가락을 들어 솟아오른 선우의 유두를 틱, 하고 튕겼다. 그에 선우의 몸이 잘게 떨렸다.
“여보 너 좋지? 앞으로 꼭지 빠는 걸론 허락 안 받는다?”
말을 마친 범의 입가엔 말도 안 되게 순수해 보이기까지 한 해사한 미소가 걸렸다.
범이 순수라니, 선우는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생각하면서도 그 미소가 멋들어져 잠시 범의 웃는 얼굴을 감상했다. 변태는 변태 짓을 할 때 가장 순수하게 행복해지는가 보았다. 범이 제게 ‘너 좋지?’라고 묻고 있지만 그건 제가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었다. 범은 싱글벙글 웃는 게 속된 말로 개좋아 보였다.
범의 미소를 빤히 바라보던 선우의 입가에도 자연스레 미소가 걸렸다.
“네. 오리 줄 때 빼고 아무 때나 빠세요.”
“하…….”
범은 높디높은 설득의 산 하나를 넘고 또 다른 산을 마주했다. 절로 한숨이 터졌다. 이건 또 어떻게 꾀어낸담. 오리는 하나고 가슴은 두 쪽이니 한쪽씩 나누자 그럴까. 재빨리 두뇌를 굴려 보았다. 허나 당장 눈앞에 선우가 볼따구니를 발그레 물들이고 웃고 있었다.
‘씨발, 일단 박고 애 나오면 생각하자.’
“선우야, 우리 그 문제는 차차 생각해 볼까?”
범이 퍽 어른스러운 투로 어르듯이 말했다. 차차 생각해 보고 말고 할 가치도 없는 주제인데, 분위기에 취한 선우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알겠다 긍정의 답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팽창해 있는 범의 성기를 쥐고 쭉쭉 뽑아내듯 흔들기 시작했다.
범은 이에 화답하듯 선우의 애널에 손가락을 쑤셨다. 축축이 젖어 있는 입구가 손가락을 쏙 빨아들이자 짐승같이 으르렁댔다.
“어윽……! 억! 혀, 형……! 거기, 거기!”
“어, 걱정 마. 성의껏 쑤실게.”
“아! 아니! 거기, 거기! 적당히! 적당히 해요, 진짜, 싸, 싸……!”
범이 ‘진짜 쌀 것 같다고?’ 하며 미처 다 하지 못한 선우의 말을 끝맺어 주었다. 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작 하라는 의미를 담아 정말 세차게 끄덕였다. 종전까지 가슴을 애무 당하며 절정 바로 직전까지 올랐던 감각이 채 수그러들기도 전에 스팟을 공략당하니 정말이지 뒤로 넘어갈 것 같았다. 마치 신음처럼 그만! 그만……! 소리를 질렀다.
범은 ‘어. 알았어.’ 하고선 손가락을 더 빠르게 놀렸다. 선우는 내 아들이지만 지독하다 하던 유 회장이 떠올랐다. 예비 시아버지에 조용히 공감을 표했다.
‘내 남편이지만 지독하다.’
“어어. 알았어, 알았어. 오빠 알아서 할게.”
“아, 아니……! 알아서, 하지, 말고……! 그만, 그만……!”
선우가 낑낑 반항하자 범은 선우의 귓가에 쉬-잇 하는 소리를 냈다. 죽기 싫음 조용하란 소린가? 선우의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선우야, 입 다물고 자지나 만져 줘.”
낮은 목소리를 흘려보낸 범이 선우의 귓가에 쪽 뽀뽀했다.
저러는데 대고 무슨 소릴 더 하나. 선우도 그만 대화를 포기했다. 딱 죽을 것 같은 제 심경을 범의 원대로 그의 자지에 풀기 시작했다. 제 손안에서 펄떡펄떡 날뛰고 있던 범의 물건을 좀 더 강하게 쥐어 뽑았다. 무 뽑듯이.
범은 씩 웃으며 선우의 도발을 즐겼다.
“으윽……! 씨발, 선우야, 더! 더!”
범은 선우와 눈을 맞추며 더 해 보라고 으르렁거렸다. 더 해 주고 싶은데 더 해 줄 수 없었다. 어느새 세 개까지 늘어난 범의 손가락이 찰박 물 튀는 소리를 내며 선우의 구멍을 드나들고 있었다. 임신을 하고 나선 뒤가 많이 젖지 않았는데 범의 손가락은 전지전능한 능력 같은 게 있는 건지, 가뭄이 든 선우의 뒤에 홍수를 냈다. 범은 ‘씨발, 평소엔 물이 얼마나 많은 거냐.’ 중얼거리며 상상만으로 설레어 했다.
선우는 범의 열렬한 시선을 받으며 찢어지는 교성을 질렀다. 결국 선우가 먼저 사정에 이르렀다. 범이 두 번 싸겠노라 다짐을 하기에 한 번은 손으로만 가게 하겠다 계획한 일이 물거품이 되었다. 되레 제가 손으로만 갔다.
선우는 상체를 팡 튕기며 으읏! 하고 아랫입술을 물었다. 순간 손에도 바짝 힘이 들어가 범의 성기를 터질 듯 쥐었는데 이내 힘이 풀려 스르르 놓쳐 버리고 말았다. 아직 선우의 안에서 빠져나가지 않은 범의 손가락들이 여운을 즐기듯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왕복 운동을 했다. 질컥한 소리가 날 때마다 선우는 끙끙 앓으며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범이 선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입술을 쭉 내밀었다. 계속 제 입술을 깨물고 있던 선우에게 ‘내 거 씹어.’ 했다.
범은 성기에서 떨어져 나간 선우의 손도 다시 끌어다 얹어 놓았다. 참 친절도 했다. 선우는 힘이 빠져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다. 말 그대로 그저 손을 얹고만 있었다. 그러다 질질 우는 범의 주니어가 가엾어 물고 있던 범의 입술을 뱉고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얘 그냥 넣어요. 만질 힘 없어요.”
