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서포트요? 저희한테요?”
“어. 얼마 전에 회사 쪽으로 보내도 되냐고 연락이 왔는데 이렇게 왔네. 내가 말하고 싶어서 입 간질거렸다?”
흐흐 웃으며 말하는 매니저를 한 번. 눈앞에 있는 쇼핑백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돌 생활을 하며 서포트를 처음 받아 본 건 아니었다. 아무리 B the 1이 망돌이라고 하더라도 서포트를 보내 줄 정도의 팬은 있었다.
하지만 한 번 회귀를 한 심은찬은 무척 오랜만에 경험해 보는 일이었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자신을 생각하며 음식들을 직접 고르고 업체를 선별하고 연락해서 이렇게 음식들을 보내 줬다는 자체가 벅찰 정도로 고마웠다.
“저희 공식 계정에 서포트 받은 거 인증할 사진 찍죠.”
“그래, 맞다. 이쪽에서 찍을까?”
이전에도 서포트를 받으면 인증 샷을 찍어 공식 계정에 올리고는 했었다. 모두 주르륵 일렬로 서서 카메라를 향해 자세를 취했다.
간단한 사진 촬영 후 멤버들은 안에 든 상자를 열어 보고 탄성을 질렀다.
“와. 대박. 이거 내가 다 좋아하는 것들 뿐인데. 어, 형 거랑 제 거랑 구성이 달라요.”
“진짜? 진짜네. 와. 여기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들었어.”
“대박. 이건 찍어야 해. 형 아직 먹지 말고 한군데 모아 보자. 음식 사진 한 번 찍고.”
각자 받은 도시락을 한군데 모았다. 색색으로 알록달록한 것이 아주 먹음직하고 예쁘기까지 했다. 다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고는 저마다 자신의 것을 들고 돌아왔다.
심은찬은 자신의 도시락을 보곤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처음 받아 보는 호화찬란한 도시락에 눈만 깜빡였다.
심은찬이 좋아하는 닭튀김과 우엉조림. 날치알 주먹밥과 유부초밥. 전복과 장어, 소갈비가 맛깔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한쪽에 소담하게 마련된 제철 과일 냄새도 기가 막혔다.
보양식은 따로 좋아한다는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 있는 걸 보면 먹고 기운 내라는 의미로 넣은 듯했다. 다른 멤버들의 것도 도시락 구성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전복, 장어, 소갈비 3가지 종류의 음식은 동일하게 들어가 있었다.
“……와.”
감탄을 하던 심은찬은 현우영과 눈이 마주쳤다.
“아까 전에 단백질 바를 괜히 드렸네요. 이렇게 좋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셔야 했는데.”
“네? 아. 아하하. 무슨 소리예요. 그건 마음을 받은 건데. 아, 물론 이것도 그렇지만요. 싹싹 다 먹으면 되죠.”
“……이걸 다 드신다고요?”
한 박자 늦게 현우영이 미심쩍은 얼굴로 쳐다보았다. 심은찬은 무척 억울했다. 아무래도 그에게 심은찬이 매우 소식을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박힌 모양이었다.
그때만 좀 유별나게 적게 먹었던 거지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생각해 보면 그때도 그렇게 대단한 소식을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평소에도 이 정도는 먹어요.”
“못 봤던 것 같아서요.”
그 대화가 들린 모양인지 도준서가 참견을 해 왔다.
“은찬이 많이 먹을 때는 엄청 먹어. 진짜 엄청. 우영이 너도 보면 깜짝 놀랄걸.”
“그렇지, 준서야. 그거 봐요.”
심은찬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진공청소기야 아주. 완전 흡입.”
“1절만 하자.”
신이 나서 2절 3절을 하는 도준서를 툭 쳤다. 그 와중 현우영을 흘긋 보았다. 저 눈빛은 아무래도 미심쩍어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 안 믿는 눈치인데? 이따 봐요. 내가 얼마나 잘 먹나.”
“아뇨, 굳이…….”
“어어? 준서야. 우영이 좀 봐.”
“막내랑 사이가 좋아 보인다, 응.”
옆에서 보고 있던 류서오가 한마디 거들었다.
둘의 수준이 같다는 말이었기에 심은찬은 현우영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려던 걸 꾹 눌러 참았다. 그래, 같은 수준으로 보일 수는 없었다. 둘의 실질적인 나이 차이가 몇인데.
“진짜 맛있다, 고기. 엄청 연해.”
소갈비를 하나 집어 먹었는지 도준서가 감탄을 흘렸다. 드라이 리허설이나 마친 후에 먹으라고 할까 하다가 어차피 빨리 먹고 본방 때 힘내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그냥 놔두었다. 심은찬도 유부초밥 하나를 집어 맛보았다.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침샘을 자극했다.
“진짜 맛있네.”
“그렇지? ……아니, 너 고기 먹고 그러는 줄 알았더니.”
“유부초밥이 왜. 팸팸이 챙겨 준 도시락 무시하냐.”
“그건 아니지! 그건 아닌데……!”
도준서가 펄쩍 뛰며 부정하는 모양새가 웃겼다. 심은찬이 입에 있는 음식을 다 삼킨 후 다른 음식을 먹으려 했을 때였다.
[미션 발동
퀘스트 확인 Y/N]
지금? 이렇게 중요한 상황에? 진심?
