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아침이 밝았다.
세상모르고 자던 선우는 단단하고 뭉툭한 무언가가 제 볼에 문대지는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흐암, 하고 하품이 나왔다. 반도 다 못 뜬 선우의 눈앞에 보인 건, 오리 아빠였다. 정확히 말하면 오리 아빠의 자지.
‘개변태.’
하마터면 육성으로 내뱉을 뻔했다. 출근 준비를 마친 듯한 정장 차림의 범이 바지만 살짝 풀어 제 물건을 내놓고 있었다. ‘하아…….’ 범은 제 성기를 잡고 선우의 볼에 뭉근히 비볐다. 일어났어? 라고 묻는 음성이 쓸데없이 다정했다.
“노크했다. 세 번이나.”
“아, 네.”
지금 노크가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범은 방을 함부로 들어온 건 변명하면서 자신이 행하고 있는 변태 짓엔 아주 당당해 보였다. 아침부터 웬 봉변인가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오리주물럭과 바꾸기로 한 행위였다.
‘너네 아빠가 지금 못할 짓 하는 건 아니다. 정당한 거야.’
선우는 오리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며 습관처럼 범을 옹호해 주었다. 오리 아빠는 옹호해 줘야 할 일을 너무 많이 하셨다.
범의 성기에서 흘러나온 프리컴이 선우의 볼에 촉촉이 묻어났다. 범은 그러다 문득 시계를 보더니 가야 할 시간인지 바지를 추슬렀다. 지퍼가 잘 잠기지 않았다.
“빨아 드려요?”
“출근하지 말라고 유혹하는 거야?”
“아니요.”
“얼굴은 퉁퉁 부어 가지고 찐빵 같은 게, 정색은.”
범은 피식 웃으며 됐다고 전했다. 퇴근 후에 먹고 싶은 걸 사 먹이고 웃는 얼굴로 빨게 할 생각이었다. 큰 그림을 그리고 터질 듯한 제 물건을 조심성 없이 대충 욱여넣었다.
선우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저것도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이 많구나 생각했다.
“왜, 뭘 그렇게 봐? 막상 들여 넣으니까 아쉬워? 줄까?”
“아니요.”
범이 선우가 ‘아니요.’ 하는 대답을 과장되게 따라 했다. 그렇게까지 싸가지 없게 하진 않았는데, 선우는 조금 억울해서 안 그래도 부은 볼을 좀 더 부풀렸다. 이미 부어 있어 티는 안 나겠지 싶었다.
벨트까지 다 채운 범이 제 프리컴으로 축축한 선우의 볼을 엄지로 살살 쓸었다. 선우를 바라보는 눈빛이 초여름 아침 햇살처럼 따듯했다.
“배가 아직 안 나왔으니까 영역 표시를 좀 해 놓든가 해야지. 씨발, 뭔 놈의 애 엄마한테 별 좆만 한 것들이 들러붙어.”
무슨 소리인가 잠시 생각하던 선우가 어제 공원에서 제게 번호를 물었던 사람을 떠올렸다. 그냥 변태여서 묻히고 싶은 거면서 핑계도 좋다.
“이따 뭐 먹을래?”
“떡볶이요.”
어젯밤 범이 결정을 유예해 주어 선우는 잠이 들기 전까지 열심히 생각하고 잤다. 덕분에 범이 묻자마자 바로 답할 수 있었다. 떡볶이와 족발, 두 개를 생각하고 잤는데 입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떡볶이를 먼저 내뱉었다. 오리가 조종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가 방앗간에서 갓 뽑아 온 가래떡으로 만들어 준 떡볶이가 떠올랐다. 침이 꿀꺽 넘어갔다.
“그건 간식이잖아.”
범의 말에 선우가 피식 웃었다. 엄마나 할머니도 밥 대신 떡볶이를 먹겠다고 하면 꼭 저 소리를 했다. 그리웠다. 그리워서 부러 입꼬리를 더 올려 보았다. 아침부터 울적하고 싶지 않아 환히 웃었다.
“야, 너 일단 지금은 웃지 말아 봐. 바지 터져.”
“네.”
“그래서, 진짜 저녁으로 떡볶이 먹을 거야?”
“네.”
근데 설마 진짜 떡볶이만 사 주진 않겠지? 순대랑 튀김도 사 주겠지? 선우는 조금 없어 보이는 걱정을 했다. 아주머니께 밥을 조금만 더 달라 그러면 진짜 조금만 더 주어서 발발한 불안이었다.
제 돈을 주고라도 사 먹으면 좋겠는데 범과 함께 식당에 가서 ‘제가 살 테니 시킬게요.’ 이러기는 좀 그랬다. 선우는 잠시 파견된 직원 같은 존재이고, 사회생활은 눈치가 생명이었다. 다른 것도 사 주겠단 확답을 받을까 하다 떡볶이만 사 주더라도 그게 어디냐 하며 단념했다.
“다른 걸로 마음 바뀌면 전화해.”
잠시 범의 말을 곱씹던 선우가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마음이 바뀌어도 된다 했다. 단번에 옳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간밤에 미리 생각까지 해 둔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네 아빠 조금 감동이다. 은근 직원 복지가 좋네.’
선우가 오리에게 말을 건네자 범이 ‘외롭다, 외로워.’ 했다. 제가 흘끗 배를 본다는 사실을 모르는 선우는 그저 그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범이 선우의 볼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있어, 돈 벌어 올게.”
“네. 다녀오세요.”
선우의 인사에 범은 ‘오냐, 착하다.’ 하며 떠났다.
선우의 시선이 책상에 걸렸다. 책상 위에는 언제 두었는지 삼백만 원이 올려져 있었다. 아마 어제 자위를 하고 입술을 맞춘 값인 것 같았다. 공짜 좋아한다고 욕했던 게 미안할 만큼 값을 후하게 쳐주었다.
선우는 범이 떠난 방문을 멍하니 바라보며 감사합니다, 했다. 떠나고 없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니 조금 쓸쓸했다.
***
범이 출근을 하면 선우는 먹고 자는 게 일이었다. 아침 먹고 조금 지나니 또 점심을 먹었다.
선우는 의아한 점심상을 받았다. 밥은 조금인데 돼지불고기와 쌈채소는 밥에 비해 많이 주셨다. 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고 그냥 주는 대로 먹었다. 간이 삼삼해서 짜지 않았다.
“오늘도 저녁 식사 사장님하고 한다면서요? 준비 안 해도 될까요?”
“네, 안 하셔도 될 거 같아요.”
“그래요. 잘 다녀와요.”
선우는 기분 좋게 네, 하고 답했다.
***
그 대답이 무색하게 범은 해가 지도록 올 줄을 몰랐다. 여름이라 해가 길었는데도 그 해가 다 지고 깜깜한 밤이 올 때까지 범은 오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선우가 저녁을 먹으러 나가든 말든 무조건 근무 시간을 채워 집에 붙어 있어야 했다. 그러니 선우가 방 안에 틀어박혀 저녁도 못 먹고 내내 대기 중인 걸 알 수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봐도 올 생각이 없는 범에 아주머니는 선우의 방으로 두어 번 찾아가 진짜 저녁을 안 차려도 되겠냐 물었다.
선우는 배가 고팠지만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퇴근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선우의 의사를 묻고 집을 떠났다.
선우는 아주머니께 조심히 가시라는 인사를 드리며 생각했다. 혹시 점심때 범과 저녁을 먹을 거란 이야기를 하며 저도 모르게 너무 설레는 표정을 지은 건 아닌가, 무슨 퇴짜 맞은 애 같았을까? 난 떡볶이에 설렌 건데. 이미 떠난 아주머니에게 속으로 변명했다.
범은 분명 어제처럼 도착하기 30분 전에 전화를 준다 했다. 선우는 아무 전화도 받지 못했지만 이미 준비를 마친 뒤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안 오면 그냥 옷을 갈아입자, 혼자라도 내려가서 아무거나 있는 걸 주워 먹자, 과일은 범이 절 사 준 거니 꺼내 먹어도 될 거다. 그렇게 조금씩 계속 기다렸다. 조금에 조금이 붙어 기나긴 시간이 되었다.
어느덧 밤 열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선우는 범이 아무 말도 없이 저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오히려 속이 편안해졌다. 앞으로 그가 드문드문 잘해 주는 일이 있어도 그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설렐 일은 없을 거였다. 자꾸만 범에게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어 안 그래도 미쳤나 싶었는데 이젠 범이 먹고 싶다는 걸 사 주고, 예쁜 공원에 데리고 가 주어도 ‘감사합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거였다.
잘됐다. 제발 오지 마라.
선우는 끝까지 옷을 갈아입지 않고 제발 오지 마라, 하며 기다렸다. 끝까지 기다렸다 까여 봐야 아주 정신을 단단히 차릴 것이다.
미친 사람처럼 혼자 히죽 웃었다. 오리야, 오늘 떡볶이는 못 주려나 보다, 하면서.
선우는 딱 열두 시까지만 기다리기로 했다. 벽에 걸린 시계만 멍하니 보고 있는데 핸드폰 진동이 울리기에 냉큼 핸드폰을 들었다. 찰나에 혹시나 범일까 생각한 자신이 조금 초라하게 느껴졌다. 전화를 건 사람은 할머니였다. 주무실 시간인데 전화가 오니 편찮으신 걸까 하고 깜짝 놀라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 왜? 어디 아파?”
