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61)

#43

“6시 3분 32초.”

“…….아.”

도준서는 그 대답을 듣고는 탄식 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고개를 숙였다. 얼른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그 안의 멤버들이 전부 하고 있었다.

앨범 발표 직후의 순위가 어떨지 알고 싶었다.

B the 1이 여태까지 발표한 어떤 앨범도 1000위권 안에 차트 인을 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앨범 발매 날이 되면 매번 지금처럼 멤버들 모두 모여 앉아 각자의 핸드폰으로 순위를 확인하곤 했다. 혹시 모르니까. 어쩌면 이번에는. 누군가는 몇 번의 싱글 발표를 하면서 나온 성적이 있는데 그런 부질 없는 희망을 가지고 있냐고 할 수도 있었으나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꿈이 없었다면 아이돌이라는 걸 여태 유지할 수 없었다. 방에서 조용히 개인적으로 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늘 한자리에 모여서 순위 확인을 했다.

이번에는 〈초승꽃〉 덕분에 차트 역주행도 했었으니 어쩌면 그때보다는 조금 더 순위가 높을 수도 있었다.

서로 농담처럼 주고받던 것도 중단되었다.

“시간 됐다.”

누구 목소리인지도 몰랐다.

심은찬을 비롯한 다른 멤버들이 일제히 화면을 켜고 스트리밍 사이트에 들어갔다.

실시간 차트 100을 선택하고 목록을 주르륵 살펴보던 때였다.

“헉.”

누군가의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이, 이거 뭐야. 진짜?”

“뭔데.”

“이것 봐요. 땅콩 뮤직에서 25위요!”

“뭐? 거짓말!”

잔뜩 흥분한 얼굴로 소리를 내는 문세별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들으며 심은찬은 수박 차트를 살펴보고 있었다. 새로 개편된 수박 차트는 1000위부터 살펴보는 게 가능했기에 거꾸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천천히 천천히 손가락을 움직여 살펴봐도 곡명은 보이지 않았다. 700위, 600위, ……300위까지 올라가도 없었다. 설마 200위권 안에 든다는 건, 말이 안 됐다. 그래, 기대가 너무 컸다. 수박 차트 진입이 장난도 아니고.

심은찬이 입술 사이로 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엄지를 움직인 순간이었다.

“……어?”

심은찬의 손가락이 멈추었다. 지금 제가 본 게 믿기지 않는 듯 눈을 깜빡였다.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도 순위에 끼기 힘든 대표가 바로 수박이었다. 그런데 그 수박 차트에서.

“89위……?”

“어딘데?”

“……수박요.”

심은찬의 대답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웃고 있던 멤버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무표정으로 굳었다. 믿기지 않는듯한 얼굴들이었다. 심은찬은 그런 그들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이게 내밀었다.

멤버들의 눈동자가 심은찬의 핸드폰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그러고도 또 몇 초간을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우와아아아!”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 심지어 류서오조차.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수박 차트 첫 진입 89위.

1위도 아닌데 뭐냐고 할 수 있을는지도 몰랐지만 B the 1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멤버들은 서로 얼싸안고 거실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마치 일곱 살 된 어린아이들처럼.

B the 1이 데뷔하고 822일째가 된 날이었다.

* * *

컴백 무대 당일이 됐다.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설렘은 있었으나 떨림이나 두려움은 없었다. 평화롭다고 하면 어딘가 이상했으나 딱 그 정도의 기분이었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소풍을 앞둔 마음이랄까. 생각하면서도 솔직히 심은찬 본인도 좀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소풍이라니. 하지만 그것보다 더 걸맞은 말을 찾기 어려웠다.

이전과 비교하면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그때는 너무나 떨려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었다. 덕분에 화장도 제대로 먹지 않아 다 떴고 사고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연쇄 작용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박차를 가해 무대에 섰을 때에는 그대로 쓰러져 버리지 않는 게 이상할 수준까지 됐었다.

한데 지금은 달랐다. 멘털 랭크가 높아서일까.

얼른 무대 위에 올라가 팬들과 만나고 싶었다.

다른 멤버들 역시 비슷한 마음인 듯했다. 단지 심은찬보다 긴장이 조금 더 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심은찬은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나와 다른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는 현우영 쪽을 쳐다보았다.

세팅을 마친 현우영은 같은 남자가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대체 뭘 먹고 저렇게 잘생긴 걸까. 이쯤 되니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게 아니고 대단하다 하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현우영을 쳐다보던 심은찬은 그와 눈이 마주쳤다.

“왜요?”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생각하던 중이었어요.”

“뭐가요?”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현우영은 그런 심은찬의 반응을 잠시 지켜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계속 같이 생활할 텐데 잘생겼다고 하시는 거에 어떻게 반응을 하는 게 좋을지 모르겠어요.”

“……누가요?”

심은찬이 되묻자 현우영이 “은찬이 형요.”하고 대답했다. 심은찬은 입을 다물었다.

“……제가 소리 내서 말했어요?”

“예.”

악.