심은찬이 입으로 가져가던 젓가락을 잠시 멈추고 시스템 창을 쳐다보았다.
그의 선택지는 어차피 하나였다.
다른 멤버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장어를 입에 넣고 천천히 씹으며 시스템 창을 보았다. 간장으로 잘 졸여진 장어의 살이 부드럽게 씹혔다. 굳이 지금 확인을 안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전 정민유를 대상으로 했던 미션을 생각해 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면 성공을 해서 한 멤버라도 능력치를 높이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단 무슨 퀘스트인지 확인만 하는 건 괜찮겠지 싶어 Y를 선택하자 이전처럼 창의 내용이 바뀌었다.
[퀘스트
대상: 현우영
‘설레게 왜 그래요.’라는 말을 들으시오.
※ 단, 한 번의 시도로 성공해야 함.
※ 절대로 직접적으로 말하면 안 됩니다.]
순간 그렇게 맛있던 장어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용을 확인한 심은찬은 순간 장난하냐고 소리 지르고 싶은 걸 꾹 참느라 무진 애를 써야 했다. 뭐 다른 말도 아니고 무슨 내용이 왜 저래 싶은 거다.
설레게 왜 그러냐니. 무맥락으로 이렇게 갑자기 이런다고?
만약 이게 게임이고 운영자가 따로 있는 거라면 당장 담당자를 잡고 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짤짤 흔들었을 거다.
일단 퀘스트는 오픈을 했고 이걸 무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성공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뿐이었다.
“…….”
하지만 만약 실패한다면?
퀘스트를 수행했던 일은 이전 한 번뿐이었고 그것도 너무 쉬워서 성공했었다. 실패하면 어떤 페널티가 따라올지 몰랐다. 어디가 아픈 정도면 차라리 나았다. 갑자기 정신을 잃는다면? 오늘은 컴백 날이고 괜한 위험 부담을 질 수는 없었다.
곰곰이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지금 당장 퀘스트를 시도하는 건 무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특히나 ‘설레게 왜 그래요.’라니.
이걸 무슨 수로 현우영의 입에서 나오게 한단 말인가.
문세별이라면 몰랐다. 하지만 현우영 자체가 저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퀘스트가 중첩이 되는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만약 어떤 방식으로든 종료를 해야만 다음 퀘스트가 발동된다면 이번 퀘스트를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도 막힐 거고 그러면 능력치도 랭크 업시킬 수가 없다.
정말 안 되면 차라리 빠르게 실패해 버리고 다음 퀘스트를 기다리는 편이 나았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불친절한 시스템이었다. 이런저런 설명도 거의 없이 냅다 시스템 창만 던지는 꼴이었으니.
심지어 실패를 하면 어떤 페널티를 받는지도 설명이 되어 있지 않았다. 역시 이번 퀘스트는 방송을 끝낸 후에 여유가 있을 때 해결을 해야겠다고 결정 내렸다.
그러자 그걸 기다리기라도 한 듯 갑작스럽게 시스템 창이 불쑥 튀어 올랐다.
[퀘스트 시간 제한-05:00]
……야 이 양아치야!
심은찬은 제가 욕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습관처럼 쌍시옷으로 시작하는 욕설을 저도 모르게 내뱉었을 터였다.
갑자기 이런다고? 이렇게 갑자기 시간 제한을 둔다고? 순 제멋대로 하고 난리야.
미친, 하는 말을 입속에서 작게 읊조렸다.
“은찬아. 왜 그렇게 도시락을 노려보고 있어. 뭐 싫은 거라도 있어?”
문세별이 말을 걸어 와 심은찬은 정신을 차렸다.
“아뇨, 형. 그런 건 없어요.”
“그래? 그런데 왜 안 먹고 있어. 피곤해? ……아. 혹시 체했어? 내가 소화제라도 좀 사 가지고 올까?”
“아뇨, 아뇨. 괜찮아요.”
붙임성이 좋아 여기저기 참견하기 좋아하는 문세별답게 눈썰미가 좋았다. 심은찬이 긴장으로 소화 불량에 걸린 건 아닌지 걱정된 모양이었다. 그런 건 아니었기 때문에 심은찬은 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심은찬은 문세별이 제 몫의 도시락을 다 먹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형, 장어 드실래요?”
“와. 은찬아.”
문세별이 싱글벙글하며 심은찬에게 다가왔다.
“우리 은찬이 형 설레게 왜 이래.”
헐.
심은찬은 황당한 기분으로 문세별을 바라보았다. 지금 받은 퀘스트는 역시 문세별을 대상으로 했어야 했다. 그러면 이렇게 쉽게 통과했을 텐데. 뭘 어쩔 수도 없긴 했지만 정말 아쉬웠다.
심은찬은 아, 하고 입을 벌리고 있는 문세별에게 장어 한 조각을 넣어 주며 허탈한 속을 달래야 했다.
시선이 느껴져서 옆을 보니 현우영과 시선이 마주쳤다.
퀘스트 때문일까. 괜스레 신경이 쓰였다. 심은찬은 줄어드는 시간을 쳐다보았다. 그래. 어차피 이판사판이다.
“우영아 왜요? 할 말 있어요?”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건 기회일까.
차라리 이런 분위기가 되었을 때 밀어붙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굴려 보았으나 지금 이상 최적의 타이밍이 오진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