범은 능글맞게 눈썹을 올리며 ‘그럴까, 그럼?’ 했다. 선우의 다리를 양팔에 한 짝씩 걸어 선우가 접시들처럼 밀려나는 일이 없도록 단단히 붙들었다. 그러자 범의 성기가 선우의 구멍 앞에 알맞게 위치했다.
“네 거니까 네가 잡고 넣어 봐.”
선우는 말없이 범을 쳐다보았다. 사실 말이 쳐다본 거지 꼬라봄에 가까웠다. 쑤시고 싶은 사람이 넣어야 되는 거 아닌가?
범이 안 속네, 했다. 아쉬움의 입맛을 다셨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대가리까지만 넣어 주면 나머진 자기가 알아서 모시겠다고 살살 꼬셨다.
픽, 힘없는 웃음을 흘린 선우가 범의 좆기둥을 쥐고 귀두 끝을 제 구멍 주위에 살살 비볐다. 슬쩍 간을 보다 서서히 진입을 시도해 보았다. 풀어지다 못해 녹아내리다시피 한 선우의 구멍은 범의 것을 어렵지 않게 삼켰다. 그래도 찡기긴 찡겼다.
“허으……. 씨발, 딱 맞는다. 내 거다.”
유리 구두가 제 것이라 우기는 계모와 언니들. 딱 그 짝이었다. 딱 맞긴, 찡기는구만, 하며 선우가 들릴 듯 말 듯 구시렁거렸다. 허나 아무리 들릴 듯 말 듯 해도 그는 용케 다 들었다. 범은 불퉁한 선우의 입술에 쪽 키스를 하고는 퍽! 허리를 튕겼다.
“내 거 맞아, 안 맞아?”
선우는 억……! 소리를 뱉으며 고개를 젖혔다. 갓 사정을 마쳤는데 다시금 제 스팟을 찍어 올리는 둔기에 할 말을 잃었다.
대답 없는 선우에 범이 한 번 더 허리를 튕겼다. 대답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인데, 참작해 주지 않았다. 떡방아 찧는 소리가 뻑, 하고 거실을 울렸다.
범은 제가 박아 놓고 제가 좋아 죽었다. 어흐, 특유의 이상한 소리를 내며 좋아하다 다시 엄한 척 미간을 구겼다.
“존나 내 자지 맞춤이고만. 맞아, 아니야?”
‘딱 맞고 싶으면 지가 좆을 좀 자르든가.’
선우가 생각했다. 속으로는 아주 똑 부러졌는데 겉으로 보기엔 영 아니었다. 눈은 죄 풀려 초점이 나가 있었고 입 옆으론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범이 또 허리를 처박기 전에 간신히 고개를 놀려 미약한 끄덕거림을 보였다.
범은 만족스러웠는지 씩 웃으며 다가와 선우의 입가에 흐르는 침을 핥아 주었다. 혀를 길게 빼 느릿하게 핥아 올렸고, 그 속도에 맞춰 아래도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우는 뒤로 젖힌 고개가 뻐근해 아래로 떨구었다. 고개를 내리자 제 안을 들락거리는 우람한 성기가 보였다. 삶 자체가 포르노 같았어서 그런지 무얼 봐도 야하지가 않았는데, 범이 찍고 있는 포르노는 퍽 야했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었다. 슬로우 모션처럼 해 주고 있는 허리 짓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이는 것도 같았다. 물리적 자극과 시각적 자극이 함께하자 선우도 절로 야한 신음을 터뜨렸다.
선우는 저도 모르게 범의 복근에 손을 가져갔다. 한 줄, 두 줄, 세 줄, 하고 세며 초콜릿 조각조각을 쓸어내리다 보니 어느새 장골에 닿았다. 범은 장골까지 튼튼해 보였다. 큰 뼈에 큰 근육을 붙여 놓은 큰 몸임에도 둔탁하지 않고 유연했다. 튕기고, 돌리고, 털고. 범은 몸을 잘 썼다. 둔탁한 건 그의 물건뿐이었다.
장골을 따라 더 내려가니 음모가 보였다. 제겐 없는 게 있으니 선우는 그것 역시 한번 만져 보았다.
범은 제 몸을 더듬는 선우를 흐뭇하게 보았다. 자식새끼 재롱 보듯 했다. 부러 느릿하게 허리를 놀리며 선우가 마음껏 더듬을 수 있도록 선우의 스팟을 강하게 자극하지 않았다.
“여보 좋아? 네 서방 몸 죽이지?”
“겸손, 하아……. 하, 좀 겸손해 보세요.”
“누가 봐도 좋은데 안 좋다 그러는 게 더 재수 없지 않냐?”
저 말인즉, 제 몸은 누가 봐도 좋다는 소리였다. 선우가 푸스스 웃었다. 선우가 웃자 범이 예쁘다, 했다. 볼록 올라간 선우의 광대에 쪽 뽀뽀도 해 주었다.
“쌔끈한 맛에 데리고 살아라. 오빠 평생 쌔끈할게.”
선우는 자신을 데리고 살아 달라는 범의 말이 좋았다. 데리고 살아 주는 쪽이 갑이니까, 제가 버림받는 쪽은 아닐 거란 소리로 들렸다. 사람 일은 또 모르는 거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는 빡빡하다 싶을 정도로 뱉은 말은 꼭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언젠가는 마음이 변할 거다, 하며 지독히 현실적인 소리를 뱉는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선우가 고개를 들어 범의 입술에 쪽 뽀뽀했다. 그러곤 쑥스러워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느긋하게 제 구멍을 오가는 범의 성기를 바라보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네……. 알았으니까 빨리 좀 해요. 어느 세월에 두 번 싸시게요.”
식탁 끝에 매달려 있던 접시들이 덜그럭덜그럭 위태로운 소리를 냈다. 접시만 위태로운 건 아니었다. 선우는 이러다 식탁 자체가 부러지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불안한 만큼 범에게 더 매달리게 되었다.
그에 범이 환장하게 좋아했다. 부러 식탁이 더 흔들리게 제 무게를 실어 밀기도 했다. 식탁은 부러지지 않았지만 접시들은 버티지 못했다.