[어유, 귀청 떨어지겠다. 아프긴 어디가 아파. 낮에도 멀쩡히 통화해 놓구.]
“뭐야, 깜짝 놀랐잖아. 그럼 왜 안 주무셔? 혼자 있어서 무서워?”
[참나, 이 나이면 이제 죽는 것도 안 무서운데 뭐가 무서워.]
할머니가 헛웃음 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우는 ‘난 할머니 죽는 거 무서운데.’ 하며 구시렁거렸다.
할머니는 원래 주무시던 시간에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어 깼다고 했다. 꿈에서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을 했다는데, 할머니 연세에 너무 다이내믹한 꿈을 꾼 게 웃겨 선우가 실없이 웃었다.
할머니는 태몽인 것 같다고 말해 주려 전화한 건데 선우는 추호도 생각지 못하고 ‘할머니, 로또 사 봐.’ 했다.
할머니는 답답해하며 너희 좋은 소식 있는 거 아니니? 하고 물었다. 선우는 그제서야 아, 했다. 어차피 한 달에 한 번씩 할머니 댁에 내려가게 되면 나중에 배가 부른 모습도 볼 테니 말은 해야 했다. 선우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런가? 확인해 봐야 하나? 했다. 점점 연기가 늘었다.
[확인해 봐. 밤늦게 자는데 깨운 거 아니지?]
“응. 아직 안 자.”
[신랑은?]
“오늘 늦네. 바쁜가 봐.”
[늦어도 기다려 줘. 우리 손주 사위 돈 버느라 수고하는데.]
“언제부터 우리야? 이젠 나보다 더 좋아하는 거 같어.”
[내 새끼 호강 시켜 주는데 좋지 그럼.]
“그래도 내가 더 좋지?”
[그걸 말이라고. 근데 모르지, 증손주 생기면 바뀔 수도 있고.]
할머니 농담에 선우가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할머니는 얼굴도 보지 못할 증손주였다. 그래서 주제를 전환해 버렸다. 증손주 이야기보다 훨 영양가 없는 수다를 떨다가 통화를 끊었다. 11시 45분이었다.
그래도 할머니 덕분에 기다림의 시간이 많이 줄었다. 이제 자정까지는 15분이 남았다. 날짜가 바뀌면 오늘 저녁을 먹자는 약속은 물거품이 되는 거다.
‘내 존재가 하찮아서 괜히 너까지 굶는구나, 미안.’
선우는 오리에게 사과하며 카운트다운 하듯 1분씩 세어 갔다. 46분, 47분, 48분, 49분, 50분. 그때 열두 시를 딱 십 분 남겨 두고 계단을 부술 것 같은 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쿵. 쿵.
계단이 꽤나 긴데 도대체 한 번에 몇 계단씩 오른 건지 발소리는 금세 끊겼다. 그 뒤로 들린 건 노크 소리였다. 노크도 급했는지 문을 부술 듯이 했다. 급한 와중에도 노크는 해 주는 매너 있는 남자는, 범이 틀림없었다.
선우의 심장이 범의 노크 소리와 함께 쿵쿵 울렸다. 선우가 헐레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범의 등장에 마음이 복잡했는데 빨리 열지 않으면 정말 문이 부서질 것 같아 몸이 먼저 반응했다.
문 앞엔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범이 서 있었다. 범이 내뱉은 첫마디는 놀랍게도 ‘미안.’이었다. 선우는 그 한 마디에 눈물이 날 것 같아 차라리 웃었다. 입꼬리를 올리고 ‘괜찮아요.’ 했다. 범이 사과를 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의 기습 공격에 허무하게도 사르르 마음이 풀렸다.
범은 출근 때 입었던 정장이 아닌 편한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손에는 검정색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는데 선우는 떡볶이임을 직감하고 침을 삼켰다. 저녁을 굶어 배가 고프다 못해 아플 지경이었다. 범이 얼른 내려가자기에 옷만 편히 갈아입고 금방 따라가겠다 했다. 아직도 외출복 차림이었다.
“안 갈아입어도 돼. 먹고 나갈 거야. 드라이브 가자.”
약속도 지켜 주고 드라이브까지 데려가 주면 안 될 것 같은데, 선우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오리에게만 슬쩍 제 속마음을 고백했다.
‘너네 아빠 조금 멋있다.’
범이 선우의 손을 꼭 잡고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갈 땐 차분히 한 계단씩이었다.
그가 식탁 위에 검정색 비닐봉지를 올려놓을 때, 선우는 그제야 범의 팔목과 손에 남은 핏자국을 보았다. 빨간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다 남은 자국은 아닐 터였다.
선우가 재빨리 눈을 굴려 범의 몸을 살폈다. 범에게서 난 피는 아닌 것 같았다. 범이 아까부터 제 향기를 진하게 풀어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가만 맡아 보니 옅게 피 냄새도 나는 것 같았다. 피 냄새를 느끼자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다.
범은 선우에게 먹고 있으라 전하고 샤워를 하러 갔다. 저는 안 먹을 거라 하기에 선우는 범이 씻는 동안 먼저 젓가락을 들었다. 범이 먹든 안 먹든 올 때까지 기다릴까 했지만 그런 간지러운 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피 냄새에 메스꺼운 속을 떡볶이로 눌렀다. 튀김과 순대도 있었다. 선우는 진심으로 신이 나 광대를 볼록 올렸다. 너무 배고팠던 탓에 저도 모르게 젓가락을 급하게 놀렸다.
“천천히 먹어. 안 뺏어 먹을게.”
언제 다 씻었는지 범은 피비린내 같은 건 생각도 안 날 만큼 상쾌한 향기를 뿜으며 다가왔다. 팬티 한 장 덜렁 걸치고 나왔다. 양 볼이 터지게 우물우물 먹고 있는 선우를 보며 푸스스 웃었다.
범이 천천히 먹으라 하니 선우가 네, 하고 답했다. 매일 하는 소리가 ‘네.’이지만 싱글벙글한 ‘네.’를 들을 기회는 흔치 않았다.
범이 ‘예쁘다.’ 했다. 신이 나서 ‘네.’ 해 줄 땐 언제고, 선우는 예쁘다는 소리엔 그러든가 말든가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다. 지겹게 들어서 감동이 없는가 했다. 그래도 뭐, 반응이 있건 없건 예쁜 걸 예쁘다 하지 뭐라 하겠는가.
범은 선우의 옆자리를 꿰차고 앉아 선우의 머리를 쓸어 올려 주었다. 그러다 한 번씩 입가에 묻은 떡볶이 양념을 엄지로 닦아 선우의 입 안으로 다시 수납해 주었다.
튀김을 먹은 선우의 입술이 기름으로 번들번들했다. 범은 선우의 입술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천천히 먹으라고 했는데 사실 따로 하고 싶은 게 많아 빨리 먹었으면 했다. 그래도 독촉하진 않았다.
“많이 기다렸어?”
“네. 근데 괜찮아요.”
“괜찮으면 이거 해 주고 마저 먹으면 안 되냐?”
범이 제 입술을 쭉 내밀었다. 선우는 여전히 터질 것 같은 볼따구니를 하고 키스요? 뽀뽀요? 했다. 그러자 범에게서 호탕한 웃음이 터졌다.
“씨발, 이것 봐라? 귀여운 데 재주 있네?”
범은 혼자 발을 쿵쿵 구르며 끙끙 앓았다. 선우의 얼굴에 ‘왜 저래.’ 하는 의문과 약간의 한심함이 떠올랐다.
“식사 중이신데 오래 방해할 수야 있나. 뽀뽀 정도만 해 봐, 일단.”
범은 선우가 저를 한심하게 보아도 썩 상관치 않는 것 같았다. 선우는 입 안에 있던 음식을 씹어 넘기고 범의 입술에 쪽, 뽀뽀를 해 주었다. 선우가 얼굴을 물리기 전에 범이 선우의 양 뺨을 붙들고 다시 쪽, 뽀뽀를 돌려주었다.
선우는 괜히 멋쩍어서 머리를 긁적였다. 말도 안 되게 부끄럽고 그런 건 아니겠지, 생각하며 다시 떡볶이를 집어 먹었다.
범은 잘 먹는 선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갑자기 또 미안, 했다. 선우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범이 미안하다고 하면 이상하게 목이 조금 메는 것 같았다.
범은 손수 물도 한 잔 떠 왔다. 목 막힌다고. 그 물컵을 받아 든 선우의 눈빛은 ‘감사합니다.’보다는 ‘왜 이러세요?’에 가까웠다.
“근데 너, 나도 연락 못 했지만 너는 왜 전화 한 번을 안 하냐? 어? 애 아빠가 집에 안 와 가면 전화를 해 가지고 빨랑 안 기어 들어오냐 말을 해야지.”
“어차피 전화 못 하실 상황이었으면 받지도 못하지 않았을까요?”
“와, 그렇다고 안 하냐? 차다, 차. 아니 안 받아도 말이야, 마음이 다르지 마음이. 어? 부재중 통화가 남아 있는 걸 보는 마음이 다를 거 아니야. 너는 애가 감수성이 왜 그 모양이냐?”
선우는 진심으로 기가 차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가 누구에게 감수성을 논하는지 모르겠다. 근데 너무 어이가 없으니 웃음이 나왔다. 헛웃음. 피식 웃고 그냥 ‘네, 죄송합니다.’ 했다.
