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팬들이 클립으로 만들어 누튜브에 업로드를 한 동영상은 이미 걷잡을 수 없었다. 해당 동영상의 조회수를 캡처한 팬들이 코스모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멤버들에게 보내 주었다. 오늘부로 70만 뷰가 찍혔다는 걸 알게 됐다.
일단 뭐로든 시선을 잡아 끄는 일이 생긴다면 그걸로도 좋다. 범죄와 관련된 일도 아니고 웃긴 그룹이 있네, 싶다면 그걸로도 좋다. 물론 그 영상으로 한 명이라도 입덕할 수 있다면야 더 좋다. 입덕은 한순간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드라마를 함께 촬영했던 사람들로부터도 컴백 힘내라는 문자들이 도착했고 그걸 확인하며 답을 보낸 심은찬은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옆에 앉은 현우영이 심은찬을 불렀다.
“받으세요. 리허설 들어가시기 전에 가볍게라도 드세요.”
“고마워요.”
가방을 뒤적이던 현우영이 건넨 건 단백질 바였다. 당분 함량이 조금 높아 보이긴 했지만 확실히 빵만 먹은 것보다는 더 힘을 낼 수 있을 거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밥 좀 챙겨 드세요.”
굉장히 노숙하고 대담한 발언이었다. 관점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겠지만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긴 했다. 나이도 어리면서 토달토달 말하는 게 결코 밉지 않았다.
“그렇긴 해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한 심은찬은 그 자리에서 바로 봉투를 뜯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비닐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도준서가 고개를 돌려 확인하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은찬이 거는 못 뺏어 먹지.”
“성장했다, 준서?”
“아, 형. 저 그렇게 식탐 안 많아요.”
“그래그래. 우리 준서 식탐 안 많지. 암요.”
발끈하는 도준서의 반응이 웃긴지 문세별이 큭큭거리며 대답했다.
달라고 하면 떼어 줄 용의는 충분히 있었는데 저렇게 말을 해 버리니 말 꺼내기도 좀 머쓱한 상황이었다.
방송국에 가까워지면서 차 안의 공기도 조금씩 바뀌는 게 느껴졌다.
멤버가 바뀐 이후로 처음 하는 무대이면서 동시에 컴백 무대이기도 했다. 긴장이 되는 게 당연했다. 심은찬 역시 아침부터 이어지는 설렘이 극에 달했다.
물론 출연한 드라마가 지금 한창 방영 중이기도 했고 시청률 역시 매우 좋았지만 아이돌인 심은찬으로 팬들과 만나는 건 오랜만이었다.
“…….”
정말, 오랜만이었다.
“얘들아, 미리 말해 둘 게 있다.”
운전석에서 묵묵히 운전하고 있던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짐짓 비장해 보이는 목소리 톤이어서 차 안에 있던 멤버들의 이목이 단번에 집중되었다.
“뭔데, 형?”
“확인한 사람도 있겠지만 오늘 출연자 중에 필드 알파가 있어.”
“……아.”
“필드 알파도 컴백 무대라더라. 1년 만의.”
그 말로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필드 알파.
이제 데뷔한 지 5년 차인 남자 아이돌로 독특한 세계관을 어필해 수는 적지만 결집력이 강한 팬덤으로 유명했다. 그 ‘유명’하다는 말에는 팬덤 분위기가 타 팀 배제 경향이 유독 강하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 말인즉슨 다른 팀의 응원이나 응원으로 보일 것 같은 행동은 일절 하지 않기로 명성이 자자하다는 의미였다.
B the 1도 유경험자였다. 이전에 한번 같은 무대에 섰다가 필드 알파의 팬들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경험을 한 번 했었다.
관객석에서 응원 봉도 흔들지 않고 호응도 없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각종 행사 경험이 있던 B the 1은 무난하게 넘겼지만 모든 팀이 그랬던 건 아니었다. 무난하게 넘어간 팀도 있었지만 표정 관리에 실패한 팀도 있었다.
그리고 그건 고스란히 전파를 타고 방송에 나갔다. 누튜브에 ‘필드 알파 팬덤에게 격파당한 아이돌들’이라는 제목으로 클립으로 돌아다닐 정도였으니 한두 팀은 아니었다.
평소에도 그런데 하물며 1년 만의 컴백 무대. 그 정도가 심하면 심하지 덜하진 않을 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심은찬은 자신의 특성을 떠올렸다. 인간 캣닙.
“걱정 마세요, 어떻게든 되겠죠.”
“그래. 알겠어. 은찬이만 믿고 간다.”
태연스러운 심은찬의 대답에 매니저는 피식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방송국 주차장에 도착한 차가 멈춰 섰다. 시동이 꺼지자 내부가 조용해졌는데 그 분위기가 상당히 묘했다. 매니저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내리자, 얘들아.”
차 문이 열리는 소리, 부스럭거리며 각자의 짐을 챙기는 소리까지 조용한 공기 중에 울렸다. 그리고 차 밖으로 나오는 순간 멀리서 출근길을 챙기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의 무리가 보였다. 저 중에 과연 우리 팬들은 몇 명이나 있을까. 이전에는 많아야 두세 명 정도였는데. 그나마도 이해민이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드라마가 아무리 시청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그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지 심은찬의 인기가 많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도 컴백이니까 공개 방송에 신청 성공한 팬들이 조금이라도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출입문 쪽으로 걸어가서 각자 위치에 섰다.
