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8화 (58/61)

#58

현우영의 특성. [너…… 그런 거 좋아하니?(독특한 심미안/A)]. 독특하다는 말은 결코 칭찬으로만 쓰이는 게 아니었다. 심은찬이 제 듣는 귀가 삐끗한 건지 의심스러워했을 때였다.

“실은 저도.”

“저도요.”

문세별과 도준서가 그 뒤를 따랐다.

다행이다. 귀가 잘못됐던 건 아니라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첫 번째 곡은 영 별로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실장이 질척이며 물었다.

“별로는 아닌데요, 너무 비슷한 콘셉트면 좀 그러니까요. 이전 곡이랑 연달아 앨범 3개가 비슷한 느낌이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허어……, 그런가 또.”

실장은 어느 정도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곡을 준비해서 발매를 할 때면 대충 여름 즈음일 테니 청량 콘셉트가 시기적으로도 맞았다. 회의는 모두의 의견을 수렴한 후 끝났다.

“아, 근데 은찬이랑 우영이는 잠깐 나 좀 볼래?”

실장은 회의실을 나가려는 두 사람을 불렀다.

설마 앨범 곡 선정을 뭘로 할지 아직도 포기를 못 한 걸까. 실장은 멤버들이 나간 후 두 사람만 남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 우영이가 합류를 하면서 아무래도 인지도를 좀 높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말이다. 듀엣 앨범 한번 해 볼래? 8집 싱글 발매 전에 발매하는 걸로.”

“네?”

심은찬은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8집 앨범 발매 전이라니. 말도 안 되게 타이트한 스케줄이었다. 그야말로 몸을 갈아 넣어도 불가능한 일정이었다.

“은찬이도 알고 있겠지만 네 개인으로 들어오는 스케줄이나 광고가 많아. 회사 쪽 입장에서는 이럴 때 확실히 굳히고 들어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제가 한다고 해도, 지금부터 곡 받을 준비하고 그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나요?”

“아……! 그게 걱정이었어?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실장의 호언장담에 심은찬은 불안해졌다.

“곡은 이미 받아 뒀거든. 안무도 이미 나왔고. 좀 밝은 분위기인데, 이게 타이틀이랑 겹칠 것 같아서 걱정이긴 하지만 콘셉트 잘 잡으면 또 괜찮을 것 같고 말이지.”

심은찬은 그제야 실장이 왜 그렇게 다크 콘셉트를 놓지 못했는지 이해했다.

모든 게 세팅 완료되었고 녹음만 남은 것 같았다.

“아니, 하지만……. 다른 멤버들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고요. 갑자기 저희 둘만 듀엣으로 하면 좀. 음, 그렇지 않을까요?”

심은찬은 단어를 신중하게 고르려 애썼다.

“은찬이가 잔걱정이 많은 편이지.”

실장이 미소했다.

잔걱정이 아니라 할 법한 걱정이라고 마음속으로 항변하며 심은찬은 웃었다.

같은 그룹이기 때문에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분명히 존재했다. 같은 팀이지만 그 이전에 모두 아이돌이라는 개인이기도 했다. 같은 팀에서 인기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기 마련이었고 그걸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극히 적을 터였다.

계약서상에 명시되어 있는 정산의 문제가 아니었다.

따로 일하지 않아도 인기 많은 한 명이 소같이 일해서 벌어 오는 돈을 공평하게 나누니 좋지 않냐는 그런 개념이 아니었다.

아이돌을 하고자 하는 이들은 누구나 다 타인의 관심을 받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었다. 누구 한 명의 인기만 독보적으로 올라가고 자신은 병풍 취급을 당하는 걸 좋아할 이는 없었다.

회사 입장에서야 팔리는 한 명만 붙들고 있어도 된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심은찬도 바보는 아니다.

실장이 말하는 유닛의 멤버인 심은찬과 현우영, 두 명이 현재 B the 1에서 제일 인기가 많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이런 적나라한 사실을 굳이 현우영이 있는 곳에서 입에 올릴 주제도 아니었기에 심은찬은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실장은 그런 심은찬의 생각을 읽은 듯했다.

“너네가 첫 번째 유닛이고 두 번째 유닛도 있어.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말고. 다른 멤버들에게도 이미 말해 뒀다.”

심은찬은 눈을 크게 뜨고 현우영 쪽을 돌아보았다. 그도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자기만 빼 둔 상태에서 이야기가 얼마나 진행이 된 걸까.

한번 들어나 보라며 실장이 들려준 노래도 아주 좋았다. 밝은 노래였지만 8번째 싱글 앨범과 장르가 달라 다른 느낌으로 표현이 가능할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거절할 방도가 없었다.

정말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를 해 뒀구나.

실장이 먼저 나간 후 현우영을 쳐다보았다.

“알고 있었어요?”

“예. 저 계약할 때부터 제안을 해 주셨던 거였어요.”

“……그렇게 일찍요?!”

어지간한 심은찬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닛으로 앨범 발표하시는 기획은 꽤 예전부터 잡고 계셨던 것 같아요. 이해민 씨가 나가면서 얘기가 어그러진 것 같지만요.”

