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콘셉트 스포를 피하기 위해 모자를 착용했다.
한 화면에 빠짐없이 다 나오기 위해 좁은 자리에 끼어 앉으려니 서로 어깨가 걸렸다.
“야. 우리 이거 무슨 기자회견 하는 것 같다.”
“그것도 그래 보이네.”
시시덕거리는 문세별의 말에 류서오가 태연한 목소리로 수긍했다. 그 말에 아이디어를 얻은 심은찬이 입을 열었다.
“저희 뉴스하는 것처럼 하는 건 어떨까요? 무표정하게 앉아서.”
“오. 아이디어 괜찮다.”
“……웃을 것 같은데.”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좋을 것 같아. 자연스럽게.”
“은찬아 뭔가 방향성을 잃지 않았어?”
툭 치고 들어오는 딴지에도 심은찬은 개의치 않았다. 윤리에 반하는 게 아니라면 어떤 방식으로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정확히는 욕할 사람을 욕할 거고 즐겁게 받아들일 사람은 즐겁게 받아들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반응을 컨트롤할 수도 없고 그게 가능할 리도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걸 최선을 다해 할 뿐이다.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했다.
저녁 9시 30분이었다.
직장인 팸팸들은 퇴근 후에 식사를 하고 쉬고 있을 시간이었고 학생들 역시 학원을 마치고 편하게 쉬고 있을 시간일 것 같았다.
“매니저 형한테 페이스 앱 지금 켠다고 연락드렸어. 다들 앉았지? 켠다.”
정민유가 화면을 작동시켜 방을 생성했다.
헉
허ㄱ
헐헐
헐
헐ㄹㄹㄹ
누구야?
누구
누구니
헉
얘들아 안녕
안녕
보고싶었어
헐 완전체
헉 은챠니다
심은찬
은차나
은찬!
세상에 이게 뭐람 심은찬 있어
恩燦能见到你我很幸福
연운아ㅠㅠㅠㅠㅠㅠㅠ
다섯 명은 빠르게 채팅이 올라가는 가만히 화면을 쳐다보았다. 페이스 앱 방송을 보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들의 수가 빠르게 늘어났다.
“지금 하는 거 맞아요?”
이전이라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는 시청자 수를 보면서 심은찬이 맹하게 물어보았다.
“어, 맞는데…….”
다른 멤버는 한두 번 페이스 앱을 했다고 들었으나 심은찬은 부족했던 연습량을 채우기 위해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냈었기에 실시간으로 팸팸과 소통하는 건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그동안은 이전에 촬영했었던 자콘만 누튜브에 올렸었다.
심은찬은 화면에 표기된 숫자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하트 수와 방에 들어온 인원수가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그리고 그런 감상은 다른 멤버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모두 한곳만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얘들아, 인사해야지.”
정민유의 나직한 소리에 다들 정신을 차렸다.
“안녕하세요. With your heart! Together! B the 1입니다.”
정식 인사를 하자 채팅방은 귀엽다는 말들로 도배가 되었다. 그나마도 워낙 빠르게 넘어가 눈으로 읽는 것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방송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시청자 수가 만 명을 넘어섰다. 하트 수는 무려 30만이었다.
이전 페이스 앱과 비교하면 2배……, 아니. 10배 정도였다.
“이렇게 단체 페이스 앱을 하는 건 진짜 오랜만인데요. 한 가지 소식을 알려드리려 방송을 켰습니다.”
정민유가 담담하게 말문을 열었다.
다들 방송 시작 전 이야기했던 것처럼 무표정을 유지하려는 듯 가만히 정면을 보고 있었다. 채팅 창에서는 그들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듯 왜 그러냐며 의아함을 표했다. 그때 갑자기 가만히 앉아 있던 도준서에게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도준서를 쳐다보니 입술을 말아 물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뭘 하는가. 몸이 바람에 흔들거리는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웃음이 터진 건지 영 알 수가 없었다. 문제는, 웃음이란 건 전염이 된다는 거였다.
도준서의 옆에 있던 문세별을 시작으로 리더인 정민유까지 조금씩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정민유는 정신을 다잡아 보려고 노력하는 듯했지만 연이은 실패로 귀가 빨갛게 변하기까지 했다.
