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61)

#40

심은찬이 알고 있던 드라마의 시청률 추이가 이렇게까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아도 너무 좋았다.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은찬 씨 옷 다 갈아입었어요?”

“아, 네. 바로 들어갈게요.”

“아, 어머. 아니에요, 그렇게 급할 건 없어요. 재촉하는 것처럼 들렸나 보다.”

사진작가가 심은찬을 보며 웃었다.

“근데 옷 태가 아주 예쁘게 잘 맞아요. 포즈도 좋고. 모델도 이렇게 잘 소화하기는 어려운데.”

“앗. 정말요.”

심은찬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심은찬의 장난을 눈치채곤 또 한바탕 까르르 웃었다.

“농담이고요, 과찬이세요. 작가님께서 지시도 잘 해 주시고 잘 찍어 주셔서 그렇죠.”

심은찬은 바로 손을 흔들며 웃었다.

“그럼 바로 들어갈까요?”

“네.”

살짝 피곤하긴 했지만 촬영 스케줄을 미루며 휴식을 취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드라마의 시청률이 좋았기 때문일까. 심은찬 개인에게도 잡지 촬영 스케줄이 연이어 들어왔다. 주연 중 제일 맡은 분량이 적은 자신에게 이렇게 잡지사가 컨택할 정도라면 다른 주연들은 말하나 마나였다. 실제로 김휴인에게도 꽤 여러 군데에서 연락이 갔고 주연을 맡은 박윤우에게는 두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어진 기회는 열심히 잡아야 했다. 다른 생각은 더 이상 금물이었다. 카메라에는 집중을 하는지 아닌지가 티가 났다. 촬영하는 중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망돌인 상태였다가 드라마 하나 잘 만나서 이제 갓 이름을 알릴지 말지 하는 상태의 아이돌 주제에 정신을 빼고 촬영한다고 보이면 곤란했다. 아니, 곤란할 정도가 아니라 그러면 안 됐다.

“정신 차려야지.”

작게 중얼거린 심은찬은 자신을 향한 카메라를 응시하며 자세를 잡았다. 눈에 힘은 빼지 않은 채로 입가는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그렇게 한 컷. 또 한 컷을 찍었다.

오늘 입고 촬영할 의상은 8개다.

부지런히 소화해야 그나마 안무 연습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심은찬은 잡생각을 치우고 촬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 이른 시간부터 있던 촬영을 마치고 연습실로 향한 시간은 저녁 5시였다.

연습 시간에 늦은 만큼 보충을 해야 한다는 각오로 안무 연습에 임했다. 다들 쉴 때도 혼자서 벽 거울을 보며 스텝을 익혔다. 아무리 해도 엇박으로 들어가는 걸 만족스럽게 맞추기가 어려웠다. 개인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팀 스케줄에 피해를 주기도 싫었고 그 영향 때문에 소홀하게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싫었다. 입술을 깨물며 혼자 연습을 하고 있을 때 문세별이 다가와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며 봐주기 시작했다. 쉬고 싶을 텐데도 일부러 봐주는 게 몹시 고마웠다.

예전이라면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미안하다는 마음에 압도당했을 텐데. 문세별의 설명을 들으며 동작을 취하던 심은찬은 문득 이전의 제 사고방식을 떠올려 보았다.

“그래. 그거야. 이제 되네.”

“……그러게요. 잊기 전에 다시 한번 해 봐야겠어요.”

그러다가 마침내 까다로운 안무 동작에 성공했다. 문세별은 제 일처럼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심은찬도 성취감에 뺨이 솟아오르는 걸 막을 길이 없었다. 다시 한번 준비 자세를 취했을 때였다.

[당신의 충실한 노력이 결실을 맺었습니다!

랭크 업 된 능력치가 있습니다.

▶퍼포먼스가 랭크 업 되어 B>B+가 되었습니다.]

……뭐?

갑자기 뜬 시스템 창에 심은찬의 눈이 커졌다.

“은찬아……!”

“앗. 아, 네. 형 죄송해요.”

“정신 차리자.”

문세별의 엄한 목소리에 심은찬은 바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성공하자마자 정신 어디에 팔고 있어.”

“죄송해요. 지금 바로 들어갈게요.”

시스템 창을 제대로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건 언제든 가능했다.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일단 안무 연습하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번 성공한 이후라서일까. 아니면 퍼포먼스가 랭크 업 된 영향일까. 이번에는 조금 전에 비해서 어렵지 않게 안무를 소화할 수 있었다.

문세별이 심은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단체 연습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방에 들어간 심은찬은 조금 전에 떴던 알림 창을 다시 읽어 보았다.

랭크 업 된 능력치가 있다니. 랭크 업? 랭크 업이 이런 식으로도 가능한가?

심은찬은 제 상태 창을 열어 보았다.

[이름: 심은찬

스타성: A

가창력: B

퍼포먼스: B+

외모: A

멘털: SS(보정 전: F)

특성:회귀자(??), 말랑한 강철(멘털 강화효과/SS), 인간 캣닙(호감도 강화 효과/S−) 활성화 중.]