“오냐, 앞으론 전화해라.”
선우는 ‘너나 해라.’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어 입술을 살짝 삐죽이고 ‘네.’ 했다. 그러다 냉큼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바꿔 끼웠다.
“그런 반항심 어린 표정 짓지 마라. 꼴린다. 해도 될 때, 그때 지어.”
“네.”
“그래, 착하고 예쁘다.”
범은 칭찬을 두 가지나 했지만 씹혔다. 선우는 칭찬만 날름 받고 관심은 떡볶이에만 주었다.
하지만 저번부터 자꾸, 오늘도 역시나, 예뻐서 봐줬다.
***
속옷 바람인 범이 옷을 챙겨 입을 동안 선우는 양치를 했다. 드라이브라는 단어를 생각만 해도 마음이 두둥실 떠올랐다.
범은 편안한 트레이닝복 바지에 별 무늬가 없는 남색 반팔티를 입었다. 안 그래도 커다란 몸이 더 커 보이게 하는 넉넉한 핏이었다. 정장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선우는 범이 저 차림 그대로 목에 흰 수건을 두르고 밭일을 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모습이 상상되었다. 제 취향은 농부인지 섹시했다.
“어? 씨발, 그 눈빛 뭐야? 딱 따먹고 싶다는 눈빛인데? 네가 그래도 밥 사 먹이는 정성은 알아보는구나. 존나 보람 있네.”
“네? 아, 아닌데요…….”
“그건 일단 타고 다시 생각해 보자.”
범이 조수석의 문을 열어 주었다. 선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차에 올랐다. 수하가 운전해 주는 차가 아닌 범이 직접 모는 차의 옆자리에 앉으니 정말 데이트 같았다. 물론 아니라는 건 안다. 그냥 그렇다는 거지.
슬쩍 옆을 보니 범은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를 시원하게 올리고 있었다. 선우도 따라 웃었다.
범이 선우의 손을 끌어다 제 앞섶에 올렸다. 그러곤 당당하게 ‘만져 줘.’ 했다.
한 명은 핸들을 잡고 한 명은 그걸 잡았다.
내린 창문 사이로 선선한 밤바람이 불어와 둘의 머리칼을 날렸다.
쌩쌩 달리는 차를 타고 선우는 바깥세상을 구경했다. 평생 살아야 한다면 한적한 시골 동네가 더 좋지만 밤늦게까지 반짝반짝 빛나는 서울의 야경도 예쁘긴 참 예뻤다.
여전히 한쪽 손은 범의 앞섶을 주물주물 만지고 있었다. 혹시 사고라도 날까 봐 제대로는 안 만지고 바지 위로 살살만 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착실히 왔다.
범의 앞섶은 보는 선우가 다 민망할 만큼 높이 솟아올랐다. 하필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어 더 그랬다.
정작 당사자는 민망하지 않은 듯했다. 범은 태연하게 운전을 하다 중간중간 낮은 신음을 뱉었고 신호가 걸릴 때마다 옆 좌석의 선우를 끈적이게 바라보았다. 아쉽게도 선우는 차창 밖을 보느라 한 번을 같이 바라봐 주지 않았다. 세 번까진 그냥 넘겼는데 네 번째 신호엔 관심을 갈구했다.
“이선우.”
선우가 시선을 돌려 범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범은 씩 웃으며 입술을 내밀었다. 선우는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 입술을 바라보다 대충 쪽, 뽀뽀해 주었다.
“떡볶이 약발이 얼마 안 가네. 성의가 없어, 성의가.”
“키스해요?”
“아니. 뽀뽀를 좀 진정성 있게 해 봐.”
“초록 불 바뀌었는데요?”
범이 쩝, 입맛을 다시고 다시 앞을 보았다.
한창 달리는 중이었다. 둘의 차 옆으로 스포츠카 한 대가 말도 안 되게 큰 굉음을 내며 지나쳐 갔다. 붕붕거리는 배기음으로 남의 고막을 때리더니 쌩하고 사라졌다.
선우는 깜짝 놀라 배를 감싸 쥐었다. 위협적인 민폐 허세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범은 차가 지나간 쪽을 노려보며 험한 욕을 뱉었다. 자동차로 비행기 소리를 내려는 것들은 대가리를 열어서 좌뇌와 우뇌를 바꿔 줘야 한다고. 입에서 튀어나오는 소리는 퍽 과격했는데 선우의 배를 쓸어 주는 손길은 부드러웠다.
선우는 범의 상욕을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저도 욕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대신 해 주니 속이 다 시원했다.
“근데, 둘 중에 누가 쫀 거냐?”
범이 장난스레 물었다.
선우는 오리보다 제가 훨씬 어른이니 오리겠죠, 했다. 그러자 범이 선우의 배를 쓰다듬던 손을 올려 가슴팍에 대 보았다. 선우의 심장은 여전히 벌렁벌렁 뛰고 있었다.
범은 피식 웃더니 놀란 심장을 달래듯 토닥토닥 두드렸다.
“말 못 한다고 뒤집어씌우네.”
선우가 뒷목을 긁적였다. 심장께에 있던 범의 손이 다시 오리가 들어 있는 배로 내려왔다. 가만히 있어도 간질간질했던 아랫배를 살살 만져 주기까지 하니 간지러움을 넘어 징징 진동이 울렸다. 이러다 혹시 서는 거 아닌가 하여 선우는 그만 범을 만류했다.
“이제 괜찮아요.”
“그럼 다시 자지 만져 줘.”
참, 요구 한번 노골적이고 당당했다. 선우가 픽 하고 웃었다.
앞을 보던 범은 선우의 웃음소리만 듣고도 예쁘다 했다. 선우는 예쁘다는 소리가 헤픈 사람이려니, 생각했다.
선우가 다시 주물주물 범의 앞섶을 만지기 시작했다. 얼굴은 제 손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듯 순진하기만 했다. 마치 외계인이 침공해 세운 것 같은 모양의 엄청난 고층 건물이 보였다. 선우는 우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고는 슬쩍 범의 눈치를 보았다. 촌놈인 거 너무 티 났나? 하고.
범은 다행히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운전하는 범에게 눈길을 줄 새가 없어 이제야 보았다. 한 팔만 핸들에 올리고 능숙하게 운전하는 모습이 어른스러웠다. 그에게선 여유가 흘렀다. 선우가 어린 날 꿈꾸던 제 모습이었다.
시골살이는 차가 없으면 여러모로 불편하기 때문에 선우는 어릴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면허부터 따고 싶었다. 어쩌다 보니 5년이나 미뤄졌지만 범을 보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아기를 낳고 몸이 조금 회복되면 꼭 면허를 따겠노라고. 그만큼 범의 모습이 멋있었다.
선우가 넋을 놓고 범이 운전하는 모습을 구경하던 중에 마침 신호에 걸려 범도 선우를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잘 걸렸다 하는 듯한 맹수의 눈빛에 당황한 선우는 그 눈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범이 선우 쪽으로 최대한 몸을 붙이고 혀를 내밀었다. 이에 선우도 최대한 다가가 범의 혀를 쫍쫍 빨았다. 제 손으로 주물주물 만지고 있는 범의 아래가 터질 듯 딱딱해졌다.
다시 신호가 바뀌었다. 그만 떨어지려던 선우의 뒤통수를 고정한 범이 선우의 목덜미를 크게 한 번 핥아 올렸다. 살짝 소름이 돋았지만 싫지 않은 느낌이었다.
범은 ‘씨발, 살 빨고 싶다.’라고 읊조리며 다시 앞을 보았다. 방금 빨아 놓고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런 속마음은 좀 속으로만 생각하시지, 하면서도 선우는 범이 사는 방식이 부러웠다. 저는 할 말도 못 하고 사는데 범은 못할 말도 하고 살았다.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한 차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한적하고 후미진 곳이었다. 설마 날 묻으러 온 건가 했는데 선우의 눈앞엔 넘실넘실 흐르는 한강이 펼쳐져 있었다. 까만데 반짝였다. 달리면서 지나친 풍경들도 꽤나 예뻤는데 이게 정말 제대로 된 야경이구나 싶었다.
탁, 하고 안전벨트가 풀렸다. 여전히 차 안에 앉아 있지만 몸이 해방되는 기분이 퍽 좋았다.
“여기가 카섹스 명소야.”
범이 와장창 분위기 깨는 소리를 했지만 선우는 여전히 감탄하기 바빴다. 작게 ‘진짜 예쁘다.’ 했다.
범은 선우에게 내려서 마음껏 보라고 했다. 기껏 콧바람을 쐬러 나와 차 안에만 있긴 그러니 말이다. 선우는 조금 들뜬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하고 차에서 내렸다. 범도 따라 내리며 ‘오냐, 놀아라.’ 했다.
선우는 자연에 풀어 주면 그야말로 유유자적이었다. 풀 냄새, 물 냄새를 맡으며 강바람을 만끽했다. 솔직히 눈앞에 펼쳐진 한강 뷰가 끝내줄 뿐 위치는 귀신 아니면 연쇄 살인마를 맞닥뜨릴 것 같은 스산한 곳이었다. 선우는 무섭지도 않은지 혼자 꽤나 멀리까지 산책을 했다. 범은 보닛 앞에 서서 그런 선우를 지켜봐 주었다.