뭔데
뭐야?
다들 무슨 일이야
나도 같이 웃자
?????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건 류서오와 심은찬 두 사람뿐이었다.
멤버를 새로 소개하기로 하고 시작한 방송인데 갑자기 이런 분위기가 되어 버려서 난감했지만 목표를 이뤄야 했다. 류서오와 눈짓으로 말을 주고받은 심은찬은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카메라 근처로 가까이 다가갔다. 상황이 수습될 때까지 다른 멤버들의 얼굴을 보이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팸팸들. 지금 잠시 화면 조정 시간이라 제가 잠깐 이렇게 가까이 왔습니다.”
잠깐 깜빡이 좀
은찬이 얼굴 너무 가깝다 ㅁㅊ
도랏다 눈 큰거 봐
은찬아ㅠㅠㅠ
……은찬이가 화면조정시간을 어떻게 아니?
눈 깜빡거리는 거 완전 인형;;
은찬아 사랑해
해민이랑 연락하니?
나는 중국인입니다 은찬 중국어를 할 수 있습니까?
은찬이 밥 먹었어?
은찬아 오늘 김휴인 배우랑 통화했음?
채팅 창의 채팅들은 잔상만 남기며 위로 올라가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심은찬은 채팅 창 읽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저희가 이제 컴백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아까 민유 형이 소식을 알려 드리려고 방송 켰다고 하셨는데요. 저희가 이제, 새로운 멤버 한 명이 들어왔습니다. 컴백 전에 먼저 우리 팸팸들에게 소개를 좀 해 드리려고요. 이쪽으로 오세요.”
심은찬이 현우영을 향해 손짓했다.
일부러는 아니라고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처음 팬들에게 소개하는 자리가 아니었나. 이런 해프닝이 일어난 게 마음 쓰였다. 카메라에 잘 비치지 않는 쪽의 눈을 찡긋하며 미안한 마음을 표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원래 앉기로 했던 자리에는 가지 못한 현우영을 자신의 바로 옆으로 부른 심은찬은 그의 어깨에 가볍게 팔을 둘렀다. 잘하라는 응원을 담아 툭툭 두드리자 현우영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현우영이라고 합니다.”
그즈음 멤버들 간에 퍼졌던 역병 같은 웃음이 잡혀서 제대로 방송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가 되었다.
“처음 팸팸들에게 인사를 드리니 좀 어때요. 떨리진 않나요?”
“떨리지만 실수 없이 하려고 최대한 안 떨려고 노력 중입니다.”
붙임성 있게 웃는 상태로 입을 여는 현우영을 쳐다보았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얼굴인데 정말 떨고 있는 걸까. 궁금하기도 하고 살짝 놀리고 싶은 기분도 들고 괜히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심은찬의 시선을 느낀 건지 현우영이 고개를 조금 돌려 시선을 마주쳐 왔다.
“제가 뭐 실수했나요?”
넘어갈 줄 알았는데 물어보는 게 역시 현우영이다 싶었다. 그러면 그렇지. 보통 첫 데뷔를 앞둔 신인이라면 떨려서 이런 질문을 입에 올리지도 못하고 눈치만 살필 텐데 확실히 다르긴 달랐다. 실제로 팬들을 보지 못하는 상태라 실감이 나지 않아 그런가.
“이름만 말씀하시고 끝내면 어떡해요. 나이랑, 팀 내 포지션도 말씀해 주셔야죠. 다시, 다시.”
심은찬의 말에 현우영의 얼굴에 앗차 하는 표정이 스쳐 갔다.
“네, 그럼.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현우영입니다. 나이는 스무 살이고요, B the 1에서 보컬과 랩을 맡고 있습니다.”
“하나 빠트리셨잖아요. 춤도 잘 추십니다.”
웃으면서 말하는 심은찬을 보는 현우영의 표정이 아주 약간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가 뭐라고 다른 멘트를 하기 전 얼른 분위기를 바꿔야겠다 싶었다.
“이제 저희 멤버들도 약간 안정이 된 것 같습니다. 다시 처음 방송 시작했던 대열로 돌아가겠습니다.”
