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장. (3/10)

3장.

비슷한 나날이 이어졌다. 둘은 각자의 일상을 보내다 범이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함께 시간을 보냈다.

신혼부부처럼 때를 가리지 않고 뜨거웠다. 제대로 된 섹스는 하지도 못하면서 갖은 방법을 동원해 사랑을 나눴다. 선우는 범에 대한 경계를 풀어 갔고 서서히 제 울타리 안에 범을 끼워 주었다. 한 마디 할 거 두 마디 하며 선심 쓰듯 조금씩, 끼워 주기 시작했다.

더럽고 치사할 만도 한데 범은 선우의 작은 변화 하나하나에 희열을 느꼈다. 어느 날 저녁, 선우가 제게 태몽 이야기를 해 주었을 땐 밥상을 엎었다. 선우가 말을 길게 안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조곤조곤 말하니 꼴리기가 말도 못 했다.

범이 밥상을 엎자 선우는 밥 먹다 말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엄하게 굴었다. 반장 같은 걸 했을 것 같은 샌님의 얼굴로 정색을 하고서는 ‘아 사장님, 왜 이러세요.’ 했다. 범은 씨발, 하며 선우의 입술을 잡아먹었다. 화를 내던 선우는 범의 키스를 받으며 제 발로 범의 자지를 비벼 주었다. 샌님은 무슨, 알고 보면 요물이었다.

범도, 선우도 서로에게 푹 빠져 보냈다. 그렇게 일주일가량이 흐르고 선우가 할머니 댁에 내려갈 날이 일주일 정도 남았을 때, 범은 중국으로 출장을 갔다.

***

범이 출장을 간 첫날, 선우는 내내 누워 잠으로 하루를 보냈다. 전날 밤 물고 빨다 밤을 새는 바람에 떡도 안 쳤는데 떡 반죽이 된 것처럼 침대에 눌어붙어 일어나지 못했다.

범의 출장 이틀째, 선우는 비몽사몽 일어나 아침상을 받았다. 그래도 어제 하루 종일 자 기력이 충전되긴 했는지 밥맛이 좋았다.

아침을 먹는데 전화가 왔다. 범이었다.

범은 선우가 여보세요, 하자마자 다짜고짜 욕지거리를 뱉었다. 자다 깬 목소리가 너무 꼴린다 했다. 선우는 익숙한 욕지거리를 아침 인사로 받고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범의 일상을 들었다. 선우의 일상은 먹고 잔 것밖에 없어 할 말이 없었다. 범은 어젯밤 접대에서 뱀술을 얻어먹고 밤에 잠을 못 이뤘다고 했다. 러트가 온 줄 알았단다.

범의 직종으로 보아 그가 출장을 가 사업 파트너를 만났다 하면 상대의 직종도 알 만했다. 접대 자리가 있었는데 접대부들이 없었을까? 선우도 진짜 저녁 식사만 한 자리는 아닐 거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당연히 했겠지, 하느라 잠을 못 이뤘겠지. 선우는 잠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선우야, 이선우? 듣고 있어? 오리 엄마?]

“아, 네. 듣고 있어요.”

[오리 나오면 같이 뱀술 먹으러 오자.]

오리가 나온 뒤에도 함께할 수 있을까 싶지만 선우는 미래를 약속해 주는 범에 싱숭생숭해진 기분을 풀었다. 그래, 뱀술까지 마시고 그냥 자는 것도 가엾고 불쌍할 노릇이다.

선우는 다른 접대부와 뜨거운 밤을 보내고도 아침에 제 생각이 났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다행히 아직 자신은 교체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징그러워서 싫어요.”

[약술이야. 그냥 먹어. 누가 뱀 먹으래? 술만 먹는데.]

“아니, 뱀이 병에 담겨 있잖아요.”

[거참, 까탈은. 알았어, 알았어. 눈 가리고 입으로 주면 되잖아.]

“아니, 눈을 가려도 이미 뱀술이라고 말했잖아요.”

[그럼 모르게 맥주에 살짝 섞어 줄까?]

끝까지 먹이고는 싶은가 보다. 효험이 그리도 좋았나? 피식 웃은 선우는 결국 져 주었다. 얌전히 ‘네.’ 했다. 오리가 나온 뒤에 함께 중국까지 여행을 갈 일이 있을까 싶었다.

범은 시시콜콜한 대화를 잇다 통화의 끝 무렵에 선우의 오해를 풀어 주었다. 선우가 오해하고 있다는 티를 내진 않았지만 그 발랑 까진 머리통으로 생각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나 진짜 아무도 내 자지 못 만지게 했다.]

범은 정말이지 의기양양한 목소리였다. 선우는 뿌듯한 그의 얼굴이 눈에 선해 그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보고 싶은 건 보고 싶은 거고, 거짓말은 거짓말이었다.

선우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뻥’이라고 했다.

범은 소머즈인지 그걸 어떻게 듣고서는 열을 올렸다. 당장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죽일 기세로 길길이 날뛰었다. 자신이 어제 그 나이를 처먹고 자다가 몽정을 했다며 굳이 안 말해 줘도 될 디테일까지 말해 주는 걸로 보아 순간 지어낸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선우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다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네. 죄송합니다.”

[믿습니다, 해야지.]

“네. 믿습니다.”

[그래, 오빠 믿어라.]

“…….”

선우는 잠시 말이 없다 ‘저 끊습니다.’ 했다. 이렇게 질색을 하니 더 놀리는 건데 선우는 도저히 저 오빠 소리를 받아쳐 줄 수가 없었다. 형이죠, 하면 형이라 부르라 하는데 형 소리도 쑥스러워 그냥 무시를 택했다.

범이 수화기 너머로 끊으려는 선우를 다급히 붙잡았다. 선우가 심드렁히 ‘왜요?’ 하자 범이 밤엔 영상 통화를 하자고 했다. 장난스런 투로 ‘폰섹은 얼만데?’ 했다. 선우는 ‘진짜 끊습니다.’ 하고 뚝 끊어 버렸다.

그래도 해 주긴 해 줄 요량이었다. 영상으로 하면 폰섹이 아니고 비디오섹 아닌가? 굳이 알 필요도 없는 용어의 정의를 생각하다 혼자 비실비실 웃었다.

***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누군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부터 누구지? 집주인도 없는 집에 올 사람이 없을 텐데, 별채에 있던 조직원이 잠시 들렀나 했다.

우웁……! 욱……!

손님의 기척이 가까워 올수록 페로몬 향이 코를 찔렀다. 선우는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었다.

선우가 맛있게 먹은 아침밥을 게워 내고 화장실을 나왔다.

풍채 좋은 남자가 거실 소파에 터줏대감처럼 앉아 선우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했다. 사람보다는 개를 부르는 제스처였다.

선우는 당연히 기분이 나빴다. 허나 기분이 나쁜 것보다 더 큰 문제는 그의 페로몬이었다. 이제 더 이상 나올 것도 없는 속이 다시금 울렁거렸다. 하지만 오라는데 안 갈 수는 없었다. 남의 집 거실에, 그것도 집주인이 범인 집에 저리 거만하게 앉아 있는 것부터 예사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심술 맞은 두꺼비 상인 유 회장과 얼굴도, 체형도 판박이인 젊은 남자였다. 알파인 것치고는 크지 않은 키에 마요네즈 같은 걸 먹고 일부러 찌운 듯한 스모 선수 체격, 살이 뒤룩뒤룩했다. 근육이 뒤룩뒤룩한 범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덩치가 컸다.

선우의 눈앞에 있는 이는 범의 둘째 형 유혁이었다. 순정 만화 주인공 같은 이름과는 영 매치가 되지 않는 인상의 소유자였다. 인상만 험악하면 말도 안 하지, 그는 성격도 포악했다.

선우는 그가 범의 첫째 형 유랑인지, 둘째 형 유혁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어쨌건 유 회장의 아들이란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선우가 숨을 참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냥 서 있고 싶었는데 그는 제 옆자리를 탁탁 치며 앉으라 했다. 접대부 시절처럼 지명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 거지 같은 시절의 기억은 어쩜 잊히지도 않았다.

“네가 그 씨받이야?”

“네…….”

선우는 대답을 크게 하고 싶었지만 너무 어지러워 들릴 듯 말 듯한 대답밖에 하지 못했다. 그에게 토하는 불상사만은 제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유혁은 선우의 맥없는 대답을 지적했다. 빠져 가지고 대답을 똑바로 안 한다는 둥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으며 선우의 뺨을 툭툭 때렸다.

“씨발, 고개 안 드냐? 싸구려가 비싸게 굴고 지랄이야.”

진짜 군인이기라도 하면 모를까 깡패 새끼들이 왜 군기를 찾고 자빠졌는지 선우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유혁은 선우의 얼굴을 이리저리 훑더니 상판대기는 반반하네, 라는 평을 내렸다. 그는 본인의 상판대기를 생각지 못하고 타인의 외모에 평을 내렸다.

선우는 어이가 없었지만 티 내지 않았다. 지독한 무표정을 걸었다.

유혁은 계속해서 떠벌거렸다. 자긴 오메가라 봐주고 그러는 거 없다며 유치한 협박을 했다. 너무 유치해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같잖아서 울렁거리는 속도 잊고 속으로 조소했다.

“너 요즘 유범이 좆 빨아 주고 재미 좋다며?”

유혁의 말에 선우는 조금 두려운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바지를 내리며 혼자 흥분했는지 그의 페로몬이 좀 더 짙게 풀렸다.

“우욱-!”

헛구역질이 올라온 선우가 입을 틀어막자마자 유혁의 손바닥이 선우의 뺨에 떨어져 내렸다. 짜악!! 하고 찢어지는 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너무 순식간에 맞은 터라 선우의 힘없는 고개는 홱 하고 나부꼈다. 상체가 전부 흔들릴 정도로 거세게 맞았다.

유혁은 뺨을 한 대 날린 뒤 손을 다시 올렸지만 때리진 못했다. 발로 차는 시늉도 했지만 역시나 차지는 못했다. 아오 이걸 확, 하며 위협만 했다.

부엌에 있던 아주머니가 놀라 뛰쳐나왔다. 고정하라며 유혁을 만류했다. 회장님께서 아시면 큰일 난다는 아주머니의 말은 유혁의 자존심을 긁었고, 그는 선우에게 주던 시선을 돌려 아주머니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우성 알파 손자를 낳는 사업은 유 회장이 아주 특별히 공들이고 있는 사업이었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유혁은 그나마 몇 개 받은 유흥업소들마저 빼앗기고 한 치의 미련도 없이 호적에서 파일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본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유혁은 씩씩거리며 배를 감싸 쥔 선우에게 퉤, 침을 뱉고 떠났다. 사실 딱히 용건은 없었다. 범이 있을 땐 발도 들이지 못하니 범이 없을 때 어떤 새낄 들인 건가 구경이나 와 본 참이었다.

큰형인 유랑이 보낸 것이기도 했다. 염탐같이 없어 보이는 짓은 꼭 동생을 시켰다. 랑은 혼자서는 범을 감당할 수 없어 혁과 손을 잡았다. 제 아버지에겐 든든한 맏아들의 모습만 보이고 더러운 수작질에는 혁을 이용했다. 삼 형제 중 가장 능력치가 떨어지는 둘째는 딱 동네 양아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멍청한 놈이라 이용하기에 제격이었다. 이번에도 랑은 쏙 빠져나가고 선우를 패고 돌아온 혁만 미운털이 박힐 것이다.

선우는 아버지께 혼이 날까 도망가는 혁을 보며 덩치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찌질이. 그래도 금방 꺼져 버려 다행이었다. 가는 길에 코나 깨졌으면 좋겠지만 저렇게 못된 사람들은 보통 잘 먹고 잘 살았다. 욕을 많이 먹어 되레 잘 사는 것일 수도 있으니 그를 욕하지 않았다. 속으로 짧게 사세요, 했다가 아, 이것도 욕인가? 한 뒤로 그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지 않았다.

그래도 오리가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네 큰아빠 될 사람인데, 네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고 내가 싫은 거야. 그래도 조카는 위하나 부다. 다른 덴 안 때렸잖아.’

선우가 오리를 달랬다. 저 자신은 달래지 않았다. 달램 받을 정도로 마음 쓸 일이 아니었다. 물론 물리적인 고통은 있었다. 오른쪽 볼따구니가 말벌에 쏘인 것처럼 부어오르고 귀가 조금 먹먹했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점심을 먹고 저녁도 먹었다.

선우는 저녁을 먹고 방으로 올라와 깨끗이 샤워를 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었다. 범이 없는 둘째 날이 어느덧 저물어 갔다.

양치를 하기 위해 칫솔을 입에 무는데 찔끔 눈물이 났다. 뺨을 맞을 때 입 안을 씹어 버렸는지 따끔해서 나오는 생리적인 눈물이었다. 결코 슬픈 건 아니었다. 밥은 반대쪽으로만 살살 먹었는데 양치는 한쪽만 할 수 없으니 그냥 울면서 했다. 그딴 새끼에게 맞아 울고 싶진 않았는데, 어쩔 수 없는 눈물임에도 조금 분했다.

선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샤워기를 틀었다. 쏟아지는 물줄기에 눈물이 섞여 곧 우는 것 같지 않은 모양새가 되었다. 기분이 한결 나았다. 양치 말고는 큰 고난 없이 샤워를 마무리했다.

개운하게 씻고 침대에 누웠다. 잘 알지도 못하고,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에게 맞으면 그냥 재수 없게 넘어졌다 생각하고 넘길 수 있었다. 심적으로는 괜찮았는데 맞은 곳은 어째, 씻으니 더 울긋불긋했다. 그나마 범이 없어 다행이었다.

아, 맞았대도 썩 신경 안 쓰려나?

침대에 누워 뒹굴뒹굴하는데 선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범이 제 꼴을 보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자마자 선우의 입에선 망했다, 소리가 육성으로 튀어나왔다. 범에게서 영상 통화가 걸려 왔다. 고개가 날아갈 정도로 뺨을 맞아 뇌세포가 좀 죽었는지 아침에 영상 통화를 하기로 했던 걸 아주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선우는 영상 통화가 끊길 때까지 기다렸다가 끊기자마자 제가 먼저 일반 전화로 다시 걸었다.

“여보세요? 잠깐 화장실 가느라 못 받았어요. 죄송해요.”

선우답지 않게 말이 길었다. 왜 전화를 안 받았냐 묻지도 않았는데 변명을 했다.

[영상 통화 하기로 했잖아.]

“아, 아니, 폰섹 하신다면서요.”

[그래, 폰섹. 핸드폰 보면서 하면 폰섹이지.]

“어……. 워, 원래 목소리로만 해야 더 그래요.”

[더 그래? 뭐가 더 그래? 더 꼴린다고?]

“네…….”

범은 선우의 취향을 존중해 주겠다는 말로 선우를 잠시 안심시켰다가 네 취향대로 음성으로 한 번, 내 취향대로 영상으로 한 번, 두 번을 하자고 하여 다시 선우를 불안케 했다.

‘아 씨, 무조건 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어쩌지.’

선우는 괜스레 오리를 쓰다듬으며 ‘오리야, 네 아빠니까 네가 말려라.’ 했다. 오리에게 떠넘겨 보았다. 물론 해결될 리 만무했다. 그래 네가 무슨 죄냐, 다시 오리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아, 아니……. 알았어요, 그냥 영상으로 해요.”

선우는 모로 누워 맞지 않은 쪽 얼굴만 보였다. 각을 잘 맞춰 조금이라도 안 보이게 하려고 핸드폰을 힘겹게 들어야 했다. 맞은 쪽 얼굴이 베개에 눌려 아팠다.

범은 폰섹스에 환장한 사람처럼 집착을 해 놓고 의외로 선우의 얼굴을 보자마자는 보고 싶었단 소리를 먼저 건넸다.

선우는 조금 감동이었다. 당연히 ‘구멍 보여 줘.’ 혹은 ‘자지 보여 줘.’가 첫마디일 줄 알았다.

[임산부는 비행기도 타면 안 되냐? 너 지금 밤 비행기 끊어 줄 테니까 그냥 와라.]

“저 여권 없는데요.”

선우의 강력한 철벽에 범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3일 뒤면 오는 사람이 3일도 못 참겠다 하는 게 너무 간지러웠다. 그 덩치로 말도 안 되는 생떼를 쓰는 게 귀엽기까지 했다.

범은 폰섹스를 미뤄 두고 계속해서 일상의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점심엔 북경오리를 먹었는데 오리 엄마 생각이 났다며 퍽 다정한 소리를 했다.

선우는 오리 생각도 아니고 제 생각이 났다기에 괜히 쑥스러워 머리를 긁적였다.

대화는 생각보다 길어졌다. 선우는 그와 나누는 이야기가 참 좋았지만 같은 각을 유지하며 핸드폰을 드느라 팔이 아팠다. 차라리 거길 보여 달라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래도 불편한 내색 없이 한참을 버텼다. 그러다 팔에 힘이 풀려 그만, 핸드폰을 바닥에 떨구었다. 허무하게도 고쳐 잡는 순간에 걸려 버렸다. 결국 선우의 노력은 헛수고가 되었다. 정말 찰나였을 텐데, 범의 눈썰미가 좋은 건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문제였다.

범은 호랑이가 포효하듯 상욕을 내질렀다.

선우는 작게 한숨을 쉬며 그 혼자 발광하게 두었다. 진정하라는 소리를 해 보았지만 어차피 소용없었다. 범은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를 말로 찢어 죽이기 바빴다. 좋은 구경이긴 했다. 대충 해석하자면 장기를 꺼내 곱창 집에 팔아 버리겠단 소리였다.

자신이 욕하고 있는 상대가 친형이라는 걸 알면 굉장히 머쓱하지 않을까? 카메라에 비치는 범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와 씨발, 나 돈다. 그거 누가 그랬어?]

“어……. 형님이신 것 같던데요?”

[뭔 형님? 내가 사장인데 나보다 형님이 어딨어?]

“친형님…….”

선우는 범이 흥분을 가라앉힐 줄 알았다. 형의 장기를 뽑아낼 순 없을 테니 조금 진정하지 않을까 했다. 자기보다 아랫사람이면 난리가 이어졌겠지만 그냥 형도 아니고 친형인데, 대화로 풀겠다든가 아님 형이 그랬으면 어쩔 수 없다 하는 입장일 거라 생각했다.

[뭐? 형? 이런 개씹새끼, 지금 조지러 간다.]

선우의 예상과 달리 범의 언사는 여전히 거침없었다. 도대체 유 회장은 범을 어떻게 키웠길래 형에게도 저리 한결같을까, 선우는 그가 받은 가정 교육이 궁금할 지경이었다.

[둘 중에 어떤 새끼야?]

“잘 모르겠어요. 회장님 많이 닮으셨어요.”

[아, 혹시 씹돼지야?]

선우가 간신히 웃음을 참고 네, 했다. 범의 묘사가 너무 속 시원했다.

[그 새끼 좆밥이야. 쫄지 마.]

“안 쫄았는데요.”

[그래, 장하다 이선우.]

범이 핸드폰 화면에 대고 호호 바람을 불어 주었다. 선우는 그 덩치로 그러고 있는 모양새가 웃겨 입술을 씰룩이다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쥐어 터지고 웃냐 지금? 어? 웃음이 나냐고.]

범이 면박을 주는데도 계속 웃었다. 속에서 천불이 난다며 가슴팍을 퍽퍽 두드리는 범에 웃으며 ‘괜찮아요.’ 했다. 범이 저보다 더 화를 내 주어 비로소 정말, 진심으로, 괜찮아졌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잘 자라.”

선우는 쥐어 터지고도 마음이 행복해 웃으며 잠에 들었다.

***

다음 날 아침,

선우는 제게 닿는 축축하고 간지러운 느낌에 잠에서 깨어났다.

제 볼을 핥고 있는 커다란 생명체를 맞닥뜨렸다. 간신히 눈을 뜬 선우가 그와 눈을 맞추자 그는 다정하게 눈꼬리를 휘어 보이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나 왔다.”

범의 목소리인 것도 알겠고, 범이란 것도 눈에 보이는데 선우는 믿기지가 않아 귀신이라도 본 듯 놀랐다. 어우씨! 하마터면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사람이 잠결에 너무 놀라면 미간이 찌푸려지는 건 당연지사이거늘, 범은 그에 서운해했다.

“너네 엄마는 아빠가 돈 벌다 말고 뛰어왔는데 포옹 한 번을 안 해 준다.”

범이 혀를 끌끌 차며 오리에게 하소연했다. 선우가 푹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 왜 돈을 벌다 말고 오세요?”

‘그럴 것까진 없었는데 미안하게 왜 그랬냐’는 뜻이었는데 말이 너무 속물같이 나와 버렸다. 좀 미안했다. 선우가 슬쩍 범의 눈치를 보았다.

범은 어이가 털린 표정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줄곧 감동받은 선우가 자길 덮쳐 주는 상상을 했다며 이게 뭐냐 구시렁거렸다. 가장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네, 찬밥 신세네, 하며 들으라는 듯 혼잣말을 했다. 아침부터 조금 시끄러웠다.

‘가장은 뭔 가장, 내가 소년 가장인데.’

얼굴이 퉁퉁 부은 선우가 혼자서 열을 올리는 범을 맹하게 쳐다보았다.

“너는 내가 돈 버는 게 좋아, 너랑 노는 게 좋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 돈이 있어야 놀기도 놀죠.”

“야! 나 이미 많거든?!”

선우는 대화의 수준이 너무 유치한 듯해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범을 꼭 안아 주었다. 감동이긴 정말 감동이었다. 큰 덩치를 안으려니 살짝 힘에 겨웠지만 포옹 한 번 해 달라는데 못 해 줄 거 없었다. 사실 더한 것도 못 해 줄 거 없었다.

시큰둥하게 굴다 갑자기 안아 주는 선우에 범이 제 아랫입술을 씹으며 아래를 세웠다.

“씨발 오빠 녹는다, 마음이 아주 사르르 풀려 버리네?”

범이 능글맞게 눈썹을 씰룩이며 선우의 손을 끌어다 제 앞섶에 올렸다.

선우는 범이 오빠나 형이라는 호칭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잠시 생각했다. 삼 형제 중 형만 둘인 막내여서 지독한 오빠 병에 걸린 것일까? 막둥이인 범이 조금 하찮고 귀여웠다. 쪽- 범의 볼에 뽀뽀를 해 주고 앞섶을 주물주물 만져 주었다.

범은 예쁜 애가 예쁜 짓을 한다며 퉁퉁 부은 선우의 눈가와 볼따구니에 쪽쪽 뽀뽀를 퍼부었다.

“나 키스도 해 줘.”

“양치하구요.”

“에헤이, 양치는 무슨. 내외하지 마라. 오빠 서운하다.”

“형이죠.”

“아 그럼 형이라 하든가. 사장님이 뭐냐, 사장님이?”

“네, 형.”

제가 부르라 그래 놓고 진짜 불러 주니 놀란 범이 선우의 이마에 손을 올려 보았다. 열나는 거 아니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선우가 피식 웃으며 범의 앞섶을 좀 더 진득하게 문질렀다.

“하으……. 씹. 선우야, 오빠는 도저히 못 하겠냐?”

“…….”