현우영은 이해민에게 ‘씨’라는 호칭을 붙였다. 상당히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요.”

심은찬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예전부터 진행된 이야기라면, 혹시나 이전 생에서도 있던 일이었을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는 모든 일이 심은찬 자신이 회귀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면.

심은찬이 성형만 하지 않았더라면. 드라마도 찍고 현우영이 합류해서 활동했을지도 모를 현실이, 회귀를 하지 않았어도 이루어졌을지도 몰랐다.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 일어난 모든 일들이 그저 자연스레 일어났을 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뭐라 설명을 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붕 떠 있는 것 같은, 몹시 낯선 기분에 심은찬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며 참아 내야 했다.

“은찬 형?”

현우영이 불러 정신을 차렸다.

“아. 미안해요.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느라.”

“괜찮으세요?”

“네?”

“열은 없으신데.”

현우영은 심은찬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이전에 퀘스트를 실패해서 아팠던 일 이후로 어째 현우영의 뇌리에 자신이 허약한 걸로 인식이 박혀 버린 듯했다. 심은찬은 몸을 뒤로 슬슬 빼내며 말했다.

“그렇게 자주 안 아파요. 저 튼튼해요.”

“오늘 아침에 뭐 드셨는데요?”

현우영이 바로 질문했다. 심은찬은 켕기는 사람처럼 잠깐 우물거렸다.

아침 식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긴 했지만 실제로 심은찬은 밥을 반 공기 좀 안 되게 먹었다. 된장찌개를 만들며 냄새에 질려서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탓이다.

“오늘은, 오늘 아침은, 어제 많이 먹어서 속 부대껴서 그런 거고요.”

“살도 없으시면서 매번 끼니도 잘 안 챙겨 드시잖아요.”

“없긴요. 이게 다 뭐라고 생각해요?”

심은찬은 소매를 걷어 제 팔을 보여 주자 현우영이 제 손을 겹쳐 보였다.

아니, 뭔 손목이 이렇게 두꺼워.

두 배까지는 아니라도 그 비슷하게는 차이가 나서 심은찬은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저를 허약하게 보는 현우영의 시선을 바꾸고 싶었다.

“배에 복근도 있어요.”

심은찬이 자신의 배를 통통 두드리며 주장하자 현우영이 눈을 가늘게 만들었다.

“너무 말라서 근육이 드러난 게 아니고요?”

“…….”

말라서 근육이 나오는 정도는 아니었고 그냥, 평평했다. 납작했다. 원래 이런 체질이라고 여기고 슬렌더 하다고 생각했는데.

조용한 어조로 하나하나 논파당하고 나니 괜히 더 분했다.

“그러는 우영이는 뭐 얼마나 근육 있다고-, …….”

심은찬의 말이 뚝 끊어졌다.

현우영이 그의 손을 끌어당겨 제 배에 가져다 댔다. 옷 너머로도 확실히 느껴지는 복근의 감촉이 근사했다. 이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이 상태면 제대로 예열하면 굉장할 게 분명했다.

함께 숙소 생활도 했고 옷도 같은 곳에서 갈아입었던 적도 있지만 딱히 타인의 몸을 눈여겨보진 않았기에 여태껏 몰랐다. 옷을 입어도 대충 티가 난다고 생각했는데 현우영은 딱히 그렇지 않은 타입인 듯 보였다. 실제로 이렇게 근육이 탄탄하게 붙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딱히 근육질의 몸매가 부러웠던 적은 없었고 그걸 목표로 삼을 생각 역시 없었다. 하지만.

“치사해요. 혼자만 근육 있고.”

“얘기가 왜 그렇게 돼요?”

“어디. 복근만 있어요? 이 정도면 가슴 근육도 엄청 있지 않아요?”

“예? 잠깐, 은찬 형?”

현우영이 드물게 몹시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그 반응이 좀 통쾌하기도 해서 좀 더 치근덕거렸다. 그건 인정했다. 이 정도로 장난을 칠 생각은 없었다. 어느새 엎치락뒤치락하며 실랑이를 하게 되었다.

“…….”

“…….”

어쩌다 보니 현우영이 뒤에서 심은찬의 양 손목을 잡고 끌어안듯이 해 옴짝달싹도 못 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몸이 붙어 있었다. 붙어 있다는 표현은 좀 부적절하니 밀착으로 바꾸는 편이 나을 듯했다.

등에서 현우영의 체온이 느껴졌다.

사람 체온이 원래 이렇게 따뜻했나.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던 심은찬이 고개를 돌렸다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 현우영의 얼굴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즉시 정면으로 고정했다. 뒷덜미에서 타인의 숨이 느껴졌다.

“죄송해요.”

먼저 떨어진 건 현우영이었다.

몸싸움을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의 장난이 너무 심해서 화가 난 걸까. 현우영의 뺨 부근이 조금 붉었다. 귓불까지도 울긋불긋했다.

확실히 그렇긴 하겠지. 성별 무관하게 생각하면 성희롱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자각하고 나니 정말 미안해져서 심은찬의 입에서 끄응, 하는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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