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4/61)

#54

어떻게 이렇게 예쁜 말을 할 수 있을까. 심은찬 본인이 그 대상이긴 하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매번 감탄하곤 한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팬 사인회나 가끔 소속사를 통해 들어오는 선물을 전달받으면서도 그런 의문이 들곤 했었다.

심은찬은 목표를 위해서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인데 팬들은 뭘 원하고 이런 선물들을 보내 주는 걸까. 하고. 물론 팬들을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고, 그들에게 힘을 얻는 것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꿈을 위해서 하는 거다. 그런데도 그 모습을 보고 좋아해 준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돈을 써서 소비를 해 주고 그것에서도 한발 더 나아가 고가의 선물을 보내 주기도 한다.

그 마음의 근원에는 뭐가 있는 걸까.

팬이 늘어난 지금 심은찬에게 들어오는 선물의 금액대 역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비싸졌고 종류도 많아졌다. 물론 물건 자체에 혹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몇십만 원에서 몇백만 원 단위의 선물도 있고 구하기 힘든 한정판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심은찬은 그 물건들을 그저 팬들이 보내 준 ‘물건’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었다. 그것들에 담긴 하나하나의 마음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걸 좋아할까, 저런 색을 좋아할까 꼼꼼히 따져 보고 골라서 보내 준 선물들이었다.

그 가치는 단순히 물건에 있지 않았다. 물건은 돈만 내면 살 수 있지만 그 물건을 살 때, 건네줄 때의 마음은 어디서도 살 수 없다.

그 사실을 이제는 안다.

이전 생에서는 그저 많은 인기를 얻고 싶었고 좀 더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해 항상 불만족스러웠고 늘 불안했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이 와닿지 않았다. 얼마나 소중한지 갈수록 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팬들의 애정이 너무나 확실하게 느껴졌다. 마치 피부에 닿는 것처럼 확실하게.

어떻게 그동안 이런 걸 잊고 있었을까.

다음에는 꼭, 1위를 해야겠다 싶은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7번째 싱글 앨범의 마지막 음악 방송 스케줄이 있는 날이었다.

이번에도 B the 1은 1위 후보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같은 1위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던 팀은 B the 1과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서 훨씬 빠르게 인기를 얻은 7인조 남자 아이돌이었다.

저번에는 미션을 위해서 1위를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조금 달랐다.

팬들을 위해서라도 꼭 1위를 하고 싶었다.

팬들이 ‘1위 한 아이돌의 팬’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끔 하고 싶었다. 그런 타이틀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잘 설명은 할 수 없었지만 단지 심은찬 본인만을 위한 게 아니었다.

누군가는 입에 발린 말이나 위선이라고 할지도 몰랐지만, 심은찬의 마음이 그랬다.

사실, 다른 사람의 말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1위는 누구일까요?! 발표하겠습니다!”

멤버들 모두 가만히 모니터를 응시했다.

심장이 두근거려 입술을 말아 물고 있는 그 잠깐의 시간이 상당히 길게 느껴졌다.

3.

2.

1.

“네에-! 1위는!”

“B the 1 Get Ambitious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모니터에 떠오른 글자는 분명히 B the 1이 맞았다.

믿기지 않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모니터를 보던 심은찬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입을 벌린 채 놀람을 표현하고 있는 도준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 눈을 크게 뜨고 있는 현우영의 얼굴 역시.

* * *

찢었다. 미쳤다.