선우의 표정이 딱, 앞발을 날리기 직전의 나비 같았다. 범이 ‘알았어, 알았어.’ 하며 선우를 달랬다. 하던 거 마저 하라며 선우를 응원해 주었다. 속옷 안까지 침범한 선우의 손이 기둥을 그러쥐었다. 엄지로 귀두를 둥글게 만져 주자 끈적한 액체가 퐁퐁 새어 나왔다. 범은 뜨거운 숨을 뱉으며 울긋불긋한 선우의 뺨을 크게 핥았다.

“빨까요?”

“어. 아! 아니, 잠깐.”

범은 다 풀린 눈을 하고서도 빨겠다는 선우를 만류했다. 선우의 턱을 잡고 입을 벌려 보게 했다. 요리조리 입 안을 살펴보더니 흉흉한 기색을 띠고 으르렁거렸다. 주어 없이 곱게는 못 죽이겠다고 혼잣말을 하는데 선우는 저를 일컫는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흠칫했다. 그를 조금 하찮게 생각했던 자신의 간덩이가 부어도 한참 부었구나 싶었다.

“몇 대 맞았어?”

“한 대요.”

“잡아다 줄게, 스트레스 풀리게 네가 팰래? 준석이 새끼가 임산부한텐 스트레스가 제일 안 좋대.”

선우가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일방적으로 맞고만 살아 봤지 다시 때려 준 적은 없는데 생각만 해도 통쾌했다. 하지만 폭력이 태교에 좋을 것 같진 않아서 유혁을 때리는 상상은 그만 접었다.

“됐어요, 괜찮아요.”

“그래. 내가 하는 게 낫지. 사람도 잘못 패면 팔 빠져.”

범은 선우의 뺨을 쓰다듬으며 오리를 낳으면 호신술을 가르쳐 주겠다 했다. 오리가 나오면 해 주겠다는 것도 참 많았다.

선우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기대가 되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늘 무술 같은 걸 배워 보고 싶었다. 그래도 초등학교 땐 읍내에 있던 태권도장을 다녔는데 어느 날엔가 망해서 강제로 그만둬야 했다. 지난 5년간 제가 그런 걸 배우고 싶었다는 것도 하얗게 잊고 살았는데 범이 호신술 이야기를 하니 불현듯 떠올랐다. 빚이 없으니 하고 싶은 걸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 조금 찡했다.

“유도 할 줄 아세요?”

“몸 쓰는 건 다 하지. 밤일 제일 잘하고. 유도 배우고 싶어?”

“네.”

“그래, 유도 하자. 잘만 배우면 씹돼지도 업어 치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선우가 광대를 볼록 올리자 범은 선우의 양쪽 광대에 쪽쪽 뽀뽀를 해 주고 엉덩이를 툭툭 쳐 주었다. 그냥 웃기만 해도 착하다 했다.

“도복 입고 한번 해 줄 거지?”

“뭘요? 빨아요?”

“아니, 섹스. 오리 나오면 못 하는 것도 아닌데 뭘 수고스럽게 빨아. 가만 누워 있으면 형이 도복 바지 내리고 알아서 다 할게.”

범이 싱글벙글하며 ‘뒤로 먹음 맛있겠지?’ 하고 물었다. 중국에서 기름기 많은 음식을 너무 먹었는지 사람이 더 느끼해진 것 같았다. 선우는 대충 ‘네.’ 하고 답했다. 이렇게 대답을 대충 하는데도 범은 굴하지 않았다. 사람이 참 씩씩해서 좋았다. 그는 자기도 빨리 먹고 싶다며 격하게 동조해 주었다.

뭘 먹네 마네 하는 소리를 하니 선우는 아침 공복에 허기가 졌다.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범은 잠시 선우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한 번 더 물어봐 줘.”

“네?”

“마누라 같은 소리 한 번 더 해 달라고.”

제가 배고파서 별생각 없이 물은 거였던 선우는 범이 마누라를 운운하자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다. 맞지 않은 쪽 뺨까지 붉어졌으니 범이 놀릴 게 뻔했다.

선우는 한 번 더 해 달라는 범의 청을 들어주지 않고 냉큼 화장실로 튀었다. 그냥 튀면 붙잡힐 것 같아 진짜 덮쳐 주기라도 할 것처럼 야릇한 표정으로 범의 어깨를 밀어 침대로 쓰러트린 뒤 그대로 튀어 버렸다.

세게도 안 밀었는데 범은 황홀한 표정으로 스르륵 쓰러졌다. 기대하는 바가 명확해 보이는 발정 난 표정이 조금 애잔하고 불쌍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심장이 하도 뛰어서. 이대로 가다간 좋아한다 동네방네 소문내는 꼴이 될 것 같아 일단 숨었다.

차라리 섹스를 하고 말지, 선우는 사랑이 어색하고 서툴렀다.

***

선우의 도발 아닌 도발에 애꿎은 욕실 문이 희생 당했다. 이제 다락에 딸려 있는 선우만의 작은 욕실은 문이 잠기지 않았다. 범은 안 고쳐 줄 거라고 했다. 멀쩡한 욕실을 쓰고 싶으면 1층으로 내려와 살라고 고집을 부렸다.

다락이 주는 안락함과 포근함이 좋은 선우는 단호히 거절했다. 어차피 자기만 쓰는데 문이 잠기든 말든 상관없었다.

범과 선우가 함께 아침 식탁에 앉았다.

범은 세상 제일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서도 등갈비에 붙은 살점을 발라 선우의 밥 위에 올렸다. 거절을 당하고도 뼈를 발라 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나비에게 조공을 바치던 어린 날의 자신과 오버랩 되었다.

“하이고, 오리야 네 아빠 좆 빠지게 돈 버는데 독수공방이다.”

“좆 안 빠지셨던데요?”

“빠졌는지, 안 빠졌는지 봐 줘. 봐 주고 말해.”

“아까 만졌잖아요. 잘 있던데요.”

“그래? 하긴 잘 있겠지. 나 자지 이틀이나 안 썼어, 너 주려고.”

둘은 아무 소리나 막 뱉은 듯한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밥상머리 앞에서 키득키득 웃었다.

범을 농락한 죄로 욕실에서 입술이 쭙쭙 빨린 선우는 어제 맞은 뺨보다 더 부어오른 입술로 된장국을 떠먹었다. 터진 입 안이 따가워 국을 조심조심 흘려 넣느라고 후루룹 방정맞은 소리가 났다. 식사 예절을 못 배운 사람 같지 않을까 조금 신경이 쓰였는데 범은 그런 선우의 입술을 뜨겁게 바라보았다. 식탁 밑으로 손을 뻗어 선우의 허벅지를 그러쥐었다.

“더 큰 소리 내 줘.”

선우가 헛소리를 하는 범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 진심인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는데 진심인 듯했다. 범의 표정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범은 선우의 손에 등갈비 한쪽을 쥐여 주더니 섹시하게 뜯어 먹어 달라고 했다. 그는 아주 다방면으로 변태였다.

선우는 어이가 없었지만 남은 출장 일정을 내팽개치고 달려오는 와중에도 제 선물을 사 왔다는 범에 까짓것 선심 한번 쓰기로 했다. 눈을 살포시 감고 혀를 길게 빼서 등갈비를 긁어 올렸다. 혀끝에 짭짤하면서도 달콤한 간장 양념이 닿았다.

범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더 과감한 짓도 해 주려고 했는데 양념이 너무 맛있어 탈이었다. 그냥 편히 먹고 싶었다.

선우는 짧은 팬 서비스를 마치고 정말 안 꼴리는 모양으로 와구와구 등갈비를 뜯었다.

“더 보려면 유료 결제야? 왜 하다 말아?”

“먹는 걸로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범은 얄밉게 구는 선우에 딱밤을 먹이려다 그마저도 아까워 하지 못하고 들어 올린 손으로 선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씨발, 유혁이 새끼 구워다 우리 선우 삼겹살이나 먹여야지.’

범은 머릿속으로 하고 있는 생각과 달리 퍽 온화한 표정으로 선우의 입가에 묻은 양념을 닦아 주었다. 천천히 먹어, 하며 선우를 챙겼다.

선우가 갈비를 뜯다 말고 히히 웃었다. 우물우물 고기를 씹으며 저 천천히 먹는데요? 하고 말대꾸를 했다. 친한 사람한테만 이러는 걸 알아 범의 기분이 하늘을 찔렀다. 선우도 기분이 좋은지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었다. 보아하니 삼겹살을 먹이면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범은 귀여움을 떠는 선우의 엉덩이를 툭툭 쳐 주며 씩 입꼬리를 올렸다.

***

범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시 볼일이 있다며 외출했다. 유창한 중국어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나갔다. 범에게 뱀술을 대접한 사업 파트너일까? 선우는 범이 외국어를 잘하는 게 그저 신기했다.

유 회장은 그냥 깡패, 유범은 배운 깡패라는 말이 딱이었다.

선우가 호텔 같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유 회장은 선우를 몇 번 찾아왔었다. 선우보단 제 손주를 찾아왔다는 게 맞지만 어쨌든 유 회장은 선우를 만날 때마다 우성 알파 막내아들 자랑을 귀에 딱지가 앉게 했다.

그땐 아예 모르는 사람 이야기니 대충 흘려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범은 나름 대졸이었다. 학교라는 단체와 너무도 안 어울려서 딱 의무 교육까지만 어찌어찌 마쳤을 상인데 일본에서 명문 대학을 나왔다고 했다. 그럼 일본어도 할 테니 3개 국어라는 소리였다.

고등학교 땐 쌈박질을 하도 해 퇴학 직전이었는데도 전교에서 손에 꼽히게 공부를 잘했고, 운동은 말할 것도 없지만 중학생 때 코치인가 감독인가를 패서 프로 선수로 키울 수 없었다고 했다.

유 회장 이야기를 들을 당시엔 열성 알파인 사람이 왜 우성 알파를 낳아야 하는지 열변을 토하는 게 웃기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집착할 만도 한 것 같다.

‘너네 아빠가 망나니 같아 보여도 은근 할 줄 아는 게 많다, 좀 멋있어. 그치?’

선우는 제 방에 난 큰 창으로 마당을 가로지르는 범의 뒷모습을 보며 오리와 대화했다. 뒤로 수하들 여럿을 붙이고 성큼성큼 걸어가던 범이 갑자기 홱 하고 돌아보았다. 범은 선우와 눈을 맞추고 찡긋 윙크를 날렸다.

‘너네 아빤 끼를 너무 부리는 경향이 있어. 바람둥이 아니랄까 봐.’

선우가 피식 웃으며 오리와 대화를 이었다. 윙크는 무시했다. 그러자 다시 제 갈 길을 가던 범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마 왜 무시하냐, 따지려 전화한 게 아닐까 했다.

“여보세요?”

[그렇게 보고 있으면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데?]

“풍경 본 건데요.”

[우리 이선우는 한여름에 형 덥지 말라고 차가운 거지? 착해라. 겨울엔 따뜻해지냐?]

“겨울에도 똑같을걸요.”

[이냉치냉 하고 좋네.]

범은 선우면 다 좋다고 했다. 선우는 부끄러움에 머리를 긁적이며 잘 다녀오라고 전한 뒤 전화를 끊었다. 범이 뽀뽀해 주고 끊어라, 하며 붙잡았지만 해 주지 않았다. 아니, 안 한 게 아니고 못 한 거였다. 해 주는 건 상관이 없었는데 범이 저를 붙잡은 것과 제가 통화 종료를 눌러 버린 타이밍이 절묘하게 겹쳐 그만 끊겨 버렸다.

선우는 다시 전화를 걸어 뽀뽀만 해 주고 끊을까 했지만 저와 어울리지 않게 너무 귀여운 짓인 것 같아 그만두었다. 아쉬움에 이미 끊긴 전화기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문자 한 통을 보내기 시작했다. 범은 무조건 전화로 하는 스타일이어서 둘은 한 번도 문자를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나이에 맞지 않는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부터 알아보긴 했는데, 그는 조금 아저씨였다.

「모르고 끊어 버렸어요. 이따가 집에 오면 해 드릴게요.」

‘너무 변명 같은가? 좀 구구절절한 것 같기도 하고.’

선우는 이건 좀 아니다, 혼잣말을 뱉고 썼던 내용을 지워 버렸다. 그렇게 몇 차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범이 원한 건 뽀뽀였기에 긴말 필요 없이 그걸 해 주기로 했다.

‘쪽’이라고 보냈다. 그런데 또 보내고 보니 한 글자는 너무 성의가 없는 것 같았다. 선우는 제가 웃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연달아 하나를 더 보냈다.

「ㅎㅎ」

답장은 기대하지 않았다. 딱히 뭐라 답장할 말도 없을 영양가 없는 문자였다.

하지만 범에게선 바로 답장이 왔다. 문자를 쓸 줄은 아는 모양이었다. 일은 안 하고 핸드폰만 보는지 반응 속도가 너무 빨라 무서울 정도였다.

범은 ‘씨발 형 자지 섰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다음 문자가 코미디였다.

「^^」

선우가 웃고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것처럼 범도 상냥해 보이고 싶었던 걸까? 미안하지만 웃으면서 그게 섰다 그러니 더 변태 같았다. 준석에게 조언을 구했을 게 뻔했다. 준석은 임산부 수발엔 일가견이 있었지만 이런 센스는 좀 별로였다. 그래도 범이 제 솥뚜껑만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쳤을 모습을 생각하니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콩깍지 낀 눈으로 보니 진짜 상냥하고 다정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선우가 범의 문자 위에 쪽 뽀뽀를 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쭉 기지개를 피며 아침 햇살을 맞았다. 범이 들렀던 방 안엔 라임 향이 돌았다. 덕분에 몸이 가뿐했다. 킁킁, 기분이 절로 좋아지는 냄새를 맡으며 선우는 범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

***

범은 답장이 오지 않는 선우에 애꿎은 준석을 잡았다.

“야 이 씨발, 우리 선우 답 안 오잖아.”

“죄송합니다, 형님!”

자지가 섰다 보낸 건 자신이고, 준석은 그저 웃는 모양의 이모티콘만 권했을 뿐인데 범은 준석을 탓했다. 조금 못난 모습이었다. 하지만 준석은 억울해하지 않았다. 원래 형님이 제 잘못이라 하면 제 잘못인 거다.

“하, 이 새끼 네 말을 들은 내가 븅신이지. 얘는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해서 존나 신중하게 대해 줘야 된다고. 우리 선우 기분 좋았는데 네가 쪼개라 그래서 쪼갰다가 기분 잡친 거 아니냐고, 지금.”

준석이 우는 모양의 이모티콘을 다시 보내 보는 게 어떠냐 제안하는데 마침 범의 핸드폰이 울렸다. 중국에 버려두고 온 사업 파트너에게서 다시금 전화가 왔다.

범은 일단 전화를 받았다. 임신한 아내가 아파 급히 돌아왔다고 둘러댄 참이었다.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니까.

상대방은 호쾌하게 웃으며 이해한다 전했다. 사람 장기나 파는 새끼가 저도 나름 애처가인지 임신했을 때 잘하지 못하면 평생이 고달프다며 인생 선배 같은 조언을 했다. 나중에 자기 딸이 크면 범과 결혼시키려 했는데, 범에게 벌써 결혼을 했냐며 아깝다고 농을 던졌다.

범은 그런 소릴 들었다 하면 마누라한테 혼이 난다고 능청스레 받아쳤다. 분위기가 좋았다. 하던 일을 던져두고 좆대로 돌아와 버렸는데도 하려던 일이 어그러지지 않았다.

범은 늘 그랬다. 모든 일이 뜻대로 술술 풀렸다.

유 회장이 범을 숭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유 회장은 사업의 대부분을 협박과 갈취로 이룩했고 그 때문에 그저 ‘현금 많은 조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범은 그런 유 회장이 글로벌 기업가 행세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일본으로 대학을 보내니 야쿠자와 친구를 먹었는지 용케도 판매처를 뚫어 약을 팔았다. 무역 회사 간판을 달고. 그러다 마카오로 떠났을 땐 도박이나 하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한국에 돌아와 카지노를 세우자 했다.

범은 조폭과 사업가 사이를 자유자재로 유영하며 돈 되는 건 잘도 끌어왔다. 하지만 유 회장은 알았다. 범은 일을 철저히 재미로 했다. 일에 썩 야망이 있는 편은 아니어서 이러다 질리면 어디론가 갑자기 훌훌 떠나 버릴 수도 있었다. 야망은 큰아들 유랑이 있고, 능력은 막내아들 유범이 있고, 그러니 유 회장의 골머리가 썩었다.

범은 대륙의 애처가와 사업 얘기와 육아 얘기를 오가는 십년지기 같은 통화를 마치고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점심때 가니까 유혁이 새끼 데려다 놔요.’ 한 마디 하고 끊었다. 그러다 아, 하고 전하지 않은 말이 있어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형수도요.’ 하고 또 끊었다.

유 회장은 범의 버르장머리마저 예뻐했다. 아비도 모르는 극악무도한 새끼가 머리를 잘 굴리니 돈을 쓸어 모으는 거 아니겠나, 비록 아비는 모르지만 제가 아버지인 건 맞기에 그것만으로도 뿌듯했다.

***

유 회장네 집으로 독립해 사는 세 아들들이 모두 모였다.

범은 둘째 형과 둘째 형수만 요청했는데 큰형 내외도 왔다.

유 회장이 혁을 호출하자 랑도 소식을 듣고 따라온 것이다. 랑은 가족들이 모이는 곳엔 절대 빠지지 않았다. 제가 없는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모르면 이 집안에서 살아남기는 글렀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오늘은 특히나 꼭 와야 했다. 혁만 부른 걸로 보아 왜 불렀는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우성 알파 손주를 낳겠다고 대리모를 들였다기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분위기나 살피고 오라 보낸 동생 놈이 멍청하게 그를 때리고 돌아왔다.

랑은 혁이 혹시나 제가 시켰다 소리를 할까 염려가 되었다. 동생 놈을 단속하기 위해서라도 득달같이 달려와야 했다. 본가 대문 앞에 당도하여 처를 먼저 올려 보낸 뒤 차 안으로 혁을 불러 긴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단 내 쪽으로 밀어줘야 우리 다 윈윈인 거 알지? 둘 다 나가리 나면 게임 끝이야. 하나라도 몰아서 받고, 내가 너 원하는 거 떼어 주는 걸로. 오케이?”

랑은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강조했다. 혁이 새낀 정도를 넘어선 무식이라 욱하면 다 같이 죽자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살살 달랬다. 억울하겠지만 혹시나 뭐라 해도 참아라, 내가 너 대신 아버지 똥꼬 빨고 다 하지 않느냐, 했다.

사실 될 만한 쪽으로 표를 몰아주는 게 맞는 거긴 하니 혁도 인정했다.

“아, 형이 시켰다 안 해. 안 이를 테니 걱정 마쇼. 씨발, 내가 또 의리에 살지.”

내일모레 마흔인 떡대들이 ‘아빠한테 고자질하지 마라.’가 요지인 유치한 대화를 은밀하게도 주고받았다. 랑은 혁의 의리를 멋지다 띄워 주며 혁을 구슬렸다.

대충 대화가 마무리되어 갈 때 누군가 차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랑이 창문을 내렸다. 호랑이 새끼가 우뚝 서 있었다.

“둘이 뭐 해? 사귀어? 씨발, 아무리 근본 머리 없는 집이라도 근친은 좀 아니지 않냐?”

“새끼 농담은.”

랑이 어색하게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의젓한 척 동생들을 이끌었다.

“얼른 들어가자, 아버지 기다리시겠다.”

범은 제 어깨에 올라오는 랑의 팔을 쳐 냈다. 그를 본 혁이 가소롭게 훈계질을 했다.

“새끼야, 형한테 무슨 싸가지냐?”

그에 범이 씩 웃었다.

“그래도 큰형 팔은 멀쩡하잖아. 네 팔은 곧 갈릴 줄 알아, 이 씹새야.”

***

유씨 집안의 가족 식사 자리는 삽시간에 개판이 되었다. 개판으로 만든 건 당연히 범이었다.

범은 밥을 처먹다 말고 둘째 형의 오른팔을 꺾었다. 으드드득 하는 뼈 부러지는 소리가 다이닝룸 안을 울렸다.

혁은 범을 막기 위해 남은 왼쪽 팔을 들어 범의 가슴팍에 주먹을 꽂았다. 범은 그 육중한 주먹을 온전히 맞으며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았다. 퍽퍽 소리가 꽤나 크게 나는데도 되레 웃었다.

“어어? 이것 봐라?”

재롱이라도 보듯 혁의 주먹질을 관람하다 태연한 목소리로 ‘아직 덜 부러졌다.’ 했다. 그렇게 범은 혁의 오른팔을 끝까지 꺾어 놓았다.

혁은 머지않아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범은 버둥거리는 혁의 앞에 쭈그려 앉아 그의 오른 손목을 들어 올렸다. 마무리로 손목까지 우둑, 하고 꺾었다.

탁탁 손을 털고 일어난 범이 둘째 형수를 향해 따듯하게 웃어 주었다.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다 얼이 빠져 울고 있는 형수를 달랬다. 형수는 혁과 함께 게거품을 물기 일보 직전이었다.

“형수, 이 새끼가 맞을 짓 한 거야. 이거 사람 새끼 아니니까 속상해해 주지도 마. 이참에 팔병신 된 새끼랑 살아 주지 말고 그냥 이혼하든지. 위자료는 내가 줄게.”

범은 형수를 위해 유혁의 맞을 짓이 무엇이었는지 설명했다. ‘내 거 팼길래 나도 형수를 팰까 하다가.’로 운을 띄웠다. 마치 짜장면 먹으려다 짬뽕 먹었다는 소리를 하듯 가벼웠다. 결론적으로 범이 둘째 형수에게 전한 말은 내 자비로 너를 패진 않았으니 짜증 나게 질질 짜지 말라는 소리였다.

“씨발, 룸살롱도 말아먹는 새대가리 새끼가 임산부나 패고 다니고. 답이 없다, 답이 없어. 저런 팔은 그냥 못 쓰는 게 낫지. 그죠, 형수? 형수도 가끔 맞는 거 같던데, 나한테 되게 고맙겠다. 어?”

혁의 부인은 대답하라는 미친놈의 성화에 못 이겨 고개를 끄덕였다.

유 회장은 구급차를 불러 혁을 실어 보냈다. 혁의 아내도 동행했다.

상황을 모두 지켜본 범의 큰형수는 호시탐탐 범을 노리는 제 남편도 저 짝이 날까 두려웠고, 랑은 혁이 찍소리 없이 병원으로 실려 가 티 나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혁의 팔이 부러지는 순간, 범과 잠시 눈이 마주쳤을 땐 솔직히 조금 두려웠다. 랑은 덤덤한 척하며 ‘다행이다, 혁이 저 새끼 말 안 하네.’만 생각했다.

랑이 여기서 둘째를 걱정하는 기색이나 두려움을 내비치면 유 회장은 랑을 약해 빠진 놈으로 볼 게 뻔했다. 랑은 의젓하게 ‘아버지, 식사 마저 하시죠.’ 하며 제 아내에게 식은 국을 다시 데워 오라 일렀다.

무덤덤한 척하는 랑과 달리 진짜로 무덤덤한 범은 점심밥을 잘도 퍼먹었다. 유 회장은 그런 범의 밥 위에 전복을 올렸다.

