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그리고 사실 시간 제한이 걸려 있는 지금 어떤 식으로든 시도는 해 봐야 했다. 어떻게 해도 똑같이 실패한다면 차라리 도전이라도 해 보고 실패하는 쪽이 차라리 나을 테니까 말이다.
해 보지 않는다면 가능성은 0이지만 시도를 한다면 0에 한없이 가깝더라도 제로는 아니다.
가볍게 고개를 흔드는 현우영을 보던 심은찬이 슬쩍 그 옆으로 가 앉았다. 현우영은 의아한 표정을 하면서도 심은찬이 앉기 편하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우영이도 식사 다 했어요? 아, 아직 좀 남았네요. 같이 먹을래요?”
“예. 은찬 형은 아직 많이 남으셨네요.”
“음, 그냥 좀 꼭꼭 씹어 먹느라.”
“그런 것치고는 아까 전부터 거의 안 드시는 것 같았는데요.”
“그랬어요? 전 몰랐는데.”
언제부터 보기 시작했을까. 대답하기 애매해서 그냥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심은찬은 젓가락으로 툭툭 전복을 찌르며 입을 열었다.
“근데 계속 저 보고 있었어요? 밥 먹는데 민망하게.”
“예? ……아뇨.”
이것 봐라.
현우영이 당황한 기색이 배어났다.
심은찬은 퀘스트를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남은 장어를 집어 현우영의 입으로 가져갔다. 장어 끝으로 입술을 톡톡 두드렸다.
“자, 아아-”
“……뭐 하세요?”
“얼른요.”
현우영은 마치 사마귀가 공중제비하며 이단 발차기를 하는 장면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어지는 심은찬의 재촉에 현우영은 결국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입을 벌려 아주 빠르게 받아먹었다. 심은찬이 들고 있는 게 젓가락이 아닌 위협적인 흉기라도 되는 것처럼.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할 틈은 없었다. 심은찬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세별이 형이 뭐라고 했는지 들었죠?”
계속 보고 있었다면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심은찬은 눈을 깜빡거리며 현우영을 쳐다보았다.
얼른 대답해. 조금 전에 들었을 거잖아.
현우영은 심은찬의 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직 입안의 음식을 씹고 있었다.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얼른 씹어라. 얼른 삼켜. 빨리. 빨리빨리.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심은찬의 속은 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입에 있던 음식을 다 씹어 삼킨 현우영의 닫혀 있던 입술이 움직였다.
그래, 얼른 말해.
문세별이 바로 조금 전에 했던 말이 현우영의 입에서 나오기를 노심초사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아프세요?”
아니야……!
현우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심은찬이 기다려 마지않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체하셨어요? 피곤하세요? 왜 안 드시고 계세요?”
아니야아아……!
[퀘스트 실패.
페널티 적용.]
절망적인 시스템 창을 보면서 심은찬은 바닥에 엎어지고 싶었다.
“은찬이 형? 왜 그러세요?”
“아니. 아니에요.”
“아. 설레게 왜 그래요……?”
“……헐.”
그 말을 지금 한다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짜고 해도 이렇게 할 순 없을 거다. 현실이 더하다더니.
허탈함에 앉은 상태에서 몸을 반쯤 접고 있던 심은찬은 바닥을 노려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어쩔 수 없죠.”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래. 이만하면 됐다.
시간 제한은 걸려 있었고 문세별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시도할지 감도 안 잡히던 퀘스트였다. 그러니 실패했다고 해도 너무 실망하지 말자. 그야 물론 랭크 업 하지 못하는 건 좀 아깝긴 했지만 현우영은 원체 축캐 아닌가. 이번에 실패했다고 해도 워낙 출중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으니 아깝긴 하지만 괜찮다.
괜찮지 않으면 또 어쩌겠는가. 이미 실패해 버렸는데.
문제는 곧 받을 페널티였다.
대체 무슨 페널티가 올까.
촉각을 곤두세우는 와중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랜덤 페널티. 다음 중 선택하세요.
▶1번
▷2번]
시스템을 조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악질이 분명했다. 심은찬은 2번을 선택했다.
[2번을 선택하셨습니다.
>신체 능력 약화 적용.
이번을 기회로 한숨 푹 주무시는 건 어떨까요.]
정말, 정말, 정말. 진짜 나쁜 놈이었다.
심은찬은 입술을 짓씹었다. 상태 창을 확인해 보니 정말로 신체 능력 약화가 상태 이상으로 걸려 있었다. 적용 시간은 12시간이었다. 12시간. 심은찬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2시간이라면 생방 시간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심은찬은 이를 악물었다.
* * *
드라이 리허설과 카메라 리허설을 끝낸 후 대기실로 돌아온 심은찬은 숨을 헐떡이며 의자에 앉았다. 신체 능력 약화라고 하기에 뭐 몸에 힘이 좀 안 들어가나 했는데 그게 아니라 전신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신체 능력 약화 같은 모호한 설명이 아니라 이해하기 쉽게 근육이 녹는 느낌이라고 써 뒀어야지.