심은찬이 말을 마치며 몸을 뒤로 뺐다. 방송을 처음 켠 기분으로 다시 한번 구호를 붙여 인사를 했다.
“근데 조금 전에는 왜 그렇게 웃으셨던 거예요?”
류서오가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정민유가 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얘기를 해도 되나요? 서오랑 은찬이는 못 들었어요?”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말하던 정민유가 다른 멤버들을 둘러보았다. 그 질문에 간신히 원래 상태로 돌아왔던 다른 멤버들이 허공을 노려보며 웃음을 참았다.
“누가, 음, 어떤 멤버인지는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만. 아니, 사실 누구인지도 모르고요. 근데 조금 전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서, 그, 신체적으로 어쩔 수 없는, 가스, 아니. 그, 그런 소리가 났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기에 저렇게 빙빙 돌리나 싶었는데 생각도 못 한 이유였다. 심은찬이 눈을 둥글게 떴을 때 그나마 순발력이 빠른 편인 문세별이 나섰다.
“형, 스톱요.”
확실히 새 멤버를 처음 소개하는 페이스 앱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주제를 빨리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게 나았다. 슬쩍 본 채팅 창에서는 난리가 나 있었다.
누튜브에 ‘새 멤버 인사 자리에서 일어나는 흔한 일’이라는 제목으로 클립이 올라가 5일 만에 조회수 100만을 돌파하는 영상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 *
은찬이먕먕@euntochan0229
뮤비 끄는 법 알려줄 분 구합니다…….아니 그냥 같이 들어요
찬찬@cupmanimani
이건 미쳤다. 은찬이 너무 예뻐.
이렇게 좋을 일인가ㅠㅠㅠㅠ
배경이랑 합쳐서 완전히 천사야ㅜㅠ 다크 콘셉트인데도 뒤에 날개가 보임;
그렇게됐습니다@eunchanbbb
21세 남성 때문에 숨 쉬는 게 힘들다
드라마랑 같은 듯 다른 이미지 소화하는 아이돌 어떤데
챠니목줄왕왕@wowwowchan
이 장면에서 은찬이 각도 미친다
속눈썹 긴 것봐 와씨 나보다 길어
눈만 크롭하면 마스카라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수준
입덕은찬으로@gabojagogogo
뇌:결제할게
지갑:죽어줄게
앨범 결제 갈기고 왔어요
└리리알쓰@riri0229 맞아요 돈은 이러려고 벌었죠^^
최애는너로정했다@poket_eunchan
초승꽃에서도 느꼈지만 확신의 T존 미남
└갑자기이렇게@bthe1_chan T존 미쳤어요 은찬이 또 사극 찍어줬으면
나다@eunchana_NADA
뮤비 은찬이 나온 부분만 따봤어요. 은챥이 표정 진짜 대박 잡지보면서도 느꼈는데 어떻게 이런 표정을 하죠
└룰루루챤@lulululu100
그러니까요 잡지에서도 얼굴 정말 잘 쓰던데 뮤비에서 미쳤어요 진짜 무한 반복중인데 이렇게 챤이 나온 부분만 또 올려주시다니 감사합니다ㅠㅠ
비솓1컴tothe백@mylovelove
빨리 무대보고 싶다ㅠㅠㅠㅠ아이돌 그 잡채ㅠㅠㅠㅠㅠ
날아올라라은찬@beautiful_chani
이전에 애들 활동한 거 보는데 괜히 눈물남. 어떻게 이런 애들을 몰랐지
└행숫@number3333 선생님 저두요. 진짜 열심히 살았구나 싶고……미안하고 그러네요
└리스너@chan4s2000 그나마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호롤로@heartfrom1 진짜 버텨준 애들한테 고마워요 얼마나 힘들었을지ㅠㅠㅠ
은찬이찬란해@h2o_moon
은찬이 이제부터 꽃길만 걷자ㅠㅠㅠㅠㅠ하고 싶은거 다하게 해줄게ㅠㅠㅠ
└은찬아나다문열어@open_door_0229 정말 은찬이 하고 싶은거 다 했으면 좋겠어요
입덕은요란하게@yeon_un_8888
스밍 어떻게 하는 거더라. 재입덕하니까 완전 헷갈림; 알려주실 분 계신가요?ㅠㅠ
└니은@dmscks_sarang 선생님 이거 보고 참고 하세요(링크)
너구나이쁜이가@pickkkkka_chu
현우영이라는 청년을 보고 계정 팠습니다. 뭐부터 보면 되는 건가요?
