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흔히들 말하는 주접 멘트 같은 것에는 웃음이 터지곤 했다. 물론 짓궂은 질문도 하나둘 튀어나오긴 했지만 곤란해하며 웃으면 팬들은 그 나름대로 즐거워했다.
팬 사인회는 보통 팬들을 위한 거라고 하는데 그 반대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돌을 위한 이벤트였다.
특히나 팬들이 해 주는 말들이 정말 너무나 예뻤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간추리자면 이런 거였다.
‘이제야 알게 되어서 미안해.’
‘지금까지 버텨 줘서 고마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은 심은찬이 그들에게 해야 맞는 말이었다. 적어도 팬들이 할 말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팬 사인회에 온 팬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말했다. 어떤 팬은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심은찬은 그 팬에게 티슈를 건네며 울지 말라고 했고 팬은 민망해하며 옆자리의 도준서에게 이동했다.
도준서에게도 눈물 젖은 목소리로 몇 마디 말을 건넸는데 심은찬은 앞에 앉은 팬과 이야기하느라 정확한 건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도준서가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를 냈다. 코가 막혔나, 싶은 생각을 한 것도 잠깐. 옆을 돌아본 심은찬은 눈가에 눈물이 차올라 코끝이 빨개진 도준서를 보게 되었다.
심은찬의 시선을 느낀 도준서가 화들짝하며 얼굴을 가렸지만 이미 다 본 이후였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도준서가 얼굴을 가리지 않은 반대편 손으로 손사래를 치다가 또 한 번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물이 주룩 흘러넘쳤다. 팬석에 앉아 있던 팬들에게서 안타까워하는 탄식과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찰칵거리는 셔터 음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심은찬은 조금 전에 팬에게 건네주느라 사용했던 일회용 티슈 갑에서 또 한 장을 꺼내 도준서에게 건넸다. 티슈를 건네받고 빨리 눈가를 훔치는 도준서의 머리를 웃으며 토닥거렸다.
대면 팬 사인회를 마친 멤버들은 모인 팬들과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속에 들끓었다.
고맙거나 미안함. 그리고 그만한 애틋함이었다. 하지만 말로 소리 내어 말할 수는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이돌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하는 존재들은 아니었다. 아이돌이 하는 일이라곤 조명을 받고 그 아래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게 전부였다. 인류 발전을 위해 무언가를 공헌하거나 대의를 위해 무언가를 희생하는 게 아니었다.
막말로 인기가 많아지면 돈을 버는 건 아이돌 본인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런 자신들을 좋아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심지어 미리 알지 못해 미안하다고, 여태까지 잘 버텨 줘서 고맙다고까지 해 주는 사람들이다. 고마워해야 할 건 심은찬임에도 불구하고.
B the 1보다 더 나은 팀도 많았고, 현존하는 아이돌은 더더욱 많았다.
그중에서도 자신들의 팀을, 심은찬을 좋아해 준다는 일은 기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팬들은 그들이 좋아할 만하기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우연과 기적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 후 30명과의 영상 통화를 해야 했다.
물을 마시던 심은찬은 도준서의 등을 툭툭 쓰다듬은 후 현우영 쪽으로 갔다. 의자에 앉아 있는 현우영의 옆 테이블에 한쪽 엉덩이를 걸치듯이 앉았다.
“처음 해 봤는데 어땠어요? 언뜻 보니까 잘하던데요.”
“다행이네요. 저는 마지막에는 제가 잘 웃고 있는지도 모르겠던데요.”
“음?”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었다.
팬 사인회가 이름만 그렇지 웃음 파는 것 같은 거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사실 액면 그대로 본다면 둘의 차이는 없었다. 차이가 있다면,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 정도일까.
심은찬이 불순한 의도를 담고 있는지 아닌지 가늠해 보려 하고 있을 때 현우영이 자신의 뺨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얼굴 근육이 아파서요. 은찬 형은 어떻게 그렇게 계속 웃으세요? 팬사 중간쯤 되니까 근육이 떨리던데요.”
단순히 현실적인 문제였던 모양이었다. 심은찬은 픽 웃었다.
“저도 처음엔 그랬는데, 요령을 알게 되니깐 조금씩 쉬워지더라고요.”
“요령요?”
“으음. 저는 웃다가 뺨 근육이 아파질 때 한쪽 눈을 번갈아 가면서 깜빡거리면 좀 괜찮아지거든요.”
“깜빡이요?”
그의 말을 듣던 현우영이 눈을 한쪽씩 깜빡거리려고 해 보았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금은 한창 웃기만 하느라 근육이 경직되어 있어 그럴 수 있었다. 심은찬은 그런 현우영의 반응이 우스워 작게 웃으며 그의 양 뺨을 쥐었다. 얼굴 근육을 좀 마사지해 줄 요량이었다.
광대과 그 아래 뺨을 엄지로 지그시 누르며 문질러 주었다. 메이크업을 지우지 않을 정도로 지그시. 약간의 힘을 주면서 눌러 주었는데도 뭉쳐 있어서 아팠는지 현우영의 반듯한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많이 아파요? 좀만 참아 봐요.”