눈물 그렁그렁 매달고 있는 21세 남성 어떤데

초승꽃에서는 키가 제일 큰데 팀에서는 제일 작다는 게 발린다. 애들한테 둘러싸이면 안보여ㅠㅠㅠ

애들 1위야 내가 다 눈물났어ㅠㅠㅠㅠ

은찬이 울 줄은 몰랐다ㅠㅠㅠㅠㅠ절대 안울 것 같았는데ㅠㅠㅠㅠ울지마ㅠㅠㅠㅠ아냐 울어ㅠㅠㅠ속 시원하게 울어ㅠㅠㅠㅠㅠ

우영이 얼떨떨했나봐 그래도 형 먼저 챙기는 것 봐ㅠㅠㅠㅠ애들 케미 뭐야ㅠㅠㅠ

우리 리더 자기도 울면서 동생들 챙긴다고ㅠㅠㅠㅠㅠ아ㅠㅠㅠㅠ

나 비솓1애들 달사탕때부터 팬이었는데 진짜……너무 꿈같고 믿기질 않아ㅠㅠㅠ얘들아 고생했어 사랑해ㅠㅠㅠ

ㅠㅠㅠㅠ우리 애들 지금부터야. 이제부터 꽃길만 걷자

3별이 너무 서럽게 울어서 보면서 맘 찢했잖아ㅠㅠㅠ세상에 3별이가 울어ㅠㅠㅠㅠㅠ

└서5도 눈가 시뻘개서 눈물 참다가 울더라ㅠㅠㅠ애들 너무 서럽게 울어서 진짜 마음이 다 아팠음

└3별이 울줄은 진짜 몰랐어요 3별아ㅠㅠㅠㅠㅠ

(사진) 그 와중에 형들 챙기는 막내 뭔데

└막내온탑 그잡채

└저 막내 순위확인하고 형들보면서 크게 한숨내쉬는 장면만 무한 재생중요

└└저도요 미치겠어요 애 눈도 크고 속눈썹 완전 길어서 슬로우로 만들어봤어요

└└└악 선생님 최고예요

└└└저 이 움짤봐도 되는 거예요? 뭐죠 이 죄책감은;;;

└└└이제 시원하게 은팔찌 차도 되는 시기이긴 하죠^^ 저도 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앵콜 무대 영상 full 버전 원본입니다 제 울음 소리가 좀 들어갔는데 양해해주세요 저도 저때 정신이 없어 가지고ㅠㅠ;

└세상에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거 기다리고 있었어요ㅠㅠㅠㅠㅠ

└보면 눈물 날 것 같아서 못 보고 있어요ㅠㅠㅠ아 감사합니다ㅠㅠㅠ

우영이도 너무 고생했어 늦게 합류해서 기존 멤에 적응하기 힘들었을텐데 정말 축하해 우영아

* * *

축제 같았다.

아니, 축제라고 해도 무방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은 그야말로 난리였다.

“오늘 먹자.”

“맞아. 오늘 같은 날 먹어야지.”

“맥주! 맥주도 시켜 먹자!”

멤버들은 미리 시켜 놔야 숙소 도착해서 바로 먹을 수 있다며 바쁘게 배달 앱들을 켜기 시작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심은찬은 헤실헤실 웃었다. 트로피는 소속사 쪽으로 나중에 온다고 해서 직접 받아 가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직 실감은 덜 났지만 역시 기분이 붕붕 뜬 상태였다.

흔들거리는 차 시트에 등을 기대고 있자니 여태까지 고생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고생했던 순간들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케이블 음악 방송 1위도 이런 기분인데 대상을 받으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정말 벅차서 가슴이 터져 죽는 게 아닐까. 그런 망상도 한번 해 보았다.

심은찬은 핸드폰으로 코스모스를 열었다. 팬들의 축하 메시지가 정말 산처럼 쌓여 있었다.

팬들에게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낸 심은찬은 다시 한번 멤버들을 보았다.

앞으로 여러 일이 있을 거고 연예 대상을 받아야 하는 미션이 끝난 건 아니었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즐기고 싶었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목 안쪽에 뜨거운 게 올라오는 느낌이 들어 코를 찡긋거리며 숨을 들이마시던 심은찬은 가만히 자신을 보는 현우영을 발견했다.

언제부터 저렇게 쳐다보고 있었지. 뭐 할 말이라도 있나 했던 궁금함은 곧 해결되었다.

핸드폰이 부러워서 그러는구나.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얼마나 불편할까.

