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61)

#52

운전하던 매니저가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어. 20만 장인데.”

자고 있던 몇몇이 부스스 일어나 상황을 파악하듯 눈을 깜빡였다. 1초. 2초. 3초. 조용한 가운데 파열음이 나듯 멤버들이 소리를 질렀다.

“20만 장?!”

“뭐야, 20만 장이?! 진짜?”

“20만?”

다들 놀란 듯이 한 단어만 반복했다. 매니저는 당황스럽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아니, 너희들 몰랐어?”

“몰랐어, 형! 몰랐다고!”

“왜 말 안 해 줬어?”

“아니, 코스모스도 있고 팬사에서 팬들한테 들어서 알고 있을 줄 알았지.”

다들 경악스럽게 입을 벌렸다.

“10……, 10만 장까지는 들어서 알았는데요.”

심은찬이 간신히 대답했다.

그날이 아직도 생생했다. 3일 만에 10만 장을 넘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 숙소에서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 치킨도 시키고 곱창도 시키고 파전에 떡볶이까지 시켰었다. 술 대신 사이다 한 잔씩 컵에 따라 건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그런데 20만 장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허.”

차 안이 소란스러운 와중에 심은찬은 시트에 등을 기댔다. 핸드폰 액정을 몇 번이고 쳐다보았다.

20만 장.

커리어 하이였다.

이전 앨범 판매량을 다 합해도 4천 장이 안 됐는데 단번에 그 몇십 배를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믿기지 않았다. 어쩌면 가요 프로그램에서도 1위가 가능할지도 몰랐다.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에 심은찬은 한숨을 크게 쉬었다.

* * *

어느덧 활동 마지막 주가 되었다.

원래 활동 예정으로 잡았던 기간은 2주였지만 워낙 반응이 좋았기에 1주를 더 연장해 3주로 잡았다. 그사이 가요 프로그램에도 개근 도장을 찍듯이 출연했다.

<초승달 피는 여름밤 하늘 꽃>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라 바로 어제 심은찬이 맡은 배역인 연운이 죽는 장면이 방송되었다. 해당 장면은 전체 드라마의 최고 시청률 기록을 경신해 31.8%가 넘었다.

개인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코스모스는 터졌다.

말 그대로 터져 버렸다.

심은찬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는 사람이 많아 서버가 다운되어 버렸고 이 사실 또한 하나의 화제가 되어 SNS의 실시간 검색어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즈음 심은찬은 자신의 개인 팬덤의 성향이 살짝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팬 사인회에 오는 팬들 중에 우연하게도 ‘O2’, ‘산소’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연이어 있어서 이게 뭐냐고 묻자 당황하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렇게 공통으로 들어가는 게 아무 이유가 없을 리 없었기에 무슨 캐릭터가 새로 만들어졌나 싶었다.

그 궁금증은 오래지 않아 풀 수 있었다.

케이블 예능 녹화를 하러 갔을 때였다. 아이돌로 데뷔하여 현재는 각종 예능에 단골 출연을 하는 강스톤이 단독 MC를 맡은 프로그램이었다.

“은찬 씨는 요새 커플이 되신 기분이 어떠세요?”

커플 질문이 나와 심은찬은 눈썹을 들어 올렸다. 혹시 무슨 루머라도 생긴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전에 받았던 대본에서는 이런 질문이 없었다. 짓궂은 농담인가 싶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가끔 난감한 질문도 툭툭 불시에 던진다는 콘셉트가 있는 예능이었고 그걸 알고도 섭외에 응한 거니 말이다.

심은찬은 내색하지 않고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로 되물었다.

“네? 커플요? 처음 듣는데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분과 커플이 됐나요?”

미소를 머금은 채로 심은찬이 되묻자 MC가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아, 안 걸리시네. 특종 하나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요. 요새 방영하는 드라마에서 아주 인기가 많습니다. 아이돌 연구소를 시청하시는 분들께서 드라마에 출연하신 다른 분들과는 연락을 잘 하시는지 궁금하다고 많은 질문을 보내 왔어요.”

MC는 ‘다른 분들’이라고 표현했지만 정확하게는 김휴인을 말하는 것 같았다. 확실히 요새 드라마 인기가 높다 보니 출연하는 예능에서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했다. <초승꽃>은 서길영과 연운의 의도치 않은 브로맨스로 화제가 되고 있었다.

“제가 먼저 촬영을 끝낸 이후에도 다른 분들은 아직 촬영을 하고 계실 때였거든요. 그때는 아무래도 바빠서 못 하긴 했는데 그래도 하루에 한 번씩은 안부 연락을 했어요.”

“아, 하루에 한 번씩요? 혹시 오늘도 하셨나요? 서길영 역을 하신 김휴인 씨와도 연락을 자주 하시나 봐요?”

“네. 그분과는 오늘도 했어요.”

“어디. 증거를 보여 주실 수 있나요?”

MC의 요구에 심은찬은 핸드폰을 받아 와 대화 창을 보여 주었다. 그러자 날짜를 하나하나 짚어 가며 확인한 MC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곤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이 정말 화제가 되고 있어요. 아시나요?”

“예, 아무래도 팬분들께서도 좀 자주 얘기해 주시니까요.”