“씨발, 이런 힘 나는 거 주지 마. 나 선우 잡아. 아버지 손주 큰일 난다.”

“그래, 너 요즘 선우 끼고 산다며? 웬만하면 다른 애 끼고 놀아라. 걔 몸조심해야 된다.”

“아버지.”

“왜 이놈아.”

“저 그냥 결혼하게요. 선우랑.”

유 회장은 삼키려던 국을 도로 뱉었다. 잠시 범의 이야기를 곱씹더니 이내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현수막이라도 걸 기세였다.

“아니, 선우 같은 애가 있으면 맞선을 보게 하셨어야지. 왜 애 힘들게 애부터 만들어 보냅니까?”

범이 투덜거렸다.

유 회장은 ‘미친놈아, 네가 결혼 안 한다며!’ 하고 잠깐 발끈했지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막내가 이 아름다운 결정을 철회할세라 입을 다물었다. 애가 나오면 제가 볼 테니 둘이 신혼여행도 가고 하라며 살살 막내 비위를 맞췄다.

랑은 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격하게 동요했다. 순식간에 혈압이 올라 뒷목이 뻐근했다. 유범이 새끼가 결혼도 안 하고 집안의 대를 이을 생각이 없는 것, 이게 딱 하나 있던 제가 범보다 나은 점이었는데, 갑자기 결혼을 한단다.

대리모까지는 사실 애가 나온 뒤에 상황을 지켜보려 했다. 우성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우성이 나와도 우성 오메가일 수 있는 노릇 아닌가. 굳이 작당을 벌일 필요가 없는 일에 힘을 쓰는 건 에너지 낭비였다. 그런데 범이, 결혼을 하겠단다.

랑은 제가 세운 계산을 전부 뒤집어엎고 다시금 대가리를 굴려 보느라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머리에 열이 올라 터질 것 같았다.

랑은 선우와 결혼하겠다는 폭탄을 투하하고 다시금 밥을 잘 처먹는 범이 죽도록 얄미웠다.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신바람이 난 아버지께 말을 걸었다.

“노블레스 출신이라 그러지 않았어요? 접대부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랑은 동생을 위하는 척 진중한 목소리를 냈다.

“미친 형님아, 엄마도 접대부셨고요. 네 마누라는 접대부 할래, 결혼할래? 해서 사채 빚에 팔려 오셨어요. 씨발, 집안 좋은 우성 오메가가 미쳤다고 조폭에, 열성이랑 결혼을 하냐?”

범이 심드렁히 대꾸했다. 사실 맞는 말이었다. 유 회장이 데려온 우성 오메가 며느리들은 첫째건, 둘째건 집안 환경이 좋지 못했고 돈 때문에 팔려 오다시피 했다. 대대로 우성에, 부와 명예가 둘 다 있는 잘 배운 집안들은 끼리끼리 결혼을 했다. 돈이 아쉽지 않은 이상 돈만 많고 실상은 깡패인 열성 집안에 올 리가 없었다. 유 회장은 그 콤플렉스에 우성에 더 집착했다.

랑은 짜증 나리만큼 맞는 말을 하는 범에 열이 뻗쳤지만 화를 누르고 다시 차분히 이야기했다.

“그래, 나는 열성이지만 넌 아니잖아. 넌 찾아만 보면 충분히 괜찮은 집 잡아서 하지. 아직도 우리가 삼류 조폭은 아니잖아.”

“그 삼류 조폭 아니게 해 준 게 난데, 왜 네가 생색이야? 아부지, 형 되게 웃긴다 그치?”

범은 부러 더 얄밉게 굴었다. 유랑이 새끼가 어디까지 참나 데리고 노는 게 재미있었다. 범의 물음에 유 회장은 그저 허허 웃었다.

“그래. 한다는 게 어디냐. 당장 혼인 신고부터 해라.”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간섭 마세요. 근데 하긴 할 거예요. 알아만 둬.”

사실 아직 선우한테 허락을 못 받았어요, 는 말하지 않았다. 무조건 오늘 내로 승부 본다 생각했다. 범은 아버지가 식사를 마치지 않았는데도 제 밥만 먹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우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반지부터 사야 하는지 꽃부터 사야 하는지 좆도 모르겠지만 일단 뭐든지 행동에 옮기기로 했다.

***

점심을 먹고 방에서 오리와 뒹굴뒹굴 구르고 있던 선우에게 범의 전화가 왔다. 선우는 냉큼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너 왜 내 문자 씹냐? 내가 쪼개서 씹은 거지?]

“네? 아니요.”

[그럼?!]

“자지 섰다는데 뭐라 더 할 말이 없어서요.”

범은 굳이 안 물어도 될 걸 물어 선우에게 문자가 씹힌 건 준석 때문이 아니라 저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다. 선우에게 잠시 있어 보라 한 뒤 준석의 어깨를 치며 ‘새끼, 미안하다.’ 했다. 준석은 ‘아닙니다, 형님!’ 하며 범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훈훈한 현장의 소리가 전화기 너머 선우에게까지 전해졌다. 선우는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랐지만 피식 웃었다. 범은 미안하다 할 줄 아는 사람이라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범이 준석과 짧은 대화를 마치고 다시 선우에게 돌아왔다. 저녁에 외식을 하자고 했다. 그에 선우의 광대가 볼록 올라갔다. 안 그래도 찌뿌둥했는데 외출을 할 수 있어 기뻤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저 그때 그 차돌된장찌개 먹고 싶어요.”

접때 범이 차돌박이 구이집에 데려가 준 적이 있는데 구이도, 된장찌개도 너무 맛있었다. 선우는 뭐 먹겠냐는 말에 대번에 그 된장찌개가 떠올랐다. 그런데 웬일인지 제 메뉴 선정에 범이 살짝 한숨을 쉬었다. 메뉴가 마음에 안 드는가 했다.

고기 좋아하는 분이 왜 저러실까, 생각하는데 범은 혼자 낭만이 어쩌고 하며 중얼거렸다. 밥 먹는데 낭만은 왜 찾는지 모를 일이었다.

여태까지 선우가 먹고 싶다 하는 음식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래.’ 하던 범인데 이번엔 쉬이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다. 그럼 다른 걸 먹자고 하던지, 그러지도 않았다. 그렇게 머뭇거리던 범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스테이크는 어때? 존나 높은 빌딩에서 먹는 거야. 멋있겠지?]

‘맛이 아니라 멋? 멋이 무슨 소용이지.’

선우가 의아해하는데 준석이 뭐라 뭐라 훈수를 두는 소리가 들려왔다. 임신했을 때는 무조건 먹고 싶다는 게 우선이라는 소리였다. 사실 조금 맞는 말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좀 더 먹고 싶은 음식이 있더라도 다음에 먹지 뭐, 하고 말았을 텐데 임신 후엔 한번 뭐가 먹고 싶다 꽂히면 꼭 그걸 먹고 싶었다. 다른 걸 먹는다고 어떻게 되진 않겠지만 임신을 하기 전과는 느끼는 감정이 달랐다. 아쉬움, 서운함, 서러움 비슷한 게 든다 해야 하나? 물론 스테이크도 맛은 있겠지만 차돌박이를 넣은 된장찌개가 더 먹고 싶었다.

허나 임신했다 유세 부릴 입장은 아니라 사 준다는 것만도 감사히 여겨야 했다. 그래, 콧바람 쐬게 해 주는 것도 어디냐.

“……네. 마음대로 하세요.”

[아냐, 아냐. 미안. 차돌박이 먹어야지, 그럼. 먹자, 두 번 먹자.]

“정말요?”

[그럼, 임산부한텐 원래 다 양보하는 거다. 공중도덕이 그런데 당연히 따라야지.]

범은 어울리지 않게 횡설수설했다. 그러다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감사합니다.”

[오냐, 뽀뽀.]

선우가 이번엔 먼저 끊지 않고 쪽, 해 주었다. 뒤이어 씨발 입술 빨고 싶다, 하고 들려오는 소리는 무시하고 끊었다. 행동은 무뚝뚝했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이따 빨아 드려야지, 생각했다. 범과의 통화로 기분이 좋아진 선우가 된장찌개 생각에 히죽 웃었다.

선우는 한 시간 내로 데리러 온다는 범의 연락을 받고 준비를 시작했다. 범은 오늘 바빴는지 보통 저녁을 먹던 시간보다 늦어진 시각에 연락을 주었다. 선우는 배가 많이 고팠다.

고깃집에 갈 거기에 냄새가 배도 상관없는 옷들로 골라 입었다. 흰색 반바지에 품이 넉넉한 검정 반팔 티였다. 맨발에 샌들도 신을 예정이었다. 슬리퍼보다는 조금 예의를 차렸다.

너무 후줄근한가 했지만 사실 선우에게 그렇게까지 후줄근한 옷은 없었다. 반팔 티가 뭐, 목 안 늘어나고 색 안 바래면 된 거 아니겠나. 후줄근하다기엔 티 쪼가리 하나도 관리를 깨끗하게 해 두어 좋은 냄새가 나고 새것 같았다.

‘오리, 너도 여름에 땀 냄새 나는 옷 그냥 막 입고 다니지 말고.’ 하며 오리에게 잔소리를 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올 때 짐을 너무 단출하게 챙겨 들어온지라 할머니가 중간에 소포를 한 번 보내 주셨다. 박스 안에서 샌들을 꺼냈다. 신문지에 곱게도 싸여 있었다. 할머니는 옷가지 하나하나 전부 깨끗이 빨아 새로 다려 보낸 것 같았다. 샌들 역시 닦았는지 깨끗했다.

나갈 때 신을 신발까지 꺼내 준비해 두니 당장 바닷가로 놀러 가도 될 것 같은 차림이 완성되었다. 아, 바다 가고 싶다.

“오리야, 나 바다 가고 싶어. 너도 가고 싶지 않아? 너네 아빠한테 말 좀 해 줘. 나도 꼽사리 껴서 같이 가게. 하긴 난 한강만 봐도 좋아. 사실 바다 몇 번 못 가 봤어. 산은 많이 봤는데.”

어촌이 아닌 농촌에서 자라 바다는 정말 본 적이 드물었다. 선우는 오리에게 촌스럽고 단조로운 제 인생을 고백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해 본 게 별로 없어.’ 하곤 멋쩍게 웃었다.

남들이 보면 정말 미친 사람 같을 거다. 선우에겐 분명 대화 상대가 있지만 제삼자의 시선으론 허공에 대고 중얼거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누구 볼 사람도 없고, 봐도 어쩌겠나. 미친놈인가 하겠지 뭐.

선우는 오리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나갈 채비를 했다. 늘 느끼는데 오리는 참 소중한 친구였다. 늘 제 곁에 있어 주고 제 말을 들어 주었다. 그래서 자꾸 정이 들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너무 친해져 버려 헤어짐을 생각하면 주책맞게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한창 준비를 하는데 오리보다도 더 친한 친구,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선우는 할머니로부터 태몽 이야기를 듣고 얼마 뒤, 할머니께 임신 소식을 알렸다. 그 후로 잔소리가 배로 늘었다. 이제 할머니 댁에 갈 날이 정말 몇 밤 남지 않았는데 할머니는 버스 정류장까지 마중을 나올 기세였다.

선우는 ‘임신했으면 뭐, 할머니가 업고 가게?’ 하며 웃었다. 할머니 도가니를 보아 하면 제가 할머니를 업어야 할 판이었다. 오리만 없다면 얼마든지 업겠지만 지금은 좀 곤란해 마중은 사양이었다.

[아직도 저녁을 안 먹었어?]

“응. 이제 곧 먹으러 가. 남편이 차돌박이 사 준다 그래서 기다렸어.”

[왜 내 새끼 기다리게 한다니?]

“그러게, 나쁘지?”

[그래도 맛있는 거 사 먹이는데 나쁜 것까진 아니지. 일이 바쁜가 보네.]

“아무튼 할머닌 맨날 이랬다가 저랬다가야.”

할머니와 도란도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무래도 할머니는 범이 함께 오지 않는 게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범이 함께 와 주었으면, 하고 자꾸 이야기했다.

얼굴 한 번 못 본 손주 사위에 대한 서운함은 결코 아니었다. 선우에게만 잘해 준다면 늙은이야 안 보러 온대도 서운할 게 없었다. 그럼에도 꼭 같이 왔으면 하고 신경이 쓰이는 이유는 선우 때문이었다. 선우가 홑몸이 아니란 걸 알아 버려 먼 길을 혼자 오는 게 마음이 쓰였다.

선우는 난감했다. 범이 가지도 못하겠지만 가 준다 해도 데리고 가면 안 되었다. 손주 사위인 척 연기까지 해 달라 요청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선우는 작게 한숨지으며 제 배를 바라보았다.

‘넌 거짓말하지 말고, 떳떳하게 살아라.’ 하고 오리를 훈계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나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변명은 하지 않았다. 대신 너는 좋은 아빠를 만났으니 나같이 살 일은 없을 거야, 했다.

떼인 돈 받으러 다니는 아빠와 남의 돈 빌리고 다니는 아빠. 둘 중에 비교하자면 전자가 나았다.

[좀 데려다주면 좋겠는데, 신랑이 많이 바쁜가 보지?]

“응, 그이 바빠. 거참 괜찮다니까 걱정도 천지다. 내가 애야? 집도 못 찾아가게. 눈 감고도 간다.”

[너 장 본다고 이것저것 사 들고 오기만 해, 아주. 초기에 무거운 거 들면 큰일 나. 할머니 너 잘못되는 꼴 보면 오래 못 사는 거 알지?]

“할머닌 가만 보면 말투만 착하고 은근 협박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협박도 그런 협박을 하냐? 나도 할머니 잘못되면 못 살아!”

서로 죽고 못 사는 현장이었다. 할머니는 미안하다고 했고, 선우는 사과를 받아 주었다. 무거운 건 안 들기로 했고, 혹시나 태워다 줄 사람이 있는지 범에게 물어본다 했다. 할머니를 안심시켰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선우가 할머니께 급히 안녕을 고하려는데 범이 방문을 열고 그냥 들어와 버렸다. 그것도 선거 유세하듯 큰 목소리로 ‘아이고, 할머님~!’ 하면서 들어왔다.

저보다 더 미친놈의 등장에 선우는 놀라 토끼 눈이 되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스렸다. 범이 제 통화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몰라도 일단은 당황하지 않고 아무 일 없었단 듯 굴어야 했다. 일단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전화부터 끊자 생각했다.

그때, 범이 전화를 불시에 뺏어 들었다.

‘헐, 좆 됐다. 아, 오리 미안.’

선우는 놀란 마음에 속으로 너무 생욕을 해 버렸다. 오리에겐 못 들은 걸로 하라 전했다.

“할머님,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제가 유 서방입니다.”

범이 할머니께 말을 건네는 순간, 선우는 놀라다 못해 충격에 빠져 입을 떡 하니 벌렸다. 제 핸드폰을 다시 뺏어 들 생각도 못하고 멍청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굳어 가만 서 있었다. 하긴, 어차피 못 뺏을 거 힘 뺄 필요 있나 싶다.

범은 선우가 할머니께 한 거짓말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당연하다는 듯 손주 사위처럼 굴었다. 듣는 사람이 다 듬직할 만큼 완벽한 연기였다.

“어휴 그럼요, 저도 같이 가야죠. 할머님이 태몽 꿔 주셨다면서요? 제가 꿈 사러 가겠습니다.”

범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예의 바름에 사업하는 사람이 다르긴 다르다 생각했다. 맨날 자지 타령만 하는 남자가 자지 같은 저속한 단어는 입 밖에 내지도 않을 것처럼 젠틀하게 굴었다. 나이를 허투루 더 먹은 건 아닌지 자신을 숨기는 게 퍽 어른스러웠다.

할머니는 어서 저녁을 먹으라고 범을 보내는 것 같았다. 선우가 통화 중간중간 ‘아, 배고파.’ 소리를 효과음처럼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예 할머님, 정신 똑바로 차리겠습니다. 제가 잠깐 미쳤었는지 선우 밥이 늦었습니다.”

범이 충성을 다하는 말투로 유쾌하게 굴자 전화기 너머에서 즐거운 웃음이 터졌다.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들려와 멍해 있던 선우의 입가에도 잠시 미소가 걸렸다.

[아니, 미쳤다 그런 건 아니고. 우리 손주 사위도 시장하겠네. 얼른 식사 가요. 늙은이랑 통화해 줘서 고마워요.]

“어휴, 무슨 그런 소릴 하세요. 선우도 주시고 제가 더 감사합니다.”

할머니가 그만 끊으라는데도 범은 수다를 좀 더 이었다. 대충 말 상대나 해 주는 정도가 아니었다.

범은 진심으로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선우의 한쪽 엉덩이를 꽉 그러쥐며 능글맞은 표정으로 제가 그만 너무 힘을 줘 증손주가 생겨 버렸다는 농담도 했다. 자기가 선우만 보면 주체가 안 된다며 혹시라도 복분자 같은 건 주지 마시라고 낯부끄러운 소리를 잘도 했다. 하필 할머니 집엔 실제로 직접 담근 복분자주가 있어 알고 저러나 싶었다.

‘힘을 주긴 개뿔, 한 번도 못 해 봐 놓고.’

선우는 혼이 빠져 있는 와중에도 범을 조금 비웃었다. 그래도 손주 사위의 뜨거운 농담이 할머니 귀엔 예쁜 재롱으로 들리는지 할머니에게선 연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범은 선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웃게 해 주었다.

할머니와의 통화가 끊긴 방 안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선우는 다시금 상황을 파악했다. 할머니께 돈 때문에 씨받이 노릇을 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결혼했다 거짓말을 한 걸, 범이 알고 있다. 정말이지 수치스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제 거짓말에 동조해 준 범이 고마웠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은 범이 할머니에게 손주 사위 노릇을 해 주었다는 사실에만 기인한 1차원적인 감정이었다.

고마움과 부끄러움을 넘어 이내 선우의 마음은 그보다 더 복잡해졌다. 이제 제 약점을 쥔 범이 어떻게 나올지 생각했다. 선우는 차마 범을 쳐다보지 못하고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배도 안 고팠다.

범은 할머니에게 사실을 밝히지 않은 대신 뭔가 요구해 올지도 몰랐다. 선우가 살아온 세상에서 그 무언가는 보통 성적인 요구였다.

-꽁으로 따먹으니까 맛이 배는 좋아.

선우는 제 첫사랑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윙윙 맴돌았다. 접대부와 손님으로 시작해 연인 비슷한 게 되고, 그 연인이 저를 두고 하는 생각이 무언지 알았을 때, 선우의 마음은 걸레짝이 됐었다. 몸만 걸레이고 싶었는데 말이다.

혹시라도 범이 그 비슷한 짓을 저지르면 어쩌나 했다. 진짜 좋아했는데 어쩌지? 할머니랑 오리만큼은 아니어도 정말 좋았는데.

그래도 한 번 데인 적이 있으니 그때보단 면역이 생겼을 거다. 선우는 미리 각오를 다졌다. 제가 진심으로 좋아한 사람이 제 약점을 쥐고 이용해 먹는 사람일 리 없다는 믿음 같은 건, 가지지 않았다. 그럴 테면 그래라,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다.

선우는 제 마음을 갈가리 찢어 버릴 준비를 하며 범의 선고를 기다렸다.

그렇게 조금 기다리니 범도 정적을 깨고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범은 선우의 예상 답안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행동을 했다.

범이 선우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뭔가를 내밀었다.

아주 노랬다. 노랗고 두껍고 실했다.

‘할머니 뒷목 잡고 쓰러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다리 벌려.’가 예상 답안이었는데 범은 ‘결혼해 줘.’ 했다.

빨아 줘, 도 아니고 결혼해 줘.

“결혼해 줘.”

선우는 결혼이란 단어를 듣고 범이 제게 내민 물체를 다시 보았다. 이제야 저 두꺼운 게 무언지 알 것 같았다. 색이 어쩜 저리도 촌스러운 샛노랑인지 모르겠지만 혹시나 급전 필요할 때 팔면 제격일 듯한 금반지였다. 순금인가 보다. 진짜 실했다.

몇 돈이나 되려나? 선우는 이 와중에도 잠시 금값 생각을 하다 급작스레 다시 허기를 느꼈다. 오동통하게 부푼 제 마음을 터뜨리지 않고 온전히 살려 준 범에 긴장이 풀려 감각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저…….”

“어! 말해! 뭐? 한다고?”

“배고파요.”

“……어? 이 타이밍 아니야? 나 할머니한테 점수도 땄는데?”

범은 잠깐 얼빠진 표정을 짓더니 그냥도 아니고 ‘너무’ 배가 고프다는 선우에 냉큼 일어섰다. 혼잣말로 자신을 질책했다. ‘아오! 이 돌대가리야, 밥을 먹여야 애가 기분이 좋지.’ 하며 제 머리를 퍽퍽 내리쳤다. 선우에게 가장 잘 보였을 때를 노린 거였는데 굶주린 임산부에겐 반지가 아니라 밥을 내미는 게 우선이었다.

잠시 패인을 분석하던 범은 선우가 제 프러포즈에 이렇다 할 답을 하지 않았음에도 기죽지 않았다. 박력 있게 선우의 어깨를 감싸고 걸음을 옮겼다. ‘오냐, 밥부터 줄게.’ 했다.

분명 똑똑하다 했는데 무식하다 싶을 만큼 용감하고 당당한 사람이었다.

차에 오른 선우는 자꾸만 비실비실 웃음이 새는 걸 입술을 이상한 모양으로 씰룩여 가며 최대한 참았다. 왠지 지금 웃으면 꼭 범을 비웃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러다 시선에 걸린 범의 앞섶을 보고 풉, 터져 그냥 웃어 버렸다. 속으로 별 오만 가지 생각을 다 한 자신도 우스웠고, 범의 앞섶이 불룩 서 있는 것도 우스웠다.

‘저게 어떻게 이 시점에 서지?’

그러자 범이 퍽 진지한 투로 배고파서 실성한 거 아니냐 물었다. 선우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금방 도착하니 조금만 참으라고 달랬다. 준석이 눈치껏 속도를 높였다.

배고파서 실성한 게 아닌 선우는 범의 앞섶을 흘끔거렸다.

범은 ‘아, 이거.’ 하며 발기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다리도 하얀 애가 흰색 반바지를 입어 하의를 안 입은 거 같단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냥 제 머릿속으로 벗기고 그 모습에 세운 거 아닐까? 근데 상상만으로 서나? 선우는 어이가 없어 또 웃었다.

“너는 지금 웃음이 나오냐? 어? 난 마음고생을 하도 해서 자지가 다 쪼그라든 거 같아. 내 거 쪼그라들면 다 네 손핸 거 알지? 한번 봐 줘 봐.”

범은 선우가 청혼을 받아 주지 않아 30분 새에 30년은 늙은 것 같다 푸념했다. 덩치에 맞지 않게 앙탈을 부리는 게 귀여웠다.

선우는 무뚝뚝하게 굴었지만 실은 범에게 뽀뽀라도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뽀뽀를 하면 프러포즈를 받아 준 거라 우길 것 같아 해 주지 않았다. 대신 자지를 봐 달라는 범에게 대충 손을 뻗어 조심스럽지 않은 손길로 턱턱 범의 앞섶을 만져 보았다. 안 쪼그라들었어요, 라고 평을 내려 주고 그냥 계속 만졌다. 조금 과격하게 만져 아플 수도 있을 텐데 범은 좋아 죽었다.

