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뭐 할 말 있어요?”
“아뇨. 그분이랑 많이 친하신가 보다, 싶어서요.”
“음, 뭐 그렇죠. <초승꽃> 촬영하면서 계속 붙어 있었으니까요. 우영이도 형 만나면 좋아할 거예요. 제가 같이 촬영해서가 아니라 정말 좋은 형이거든요.”
“그래요?”
현우영은 시큰둥하게 답하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1위를 하고 나서 현우영에게 핸드폰을 돌려주라고 심은찬이 의견을 피력해 받은 바로 그 핸드폰이었다.
심은찬의 시선을 뭐라고 해석한 건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현우영이 먼저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해 왔다. 딱히 생색을 내고자 한 일은 아닌데 이렇게 감사 인사를 받자니 살짝 겸연쩍었다.
“고마우면 무효해 줘요.”
“그거랑 이거는 다른 얘기죠.”
곧장 던진 건데도 현우영은 심은찬이 뭘 말하는지 바로 알아들었다. 이런 걸 보면 두 사람은 제법 잘 통하는 것 같기도 했다. 확실히 현우영이 심은찬의 심기를 거스른다던가 불편하게 한 적은 없었다.
첫 만남 때는 빼고. 아, 호박 닮았다고 한 것도 빼고.
……잘 맞는 게 맞나.
심은찬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곧 반듯하게 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잘 맞는 거라고 치고 넘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 아쉬워라. 얼른 소원 빌어요, 그러면. 물 떠 와, 이런 거요.”
“그렇게 쉽게 사용하면 안 되죠.”
별로 아쉽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는 심은찬에게 현우영이 답했다.
현우영은 이전에 내기로 얻은 ‘소원 들어주기’를 아직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일에 사용하려고 이러는지 살짝 우려스럽기도 했으나 적당히 알아서 쓰겠지, 여기며 넘길 뿐이었다.
“이제 연습하러 가셔야죠.”
“그렇죠.”
몇 마디 농담을 주고받으며 누워 있던 심은찬은 슬슬 몸을 일으켜 앉았다. 연습이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확실히 여섯이서 파트를 나눠 부르는 것과 둘이서 나누는 건 차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런 만큼 더 연습을 해야 했다.
힘에 부쳐 헐떡거리는 꼴불견인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스스로에게도 그렇지만 팬들에게도 저 가수가 바로 내가 좋아하는 가수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좋아했던 걸 쪽팔리게 하는 사람이 되기는 싫었다.
“…….”
연습을 끝내고 오면 시간이 너무 늦으려나.
팬들 생각을 하니 페이스 앱을 하고 싶어졌다. 개인 페이스 앱을 한 지도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코스모스는 매일 들어가서 메시지를 보내긴 하는데 페이스 앱은 아무래도 그러지 못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러나 두 사람이 보통 연습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시간이 새벽 3시경인 걸 감안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물론 그 시간에 깨어 있을 팬들도 있긴 할 테지만 말이다.
내일 저녁 김휴인을 만나고 와서 시간이 좀 남으면 30분이라도 해야겠다고 결론 내린 심은찬은 현우영과 함께 연습실로 향했다.
* * *
김휴인이 알려 준 곳은 이탈리아 음식점이었다. 번화가에 위치해 있으나 미리 예약을 해 둔 건지 따로 떨어져 있는 조용한 룸 쪽으로 안내받았다. 직원들은 심은찬을 알아본 듯했지만 개인적인 사인이나 사진 요청은 하지 않았다.
“어, 은찬이 왔어.”
미리 와 있던 김휴인은 안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보자 활짝 웃으며 반겼다.
“안녕하세요, 현우영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뵈어요. 아니, 근데 은찬이도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와, 듣던 대로 엄청 잘생기셨네요.”
“……은찬 형이 말씀하셨어요?”
그냥 인사치레로 흘릴 법한 이야기였는데 현우영은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그렇죠? 아, 본인 있는 데서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김휴인이 곤란한 듯 눈웃음을 지으며 심은찬 쪽을 한 번 보았다. 현우영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건 이전에 잡지 촬영을 하며 찍은 컷을 확인할 때였다. 팀에 막내가 있는데 정말정말 잘생겼다고 했었었다. 그걸 김휴인이 기억하고 이 자리에서 말을 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물론 심은찬이 현우영 본인에게 잘생겼다고 말을 안 한 건 아니다. 하긴 했다. 심은찬 기억에는 없지만 현우영의 증언으로는 몇 번이나 그랬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까지 한 칭찬을 알게 하는 건 좀 다른 얘기였다. 좀 많이 민망했다. 하지만 어쩌랴. 이야기한 건 한 거고 그게 알려진다고 해서 곤란은, 좀 하지만 그걸로 김휴인에게 뭐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심은찬은 순순히 고개를 흔들며 괜찮다고 답했다.
현우영 잘생긴 거야 이미 안팎으로 유명했으니까.
잘생겼다는 칭찬을 여기저기에 하고 다니는 건 그냥 좀 같은 멤버 자랑하는 팔불출 정도로 보이고 말겠지, 싶었다.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무대 보면서도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실물 느낌을 못 담네요, 카메라가. 은찬이가 그렇게 자랑할 만해요. 은찬이는 자기가 또 언제 말했는지 기억을 못 할걸요.”