“그럼 두 분을 하나로 묶어서 뭐라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그런 것도 있나요?”

처음 듣는 이야기에 심은찬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자 MC가 빙그레 웃었다.

“O2, 휴인의 ‘ㅇ’과 연운의 ‘ㅇ’을 영문 O로 바꾸면, O가 두 개 있다 해서 O2로 치환한 산소 커플이라고 합니다. 저희 작가님들이 조사하시느라 엄청 고생하셨다고 합니다. 놀랍죠?”

“그렇군요. 우와.”

생각도 못 했다. 발상 전환이 정말 대단했다.

진심으로 놀라는 심은찬의 반응과 더불어 원하는 만큼 분량을 뽑아 낸 것에 만족한 듯한 MC는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녹화를 끝낸 심은찬은 정말인가 싶어 관련어로 검색을 해 보았다.

과연 상당히 많은 양이 검색에 걸렸다. 들은 대로 김휴인과 자신을 커플로 엮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비게퍼, 즉 비즈니스 게이 퍼포먼스라는 게 있긴 하다는 이야기를 듣긴 들었다. 다른 기획사에서는 그런 걸 일부러 시키기도 한다는데 포텐하이에서는 특별히 언급을 하거나 지시를 내린 적은 없었다. 심은찬은 자신이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과 커플이 되리란 생각을 해 보지도 않았기에 퍽 신기했다.

그런 걸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 있었나 싶어 드라마 내용을 반추해 보았으나 딱히 잘 알 수가 없었다.

김휴인은 알고 있을까 궁금하긴 했지만 먼저 연락해서 말하기도 좀 애매한 주제였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있어도 상관없는 내용이긴 했다.

핸드폰 화면을 끄고 내려놓으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심은찬에게 말을 걸었다.

“뭐 하고 계세요?”

“아, 그냥-, 깜짝이야.”

고개를 돌리려던 심은찬은 바로 얼굴 옆에 현우영의 얼굴이 있다는 걸 깨닫고 몸을 퍼드득 떨었다.

“왜, 뭐 하고 있어요? 놀라게 하려고 그랬죠.”

현우영의 입술이 뭔가를 말할 것처럼 씰룩였으나 이내 다물어졌다. 그의 시선이 심은찬의 얼굴을 보다가 그가 쥐고 있는 핸드폰으로 떨어졌다.

그러고 보니 현우영은 아직 핸드폰이 없었다. 한창 핸드폰 잘 사용할 나이인데 핸드폰 없이 허전하기도 할 거다. 매니저에게 말해서 폰을 돌려 달라고 의견을 내 보는 편이 나으려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거요.”

“네?”

“지금도 연락하셨어요? 연기하시는 분이랑.”

“연기하시는? 아. 휴인 형요. 네.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어요?”

한창 인기가 올라가는 사람이니 그런 생각도 들 터였다.

“그게 아니고. ……예. 궁금해서요.”

“그래요? 소개해 줄까요? 되게 좋은 형이거든요. 분명히 좋아할 거예요.”

“나중에 자리 한번 만들어 주세요.”

심은찬은 바로 승낙하는 현우영을 보며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다. 아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인맥 만들기 좋아하는 타입이었나? 여태껏 현우영과 알고 지냈지만 별로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었다. 아니면 그만큼 김휴인에게 관심이 있었던 건가.

하긴 김휴인은 상당히 매력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선선히 승낙한 심은찬은 대답을 듣고 바로 다른 곳으로 가는 현우영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저렇게 용건만 말하고 가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은찬, 어우. 너 또 왜 맹꽁이 됐어?”

“맹꽁이……, 아니에요. 형. 진짜.”

“또 맹꽁이 된다.”

“세별 형.”

심은찬은 억울하게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 * *

음악 방송 출연을 위해 이동하는 참이었다.

“얘들아, 말해 줄 게 하나 있는데.”

운전을 하던 매니저가 입을 열자 차 안에 있던 멤버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스케줄이 추가가 된 걸까.

“오늘 N챔 가는 거 알지.”

“알죠.”

“무슨 일인데요?”

차가 부드럽게 우회전으로 돌았다.

“음, 너네 1위 후보야.”

“…….”

“…….”

“진짜요?!”

“우와, 대박……!”

한 박자 간격을 둔 매니저의 말에 바로 차 안은 아우성이 가득해졌다. 소식을 들은 심은찬 역시 믿기지 않았다.

“근데 얘들아, 상대가 프로젝트 K라서.”

소란이 잦아들 즈음 매니저가 주저하며 입을 열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무슨 이야기를 할지 감이 잡혔다.

‘프로젝트 K’는 B the 1보다 1년 늦게 데뷔를 한, 대형 소속사의 남자 아이돌 그룹이었다. 데뷔를 했을 때부터 수박 HOT 100에 들어갈 정도로 화제를 일으켰고 팬층이 탄탄했다. 소속사의 선배 아이돌부터 좋아하는 팬들의 내리사랑이 유난한 곳이기도 했다. 방송 점수와 음반 판매, 인터넷 투표 등을 합산해도 안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1위 후보라니. 이전을 생각한다면 하늘과 땅이 뒤집힐 이야기 아닌가.

이전이라면 어디 언감생심 꿈이나 꾸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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