심은찬은 자신이 총대를 메고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현우영과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형만 믿으라는 신호였으나 정작 현우영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매니저 형, 우영이 핸드폰 이제 주셔도 되지 않을까요?”

“응? 우영이?”

심은찬의 발언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몰렸다.

“1위도 했는데 괜찮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형.”

다른 멤버들도 심은찬의 의견에 동조했다.

“나 혼자 결정할 사항은 아니니까 대표님께 말씀드려 볼게. 그래도 된다고 하실 거다.”

매니저는 백미러로 멤버들을 보며 말했다.

이야기가 적당히 마무리되자 심은찬은 현우영을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저 잘했죠.”

“저, 는 딱히 불편한 건……,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이거 아니었어요?”

“아뇨…….”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럼 대체 왜 쳐다보고 있었던 건가 싶었다.

“뭔데요. 말해 봐요. 어벌쩡 넘어가지 말고요.”

심은찬의 채근에 현우영이 자신의 눈가를 검지로 툭툭 두드렸다.

“빨개지셔서요.”

“……아.”

현우영이 뭘 말하는지 눈치챘다. 그의 지적에 입을 다문 심은찬은 양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그러곤 살짝 원망을 담아 현우영을 흘겨보았다.

“민망하게. 일부러 말하기 있어요?”

“아니, 저는 그게 아니고요.”

심은찬이 채 가리지 못한 눈가에 현우영의 손가락이 살짝 닿았다.

“뜨겁진 않을까 했는데 역시 좀 따끈하네요.”

말이 끝나기도 전 심은찬이 고개를 뒤로 물렸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현우영을 경계하는 심은찬의 반응에 그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제대로 앉으세요. 안 만질게요.”

“…….”

너무 과민 반응을 했나 싶었다. 작게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핸드폰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재차 감사 인사를 하는 현우영을 보며 심은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뭘요. 형이니까 해 준 건데. 믿음직스럽죠? 감사 인사는 소원 들어주기 퉁치기로 어때요.”

“예?”

현우영은 처음 듣는 사람 같은 반응을 보였다.

“어, 잊었어요? 아, 아까워. 그냥 모른 척할걸 그랬죠. 괜히 말했네요. 제가.”

일부러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는 심은찬을 응시하던 현우영은 곧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린 듯했다. 그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반달을 그렸다.

“무효는 안 돼요. 나중에 정해지면 말씀드릴게요.”

“에이. 쪼잔하긴.”

심은찬은 입술을 쭉 내밀고 툴툴거렸다. 손톱 끝으로 핸드폰 액정을 두드리던 심은찬의 머릿속에 이전에 현우영과의 일이 떠올랐다.

‘저는 최고가 되어야 해요. 그러니까 발목 잡지 말아 주세요.’

그래. 그런 일도 있었다.

기분이 좋아서일까.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올 일이지만 당시에는 제법 당황했었다. 사실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다. 고작해야 3개월이나 됐을까.

그때의 불안했던 시간에 비한다면 지금은 많이 안정되어 있었다.

“어때요.”

“예? 뭐 말씀이세요?”

심은찬이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차에서 함께 이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멤버들도 워낙 근처에 있었다.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자 현우영이 몸을 살짝 기울였다. 그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발목 안 잡았죠?”

“예? ……아.”

처음엔 알아듣지 못해 갈피를 잡지 못하던 현우영은 심은찬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곧 깨달은 것 같았다. 이 타이밍에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어 갔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그런지 다채롭게 변해 가는 모습을 코앞에서 직관할 수 있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완전 든든한 동료였던 것 같은데.”

연기라도 하듯이 눈동자를 굴리며 태연하게 말하자 현우영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점점 진해졌다.

현우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심은찬은 마치 악수를 하는 것처럼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해 봐요, 우리. 뭐하면 저를 받침으로 써도 되고요.”

“아뇨, 그렇게까지는…….”

“상관없어요. 저를 받침으로 써도 된다고 했지 얌전히 받침대 역을 한다고 하진 않았어요.”

심은찬은 다른 멤버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또렷한 어조로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