몇 번이나? 내 기억에는 한 번 정도였는데.
자기가 또 언제 그런 말을 했었나, 기억을 더듬고 있던 심은찬을 보면서 김휴인이 말했다. 마치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꿰뚫어 보는 듯했다.
“저한테도 자주 말씀해 주세요.”
야, 그걸 그렇게 받으면 어떡해.
현우영의 대답을 들은 심은찬은 보이지 않는 아우성을 쳤다.
이건 팔불출 정도가 아니라 얼굴에 미친 놈으로 보이지 않을까.
“정말요? 와, 하긴 은찬이가 또 그런 건 바로바로 말하는 스타일이긴 하죠.”
확실히 김휴인은 붙임성이 매우 좋았다. 처음 만난 자리 같지 않게 친근하고 편안하게 분위기를 리드했고 주문한 음식이 나올 즈음에는 현우영에게 말을 놓게 되었다.
“은찬아, 그게 가능한 스케줄이야?”
“가능하도록 해야죠.”
“진짜 바쁜 시간 내준 거였네.”
김휴인이 샐러드 담은 접시를 은찬에게 건네며 눈을 둥글게 떴다.
“에이, 아냐. 형 만나서 나도 좋은 거지. 내주긴, 뭘.”
“말도 예쁘게 하지, 은찬이. 우영이, 이것 좀 먹을래?”
“예, 주시면 제가 덜어 먹겠습니다.”
현우영이 평소보다 더 깍듯하게 말했다. 심은찬은 탄산음료를 마시며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비슷한 느낌이 나는 걸 그림체가 닮았다고 표현을 하곤 하는데, 현우영과 김휴인이 그랬다. 둘 다 큼직하고 또렷한 쌍꺼풀을 가지고 있었고 서글서글한 인상에 굉장히 예쁘게 생겼다.
두 사람의 신장이 다른 데에서 오는 전반적인 느낌은 좀 달랐지만 말이다.
어깨도 넓고 키도 큰 현우영은 곱상한 얼굴이 반전 매력인 남자라는 이미지였다. 그러나 김휴인의 키는 170 초중반 대였다. 그래서 맡을 수 있는 배역이 좀 한정되어 있어 고민이라는 얘기를 이전에 했었다.
아무래도 170 후반은 되어야 여자 연예인과 함께 카메라에 잡혔을 때 신장 차이가 예쁘게 보이니 제작사 쪽에서 캐스팅 고려를 할 때 배제가 된다고.
게다가 김휴인은 남자답게 잘생겼다기보다는 좋게 말하면 중성적, 나쁘게 말하면 ‘너무’ 예쁘게 생긴 편이었다. 오죽하면 <초승꽃> 때 김휴인이 나온 부분을 캡처해서 리터칭을 해 여주처럼 합성하여 올라오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이미지가 팬들에게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남자 배우에게는 그렇게 좋은 요인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해서 김휴인이 그 문제를 제법 심각하게 고민한다는 걸 심은찬은 알고 있었다.
문제를 해결해 주진 못해도 들어 주는 건 할 수 있었다. 김휴인은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심은찬을 매우 고맙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 김휴인의 앞이기에 현우영도 긴장을 한 걸까. 행동도 그렇고 심은찬이나 다른 멤버들에게는 사용하지 않는 말투를 쓰고 있었다.
심은찬은 그간 못 봤던 현우영의 일면을 보는 것 같아서 좀 신기하기도 했고 새삼스럽기도 했다.
태도가 바뀐다는 건 그만큼 긴장을 하고 있다는 거였고, 긴장을 한다는 건 잘 보일 필요가 있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현우영이 그렇게 한다는 게 좀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재미있기도 했다. 나중에 숙소 가는 길에 좀 놀려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심은찬은 스파게티를 포크에 돌돌 말아서 입에 넣었다.
순간 현우영과 시선이 마주쳤다 싶었는데 그가 자신의 입술 쪽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입술에 묻었어요.”
“네? 아, 여기요?”
현우영의 지적에 심은찬은 앞에 있던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하지만 음식이 묻은 곳의 반대쪽을 닦은 모양이었다. 현우영이 손을 뻗어 직접 닦아 주었다. 이전에 이런 일이 있었던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한두 번도 아닌데요.”
“……그 정도까진 아닌데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던 김휴인이 작게 웃었다.
“역시 같은 그룹이라 그런가 사이가 좋네. 참, 유닛 한다는 거, 그쪽 준비는 잘 되어 가? 팀 활동이랑 양쪽 다 하려면 정말 정신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 뭐. 열심히는 하고 있어.”
“열심히 한 만큼 결과가 좋으면 좋겠다. 앨범 나올 때 말해 줘. 폰에 입력해 두고 발매일에 인플래닛에 응원 글 올릴게.”
서로의 일상 이야기를 하며 좋은 분위기로 저녁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은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오랜만에 정말 양껏 배불리 먹었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 심은찬은 소화도 시킬 겸 간단하게 산책이나 해야겠다 싶어 현우영을 먼저 들여보내고 공원으로 발길을 돌리려 했다. 그러자 현우영이 자신도 함께 가겠다며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