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화 (47/61)

#47

바깥에서 들리는 함성 소리가 공기를 울렸다.

심은찬은 희미하게 웃었다.

“괜찮으세요?”

현우영이었다.

“네에. 괜찮아요.”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웃는 거라면 자신 있었다. 언제나 웃을 수 있도록 연습했었으니까.

“안색이 너무 안 좋으신데요.”

“그래요? 완전 괜찮은데.”

심은찬이 제대로 대답을 끝내기 전 현우영이 심은찬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평상시라면 빠르게 몸을 틀거나 해서 피했을 텐데 열이 나서 반응하는 게 좀 늦었다. 아뿔싸 싶어 뒤늦게 쳐 내려고 했지만 이미 심은찬의 상태를 눈치챈 후였다.

빠르게 현우영의 손을 잡아당겼다. 검지를 입술로 가져가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뭐라고 하려던 현우영은 그런 심은찬을 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열이 높으시잖아요.”

“괜찮아요.”

“은찬 형.”

“혼자만 알고 있어요. 진짜 괜찮으니까.”

심은찬이 다짐을 받으려고 현우영을 쳐다보았으나 그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심은찬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컴백 날이에요. 빠질 수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어요. 무대에서 실수 안 할 거니까 가만히 있어 줘요.”

“제 얘기는 그런 게 아니라,”

“사실은 말하는 것도 힘들어요.”

심은찬은 솔직하게 말하며 현우영을 올려다봤다.

“그러니까 이 문제로 우영이랑 옥신각신해서 더 힘들지 않게 해 줄래요?”

“…….”

계속 괜찮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고 진솔하게 제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현우영은 입을 다물었다. 깨끗하게 다듬어진 눈썹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현우영이 못 이기겠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집이 정말 세시네요.”

“제가 좀 그래요.”

“무대 끝나고 바로 병원 가기예요.”

“그럼요. 약속할래요?”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보이자 현우영이 손가락을 걸었다.

붙임성 없는 표정으로 무뚝뚝하게 “도장도요.”하고 말해서 순순히 그렇게 했다. 유치하다고 해야 할까. 현우영은 쿨하고 스마트하게 생겨서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으면서 사소한 거 하나도 다 챙기려 들었다.

“해열 시트라도 받아 올까요?”

“아뇨. 됐어요. 뭐라고 하고 받아 오게요. 그리고 그거 붙이면 메이크업 망가져요. 숍에서도 특별히 머리에 신경 써 주셨어요. 보이죠? 조금만 움직여도 머리카락 움직이는 거.”

“……정말 형은.”

“고집 세다고요?”

“예.”

“몸 아픈 사람인데 오늘만 져 줘요.”

서 있는 현우영을 올려다보며 말하자 그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영은 심은찬 옆에 앉았다.

“왜 여기 앉아요. 저리 가요.”

“어깨에 기대세요. 그냥 벽에 기대시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확실히 그렇긴 했다. 뒷머리도 신경이 쓰이기도 해서 편하게 있진 못했으니 말이다. 심은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현우영의 어깨에 기댔다.

“어깨가 넓어서 좋네요. 높이도 그렇고. 조금만 더 이쪽으로 기울여 줄 수 있어요?”

주절주절 바라는 바를 말하자 현우영은 바로 몸을 움직여 주었다. 확실히 조금 전보다 안락해졌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쉬면서 눈을 깜빡였다. 정신을 잃을까 봐 무서워서 눈을 감고 쉬기가 무서웠다.

“오늘 무대, 우리 진짜 열심히 준비했잖아요.”

“예.”

“정말 잘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와 저런 팀이 있었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들고 싶어요.”

“…….”

심은찬은 대기실에 있는 멤버들을 쳐다보며 닫았던 입술을 느리게 열었다.

“해민이 나가고.”

열 때문인지 머리가 몽롱한 상태에서 말을 이어 갔다.

“팸팸들이 우리 걱정을 많이 했어요. 우리 팀 괜찮다는 것도 확인시켜 주고 싶어요. 계속 좋아할 만한 그룹이구나, 싶은 생각하게 하고 싶어요. 다른 아이돌 부럽지 않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뿐이니까요.”

말을 마친 심은찬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말을 하는 것도 힘에 부쳤다.

현우영은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라리 그 편이 나았다. 사실은 말을 마치자마자 너무 속을 내보인 게 아닌가 싶어 후회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래서 뭐든 맨정신일 때 말해야 한다니까. 사람이 아프면 괜히 감성적이 된단 말이지.

심은찬은 랭크가 떨어진 제 멘털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윗입술을 이로 잘근거렸다.

복도에서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는 팀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아, 대체 거기 뭐냐.”

“완전 암전이었어. 난 무슨 돌덩이 가져다 둔 줄 알았잖아. 와. 일부러 그쪽 보면서 했는데도 뭐 꼼짝을 안 해.”

“신경 쓰지 말아야지, 나처럼.”

“신경 안 쓰려고 해도 그게 마음대로 되냐. 사이드에 앉았으면 몰라. 자리도 정중앙. 와. 거기 떡하니 앉아서 무표정으로 있는데. 아, 나 표정 관리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다.”