형 돈다, 환장한다, 침 흘릴 거 같다 등등의 말을 뱉다가 갑자기 잠깐, 했다.

“너 나 차려고 불쌍해서 만져 주는 거 아니지?”

“뭐가 불쌍해요. 돈도 많고 물건도 큰데.”

선우가 앞을 보며 심드렁히 대꾸했다. 앞에서 운전을 하던 준석도 자그맣게 끄덕이는 게 보였다.

“자지가 크면 뭐 하냐, 마누라가 없는데. 나 불쌍하지 않아? 어? 선우야, 형 외롭다.”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배고파서 남 불쌍한 거 눈에 안 들어와요.”

“남이라니. 남편 해 줘.”

“생각해 볼게요.”

범은 식당으로 이동하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야무지게 질척거렸다.

선우는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범이 좋은 건 맞는데 결혼은 신중해야 하니 일단 생각을 좀 해 봐야 하고, 내가 당장 아사 직전인데 남의 자지가 외롭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밥을 먹어야 머리도 잘 굴러가고, 머리가 잘 굴러가야 신중한 결정이 가능한 거 아니겠나.

선우의 정 없는 대꾸에도 범은 도시적인 매력이 흐른다며 칭찬했다. 선우가 ‘저 촌놈인데요?’ 하고 말대꾸하자 범이 ‘그렇담 반전 매력이네.’ 하며 헛소리를 이었다.

식당에 도착하면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범은 식당에 도착해서도 더럽게 치근덕거렸다. 선우가 듣든 말든 저는 선우의 발닦개도 될 수 있다며 의욕을 보였다. 입을 쉼 없이 놀리면서 손으론 부지런히 고기를 구웠다. 금세 익는 차돌박이를 굽는 족족 선우의 앞접시에 놔주었다.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는 도착과 함께 바로 세팅되어 나왔고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커다란 회관 같은 고깃집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걸로 보아 빌린 듯했다.

선우는 ‘애 백일잔치 할 때나 빌리지.’ 하며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오리의 백일잔치는 저와 상관없는 일이었는데 범이 프러포즈를 하니 어쩌면 내게도 상관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모르겠다. 일단 밥이나 먹자.

선우는 찌개에 공깃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 가기 시작했다. 범이 구워 준 고기도 쌈에 싸 먹었다. 반면 범은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선우를 챙기기 바빴다.

“안 드세요?”

“난 차여서 밥이 안 넘어가.”

선우가 피식 웃었다. 삐졌으면 챙기지나 말지 범은 선우의 앞자리도 아닌 옆자리에 앉아 밥 수발을 들었다. 그러다 한 번씩 선우의 귓가에 난 네가 먹고 싶어, 했다. 차돌박이도 느끼한데 범은 더 느끼했다. 시원한 탄산음료가 당겼다. 먹고 싶었는데 말은 하지 않았다. 번뜩 유 회장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 번 먹는 건 괜찮다고 하지만 탄산음료 같은 걸 유 회장 손주가 들어 있는 배 속에 넣었다가는 아주 경을 칠 것 같았다. 범이 시켜 준다면 못 이기는 척 딱 한 모금만 마시고 싶었다. 선우는 속으로 탄산, 탄산 하고 외며 계속 고기를 집어 먹었다.

‘운명이 어쩌고 하더니 텔레파시 못 알아듣네.’

선우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실 때 콜라 먹을래, 사이다 먹을래? 하는 물음이 들려왔다. 선우는 그 소리에 광대를 볼록 올리며 범을 쳐다보았다.

범이 ‘웃기는.’ 하며 선우의 광대에 쪽 뽀뽀를 해 주었다. 시선은 불판에 두고 계속 고기를 구우며 ‘음료수로 누르고 더 먹어.’ 했다.

범의 조언에 선우가 푸스스 웃었다. 그와 살면 재미는 있을 것 같았다.

“형 고기 굽느라 바쁘다. 저기 냉장고 봐서 마시고 싶은 걸로 갖고 와. 너 아직 덜 먹었어. 좀 움직여야 더 먹지.”

선우는 이미 된장찌개와 공깃밥 한 공기를 거덜 낸 제게 덜 먹었다 그러는 범이 고마웠다. 진짜 더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범이 음료수 냉장고까지 산보도 보내 주어 신이 났다. 음료수도 이것저것 많은 것 같던데, 어떤 게 있는지 직접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히죽 웃은 선우가 냉큼 발걸음을 옮기려다 아, 하고 범을 돌아보았다.

“뭐 안 마시세요? 술 한 병 갖다드릴까요?”

“술 같은 거 먹고 청혼하는 거 아니다. 진심이 없잖아, 진심이.”

범은 하여간 술기운을 빌려 그런 소릴 하는 새끼들은 자지를 떼야 한다고 중얼거렸다. 선우가 ‘그래서 안 마신다는 거죠?’ 하고 다시 묻자 ‘널 마시고 싶어.’ 했다. 무시하고 냉장고로 향했다.

아무래도 청혼을 또 할 모양이었다. 선우는 뒤돌아 몰래 입꼬리를 올렸다. 제 승낙을 바라고 기다리는 범에 마음이 찡했다. 결혼이 하고 싶으면 할머니를 이용해 협박을 하고, 마구잡이로 제 손을 끌어다 혼인 신고서에 지장을 찍어 버릴 것 같은 사람이 그러지 않고 제 의견을 물어 주었다. 강요나 협박 대신 청을 했다.

안 해 주면 저나 할머니를 죽이겠다가 아니라 본인이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콱 죽어 버릴 거라 했다. 아, 이것도 일종의 협박일 수 있지만 하나도 협박처럼 들리진 않았다. 죽음의 방법으로 접시 물에 코 박기를 고른 건 그냥 안 죽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고로 범은 선우를 협박하지 않았다.

선우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범의 청혼을 승낙해야 할 이유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오리야, 나 그냥 네 엄마 할까?

오리는 답이 없었지만 왠지 그러라는 것도 같았다. 말 못 한다고 너무 멋대로 해석했나? 선우가 멋쩍게 웃으며 탄산수를 한 병 집어 들고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탄산음료보다는 죄책감이 덜해 뿌듯했다.

“무슨 음료수를 그렇게 오래 골라? 보고 싶었잖아. 얘 만져 봐. 질질 운다.”

범이 턱짓으로 제 아래를 가리켰다. 어쩜 저런 소릴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하는지 모르겠다. 선우는 보고 싶었다며 덩칫값 못하고 칭얼거리는 범을 대꾸 없이 빤히 바라보다 범의 볼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그러곤 컵에 탄산수를 따라 꼴깍꼴깍 마셨다. 고기와 범의 느끼함이 동시에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다시 밥에 집중했다.

“하……. 얘 더 우는데?”

“마르겠죠.”

“아유, 어디서 이렇게 똑똑한 게 굴러 들어왔지?”

범은 고기쌈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하는 선우의 볼에 쪽쪽 뽀뽀를 퍼부었다. 선우는 볼도, 마음도 간지러워 실실 웃다 쌈 하나를 정성스레 싸 범의 입에 넣어 주었다.

“이거나 드세요.”

범은 선우가 주는 쌈을 받아먹고 씩 웃었다. 장족의 발전을 이룬 관계에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쾌감을 느꼈다. 선우는 나비처럼 곧 저를 따라올 게 분명했다.

내내 가볍던 범의 미소가 진득하고 무거워졌다.

***

식사 내내 제가 가장 노릇을 잘하겠다는 둥,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주겠다는 둥, 구시대적 포부를 밝히던 범은 식사를 마치자 다시 점잖게 굴었다. 밥만 다 먹어 봐라, 하고 아주 청혼을 벼르는 것 같더니 의외로 얌전했다.

범은 준석을 물리고 직접 차를 몰았다.

선우가 슬쩍 범의 눈치를 보았다. 야한 농이라도 건네주었음 하고 바랄 정도로 차 안이 조용했다. 화난 기색은 아닌데 내내 유쾌하게 굴던 사람이 조용해지니 제가 무얼 잘못했나 싶었다. 바짝 엎드려도 모자란 주제에 너무 기어오른 것 같기도 했다. 저도 모르게 범이 너무 편해졌는지 돌이켜 보니 많이도 까분 것 같았다.

그러게 처음부터 비싸게 군다고 뺨을 올려붙일 것이지, 왜 비싸게 굴어도 진짜 비싼 거 대하듯 해 줘. 사람 착각하게.

선우는 불안과 초조를 담은 무표정을 했다.

범이 그런 선우와 눈을 맞추며 씩 웃었다. 다양한 매력을 보이는 중이니 눈치 보지 말라고 했다. 선우의 볼을 톡 건드리고 다시 앞을 보았다.

“형 진중하지? 남자가 묵직해야지. 자지도 묵직하고.”

선우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범의 헛소리가 반가워 진심으로 환히 웃었다. 제 옆에 범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맛있는 음식으로 배도 잔뜩 채웠다.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선우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행복해.’라고 혼잣말을 했다.

용케 들은 범이 씨발, 지금이야? 차 세우고 무릎 꿇을까? 했다. 너는 왜 하필 액셀 밟는 중에 행복하냐?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허둥지둥하는 범이 재미있어 선우는 입가에 미소를 걸고 범을 빤히 쳐다보았다.

차 세울 데를 물색하며 씨발씨발 거리던 범이 아차 했는지 제 입을 퍽 하고 때렸다. 잘 보여도 모자랄 마당에 욕지거린 좀 아니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범이 선우에게 ‘미안.’ 했다. 뒤이어 ‘오리도 미안.’ 했다.

“하던 대로 하세요. 다들 욕하고 사는데요, 뭐.”

“너도 하고 사냐? 안 하던데?”

“전 속으로 해요.”

“겉으로 해 줘. 나한텐 욕도 하고 다 해 줘. 생각만 해도 꼴린다.”

선우가 피식 웃었다. 제게는 무슨 말이든 다 해 달라는 범의 뺨에 쪽, 하고 뽀뽀했다. ‘개배불러.’ 하고 속으로 생각하던 것도 말해 주었다.

“아, 개배불러요.”

범이 기분 좋게 웃었다. ‘아유, 요 귀여운 거 확 그냥 보쌈해 버릴까?’ 했다.

보쌈이란 예스러운 표현에 선우가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기가 찼다. 가뜩이나 할머니가 보고 싶은데 자꾸 노인네 같은 소릴 하는 범이었다.

“이미 같이 사는데 보쌈을 어디로 하시게요?”

“왜, 궁금해? 당해 줄 마음은 있는가 부지?”

범이 능글맞게 눈썹을 올리며 선우의 사타구니 사이로 손을 넣었다. 슥슥 사타구니를 문지르다 가운데 있는 아이를 꾸욱 하고 눌렀다. 만지니 응당 반응이 왔다. 하으……. 선우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네 거도 울어? 내 건 아까부터 우는데. 우리 슬픈 애들끼리 서로 위로 좀 해 줄까?”

“얜 금방 그쳐요. 걱정 마세요.”

“어떻게 혼자 그치게 두냐, 형 마음 아프게. 어떡할까? 요 갓길에 차 세울까?”

범의 장난기 짙은 미소가 싱그럽긴 했지만 선우는 씽씽 달리는 차가 서는 걸 원치 않았다.

“왜 진중한 모습은 보여 주다 마세요?”

범이 웃음을 흘리며 선우의 머리를 헝클였다. 닥치라는 소리도 예쁘게 한다, 했다. 범은 선우의 분부대로 입에 지퍼를 채우고 어디론가 내리 달렸다. 집으로 가는 거였다면 도착하고도 남았어야 할 시간에 줄곧 달렸으니 아무리 서울 지리를 모르는 선우여도 집에 가는 게 아니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어디로 가냐 묻지 않았다. 상대가 범이라면 보쌈을 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차 안은 다시 고요해졌지만 분위기는 결코 냉랭하지 않았다. 범은 선우의 손을 꼭 쥐고 있다 신호가 걸릴 때면 꾹 다문 입술을 선우의 손등에 비볐다. 소중한 거 대하듯 손가락 하나하나에 쪽쪽 뽀뽀도 해 주었다.

덕분에 금방 그친다고 자부했던 선우의 아래는 계속 찌릿찌릿했다. 졸리면 좀 자라고 볼을 쓸어 주는 범에게 네, 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선우는 범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범은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범의 두툼한 몸통을 감당하느라 애쓰고 있는 단추들이 퍽 힘겨워 보였다. 진짜 묵직하긴 하네, 혼자 감상 평도 내렸다. 신호가 걸려 범이 절 쳐다볼 것 같으면 냉큼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고 범이 운전을 재개하면 힐끔힐끔 또다시 도둑 시선을 던졌다. 이 놀이가 퍽 재미있어 선우는 고요한 차 안이 지루하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고 놀았다. 좋아하는 사람을 자꾸 쳐다보면 좋아하는 마음이 커진다는 걸 깨달았다. 주책맞게 바라만 봐도 좋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선우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아 버렸다. 하도 봐서 그런가, 눈을 감아도 범을 그릴 수 있었다.

붕 하는 엔진 소리가 쿵쿵 뛰는 제 심장 소리를 가려 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눈은 감고 있었는데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차가 멈추었다. 한 시간 반가량을 달렸다. 아주 멀리 온 건 아닐 텐데 불빛이 드문드문 사위가 깜깜했다.

범이 선우의 벨트를 풀어 주며 볼에 쪽 뽀뽀를 해 주었다.

“옜다, 놀아라.”

차에서 내린 선우의 눈앞엔 밤바다가 있었다. 선우는 아스팔트가 모래사장으로 바뀌는 곳까지 홀린 듯 걸어갔다. 강가에서 나는 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가슴을 뻥 뚫어 주었다. 진짜 오리가 대신 말해 줬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선선한 바닷바람에 머리가 흩날렸다. 바다 냄새가 나는 공기를 많이 담아 가고 싶어 숨을 크게 쉬었다.

입이 귀에 걸린 채로 제 곁에 따라온 범을 보았다.

“바다 가고 싶다고 시위하는 복장이길래.”

아, 오리가 말해 준 게 아니구나. 머쓱한 선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감사합니다.”

“오냐, 얼른 가서 놀아라. 놀다 무서우면 오고.”

선우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고 잠깐 멈춰 서 있다 범에게 손을 내밀었다. ‘같이 놀아요.’ 했다. 시선은 제 발을 감싸는 모래에 두었다. 부끄러웠다.

너나 놀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범은 신은 신발도, 입고 있는 옷도 모래사장을 거닐기엔 썩 적절치 않았다. 범이 제 제안을 거절해도 절 싫어하는 건 아닐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생겨 버려 먼저 손 내미는 용기도 낼 수 있었다. 거절당해도 정말 괜찮았다.

허나 기다림은 찰나였다. 두껍고 큰 손이 선우가 내민 손을 덥석 잡아 왔다. ‘씨발, 인간 승리다.’라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선우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로 볼록 광대를 올렸다.

“그래, 앞으로도 오빠 좀 데리고 놀아. 귀찮게 안 할게.”

“형이요.”

“오빠 소리 징그럽지? 그럼 여보 당신 하면 돼.”

“그것도 징그러운데요.”

선우는 빨갛게 달아오르는 제 얼굴을 느낄 수 있었다. 귀까지 뜨거웠다. 냉큼 범을 끌었다. 제가 듣기에도 심히 무뚝뚝한 투로 ‘아, 빨리 가기나 해요.’ 했다. 무뚝뚝한 게 아니라 부끄러운 거라는 제 마음을 범은 알아줬음 했다.

그렇게 선우는 범의 손을 꼭 잡고 밤바다를 거닐었다. 어둠에 익숙해지니 주변이 잘 보였다. 달빛이 있어 환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기분이 좋다는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황홀했다. 뭣 하러 우주선 같은 걸 만드는 데 돈을 쓰는지 모르겠다. 인천 앞바다만 와도 우주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데.

선우가 저도 모르게 ‘아, 행복하다.’ 했다.

범은 밤바다 산책에 쥐뿔도 집중하지 않고 있었나 보았다. 파도 소리가 꽤나 시끄러운 와중에 흘리듯 말한 선우의 말을 귀신같이 들은 걸로 보아 내내 기회만 노린 게 분명했다.

우뚝 멈춰 선 범이 다시 무릎을 꿇었다.

“결혼해 줘.”

처음 내밀었던 것과는 또 다른 케이스를 내밀었다. 깔끔하고 심플한 반지가 들어 있었다. 이번엔 백금인지 노랗지 않았다. 가운데엔 부담스럽지 않은 크기의 하얀 보석이 박혀 있었다. 달빛을 받아 반짝 빛났다.

이 황홀한 순간에 울고 싶진 않아서 선우는 잠시 멍하니 울렁이는 마음을 추슬렀다. 조금 분위기 깨는 소리를 해야 눈물이 터지지 않을 것 같은데, 이를 어쩐다.

“……아까 그 순금은요……?”

“그것도 네 거고 이것도 네 거야. 다 줄 테니까 대신 나도 가져 줘.”

마지막 옵션이 가장 탐나는 옵션이었다. 해사한 미소를 입에 건 선우가 네, 하고 답했다.

***

둘은 어슴푸레 동이 터 올 때까지 차 뒷좌석에서 새벽을 지새웠다. 알몸으로 얼싸안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입을 맞췄다. 메롱 하듯 혀끝만 빼 달랑달랑 장난도 쳤다.

선우의 왼손엔 반지 두 개가 끼워져 있었다. 엄지엔 두껍고 실한 순금 반지, 약지엔 평생 껴도 질리지 않을 클래식한 모양의 백금 반지였다. 제 손을 바라보던 선우가 나중에 오리에게 물려줄 것을 생각하며 히죽 웃었다.

“너는 금이 좋아, 내가 좋아? 금붙이를 너무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거 아니냐? 나도 좀 그렇게 봐 줘 봐. 그거 내가 사 왔어.”

“아니 형은 이렇게 보면 서잖아요.”

“서면 예쁘다 예쁘다 해 줘.”

“그게 솔직히 예쁘진 않잖아요.”

“와- 어떻게 그런 소릴 하냐?”

범은 씩씩거리며 진심으로 상처받은 양했다.

“네가 나랑 안 자 봐서 그래. 너 나랑 한 번 하잖아? 그럼 아주 내 자지를 금붙이 모시듯 받들어 모실 거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 예뻐해 줘. 얜 네가 좋대.”

선우는 비웃음을 삼키고 네네, 하며 대충 범을 달랬다. 눈치가 발에 달린 사람이 보아도 영혼 없는 대답이었다.

범은 확인시켜 줄 수 없어 답답한지 제 가슴을 내리치며 아오! 아오! 했다. 그래도 남편 될 사람인데 비웃은 게 조금 미안해진 선우가 범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어휴, 이런 거 해 주면 또, 이 형아 마음이 사르르 풀려 버리지. 얘도 해 줘. 삐진 건 얘야.”

범이 선우의 손을 끌어다 제 아래에 비볐다. 귀여운 개수작에 피식 웃은 선우가 기꺼이 얼굴을 내렸다.

오래 살다 보니 빠는 게 다 행복하네, 하고 할아버지 같은 생각을 했다.

***

선우는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아쉬워 해가 뜬 바닷가를 한 번 더 거닐었다. 범도 데리고 가 주었다. 범은 혼자 저만치 뛰어갔다 다시 선우에게 뛰어오기를 반복했다. 체력이 주체가 안 되는지 밤을 꼴딱 새고도 아침 운동을 했다. 그 짓을 안 하니 힘이 너무 남아돈다고 했다. 넣지만 않았다 뿐이지 손만 잡은 것도 아니면서 그랬다.

‘오리야, 너네 아빠 저래 놓고 속 빈 강정인 거 아니냐? 자기 입으로 잘한다 그러는 거부터 좀 텄다. 그치?’

선우는 숲도 아닌 바다를 내달리는 호랭이 한 마리를 보며 오리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범의 뒷모습에 대고 입만 산 것 같다 뒷담화를 하는데 방향을 튼 범이 다시 선우에게로 뛰어왔다. 저 욕하는 거 알고 오나? 살짝 긴장했는데 다행히 용건이 있어 온 건 아니었다. 범은 선우의 볼에 쪽 뽀뽀를 하곤 내달리기를 계속했다.

‘동네 미친놈이네, 딱. 그래도 튼튼해 보이긴 한다.’

미친놈이라 하긴 했지만 범이 바람을 가르는 게 시원해 보였다. 선우도 함께 달리고 싶었지만 배 속에 붙어 있는 오리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라 달리지 못했다. 논두렁이고 밭두렁이고 좀 뛰어다녀 본 가닥으로 잘 뛸 자신이 있었는데 아쉬웠다.

선우는 대신 경치를 즐겼다. 바다는 끝이 없었다. 선우는 하늘인지 바다인지 경계가 모호한 수평선 저 너머로 가 보고 싶었다. 뭐가 있을 것 같진 않지만 뭐가 없어서 더 좋을 것 같았다. 빠져 죽고 싶다는 암울한 생각은 결코 아니었는데 선우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한 걸음 물가를 향해 나아갔다. 지금의 행복이 달아나지 않게 이대로 아름다운 풍경에 몸을 내던지고 싶었다. 그럼 풍경과 한 몸이 되지 않을까 했다.

탁, 탁, 탁, 탁, 빠른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샌가 뛰어온 범이 선우의 손목을 홱 하고 낚아챘다.

선우가 시선을 돌려 범을 보았다. 잠시 꿈을 꾸다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현실이 여전히 행복해 낯설었다. 이 현실이 제 현실이 맞나 파악하기 위해 잠시 멍해 있었지만 이내 씩 하고 웃어 보였다. 지금의 행복을 준 사람이 제 앞에 서 있었다. 바다를 따라갈 게 아니라 그를 따라가는 게 맞았다.

범이 선우를 한 팔로 안아 들었다. ‘빠꾸, 빠꾸!’라 외치며 열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다. 사고 치다 잡혀 연행되는 모습이었다.

선우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는 듯 해맑게 웃었다. 범은 그런 선우의 볼을 꼬집으며 지금 웃음이 나오냐 꾸중했다. ‘아오, 이 또라이 진짜. 오리 이놈 새끼도 아주 보통 꼴통이 아니겠어.’라고 혼자 구시렁거렸다.

“식도 안 올리고 신랑 홀아비 만들려고?”

“저 수영 잘하는데……. 재혼하실 거면서 무슨 홀아비예요.”

“뭐? 재혼?”

범은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지옥 끝까지 쫓아갈 건데 무슨 그런 서운한 소릴 하냐?”

“빚도 없는데 왜 쫓아와요.”

선우가 심드렁히 대꾸했다. 그런데 뱉고 보니 제가 생각해도 미운 소리이긴 한 것 같았다. 미안함에 괜히 눈동자를 굴리며 범의 눈치를 보았다. 미안하다고 할까 하다 씩씩거리는 범의 볼에 쪽 하고 뽀뽀했다. 이 편이 빠를 것 같았다.

범은 화난 듯 미간에 주름을 만들고 험악한 표정을 했다. 그러고선 ‘혀도 넣어 줘.’ 했다. 앞섶을 불룩 세우고 삐진 척을 하는 뻔뻔함에 기가 찼다.

범이 결혼도 안 하고 재혼 소리를 하는 애가 세상에 어디 있냐며 투정을 부렸다. 선우를 냉혈한 취급했다.