알림 창에 뜬 대로 확실히 랭크 업이 되어 있었다.

상태 창을 쳐다보던 심은찬의 눈이 가늘어졌다.

연습을 많이 하거나 능숙해지면 능력치 상향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을 해 보지 않았지만 능력치가 고정이 되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 안 되긴 했다.

그런데 대체 얼마나 해야 랭크 업이 가능한지를 모른다는 점이 답답했다. 필요한 연습량을 좀 알 수 있다면 부족한 걸 노력으로 커버하는 게 가능할 텐데.

능력치가 오르는 게 B에서 A로 바로 되는 게 아니라 B에서 B+로 반 단계씩 오르는 것 같았다. 한 번에 단계가 하나씩 오르는 퀘스트가 얼마나 효율이 좋은지 실감됐다. 이로써 더욱더 퀘스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동기가 생겼다.

심은찬 개인으로 따진다면 어쨌든 부족했던 퍼포먼스를 이런 식으로 보충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것도 컴백 전이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이런 방식으로 능력치 랭크 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남은 건 어찌 되었든 노력하는 거였다. 또 그게 맞는 거였고.

의자에 기대어 겨우 한숨 돌리고 있을 때 도준서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은찬아, 봤어?”

“뭐를?”

“땅콩 뮤직!”

“땅콩 뮤직?”

시끌벅적하게 심은찬에게 다가온 도준서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핸드폰을 받아 화면을 본 심은찬의 눈이 커졌다.

땅콩 뮤직의 실시간 차트 100에 B the 1의 노래가 있었다.

95위.

바로 직전에 냈던 from.S가 당당하게 차트에 올라가 있었다.

수박보다는 이용자 수가 적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국내 3대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였다.

심은찬의 두 눈이 커졌다.

도준서는 그런 심은찬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함박웃음을 지었다.

“대박이지.”

“어, 어떻게 된 일이야?”

“나도 팬들이 알려 줘서 알게 된 건데 암만 봐도 <초승꽃> 덕분인 것 같아.”

“……어…….”

심은찬은 당황스러움에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일 수 없었다.

드라마가 인기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나 아무리 그래도 TOP 100에 B the 1의 노래가 역주행할 정도라는 건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정말인가 상황이 믿기지 않아 화면을 빤히 보던 심은찬은 정신을 차리고 우선 핸드폰 화면을 캡처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도준서가 조금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야, 반응이 뭐 그래.”

“응? 내 반응이 왜.”

“아니, 음……. ‘헉 정말?!’ 정도는 할 줄 알았지. 너무 덤덤한 거 아냐?”

심은찬은 도준서의 오버스러운 액션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나 지금 놀랐는데.”

“전혀 그렇게 안 보여.”

결국 도준서가 투덜거렸다.

그는 형들에게도 이 사실을 얘기해야겠다며 방을 나갔다.

심은찬이 코스모스에 들어가 보니 팬들 역시도 땅콩 차트를 캡처해 보내 놓았다. 축하한다는 말이 가득했고 익숙한 몇몇 닉네임은 정말 잘됐다고 눈물 이모티콘만 길게 적어 놓고 있었다.

도준서는 심은찬이 너무 덤덤하다고 했지만 사실 많이 놀란 상태였다. 그러나 심은찬도 내심 본인의 반응이 너무 차분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긴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일을 한 번도 생각 안 해 봤던 게 아니다.

「내가 발표했던 노래가 차트 역주행을 한다면.」

아이돌로 데뷔는 했지만 생각만큼 인기를 얻지 못한 이들이라면 머릿속으로 한 번쯤은 이런 상상을 하지 않을까.

이슈 덕분에 차트 역주행을 하는 선배들을 보면서 부럽다고 생각했고 언젠가 이런 일이 심은찬 자신에게도 생기면 참으로 좋겠다고, 꿈꿔 오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일이 벌어진다면 가슴이 벅차올라서 눈물을 펑펑 쏟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이런 일이 정말로 벌어지고 나니 그렇지 않았다.

얼떨떨하고 믿기지 않고 기쁘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담담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건 아니었는데 엄청나게 기쁘다거나 신나서 방방 뛸 정도는 아니었다. 그게 너무나 이상했다.

심은찬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실감이 안 나서 그런가.”

작게 혼잣말을 하던 심은찬은 몇 번 더 눈을 깜빡거리다가 생각을 중단하고 코스모스에 보낼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팸팸들! 좋은 하루 보내고 있어요? 팸팸들이 얘기해 줘서 차트 확인했어요. 와 무슨 일이죠. 믿기지가 않아요.ㅠㅠ 팸팸들 덕분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활동할게요.]

메시지를 보내자 팬들의 반응이 더욱 활발해졌다.

올라오는 메시지들을 읽던 심은찬은 김휴인에게 온 메시지 창을 보고 화면을 전환했다.

-은찬아 종방연 날짜 결정됐는데 연락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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