“아니, 근데 대체 어떻게 거기가 가운데 좌석을 가져갔을까.”

“내 말이.”

벽이 얇은 건지 아니면 그들의 목소리가 유달리 큰 탓인지 알 수 없었다. 필드 알파의 팬덤이 상당히 큰일을 한 듯했다. 확실히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객석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으면 그게 힘든 일이긴 하다.

몸은 안 좋지만 인간 캣닙의 특성은 별 이상 없이 활성화 중이었다.

심은찬은 다시 한번 제 상태 창을 확인하며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그때 도준서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둘이 뭐 하냐?”

“사이 좋아 보이니까 샘나?”

“뭔 소리야.”

“너도 이리 올래?”

심은찬이 장난을 걸자 도준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뒷걸음질 쳤다.

도준서가 저래 뵈어도 심은찬과 룸메이트였던 시간이 길어서 제 상태를 눈치챌 가능성이 높았다. 으,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도준서에게 손으로 이리 오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이번에야말로 몸을 돌려 류서오 쪽으로 갔다.

“B the 1 준비해 주세요!”

드디어.

심은찬은 기대 있던 몸을 바로 했다.

무대에 오를 시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가벼운 현기증이 일어나 비틀거린 심은찬은 현우영의 어깨를 잡고 버텼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괜찮아졌다. 정신을 차리고 나자 현우영의 팔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걸 알아차렸다.

그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느끼곤 빙그레 웃었다.

“미안해요. 좀 어지러워서. 다른 멤버들한테는 안 들키게 도와줘요.”

“절 가림막으로 쓰시려고요?”

“네. 오늘 하루만 해 줘요. 제 전용 가림막.”

심은찬은 슬쩍 자신을 돌아보는 현우영을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웃는 건 정말 자신 있었다. 현우영은 그런 심은찬을 잠깐 응시하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그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가림막 해 달라고 요청까지 한 마당에 더 이상 뭐라고 하기도 좀 그러니 순순히 그의 행동을 따르기로 했다.

이동해서도 순서를 기다리던 그들은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는 팀에게 수고했다고 꾸벅 인사를 건넸다.

“네, 다음은 B the 1의 컴백 무대입니다!”

MC들의 발랄한 소개 멘트가 들렸다. 드디어 B the 1의 순서가 되었다.

무대 위에 올라가니 팬들의 함성 소리가 가벼운 흥분 상태로 만들었다. 심은찬은 시선을 돌렸다. 필드 알파의 팬들은 쉽게 구분이 가능했다. 객석의 한가운데. 지루한 강의를 듣는 학생처럼 무표정하게 가만히 앉아 있는 무리가 있었다.

마침 무대 준비 중이라 조명도 꺼졌기에 제대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심은찬은 그들을 한 명 한 명 응시하며 미소 지었다. 눈까지 지끈지끈했지만 그걸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캣닙 효과가 제대로 들어 먹혀야 했다.

특성이 좋긴 좋은데 제대로 적용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런 때에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면 좋을 텐데. 특성 활성화 중이라고 하고 거짓말하는 건지 알게 뭐람.

투덜투덜. 이전에도 했던, 비슷한 불평을 드러나지 않게 속으로 연발하고 있을 때였다.

[☆★☆★특☆★별☆★체☆★험☆★☆★

의심하는 당신에게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오직 ☆★당신 한 분☆★께 드리는 기회

10초 동안 효과 적용을 맘껏 누려 보세요!

인간 캣닙 활성화(적용 시 획득 포인트 5~30)

적용 시간-00:10]

이건 또 뭐야. 10초? 이걸 누구 코에 붙이려고…….

그때부터였다. 심은찬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던 건.

[김보화, 인간 캣닙 적용 성공. 호감도 상승+10]

[강연은, 인간 캣닙 적용 성공. 호감도 상승+20]

[주미안, 인간 캣닙 적용 성공. 호감도 상승+9]

[오수하, 인간 캣닙 적용 성공. 호감도 상승+11]

[최은형, 인간 캣닙 적용 성공. 호감도 상승+17]

[이정연, 인간 캣닙 적용 성공. 호감도 상승+23]

[김주영, 인간 캣닙 적용 성공. 호감도 상승+19]

동시에 여러 사람들의 머리 위에 팝업 창이 툭툭 튀어 올랐다가 0.5초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사라졌다. 그런 식으로 방청석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의 머리에 떠올랐다. 필드 알파의 팬석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전부 말이다.

그 모든 걸 확인하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인간 캣닙이 이렇게 적용이 되는 것인 줄은 몰랐다.

팝업 창이 떠오르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팝업 창이 뜬 사람들과 뭐가 다른 거지, 하고 눈을 가늘게 하고 쳐다보니 심은찬도 안면이 있는, 이전부터 B the 1의 팬이었던 사람들 몇 명이었다.

[단, 기존에 알고 있던 인간관계는 제외됩니다.]

처음 카드를 뽑았을 때 봤던 문구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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