선우는 어처구니가 없어 그저 웃었다. 이전 날 유 회장이 범을 두고 ‘제 아들이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라 평했던 게 떠올랐다. 그래도 저 덩치로 귀여우니 그냥 지기로 했다.

선우가 범의 목 뒤로 팔을 둘렀다. 입술을 살짝 벌리고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넣어 달라더니, 성미가 급한 범의 혀는 미리 마중을 나왔고 선우가 넣기 전에 제가 먼저 선우의 입속을 침범해 들어갔다. 선우의 입 안 곳곳을 휘저어 놓은 뒤 선우의 혀를 옭아매 이리 굴렸다, 저리 굴렸다 했다. 흐물흐물 풀어진 선우의 혀가 범이 가지고 노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렸다.

선우는 부러 더 힘을 풀고 휘둘림을 당해 주었다. 물 만난 듯 한참을 가지고 노는 범에 장단을 맞췄다.

춥, 춥, 가벼운 버드 키스와 함께 떨어진 입술이 타액으로 번들거렸다. 키스를 나눌 땐 아무것도 안 들렸는데 선우의 귓가에 다시금 쏴아- 하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쾅쾅 귀를 때리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음치 손님의 열창 같은 걸 듣고 살던 귀가 자연의 소리를 들으니 정화되는 것만 같았다.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범은 제가 키스를 잘해서 웃는다 착각하는 것 같았다. 틀린 말은 아니니 지적하지 않았다.

범이 선우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뜬금없는 걸 물었다. 너 유연하지?

잠시 생각해 보던 선우는 그렇다 했다. 운동 신경도 나쁘지 않고 유연한 편이었다.

혀가 유연하길래, 라고 나직이 혼잣말을 읊조린 범이 어울리지 않게 소녀 같은 표정을 지었다. 표정은 분명 소녀인데 선우의 양 볼기짝을 그러쥐는 손길은 그냥 치한이었다.

“형 설렌다.”

“뭐가요?”

“알면서.”

범이 선우를 향해 씩 웃어 보이며 찡긋 윙크했다.

***

범은 다시 운전대를 잡고 선우는 범의 앞섶을 잡았다. 범의 졸음운전을 방지하기 위한 묘책이었다. 솔직히 하나도 안 졸려 보였지만 선우는 대충 해 주고 말았다. 조물조물해 주며 바쁘게 돌아가는 아침 풍경을 구경했다.

세상에 차 가진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싶었다. 서울 시내로 들어서자 꽉꽉 막혔다. 직장인 같아 보이는 사람들 손엔 하나같이 커피가 들려 있었다. 목에는 사원증, 손에는 커피, 선우의 삶과는 참 많이 달라 보였다.

범은 세상 구경하기 바쁜 선우에게 ‘여보, 나 좀 봐.’ 하며 질척거렸다. 어차피 운전하는 중인데 뭘 그렇게 보라는 건지 모르겠다. 선우는 옜다, 하고 잠시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밖을 보았다. 컵 홀더가 끼워진 테이크 아웃 커피, 사람들은 대체로 사약 색깔의 커피를 들고 있었다. 저분들도 삶이 팍팍하신가?

범은 몇 번 더 질척이다 결국 드라이브스루로 커피를 샀다. ‘사 줄 테니까 나 좀 봐.’ 했다.

커피가 먹고 싶어서 쳐다본 건 아니었지만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커피를 사는 이런 신세계는 또 처음이라 선우에겐 이 경험도 퍽 재미있고 신기했다. 드라이브스루는커녕 스타벅스 자체를 처음 먹어 보았다. 읍내로 나가면 롯데리아는 있었다.

선우는 새콤달콤한 망고 맛 음료, 범은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몇 번 빨면 없는 음료가 쓸데없이 비쌌지만 기분은 좋았다. 행복을 산다 생각하면 별로 비싸지 않은 것도 같았다.

범이 빵도 시켜 주어 선우는 범의 볼에 쪽 하고 뽀뽀해 주었다. 그러자 범이 제 가슴팍에 손을 얹고 윽! 하며 심장 마비가 온 양 열연을 펼쳤다. 방정맞았다.

선우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저런 거에 웃어 주면 안 되는데 자꾸 웃음이 나 큰일이었다. 웃을 만큼 다 웃어 놓고 웃음이 멈추자 자긴 그런 적 없다는 듯 ‘그만하세요.’ 했다.

선우의 괄시에도 범은 당당했다. 자기는 다 믿는 구석이 있다며 턱짓으로 제 아래를 가리켰다. 지금 많이 무시하라나 뭐라나, 선우는 피식 웃고 진짜 무시했다.

***

할머니 댁에 내려가기 하루 전, 선우는 정기 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물론 범도 함께였다. 병원에 가기를 가장 학수고대한 사람이었다.

선우의 담당의는 제 의술로 탄생 시킨 태아의 실제 아빠가 등장해 흠칫 놀랐다. 솔직히 아기를 떼 달라고 온 거 아닐까 하는 오해를 했다. 병원을 뒤집어엎고 난동을 부릴 것이란 예상이 1순위였다.

의사가 유 회장을 불러야 하나, 경찰을 불러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범은 꿈에 부푼 표정으로 선우의 어깨를 감싸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자신이 아기 아빠인 게 퍽 자랑스러운 모양인지 태도가 아주 위풍당당했다. 선우 역시 강제로 끌려온 기색은 아니었다. 제 어깨에 걸쳐진 범의 우람한 팔뚝을 조금 귀찮아하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사이는 좋아 보였다.

비로소 한시름 놓은 의사는 진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선우도, 오리도 건강했고, 딱히 이상 징후는 없다는 소견과 함께 의사의 허락이 떨어졌다. 비교적 안정적인 주수까지 넘어와 관계를 해도 괜찮다는 허락이었다. 의사는 임신 중 관계에 대한 이런저런 권고 사항을 알렸고 범은 필기라도 할 기세로 열심히 들었다. 학구열 넘치는 학생처럼 질문도 했다. ‘이거는 해도 된다.’ 하면 입꼬리를 올렸고, ‘저거는 하지 말라.’ 하면 인상을 구겼다.

그 드라마틱한 표정 변화를 보며 선우는 저리도 좋을까, 하고 피식 웃었다.

‘너네 아빠 신났다. 오리야, 혹시 안으로 흉측한 거 들어와도 놀라지 마. 그게 곧 네 아빠라고 볼 수 있어. 놀라지 말고 안녕, 해.’

손을 잡고 병원을 나서는 길에 범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당장에 집으로 돌아가 다짜고짜 바지부터 내릴 것 같던 사람이 의외로 여유 만만했다. 할머니 댁은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할머니는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팔자 좋게 뭐 그런 걸 물었다.

선우가 시골집의 구조와 할머니의 스케줄을 대충 읊어 주었다. 단조로워 길게 읊을 것도 없었다.

할머니는 점심을 먹고 마을 회관에 가 동네 할머니들과 놀다 오신다. 이 대목에서 범이 씩 웃었다. 밤 열 시만 되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드신다. 이 대목에서도 또 웃었다.

범은 선우의 말을 들으며 ‘처갓집에서’ 무어라 무어라 작게 웅얼거렸다.

제대로 못 들은 선우가 ‘네?’ 하자 능글맞게 웃으며 ‘형 설렌다.’ 했다.

***

병원을 나와 들른 곳은 백화점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선 백화점 꼭대기 층에 있는 식당가로 가 갈비탕을 한 그릇씩 비웠다. 반찬 삼아 석쇠 불고기, 입가심으로 비빔냉면도 시켰다.

범은 오늘따라 유독 잘 먹었다. 원래 잘 먹지만 오늘은 싱글벙글 웃어 가며 먹었다.

왜 저러나 싶지만 보기는 좋은 모습이라 선우는 제 몫의 갈비를 건져 살만 발라 범의 밥 위에 얹어 주었다. 보통은 범이 선우의 밥 위에 고기를 올리기 바쁜데 오늘은 선우가 올렸다. 웃는 얼굴은 갈비도 자진해서 나눠 주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범은 선우가 내어 준 갈비를 뭉클하게 바라보다 사양하지 않고 덥석 받아먹었다.

“그래, 내가 힘을 잘 써야 우리 마누라도 좋지.”

범이 씩 웃으며 선우에게 열렬한 눈빛을 보냈다.

선우는 변강쇠가 떠올라 피식 웃었다.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장작 패는 남자가 퍽 취향이긴 하지만 살짝 걱정도 되었다. 내일 일찍부터 할머니 댁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오늘 밤에 너무 그렇고 그런 거 아닌가 몰랐다.

“저기……. 한 번 할 때 한 번씩만 해요.”

“그래.”

선우가 웬일이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범이 씩 입꼬리를 올리고 ‘오빠 안 뺄게.’ 했다. 그러다 선우가 노려보자 ‘형 안 뺄게.’로 정정했다. 오빠고 형이고 때문에 노려본 게 아니라는 걸 저 눈치 귀신이 모를 리가 없는데 범은 모른 척 갈비를 뜯었다.

결국 선우는 ‘한 번만 해요.’가 아닌 ‘한 번만 싸요.’로 정정해 말했다.

“나 한 번 쌀 때 너 두 번 싸잖아. 그럼 뭐, 나는 반만 싸냐?”

“저 두 번, 형 한 번이요.”

“불공평하잖아.”

“돈도 안 받는데 굳이 공정 거래 해야 돼요?”

“섹시하게 자꾸 똑똑하지 마라. 형 꼴린다.”

둘의 밥상머리 앞 설전은 티격태격 첨예한 대립을 이루었다.

하지만 입씨름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누라 이겨 먹음 나중에 국물도 못 얻어먹는다며 범이 먼저 져 주었다. 그는 ‘국물’이란 단어를 곱씹으며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변태 같았다. 변태 맞지만.

‘알았어, 알았어. 형이 안 싸고 끝까지 버텨 볼게.’ 하며 정녕 져 주는 게 맞는지 모를 소리를 했지만 그래도 오리가 배 속에 있는 동안은 한 번 넣고, 한 번 싸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선우는 조금 뿌듯하여 티 나지 않게 광대를 볼록 올렸다가 급히 내렸다. ‘오리야, 내가 이겼다.’ 하며 오리에게 자랑 아닌 자랑도 했다. 이기고 사는 데 썩 취미는 없지만 제가 이겨 먹은 사람이 범이어서 되게 센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범은 가뜩이나 제약이 많은 와중에 횟수에도 제약이 걸리자 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져 줬으면 져 준 거지 거기다 대고 또 삐진 척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삐진 척으로 보는 건 선우뿐이었다.

범의 뒤를 따르던 수하들은 저러다 선우도 잡고, 아기도 잡고, 저들도 잡힐까 두려워 바짝 긴장하였다. 오늘 저녁에 선우를 데리고 인사를 오라는 회장님의 연락을 받았는데 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장님의 연락을 재깍 전하지 않으면 그것도 문제인지라 그나마 가장 예쁨을 받고 있는 준석에게 나머지 수하들이 총대를 메라 종용했다. 준석이 예쁨을 받는 이유는 이럴 때 나대지 않기 때문이었다. 준석은 ‘이미 미움 산 니들이 해라.’ 했다.

범과 선우는 대놓고 투닥거리고 수하들은 조용히 투닥거렸다.

“내가 할머니 홍삼 사 드릴 거다.”

범은 삐진 척을 하다 말고 뜬금없는 소릴 했다.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지만 잡은 선우의 손은 꼭 붙들고 있었다. 선우는 범이 제 손을 놓지 않아 그가 아무리 험악한 얼굴을 해도 썩 무섭지 않았다.

범은 이어서 안마 의자도 사 드릴 거라 했다. 갑자기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할머니께 대리 효도를 하신다기에 선우는 그저 ‘감사합니다.’ 했다. 그 후로도 이런저런 효도 상품들을 나열했다. 계속 감사하다 하는데도 범은 도대체 바라는 게 뭔지,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아, 하고 무언가 깨달은 선우가 피식 웃으며 범의 볼에 쪽 뽀뽀했다.

범이 ‘씨발, 이 맛에 산다.’ 하고 나직이 읊조렸다.

“언제 해 주나 했네.”

“해 달라고 하지 그러셨어요.”

빨아 줘, 만져 줘, 결혼해 줘, 잘만 하는 사람이 가끔 별것도 아닌 거에 노력을 기울였다. 자발적으로 하는 걸 받아 내는 게 좋은 건가? 선우는 변태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저를 위해 노력해 주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해 달라고 하면 해 줄 거야?”

“네.”

“그럼 두 번 하게 해 줘.”

“아, 그건 끝난 얘기잖아요.”

“이봐, 안 해 줄 거면서. 너 그거 달고 한 입으로 두말하면 안 돼.”

“그, 그럼!”

“어, 그럼 뭐? 뭐 해 주게?”

잔뜩 기대하는 듯한 범을 보며 선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뭐 해 주지, 잠시 생각하다 심드렁히 가슴 만지실래요? 했다. 이상하게 임신을 한 뒤로 가슴이 너무 예민해졌다. 가슴에 애무를 받을 때마다 쾌감을 넘어 짜증이 치미는 듯한 찌릿함을 느껴 선우는 범이 제 가슴에 손대는 것을 꺼려했다. 당연히 입도 못 댔다.

예전엔 뒤가 찢어지는 아픔도 잘만 참았었는데 오리가 못 참는 건지 뭔지, 하여간 뭘 어떻게 해 줘도 정말 못 참겠어서 빨고 싶다 침까지 흘리는 그를 외면해 왔다. 그래도 이번엔 선물이다 생각하고 좀 더 참아 볼까 했다.

범은 반응이 참 빨랐다. 반사 신경이 무척 좋은 듯했다. 선우가 가슴이란 단어를 입에서 뱉음과 동시에 이미 좋아 죽고 있었다. ‘아유, 요 예쁜 거.’ 하며 선우의 온 얼굴에 뽀뽀를 퍼부었다. 선우는 범이 다 할 때까지 얌전히 있다가 범이 떨어지자 얼굴에 묻은 침을 닦았다.

그런 둘에게 약간의 거리를 두고 뒤를 따르던 준석이 다가왔다. 때를 잘 보는 준석은 범의 기분이 좋아지길 노리다 냉큼 다가와 유 회장의 연락을 전했다.

“형님, 회장님께서 오늘 형수님이랑 같이 저녁 식사 하시자는데요?”

선우는 준석의 형수님 소리가 징그러웠지만 범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또 지킬 건 지키는 구나 쌔끼, 라며 칭찬할 부분을 칭찬해 준 뒤 후에 욕을 했다.

“야 이 새끼야, 할머님이 연장자 아니냐 이 근본 없는 새끼야. 할머니도 안 뵀는데 아버지를 먼저 보냐?”

“예! 죄송합니다, 형님. 회장님께 말씀 전하겠습니다!”

선우는 제 할머니가 먼저라는 말에 조금 감동했다. 그리고 솔직히 유 회장과 밥을 먹기도 싫었다. 결혼을 하겠다 했으면 당연히 거쳐야 할 수순인데 생각만 해도 얹히는 것 같았다. 불편한 상황을 막아 준 범이 사랑스러워 선우는 제 손을 잡고 있는 범의 손바닥을 검지로 살살 긁었다. 깡패가 장유유서도 알고, 신랑감을 퍽 잘 고른 것 같았다.

범이 준석을 물리고 손가락으로 애교를 피우는 선우를 바라보았다. 선우의 발그레한 볼따구니에 씨발, 했다. 선우는 괜스레 다른 곳을 보고 있다가 범이 제 볼에 쪽 하고 뽀뽀하자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여보, 나 자지도 긁어 줘.”

실시간으로 썩어 들어가는 선우의 표정에 범이 푸하하 웃었다.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내일이면 하도 기특해서 말 안 해도 긁어 주고 싶을걸?’ 했다.

저런 헛소리는 알아서 걸러 듣는데 선우는 그 와중에 왜 내일인가 했다. 오늘은 안 하려나? 했는데, 정말 안 했다.

범은 한 아름 쇼핑을 마치고 한의원에 들러 할머니께 드릴 공진단을 픽업했다. 선우에게는 로고가 큼직큼직 박혀 있는 명품 옷을 사 입혔다. 저와 결혼해 출세했다는 티가 팍팍 나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차피 브랜드를 잘 모르는 할머니이기에 선우는 이게 무슨 헛수고인가 했지만 명품이라 소재는 또 좋아서 티셔츠 하나도 핏이 차르르 예쁘게 떨어지긴 했다.

범은 정말이지 내일 할머니 댁에 갈 채비만 마쳐 놓고 집으로 들어가 얌전히 잠자리에 들었다.

“오빠 꼬시지 마라. 내일 일찍 일어나서 운전해야 된다.”

꼬실 마음도 없었는데 되게 새침하게 굴었다. 선우는 하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지만 범이 새벽부터 일어나 직접 운전을 할 거라기에 쪽 하고 굿나잇 뽀뽀를 해 주었다. 꼬시지 말라니까, 하는 작은 투정을 들으며 뒤돌아 방으로 들어왔다.

***

아이고- 할머님, 안녕하십니까! 범의 호기로운 인사와 함께 선우의 시골집엔 실로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말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선우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귀여운 손주의 의무를 다하느라 종알종알 말이 많았다. 자주 와서 말동무를 해 드리지 못하니 오버해서 더 많이 했다.

우선 큰절부터 올린 범도 넉살 좋게 할머니와 수다를 떨었다. 그는 어른과 대화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공경을 베이스로 깔되 분위기가 무거워지지 않게 적절히 농을 던졌다. 불편할 법도 한데 일절 불편하다는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저도 친손자인 양 굴었다.

선우는 그런 범의 모습을 동경 어린 시선으로 훔쳐보았다. 순식간에 할머니의 마음을 빼앗고 능숙히 분위기를 휘어잡는 그의 여유가 멋져 보였다.

선우는 할머니표 갓김치와 계란부침, 된장국에 아침밥 한 그릇을 뚝딱하고서 마루에 드러누워 빈둥빈둥 과자를 주워 먹었다. 할머니는 목 막힌다 요구르트를 줬다가 후식이라 과일을 줬다가 아무튼 내리 먹을 걸 내왔다.

할머니 댁에 오자 몸도 마음도 부들부들 풀어진 선우는 방긋방긋 잘도 웃었다. 그 모습에 범은 속으로 씨발을 스무 번도 넘게 되뇌었다. 널브러진 선우를 끌어다 제 허벅지를 베고 눕게 한 뒤 마루에 굴러다니던 낡은 부채를 집어 선우의 얼굴에 살랑살랑 부쳐 주었다.

“할머니 손에 컸는데 살도 안 쪘네?”

“여긴 뛰어놀 데가 많잖아요. 뛰어노는 거 말고는 놀 것도 없고.”

“그래? 이따가도 운동 좀 하자?”

범이 안 그래도 더운 날 끈덕진 눈빛을 보냈다.

선우는 ‘할머니 계신데 어떻게 해요.’ 하고 이성적인 대꾸를 했지만 사실 저도 살짝 마음이 동했다. 할아버지가 입던 마 소재의 통이 큰 일 바지를 종아리까지 동동 걷어 입은 범이 섹시했다.

선우는 점심을 준비한다 부엌에 가 계시는 할머니의 눈치를 살핀 뒤 제가 베고 있는 범의 허벅지를 쓸었다. 그러자 범의 더운 숨이 선우에게 닿았다.

“하으……. 선우야, 형 아까 바지 갈아입으면서 팬티 벗었어. 손 넣으면 바로 자지야. 살짝 만져 줘 봐.”

저런 소릴 할머니 들을까 속삭이면서 하니 더 변태 같았다. 티셔츠가 앞섶을 가리고 있긴 하지만 아무리 자연 친화적인 곳에 왔대도 그렇지 팬티는 왜 벗었나 몰랐다. 선우는 어이가 없어 허! 하고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홑겹의 천이 덮고 있는 범의 성기 위로 손을 올렸다. 슬슬 쓸어 주자 반쯤 서 있던 게 형체를 더 확고히 해 갔다.

“하……. 씨발, 딱 죽겠다.”

“할머니한테 욕했다고 다 이를 거예요.”

범이 푸스스 웃으며 선우의 볼을 꼬집었다. 세상 다 살았다 싶은 노인네같이 굴던 애가 제 나와바리에 왔다고 아직도 엄마 찌찌나 찾는 애새끼 같은 소릴 했다.

“씨발, 귀여운 짓 하지 마라. 확 그냥 따먹는다.”

선우는 ‘할머니한테는 착한 척하구, 씨발이라 그러구, 따먹는다 그러구.’ 하며 구시렁구시렁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바지를 뚫고 나올 듯한 범의 성기를 주물주물 만졌다. 이제 거의 뭐, 손은 반자동이었다. 입은 구시렁거리느라 바쁘고, 손은 만지느라 바쁘고, 눈은 부엌 쪽으로 고정해 할머니 눈치를 보기 바빴다.

범이 얼굴을 내려 귀여움을 떠는 선우의 이마에 쪽 뽀뽀를 해 주곤 선우의 젖꼭지를 살짝 비틀었다 놓았다. 아아! 선우에게서 미처 조절하지 못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부엌에 계신 할머니가 ‘왜~?’ 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 왔다. 읍! 범은 선우의 입에 제 손가락 두 개를 물리곤 듬직한 목소리로 별일 아니라 소리쳤다.

“모기가 있어서 잡아 줬는데 선우가 아프다네요~!”

“하여간 엄살은.”

할머니는 혼잣말을 하시곤 나와 보지 않으셨다.

선우가 퉤퉤 범의 손가락을 뱉고 팩하니 범을 쏘아보았다.

“내가 뭐? 귀엽길래 따먹었다, 왜.”

범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말투가 양아치 같았다. 체리 맛이네, 하며 얄미운 소리를 덧붙이자 선우는 조금 심술 맞은 손길로 범의 성기를 콱콱 주물렀다. 바지 속으로 손을 넣고 ‘저도 고추 따먹으려고요.’ 하며 복수했다. 아프라고 한 건데 범은 ‘허윽!’ 하면서도 좋아했다. 그러고 만져도 네 서방 고자 안 된다, 했다.

하긴, 선우의 손이 아팠음 더 아팠지 딴딴하고 힘 좋은 범의 주니어가 잘못될 것 같진 않았다. 고추는 무슨, 선우는 제 비유가 틀려도 한참은 틀린 듯해 애호박, 가지, 오이 같은 걸 떠올렸다. 뭘 갖다 붙여도 이게 딱이다 싶진 않았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오이치곤 굵지, 라고 생각하는데 퍼뜩 오이소박이가 떠올랐다.

“할머니~! 나 오이소박이 먹고 싶은데, 있어~?”

할머니가 있다고 대답해 주자 선우는 범의 성기를 꼭 쥐고 볼록 광대를 올렸다.

“그거 쥐고 웃지 마. 오빠 사고 친다.”

범이 끙끙 앓으며 속삭였다. 선우는 오이소박이 때문에 웃은 거라고 정색을 하곤 범이 입고 있는 할아버지 바지의 고무줄을 당겨 슬쩍 바지 속 상황을 구경했다. 어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왜, 빨아 주게?”

범은 진심인 듯 눈을 반짝였다. 할머니가 계신다는 걸 망각한 모양이었다.

“미쳤어요?”