턱! 턱! 턱! 턱!
둘의 결합을 알리는 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부엌 안을 울렸고, 와장창 접시 깨지는 소리가 둘의 뜨거운 정사에 자극을 더했다.
“허읏……! 윽! 윽! 형! 형……!”
식탁 위에 올라앉은 선우가 풀린 눈으로 신음을 뱉으며 범을 불러 댔다. 범은 으르렁거리며 더 불러 달라 했다. 선우가 형이란 한 단어를 신음 대신 내지를 때마다 범의 허리 짓은 퍽퍽 소리를 내며 거세어졌다. 그래도 오래지 않아 거센 허리 짓의 세기를 스스로 낮췄다.
아주 무아지경인 것 같았는데 참는 게 신기했다. ‘하으……. 마누라 잡는다, 잡아.’라고 혼잣말을 하며 중간중간 자신을 진정시키는 시간을 가졌다.
이미 쥐 잡듯이 잡히고 있던 선우는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지적할 정신은 없었다. 다시 부풀어 오른 제 성기가 범이 밀려오는 순간마다 아랫배를 툭툭 때렸다. 한 번 쌌으니 더 오래 버틸 거다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손가락과는 차원이 다른 몽둥이가 전립선을 쿵쿵 찍어 대는 통에 사정감은 금세 또 차올랐다.
이왕 접대부 할 팔자일 거, 좀 잘 느끼면 좋으련만 참 못 느끼는 몸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분명 그랬었는데, 알고 보니 저는 토끼였다.
나만 갈 순 없다 생각한 선우가 헉헉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아래를 더욱 조이기 시작했다. 도발 아닌 도발에 범은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른 ‘이선우……!’를 포효처럼 내지른 뒤, 허리 짓을 더욱 빠르게 했다. 허리를 튕기는 동시에 팔에 걸고 있는 선우의 다리를 제 쪽으로 끌었다. 박자가 딱딱 들어맞았다.
일방이 아닌 쌍방으로 돌진하니 아래는 더욱 깊숙이 박히기 시작했다. 선우는 상체를 이리저리 튕기며 꺽꺽 넘어갔다. 범도 사정감이 슬슬 들어차는 것 같았다. 선우가 사람 오가는 건 잘 몰라도 이런 기척은 귀신이었다. 곧 싸시겠구나, 하는 기척. 여기서 사고를 확장해 어쩌다 그런 걸 잘 알게 되었는지까지 생각하면 기분이 조금 좆같아지는데 범은 선우의 머릿속에 생각이 들어찰 시간을 주지 않았다.
떡 치다 말고도 아프다, 지루하다, 할머니 보고 싶다, 잘만 생각하던 선우의 머릿속을 쾌감이 메웠다. 점점 잠식해 가더니 순간 팟! 하고 터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선우의 성기가 두 번째 정액을 쏘아 올렸다.
“어억……!”
범은 푸드덕거리는 선우를 껴안고 그대로 들어 올렸다. 식탁에 걸치고 있던 선우의 엉덩이가 공중에 떴다. 식탁도 불안불안하긴 했지만 그나마도 지푸라기 같던 그 식탁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선우가 범의 목에 꼭 매달려 어깨에 얼굴을 박고 숨을 헐떡였다.
범은 얼굴을 숨긴 선우의 귓가에 뽀뽀를 해 주었다. 룰루랄라 아주 신바람이 났는지 여보야, 나와 봐, 저기요? 똑똑? 하며 혼자 원맨쇼를 했다.
범이 그러든 말든 선우는 숨을 고를 만큼 다 고른 뒤에야 얼굴을 들었다. 범도 싸기 직전까지 간 것 같은데 이미 두 번째인 제가 먼저 터져 버렸다.
선우는 제가 사정하는 바람에 잠시 행위가 멈춰 범이 절정에 이르는 데 흐름이 끊기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안 싸실 거예요? 그냥 계속하세요. 어차피 금방 가실 것 같던데…….”
계속하라 그러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 같던 범이 쓰읍, 하고 혀를 찼다.
“자지 잘 아는 것 같은 발언 하지 마라.”
순간 선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게서 걸레 티가 났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걸레이니 걸레 티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하고 체념했다.
고상한 척 자신을 꾸며 낼 수 있는 성격도 아니어서 노력보단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 여겼다. 일반인으로 오래 살아가다 보면 언젠간 이 물이 빠질 거다. 화류계에서 굴러먹던 물. 할 수만 있다면 몸을 세탁기에 돌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으니 때가 옅어지길 기다려야 했다.
선우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허나 본디 생글생글 웃고 있는 모습이 자주 있진 않아 평상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표정이었다.
“아, 네.”
선우가 딱딱하게 답했다.
“여태 네가 본 건 자지도 아니다.”
아, 제가 여태 본 게 자지가 아니면 제가 여태 구멍이나 대 주며 굴러먹던 것도 아니니 걸레라 면박을 준 건 아닌가 보았다. 선우는 표정을 풀었다. 하지만 웃지는 않았다.
그러자 범이 뜬금없이 ‘씨발, 존나 귀엽다.’ 했다. 선우가 뭐가요? 하고 묻자 안 웃는 게 귀엽다며 싱거운 대답을 했다. 그러곤 새가 모이를 쪼듯 선우의 입술에 쪽쪽 뽀뽀를 퍼부었다.
범의 뽀뽀 세례에 선우의 입꼬리가 씰룩이기 시작했다. 간지러웠다. 결국은 웃을 때까지 뽀뽀를 받았다.
선우가 웃으니 범은 또 욕을 했다. 이번엔 ‘씨발, 존나 예쁘다,’였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하던 거나 마저 하세요. 타이밍 다 지나서 못 싸겠어요.”
“……야, 너 예쁘다는 소리 존나 많이 들어 봤냐? 하긴, 많이 들어 봤겠지.”
범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며 갑자기 화를 냈다. 예쁘다는 소리가 어떻게 쓸데없는 소리일 수 있냐고 구시렁거렸다. 얼마나 많이 들어 봤으면 애가 감동이 없냐고도 했다.