└제가왔습니다@comeback_me 선생님도요? 저도요…….미쳤어요 비쇼 계보 완성 됐어요;
└└너구나이쁜이가@pickkkkka_chu 선생님 반갑습니다 뮤비보다가 기절할 것 같았어요 정신차려보니 서치만 미친 듯이 하고있고…… 근데 우영이가 이제 갓 데뷔한 애라 자료가 없네요?^^
└└└제가왔습니다@comeback_me 자료가 없네요?^^2222…… 미쳐요 진짜 노래만 무한 재생중이에요 저 얼굴에 노래 미쳤어요 대한민국을 누가 천연자원이 부족하다고 했죠. 원석이 저렇게 숨어있었는데
└└└└갓기우영@ontop_woo 저도 자료가 없어서 헐떡이고 있어요ㅠㅠ빨리 직캠 떴으면 좋겠어요 전후 좌우 아주 싹싹 핥아먹게ㅠㅠ
└└└└└제가왔습니다@comeback_me 직캠요? 헉…… 생각만해도 심장이 나대네요 와 그 날만을 기다려야겠어요 직캠 올려주겠죠? 카감들이 저 얼굴천재를 모를리 없어요ㅠㅠ 가로캠 세로캠 다 좋으니 직캠만……ㅠㅠㅠ
비더원스밍총공계@BTHE1_strm
내일 음원 발매하는 6시부터 스밍총공 들어갑니다. 참고해주세요
긍긍짱@euneun_xx2902
팬사 공지 떴던데 70명 뭐냐고……. 100명도 모자르다고 소속사 뭐하냐;;;;
└은친놈@b1_euneun 그러니까요 인원수 너무 어중간해요;;;
└└긍긍짱@euneun_xx2902 그러니까요 70명 누구 코에 붙이려고; 하여간 일도 ㅈㄴ못해요
└└└은친놈@b1_euneun 예전 생각하고 70명 한 것 같은데…….너무 적어요 이전 앨범에서도 팬사 100명 했던데 갑자기 70명 머선 일;
컷상담@fanssasangdaaaaam
B the 1 팬사컷 문의받습니다
가격-2.0
마감까지 컷 봐드려요
(당첨자 목록 마음함)
* * *
앨범 발매 당일, 종방연에 참석하고 돌아온 심은찬은 씻지도 못한 상태에서 거실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멤버들 옆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은찬이 오늘 종방연이라더니 멋지게 하고 다녀왔네. 피곤할 텐데 씻고 와.”
“괜찮아요. 그렇다고 발매 시간 때 씻을 수는 없잖아요.”
심은찬은 정민유에게 대답하며 웃었다.
“기자들 많았지? 기사도 엄청 많이 떴더라.”
“예상보다 많아서 좀 뚝딱거린 것 같아.”
심은찬은 오전에 있던 종방연을 떠올리며 웃었다. 그곳에 모여든 기자가 무척 많았다. 그도 그럴 게 현재 <초승꽃>은 금토 드라마는 물론이거니와 상반기 방영 드라마에서 최고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 중이었다. 드라마 자체의 화제성이 큰 만큼 수십 개의 매체에서 촬영을 왔는데 그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매니저에게 듣기로는 심은찬 개인에게 연락이 오기도 했지만 김휴인과 동반 촬영으로 컨택해 오는 잡지사도 있다고 들었다. 김휴인과의 스케줄 조정이 끝나면 조만간 함께 잡지 촬영을 할 것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앨범 활동을 하면서 상당히 빡빡한 스케줄이 될 것 같았지만 심은찬은 괜찮았다. 외려 감사할 지경이었다.
“…….”
“아. 떨리는데.”
“몇 시 됐지?”
도준서의 말에 류서오가 핸드폰으로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