“…….”
현우영에게서는 답이 없었다.
“눈을 한쪽씩 깜빡거린다는 게 이런 거예요.”
심은찬은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 표정을 지은 상태에서 왼쪽 눈을 윙크하는 것처럼 찡긋거렸다. 그리고 다시 반대쪽도 찡긋거렸다.
“경련이 오는 쪽을 이런 식으로 하면 저는 좀 풀리더라고요.”
“…….”
“우영아?”
한참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현우영의 이름을 부르자 그의 눈꺼풀이 한 번 깜빡였다.
“무슨 생각해요? 들었어요?”
“예. 눈을 한쪽씩, 깜빡이라고요.”
“한번 해 봐요.”
“지금요?”
“연습 겸요.”
심은찬의 재촉에 현우영은 웃는 얼굴을 만든 뒤 그가 한 것처럼 한쪽 눈을 윙크하는 것처럼 찡긋거렸다.
“이야. 잘생겼다.”
“…….”
심은찬의 말에 현우영은 웃는 걸 멈췄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도 잘생겼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 봤느니 어쩌니 하면서 얘기했던 게 떠올랐다. 설마하니 놀리려는 걸로 들렸나 싶었다.
“진짠데요. 정말 잘생겼어요.”
“예.”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하는 현우영의 얼굴에서 손을 떼었다.
어색한 반응을 보이던 현우영은 뭔가 말을 덧붙이려는 심은찬에게 말했다.
“기분 나쁘거나 그래서가 아니니까 신경 안 쓰셔도 괜찮아요.”
믿어도 되나 싶었지만 현우영이라면 제 기분을 솔직하게 얘기했겠거니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 통화 시작할 거니까 자리에 앉자.”
매니저의 목소리에 현우영은 정해진 자리로 돌아갔다.
영상 통화 팬 미팅은 대면 팬 미팅과는 또 달랐다. 거의 얼굴을 보이는 것이다 보니 표정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화면을 녹화하지 말라는 주의가 붙긴 했지만 현장에서 통제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게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었다.
보통은 녹화한 영상을 SNS 계정에 업로드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편했다.
그러니만큼 대면 팬 사인회를 하는 정도의 긴장감을 가지고 해야 했다.
영상 통화 팬 사인회에서는 외국인들도 있었다. 한국어처럼 의사소통이 원활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간단한 인사말 몇 가지는 배워 두었기에 두어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다. 시간이 끝나면 스태프가 종이로 카메라 부분을 가렸지만 아쉬운 마음에 종이를 들추고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매일매일 스케줄을 다 소화하고 숙소로 돌아가 쉴 때면 새벽 2시쯤이 되었다.
팬들에게 받은 선물들을 전부 가지고 오느라 매니저까지 함께 차에서 몇 번을 왕복을 했는지 몰랐다.
음악 방송은 화요일을 제외하고 케이블 포함해서 일주일에 5개, 많으면 6개 정도였다. 모든 음악 방송에서 B the 1에게 섭외 요청을 했기에 빠짐없이 얼굴을 비추었다. 그 사이사이 잡지 인터뷰도 하고 예능도 녹화했는데, 무슨 정신으로 지냈는지 알 수도 없을 정도였다.
특히나 드라마의 영향으로 한창 인기가 올라간 심은찬은 그 정도가 심했다. 팀으로가 아니라 심은찬 개인으로 들어오는 스케줄이 상당했다. 광고 제안도 들어오는 듯했다.
그러나 심은찬은 자신이 정말 인기가 많아지긴 한 건가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물론 코스모스에 메시지가 전에 없이 많이 들어오고 있고 페이스 앱의 시청자 수와 하트의 숫자 역시 전에 없이 높았다. 누튜브 직캠 재생 수 역시 많아졌지만 어디까지나 인터넷에서였다. 팬들을 볼 수 있는 공개 방송이나 팬 사인회에서 만날 수 있는 팬의 숫자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 가끔 길거리를 걸을 때 그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어 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에야 인기가 좀 있는 건가,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에 길거리에서 버스킹으로 춤을 춰도 피해 갈 때가 많았던 것에 비하면야 장족의 발전이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스케줄을 소화하는 덕분에 수면 시간이 부족했다. 심은찬은 핸드폰을 확인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눈을 붙였다. 그래도 SNS에 팀명이나 자기 이름으로 검색을 해 보는 정도는 했는데 요 며칠은 체력적으로 너무 부담이 되어 그마저도 못 했다. 핸드폰은 코스모스에 하루 한두 번씩 들어가서 메시지를 보내는 딱 그 정도만 했다.
그때도 이동 시간 중에 감기는 눈을 비비며 코스모스를 켰을 때였다.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많이 들어와서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쭉 살펴보니 초동 판매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초동이 몇 장이길래…….
심은찬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멈췄다.
“…….”
화면을 확인한 그는 숨을 삼켰다.
“형. 저희 이거.”
“응? 은찬아 뭐?”
“저희 초동요. 최종 20만 장이에요?”
심은찬의 목소리에 차 안이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