선우는 뻘하게 범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저러고 오두방정을 떠는데 제 안에 들어찬 성기는 여전히 딴딴했다. 해명의 가치도 느끼지 못해 아니다, 오해다, 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
선우가 부정하지 않자 범은 제 생각에 확신을 얻었는지 ‘와, 나 돈다.’ 하며 더욱 열을 올렸다.
“어느 연놈들이 예쁘다 그랬냐?”
“음……. 엄마?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선우가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제게 예쁘다 했던 사람들을 나열해 주었다. 그들은 대체로 ‘예쁜 내 새끼.’ 혹은 ‘예쁜 우리 강아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었으니 외적인 면을 칭찬한 건 아니었을 것이다.
졸지에 처가 식구들을 연놈이라 칭하게 된 범은 아, 하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금세 다시 능글맞아져서는 ‘아유, 말을 하지.’ 하며 어물쩍 웃어넘겼다. 아주 보는 눈이 있는 훌륭한 분들이라고 아부도 떨었다.
“아 됐고, 진짜 안 하실 거예요? 그럼 좀 빼세요. 언제 싸시려고 이래요?”
범이 어허! 하며 가장을 존중해야지 구박하면 쓰냐 했다. 조선 시대에 태어났어도 양반은 아니었을 것 같은 사람이 사상은 되게 유교였다. 딱 봐도 상놈인데. 아, 추노 같은 거 했으면 딱이었겠다.
선우는 아래에 흉측한 걸 박고 팔자 좋게 실없는 생각을 하다 피식 웃었다. 비웃은 것도 있지만 실은 범과 노닥거리는 게 즐겁기도 했다.
선우가 참나, 하고 혀를 끌끌 차며 웃음을 흘리자 범에게서 다시 꾸중이 돌아왔다.
범은 ‘어허! 서방님 말씀하시는데!’ 하고선 잠시 생각하더니 ‘씨발. 웃는 건 또 예쁘니까 뭐라 할 수가 없네.’ 했다. 그는 저 혼자 북도 치고 장구도 치다가 등신같이 웃었다. 그래도 깔끔하게 인정하는 모습은 조금 멋졌다.
“난 싸고 싶으면 바로도 싼다. 내 자지는 철저히 통제가 된다고. 이 정도는 돼야 달고 있다 하는 거지. 씨발, 노블레스 그 도박쟁이들 달고 있는 게 자지냐?”
시도 때도 없이 발딱발딱하는 게, 다 통제하신 거였구나. 선우는 비아냥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도박쟁이들을 비하하는 범이 마음에 들어 그러지 않았다. 대신 범의 입술에 쪽 뽀뽀했다.
“그럼 바로 싸 보세요.”
선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범은 사정없이 허리를 튕기기 시작했다. 선우는 악! 악! 소리를 지르며 범의 목을 조를 기세로 꽉 매달렸다. 제 엉덩이가 팡팡 튀어 올랐다 다시 내리 찍혔다. 전립선이 쿡쿡 찔리기 시작했다. 벌써 세 번째여서 그런지 이제 선우의 성기는 단번에 벌떡 서지 못하고 파르르 떨렸다. 서긴 섰는데 지팡이 짚은 노인네처럼 힘겨워하는 느낌이었다.
“허윽……! 씹, 선우야, 형 쌀까? 어? 싸 줘?”
게거품을 물다시피 한 선우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어디? 어디 싸 줄까?”
범은 제 이를 다 갈아 버릴 듯 포효하면서도 어디에 싸 주냐 챙겨 물었다.
“아! 아! 아! 안에!”
팡! 하고 튀어 오른 선우의 엉덩이가 마지막까지 안전하게 범의 품으로 돌아왔다. 동시에 선우의 안에는 뜨거운 씨들이 흘러들었다. 빤다면 빨고, 싼다면 싸고. 참 대단한 사람이었다.
선우는 터져 버릴 것만 같은 범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다시금 그의 어깨에 얼굴을 박고 숨을 골랐다.
범 역시 ‘하아…….’ 하며 더운 숨을 골랐다. 느긋하게 허리를 돌리며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선우의 안에 제 씨들을 짜 넣었다. 잠시 선우의 체온을 느끼며 사정의 여운을 즐기다 발걸음을 옮겼다. 제 어깨에 코를 박고 얼굴을 숨겨 버린 선우를 보며 피식 웃었다. 선우의 귓가에 쪽쪽 뽀뽀했다.
“이선우, 선우야.”
범이 다정한 목소리로 선우를 불렀다.
선우는 얼굴을 박은 채로 뚱하게 왜요, 했다. 힘드니까 건들지 말라는 투였다. 허나 선우의 퉁명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범은 여전히 감미로웠다. 그는 낮고 굵은 목소리로 징징거렸다.
“혀 빨고 싶어. 입술 쭉쭉 빨아 줘. 쌌다고 방치하지 말고, 어? 좆질 끝났다고 매정하게 굴면 오빠 상처 받는다? 뽀뽀해 줘. 아니, 뽀뽀하다 키스해 줘.”
“형이요.”
선우는 또 뚱하게 오빠라는 호칭을 지적했다. 그간 몇 번 지적하다 귀찮아서 놔두었는데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볼 수 있으니 이쯤 한 번 지적을 해 주어야 했다. 고개는 여전히 들지 않았다.
범은 지적질을 당하고도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선우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똥 씹은 표정 존나 귀여운데, 라고 혼자 중얼거렸다.
“저 똥 씹은 표정 지은 적 없는데요.”
“아 그런 적 없음 고개 들고 오빠 봐 봐.”
“……조금만 더 쉬고요.”
범이 푸스스 바람 빠진 웃음을 흘리며 쪽, 선우의 머리통에 입을 맞췄다.
“알았어, 미안해. 방해 안 할게.”
범은 선우를 둥기둥기 얼러 주며 더 이상 뭐든 조르지 않고 선우가 쉬는 걸 기다려 주었다.
‘미안할 짓까진 아닌데.’
