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61)

#49

심은찬은 참 멋쩍었다.

물론 상태 이상에 걸렸을 때는 확실히 아프긴 아팠다. 하지만 신체 능력 디버프가 풀린 이후로는 정말 감쪽같게도 컨디션이 돌아왔다. 능력치도 전부 다. 그런데도 멤버들이 번갈아 가며 심은찬의 주변에서 머물렀다. 정말 온갖 걱정은 다 받는 듯했다.

“진짜 괜찮아요, 형.”

“그런 소리 말고.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좀 더 자.”

“많이 잤어요.”

정민유가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너무 마음이 안 좋았다.

밀린 잠을 몽땅 잘 수 있게 된 덕분에 몸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는데 다들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하기야 열이 39.5도까지 치솟아 올라 링거까지 맞았는데 괜찮다는 말에 그래 그럼, 하고 수긍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렇다고 사실은 퀘스트를 실패하는 바람에 페널티를 받아서 그랬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얌전히 ‘현재 아팠다가 회복 중인 사람’을 연기하기로 했다. 만약 별다른 스케줄이 없었다면 그런대로 받아들이고 희희낙락 쉬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바로 얼마 뒤에 케이블 음악 방송에서 녹화 예정인 커버 댄스 연습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심은찬은 그 연습에서 제외가 된 상태였다.

춤을 익히는 속도가 평균치인 심은찬이었기 때문에 내심 조바심이 났지만 조금이라도 연습에 참여하려고 하면 어디선가 현우영이 나타났다. 그러곤 엄한 얼굴을 한 채로 말했다.

‘괜찮다고 하시면서 또 무리하시려고요?’라고.

그 말을 하는 눈빛이 너무 엄격해서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뭐라고 오해를 풀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답답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젠 괜찮다는 걸 보여 주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현우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못마땅하게 볼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으나 현우영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엔 ‘은찬 형 혼자서 연습 못 하셔서 불안하신 거면 저도 연습 안 할게요.’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고나오기까지 했다. 해사한 얼굴로 그러면 되겠냐고 덧붙이는 바람에 더 이상 뭐라고 못하고 얌전히 앉아 있어야 했다.

“저 제대로 무대 못 하면 우영이 탓이에요.”

하지만 투덜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 제가 따로 알려 드릴게요. 만족하실 때까지.”

“그 말은 본인은 안무 다 익힐 거라는 얘기죠? 치사해.”

입술을 뾰옥 내밀고 투덜대자 현우영은 당황한 듯 입을 벌렸다.

“치사한 게 아니고요. ……바로 어제 아프셨어요, 은찬 형. 며칠 지난 것도 아니고요.”

“지인짜 괜찮은데.”

“형이 괜찮다 하는 말은 못 믿어요.”

“……꼬장꼬장하기는.”

한 번 더 질척거려 봤지만 뭐라고 해도 허락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심은찬은 거울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그러고 있자니 또 현우영이 어디선가 달려와 심은찬에게 잠깐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 담요를 깔았다.

그날 심은찬이 쓰러졌던 게 상당히 충격이었던 듯했다. 하긴. 무대에서 방방 뛰던 사람이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짚 인형처럼 풀썩 쓰러지면 누구라도 놀라긴 하겠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니 현우영의 반응도 이해는 갔다.

그날 방송의 결과만 얘기하자면, 대성공이었다.

B the 1의 무대 자체에 대한 평가도 호평이었다. 특히 심은찬의 개인 직캠은 입덕 영상으로 불리며 누튜브에서 80만 뷰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었다. 솔직히 심은찬이 봐도 어떻게 그 몸으로 이렇게 했을까 싶은 부분이 있을 정도였다.

방송국에서 올린 직캠에는 현우영의 것도 있었는데 그것으로 인해 입덕했다는 팬들도 상당했다. 거기에 더해 필드 알파의 팬덤이 침묵을 깨고 응원을 했다는 점이 인터넷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다.

인간 캣닙의 효과가 생각보다 더 굉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더불어 <초승달 피는 여름밤 하늘 꽃>에서 심은찬에게 텃세를 부리던 이새림이 떠올랐다. 타 팬덤 사람들의 마음조차도 움직일 수 있던 인간 캣닙의 효과가 들지 않는 정도라면 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가 심은찬에게 부렸던 자잘한 심술들이 그나마 캣닙 효과로 중화가 되어 농도가 연해진 거라면, 캣닙 효과가 없는 상태에서는 그 ‘심술’의 정도가 농담으로 웃어넘기지 못했을 수준이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이새림이 아주 희귀한 경우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그 같은 케이스가 더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

심은찬은 생각을 중단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머리 아프게 골몰해 봤자 뭘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당장 커버 무대 안무를 한 번이라도 더 봐 두는 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터였다.

심은찬은 비스듬하던 자세를 바로잡았다.

연습실 옆면에 있는 라디에이터 근처가 아니라 싸늘한 뒤쪽에 앉은 건 좌우를 헷갈리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눈으로 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팔 부분은 안무를 따라 하기도 해 보았다. 현우영은 이것도 불만인지 한참을 쳐다봤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괜찮다는 얘기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도 못 하게 할 수는 없을 거다.

연습 중간 잠깐 쉴 때가 되자 바닥에 앉아 있는 심은찬에게 현우영이 다가왔다.

“그렇게 계시면 추워요.”

이해는 한다고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 과한 게 아닐까.