범은 카섹스를 위해 지난 연인들을 데리고 이곳에 몇 번 온 적이 있었다. 휘-잉 하고 부는 바람 소리가 여실히 들리는 깜깜한 수풀 한가운데에 차를 세우고 옷을 홀딱 벗겨 놓으면 다들 무서워했다. 아무리 차 안에 있어도 무섭다며 범에게 더 꽉 안겨 들었다. 그러면 범은 저기 돌부리 있는 데까지 혼자 갔다 오라는 질 나쁜 장난을 쳤다. 반응은 다들 같았다. 울면서 가기 싫다고 매달려 왔다. 매달리면 더 세게, 더 신나게 따먹었다.
‘씨발, 그 맛에 오는 건데 텄다.’
선우는 범이 다 걱정될 정도로 저 혼자 멀리도 갔다. 그야말로 자연인이었다. 하지만 멀리 보이는 선우의 얼굴에 해사한 미소가 걸려 있어 범은 선우를 말리지 못했다. 그냥 기분 좋으라고 두었다. 조금 더 멀어지면 불러야지, 하며 시선을 선우에게서 떼지 않았다.
다행히 선우는 범이 제 자유를 저지하기 전에 알아서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다. 덕분에 범은 선우가 놀고 싶은 만큼 놀도록 기다려 준 좋은 사람이 되었다.
“다 놀았어?”
“네.”
“넌 무슨 애가 겁도 없냐?”
“남자가 뭐가 무서워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선우의 발언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잠시 아무 말도 못 하던 범이 이내 큰 웃음을 터뜨렸다. 남자라는 게 틀린 말은 아닌데 저런 소릴 하는 오메가는 처음 보았다. 특히나 우성 오메가는 남자든 여자든 줄줄 흐르는 색기에 바라만 보아도 묘하고 야릇했다. 사나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범은 한참을 웃다 선우의 팔목을 끌어 뒷좌석에 태웠다. 이어 자신도 뒷좌석에 오르고 앞좌석 시트를 최대한 앞으로 당겨 공간을 넓혔다. 범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제 바지와 속옷을 내렸다.
“사나이답게 세게 한번 빨아 봐.”
“네.”
“어, 잠깐. 이번엔 뭐?”
“네?”
“백에 뭐 해 주냐고.”
“어…… 여기 한 번 더 오고 싶어요.”
“그래. 내일 또 와, 그럼.”
“아! 다다음 주 이후로요.”
“왜?”
“그냥요.”
선우는 옥살이 중 주어지는 꿈같은 자유 시간을 한 번에 다 사용해 버리지 않고 잘 분배하고픈 마음이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할머니 댁에 다녀온 후에 드라이브 찬스를 사용하고 싶었다. 할머니 댁에 다녀오면 심적인 후유증이 클 게 뻔해 나름 머리를 굴린 것이다. 범에게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았지만 범은 그냥 알겠다고 해 주었다. 고마웠다.
고마워서 정말 열심히 빨았다.
턱이 아리고 마찰력에 입술이 데인 것처럼 뜨거워져도 개의치 않았다. 선우는 빠르고 강하게 고갯짓을 해 가며 범에게 황홀한 펠라를 선사했다. 감춘 치아가 그의 성기를 긁지 않는 대신 제 입술 안쪽을 찍어 아팠지만 티 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너무 필사적인 제 모습이 혐오스러웠다. 울컥 목이 메었다.
선우는 범에게 고마워서, 뭐라도 해 주고 싶어서, 처절하리만큼 열심히 빠는 자신이 절망적이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 주제가 딱 이거지 뭐, 근데 왜 슬픈지 모르겠다.
이거라도 잘 빨아서 잘 보이고 싶었던 걸까. 창부가 창부의 방법으로 잘 보이는 게 당연한 건데 그 상대가 범이어서 조금 그랬다. 어떻게 조금 그런 건지 제 감정의 정확한 실체는 영영 외면하고 싶었다. 분명한 건, 이제 저는 범을 단순히 손님으로 보지 못한다는 거였다.
잠시 주춤한 선우는 바로 정신을 차려 다시 열심히 범의 성기를 입에 담았다. 눈에서는 이미 조절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하던 걸 멈추면 범이 제가 우는 걸 알아차릴 터였다. 선우는 고개를 더 깊숙이 박고 아무 일 없었단 듯 빨았다.
자동차 천장을 향해 고개를 젖히고 더운 숨을 뱉던 범이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딘가 이상했다. 선우에게 처음 펠라를 받았을 땐, 제 값을 해내기 위한 성의 있는 서비스 같은 느낌이었는데 오늘 선우는 그 이상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애 같았다.
왠지 모르게 결연하기까지 한 표정으로 아주 환장하게 빨아 주었다. 그런데 그런 선우가 소리 없이 질질 짜고 있었다. 그럼에도 애처로울 정도로 열심히 했다.
우는 선우를 발견한 범이 제 것을 물고 있는 선우의 머리를 황급히 빼내었다. 마음이 급해 그만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겨 버렸다. 당겼던 부분을 손으로 비벼 주며 호호 바람을 불었다.
선우는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묻지도 않았는데 변명을 했다.
“목이, 찔려서, 그냥, 나온 거예요.”
우느라 목소리가 뭉개져 천천히 하나하나 말했다.
“그래. 사나이가 슬퍼서 울진 않았겠지.”
범이 호들갑스럽지 않게 대꾸했다. 선우의 양 뺨을 잡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범은 뚝뚝 흐르고 있는 선우의 눈물을 꼼꼼히 핥기 시작했다. 호랑이에게 그루밍을 받는 느낌이었다. 중간중간 ‘짜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우는 결국 픽 하고 웃었다.
“간지러워요.”
“간지러우면 뚝 하든지.”
핥아도, 핥아도 흐르는 걸 범은 계속 핥아 주었다. 그만 간지러우려면 정말 뚝 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말리기를 체념하고 얌전히 범의 그루밍을 받았다. 머지않아 흐르고 싶은 만큼 흐른 눈물이 자연스레 멈추었다.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자 범이 선우의 양쪽 눈두덩에 촉촉 입을 맞췄다. 선우는 심장이 간지러워 가슴께를 벅벅 긁었다.
눈물이 멈추니 민망함이 찾아왔다. 선우는 어색한 분위기에 어찌 할 바를 모르겠어 옆에 앉은 범의 눈치를 보았다. 범은 아무 말 없이 선우의 손을 잡고 손등에 입 맞추고 있었다.
‘아, 간지러워.’
차라리 빨다 만 범의 아래를 마저 빨기로 했다. 시선을 내렸다.
범은 여전히 제 아래를 내놓고 허벅지를 쩍 벌린 자세로 위풍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그게 뭐라고 웃겨 선우는 입술을 씰룩거리다 바보같이 실실 웃었다.
선우가 웃으니 선우를 달래느라 살짝 힘이 풀렸던 범의 성기가 꿈틀하며 좀 더 부풀었다. 그걸 보던 선우는 갑자기 호랑이가 더 큰가, 말이 더 큰가 따위가 궁금했다. 말이 더 크니 말 거시기가 더 유명한 거겠지? 혼자 엉뚱한 상상을 하다 푸하하 큰 웃음을 터뜨렸다.
범이 황당한 표정으로 코웃음을 치며 진짜 또라이냐? 했다.
울다가 웃다가 하는 게 충분히 미친놈 같을 만하기 때문에 선우는 딱히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생각하게 두고 마저 웃었다. 웃음도 나오는 만큼 막 웃었다. 울고 싶은 만큼 울고, 웃고 싶은 만큼 웃으니 속이 시원했다.
“왜 웃는지 말은 해 주고 웃어. 같이 웃게.”
선우는 그냥요, 하고 말해 주지 않았다. 범은 아무튼 비밀이 존나게 많다며 투덜댔지만 그럼에도 웃으니 예쁘다 했다. 아무리 처웃어도 때리지 않았다. 제 성기를 바라보며 이렇게까지 웃어 대면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범은 그렇게 좋으면 마음껏 보라고 했다. 더 내밀어 주었다. 선우의 상상을 뛰어넘는 변태였다.
다 웃은 선우가 범의 볼에 쪽, 뽀뽀해 주었다. 그러고선 범이 빤히 쳐다보자 딴청을 피웠다.
범이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뽀뽀 한 번이 주는 쾌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제 맘대로 하게 해 주니 자진해서 애교도 부려 주시고, 영광이었다.
“씨발, 예뻐 죽겠네.”
선우는 범의 낯간지러운 소리가 멋쩍어 머리를 긁적였다. 뭐라 할 말이 없어 괜히 큼큼 목을 가다듬고 다시 무뚝뚝하게 ‘마저 빨까요?’ 했다. 울어서 코맹맹이 소리가 났는데 범은 그런 선우의 코를 꼬집으며 빨다가 질질 짜 놓고 뭘 빠냐 했다.
“됐고, 바지 벗어.”
벗으라 그래 놓고 거의 범이 벗기다시피 했다. 범의 급한 손길이 선우의 아랫배에 진동을 만들었다. 범은 선우가 신고 있던 신발까지 툭툭 벗겨 주고 바지와 속옷을 완전히 벗겨 발에서 빼내었다. 바닥에 걸리적거리는 둘의 옷가지들은 앞좌석으로 대충 던져졌다.
범이 뒷좌석의 가운데로 엉덩이를 옮겨 앉고 선우를 제 앞에 서게 했다.