범의 사과에 선우는 마음이 약해졌다. 고개를 살짝 틀어 범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갔다. 그러곤 저도 미안하다 속닥였다. 불퉁하게 말한 게 좀 미안해서.
“괜찮아. 예뻐.”
느끼하긴 하지만 듣기는 좋은 말이었다. 하여간 범은 예쁘다는 말이 너무 헤펐다. 몸은 커다란 주제에 내숭도 잘 떨고 끼도 잘 부렸다. 곱씹어 보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터졌다.
“난 네가 부루퉁하면 그렇게 섹시할 수가 없어.”
“아, 네.”
“그것도 꼴려. 딱딱한 거. 씨발, 말투가 꼭 비서 같잖아. 네가 그럴 때마다 사무실에서 떡 치는 상상해.”
“…….”
선우의 ‘네.’는 대체로 범의 헛소리를 대충 반응해 주고 치우기 위함이었다. 자꾸 씹기는 뭐하니까. 그게 아니면 좆대로 하세요, 라는 의미로 종종 쓰였다. 헌데 범의 해석은 신박했다. 선우는 할 말을 잃었다. ‘네.’를 못 하니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 한번 출근 같이 할래?”
범이 씩 웃으며 물었다. 눈썹을 씰룩거리는 게 퍽 음흉했다.
“아니요.”
“너는 인마, 젊은 애가 결정을 성급하게 내리는 경향이 있어. 사람이 신중해야지.”
껄렁껄렁한 동네 형이 세상 사는 법에 훈수를 두는 모양이었다. 저나 똑바로 살지.
선우가 입술을 삐죽였다. 출근 같이 할래? 라는 질문에 아니요, 한 번 했다가 너 그렇게 경솔하게 살 거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럼, 결혼도 다시 생각해 볼까요? 신중하게?”
범이 멈칫했다. 이내 코오- 하고 감탄하며 머리통도 쪼끄만 게 잘도 굴러간다 칭찬했다. 그리고 칭찬을 마치자마자 생떼를 썼다. 무를 거면 배를 째고 무르라고 했다. 선우의 배가 아닌 제 배를 째라 하였으니 죽일 거다 위협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조금 무서운 건, 진심으로 째라는 것 같았다. 너는 초보니까 식칼보단 메스가 편하지 않겠냐 하더니 다 째고 나면 심장은 꺼내 가져가라 했다.
선우는 ‘심장은 왜요?’ 하고 되물어 주지 않았다. 물어 주길 바라는 것 같았지만 그의 눈빛이 너무 기름져 외면했다. 허나 안 물어도 소용없었다. 범은 답하였다.
“그건 네 거야.”
선우가 자그맣게 우웩, 하고 토하는 시늉을 했다. 진짜 토가 나온 건 아니고 장난이었다. 오리는 제 아빠를 닮았는지 저런 소릴 듣고도 평화로웠다. 면전에 대고 입덧 한 번 시원하게 해 주고 싶은데, 진짜 속은 멀쩡하기만 했다.
범은 선우의 안에 박혀 있던 제 성기를 쑤욱 빼내고 제 방 침대에 선우를 던져 놓았다. 그러고선 저는 침대 앞에 계속 서 있었다. 허리에 척 손을 얹고 선우를 가만 내려다보았다. 위협적인 덩치가 선우에 그늘을 만들었다.
선우는 눈동자를 굴려 범의 눈치를 보았다.
“안 무를게요.”
얌전히 범이 원하는 답을 해 주었다. 얌전만 했지 말투는 심드렁하기 그지없었다. 제가 졌다기보단 져 준다는 투였다. 범이 픽 웃었다. ‘기개 봐라. 웬만한 깡패보다 낫다.’ 하며 선우가 알 수 없는 소릴 했다.
“출근도 같이 해 줘. 회사 앞에 연포탕 죽이는 데 있어.”
“연포탕이 뭐예요?”
“낙지. 여름엔 낙지지. 쓰러진 소도 일으켜 세운다 그게.”
“……그런 거 왜 자꾸 드세요?”
“아 물론 나는 안 먹어도 되지. 하지만! 우리 이선우가 회사까지 행차를 하신다 하면 특별히 사 주겠다는 거 아니냐 지금.”
범이 거들먹거렸다. 선우는 범의 원맨쇼를 지켜보다 조금 고민해 보곤 알겠다고 했다. 대신 떡은 연포탕인가 뭔가를 먹기 전에 치자고 했다. 범이 안 할 거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기에 일단 한다는 건 당연한 전제로 두었다.
범도 안 할 거라는 빈말이나 변명은 하지 않았다. 혼자 어흐, 하며 좋아했다. 선우의 앞에 발딱 선 성기를 들이대며 정말로 신나 했다. 불알도 춤을 추는 것 같아 선우가 피식 웃었다.
“점심 전이면, 아침부터 치자는 거야?”
범이 어우- 여보 야해, 하며 선우의 어깨를 밀었다. 그에겐 앙탈이었을지 모르나 호랑이 앞발에 채인 선우는 발라당 넘어갔다. 그래도 침대가 푹신해 별 타격은 없었다.
“근데, 먹고 힘내서 치는 게 낫지 않아?”
“어차피 힘은 형이 내는데, 형은 안 먹어도 되잖아요.”
“당연하지! 걱정 마라. 그런 거 안 먹어도 끄떡없다.”
“네.”
범은 선우의 머리를 쓸어 넘겨 주며 온 얼굴에 쪽쪽 입을 맞췄다.
기분은 좋았지만 몸이 너무 고단해 눈이 감겼다. 저녁을 배 터지게 먹고 섹스도 한바탕 하여 피곤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선우가 아는 한 범은, 절대 두 번을 채우고 잘 거다.
‘어쩌지, 졸린데. 자고 있을 테니 알아서 하라고 할까? 충분히 하실 것도 같은데.’
선우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감았던 눈을 무겁게 떠 올렸다.
뽀뽀를 마친 범이 선우의 발목을 그러쥐었다. 양 발목을 한 번에 잡아 다리를 들어 올렸다. 선우를 생닭처럼 만들어 놓고 선우의 구멍에서 흐르는 제 씨들을 구경했다. 씨발 돈다, 했다.