“신랑한테 말버릇이 너는, 너 이따가 할머니한테 다 이를 거다 내가.”

너무 유치해서 잠시 말을 잃은 선우는 이내 피식하고 범을 비웃어 주었다.

“할머니 제 편일걸요?”

“응, 나도 네 편이야. 그런 의미에서 쬐끔만 빨아 줘 봐.”

범은 안 된다는 선우를 어르고 달래며 한참을 설득했다. 윗부분만 살살 핥아 달라는 거지 쭉쭉 빨아 달라는 게 아니라고 했다. 퍽 다정한 눈으로 그리 말했다. 선우의 앞머리를 쓸어 주며 연신 부채질을 멈추지 않았다. 선우는 그 정성에 감복해 조금만 해 주기로 했다.

부엌 쪽은 범이 대신 지키기로 했다. 범은 자신을 보였다. 자긴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다 듣는다고 걱정 말라 했다. 그건 인정하는 바였다. 그는 사람 기척엔 귀신이었고 청력은 소머즈였다.

할머니께 들키면 어쩌지 하는 불안과 범이 뿜어 대는 페로몬이 어우러져 선우의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들었다.

선우는 바지 고무줄을 내려 범의 물건을 조금 꺼내 놓은 뒤 혀를 내어 귀두를 핥기 시작했다. 할짝할짝 프리컴으로 젖어 있는 귀두를 침으로 닦아 주자 범이 씨발, 하고 낮게 읊조렸다.

범이 느끼는 만큼 부채질의 속도가 슬슬 느릿해졌다.

이렇게 할짝이기만 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게 감질이 날 텐데 범은 약속대로 얌전히 있었다. 선우는 마음이 좀 약해졌다. 눈알을 도로록 굴려 부엌 눈치를 살폈다. 탕탕탕탕 뭔가를 써는 소리가 나는 걸로 보아 좀 더 과감해도 될 것 같았다.

입 안에 머금어 볼까 하여 아- 입을 벌리던 찰나, 부엌에서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화들짝 놀란 선우가 헙! 입을 다물고 범의 바지를 냉큼 끌어 올렸다.

“선우야~ 할머니 이것 좀 도와줘~.”

다 넘어왔구나, 하며 순간을 노리던 범은 좋다 말았지만 눈이 똥그래진 선우를 두고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제가 도와드린다며 기세 좋게 부엌으로 향했다.

든든한 손주 사위의 모습이 퍽 바람직하긴 했지만 그곳은 티셔츠로 가려도 불쑥 솟아올라 있었고, 걸으니 덜렁거렸다. 저건 정말 아니었다. 선우가 냉큼 따라 일어나 범의 거대한 등짝을 찰싹 때리며 그를 만류했다.

“간지럽다.”

이에 강도를 한 단계 높여 철썩 때렸다.

“넌 때리는 쪽은 영 못 하겠다. 형 마음 아프게 맞는 쪽 시킬 수도 없고.”

“빨리 가서 팬티나 입으세요.”

“입혀 줘.”

선우는 벌게진 얼굴로 범을 금수 보듯 한 번 쳐다봐 주고 그대로 그를 지나쳐 부엌으로 쌩 도망가 버렸다.

입혀 주지 않는 이상 팬티를 입을 생각이 없는 범은 마룻바닥에 털썩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선우가 할머니께 도움을 다 드리고 나올 때까지 선우를 불렀다. 선우야, 나비야, 여보야, 하면서.

선우는 슬쩍 마루를 내다보고 징그러워 나오지 않았다. 범의 양반다리 가운데 또 다른 다리 하나가 위풍당당하게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는 할머니가 꺼내 달라는 높은 찬장 속 그릇들을 다 꺼내 주고도 할머니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다. 할머니가 소금을 집어 달라면 소금을 집어 주고, 간장을 집어 달라면 간장을 집어 줬다.

밥그릇에 밥 푸는 것도 도왔다. 제 것은 많이, 범의 것은 더 많이. 선우가 고봉밥 그릇들을 보며 히죽 웃었다. ‘아, 행복해.’ 했다.

할머니는 행복하다는 선우에 ‘그래, 너 잘 사는 거 봤으니 내가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 했다. 전형적인 노인네 레퍼토리를 시작했다.

“할머니가 그런 소리 하면 안 행복해. 할머니가 오래 살아야 나도 오래 행복하지.”

선우는 할머니에게 매달려 애교를 피웠다. 범이 스스로 제 아래를 식힐 때까지 시간을 끌었다. 할머니에게 저 꼴을 보일 순 없으니 말이다.

***

점심은 닭백숙이었다. 원래 오리 백숙을 하려 했는데 아기 태명이 오리라 오리를 먹기는 좀 그래 닭으로 하였다. 토종닭이라 실했다.

범은 할머니가 준비한 닭백숙을 보며 ‘어휴, 이거 큰일인데.’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할머니가 보지 않을 때 슬쩍 선우의 엉덩이를 쥐었다 선우가 탁, 하고 손등을 때리자 찡긋 윙크를 날렸다. 큰일이면 먹지나 말지 잘도 먹었다. 할머니가 크게 다리를 떼어 범의 앞접시에 놓아 주자 범은 후루룩 발골을 시작했다.

‘몸보신에 환장한 사람 같고만, 큰일은 무슨.’

선우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저도 많이 먹기 시작했다.

부잣집이라 그래 시골 밥상이 입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한 할머니는 아침부터 점심까지 가리는 거 없이 잘도 먹는 범에 활짝 웃었다. 제 눈엔 아기들인 범과 선우를 보는 데에 여념이 없어 밥은 뒷전이었지만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범은 자진해서 나물 반찬도 집어 먹었다. 선우는 밥상의 가로 폭을 다 차지하는 덩치로 내숭을 떠는 범을 보며 피식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반찬 투정 없이 할머니가 차린 밥을 잘 먹어 주어 예뻤다.

선우가 고사리를 잔뜩 집어 범의 밥 위에 올렸다. 어디선가 정력에 안 좋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걸 먹인다고 크게 달라질 거 있겠나 싶지만 그래도 먹였다.

저는 고사리나 먹였는데, 범은 닭고기 살점을 크게 발라 소금까지 콕 찍어 선우의 입 앞에 대령했다. 그게 뭐라고 마음이 조금 찡해진 선우가 범에게 눈길을 주었다. 이미 저를 보고 있던 범과 눈이 맞았다.

할머니만 안 계셨어도 밥상을 엎었을 스파크가 닭백숙을 사이에 두고 파지직 튀었다.

***

할머니께선 점심상을 대충 치워 두고 선우와 범이 사 들고 온 과일과 홍삼을 소쿠리에 덜어 마을 회관으로 떠나셨다. 이런 건 나누어야 한다며 선우가 혼자 먹으라는데도 바리바리 싸 들고 가셨다.

범은 짐을 대신 들어 드린다며 할머니와 함께 마을 회관으로 향했고, 선우는 부엌으로 가 할머니가 그냥 놔두라던 설거지를 했다. 온갖 접시란 접시는 다 꺼내어 있는 반찬, 없는 반찬 전부 담아 내준 바람에 설거지 거리가 한가득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름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산 선우는 접대부 시절에도 숙식이 제공이었던지라 설거지엔 썩 요령이 없었다. 할머니는 뚝딱하던데, 저는 한참이 걸렸다.

그래도 아랫배를 다 적셔 가며 열심히 해 보았다.

“엄마야!”

언제 다녀왔는지 금세 도착한 범이 설거지하는 선우를 뒤에서 가득 끌어안았다. 두껍고, 무겁고, 뜨거웠다. 범은 키를 맞춰 서기 위해 다리를 벌리고 선우의 어깨에 제 턱을 걸었다. ‘오리 엄마, 나 왔어.’ 하며 선우의 귓가에 낮은 음성을 흘렸다.

이 더운 여름날 선우의 팔엔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할머니가 사과 깎아 둔 거 있어요. 가서 그거나 드시고 계세요. 금방 다 해요.”

“아직 멀어 보이는데? 어? 형이랑 좋은 거 하자.”

범이 선우의 등허리에 앞섶을 뭉근히 비볐다.

“아 금방 해요, 가세요. 사과 안 드세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선우는 부끄러움에 더욱 무뚝뚝하게 굴었다. 훤한 대낮에 대문도 안 잠근 시골집에서 당장 일을 치를 기세였다.

‘혹시나 하더라도 밤에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선우는 변태를 상대로 이성을 그러쥐었다.

“사, 사과! 진짜 달고 맛있어요. 드세요.”

범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과일을 먹으라고 재차 권했다.

“오냐, 나 사과 먹을게.”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선우의 바지가 쑤욱, 힘없이 내려갔다.

선우가 입고 있던 헐렁한 고무줄 바지가 속옷과 함께 대번에 내려가고 범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행동력 하난 기가 막혀 선우가 상황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잽싸게 갈라진 엉덩이 사이를 벌리고 얼굴을 묻었다.

혀로 구멍 주위를 간질간질하더니 아예 입술을 박고 쪽쪽 빨기 시작했다. 허윽……! 선우는 손에 고무장갑을 낀 채로 싱크대를 꽉 부여잡았다.

“아! 아! 아 누가, 사과를, 빨아 먹어요!”

범이 선우의 엉덩이에 얼굴을 묻은 채로 푸스스 웃었다. 할머니네 왔다고 기가 살아서는 캬악 하고 따져 대는 게 귀여웠다.

“즙이 줄줄 흐르는데 빨지 그럼. 여기 봐 여기, 액체를 빨아 먹지, 씹어 먹냐?”

범은 여기 여기, 하며 애액과 타액으로 범벅이 된 곳에 손가락을 가져가 그 질척거림을 느끼듯 희롱했다.

“하으……. 아, 안 빨면 즙도 안 나와요.”

범은 선우의 구멍을 핥으며 손가락을 같이 놀렸다. ‘어허, 튕기지 마라.’ 하며 훈장님 투로 엄하게 말했는데 그다지 위엄은 없었다. 씁, 혼난다, 어허! 하면서 실실 웃었다. 엄한 것치고, 그는 너무 신나 보였다.

선우는 싱크대 앞에서 바지를 까고 있는 이 흉한 모습을 할머니께 들킬까 불안해 도무지 설거지에 집중할 수 없었다. 분명 불안한데, 불안해서 더 흥분되었다. 범에게 변태라 무어라 할 게 아니었다. 저도 똑같았다. 부창부수가 괜히 나온 말은 아닌 듯했다.

“아으……. 그만, 그만하세요.”

선우는 뒤로 손을 뻗어 제 밑에 박혀 있는 범의 머리통을 밀어냈다. 웬만한 힘으로는 밀리지 않아 머리채를 팍 하고 잡아당겼다. 순간 너무했나? 하고 긴장했는데 범은 ‘잘한다.’ 했다. ‘형도 머리채 잡고 박는 거 좋아해.’ 하며 속 편한 소릴 했다.

선우는 아, 좀요! 좀! 하며 범의 머리통을 때리다 어깨도 때려 보았다. 때려도 더 해 보라 할 뿐 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선우의 힘이 빠지는 게 먼저일 것 같았다.

선우가 전의를 잃고 더 이상 밀어내지 않자 때리는 대로 전부 맞아 주던 범은 낯 뜨거운 침 소리를 내며 잠시 떨어져 나갔다.

“아 알았어, 그럼 씹어 먹을게.”

범은 네가 빨지 말라며, 하며 이제 와 선우의 뜻에 따라 주는 척 생색을 냈다. 그러고는 선우의 탐스런 왼쪽 엉덩이를 왕 깨물었다.

선우가 아, 진짜! 하고 소리치자 범이 뭐! 뭐! 하며 뭐 뀐 놈이 성낸다는 말에 딱 맞는 반응을 보였다. 못 하게 한다 화내는 듯하더니 달고 맛있다 칭찬했다. 공평하게 오른쪽도 깨물었다. 이로 엉덩이 살을 잘게 씹으며 온통 침을 묻히더니 ‘잘 익었다.’ 했다.

참나, 선우는 어이가 없어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게 허연 건 안 익은 거예요.”

“청사과야.”

범은 청사과라 우기는 그것을 씹어 먹다 빨아 먹다 했다.

선우는 하으, 하으 앓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벌떡 선 제 아래가 싱크대에 눌리고 있었다. 비비고 싶을 만큼 흥분되긴 했지만 활짝 열린 대문과 뻥 뚫린 마루, 마루와 분리된 공간이긴 해도 문은 따로 없는 부엌, 선우는 어디까지 다가왔을 때 이 부엌 안이 보였더라, 하고 각을 재다 퍼뜩 각이고 뭐고 말리는 게 맞다 이성을 차렸다.

선우가 다시금 범을 말려 보았다. 대신 이번엔 퍽퍽 때리지 않고 탭탭, 범의 정수리를 쳤다. 격투기 경기에서 항복할 테니 그만하라는 뜻을 전할 때처럼, 그렇게 해 보았다.

항복이고 뭐고 죽을 때까지 조질 것 같던 범은 근본 없는 주먹질을 하고 다닌 사람은 아니었는지 알아들은 듯했다. 그의 혀 놀림과 손놀림이 멈추었다.

“거참, 알았어 알았어. 뭐 어떻게 해 줄까? 하지 말라는 거 말고 다 해 줄게. 말해 봐.”

범은 하여간 협상을 이상하게 걸었다. 선우는 잠시 생각했다. 하지 말라는 거 말고 다 해 주는 게 무슨 소린지. 살살 해라? 조금만 해라? 뭐라 말해도 일단 하긴 하는 거였다. 선우는 잠시 멍청하게 있다 사기꾼에게 코가 베이지 않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하지 말라는 거 하나만 해 주세요. 밤에 해요, 밤에.”

“선우야.”

“네?”

“넣게 해 줘.”

그는 결혼해 달라고 했던 때와 같이 진지하고 달콤한 목소리를 냈다. 반칙이었다.

“아, 아니……. 넣지 말라는 게 아니고, 밤에…….”

“선우야.”

“네?”

두 번째 부름에 선우는 꼴깍 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체념했다. 결국은 하게 해 줄 것이란 제 미래가 보였다. 그래, 괜한 데 힘 빼지 말고 그냥 하게 해 주자. 속으로 결정은 내렸지만 범이 무어라 하는지 들어나 보기로 했다.

“쑤시게 해 줘.”

저따위 소리를 또 다정하게 했다.

그래, 넣기만 하면 안 되긴 하지. 선우는 제게 허락을 받는 게 어디냐 여기기로 했다. 그는 적어도 ‘못 넣게 하면 재미없을 줄 알아라.’ 하고 협박은 안 했다. 은근 젠틀하고 매너 있었다. 사람 마음 약해지게.

선우는 결국 반만 넣고 살짝만 쑤시라고 허락해 주었다.

범은 예쁘고 착하다며 선우의 엉덩이에 쪽쪽 뽀뽀를 퍼부었다. 그러곤 벌떡 일어서 제 바지도 쑥 내렸다. 준비된 남자는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범은 선우의 허리를 한 팔로 끌어안고 목덜미에도 쪽쪽 뽀뽀를 내렸다. 뽀뽀를 하다 입술을 묻고 부비부비 했다. 선우는 그 간지러운 행위에 살포시 입꼬리를 올렸다.

허락하자마자 물 만난 듯 해 댈 것 같던 범은 질질 울고 있는 제 주니어 대신 손가락을 넣었다. 고마웠다. 이것저것 많이 넣어 보긴 한 뒤이지만 관계 자체가 오랜만이었고 저렇게 무자비한 건 넣어 본 역사가 없었다. 찢어지면 찢어졌나 보다 하겠지만 그래도 풀어 줬음 했다.

“하으……. 아, 아, 아, 악!”

조금씩 각을 달리해 한참이나 구멍을 오가던 범의 손가락이 이상한 지점을 눌렀다. 그곳만 더 세게 찌른 것도 아닌데 선우의 입에선 악! 하고 놀란 소리가 튀어나왔다. 누군가 일시 정지를 누른 듯 둘은 동시에 멈칫했다.

둘 다 바보같이 잠시 얼이 빠져 있다 먼저 정신을 차린 범이 씩 하고 웃었다.

팟, 팟, 팟, 팟

범의 손가락이 방금 그 지점을 잘게 찌르기 시작했다. 선우는 한 번 찔릴 때마다 억! 억! 정제되지 않은 신음을 흘렸다.

만들어진 신음이 아니었다. 상대방을 위해 야하고 듣기 좋은 신음을 연기할 정신이 없었다. 휘몰아치는 쾌감에 되는대로 소리를 질렀다. 범은 그런 선우의 신음에 으르렁거렸다. 더 질러 봐, 했다. 동네방네 떡 친다고 광고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범은 선우의 귓불을 입술로 감쳐물고 선우가 마구잡이로 소리를 지르다 갸르릉 목 긁는 소리를 낼 때까지 계속해서 그곳만 찔러 댔다. 집요하고 지독했다.

선우가 제 허리에 둘러진 범의 팔을 탭탭, 쳤다. 다급히 항복했다. 그 신호에 손놀림이 멈추었다.

선우는 입을 헤벌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범이 씩 웃으며 선우의 입가에 흐르는 침을 핥았다.

“여보, 침 흘리게 좋아?”

“하아……. 그거나 빨리 넣어요.”

범은 퍽 감격한 투로 ‘빨리 주래, 씨발.’ 하며 혼잣말을 했다. 예뻐 죽겠다며 선우의 볼을 입에 넣고 쏙쏙 흡입했다. 선우는 한쪽 볼이 빨리는 채로 차갑게 답했다.

“오두방정 떨지 마시구요.”

말이 안 통하는 변태는 새침하게 구는 게 꼴린다고 좋아했다. 기가 어찌나 세면 이리도 기가 안 죽을까 싶었다. 그래도 선우는 그런 범이 좋았다. 힘도 세고, 기도 세고, 몸도 강하고, 정신도 강한 게 참 부러웠다.

선우는 긴장을 풀기 위해 오리에게 말을 걸었다.

‘오리야, 너네 아빠 곧 들어간다. 아빠 잘 보고 나중에 꼭 아빠 닮아라.’

범이 제 성기를 선우의 구멍 주위에 살살 비비며 간을 봤다. 조금씩, 조금씩 선우의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아, 아, 읏! 아악!”

“허으……. 씹. 선우야 찡긴다. 좋다, 존나 좋다.”

“빠꾸! 빠꾸!”

선우가 범의 팔뚝을 미친 듯이 때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무식하게 커서 그런지, 도저히 참기 힘든 이물감이었다.

선우는 이제야 귀두까지 넣은 범의 성기를 도로 물리라 요구했다.

범이 후- 하고 한숨을 내뱉더니 선우의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었다. 바짝 선 선우의 유두를 조물조물 만지기 시작했다.

아래에 두꺼운 귀두를 꽂은 채로 만지기만 해도 쓰라린 유두가 주물러지고 있었다.

“아! 아! 아! 거기두, 거기두, 빠꾸!”

“너 한 입으로 자꾸 두말할래? 넣고 쑤시라며. 가슴도 만지라며!”

선우는 범이 하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하랬다가, 하지 말랬다가 이 무슨 똥개 훈련이냐 싶을 것이다.

선우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범이 봐준다는 듯이 제가 둘 중에 하난 포기하겠다고 했다. 결국 가슴을 포기했다.

범은 선우의 가슴에 있던 손을 아랫배로 내렸다. 선우의 배를 살살 쓸어 주며 ‘오리야, 아빠 갈까?’ 했다.

“오리가 오래. 빨리 오라는데?”

혼자 북도 치고 장구도 쳤다.

선우는 순 사기꾼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귀여우니 봐주기로 했다.

“아, 그럼 가 봐요.”

“예, 사모님!”

범은 제가 알아서 잘 모시겠다며 씩씩하게 답했다.

선우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모시기만 해 봤지 모셔 준다는 건 또 처음이었다. 설렘과 긴장이 섞여 몸에 힘이 들어갔다.

범은 주사를 놓을 때처럼 엉덩이를 툭툭 쳐 주며 힘 푸세요, 했다.

입구에 걸쳐져 있던 성기가 서서히 진입했다. 허윽……! 박는 사람이나 박히는 사람이나 너 나 할 것 없이 신음이 터졌다.

“하으, 씨발. 바로 싸겠는데? 싸면 자지 떼야겠지?”

선우는 고개를 틀어 혀를 내밀고 키스를 졸랐다. 진짜 키스가 하고 싶기도 했고 범의 주둥이를 막고 싶기도 했다.

범이 뜨거운 눈으로 선우를 직시했다. 선우와 눈을 맞춘 채로 씩 웃으며 입술을 내렸다. 나와 있는 선우의 혀에 제 혀를 얽고 동시에 허리 짓을 시작했다.

***

시골집 부엌에선 철썩철썩 파도치는 소리가 울렸다.

여긴 농촌인데, 들릴 리가 없는 소린데.

선우는 어촌으로 이사를 가면 이 소리가 좀 덜 부끄럽지 않을까 하는 그런 뻘한 생각을 했다. 그러다 이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억! 억! 억! 억!

부엌에 난 창으로 뙤약볕이 쏟아졌고 손에는 고무장갑, 눈앞엔 하다 만 설거지가 있었다. 분명 다 보이는데, 그럼에도 여기가 어딘가 했다.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는 와중에 범이 왜 욕을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허으, 씨발.

쾌감이 욕을 불렀다.

손가락만으로도 자지러질 뻔한 지점을 뭉툭하고 단단한 것으로 쿵쿵 찍어 대니 뇌까지 흐물흐물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정신이 없어 키스도 힘에 부쳤다.

선우는 범의 혀를 뱉어 내고 고개를 떨궜다가 젖혔다가 몸을 아무렇게나 가누었다. 고무장갑을 벗고 싱크대에 눌리고 있는 제 성기에 손을 대고 싶었다.

하지만 범은 고무장갑을 벗을 찰나의 순간도 제공하지 않았다. 허리 짓이 쉼 없이 이어졌다. 어쩜 삑사리 한 번 나지 않고 그곳만 찔렀다. 선우가 침을 흘리면 침을 핥았고, 중간중간 축축한 입술로 선우의 얼굴 여기저기에 촉촉 입맞춤을 내렸는데 아래로 행하는 허리 짓은 한 번도 엇나가지 않았다.

“여보, 좋아? 여기 좋아?”

선우는 보면 모르냐 소리치고 싶었지만 숨넘어가는 소리로 답을 대신했다. 손도 대지 않은 성기에서 신호가 왔다. 사실은 아까부터 왔었다. 이게 무슨 느낌인지 뒤로만 가 본 적이 없어 일단 이를 악물고 버텼는데 이젠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바로 싸겠다고 약한 소릴 하시던 분의 자지만 펄떡펄떡 날아다녔다.

범은 선우의 절정이 오고 있음을 눈치채고 선우의 귓가에 입술을 붙였다.

“씨발, 맛있는 여보야, 섹시하게 싸 줘.”

억! 억! 억! 어흑……!

결국 선우가 먼저 절정에 올랐다. 섹시하게 싸 달라는 범의 말은, 무시했다. 어떻게 하는지 알아야 해 줄 것 아니겠나.

선우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헉헉- 숨도 아무렇게나 몰아쉬었다. 발끝에 찌릿찌릿 전율이 일어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게 힘들었다. 다행히 범이 단단히 받치고 있어 넘어지진 않았다.