선우는 차 천장에 맞춰 어정쩡하게 상체를 구부렸다. 고개를 앞좌석 사이의 빈 공간으로 빼고, 양 앞좌석을 한쪽씩 잡아 지탱했다. 이로써 범의 눈앞에 탐스런 엉덩이가 내밀어졌다.
“고개 떨구지 말고 앞에 봐.”
선우가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예쁜 야경이 변하지도 않고 여전히 반짝였다. 선우는 제가 지금 어떤 자세로 있는지도 잊고 작게 감탄했다. 울적했던 마음이 사르르 풀렸다. 그 순간, 범이 양손으로 선우의 볼기를 벌려 얼굴을 묻었다. 크게 핥아 올렸다.
허윽……! 범은 혀도 힘이 좋은 듯했다. 혀 놀림 한 번에도 강한 자극이 왔다. 선우의 입에선 미처 조절하지 못한 날것 그대로의 신음이 터졌다. 빠는 거나 익숙하지 빨리는 건 익숙지 않았다.
“사, 사장님, 더러운데…….”
“앞에 봐.”
범은 구멍 전체를 크게 핥다가 주름 하나하나를 다시 그려 주려는 것처럼 잘게 할짝였다. 이내 아예 입술을 박고 쪽쪽 빨았다. 선우는 눈앞에 흐르는 강물을 보며 황홀한 애무를 받았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흑! 윽! 정제되지 않은 신음을 마음대로 뱉고 저도 모르게 ‘좋아.’ 하는 소리를 흘리며 앓았다.
범이 얼굴을 박은 채로 레몬 맛이 나는 것도 같다며 헛소리를 했다. 바람 빠진 웃음이 샜다. 너무 빨려 대서 진이 다 빠졌다. 빠느라 진이 빠지는 게 보통이었는데 빨리다가 진이 빠진 건 또 처음이었다.
“하아……. 힘들어요…….”
“뒤돌아봐.”
선우가 구부정한 자세로 낑낑거리며 뒤를 돌았다. 양 앞좌석에 팔꿈치를 걸치고 섰다. 이번엔 범에게 성기를 내민 꼴이 되었다. 선우가 말릴 새도 없이 범은 대번에 얼굴을 묻고 선우의 성기를 빨았다.
어윽! 억! 억! 조금 더 큰 신음을 내질렀다. 좋다는 소리도 더 크게 질렀다. 좋아……! 좋아! 성적인 행위가 이렇게 짜릿하고 즐거운 일이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결국 선우는 뽑힐 듯 빨아 주는 범에 마구 소리를 지르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정했다. 범은 선우의 정액을 꿀떡 삼키고 레몬 맛이라며 또 헛소리를 했다. 설령 페로몬이 나오고 있다 해도 그게 레몬 맛일 리는 없는데, 더럽고 역할까 봐 걱정하는 제 마음을 알아서일까? 범은 맛있다며 이제 나올 것도 없는 성기를 끝까지 쪽쪽 빨아 주었다.
범은 선우를 휙 잡아당겨 제 위로 무너지게 했다. 사정의 여운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선우를 꽉 안아 주었다.
선우도 범의 목 뒤로 제 팔을 둘러 범을 마주 안았다. 열에 달뜬 얼굴로 희미한 미소를 띠고 범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둘은 동시에 달려들어 입술을 붙였다. 누가 누가 입을 더 크게 벌리나 겨루듯 서로를 잡아먹으려 했다. 네가 빠네, 내가 빠네 혀로 투닥투닥 싸웠다. 그러다 화합의 장이라도 열린 것처럼 엉겨 붙어 혀를 섞었다.
선우가 한 손을 내려 프리컴을 축축이 흘리고 있는 범의 성기를 쥐었다. 범의 키스에 적극적으로 화답하며 밑은 손으로 흔들어 주었다. 범이 그르렁대는 소리를 냈다. 호랑이가 많이 꼴렸나 보았다.
잠시 입술을 뗀 범이 씨발씨발 거리며 입고 있던 제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군살 없이 쩍쩍 갈라져 있는 몸에 선우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범의 아래를 흔들던 손짓을 멈추고 범을 따라 제 상의도 벗어 버렸다. 그러곤 꼬물꼬물 좌석 밑으로 내려가 앉았다.
‘에라 모르겠다.’
선우가 눈앞에 놓인 범의 성기를 한입에 담아 게걸스럽게 혀를 굴렸다.
“선우야, 씨발, 선우야, 하 씨발……!”
범은 빨다 울던 애한테 다시 제 것을 빨게 할 수 없어 말리려 했지만 이는 도저히 말릴 수 없는 유혹이었다. 선우는 아까와는 또 다르게 빨았다. 씨익 웃으며 빠니 범은 그 얼굴에 홀리고 말았다. 범은 선우와 씨발을 번갈아 외치다 하지 말란 소리까진 하지 못했다.
“하……. 씨발, 이선우, 입으로 받지 마. 얼굴에 쌀 거야.”
범의 말이 또 너무 당당해서 선우가 피식 웃었다. 절정이 오기 전에 성기를 뱉어 낸 선우가 손으로 기둥을 빠르게 털어 주었다. 시선을 올려 범과 눈을 맞췄다.
머지않아 팟, 하고 범의 정액이 선우의 얼굴에 튀었다. 그 순간 선우도, 범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깜깜한 우주 한가운데 단둘이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
둘은 서로의 알몸을 끌어안고 차에서 잠이 들었다.
밤새 눈만 마주치면 빨아서 빼고, 흔들어서 뺐다. 범은 결코 작지 않은 체구의 선우를 품에 가뒀다. 그렇게 성인 남자 둘이 차 뒷좌석에 구겨져 잤다. 불편한 줄도 몰랐다.
한참 단잠을 자던 선우를 범이 흔들어 깨웠다. 직접 눈곱도 떼어 줬다.
“저것만 보고 다시 자.”
피곤해 죽겠는데 깨우니 선우가 끄응 하며 인상을 썼다. 사람이 졸리면 눈에 뵈는 게 없는 법인데 범이라고 보이겠나, 선우는 저를 깨우는 이가 누군 줄도 모르고 짜증을 냈다.
범이 품에 안은 선우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얼러 주었다. 선우가 결코 아이처럼 얼러 줄 만한 체격은 아닌데 범은 선우를 안고 몸통을 부둥부둥 흔들었다. 졸린데 치대니 솔직히 귀찮았다. 그냥 죽은 척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결국 범의 성화에 못 이겨 눈을 떴다.
눈앞에서 해가 뜨고 있었다.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고 있던 선우가 순간 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밤엔 불빛으로 보이던 건물들이 해가 뜸과 동시에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평화롭게 흐르는 강 너머, 도시가 점점 깨어나는 걸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팔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선우가 혼잣말로 ‘와, 예쁘다.’ 하고 감탄했다. 선우는 지난 이십 대의 절반 동안 성경험 외에 아무 경험이 없었다. 사소한 거라도 뭐 하나 해 본 게 없었다. 성경험마저 조금 그릇된 성경험이었다. 연애질이라도 열심히 해 쌓은 경험이었다면 사랑을 주고받는 법이나, 좋은 사람을 만나는 법에 대한 체득이라도 있었을 텐데 그마저도 아니었다.
그런 선우의 눈엔 웬만하면 다 예쁘고 신기했다. 범은 선우에게 그동안 해 보지 못했던 경험을 하나씩 채워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추억을 선물했다.
“넌 저 똥물이 예쁘냐?”
한창 감상에 젖어 있는 선우에게 범이 저런 소릴 했다. 솔직히 밝게 보니 똥물은 맞는데 그래도 그렇지, 영 분위기를 깨는 범에 선우가 몰래 입술을 삐죽였다. 이럴 거면 굳이 왜 깨웠나 몰랐다.
“네. 예뻐요.”
“거울을 봐, 네가 더 예뻐.”
아, 저따위 멘트에 웃어 주면 안 되는데. 선우는 근엄함을 유지하려 애써 보았지만 결국 입꼬리를 씰룩이다 픽 웃고 말았다.
범은 농담 아니니 웃지 말라 엄하게 굴더니 자기도 웃었다. 웃으며 입술을 내밀었다. 기계적으로 입을 맞추려던 선우는 잠시 멈칫했다. 우리 사이에 함께 아침을 맞고 가벼운 입맞춤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건 너무 과하게 낭만적인 거 아닌가 했다. 진짜 부부라도 되는 것 같고 간지러웠다.
선우가 안 하고 보고만 있자 범이 했다. 선우의 퉁퉁 부은 양 볼을 감싸고 입술에 쪽, 뽀뽀했다. 그 순간 선우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범을 좋아한다. 태연하고 심드렁한 표정을 걸었지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와, 존나 감동이다.”
“네? 뭐가요? 일출이요?”
일출의 감동으로 소름까지 돋은 선우에게 감동이라 할 만한 건 일출밖에 없어서, 범이 일출 따위에 감동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리 물었다.
“아니. 너 얼굴 빨개지는 거.”
망했다. 범은 선우의 수줍음을 알아차렸다. 선우는 속수무책으로 귀까지 빨개지는 기분이었다. 범이 첫날밤을 보내고 부끄러운 새색시 표정이라 놀렸다. 요즘 세상에 첫날밤이 진짜 첫날밤인 새색시가 어디 있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선우는 발그레한 볼을 매달고 정색했다.
“아닌데요.”