심은찬은 알림 창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몸도 무거워지고 머리도 지끈거리는 것 같았다. 열도 조금씩 나는 것 같았다.
멤버들이 걱정할까 봐 혹시나 싶어 진통제도 먹어 보긴 했지만 단순히 몸이 아픈 게 아니기 때문에 효과가 전혀 없었다.
이걸 12시간을 버텨야 한다니. 무대가 끝난 뒤에는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어떻게든 본방까지는 버텨야 했다. 그나마 순서가 앞쪽이라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눈을 감은 채 의자에 기대서 시원한 벽의 감촉을 느끼며 열을 식혔다.
“은찬아 괜찮아?”
“네, 괜찮아요. 오랜만에 조명받아서 눈이 좀 부시네요. 저 잠깐만 쉴게요.”
아무래도 심상찮아 보이는지 정민유가 상태를 확인하러 왔다. 목도 까끌거리는 것 같아서 말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괜찮은 척 버티다가 너무 무리를 해서 정작 무대에서 실수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눈 안쪽에 불타는 구슬을 넣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게 너무나 잘 느껴졌다. 쓰러질 때는 쓰러지더라도 무대는 마치고 쓰러져야 했다.
큰일이 있는 게 아니다. 몸에 어디가 이상이 생긴 것도 아니고 그저 벌칙을 받는 것뿐이다. 그것도 12시간만 버티면 된다. 그냥 몸이 좀 아픈 것뿐이다. 얼마나 무대 위에 다시 서고 싶어 했던가. 이전 생에서 멍하게 벽을 보며 지냈던 시간들을 떠올려 보면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 상태인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할 수 있다. 이까짓 거 아무것도 아냐. 할 수 있어.
암시라도 걸듯 그 말을 되뇌었다.
의자에 몸을 기대듯 있던 심은찬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려 대기실을 살펴보았다.
떠올려 보면 그룹 생활을 하면서 멤버들 간의 사이가 좋지 않아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누구 하나가 문제를 저지르거나 구설에 오르거나 하는 일 역시도 없었다. 이해민이 중간에 그룹 탈퇴 후 재데뷔를 하긴 하지만 그건 그가 살길을 알아서 찾아 떠난 것이니 뭐라고 할 수 있는 문제 역시 아니었다. 정민유가 탈퇴 이후 군 입대한 것 역시 뭔가를 잘못한 게 아니었다.
B the 1의 문제 멤버라면 다른 누구도 아닌 심은찬 본인이었다.
그런 심은찬조차 남은 멤버들이 감싸 줬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다시 한번 팀을 이룰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눈꺼풀을 천천히 깜빡였다. 기분 탓인지 눈물샘이 느슨해진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상태 창을 확인해 봤다.
[이름: 심은찬
스타성: A
가창력: B>B− -신체 능력 약화 효과로 인해 능력치 하락
퍼포먼스: B>C -신체 능력 약화 효과로 인해 능력치 하락
외모: A
멘털: SS>A(보정 전: F) - 신체 능력 약화 효과로 인해 능력치 하락
특성: 회귀자(??), 말랑한 강철(멘털 강화 효과/SS), 인간 캣닙(호감도 강화 효과/S−) 활성화 중.
상태 이상: 신체 능력 약화 적용(남은 시간 08:32:47)]
“…….”
제 상태 창을 확인한 심은찬은 저절로 입술을 달싹였다.
시스템 뒤에 있는 존재는 정말로 양심을 달 너머로 보낸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시련을 줄 리가 없었다.
아니다. 누구 탓을 하겠는가. 결국 달리 생각해 보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 제 탓이었다. 바보 같이. 심은찬은 긴 한숨을 내쉬며 다시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매우 무거웠다. 당장이라도 눕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
몸이 좀 아프다고 어리광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팬들에게 그저 그런 무대를 보일 수는 없었다. 무대를 보는 사람은 무대 뒤의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다. 아이돌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웃는 얼굴로 최고의 무대를 보여 줘야 했다.
변명은 그 이후였다.
약한 소리 하지 말자.
훨씬 더 최악인 상황에서도 무대에 올랐었다.
심은찬은 한 손으로 눈을 덮었다.
이전에 얼마나 무대에 서고 싶었는지를 돌이켜보았다. 데뷔 이후 무대라고 할 수도 없는 곳에서 노래하고 춤추던 시절부터, 그리고 성형 실패 후 계속된 컨디션 악화로 침대 위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던 때까지.
심은찬이 서고 싶었던 건, 돌아가고 싶었던 건, 무대 위였다.
그 무대 위에서 팬들을 만나 보고 싶다고 얼마나 생각했던가.
다시 한번 더 나에게 기회가 생긴다면 죽을힘을 다해서 잘해 보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겨우. 고작. 몸 좀 아프다고. 그렇게 바라고 바랐던 두 번째 기회를 이렇게 날릴 수는 없었다.
심은찬은 주먹을 꼭 쥐었다.
몸 안쪽에서, 정확하게는 심장 쪽에서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할 수 있다. 해야만 했다.
생방송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