선우는 그러든지 말든지 했다. 얌전히 보고만 있는 거니 기운도 없고, 그냥 놔두었다.
범은 흐르는 정액을 손가락으로 쓱쓱 모아 다시 구멍에 수납해 주었다. 오리 친구들이 샌다며 꼼꼼히도 챙겨 넣었다. 그러다 검지 손가락을 뽁, 하고 넣어 새지 않게 틀어막는 짓도 했다.
선우는 개또라이, 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계속하게 두었다. 싸움도 힘이 있어야 한다는 말, 엄마가 자주 하던 말이었는데 살다 보니 이토록 맞는 말이 없다.
하긴, 엄만 항상 맞는 말만 했다. 너무 맞는 말만 하니 제대로 된 반박도 못 하면서 잔소리 좀 그만하라 투덜거렸었다. 돌이켜 보면 하나하나 명언인데, 그냥 들을 걸 그랬다. 선우는 범이 제게 자주 하는 투로 ‘잔소리해 줘. 잔소리해 주라.’ 하고 엄마에게 생떼를 써 보았다. 범의 무데뽀를 따라잡기엔 한참 모자란 것 같아 혼자 푸스스 웃었다.
아, 이제 생각해 보니 엄마는 아빠와 싸울 힘이 없어 그냥 집을 나온 건가 보았다. 싸우지도 않고, 참지도 않는 방법이었구나. 멋지다. 하긴,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오메가에 계집애를 낳았다며 서운한 소리를 하여 갓난아기인 엄마를 데리고 가출을 했었다 했다. 먹던 미역국을 엎었댔나? 아무튼 그 엄마에 그 딸이다.
선우는 할머니도, 엄마도 둘 다 귀여워 씩 입꼬리를 올렸다.
“너 왜 따숩게 웃냐? 오빠 설레게. 물 마실래?”
“네.”
“수박은?”
“먹을래요.”
“나는?”
“……안 지치세요?”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 질문이었다. 허리 턴 거 안 지치냐, 음담패설 안 지치냐, 등등.
“안 지치는데?”
“아……. 네.”
“선우야.”
“네?”
“뽀뽀해 줘.”
어려운 건 아니다만, 선우는 제 음부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범에게 몸을 일으켜 가며 뽀뽀를 해 줄 여력이 없었다.
“일로 대세요. 거기까지 갈 힘 없어요.”
범이 냉큼 올라와 선우의 입술 앞에 제 입술을 내밀었다. 1센티 정도의 거리가 남았다. 이 정도면 그냥 제가 갖다 붙일 것이지, 끝까지 받아 내야 직성이 풀리는지 범은 선우가 뽀뽀를 해 줄 때까지 그 상태로 가만있었다. 선우가 옜다, 하고 쪽 입술을 부딪혀 주었다.
“어흐, 여기도.”
범이 혀를 내밀었다.
선우도 혀를 내밀어 범의 혀끝을 톡, 부딪혀 주었다.
범은 이번엔 뭘 해 달라 그럴까 고민하는 눈치였다. 도대체 물은 언제 마실 수 있는 건지 몰랐다. 선우는 물을 갖다 주면 입술도, 혀도 쭉쭉 빨아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먼지처럼 사라졌다.
‘빠르다, 빨라.’
갑자기 호랑이가 빠른가, 치타가 빠른가 궁금했다. 일하던 중 너무 아프게 하는 사람을 만나면 습관처럼 딴생각을 했는데 아직 그 습관이 남아 있어 영양가 없는 생각엔 선수가 되었다. 치타가 더 빠르겠지? 하며 무거운 눈을 끔벅였다.
선우는 떡 치고 싶음 깨울 거라 생각하며 잠들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의 끈을 놓아 버렸다. 그대로 스르륵 잠이 들었다.
***
선우가 눈을 떴을 땐 사위가 깜깜했다. 저는 범의 팔을 베고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다. 범의 나머지 한쪽 팔은 선우의 아랫배에 올라 있었다. 뜨거운 손으로 오리를 덥혀 주었다.
선우는 살짝 고개를 틀어 머리맡 탁상에 놓인 시계를 보았다. 전자시계는 새벽 세 시 반을 알리고 있었다. 평소 자던 시간보다 이른 시각에 기절하듯 잠들어 깨 버렸나 보다.
제가 잠든 사이 범이 몸을 닦아 주었는지 보송보송했다. 푹신하고 부드러운 침구에 감기는 맨살이 기분 좋았다. 그래도 나머지 잠은 제 방에 올라가서 편히 자고 싶었다.
선우가 조심조심 배 위에 얹어진 범의 팔을 걷어 냈다.
“어디 가.”
범의 목소리가 어둡고 고요한 방의 적막을 깼다. 선우의 귓가에 꽂히는 음성이 유독 낮게 울렸다.
선우는 깜짝 놀라 몸을 튕겼다. 어우씨! 하고 작게 내뱉었다. 죽이려고 부른 것도 아닐 텐데 소름이 돋았다.
“아, 아니……. 제 방 가서 자려고…….”
범은 일어나려는 선우를 휙 끌어당겼다. 결박하듯 품에 안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자자, 했다. 길게 입씨름을 하기가 귀찮은 것 같았다. 쓸데없는 소리를 차단하는 경고처럼 위압적으로 들렸다.
선우는 얌전히 네,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포기했다.
왠지 들어가는 건 내 맘인데 나가는 건 내 맘이 아닌 굴에 들어와 버린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잘만 다시 잠에 들었다.
선우는 범의 품에 자신을 던진 채로 뭐 어떻게든 되겠지, 했다.
***
“으……. 으으……. 아 뭐야…….”
선우가 떠지지 않는 눈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무언가 진득하고 축축했다. 창을 통해 쏟아지는 해가 침실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날씨만 보아선 상쾌한 아침이어야 했다. 초점 없는 눈으로 상황을 살피니 제 가슴에 파묻힌 머리통이 보였다.