정말 진짜 뭐라도 된 것처럼 애지중지하는 게 낯간지러웠다. 거기에 더해 현우영은 제가 입고 왔던 점퍼를 심은찬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점퍼를 걸치니 품도 크고 팔도 길어서 이불처럼 심은찬의 온몸을 덮었다. 현우영의 키가 심은찬보다 크긴 했지만 이 정도로 차이가 나면 살짝 자존심이 아팠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요.”

“혹시 모르니까요.”

약간 어이가 없어진 심은찬에게 현우영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되면 누가 형인지 모를 정도였다. 뒤에서 보던 도준서가 킥킥 웃었다.

“야, 심은찬. 완전 막내다. 으이그.”

하지만 그도 심은찬이 걱정되기는 매한가지였는지 당분간 가만히 있으라고 얘기했다. 농담처럼 흘리긴 했지만 절대 농담은 아닐 거다. 이럴 거면 숙소에서 있게 하지. 그런 생각도 불쑥 들었지만 만약 멤버들 중 한 명이 그런 제안을 했더라도 심은찬 쪽에서 거절했을 거다. 몸도 안 아픈데 농땡이를 부리는 건 내키지 않았다.

차라리 나와서 눈으로라도 보면서 눈치를 살피다가 몸 좀 나아졌다고 하고 안무를 맞춰 보는 쪽이 나았다.

이번 커버 댄스는 케이블 음악 방송에서 기획한 ‘그 시절 빛나는 추억’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진행하는 기획이었다. B the 1만이 아니라 다른 팀들도 몇 년 전에 인기 있던 곡으로 각자 무대를 선보이게 된다.

B the 1이 하는 커버 댄스 곡은 3년 전에 인기 있었던 ‘shooting star’였다. 아이돌 올림픽 대회에서 봤던 맥스어핀의 곡이었다. 원래의 안무라면 심은찬도 이미 알고 있었으나 기존의 안무 그대로 가는 게 아니었다. B the 1의 색을 덧입혀 살짝 바꾸었기 때문에 조금 더 까다로웠다. 자칫하면 몸이 기억하는 대로 원래 버전으로 출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직접 추는 게 좋은데.

퀘스트를 성공했으면 이럴 일도 없었을 것을.

심은찬이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멤버들의 연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였다.

[미션 발동

퀘스트 확인 Y/N]

지금?

심은찬은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만약 실패를 한다면 간격을 두고 아픈 것보다 차라리 연이어 아픈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한 번 실패를 겪어 보기도 했기에 심은찬은 망설임 없이 확인을 했다.

[퀘스트

대상: 류서오

무릎베개받기.

※ 단,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해야 함.

※ 절대로 직접적으로 말하면 안 됩니다.]

룰 설명은 같은 걸 계속 쓰는 건가. 빨아 쓰기라도 하지. 무릎베개받는데 말하는 게 왜 나와.

심은찬은 불퉁하게 트집을 잡았다.

무릎베개를 받는 게 어려운 건 아니었다. 쉬고 있을 때 가서 슬쩍 누우면 될 테니까 말이다. 몇 초 동안 유지해야 한다는 조항도 없었으니 잠깐이라도 닿으면 성공으로 카운트되는 것 같았다. 단지 류서오는 외동인 데다 스킨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무릎베개를 한 직후의 반응이 어떨지 몰랐다.

찬 눈으로 본다고 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을 할 테지만.

심은찬은 멤버들이 잠깐 쉬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곡이 끝날 때마다 잠깐잠깐씩 서서 쉴 뿐이었다. 문세별은 그만큼 무대에 진심이었고 그만큼 엄청난 연습 벌레이기도 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마침내 잠깐 쉬었다 가자는 말이 문세별의 입에서 떨어졌다.

바닥에 털썩 앉는 다른 멤버들과는 다르게 류서오는 한쪽에 놓여 있던 의자로 걸어가 앉았다. 심지어 다리를 벌리고 앉지도 않았다. 힘들었을 텐데 어쩜 저렇게 바른 자세를 할 수 있을까. 심은찬은 류서오의 성향에 혀를 내둘렀다.

고양이를 사람 형상으로 바꾼다면 딱 류서오였을 거다.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무릎베개를 하러 가는 게 영 자연스럽지는 못했지만 뭐 어떠랴.

논리적이고 뭐고를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수건으로 땀을 닦던 류서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심은찬을 발견하곤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았다.

“왜?”

“힘들어서요.”

“그럼 저쪽에 바로 앉지.”

류서오답게 정곡을 찌르는 발언을 했다.

심은찬은 류서오 옆에 자리를 잡았다.

“뭐 해?”

“피곤해서요, 형.”

심은찬은 적당히 무릎을 붙이고 앉아 있던 류서오의 무릎에 얼굴을 댔다. 솔직히 평소의 류서오라면 심은찬의 머리가 닿기도 전에 다리를 치워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류서오는 그를 그대로 놔두었다. 놀랍게도 머리를 토닥이기까지 했다.

“그래.”

심지어 류서오는 심은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퀘스트 성공과는 별개로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는 예상은 못 했었기에 놀라 버렸다. 평소의 류서오라면 뭐 하는 거냐며 다리를 슬쩍 피하거나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을 텐데.

낯간지러운 말은 못 하는 류서오였지만 심은찬을 걱정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러는 사이 퀘스트 성공 알림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성공.

대상 <류서오>에게 보상이 주어집니다.

멘털 1랭크 업.]

“…….”

심은찬이 살짝 아쉬운 마음을 억누르며 류서오의 상태 창을 확인하려 했을 때였다.

[▶멘털 랭크 업 효과로 다른 능력치가 상승됩니다.

퍼포먼스 B+>A

스타성 B>B+]

연달아 뜬 알림 창의 내용을 훑어본 심은찬은 눈을 크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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