“오리야, 너네 엄마가 이렇게 새침하다.”
범이 고개를 쑥 내려 선우의 하얗고 판판한 아랫배에 쪽 뽀뽀했다. 이번엔 오리에게 해 주는 뽀뽀인데 주책맞게 선우의 아래가 움찔했다. 이런 건 좀 못 보고 넘어가 주었음 하는데 범은 씩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선우는 아침이라 선 거라고 변명을 하려다 말았다. 원래도 할머니에게 빼고는 미주알고주알 말을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그냥 체념했다. 놀리든 만지든 알아서 하시겠지.
범이 선우를 제 다리 사이에 가두어 앉히고 뒤에서 끌어안았다. 끈적한 범의 손길이 선우의 사타구니 사이로 들어왔다. 엄지로 음모가 나 있어야 하는 곳을 살살 쓸었다. 범은 있는 것 같지도 않은 얇은 털을 만지며 고개를 앞으로 빼 선우의 음부에 노골적인 시선을 던졌다.
차 안에 자연광이 들며 선우의 몸 구석구석이 훤히 보였다. 범은 ‘솜털 씨발, 빨고 싶다.’라며 낯 뜨거운 제 속내를 가감 없이 표현했다. 하여간 좀처럼 숨길 생각이 없다.
하으……. 선우는 한숨이기도 하면서 신음이기도 한 것을 뱉었다. 범은 꼭두새벽부터 아침 해가 뜨는 장관을 보면서도 어떻게 변태 짓에만 관심이 있을 수 있는 건지 신기했다.
범이 선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뜨거운 숨을 뱉으며 말했다.
“애도 밴 사이에 부끄러울 게 어딨어? 어? 오리 엄마.”
“안 부끄러워요.”
선우가 무뚝뚝하게 굴자 범이 선우의 옆구리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밤새 좀 친해진 것 같았는데 또 벽을 치려 하니 얄미웠다.
선우는 악!! 조심성 없는 소리를 지르고 허파에 바람이 들린 애처럼 웃어 젖혔다. 벗어나기 위해 격하게 팔랑거리다 쿵 하고 차 천장에 머리를 박았다. 저 때문에 박았는데 범은 뻔뻔하게 조심해야지, 했다. 그래도 선우의 머리통을 붙잡고 호 해 주었다. 병 주고 약 줬다. 약을 주기에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간질이기 시작했다. 악독했다.
선우는 결국 항복의 의미로 고개를 틀어 범에게 먼저 입술을 내밀었다. 둘은 진한 모닝 키스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했다.
진짜 부부처럼 그렇게, 서로의 조금 못나진 아침 얼굴을 물고 빨았다.
***
꿈같은 하룻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제는 늦은 시간에 출발해 차가 별로 없었는데 아침엔 많이 막혔다. 차가 쌩쌩 달리지 못하고 자주 멈췄다. 범은 멈출 때마다 선우에게 시선을 던졌다. 선우는 꾸벅꾸벅 조느라 보지 못했다.
범이 선우의 손을 끌어다 손등에 입을 맞췄다. 선우는 졸면서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예쁜 게 옆에 타 있어 운전할 맛이 났다. 성실한 기사가 되어 오리와 오리 엄마를 모셨다.
선우는 집에 오자마자 씻고 아침을 먹었다. 씻는 것도 힘이 없어 범이 다 씻겨 주었다. 뜨거운 밤을 보내 그런지 허기가 심하게 졌다. 범은 출근을 한다고 아침도 안 먹고 준비를 시작했다. 시간이 없는 모양이었다.
선우는 저 혼자 밥을 먹기가 좀 미안했다. 미안한데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말이라도 한 마디 사근사근 건네면 좋으련만 난 성격이 왜 이러나 모르겠다고 속으로 자조했다. 한 술이라도 뜨고 가라 챙기고 싶었지만 네가 뭔데 마누라 노릇이냐 할까 봐 하지 못했다.
선우는 벌어지지도 않은 일이 지레 두려웠다. 선우의 인생에는 선우의 예상보다 더 좆같은 일만 일어났다. 그래서 늘 최악을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 선우가 먼저 다가간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어두운 밤길도 안 무섭고, 귀신도, 벌레도 안 무서운데 이런 거엔 겁이 많았다.
선우는 마음이 좋지 않아 괜히 밥그릇에 얼굴을 박았다. 그때 준비를 마친 범이 먼저 다가와 주었다. 아! 하고 입을 벌리며 한 입 달라고 했다. 저 덩치로 한 입 얻어먹어 보겠다 하는 것도 웃기지만 그래도 제게 뭔가 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어 기뻤다.
선우가 슬쩍 웃으며 밥을 크게 한 술 떠 범의 입에 넣어 주었다. 된장국도 한 술 떴다. 건더기로 있던 배추와 소고기가 숟가락에 함께 올라갔다. 입 앞에 대령하자 범이 고기만 달랬다. 선우는 조금 한심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냥 드세요. 별맛 안 나요.”
“잔소리하지 마라. 꼴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범은 결국 주는 대로 먹었다. 선우는 애당초 많이 받지 않았던 밥을 다시 한 숟가락 크게 떠서 범에게 내밀었다. 범이 선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 먹어, 했다.
“너 나 되게 좋아하나 보다? 밥 나눠 주면 다 준 거 아니냐?”
선우가 대꾸를 안 해 주는데도 범은 꿋꿋했다. 능글맞은 표정으로 선우의 손을 끌어다 제 앞섶에 올렸다. ‘다녀오면 얘도 밥 줘라.’ 했다. 정말이지 밥상머리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었다.
선우는 오리가 조금 걱정되었다. 가정 교육을 직접 시킬 생각은 아니겠지? 감 놔라 배 놔라 할 입장은 아니지만 돈도 많은데 전문가를 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있어, 간다.”
“네, 다녀오세요.”
범은 떠나는 척을 하다 선우의 볼에 쪽, 기습 뽀뽀를 했다. 그러곤 ‘진짜 간다.’ 하고 갔다. 선우가 뽀뽀를 받은 볼을 긁적였다. 광대가 볼록 올라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신혼부부가 따로 없는 깨 볶는 현장에 있는 듯 없는 듯 부엌에 계시던 아주머니들은 식탁 쪽으로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시각 외에 모든 감각을 그쪽으로 돌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티 내지 않고 집구석 돌아가는 상황을 구경했다. 범이 선우를 꽤나 챙긴다 싶긴 했지만 이렇게 러브 모드일 줄은 몰랐다.
특히나 선우를 담당하는 아주머니가 둘을 유심히 살폈다. 저러다 진짜 데리고 사는 거 아니야? 혹시 유 회장이 물으면 이를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유 회장에게 고용되었으니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입을 잘못 놀렸다간 범에게 큰 화를 당할 것 같았다. 금세 질린다고 버릴지도 모를 노릇이니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아주머니는 선우에게 ‘밥 좀 더 드릴까요?’ 하고 친절하게 물었다. 징그럽게 과한 아부는 떨지 않았지만 확실히 전보다 말투가 부드러웠다.
선우는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 양의 밥을 받고, 그마저도 범에게 한 숟가락 빼앗겼지만 더 달라고 하지 않았다. 평범보다 약간 소식하는 수준으로 정량만 정갈하게 내어주는 아주머니가 먼저 더 주냐 묻는 일은 좀처럼 없기에 예전 같으면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더 달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더 안 먹어도 될 것 같았다.
마음이 배불러서 그런 것 같다. 이미 먹은 것만으로도 허기는 달랬기에 굳이 음식으로 제 허한 속을 더 채워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아주머니께 괜찮다 말하는 그때, 범이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전화를 걸어왔다. 선우는 냉큼 핸드폰을 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마음이 급해 계단을 오르는데 우당탕탕 소리가 났다. 호흡을 가다듬고 평온하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녁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는 걸 깜박해서.]
수화기 너머 다정한 음성이 들려왔다. 선우는 스물다섯에 다시 소년이 되었다. 수줍은 소년처럼 미소 지었다.
[왜? 오늘은 별로 먹고 싶은 게 없어? 아, 혹시 나 먹고 싶냐?]
범의 장난에 선우는 ‘네.’ 했다. 뭘 질문했는지 듣지도 않고 기계적으로 답한 것처럼 들렸다. 그만큼 말투가 심드렁했다. 하지만 결코 말실수는 아니었다. 분명하게 고의였다.
선우가 ‘네.’ 하자 범이 ‘씨발.’ 했다. 그 소리에 선우가 피식 웃었다. 범이 씨발, 이따 집에 가서 보자, 하는데 선우는 그 흉흉한 소리가 듣기 좋았다. 진정으로 미친 게 확실했다.
***
범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선우가 먹고 싶다는 게 자신이라 하여 하루 종일 싱글벙글하다 퇴근을 서둘렀다.
수하들은 자꾸 웃는 범이 무서워 눈을 피했는데 준석만 ‘무슨 좋은 일 있으십니까?’ 하고 물어 주었다. ‘형님, 오늘 둘째 생기시는 거 아닙니까?’ 하며 능글맞은 농도 던졌다.
범은 지금 한다고 둘째가 생기겠냐며 무식한 새끼라 준석을 욕했지만 그래도 준석의 장난을 웃으며 받아 주었다.