절정에 오르며 콱, 조여든 선우의 내벽에 범도 제 입술을 씹으며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고개를 앞으로 빼 선우가 뿌려 놓은 것들을 감상하다 붉게 달아오른 선우의 귀두 끝을 검지로 톡톡 쳤다. 범이 레몬 맛이라 우기며 모양새는 연유 같은 그것이 찰박 튀었다. 품 안에 선우가 작게 푸드덕거렸다. 헤롱헤롱 정신을 못 차리고 침까지 흘리면서 아래는 끊어 먹을 듯 조였다.

“너, 맛 죽인다.”

범이 낮게 읊조리며 선우의 볼에 입술을 묻었다.

“네 서방 좆질도 잘하고 데리고 살 만하지?”

“아, 만지지, 마세요, 저, 진짜, 힘들어요.”

선우가 숨을 헐떡이며 제 귀두를 만지고 있는 범을 제지했다.

범은 쩝, 입맛을 다시고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계속 만져야 분수 터지는데.’라고 중얼거렸다.

“분수는 무슨 분수, 미쳤어요?”

선우가 제 아랫배를 감싸고 있는 범의 팔을 찰싹찰싹 때렸다.

“구박하지 마라. 오빠 서운하게 하면 자지 쪼그라든다. 누누이 말하지만 네 손해다.”

“하으……. 빨리 마저 하기나 해요. 할머니 오시면 어떡해요.”

“와, 너 쌌다고 나도 대충 싸고 치우라는 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님 뭐? 너 말 잘해라. 서방 기가 살아야 좆질도 시원스레 잘하는 법이다.”

선우는 애교라곤 없는 말투로 퍽 애교 있는 한 마디를 해 주었다.

“아니……. 형도 맛 죽이니까 빨리 더 줘 보라고요.”

사실이기도 해서 말한 것이다. 아주 꾸며 내야 하는 얘기였다면 절대 못 했다. 등 뒤로 범의 광대가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선우의 안에 들어 있는 그것 역시 다시금 꿈틀거렸다. 슬쩍 고개를 틀어 옆을 보는데 범은 무어라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씨발, 싸면 안 돼, 라고 하는 듯했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거는 모양이었다.

선우가 뒤에 퍽 흉측한 걸 박은 채로 푸스스 웃었다. 인정하긴 힘들지만 제 뒤에 매달린 커다란 호랑이가 되게 귀여웠다. 제 말 한 마디에 이토록 열렬한 반응을 해 주니 선우는 스스로 허리를 돌리며 뒤를 조여 주었다.

“하아, 옳지. 옳지 여보, 더 해 봐. 더 흔들어 봐.”

범은 아까보다 더 열렬히 반응해 주었다. 기분이 좋아 춤을 추는 나비의 머리를 예쁘다, 예쁘다 쓰다듬어 주었다.

범이 한 발짝 물러나 제가 물러난 만큼 선우의 엉덩이가 뒤로 빠지게 만들었다. 흰색 반팔 티 끝에 흔들리는 골반과 제 음모에 비벼지고 있는 엉덩이 살이 황홀했다.

‘씨발. 보다 싸겠다, 보다 싸겠어.’

범이 손가락을 들어 선우의 척추뼈를 목 끝에서부터 따라 긁어내렸다.

선우가 하읏……! 하며 예쁜 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선우는 아까부터 제가 좋아 죽는 지점을 교묘히 피해 가며 허리를 돌렸다. 그러면서 느끼는 척 신음을 냈다.

범이 선우의 골반을 두툼한 손바닥으로 툭툭 쳐 주며 씨익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선우.”

“네?”

“귀신을 속여라. 엉?”

“네? 아…….”

선우는 눈알을 도로록 굴리며 티 났어요? 했다. 머쓱한 웃음을 흘리며 ‘죄송합니다.’를 덧붙였다.

“귀여워서 봐준다.”

봐준다더니. 부엌 안엔 다시금 철썩철썩 파도치는 소리가 울렸다.

범의 집요한 허리 짓에 선우는 끄억! 억! 하고 아무 소리나 질러 댔다. 범은 그 신음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래 씨발, 이거지.’ 하고 으르렁거리며 물 만난 듯 허리를 털었다.

“이선우, 너 할머니 있다고 아까부터 까불었지? 어?”

“아흑……! 윽! 제가, 제가, 언제요?”

선우는 일단 모르쇠로 일관했다.

범이 선우의 귀를 핥으며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실실 웃으며 우리 애새끼 발뺌하네, 했다.

고사리 먹여서 죄송하다고 할까? 선우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어지는 흉흉한 몽둥이질에 아무 말도 못하고 짐승 같은 소리만 질렀다.

“아닌데, 까불던데? 너 아니야? 오리가 그랬어?”

선우는 암만 그래도 오리는 팔지 않았다. 물음에 답하지 않고 뒤를 조이며 범의 것을 물었다. 닥치고 하던 일이나 마저 하라는 뜻이었다.

범은 하으, 어으, 씹, 같은 감탄사들을 내뱉다 혼자 중얼거렸다.

“여보는 낭만이 없어, 낭만이. 난 여보랑 대화하면서 떡 치고 싶은데. 근데 야하긴 또 미치게 야하네?”

한 단어, 한 단어 사이에 턱턱 살 부딪히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할 말도 다 하고, 뽀뽀할 것도 다 하면서 끈질기게 허리를 터는 게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언제 사정했냐는 듯 또다시 팽팽히 선 선우의 아래가 범이 흔드는 박자에 맞춰 통통 싱크대를 때렸다. 선우는 무아지경에 빠져 꺽꺽 울어 대기만 했다.

선우가 곧 가겠다 싶을 때, 범의 포효 소리도 점차 커져 갔다.

억! 억! 억! 터질락 말락 하는 중에 ‘억!’이 아닌 ‘어?’가 한 음절 튀어나왔다. 범의 허리 짓이 급작스레 멈추었다.

안달을 내는 방법인 건가? 선우는 풀린 눈으로 범을 돌아보았다. 이게 지금 경우 없이 뭐 하는 짓이냐, 눈으로 욕했다.

범은 선우의 눈빛이 억울한 듯했다.

“내가 설마 안 하고 싶어서 멈췄겠냐? 내가? 나 너랑 떡 못 쳐서 환장한 새낀데?”

범이 둔탁한 제 몽둥이를 쑤욱 하고 빼내었다.

“뻐끔, 씨발.”

범은 잠시 멍하니 선우의 구멍이 다물리는 걸 구경하다 제 머리를 퍽퍽 때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하며 제 바지를 휙 올리고 선우의 바지도 휙 올렸다.

툭, 가벼운 손짓으로 싱크대에 수도를 틀었다. 수압 좋은 물이 쏴아아- 하고 흘러내렸다. 손바닥으로 싱크대 주변에 튄 선우의 흔적들을 슥슥 정리해 물에 흘려보내고 손을 씻었다.

범은 물 묻은 손으로 선우의 머리를 삭삭 넘겨 정리해 주었다. 순식간에 응삼이 머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반듯하긴 한 모양새라 결코 종전까지 부엌에서 뒤치기를 하던 애 같진 않았다. ‘뉘 집 아들인지 참 잘생겼다.’ 하고 칭찬을 해 주며 선우의 이마에 쪽 뽀뽀했다. 이 스텝까지 십 초 정도가 소요되었다.

선우는 범이 이 모든 걸 하는 동안 그저 얼이 빠져 있었다.

범은 선우의 맹한 얼굴을 보며 ‘오빠 힘들다. 그러지 마라.’ 했다.

선우는 뭘 그러지 말라는 건지 못 알아들어 여전히 맹했다.

“왜, 왜, 왜 그러세요?”

범은 답하지 않고 선우의 팔에서 고무장갑을 벗겼다. 벗긴 고무장갑을 제가 끼는데 선우의 팔엔 넉넉히 남던 게 빡빡했다. 불편한지 씨발씨발 거리더니 갑자기 씩 웃으며 선우를 돌아보았다. ‘네 거만큼 찡기진 않아.’ 하고 고무장갑을 낀 채로 선우의 엉덩이를 쥐었다. 칭찬이라고 해 준 모양이었다.

범이 입술을 쭉 내밀었다.

선우는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홀린 듯 뽀뽀를 해 주었다. 왜 이러는 거냐 한 번 더 물으려는 순간,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선우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아직 진화되지 않았던 아래를 식힐 수 있었다.

“선우야~ 방에 있니?”

범은 이미 설거지를 하는 척 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는 게 분명했다. 세제를 들이붓고 물도 들이부었다. 누가 봐도 엉망진창인데 할머니께 점수는 따고 싶은 모양이었다.

선우는 그릇이란 그릇은 다 깨부술 덩치로 내숭이 백 단인 범을 보며 ‘내가 다 하던 건데.’ 하고 입을 삐죽였다. 억울하지만 일단 할머니께 대답부터 했다.

“할머니~ 우리 부엌에~.”

“아유- 선우야, 여기까지 와서 유 서방 설거지를 시키면 어떡해? 할머니가 그냥 두랬잖아.”

할머니는 ‘백년손님한테 얘는.’ 하며 너도 하지 말고 유 서방도 시키지 말라고 선우에게 잔소리를 했다.

“할머니 괜찮습니다. 제가 또 우리 선우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사나이가 한 입으로 두말하면 쓰나요.”

설거지도 더럽게 못하는 주제에 말은 잘했다. 범은 순간 선우의 가슴에 노골적인 시선을 던졌다. 만지라 그랬다 다시 못 만지게 한 선우를 저격하는 듯했다.

선우는 입술을 삐죽였지만 그래도 할머니께 사실을 고하진 않았다. 할머니에게 범은 예쁜 짓을 해야 예쁜 존재이지만 저는 미운 짓을 해도 예쁜 존재이니 범이 예쁨을 받도록 양보했다.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니 할머니도 그렇게 생각했음 했다.

***

할머니와 거실에서 노닥거리던 선우가 슬쩍 부엌으로 들어와 보았다. 혼자 설거지를 하고 있을 범이 조금 안쓰러웠다. 저는 한 번 싸기라도 했지, 그는 터지기 직전까지 갔다 터뜨리지 못하고 뺐으니 얼마나 찝찝할까 싶었다.

“형, 설거지 제가 할까요?”

“아니. 내가 할 테니까 안아 줘.”

선우가 피식 웃었다. 범이 그랬던 것처럼 선우도 범의 배에 팔을 두르고 뒤에서 꽉 끌어안았다. 오리가 들어 있는 제 배는 평평하기만 한데 범의 배는 조각조각 갈라져 있었다. 선우가 투둘투둘 갈라져 있는 빨래판을 느끼며 범의 배를 문질렀다.

“거기보다 조금 아래 만져 줘. 걔 아직도 서 있다.”

선우는 발을 살짝 들어 범의 귓가에 입술을 붙이고 이따 할머니 주무시면 쭉쭉이 해 드릴게요, 했다. 대번에 범의 입꼬리가 귓가에 닿을 듯 바짝 올라왔다. ‘입으로, 손으로?’ 하며 퍽 설렌다는 투로 물었다.

“아래로요.”

선우는 심드렁히 폭탄을 투하하곤 거실로 도망갔다.

“선우야, 뽀뽀해 주고 가라, 야, 뽀뽀해 주라, 선우야!”

애절한 다섯 마디 정도가 단번에 씹혔다. 그럼에도 범은 싱글벙글 어깨춤을 추며 설거지를 했다. 곧 저녁이 되면 나비의 보은을 받을 것 같았다.

‘하씨, 임신 중엔 선녀 강림 자세 위험하댔는데. 살짝만 해 주려고 그러나?’ 혼잣말로 김칫국을 마시며 실실 쪼갰다.

***

선우에게도 낮은 싱크대는 범에겐 더욱 낮았다. 설거지를 마친 범은 조금 민망한 곳이 죄 젖어 있었고 티셔츠는 땀으로 범벅이었다. 물론 땀은 설거지 때문에 난 게 아니었다.

“선우야, 유 서방 등목이라도 좀 시켜 줘라.”

할머니가 범의 행색을 보며 선우에게 일렀다. 선우도 땀이 난 건 마찬가지라 너도 좀 하라며 잔소리를 하셨다. 그러다 선우를 찬찬히 뜯어보시곤 조금 놀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어휴, 그러고 보니 선우 너는 땀을 왜 이렇게 흘렸어? 땀도 잘 안 나는 애가. 등목을 할 게 아니네, 둘이 그냥 목욕을 해.”

선우는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땀이 어쩌다가 난 건지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설거지도 범이 다 했는데, 할머니 눈엔 가만히 놀고먹다 혼자 땀이 난 걸로 보이겠지?

“그러게, 좀 덥네.”

선우는 할머니 집에 에어컨을 놓아야겠다고 괜히 딴소리를 했다.

“에어컨은 무슨, 얼른 들어가서 씻기나 해. 씻으면 시원해.”

할머니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남자들끼리 뭐 어때, 하며 범과 같이 씻으라 했다. 그래도 부부인데, 무슨 동네 불알친구랑 목욕하라 하듯 가볍게 말씀하셨다. 형질 같은 거 하등 상관없는 시골 마을에 일평생 살아 그런지 사상이 조금 섞여 있었다.

범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듯 당장에 윗도리를 벗어 던질 기세로 선우에게 다가왔다.

선우가 어우, 어우, 하며 범의 등짝을 때려 그의 탈의를 만류했다. 할머니께 제 빨래판을 자랑하려는 범을 황급히 욕실로 끌었다.

욕실은 꽤나 넓었다. 시골이라고 푸세식 화장실이 있고 그런 건 아니었다. 양변기도 있고, 샤워기도 있고, 있을 건 다 있었다. 다만 할머니가 ‘다라이’라고 부르는 커다랗고 빨간 고무 대야가 있었고 청록색, 분홍색 알록달록한 물바가지들이 굴러다녔다. 하늘색 타일이 깔린 촌스럽지만 정겨운 욕실이었다.

범을 먼저 욕실로 밀어 넣은 선우가 등 뒤로 욕실 문을 닫자, 범이 달려들어 입술을 물었다. 갑작스레 달려드니 잠깐 놀라긴 했지만 선우는 이내 빠르게 상황을 수긍하고 범의 목 뒤로 팔을 둘렀다. 괜히 어줍지 않게 반항하면 입술만 더 세게 빨릴 뿐이었다.

제 입술을 받아 주는 선우에 범이 환히 웃었다. 촉촉 짧게 입을 맞추다 혀를 내밀었다.

선우는 빨아 줄까 하다 저도 혀를 내밀어 혀끝으로 달랑달랑 장난을 쳤다. 둘은 너 나 할 것 없이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 눈이 마주치면 진득하게 혀를 섞었다. 두툼하고 단단해진 서로의 앞섶을 비비며 한참이나 키스했다. 키스는 꿀맛이었다.

‘훔쳐 먹는 게 맛있다더니, 몰래 해서 그런가?’

선우가 혼자 실없는 생각을 할 때, 범이 툭 하고 수도를 틀어 물소리가 나게 했다. 수압이 강해 욕실 안이 시끄러웠다.

그에 할머니 집에 온 뒤로 계속 까부는 선우가 또 까불었다.

“소리 안 들리게 하고 저 팰라고 그러죠?”

“어? 어떻게 알았어?”

실실 웃으며 농담을 건 선우가 흠칫 놀랐다. 범이 저를 때릴 리가 없다, 범도 농담을 하는 것이다, 선우는 그리 믿으면서도 범의 날카로운 눈매와 욕실을 울리는 낮은 목소리에 위압감을 느꼈다. 제가 먼저 던진 농이라 뭐라 할 수도 없고, 앞으로는 장난으로라도 저런 소린 꺼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범은 쫄은 티가 역력한 선우에 다정히 눈을 맞췄다. 선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며 바지를 내렸다.

“연장은 아까부터 준비해 놨지. 여보, 뒤 대. 쬐끔만 맞자.”

선우는 경멸의 눈빛을 매달고 속으로 그럼 그렇지, 했다. 남사스러웠지만 안심했다.

어느샌가 상의도 벗어 던진 범이 나신으로 선우의 앞에 서서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선우가 그런 범의 가슴팍을 찰싹찰싹 때렸다.

“미쳤어요? 여기 화장실 소리 다 울려요.”

“네가 지금 이렇게 때리는 소리나, 그 소리나 비슷하거든? 엥간치 음란한 사람 아니면 대번에 그 짓 하는 걸로 안 들린다. 너는 할머님을 뭘로 보고.”

범은 도리어 선우를 음란 마귀 취급했다. 할머니는 그런 분이 아니라며 면박을 주었다.

“계속 때리는 소리가 나는 것도 이상해요.”

“거참 걱정은, 형 소리 안 낼게.”

앞에서만 살짝 왔다 갔다 한다나 뭐라나, 범은 선우의 엉덩이와 제 장골이 맞부딪혀 나는 소리, 즉, 떡 치는 소리를 내지 않겠다는 말로 선우를 설득했다. 그래도 자기 건 길어서 너는 충분히 만족할 거라며, 따지고 보면 너만 좋은 일이지 자긴 좋은 일도 아니라고 했다.

선우는 할 말을 잃고 가만 서서 범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 중앙에 존재감 넘치는 물건이 시위하듯 바짝 서 있었다. 저쯤 되면 정말 둔기다.

선우는 저도 모르게 살살 뒷걸음질 쳤다. 할머니에게 가야 할 것 같았다.

“어허, 튕기지 말고 일루 와라.”

범이 뒷걸음질 치는 선우에게 손을 까딱까딱하고 안기라는 듯 두 팔을 벌렸다. 정말 안길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여하튼 뻔뻔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좋은 말로 할 때 와라.’ 하며 협박은 하지 않았다. 그리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들리는 게 문제지만 어쨌든 범은 선우를 억지로 잡아채지 않고 가만 기다렸다. 어찌 보면 매너인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때를 노리는 맹수 같기도 했다.

결국 대치 상황을 지속하다 선우가 먼저 타협안을 내걸었다.

“허벅지.”

“뭐?”

“씻는 동안 허벅지에 비벼요. 저 허벅지 잘 조여요.”

선우의 타협안에 범이 ‘허으, 씨발. 나 코피.’ 하며 나지도 않는 코피가 나는 척 방정을 떨었다.

선우는 피식 웃으며 두 팔 벌린 범에게 다가가 안겼다. 범은 떨던 방정을 멈추고 점잖은 미소를 입에 걸었다. 씩 웃으며 여보 보고 싶었어, 했다. 몇 발자국 안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선우는 너무 느끼해 타일 바닥이 미끄러운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욕실에서 장난치면 넘어진다고 할머니한테 혼나는데, 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면서도 입꼬리는 씰룩씰룩했다. 인상이 험악해서 그런가, 느끼하게 굴어도 그의 외양이 느끼함을 상쇄해 주어 들어 줄 만했다.

선우는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제 허벅지 사이로 들어온 범의 성기를 가득 조여 주었다.

그렇게 좋아 죽는 범과, 좋아하는 범이 좋은 선우는 욕실을 나가기 싫어 비누칠을 두 번이나 하고 머리도 두 번이나 감았다.

***

뜨거운 짓을 벌이고도 둘의 몸에서는 보송보송 좋은 냄새가 났다. 범이 이래서 씻으면서 떡도 치면 좋은 거라고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선우는 은근하게 동의했다.

머리를 말리겠다 자그만 선풍기 앞에 다 큰 남자 둘이 옹기종기 포개어 앉았다. 범은 제 다리 안에 가두어 앉힌 선우의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킁킁, 냄새를 맡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선우야, 큰일이다.’ 했다. 그는 진지한 목소리를 냈지만 선우는 이미 헛소리임을 짐작했다. 무시할까 하다 심드렁히 왜요? 하고 선심 쓰듯 물어 주었다.

오빠 또 선, 까지 들은 선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저녁상을 준비하는 할머니께 갔다. 범은 홀로 남아 외로이 하던 말을 끝맺었다. 오빠 또 선다. 오빠라 그래서 간 건지, 또 선다 그래서 간 건지 조금 생각하다 마룻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선우야, 이선우, 하며 하는 일 없이 뒹굴뒹굴 선우를 불렀다.

기대도 안 했는데 도망갔던 선우가 다시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상 같이 들어 주세요.”

쭈뼛거리며 전하는 선우의 말에 범이 씩 미소를 입에 걸었다. ‘애교 봐라.’ 하며 혼잣말을 하니 쭈뼛거리던 애 볼이 발그레해졌다. 하여간 사랑스러웠다.

범이 ‘선불’ 하며 입술을 쭉 내밀자 선우가 꾹꾹 진하게 두 번의 입술 도장을 찍어 주었다.

“내일 아침상까지 드세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린 범이 벌떡 일어나 선우의 볼에 쪽쪽 뽀뽀 두 번을 돌려주었다. ‘너도 내일 아침까지 귀여워라.’ 했다.

선우는 부끄러움에 뒤돌아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도망가는 선우의 등에 매달린 범이 선우를 끌어안고 뒤뚱뒤뚱 걸었다.

선우는 귀찮은 기색을 보였지만 광대는 볼록볼록 꿈틀거렸다. 해가 길어진 여름밤, 노을이 져 갈 쯤, 함께 저녁상을 차리는 커다란 새 가족이 저를 졸졸 따라다녔다. 행복했다. 엄마가 가끔씩 하늘에서 내려와 할머니를 들여다보고 가지 않을까 생각하면 늘 마음이 좋지 않았다. 식구들이 다 떠나 버린 할머니의 시골집을 보면 많이 슬퍼할 게 분명했다.

선우는 엄마에게 지금 이 모습도 보고 가라 인사를 전했다.

‘사위 왔어, 배 속에 손주도 오고. 엄마도 껴. 난 귀신 안 무서워하니까.’

제 싱거운 소리에 엄마가 웃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엄마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면 눈물이 났었는데, 이번엔 선우도 환히 웃었다. 웃으며 ‘할머니가 갈비찜 해 줬다.’ 하고 엄마에게 자랑했다.

“왜 웃어? 같이 웃자.”

범이 묻자 선우는 밥상 드는 형이 섹시해서 웃었다 거짓말을 했다. 덕분에 밤이 조금 고달파질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바보같이 비실비실 웃음이 샜다.

엄마도 웃고, 저도 웃고, 할머니도 웃는 모습.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

가로등도 얼마 없는 시골 마을에 밤이 내리자 풀벌레 우는 소리가 평화로이 울렸다. 자장가 삼던 소리가 간만에 들려와 선우의 마음에도 평화가 내렸다.

할머니는 TV를 조금 보시다 평소처럼 일찍이 잠자리에 드셨고 선우의 방에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스물다섯이 열 시부터 자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선우는 이불을 깔고 누워 제가 학교 다닐 때 읽던 만화책들을 조금 훑다가 휴대폰 게임을 했다. 그러다 퍼뜩 오리 생각이 났다. 온종일 할머니도, 범도 제 옆에 있어 주어서 오늘은 오리와 대화할 새가 없었다. 심심하고 놀아 줄 사람이 없을 때만 저를 찾는다고 오해할까 봐 선우는 오리에게 미안, 하고 사과했다.

별생각 없이 ‘대신 오늘은 아빠가 들어가서 놀아 줬잖아.’ 했는데 하고 보니 애한테 못 하는 말이 없는 것 같아 또 미안, 했다. 괜히 혼자 열이 올라 얼굴에 선풍기 바람을 쏘였다.