범은 아침부터 선우의 유두를 희롱하며 발정 난 페로몬을 뿌려 대고 있었다. 한쪽은 혀로 할짝할짝 핥았고 한쪽은 손가락으로 달랑달랑 만졌다.
저릿한 쾌감에 끙끙 앓던 선우가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상체가 안 움직여 하체를 마구 휘저었는데 그러다 그만 범의 급소를 무릎으로 찍어 버렸다. 세게 찍히지는 않았지만 아프긴 더럽게 아플 것이다.
“윽……!”
이렇게까지 할 마음은 아니었는데, 어째 맞은 놈보다 때린 놈이 더 놀랐다. 선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범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선우의 가슴에서 얼굴을 떼지 않았다. 그의 고통은 선우의 유두에 고스란히 내렸다. 빠는 힘도, 만지는 힘도 아까보다 강해졌다.
이미 기립해 있던 선우의 성기는 범의 애무에 더욱 단단해져 갔다. 귀두 끝이 조금씩 젖어 들기 시작했다.
“형! 형! 혀엉……! 하으, 잘못, 잘못했어요…….”
잘못했다는 선우에 범이 하던 짓을 멈추었다. 그의 머리가 가슴에서 떨어져 스윽, 올라왔다.
선우는 눈을 깔았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알기에 진짜 미안하긴 했다. 발길질이고 주먹질이고 한 번 날아올 법도 한 고통이었을 텐데 참은 게 용할 정도였다.
범은 내리깔린 선우의 속눈썹에 뽀뽀했다. 콧방울도 쪽쪽 빨았다. 화는 안 났나 보았다.
간지러움에 선우의 얼굴 여기저기가 씰룩씰룩 움직였다. 선우는 그래도 죽이진 않겠구나, 하고 안심했다.
“이선우.”
뽀뽀를 마친 범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선우를 불렀다.
‘뭐야, 봐주는 척이나 말든가.’
선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들어 범과 눈을 맞췄다. 긴장이 되어 저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일단 오리를 감쌌다. 혹시나 패면 결혼이고 뭐고 집을 나가야겠다고 혼자 각오도 다졌다.
범이 씩 웃으며 호 해 줘, 했다. 순간 선우는 그의 덩치가 참 아까웠다.
“조금만 지나면 나아요.”
고통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호, 따위는 쥐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여간 이선우 차갑다, 차가워. 너 때문에 에어컨도 안 틀어. 추워서.”
“빵빵한데요?”
“뭐가? 네 엉덩이가?”
“…….”
아침부터 한 놈은 헛소리를 하고, 한 놈은 헛웃음을 지었다. 나름 즐거운 아침이었다.
범이 선우의 엉덩이를 쭈물쭈물 만졌다. 엉덩이 얘기가 나온 김에 한번 만져나 보는 거라고 새침을 떨었다. 하지만 엉덩이 얘기가 나오지 않았어도 만졌을 사람처럼 되게 좋아했다.
방금 불알을 걷어차인 사람이 퍽 해맑았다. 수줍은 표정으로 ‘자지 비벼도 돼?’ 하고 물었다.
“안 된다고 하면 안 하실 거예요?”
“안 할게. 근데 호는 해 줘. 불알 터진 거 같아. 네 서방 둘째 못 만들 수도 있어. 빨리 봐 줘 봐.”
내용은 한 구절, 한 구절 징징이었지만 말투는 차분했다. 저런 소릴 하면서도 선우의 까치집 진 머리를 쓸어 올려 주었고, 선우의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오리에게 아침 인사를 전했다.
오리한테는 멀쩡한 아빠인데 제겐 왜 멀쩡한 남편이 못 되는 걸까, 선우는 조금 의아했다.
“제가 본다고 알아요? 병원엘 가야지.”
선우는 구시렁거리면서도 꼼지락꼼지락 아래로 기어갔다. 범의 성기를 한입에 와앙, 하고 먹어 버렸다. 불알은 뭐, 안 봐도 멀쩡할 거다.
선우가 간밤에 잠들어 버린 저를 깨우지 않고 얌전히 둔 범에게 옜다, 하고 선물을 주었다. 깊게 고갯짓을 시작하니 위에선 호들갑이 들려왔다.
“허윽……! 선우야, 선우야……! 씨발, 아침부터 이게 무슨 횡재야.”
아침부터 봉변을 당한 건 까먹었나 보다. 뒤끝은 없어 좋았다.
선우의 머리카락을 파고든 범의 손가락이 뭔가를 그렸다. 무슨 글자를 쓰는 거 같았다. 뭐라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평범한 소린 아닐 것이다. 아, 혹시 더 세게 빨아 달라고 쓰는 건가?
선우가 쭙쭙 흡입의 강도를 높였다. 그에 범이 윽……! 하며 손 글씨를 멈추고 선우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래도 잡고만 있지 별걸 하지는 않았다.
쭉쭉 열심히도 빨아 주던 선우는 범의 성기에 핏줄이 불거지자 터진 것 같다던 고환을 손으로 살살 굴려 주기 시작했다. 터지긴 무슨, 탱글하기만 했다.
“어윽……! 윽!”
범의 포효가 방 안을 울렸다.
잘만 싸는 걸로 보아 기능도 멀쩡했다. 둘째 걱정 역시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선우가 피식 웃었다. 범은 쥐고 있던 선우의 머리채를 놓고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선우는 거칠어진 그의 숨소리가 듣기 좋아 가만 그 소리를 감상했다.
범이 선우를 끌어 올려 사정의 여운을 함께했다. 선우의 얼굴 구석구석을 핥아 주고 뽀뽀해 주었다. 그러다 스멀스멀 손을 뻗어 선우의 성기를 매만졌다.
“제 건 됐어요. 그만해요.”
“아, 이 분위기 아니냐? 난 또 우리 여보가 아침부터 후끈 달아오른 줄 알았지?”
“뭘 달아올라요? 어제 두 번 싼다 그러고 한 번밖에 못 쌌으니까 해 준 거예요.”
“응? 나 어제 두 번 쌌는데?”