준석은 범의 기분을 잘 살폈고 적절히 띄워 주는 재주가 있었다. 범에게 선우를 일컬을 때면, 늘 사모님 대하듯 말을 올렸다. 조만간 정말 형수님이 되실 것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딱 눈치가 그랬다. 한데 조직원 중 여럿이 이 눈치를 살피지 못해 맞았다. 한 수하는 준석을 따라 한답시고 ‘형님, 그년이 그렇게 잘 빱니까?’ 하고 농을 던졌다 어금니가 나갔다. 다 같이 일자무식 깡패지만 그 새낀 어떻게 된 게 눈치까지 그리 무식한지 몰랐다.
준석은 급해 보이는 범의 모습을 보고 알아서 속도를 높이다 편의점 앞에서 서행했다. ‘새콤달콤한 젤리 같은 걸 사다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형님께 조언해 주었다. 아무리 급해도 빈손으로 집에 들어가시면 안 될 거라고. 임신했을 때 그런 걸 사다 주면 크게 사랑받을 거라 했다. ‘사랑을 어떻게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해 줄 것도 두 번 해 주지 않겠습니까?’ 하며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범은 이번에도 준석을 혼내지 않고 ‘빨랑 튀어 가서 사 와, 이 새끼야.’ 했다.
하나 문제는, 준석은 다 좋은데 센스가 약간 부족했다. 정말 젤리만 사 왔다.
“하, 새끼 이왕 사는 김에 과자나 초콜릿 같은 거도 좀 섞어서 사 오지.”
다각적 사고가 부족한 준석은 선우가 젤리를 안 좋아할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지 못했다. 젤리를 사 오라니 우직하게 젤리만 사 왔다. 범이 지적하고 나서야 아차, 하고 ‘죄송합니다!’ 했다.
범은 일단 봐주었다. 선우가 ‘저 젤리 안 먹는데요.’ 하면 그때 처리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대가리가 크기만 하고 안 돌아간다고 구박은 했지만 사실 이렇게 봐주는 것도 준석이기에 그러는 것이었다. ‘똑바로 하자.’ 하며 준석의 어깨를 툭툭 쳐 준 범이 준석에게서 젤리가 든 봉지를 뺏어 들고 귀가했다.
범은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선우의 방으로 향했다. 노크를 해도 답이 없어 조심조심 방문을 열었다. 조심한다고 해서 조심스러워 보일 몸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선우는 낮잠을 자고 있었다. 간밤에 차 안에서 너무 조금밖에 못 잔 터라 침까지 흘리며 단잠을 잤다.
범은 마치 제 침대인 양 선우의 옆에 올라가 누웠다. 선우의 목 뒤로 팔을 끼워 넣어 팔베개를 해 주고 입가에 흐른 침을 삭삭 핥아 주었다. 선우는 뒤척이긴 했지만 깨지 않았다.
선우가 자는 모습을 빤히 보았다. 가끔 내일 죽을 노인네같이 구는데 잘 때는 완전 애였다. 근데 또 그렇고 그런 짓을 해 줄 땐 누구보다도 농염한 성인이었다. 범은 환장한다, 하고 혼잣말을 뱉으며 선우가 깰 때까지 원 없이 구경했다. 당장 흔들어 깨우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꾹 참았다.
범이 이렇게까지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 것은 아주 어릴 때, 동네 길고양이를 집에 데려가고 싶어 했던 노력 이후로 처음이었다.
밥을 줘도 도망가고 범이 눈앞에서 사라져야 다시 총총 돌아와 밥을 먹던 경계심 많은 길고양이였다. 범은 각고의 노력 끝에 그 고양이가 제 발로 저를 따라오게 만들었다. 결국 집사로 간택 받아 어린 시절 고양이를 키웠다. 이름은 나비였다.
다들 그냥 고양이니까 나비라 부르나 보다 했지만 범은 제 이름이 호랑이여서 나비라 지은 것이었다. 호랑나비, 나름 의미 부여에 충실했는데 범의 평소 행실 때문에 아무도 그의 섬세한 감수성을 알아주지 않았다.
유 회장이 털 날린다 질색을 하며 내다 버리라 그랬지만 집안에 범의 뜻을 꺾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범은 차라리 아버지를 버릴 새끼였다. 나비도 서열이라는 걸 아는지 아버지나 형들이 다가가면 하악질을 했다. 범이 그럴 때마다 잘한다, 잘한다 해서 나비는 평생 싸가지가 없었다. 하긴, 나비는 귀찮게 굴면 범도 때리던 애였다.
범은 ‘나비 같다.’ 하며 선우의 속눈썹에 호호 바람을 불었다. 선우는 나비보다 인성이 된 건지, 아님 덜 예민한 건지 앞발을 날리지 않았다.
선우는 침도 흘리고 콧소리도 내면서 자고 싶은 만큼 자다 일어났다. 그러곤 눈을 뜨자마자 못 볼 꼴을 보았다.
범은 선우가 깨어날 기미가 보이자 잽싸게 하의를 탈의하고 선우의 눈앞에 선우가 먹고 싶다던 걸 들이밀었다.
잠시 눈을 끔벅이며 상황 파악의 시간을 갖던 선우는 이내 환멸의 시선을 범의 성기에 던졌다. 빨아도 안 닳고, 싸도 계속 서는 진상. 헛웃음이 났다.
하도 어이가 없어 웃은 건데 범은 쑥스럽게 뭘 그렇게까지 좋아하냐 그랬다. 널 위해 세워 놨어, 할 때는 너무 로맨틱해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오리에게 너네 아빤 도대체 뭘 보고 세운 거냐 물었다. 오리는 제 아빠 편을 드는지 답이 없었다.
“신선해. 금방 씻었어.”
“아……. 네.”
선우가 익숙하게 자세를 잡았다. 범이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자 밑으로 슬금슬금 기어가 그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박았다.
고환부터 핥았다. 입 안에 담고 혀로 살살 굴리니 이제 시작인데 범은 돌겠다고 성화였다. 피식 웃은 선우가 기둥을 한입에 머금었다.
금방 잠에서 깨 아직 반절은 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선우는 기둥을 쭉쭉 빨다 잠시 집중력을 잃고 범의 것을 이로 긁어 버렸다. 헛! 제가 한 짓에 제가 더 놀랐다. 귀싸대기가 날아올 게 분명해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았다. 범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더럽게 아플 텐데, 맞아도 쌀 만큼.’
범은 좋다고 으르렁거렸다. 씨발, 잘했어, 계속해, 했다.
선우는 한 번의 실수 후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넣을 땐 혀로 귀두 끝을 꾹 누르며 들어갔고 뺄 땐 귀두 전체를 쏙 빨아 올렸다. 한 번의 고갯짓에도 혀 놀림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이 일련의 행위를 빠르게 반복했다.
열심히 빠는 저 자신이 슬펐던 게 불과 오늘 새벽인데 이젠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범이 제 눈물을 핥아 주던 느낌만 떠올리면 간지럽고 축축하고 절로 웃음이 났다.
선우가 부지런히 고개를 움직이며 희미하게 웃자 범이 다급히 선우를 불렀다.
“하……. 선우야, 여기 보고, 보면서 빨아, 어, 어, 씨발……!”
범은 사정 후 잠시 여운을 즐기다 선우를 끌어 올려 제 다리 사이에 가두어 앉혔다. 그러곤 뒤에서 가득 끌어안았다.
선우는 범의 품에 안겨 젤리를 먹었다. 범의 가슴팍에 기대 포도 맛, 복숭아 맛 젤리를 한 봉지씩 뚝딱 해치웠다. 아무튼 한국 건 과자고, 젤리고 포장에 비해 몇 알 안 들어 있다고 속으로 불평했다. 외국 건 가득 들어 있었다. 저녁을 먹어야 하니 그만 먹을까 하다 결국 못 참고 독일에서 만든 곰돌이를 깠다.
선우가 곰돌이 대가리를 뜯어먹는 동안 범은 예뻐 죽겠다고 호들갑을 떨며 선우의 머리통에 뽀뽀를 퍼부었다. 귀와 볼에도 쪽쪽, 했지만 먹는 데 방해가 되어 선우가 조금 귀찮아하자 머리통에만 했다.
‘너네 아빠 시원하게 싸지르시더니 기분이 좋은가 보다.’
선우는 젤리를 먹으며 오리와 놀았다. 범이 하도 좋아하니 선우도 간질간질 기분이 좋긴 했다. 하지만 젤리가 더 좋았다. 이런 걸 보면 저는 누군가가 너무 좋아 식음을 전폐하고 그럴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조금 덜 먹어도 배부를 순 있는데, 안 먹어도 배부른 건 아닐 것 같다.
“아오, 씨발 요 예쁜 거, 업고 다닐까?”
“…….”
선우는 헛소리를 걸러 들었다.
어딜 가든 선우를 데리고 다니고 싶다, 하는 진심이 담겨 있었는데 선우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싸늘히 무시당한 범이 괜히 선우의 볼을 콕콕 찌르며 ‘나도 하나 줘 봐.’ 했다.
선우는 제가 가장 싫어하는 오렌지 맛을 집었다. 어차피 무슨 맛을 줘도 별로 맛있어 할 것 같지 않았다. 하나 집어 건네는데 범은 받아먹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 그도 젤리 맛은 아는지 취향이란 게 있나 보았다.
“오렌지 맛 싫어하세요? 어떤 맛 드릴까요?”
“그게 오렌지 맛인 줄도 모르는데 뭘 싫어? 입으로 줘.”