미심쩍어하는 현우영의 대답에 심은찬은 입술을 꽉 다물었다. 설마 놀리려고 그러는 건가 생각을 해 봤지만 이런 농담을 해서 현우영이 얻는 게 없었다. 심은찬은 제가 정신 줄을 놓고 있었구나, 하고 결론 내리는 것으로 생각에 마무리를 지었다.

이미 말해 버린 걸 어쩌랴.

여기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둘러대거나 얼버무린다면 분위기가 더욱 이상해질 거다.

“그렇지만 정말 잘생겼어요.”

“…….”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 현우영이었는데 눈을 슬쩍 다른 곳으로 돌렸다. 설마 좀 멋쩍어하는 건가.

“잘생겼다는 얘기는 자주 듣지 않았어요? 엄청 자주 들어서 되게 익숙할 것 같은데.”

“그거야 그렇긴 한데요.”

“와. 인정한 거죠, 지금.”

놀리는 의도가 다분한 말에 현우영이 조금 억울한 듯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라고 하면 안 믿는다고 하실 거잖아요.”

“거야 그렇죠.”

심은찬이 바로 긍정하자 현우영의 눈빛도 살짝 바뀌었다. 심은찬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아주 어이없어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미안해요. 지금은 장난이었어요. 근데 조금 전에 잘생겼다고 했던 건 진심이에요. 제가 멍 때리다가 말이 그냥 나왔나 봐요.”

“잘생겼다고 하신 게요?”

“네. 그러니까 그냥 흘려들어요. 잘생겼다는 말 많이 들었다면서요.”

놀리는 것도 적당히 해야겠다 싶어진 심은찬이 현우영의 팔 부근을 툭툭 두드리는 걸로 일이 끝나는 듯했다. 현우영이 그의 손목을 잡기 전까지는.

“옷이 왜 이렇게 많이 남아요? 살 빠지셨어요?”

“네?”

현우영의 눈짐작이 맞았다. 이전에 콘셉트 포토를 찍었을 때 쟀던 사이즈보다 조금씩 줄어 있었다. 특별히 운동을 하거나 한 것도 아니었고 평소랑 같은 양을 먹었는데도 그랬다.

덕분에 오늘 입은 바지도 벨트에 구멍을 추가로 뚫어 간신히 맞춰 입었다.

현우영이 심은찬의 손목을 잡아 소맷부리를 팔꿈치까지 쭈욱 걷어 올렸다. 갑작스러워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른 채로 멍하게 쳐다보던 심은찬이 몸을 들썩였다.

“으악. 뭐 하는 거예요!”

간지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잡힌 팔을 빼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니, 지금 힘 세다고 자랑해요? 제가 형이거든요?”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어이없는지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심은찬은 얼른 손을 빼고 소매를 내렸다.

“아침 드셨어요?”

“먹었죠.”

“뭐 드셨는데요?”

지금 신문하는 건가 싶은 느낌이 들었지만 뭐 이상한 걸 물어본 것도 아니었다.

“……음, 토스트……?”

기억을 더듬은 심은찬의 대답에 현우영은 “세별이 형이 딸기잼 바른 그거요?”하고 확인하듯 재차 물었다. 그렇다는 말을 들은 현우영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빵만 드시고 오늘 무대 어떻게 하시게요. 팸팸들 오랜만에 보시는 거 아니에요?”

확실히 맞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바로 방송국으로 가야 했다. 방송국에서 리허설 중간중간에 뭔가를 먹으면 되겠지 싶었다.

“가서 먹으면 돼요. 매점도 있으니까. 방송국 매점 처음 가죠? 같이 가 봐요.”

마침 다른 멤버들도 준비를 마치고 나오기 시작했다.

“오래 기다렸어? 희한하게 둘이 빨리 끝났네.”

“오래 안 기다렸어요. 가요.”

이야기는 중단되었고 심은찬을 포함한 멤버들은 방송국으로 이동했다.

“아니, 그런데. 저번 페이스 앱에서 말야. 그거 정정 안 해도 돼?”

도준서가 입을 열었다.

“일단 코스모스에 말을 해 두긴 했어.”

류서오는 대답한 후 도준서 쪽을 돌아보았다.

“의자 끌리는 소리 듣고 방귀 소리로 착각했던 도준서 씨.”

“……아니, 형. 진짜 억울해. 그때는 그렇게밖에 안 들렸다니까?”

“맞아. 그랬어.”

문세별도 거들었다. 류서오는 제 옆에 앉은 문세별을 한번 흘끔거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리는 두 사람이 치고 수습은 나랑 은찬이가 했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문세별과 도준서가 류서오에게 깍듯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정민유 역시 류서오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그날의 정황은 이러했다.

바닥에 의자 끌리는 소리를 방귀 소리로 들은 도준서가 1차로 웃음이 터졌고, 소리를 들었으나 참으려고 했던 문세별 역시 웃음을 터트렸던 거였다. 정민유는 이유도 모른 채 큭큭거리는 소리가 괜히 웃겨서 웃었다고 실토했다.

당일 해명하는 이야기를 했다면 좋았을 테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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