범은 대문 밖으로 나가 집 앞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할머니가 주무시니 마당보다 더 멀리 나간 것인데 그럼에도 어렴풋이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무적으로 들렸다. 지시하는 투, 상급자의 어조였다. 뭐라고 하는지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듣기는 좋은 목소리였다. 그래서 감상하듯 들었다.

통화가 조금 길어지는 듯했다. 풀벌레 소리와 그의 낮은 목소리에 선우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껌벅껌벅 졸았다. 새벽부터 움직여 그런지 아직 잘 시간이 아닌데 눈꺼풀이 무거웠다.

지이잉- 지이잉-

입가에 침방울까지 매달고 졸던 선우가 번뜩 눈을 떴다. 손에 든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코앞에 계시면서 왜 전화를 해요?”

[여보, 빨리 나와 봐.]

“아 왜요. 저 졸려요.”

자다 깬 선우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산중에서 멧돼지가 내려와도 혼자 때려잡을 양반이, 뭐 무서운 거라도 있어 부른 건 아닐 테고, 졸린데 나와 보라 하니 귀찮았다.

범은 선우의 짜증에도 개의치 않았다. 선우가 암만 짜증을 부려도 기분 나빠 하지 않았고, 주눅이 들지 않았다. 그는 마냥 당당했다. 사람 말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모르겠지만 오야오야, 어구어구, 같은 소리를 내며 선우를 달래고 계속하여 빨리 나와 보라 보챘다.

범이 하도 성화를 부려 선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는 피곤해 죽겠는데 똑같이 새벽부터 일어나 운전까지 한 범의 체력은 남아도는 게 조금 억울했다. 오리에게 ‘너네 아빠 데리고 살다 내 뼈가 삭겠다.’ 하며 하소연했다. 하루빨리 오리가 나와 이럴 때 범에게 대신 가 주었음 했다. 애들은 잘 지치지 않으니 범과 놀면 딱일 것 같았다. 오리와 노는 범을 생각하니 또 흐뭇하긴 흐뭇해서 선우는 대충 슬리퍼를 꿰어 신으며 피식 웃었다.

범이 선우를 부른 이유는 역시나 별거 없었다. 선우가 잠들었을 것 같아 깨우려고 몸을 움직이게 했단다. 신종 고문인가 싶었다.

범은 가부장적인 꼰대 투로 첫날밤에 그냥 자는 건 용납 못 한다 했다. 대신 상욕은 용납해 줄 수 있으니 졸려서 화가 나면 차라리 욕을 하라 했다.

“아니 마누라가 말이야, 서방이 안 들어와 가면 언제 오나 내다보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야?”

선우가 마누라는 무슨 마누라, 하며 구시렁거렸다.

범이 선우의 양 볼을 뽁 눌러 입술이 튀어나오게 했다.

“씨발, 귀여워서 이거 순 거짓말만 하는데 콱 그냥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붕어같이 튀어나온 선우의 입술에 쪽쪽 뽀뽀했다.

“너 아까 자지 쭉쭉 해 준다 했어, 안 했어? 어?”

고요한 산촌에 그의 자지 타령이 메아리쳤다. 선우가 황급히 그 입을 막고 찰싹찰싹 범의 가슴팍을 때렸다.

“아 해 줄게요, 해 주면 되잖아요. 조용히 하고 방에 가서 바지나 벗어요.”

“네가 벗겨 줘야지.”

“……알았어요. 벗겨 줄 테니까 빨리 가세요.”

“팬티는?”

함께 목욕을 한 후 선우가 챙겨 입힌 팬티를 일컫는 거였다.

“아, 것도 제가 벗길게요.”

얌전히 다 해 준다는 선우에 범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에 걸었다. 화를 낼 수가 없다, 하며 선우의 머리통에 쪽쪽 입을 맞췄다. 그런데 이상하게 듣고 싶은 대답을 다 들어 놓고도 발을 떼지 않았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선우가 범을 빤히 쳐다보자 그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저거 봐, 했다.

시골 하늘엔 별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하늘 반, 별 반.

서울에선 못 보고 사는 퍽 귀중한 광경이었다. 저 하늘을 매일 보고 살던 때가 있었는데 잠시 잊고 살던 풍경이 선우에게 새삼 감동을 주었다. 선우는 환히 웃으며 한참이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뒤로 젖혔던 고개가 뻐근할 쯤 되어서야 다시 앞을 보았다. 앞을 보자 저를 빤히 보고 있는 범과 눈이 맞았다. 범은 사실, 제게 별을 보여 주려 불러낸 듯했다.

마음이 몽글몽글 부풀고 아랫배가 간질간질해진 선우는 덥석 범의 손목을 잡고 성큼성큼 그를 집 안으로 이끌었다.

“어휴, 이렇게 적극적이면 오빠 설레는데?”

범이 능청을 떨었다. 마치 어쩔 수 없이 끌려가 준다는 듯 내숭도 떨었다. 끈다고 끌릴 사람도 아니면서 말이다.

범의 발걸음은 너무도 자발적이었지만 그래도 선우는 그의 내숭을 눈감아 주었다. 이건 범이 제게 자주 하는 소리이긴 한데, 귀여워서 봐준다.

***

불 꺼진 선우의 방 안엔 야행성 동물 둘이 엉겨 붙어 살을 맞대고 입술을 붙였다.

범은 깔려 있는 요 위에 벌러덩 드러누워 제 몸에 선우를 올렸다. 그러고선 선우에게 제 얼굴 앞으로 엉덩이를 들이밀어 달라는 노골적인 요구를 했다. 뭘 하려는 건지 대번에 알아들은 선우는 피식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대뜸 ‘69 하자!’ 할 것 같은 사람이 어째 그러진 않았다. 하긴, 엉덩이를 들이밀어 달라는 소리가 듣기엔 더 민망했다.

범은 선우의 성기를 빨며 오후에 열심히 풀어 놓은 구멍을 다시금 정성스레 풀기 시작했다. 고새 빠듯하게 다물려 버린 구멍이 야속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손가락을 꽉 물어 오는 느낌에 아래가 동했다.

선우는 제가 입을 대기도 전부터 벌떡벌떡 일어서기 시작하는 범의 성기를 잠깐 구경하다 범이 내내 고대했을 쭉쭉이를 해 주었다. 침 소리가 크게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쭉쭉 범의 성기를 빨았다. 제 구멍을 빠르게 오가는 범의 손가락 때문에 도통 집중이 안 되었지만 그럼에도 범의 것은 순식간에 잘도 부풀었다.

선우는 반듯이 세워 놓은 성기를 입으로 꼼꼼히 핥고 뱉어 냈다. 뱉어 낸 뒤에는 손으로 두어 번 슥슥 쓸어 주었다. 그러곤 범에게 소곤거렸다.

“이제 넣을래요.”

“자지 다 빚었냐? 이제 넣으면 딱 만족스럽겠어?”

선우가 푸스스 웃었다. 제가 생각해도 제 입놀림과 손놀림이 도자기 빚듯 했던 것 같다. 소리가 안 나게 하려고 평소보다 부드럽고 섬세하게 했는데 범의 말을 듣고 보니 무슨 장인 정신이라도 발휘한 것 같아 이제 와 민망했다.

민망하기도 하고 마땅히 대꾸할 말도 없어 선우는 범의 물음을 무시한 채 끙차 엉덩이를 옮겨 제 구멍에 범의 성기를 끼워 맞췄다. 그러자 범이 허으, 하고 한숨을 쉬더니 ‘씨발 이걸 말려, 말어.’ 하며 중얼거렸다. 갑자기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선우는 고뇌하는 범을 두고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선우가 제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가며 가장 역경인 귀두를 담아내자 범이 ‘잠깐.’ 하며 선우의 엉덩이를 저지했다.

“너 쭉쭉이 이거 달아 놓을 거니까 오리 나오면 꼭 해 줘야 된다?”

“네? 아 뭘 달아 놔요. 저 누구한테 빚지는 거 싫어해요. 안 하시면 안 하는 걸로 알게요.”

의사가 임신 중 관계로는 권장하지 않는다 했던 체위이다. 너무 깊이 박힌다나 뭐라나. 씨발, 그 맛이 떡 맛인데. 범은 아까워 죽겠는 마음을 뒤로하고 선우를 위해 선녀 강림을 포기했다.

“하……. 내 평생 울어 본 역사가 없는데 눈물 나겠다.”

“웬일이세요?”

“웬일 아니고 당연한 일. 자지 달고 이 정도도 못 참으면 사람 새끼 아니지.”

범은 조금 허세를 부리긴 했지만 선우는 범이 얼마나 변태인지 알기에 그가 이런 짓을 마다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다. 진짜 사랑하나 봐, 하고 생각했다. 제가 생각해 놓고도 이런 걸로 사랑을 느끼는 자신이 우스워 비실비실 웃었다. 부러 장난을 친다고 다음엔 진짜 없다 더 냉정하게 굴었는데도 범은 깔끔히 포기했다. ‘나중에 할머니 땅 사 드리면 해 주겠지 뭐.’ 했다.

땅 소리에 반응한 선우가 뽁 하고 박았던 귀두를 뺀 뒤 누워 있는 범의 품에 안겼다. 제게 안겨 오는 선우를 꽉 마주 안아 준 범이 선우의 손을 제 성기 위에 끌어 두었다. 선우는 자연스레 주물주물 하며 ‘콩이나 깨가 농사짓기 쉽대요.’ 했다.

무심히 던진 말에도 범은 ‘콩밭 사 달라는 거지?’ 하며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그에 선우는 범의 성기를 쥐고 기분 좋게 웃었다. 선우가 예쁘게 웃자 범은 선우를 안은 채로 휙 굴렀다. 순식간에 아래에 깔린 선우가 어둠 속 빛나는 범의 눈동자를 찾았다. 그와 빤히 눈을 맞추며, 얼굴엔 싱글벙글 미소를 걸고 천천히 다리를 벌렸다.

씨발, 범의 반응을 예상한 선우가 범이 말할 타이밍에 맞춰 저도 같이 ‘씨발.’ 했다. 키득키득 둘만의 웃음이 방 안을 은밀히 메웠다.

장난스런 웃음이 멈추고 둘은 다시금 눈이 맞았다.

그대로 선우의 입술을 먹어 든 범이 오후에 잠시 맛본 그곳에 제 것을 끼워 넣었다.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서로가 서로의 입술을 막았다.

바닥에 깔린 요가 점점 위로 밀리고 얇은 여름 이불이 펄럭거렸다. 가구 때문인지, 바닥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삐그덕, 삐그덕, 끼익, 끼익,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한낮의 정사에선 철퍽철퍽 나던 살 소리가 턱턱턱턱 정도로 줄어들었다. 범은 세게 찧지 않는 대신 잘게 찍었다. 범의 유연한 허리 놀림에 선우는 범의 혀를 입에 물고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삼키다, 삼키다, 속 안에 그대로 축적되는 듯한 흥분이 점차 버거워졌다.

선우가 손을 들어 범의 등판을 전부 긁어 놓았다. 범은 짧아서 느낌도 잘 안 나는 선우의 손톱이 제 몸에 박힐 때마다 으르렁거리며 허리 짓을 더욱 빠르게 했다.

읍, 읍, 읍, 으읍……!

짐승같이 싸지른 둘은 헉헉거리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범은 땀이 난 선우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 주며 선우의 얼굴에 쉼 없이 입을 맞췄다. 범의 입술이 조금 아래로 옮겨 가 선우의 목덜미에 닿았다.

선우는 제 목덜미를 빠는 범을 두고도 그저 멍했다. 이성이 제자리를 찾아갈수록 여유로이 후희나 즐기는 범이 왠지 모르게 얄미웠다. 선우도 눈이 돈 건 사실이지만 저는 혹시라도 들렸을세라 조마조마해 죽겠는데 범은 혼자 천하태평이었다.

선우가 범의 머리카락 한 꼬집을 집어 팩하고 잡아당겼다. 범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선우의 목덜미에 묻은 입술 역시 뗄 생각을 안 했다. 그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은 듯한데 그래도 퍽 억울하다는 투로 선우에게 투정했다.

“와, 좆질을 이렇게 잘했는데 예쁘다 해 주진 못할망정. 이선우 진짜 너무하네?”

“하실 거면 어젯밤에 하지, 할머니 댁에서 이게 뭐예요?”

“앞으로 집에서는 주야장천 할 거 아니야. 나중에 오리가 첫날밤 어디서 보냈냐 물어보면, 집이라 그러냐? 특별함이 없잖아, 특별함이.”

선우는 범이 하는 말을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들 때가 종종 있었다. 찬찬히 그의 말을 곱씹고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했다.

‘주야장천은 누구 마음대로 주야장천이며, 첫날밤이 특별해야 하는데 그게 왜 우리 할머니 댁이어야 하는 거며, 오리가 우리의 첫날밤을 왜 물어본다는 걸까?’

“오리가 무슨 첫날밤을 물어봐요?”

선우는 여러 의문 중 하나만 반문했다. 나머지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당연히 물어보지. 내 새낀데 안 물어보겠냐? 그리고 너도 말이야, 친정에서 처음 아다 뗐다고 길이길이 기억하기 쉬울 거 아냐, 안 그래?”

선우는 하도 어이가 없어 잠시 말을 잃고 가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실성한 사람처럼 허허 헛웃음을 흘렸다.

범은 선우에게 종종 넌 아다인 거나 마찬가지라는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그때마다 선우는 저건 또 무슨 헛소리냐, 하며 무시했지만 사실 그 말이 뭐라고 조금 찡했다. 범은 네가 안 좋았으면 해 본 게 아니라고 했다. 뒤로 가 본 적도 없으면서 그게 자위한 거지, 한 거냐? 하며 조금 무시하기도 했다.

걸레짝 같은 제 몸을 위로해 주기 위해 하는 입발림 소리라고 생각했다. 썩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표현은 아니지만 걸레의 반대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단어였다. 닳고 닳아 걸레로도 못 쓸 만큼 닳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다라니, 선우는 놀리나 싶을 만큼 기가 찬 그 소리가 되게 고마웠다.

그냥 하는 소리라 해도 퍽 고마웠는데 범은 꽤나 진심인 듯 보였다. 사뭇 진지하게 분위기를 잡으며 ‘형이 네 처음 따먹었으니까 책임질게.’ 했다. 범의 구닥다리 같은 소리에 선우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도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아 왜, 좀 책임지게 해 줘.”

“자기 앞가림은 알아서 해야죠.”

“그런 거 알아서 하는 거 아니다.”

범이 쓰읍,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하지만 선우는 끝까지 동의해 주지 않았다. 선우가 평소에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네, 이기에 범은 네, 라고 하지 않는 선우가 더 야속했다.

“혹시 저 먼저 죽으면 저희 할머니나 좀 책임져 주세요.”

범이 미운 소리를 하는 선우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렸다. 때찌때찌 하는 수준이었는데 맨살이 감기며 소리가 차지게 났다. 범은 그 소리에 씨발, 하곤 꼴려서 혼도 못 낸다고 투덜거렸다. 하지만 정말 진지하게 그런 소린 하지 말라고 했다.

“아니……. 가는 덴 순서가 없으니까…….”

선우는 말을 얼버무리며 엄마를 떠올렸지만 범이 진심으로 속상해하는 듯해 얌전히 잘못했다 했다.

범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아오, 요 애새끼 말버릇 어떡하지, 하며 혼잣말을 읊조리더니 선우의 입술을 왕 깨물었다. 선우가 반항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휙 고개를 내려 선우의 젖꼭지를 감쳐물었다. 동시에 손으로는 재빨리 선우의 입을 막았다. 소리를 지를 게 뻔했기 때문이다.

아프지 않게 입술로만 춥춥 빠는데도 선우는 발버둥 쳤다. 범의 머리통을 밀어내다 밀어냄이 말을 듣지 않자 통통 때렸다. 수박 때리는 소리가 났다.

범은 끝까지 미련을 놓지 못하고 할짝할짝 선우의 유실을 핥다 떨어져 나갔다. 그러곤 선우의 아래로 슬쩍 시선을 던졌다. 힘이 들어간 선우의 성기를 보며 또 억울해했다.

“좋아 죽는구만 왜 못 하게 하냐? 얘는 빨아 달래. 얘 말을 좀 들어줘 봐.”

“몰라요. 진짜 너무 아파요. 오리 나오면 하세요.”

“진짜?”

선우는 생각 없이 네, 했다가 ‘아, 안 돼요.’ 하며 말을 바꿨다. 오리 나오면 오리 줘야 되는데, 라고 중얼거렸다.

“어딜,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아버지가 먼저 한 술 뜨면, 그다음에 자식 놈이 뜨는 거지! 애 버릇 나빠진다.”

“…….”

선우는 들어 줄 가치도 없는 소리인 것 같아 싸움을 포기했다. 나중에 그 상황이 닥쳤을 때 해결하면 될 것 같았다.

옆에 들러붙은 커다랗고 뜨거운 범을 이불 삼아, 범의 심장 소리를 가만 듣고 있으니 잠이 쏟아졌다. 잠들락 말락 하는 중에 뽀뽀도 안 해 주고 잔다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우는 꼼짝도 하기 싫어 못 들은 척했다. 하고 싶으면 본인이 하시겠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범의 입술이 촉, 하고 다가왔다.

그에 선우는 완연한 안정감과 함께 얼굴에 미소를 띠우고 단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

지저귀는 새소리와 함께 아침을 맞았다.

범은 이 한여름에 끈덕끈덕 땀이 날 정도로 선우를 끌어안고 잤다. 그럼에도 찝찝은커녕 온몸이 개운하고 상쾌했다. 아침부터 펄떡이는 제 아래를 선우에게 비비며 선우의 속옷 안으로 손을 넣고 엉덩이를 지분거렸다.

선우가 힘겹게 눈을 떠 덥다고 밀어내자 범은 청개구리처럼 몸을 더 밀착해 왔다. 어차피 땀나서 씻을 거 좀 더 나면 어떠냐 하는데 선우는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체념하고 계속 더워했다.

범은 제 손 한가득 선우의 엉덩이 살을 움켜쥐곤 이게 내 보약이다, 했다. 아침부터 아저씨 같은 소리였다.

“너도 내 거 먹고 자니까 숙면했지? 보약이 따로 없지?”

“보약은 아침밥이 보약인데. 배고파요.”

범의 아저씨 같은 소리에 선우는 할머니 같은 소리로 반격했다.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일어나자마자 배고프다 했다. 이렇게 깨는 소리를 해도 범은 퉁퉁 부은 선우의 얼굴에 쪽쪽 뽀뽀를 내렸다.

“너 나 오늘 가면 하루 못 보는데 이렇게 보낼 거야?”

범은 일 때문에 먼저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선우는 처음 유 회장과 계약할 당시 한 달에 한 번, 2박 3일간 할머니 댁에 내려오는 걸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하룻밤 더 잘 예정이었다. 이제는 계약이고 뭐고 범에게 말해 조금 더 있고 싶다 말할 수도 있지만 할머니께서 집에 혼자 있을 범을 걱정하시기에 그러지 않았다.

“빨까요?”

“배고프다며 기운 빠지게 뭘 빨어. 안녕히 주무셨냐고 폭 앵겨 가지고 뽀뽀 딱 하고, 보고 싶을 거라고 바짓가랑이 좀 붙잡고. 뭐 그런 거 좀 해 줘 봐 봐.”

“그냥 빠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범은 자기가 무슨 복으로 이렇게 툭하면 빨겠다는 마누라를 얻은 건지 모르겠다고 혼자 조금 감격해하다가, 고작 말 한 마디 해 달라는 걸 안 해 준다고 오리에게 하소연했다.

선우는 골이 조금 울리는 것 같아 범의 성기를 주물러 그를 닥치게 했다. 손은 현란한데 아직 무겁기만 한 눈은 끔뻑끔뻑 느리게 움직였다.

“윽……! 하, 선우야, 세게, 더 세게 해 줘.”

선우도 세게 해 주고 싶었지만 잠이 덜 깨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하다 말면 농락당하는 느낌이려나? 하고 고민하는데 마침 타이밍 좋게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우야, 그만 일어나서 씻고 밥 먹어~.”

밥 소리에 벌떡 일어난 선우가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채로 히죽 웃었다. 혼자 냉큼 나가려다 멈춰 서 범을 챙겼다. 괜스레 딴 곳을 쳐다보며 ‘형, 가요.’ 했다.

아쉬움에 잠시 탄식하던 범은 선우가 하는 양을 보곤 군말 없이 몸을 일으켰다.

“네가 가자는 데면 전쟁터도 간다.”

“……밥 먹으러 가자는 건데요?”

“아니, 이 오빠의 각오가 그 정도다 이 말이지. 너는 애가.”

범은 타박을 주려는 듯 ‘너는 애가 참.’ 하며 뜸을 들였다. 그러다 선우가 가만 쳐다보자 싱겁게 예쁘다, 고 답했다.

“마누라가 식전 댓바람부터 예쁘니까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네?”

선우는 범의 실없는 농담을 외면하고 방을 나섰다. 나가는 길에 씩 입꼬리를 올리고 외쳤다.

“할머니~ 형은 밥 안 먹는대~!”

***

선우가 할머니를 도와 다 먹은 아침상을 치울 때 범은 몰래 할머니 방에 들어가 용돈 봉투를 넣어 두었다. 범은 이만 서울로 돌아가 볼 시간이었다.

선우도 범의 차에 올라 마을의 초입까지만 함께 가기로 했다. 돌아올 땐 운동 삼아 슬슬 걸어오면 좋을 것 같아 따라나섰다. 그런데 가고 보니 차로는 너무 짧은 거리라 이렇다 할 대화도 없이 타자마자 내려야 하는 수준이었다.

바쁜 사람이 먼 곳까지 내려와 고생했는데, 선우는 범 혼자 먼 길을 보내는 게 마음이 쓰였다. 그렇다고 뭐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으니 그저 쪽, 하고 볼에 뽀뽀나 해 주었다. 범은 별것도 아닌 거에 착하다 하며 선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가 차를 돌려 할머니 댁 앞까지 도로 데려다주려는 걸 선우는 좀 걷고 싶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내일이면 다시 볼 사람이지만 선우에겐 모든 헤어짐이 슬프고 어려웠다. 범이 다시 할머니 댁까지 함께 가 주면, 헤어지기가 배로 아쉽고 슬플 것 같았다. 지체할수록 저릿한 마음만 커질 터라 선우는 ‘조심히 가세요.’ 하곤 붙잡힐 새도 없이 차에서 내려 버렸다. 그러곤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홀로 걸었다.

걷는 건 혼자인데, 혼자가 아니었다. 범이 거북이 같은 속도로 차를 굴리며 선우의 옆에 따라붙었다. 선우의 산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장난도 걸지 않고 그저 조용히 함께했다.

선우는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애꿎은 머리만 긁적이며 그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랫배도 간지럽고, 허벅지도 간지럽고, 거기도 간지러웠다. 범이 조용하니 더 간지러운 것 같았다. 범은 헤어지기 싫어하는 어린애 같은 제 마음을 묵묵히 다독여 주는 듯했다. 입꼬리가 씰룩씰룩, 광대가 볼록볼록 춤을 췄다. 그리고 마음은 울렁울렁했다.

선우의 걸음에 맞춰 같은 길을 가 주는 사람이 생겼다.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