범은 오리가 나와도 오리보다 더 유치할 것 같았다. 그래도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 줄 것 같아 선우가 슬쩍 미소 지었다. 입에 젤리를 물고 고개를 틀어 범을 돌아보았다. 범은 젤리 대신 선우의 입술만 훔쳐 갔다. ‘쪽’이 아니라 ‘꾹’ 앞니가 다 아플 정도로 세게 입술을 찍었다. 선우가 물고 있던 젤리는 혀로 눌러 그대로 선우의 입 안에 골인 시켰다.
선우는 제 꾀에 제가 넘어가 오렌지 맛을 입에 넣어야 했다. 이래서 사람이 심보를 곱게 써야 하는 거라 혼자 생각했다.
범이 선우의 아랫배를 살살 쓸어 주며 맛있냐 물었다. 그 음성이 너무 따뜻해 선우는 열이 올랐다. 가뜩이나 여름이라 더운데 범은 행동도, 말도, 품도 다 따뜻했다.
“나 아무래도 자지가 녹은 거 같아. 만져 봐. 와, 아까 네가 빠는데 기분이, 씨발, 살살 녹더라고.”
너무 따뜻하다 못해 낯 뜨거웠다. 범은 선우가 제 것을 빠는 얼굴이 어찌나 예뻤는지 아주 열렬히 극찬했다. 제 물건이 녹은 것 같다고 만져 봐, 하며 수작을 부렸다. 선우는 만져 보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안 녹았어요.”
“안 속네?”
범이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선우가 안 넘어가자 선우의 바지 속으로 손을 넣었다. 기둥을 살살 쓸어 올리더니 선우의 바지와 속옷을 살짝 내려 성기만 꺼내 놓았다. 엄지로 귀두를 둥글리자 아, 예쁜 탄성이 터졌다.
범이 ‘좋아?’라고 물으며 선우의 귓가에 촉 입을 맞췄다.
“하으…….”
선우는 젤리를 먹다 말고 제 아랫입술을 물었다. 간신히 ‘네. 좋아요.’ 하고 답했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주머니가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다 알려 왔다. 선우를 담당하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선우는 밥 소리에 귀를 쫑긋했다가 이내 제 밥이 아님을 알고 김이 샌 얼굴을 했다. 아, 하고 짧게 탄식했다.
범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하던 일이 끊겨 김이 샜다. 그래도 밥부터 먹는 게 훗날을 위해 나은 선택이란 계산이 섰다. 선우는 밥을 먹여야 인심이 후해졌다.
범이 선우의 속옷과 바지를 다시 올려 주며 일어나자, 했다.
“저도 같이 가요?”
“어. 당연하지.”
범이 뭐 그런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하냐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범의 대답에 선우는 잠시 멍했다. 범과 한 식탁에 앉아 함께 집밥을 먹는 건 처음이었다. 잠시 생각을 하다 이내 환히 웃었다. 진짜 가족 같아서 가슴이 벅찼다.
쪽- 범의 볼에 시키지도 않은 뽀뽀를 해 주었다. 선우의 맥락을 알 수 없는 애교에 범은 그 자리에 바보처럼 굳어 버렸다.
선우는 그런 범을 팽개쳐 두고 혼자 계단을 내려왔다. 쑥스러웠다. 그리고 배도 고팠다. 우당탕탕 범이 저를 잡겠다고 따라오는 소리가 들려 발걸음을 빨리했다. 잡히면 뒤질 것 같은 소리인데도 푸하하 웃음이 났다.
체격 좋은 남자 둘이 ‘나 잡아 봐라.’를 하면 집 안 전체가 울렸다. 아파트였다면 분명 층간 소음으로 신고를 당했을 것이다. 선우는 저도 같이 뛰어 놓고 식탁 가까이에 가자 그런 적 없다는 듯 차분한 척을 했다. 아주머니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낯가리는 게 딱 나비 같아 범이 피식 웃었다. 손을 뻗어 선우의 엉덩이를 꽉 움켜쥐었다 놓았다. 시선은 식탁에 두고 혼잣말로 ‘이건 언제 먹냐.’ 했다.
선우는 범의 혼잣말을 무시했다. 그러든가 말든가 밥이 우선이었다.
범이 함께하는 식탁엔 고기반찬이 어지러울 정도로 많았다. 초록색 반찬들도 몇 있긴 했으나 철저히 구색을 맞추기 위함으로 보였다. 육류나 어류로 점철된 식단이었다.
선우는 얼이 빠져 입을 떡 벌렸다. 물론 고기도 좋기는 좋지만 이건 좀, 먹기도 전부터 질리는 기분이었다. 선우를 담당하는 아주머니가 선우 쪽으로 삶은 양배추와 콩나물 같은 걸 조금 더 내놓았다. 감사했다.
그래도 커다란 도미찜은 정말이지 군침이 돌았다. 보기만 해도 맛있었다. 난생처음 먹어 보는 거라 사실 도미인 것도 몰랐는데 제가 잘 먹자 범이 ‘도미 좋아하는구나.’ 해서 도미인 줄 알았다.
범은 도미 살점을 발라 선우의 밥 위에 부지런히 날랐다. 덩어리도 큼직큼직해서 씹는 맛이 좋았다. 선우는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엄마나 할머니가 매번 해 주던 거라 익숙했다. 할머니 생각을 하니 할머니가 대신 꿔 준 태몽이 생각났다.
범에게 말해 줄까 말까 조금 고민했다. 할머니에겐 제가 계란프라이를 완숙으로 먹었는지 반숙으로 먹었는지까지 다 말하지만 남들한텐 안 그랬다.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종알대지 못했다. 범이 종종 자기만 따 시킨다 하는데 단순히 우스갯소리는 아닌 게 선우는 제 울타리 안에 들어온 사람 말고는 모두를 왕따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이제는 범이 좋으니 범에게 말하기 싫은 건 아니었지만 혹시나 말했는데 시큰둥하면 오리가 서운해할 것 같아 조금 고민이 되었다. 자기야 범이 어떤 반응이든 ‘그저 떡 치는 거 말고는 관심이 없는가 보다.’ 하고 의연히 넘길 수 있지만 오리는 입장이 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아기니까.
선우는 삶은 양배추에 쌈장을 찍어 먹으며 범을 흘긋거렸다.
“할 말 있어?”
“네? 아니요.”
“뭔 말 좀 해라. 아버지냐? 입 다물고 밥만 먹게. 엄숙하다, 엄숙해.”
범은 진짜 아버지보다 더하다고 투덜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더니 그래도 얼굴 보는 맛에 산다, 했다. 씨발 예쁘니까 참는다 진짜, 하며 혼자 구시렁거렸다.
선우가 피식 웃었다. 양배추에 쌈장을 찍어 범에게 건넸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하는 듯한 제스처였지만 선우 딴에는 살갑게 군 행동이었다.
범은 양배추를 보고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그래도 선우가 주기에 받아먹었다. 대충 씹어 삼키고 소고기로 입을 가셨다.
선우는 그런 범을 보며 그가 제 할머니 댁에서 밥을 먹게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맛없다고 상을 엎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아마 큰일일 것이다.
할머니의 밥상엔 향긋한 산나물이 많았고 김치만 해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선우를 위해 계란이나 소시지를 부쳐 주시기도 하지만 확실히 초록이 많다. 기함할 범의 표정을 상상하면 웃기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허나 범이 제 할머니 댁에서 밥을 먹을 리 없으니 모두 괜한 걱정이었다.
선우가 딴생각을 하는 동안 범도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선우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기만 했다.
선우는 뭐 또 야한 생각이겠지, 라고 추측했다.
“넌 왜 자지 달고 예쁘냐?”
켁켁, 선우는 하필 김치찌개를 떠먹다 사레가 들렸다. 고춧가루 때문에 목구멍이 매웠다. 범은 자신의 잘못은 추호도 없다는 듯 ‘조심해야지.’ 했다. 선우의 입 앞에 물컵을 대 주고 물을 먹여 주었다. 조금 진정이 된 선우가 심드렁히 받아쳤다.
“오메가는 원래 자지 달아도 예뻐요.”
범이 발을 구르며 웃었다. 선우가 자지라는 단어를 육성으로 뱉으니 너무 꼴린다 했다. 지는 허구한 날 뱉으면서 웃기지도 않았다. 범이 ‘씨발, 이거 봐 이거. 만져 봐.’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선우의 손을 우악스레 끌어다 제 앞섶에 올렸다. 놀랍지도 않게 단단해져 있었다. 위압감 넘치는 겉모습과 달리 그는 참 체통이 없었다. 그의 호들갑에 결국 선우도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웃었으니까 밥 먹고 또 빨아 줘.”
“네.”
“착하다. 싸가지가 좀 없어 그렇지, 우리 이선우 착해.”
선우가 ‘우리 이선우.’란 호칭에 닭살이 돋아 손으로 팔뚝을 비비자 범이 너도 섰냐며 불쑥 선우의 앞섶을 만졌다. 선우의 물건은 평온했다. 당연한 일인데 범은 혀를 끌끌 찼다. 허벅지라도 보여 줄까? 죽이는데, 하며 실없는 농을 던졌다.
이후로 이어지는 저녁 식사 내내 밥상머리 앞에서 하기엔 조금 더러운 토크가 난무했다. 그래도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둘은 둘만의 방법으로 화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