선우의 얼굴에 맹한 표정이 떠올랐다. 아무 기억이 안 났다. 아무리 기절해 잠들었어도 그렇지, 어떻게 저 흉측한 걸 박는데 잠을 잤지? 선우는 제 둔함이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범에게 심드렁히 물었다.
“자는데 알아서 하셨어요?”
“어. 딸딸이.”
선우가 여전히 맹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니구나.
범은 마누라를 옆에 두고 딸딸이나 치는 서방의 마음을 네가 생각이나 해 보았냐 칭얼거렸다. 되게 비참했다고 앙탈도 부렸다. 그러다 음흉한 얼굴을 걸고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근데 또 설움이 아주 싹 씻겨 버리네?”
찡긋 윙크를 하며 선우의 손을 끌어다 제 중심에 얹었다. 펠라를 해 주어 화가 풀렸다는 소리인 듯했다.
선우가 대수로울 일도 아니라는 듯 ‘그냥 넣지 그러셨어요.’ 하자, 범은 제 가슴팍을 퍽퍽 내리치며 답답함을 표했다.
“아니, 넣을라 치면 뒤척이고, 넣을라 치면 뒤척이고. 어떻게 넣어? 누구 놀리냐!”
“아, 또 넣으려고는 하셨나 봐요?”
“와, 너 진짜 하나도 기억 안 나냐?”
“잤는데 어떻게 기억이 나요.”
범은 수발도 그런 수발이 없었다며 억울해했다. 그러고선 마치 동화를 구연하듯 선우가 기억하지 못하는 간밤의 제 선행을 알려 주기 시작했다. 시작 전에 ‘유오리, 너도 이 아버지 말씀 잘 들어 봐라.’ 했다.
근엄한 척은, 선우는 조금 비웃었지만 그래도 어찌 되었든 오리와 함께 범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마누라가 먹겠다니까 내가 또 물이랑 수박을 냉큼 들고 왔지. 근데 와 보니까 네가 자고 있는 거야.”
범은 이 대목을 서술하며 통탄을 금치 못하는 표정 연기를 해 주었다. 선우가 부러 딴 곳을 바라보며 듣는데도 개의치 않았다.
“아무튼 그래서 쟁반 놔두고 다시 나갔지. 숟가락 가지러.”
“숟가락은 왜요?”
“들어 봐 봐. 다 깊은 뜻이 있으니까.”
깊은 뜻은 개뿔. 선우는 범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네 머리를 딱, 이렇게 받쳐 안고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물을 떠먹였거든. 근데 꼴딱꼴딱 잘 받아먹더라? 그러니 내가 신이 나, 안 나?”
범은 신이 나서 수박도 숟가락으로 살살 긁어 먹였다고 했다. 선우가 수박을 줄 땐 히죽 웃기까지 하더라며 선우의 웃음도 따라 했다.
내가 언제 저렇게 멍청하게 웃었다고, 선우는 범의 시연을 보며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지적하진 않았다. 상황을 듣고 보니 정말 수발을 든 건 맞았다.
“아니 근데 생각해 봐. 물도 잘 먹고, 수박도 잘 먹고. 자지라고 못 먹을 거 있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가 너한테 허락도 구했어. 형이 그런 남자다. 반해라.”
“…….”
“내가 ‘넣는다.’ 하니까 네가 ‘네.’ 하는 거야. ‘응.’이었음 내가 허락이라고 생각도 안 했지. 분명 ‘네.’였다. 사람이 자다가 응은 해도 네는 안 하거든.”
“아, 네…….”
“그래 그렇게! 그러고 엉덩이도 막 씰룩거리더라? 난 또 넣으라고 자세 잡아 주는 줄 알았잖아. 그렇게 오빠 마음 다 설레게 해 놓고, 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애간장을 녹이면은, 야속해, 안 야속해?”
굉장히 정신 사나운 스토리텔링이었다. 선우는 반은 흘리고 반은 들었다. 대충 이해했다. 범이 어젯밤 고생했다는 것 정도. 사나이답게 혼자 가슴에 묻을 일이지, 구태여 설명해 주는 게 조금 못난 것도 같았다. 분명 못났는데 왜 귀여울까?
선우가 범을 빤히 바라보았다. 역시나,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하나 없는 얼굴에 푸스스 웃음이 났다.
범은 이야기의 마무리에 갑자기 늠름한 목소리를 냈다. 근데 다 괜찮다, 오빠 다 풀렸다, 하며 씩 웃었다.
‘얼씨구, 호방하다 호방해.’
선우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볼록 올라가는 광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거 노란색 망고수박이었는데.”
“우와, 정말요?”
“어. 너 그런 거 주면 좋아하잖아. 신기한 거. 애새끼처럼.”
범이 자그맣게 귀여워, 라는 소리를 덧붙였다. 선우는 범보다도 귀엽게 구는 구석이 없는 절 귀엽다 해 주는 게 쑥스러웠다. 그는 버릇처럼 쉬이 내뱉는 말일 텐데 그거에 쑥스러워하는 자신이 창피해 애꿎은 머리만 긁적였다.
“남았다. 아침밥 먹고 먹어라.”
“감사합니다.”
“오냐, 이번엔 맨 정신에 많이 먹어라.”
선우가 범의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범이 애교는, 하며 피식 웃었다. 선우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놓았다. 방정맞게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는 한껏 유치하게 굴다 갑자기 어른스럽게 굴었다.
과묵해진 범이 선우를 빤히 보았다. 선우는 점점 빠르게 뛰는 제 심장 소리가 신경 쓰여 그만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범이 팔을 뻗었다.
“마누라, 이리 와. 안아 보자.”
선우는 얌전히 그 품에 들어가 안겼다. 범의 심장이 더 빠르게 뛰어 제 심장 소리가 묻히는 듯했다. 저만 좋아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선우의 이마에 범의 입술이 내렸다.
선우가 씩 입꼬리를 올렸다. 안정감이 행복했다.
범은 그렇게 선우를 안고 어젯밤 자신이 들었던 선우의 잠꼬대를 가슴에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