가요 프로그램에 오면 많이 볼 수 있는 게 이른바 대포라고 불리는 카메라들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한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모든 카메라 렌즈들이 한곳을 향해 서 있었는데 데뷔하고 나서도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기도 했었다. 아무리 B the 1을 찍지 않는다곤 하지만 주르륵 서 있는 카메라 렌즈들이 마치 여러 개의 눈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거다. 지금이야 많이 익숙해지기도 해서 자신을 찍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렌즈 하나하나에 시선을 맞추기도 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출입문까지 이동하는 동안 사람들에게서, 기자들에게서 나는 카메라 셔터 음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크게 났다. 기분 탓인지 자신의 이름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서 있는 데 정민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 셋.”
“안녕하세요! With your heart! Together! B the 1입니다!”
인사를 마치자 함성 소리가 들렸다. 심은찬이 눈을 크게 뜨고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보았다. 뭘 하겠다 의도한 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한 행동이었다. 심은찬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 다시 한번 큰 소리가 났다.
“꺄아악!”
“은찬아!”
“은찬아 여기!”
한 군데가 아니었다. 여기저기에서 심은찬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마다 심은찬은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았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른 게 정말 맞나 싶은 의구심이 들었는데 쳐다볼 때마다 셔터 음이 폭발하듯이 들리는 걸 보면 맞기는 한 것 같았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해졌다.
평소라면 암전인 반응에 30초도 채우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을 텐데 오늘은 달랐다. 매체에서 나온 기자들이 간단한 컴백 심정 인터뷰를 하며 마이크를 쥐여 주는 덕에 멤버들 한 명씩 짤막하게 대답을 했다.
마이크는 심은찬에게로 넘어왔다. 그러자 또다시 함성 소리가 크게 났다.
이 정도면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반응이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B the 1에게, 심은찬에게 호감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전 발매된 곡이 <초승꽃> 덕분에 차트 역주행을 했다곤 하지만 잠깐 받는 관심일 거라 여겼다.
대중이 주는 관심은 짧고 그 관심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 역시 빨랐다. 드라마로 잠깐 눈길을 끄는 건 가능하겠지만 그 흥미가 팀에까지 연결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심은찬은 자신이 속한 B the 1의 컴백 무대를 보러 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것을 기대하지는 말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상황은.
심은찬은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심은찬입니다. 오늘 무척 기대되는데요, 팬분들께 좋은 무대 보여 드리려고 연습 많이 했으니까 그만큼 즐겁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심은찬이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한번 함성 소리가 크게 났다.
마이크를 넘기고 손으로 볼 옆에 하트를 만들자 꺄악, 하는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카메라 셔터 음이 미친 듯이 들렸다.
그 후에도 컴백 무대 스포를 해 달라는 기자의 요구가 이어져 다들 서서 안무 포즈를 하나씩 취하고 나니 어느새 5분여의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따 무대에서 만나요!”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와. 대박.”
“저 사람들 중에 우리 팬도 있었지?”
“그런 것 같은데.”
멤버들 전부 아리송해했다. 하지만 이런 출근길은 또 처음이었기에 마음이 들뜨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심은찬 역시 그랬다. 앞으로 걸어가던 심은찬은 현우영이 앞쪽에 없다는 걸 확인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는 한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멍하게 있던 건지 심은찬이 쳐다보는 걸 바로 눈치채지 못하고 한 박자 늦게 깨달은 현우영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심은찬은 그와 보폭을 맞춰 나란히 걸었다.
“좀 긴장되죠.”
“예. 생각했던 것보다 좀 그렇네요.”
허세를 부리며 아니라고 할 수 있었을 텐데 현우영은 솔직하게 제 상태를 인정했다.
자신의 약한 부분을 인정하는 것은 나약한 사람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자기의 약한 부분을 인정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적어도 심은찬은 그렇게 생각했기에 현우영이 꽤나 기특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이렇게까지 허세도 없고 열심히 하려는 사람을 싫어할 리가 없다.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만큼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심은찬이 손을 뻗어 현우영의 어깨 부분을 감싸듯 한 채 위아래로 살살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잘할 수 있어요. 우영이는 잘하니까 여태까지 하던 대로 하면 돼요. 우리가 그렇게 연습했던 게 그래서였던 거니까요.”
현우영의 시선이 뺨에 닿았다. 설마 또 농담을 하는 걸로 느꼈나 싶어 재빨리 덧붙였다.
“진심인데요.”
“……예. 알고 있어요. 그래서 더 그래요.”
“어어, 너무하네. 뭐가 더 그래요?”
“아녜요, 아무것도.”
현우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현우영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어깨를 으쓱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름이 적힌 대기실로 들어간 그들은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음악 방송은 거의 하루 종일을 투자해야 했다. 지금은 현우영이 준 단백질 바를 먹어서 좀 괜찮긴 한데 이따가는 가볍게라도 뭣 좀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 현우영은 처음 들어와 봤을 터였다.
매점 구경을 시켜 준다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심은찬이 그를 부르려고 했을 때 문이 열리며 잠깐 자리를 비웠던 매니저가 안으로 들어왔다.
“형. 어디 다녀오셨, 우와 뭐예요?”
도준서의 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기에 그런지 쳐다보니 엄청 큰 상자가 보였다.
“이게 뭐예요, 형? 저희 이름 적혀 있네요?”
“어디 어디. 헉. 헐.”
“뭔데 그런 반응이야.”
문세별과 류서오도 우르르 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뒤늦게 합류한 심은찬의 눈에 예쁘게 포장된, 멤버별 이름이 적혀 있는 쇼핑백들이 보였다.
“너희들한테 온 거야. 서포트.”
매니저의 목소리에는 기쁜 기색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